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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통치론 ㅣ 나의 고전 읽기 5
박치현 지음, 존 로크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제나, '자유'가 너무 고팠다. 무엇무엇을 해도 될 자유, 무엇무엇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내가 자유에 목말하는 줄 몰랐다. 따로 얻고 싶은 것이 그닥 없었으니까. 그 시절에 내가 꿈꾼 자유는 만화책 실컷 보는 거랑 소설 양껏 쓰는 것이었는데 그건 그냥 내 시간을 쪼개는 것으로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입장이 달라졌다. 학업은 마쳐야 했고, 그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는 특성상 늘 같은 시간에 그 자리에 있어야 했고 그날이 명절이건 크리스마스건 예외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의 구속성은 꽤 심했다. 그 다음에는 언니가 어느 날 차려버린 가게에 매인 몸이 되었고, 그래서 그 흔한 M.T한번을 맘껏 가지를 못했다. 다른 연유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게 허락된 것들은 아니었다. '장사'를 하게 되니 평일도 그렇지만 주말은 절대 내 시간이 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많이 받은 문자는 '언제 오니?"와 '언제 끝나니?"였고, "방학은 언제니?"는 요즘에도 일주일에 세번씩은 듣게 되는 질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나의 시간을 희생해서 내게 얻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 자유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투자하거나 맞바꿔도 좋겠지만, 내가 치르는 시간에 대해 내가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언니의 가게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출근하지 않는 날들(방학이라 할지라도)이 불편했다.
내가 이렇듯 내가 치른 시간을 아까워 하고, 갖지 못한 시간을 아쉬워 하고, 오매불망 원하는 것은 '자유'인데, 그 자유를 내가 얻어내지 못하는 것은 자유에는 언제나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나는 언제나 '몸'으로 봉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이 책의 제목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라고 적혀 있다. 존 로크의 '통치론'을 설명하기 위한 부제인데, 너무도 적절한 제목이지 싶다.
로크가 살았던 시절에는 왕이 절대권력을 휘둘러도 그것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귀족들이 농민들을 수탈해 간다 할지라도 억울하지언정 대항할 수가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오랫동안 그래왔다. 최근에 드라마 황진이에서 스승 백무는 '양반'을 '감히' 능멸한 죄로 장형을 받을 위기를 처했고, 그녀는 자결로서 형벌을 거부했지만, 생명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한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시절에 천인들이 신분적 제약에 의해 '자유'라는 것이 없었고 모두들 그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크의 업적은 위대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원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왜 우리에게 자유가 필요하고, 우리가 자유를 누릴 자격을 어떻게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해 낸 사람이다.
로크의 이름은 교육학 책이나 윤리 책에서 지겹게 본 이름인지라 일단 거부감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책을 보면서는 조금이나마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어찌됐든. '자유'를 갈망하고 필요로 하고 있음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책의 구조는 1부 삶-전통과 싸우다...에서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서 설명되어졌고, 2부-글,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다... 에서 '통치론'을 중심으로 쉽게 풀어 쓰고 있으며, 3부-유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서는 로크의 한계와 달라진 시대상, 그리고 달라진 자유의 의마, 우리의 현주소 등이 비교적 쉬운 예와 함께 묘사되고 있다.
자유는 필연적으로 소유와 연관되어지고, 재산은 계급차를 인정하게 만들고, 자본주의는 빈부 차를 반드시 불러왔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가진 속성이 더럽거나 혹은 악마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변질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마지막에 지금과 같은 시대에 로크 사상의 의의를 '자유를 향한 이상'이라고 했을 때에 조금은 뜨겁고, 또 조금은 답답함을 느꼈다.
자유롭고 싶은 나의 욕구,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치러야 할 값,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몹시 어려운 길들... 그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 어지럽게 펼쳐졌다. 그래도, 의심은 하지 말자고 다독여 본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아름다운 것이다.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지키기 위해선, 노력해야 한다. 끊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