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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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여주 잔혹사,라는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동화이야기에 담겨져있는 메타포를 헤집어놓고 분석하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은 내용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면서 일부러 천천히 읽은 책이다. 

사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이야기에서 도널드 바셀미의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으로 썼다는 소설의 내용은 - 백설공주가 낮에는 가사노동에, 밤에는 일곱난장이들의 성노예로 착취당하며 살아가고 이웃에 살던 왕자는 누군가 백설공주를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다 자신이 그녀를 구할 왕자인 것을 끝내 알지 못하고 계모의 독에 죽임을 당하는데 왕자의 죽음을 모르는 백설공주는 영원히 왕자를 기다린다는 -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였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확장되어 유리관에 놓여진 백설공주의 시신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던 것이었기에 솔직히 말해 뭔가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느낌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에서 용이 나타나 공주를 납치해가고 왕자가 나타나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낸다,고 하지만 용이 악의 분신이 아니라 공주의 분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상 주체적인 공주가 용의 모습으로 자신을 구속하는 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옛이야기에 담겨있는 은유적인 표현을 알게 되면 알수록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들었던 놀라운 은유는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다리밑에서 줏어온 아이'라는 말이었다. 선배가 의미심장하게 옛어르신들의 지혜로움은 그런 말에서 느껴진다고 말을 할때만 해도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다리밑에서 줏어온 자식이라는 놀림을 받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좀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신기하고 재미있어 이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을수밖에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실을 잣고 이야기를 짓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보니 오래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속 댈러웨이 부인이 뜨개질을 하는데 그 뜨개 바늘이 자신을 지키는 무기 역할을 한다고 했던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그 말의 의미가 더 깊이있게 느껴지고 있다. 

뜨개질을 하고 옷감을 자아서 무엇이든 뜨고 싶은 것을 뜨듯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는 것은 우리가 왕자의 구원만을 기다리는 깊은 숲속의 공주가 아니라 용감한 용이 되어 자유롭게 세상으로 날아오르거나 자신의 이름을 찾아 돌아오는 치히로가 되거나 또 다른 무엇이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거나 등등의 '나는 나'를 당당히 외치면 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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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정원에서 출발해 탑에 갇혔다가 광야를 헤맨다. 정원은 순수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세상이 만든 탑에 갇힌다. 그때가 되면 사회의 기대와 규칙과 관습을 인식하고, 그 안에 자신이 갇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소수에 속하는 특성을 지닌 사람일수록 기존 사회의 관행이 자신을 가두는 철벽의 성처럼 느껴진다.

광야를 거쳐 도착한 성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장이다. 사회의 사다리를 올라가 트로피처럼 여성을 얻으면 된다는 식의 그릇된 관계는 그 전제가 뒤틀렸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갇혀 있든, 올라가서 거머쥐려 하든, 모두 자기 몫의 광야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광야를 잘 거쳐서 자기 통합세 성고아고 성에 입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부디 자기 몫의 광야를 제대로 거쳐서 내적인 통합을 이루길, 평화와 안정의 성에 들어가기를. 삶의 의미는 광야를 걸어 성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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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솟는다.
어머니 모시고 결혼식 가야하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하고 공항에서 버스타고 경기도까지 가자는 한가한 소릴하고 있다.
형제라는것들이 웬수같은 느낌이다.
지들은 전화 한 통으로 할 효도를 다 했다는듯 다는건 신경쓰지도 않고.
일상적인 짜증은 내가 다 받는데.
어머니는 또 일주일에 오분도 안되는 전화통화에는 아주 친절하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며 웃고.
하아.
경사를 앞두고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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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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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 줄게"


청혼,이라는 제목과 저 문장을 읽고 뭔가 낭만적이거나 혹은 애절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일 것을 기대한다면 잠시 책을 덮어두시라 말하고 싶다. 배명훈 작가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기는 하지만 십일년만의 재출간이라는 이 소설을 이제야 읽어본다. 

책을 읽은 직후라 그런지 자꾸만 결론같은 이야기만 떠오른다. 사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라고 표현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 속 문장들을 곱씹다보면 이 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이건 우주전쟁이 아니라 지구인들의 전쟁이 아닐까 싶어진다. 


아니, 딱히 지구인과 외계인의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 '적'이라는 규정 역시 '파멸의 문' 건너편에 있으니 당연히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적이 맞는 것이겠거니 라는 생각을 했을뿐이다. 

이야기는 먼 미래 우주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싸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 파멸의 문 너머에 있는 적의 함대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부의 적인 반란군과 동일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더 명확하지 않게 느껴지는데 아무튼 그 적과 대치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군함선에 복무중인 '나'의 서술로 시작하고 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1초후의 나와 똑같으면서도 똑같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포 발사의 시간차 공격에 대한 설명이 또 전혀 어렵다거나 쌩뚱맞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구에서 180시간을 날아, 어느 한순간에 순간이동으로 지구에서 함선의 휴양지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시간을 건너며 찾아 온 연인에게 느끼는 것이 사랑이고 그래서 청혼을 결심하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아, 그러고보니 왠지 이 이야기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사랑의 이야기였던가?

소설의 문장들을 읽다보면 연인의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까지 - 아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아주 대단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사기꾼 같은 느낌이니 나는 그저 문장들이 좋았다,라고 해야겠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고 현재의 내 모습이 미래의 나를 투영해보게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파멸의 문 너머 거울효과를 보는 듯한 철학적 사유는 이 소설을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읽고난 후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이지? 하고 정리를 해 보려고 하니 떠오른 생각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라고는 못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배명훈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고 재미는 별로...라고 말하는 '청혼' 역시 절대 '별로'라는 말은 못하겠다. 내가 좋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역시 마무리는 청혼의 문장으로.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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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일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결국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 나는 네가 남긴 중력장이싫지 않아. 네가 머물다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그 커다란 공백을 더듬어서 네가 내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복원하는 순간, 그런 식으로 다시 네 존재의 실루엣을 되살려낸 순간, 나는 내가 그걸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돼. 아, 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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