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4일 석예인 어린이가 구원상담을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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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7 처음 사랑을 가지라.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일곱 교회는 오늘날의 터키 서부지역에 있던 교회로 지상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에베소 교회로 지금은 셀주크(Selcuk)입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아시아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해안도로와 서부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했고 근처에 항구가 있었습니다.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여신전과 다이아나 여신전이 있었고 시저와 도미티안 황제 신전도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었고 사람과 맹수가 싸우는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관광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다 보니 상업이 발달했고 아데미 신전과 원형극장이 있다 보니 관광객이 몰려들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에베소를 잠깐 방문하였고, 3차 선교여행 중에는 2년 동안 머물면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가르쳤습니다.(행19:10) 에베소는 우리나라의 부산정도 되는 도시로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목회한 도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주신 말씀입니다. 1절 하반 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라고 말씀합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계1:20) 예수님이 일곱별을 붙잡았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고,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먼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합니다. 2절 전반 절을 통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네 행위 즉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수고와 인내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수고하는지 우리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인내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수고는 2절 하반 절을 통해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 사도에 대항하여 싸우는 수고를 했습니다. 우리도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지 않는 것도 수고하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단과 맞서느라 수고 했듯이 우리 교인들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단과 거리를 두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인내는 3절을 통해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박해를 받았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를 했습니다. 신앙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입니다. 단거리 선수처럼 순간적인 힘이 아니라 장거리 선수처럼 꾸준한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또 하나를 칭찬받았는데 6절을 통해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니골라당은 우상숭배와 음란한 행동을 조장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음란하게 살지 않고 정결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교회는 신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랑과 신부가 만납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정결하게 살아야 하듯이 우리 교인들도 가정을 지키며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세 가지를 칭찬받았습니다. 이단에 맞서느라 수고했다고, 박해를 견디고 인내했다고, 몸을 정결하게 지켰다고.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합니다. 4절을 통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이광진 교수는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해석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지요? 은혜를 받을 때는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눈물 콧물 흘리며 다짐했지만 사이다에 김이 빠지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이 약해지더니 주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을 위해 살기에 급급해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지요?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부입니다. 부부는 결혼할 때는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했지만 비바람에 바위가 깎여 나가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식어가더니 천생연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고 맙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경고합니다. 5절을 통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옮기리라.” 고 말씀합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처음 사랑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랑이 식은 원인을 찾아 다시 사랑에 불을 붙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다시 말해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사라지게 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 식은 원인은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직분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월급봉투를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봉이 작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애굽에서 구해주신 것을 감사했는데 광야를 지나면서 목이 마르다고 불평하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처음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날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으니 자살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필 목사님은 잃은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도 없는 것을 불평하기보다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차동엽 신부님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기 위해 Thank you!와 Congratulation!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마운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 주는 게 선진국민입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이제 에베소 교회를 위해 약속합니다. 7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고 약속합니다. 생명나무가 어디서 나오는지 기억나십니까?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지만 다시 창조하실 천국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22:2,14,19) 천국은 에덴동산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이필찬 교수처럼 계 21장 1절부터 22장 5절을 천국이 아니라 교회로 해석한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교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설교해야 한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회복했을까요? 회복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는 주후 262년에 고투족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3대도시가 폐허도시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촛대를 옮기신 결과입니다. 우리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라 개그콘서트 현장이 됩니다. 웃음꽂이 만발합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목사님은 생활을 간섭하는 사감선생이 아니라 천국으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됩니다. 천국가이드가 됩니다. 하나님에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부부끼리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그것이 가정이 살고 신앙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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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6 성령님의 사람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완전히 신뢰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에 갑니다. 복음을 완전히 신뢰하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능력을 받습니다. 능력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두나미스’인데 두나미스에서 dynamic(역동적인)이란 단어와 dynamite(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가 파생했습니다. 복음은 다이내믹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완전히 신뢰하면 우리는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병들고 몸이 지쳤다고 하더라도 복음을 신뢰하면 마음도 치유되고 몸도 회복돼서 독수리가 창공을 훨훨 날아가듯이 남은 인생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복음을 신뢰하기 이전과 복음을 신뢰한 이후로 나눠집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신뢰하여 남은 인생을 역동적으로 살아가십시오. 복음은 다이너마이트입니다. 길을 만드는데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바위를 깨뜨립니다. 다이너마이트가 바위를 깨뜨리고 길을 놓으면 기차가 사람과 물건을 가득 실고 경적을 울리며 힘차게 달려갑니다. 우리가 복음을 신뢰하기 이전에는 장애물을 만나면 좌절했지만 복음을 신뢰한 이후에는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신뢰하여 장애물을 극복하십시오. 저는 이 시간 복음을 신뢰하여 역동적인 삶을 살고 복음을 전하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존 웨슬리(John Wesley)입니다.

존 웨슬리는 1703년에 영국 성공회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명의 자녀 중에서 15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웨슬리는 1720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영화 [해리포드와 마법사]를 보면 마법학교의 배경으로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가 나옵니다. 웨슬리는 세계적인 명문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웨슬리는 1726년에 옥스퍼드 대학교 링컨 칼리지의 연구교수(Fellow)가 되었습니다. 링컨 칼리지에는 학장이 1명 있었고 연구교수가 12명이 있었습니다. 웨슬리의 아버지는 ‘나는 비록 시골 목사지만 내 아들은 링컨대학의 펠로우다.’ 라고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1726년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가 크라이스트 처지 칼리지에 입학하여 신성회(Holy Club)을 만들었습니다. 웨슬리는 신성회를 지도했습니다. 포항시에서 성시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웨슬리의 홀리클럽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홀리클럽 멤버들은 처음에는 고전과 신학서적을 읽으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경건의 훈련을 하였고, 나중에는 죄수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병자들을 위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웨슬리는 종교적인 열심이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선행을 베풀었지만 선행은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가톨릭과 다릅니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선행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선행을 베풀었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었습니다.

1735년에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주에 선교사로 갔다가 1738년에 실패하고 돌아옵니다.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에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케이트 가에 있는 모라비아 형제들의 모임인 페터레인 신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웨슬리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누군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고 말했습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웨슬리가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말할 때 사용한 단어는 ‘warmed’입니다. 어떤 사람은 ‘hot’가 아니라 ‘warmed’이기 때문에 뜨거운 것이 아니라 따뜻해졌다고 번역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 학자는 ‘warmed’은 마음이 감동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말로는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합니다. 웨슬리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감동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신앙적으로 회심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어떤 때는 교회당에 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나와야 은혜 받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새벽기도에 나오려면 3가지를 박차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불을 박차고, 대문을 박차고, 교회당 문을 박차고. 저는 교회당에 나오려면 3가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자동차문을 열고, 교회당 문을 열고. 교회당 문을 열면 귀찮았던 마음은 썰물처럼 사라지고 은혜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밀물처럼 몰려옵니다. 웨슬리는 마음은 뜨거웠지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웨슬리는 모라비아 형제들의 본고장인 독일을 방문하여 초대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왔습니다. 웨슬리는 모라비아 형제들의 모임인 페터레인 신도회를 인도하여 부흥시켰습니다. 1739년 1월 1일에 페터레인 신도회는 60명 정도가 모여 정기 애찬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찬양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새벽 3시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웨슬리는 ‘기도회를 계속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나 강하게 역사하여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서 큰 소리를 질렀으며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웨슬리가 1월 1일에 모인 애찬회는 송구영신예배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벽까지 기도하다가 성령님을 체험하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초대교회처럼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1월 7일에도 모였는데 성령님이 또 다시 임하셨습니다. 웨슬리는 드디어 성령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웨슬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체험하면 하나님과 우리와 직통전화가 개설됩니다. 성령님을 체험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일하지만 성령님을 체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과 일하십니다. 저도 성령님을 체험하고 능력을 받아 예수님도 전하고 인격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성령님을 체험하면 교회 가지 말라고 해도 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웨슬리가 성령님을 체험했던 당시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지가 되었고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감옥은 죄수들로 넘쳐났습니다. 사회가 타락하다 보니 복음의 필요성도 높아졌습니다. 요즘도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해졌습니다. 복음이 필요해졌습니다. 웨슬리가 성령님을 체험하자 영국 성공회는 웨슬리를 열광주의자라며 교회당에서 설교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은 조용기 목사님도 처음에는 이단시비에 휘말렸잖아요? 웨슬리는 홀리클럽 멤버였던 조지 휫필드의 권유를 받아 1739년 4월 2일 월요일 오후 4시에 브리스톨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지성적이었던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가 그 당시 가장 거칠었던 탄광노동자들에게 전도했습니다. 만약 웨슬리가 교회당에서 설교했다면 교회는 부흥을 했겠고 웨슬리는 성공회 목사로 남았을 겁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설교했더니 폭발적으로 부흥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 병자들이 고쳐졌고 죄인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사들은 웨슬리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웨슬리는 3가지를 설교했습니다. 칭의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신생 즉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다. 성화 즉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과 생활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탄광노동자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웨슬리는 메도디즘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감리교회와 성결교회와 구세군과 나사렛을 비롯해 우리나라 6개 교단이 웨슬리의 후예입니다. 하나님은 웨슬리를 교회 강대상이 아니라 거리로 내몰아 굶주린 영혼들을 교회당으로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내 원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선교하길 바랐으나 하나님은 바울을 유럽으로 보내셔서 루디아를 회심시키고 빌립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다니는 동안 빌립보 교회는 든든한 후원 교회가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 목사로서 교회당에서 설교하길 바랐으나 하나님은 웨슬리를 거리로 내보내 굶주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메도디즘을 창시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저것을 하길 바라신다면 내 원을 접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크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요 우리는 진흙입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맘대로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 듯이 우리 인생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빚으시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시키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역동적으로 살게 하고 우리가 다이너마이트처럼 장애물을 극복하게 합니다. 우리도 성령님을 체험하여 다이내믹하게 그리고 다이너마이트처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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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42 성령님을 받고나서

저는 요즘 성령님에 관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림자처럼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해가 뜨면 그림자가 생기고 해가 지면 그림자가 가려지듯이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고 믿음이 약해지면 성령님이 동행하시는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가 뜨든 안 뜨든 그림자는 있듯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지 성령님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달라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감정 기복이 심한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고 용기를 내서 물위를 걸어가기도 했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물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아가지 못하도록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했고 예수님이 붙잡혀가시자 대제사장의 여자 종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널뛰기를 하던 베드로가 성령님을 받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마리아의 집(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님을 체험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은 120명 이었습니다. 120명이 성령님을 체험하자 예루살렘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마침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러 시골 사람들과 해외 동포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구경하러 왔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새 술에 취했다(성령님이 임하셨다.)고 설교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 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베드로는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120 명에서 3,l20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교회도 지금은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놀랍게 부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많은 영혼들을 맡겨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을 주는 교회가 된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몰려옵니다. 물고기는 먹이가 있는 곳에 몰리듯이 마음이 상한 영혼들은 위로가 있는 곳에 모이기 마련입니다. 요즘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려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가랑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만 소나기로 쏟아지면 수마가 땅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우리교회도 갑자기 부흥한다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호우예방을 한다면 산사태가 나지 않고 빗물이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작용이 없이 교회가 부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 42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아멘! 그들은 새로 예수님을 영접한 3천 명을 말씀합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12 제자를 말씀합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중에 120 명은 성령님을 체험한 교인들이었고 3 천명은 새로 입교한 교인들이었습니다. 저는 새로 입교한 교인들이나 성령 받은 교인들이나 모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초신자가 신앙이 자라는데 기존신자가 그대로 있겠습니까? 어떤 교인들은 더 이상 배우려하지 않고 과거에 매여 삽니다. 신앙은 사골곰탕이 아니라 즉석김밥입니다. 과거를 우려먹지 말고 현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신앙도 반영하시겠지만 현재의 신앙을 잣대로 삼으십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깨끗하잖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과거의 추억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신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듯이 우리 교인들도 목사의 지도를 받아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모여서 수다 떨고 밥 먹고 노래방 가고 스트레스 풀고 헤어지지만 교인들의 교제는 신앙 지도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 모임은 회원들의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회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입니다. 교회 모임에 신앙지도가 빠진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됩니다. 신앙은 교인과 교인을 연결하는 접착제입니다. 신앙이 약해지면 결속력도 떨어집니다. 우리는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 한 형제 한 자매가 되듯이 교인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한 형제 한 자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제하지 않는다면 남남이 되지만 우리가 교제한다면 형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강의실에서만 만나지 않고 식당에서도 만나고 숙소에서도 만났습니다. 3년 동안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면서 훈련했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같이 드리고 수련회를 통해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잔다면 친해지게 됩니다. 시뻘건 숯불도 하나만 따로 놓으면 꺼져버리지만 함께 섞어놓으면 활활 타듯이 우리도 혼자 있으면 신앙이 약해지지만 함께 어울린다면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신앙을 주제로 서로 교제했듯이 우리 교인들도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교제한다면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 떡을 뗐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떡은 빵을 말씀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밥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여 예배도 드렸고 성도들 가정을 돌아가면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성도들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는 빵과 포도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도 하였고 음식을 가져와서 애찬식도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먹는 식사를 아가페라고 합니다. 교회 식당을 아가페 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1장을 통해 주의 만찬을 나눌 때 유의 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음식을 가져와 식사를 했는데 부자 교인들은 음식을 많이 가져와 밥도 배불리 먹고 포도주도 많이 마셔 취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교인들은 먹을 음식이 없어 시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1:27) 교회에 밥을 가져왔으면 자기 밥이 아니라 교회 밥입니다. 자기 밥이라고 자신이 많이 먹고 안 가져온 사람을 굶긴다면 그것은 죄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밥을 같이 먹으라는 말씀했습니다.(고전11:33) 초대교회 교인들이 같이 밥을 먹었듯이 우리 교인들도 같이 밥을 먹으면서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특권입니다. 우리가 걱정거리가 있으면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셔서 우리가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을 ‘5기’라고 합니다.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기적이 일어나 기쁨이 넘친다. 초대교회 교인들 중에 120명은 성령님을 체험했는데 그들은 오로지 기도했기 때문에 성령님을 체험했습니다. 새로 입교한 3,000명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기도에 힘쓴다면 우리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게 되고 교인들의 걱정거리도 사라지게 됩니다. 기도는 우렁각시입니다. 우렁각시가 청소도 해놓고 밥도 해놓듯이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자녀도 마음을 잡고 남편도 돌아옵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이 성장하고, 교인들이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교제하고, 교인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고, 기도에 힘쓴다면 우리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게 됩니다. 전도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하는 겁니다. 음식이 맛있으면 소문내듯이 교회 다니면서 행복하다면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성령님은 그림자처럼 우리와 동행하시고 성령님은 매듭처럼 우리를 사랑의 띠로 묶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을 체험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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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파트에 사는 정지현 씨가 오늘 오후에 예수님을 영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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