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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좋은 글을 써서 내 글을 읽는 분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싶은 욕구는 있었지만, 그걸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지는 못했다.(못했던 것 같다...라고 쓰려다가 고쳤다. 이 책 읽고서 번쩍!) 이 책을 통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밑줄을 그은 예는 많지만 당장 눈에 띄게 큰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읽기 전과는 분명 달라진 점이 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목적은 달성한 셈!
저자 분은 실제 글쓰기 강사를 하시는 분인데 살아있는 예시를 보여주며 쉽고 간결하게, 그리고 적확하게 글쓰기 훈련 책을 만드셨다. 표현이 너무 살아있어 어르신들 용은 결코 아니고, 인터넷과 블로그 등이 친숙한 젊은 세대에게 적합한 책이라 생각한다. 때로 표현이 너무 싼티날 때가 있어서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또 때로는 그래 이 맛이야! 싶을 만큼의 재미난 어휘구사가 지루할 법한 '작법'에 대한 교육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 강약을 조절하는 것도 좋은 글쓰기 선생님의 내공일 테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면 1교시부터 무려 7교시까지의 수업이, 더불어 보충수업까지 전개된다.
1교시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자 - 닫힌 표현과 열린 표현
2교시 한 사람을 움직이면 세상이 움직인다 - 구체성과 보편성
3교시 내 안에 나 있다 - 부분과 전체
4교시 기부는 수능이 아니라 검정고시다 - 개념 재규정
5교시 인생은 피자다 - 예시와 비유
6교시 흙이 마르면 물을 주세요 - 독자 눈높이에 맞추기
7교시 돌려막기 인생에 돌려차기를 날리다 - 글감 찾기와 개요 짜기
보충수업 소극적 제안과 적극적 제안
'닫힌 표현'과 '열린 표현'을 염두에 두고 생활해 본적이 없는데 책을 보고 나니 아핫! 싶었다. 제시해준 예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오늘 전철역에서 싸이코를 만났다.(닫힌 표현)
2010년 4월 5일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에서 파란색 스판 바지 위에 빨간색 빤쓰를 입은 중년 남자를 보았다.(열린 표현)
닫힌 표현이 더 필요한 글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독자는 열린 표현에 더 마음을 열고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글쓰기이다.
객관적으로 말하기, 더군다나 네거티브가 아닌 '긍정의 말'을 이용했을 때의 효과가 눈에 보인다.
요즘 오래 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으며 오타를 수정하고 있는데 오타뿐 아니라 저런 식의 쓸데 없이 무거운 문장들이 눈에 많이 띄어서 서술어를 많이 고쳤다. 중학생일 때는 '만연체' 느낌의 문장이 멋있어 보여서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지나치게 긴 문장들은 패쓰, 패쓰, 패쓰해 가며 넘어가버리는 경향이 생겼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다시금 김훈 작가가 생각났다. 그의 문장은 수식어 없이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하면서 무겁다. 그런데 그의 글이 주는 느낌은 장엄하고 엄숙하고 때로 화려하다. 수식어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힘을 돋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 서술어를 간략하게 쓰는 것이라는 이 책 저자의 지적과 상통한다.
부사 뒤에 여러 조사가 붙어도 되지만 꼭 필요하지 않으면 붙이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한글 문서를 쓰다 보면 부적절한 표현에 붉은 줄이 북 그어지곤 하는데 저렇게 불필요한 부사어의 조사에서 많이 발견한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작문' 수업이 있긴 했는데, 그때 이런 것들을 배웠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요새도 이런 걸 배우는지는 모르겠다. 모르지만, 이런 가르침이 꼭 필요함을 느끼고 말았다. 사실 읽기 전에는 막연히 느꼈지 정확히 몰랐지만.
다만 이렇게 좋은 글과 나쁜 글의 차이점을 배우면 글을 자연스럽게 쓰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돌아보고 고치고 하느라 흐름이 끊기는 단점이 있다. 처음부터 익숙해져 있다면 달랐을 테니, 역시 한 번은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저자분의 말투도 재밌지만 그림이 주는 효과도 만만치 않다.
저자의 어머니가 해주신 사례인데, 시골 노인 친목회에서 '자랑 벌금'을 책정했단다. 자식 자랑을 하면 천 원씩 벌금을 내야 하는데, 자랑을 많이 하고 싶으면 2천 원을 내야 하고, 특이하게도 손주 자랑을 할 경우 할머니가 아닌 며느리에게 벌금을 받는다고 한다. 오버한 것이지만, 얼마나 손주 자랑을 했으면 저런 금액이 나올까. 게다가 슬프게도 88만원 대라니..;;;; 총무님 패션은 거의 복부인 수준! 해맑은 표정의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복수하는 게 진짜 목적이었던 게 아닐까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다 하면, 이런 특별한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내가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확실히 알진 못하지만'... 이런 표현은 얼마나 자주 쓰곤 하던가. 사실은 그게 비겁한 글쓰기라는 걸 알아차리며 뜨끔했다. 그렇게 시작하는 글을 찢어버리라는 과격한 표현에서 잠시 놀랐다면 중고샵에 팔지 말라는 얘기엔 피식 웃고 말았다. 저자분, 센스가 장난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무언가 알려주고 가르치는 책은 지루하거나 귀찮을 수 있지만, 그런 두려움(!)을 던져버린다면 꽤 유익한 독서가 될 것이다. 한 권의 책보다 한 학기 정도의 강의를 직접 들으면 더 큰 성과를 누리겠지만 당장은 이렇게 책 한 권으로 만족하련다.
유일한 옥의 티가 있다면 표지! 제목도 그리 맘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 저 두꺼운 폰트가 너무 거슬렸다. 물결치는 글씨도 뚜껑을 열기는커녕 자꾸 내 마음을 닫게 만든다. 그것만 엔지였어요!
어찌 됐든, '공감'을 끌어내는 저자의 글쓰기는 확실히 성공. 좋은 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