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평점 :
우리 세계에서 '판사'라는 직업보다 더 이성적이고 냉철해야 하는 분야가 있을까? 조금이라도 자신의 사견이 들어가면 왜곡된 판결이 나올 수 있기에 더욱더 자신을 냉철하게 만들도록 훈련해야 하는 직업일 것이다. 마치 날카로운 칼을 갈듯이, 그렇게 평생을 자신을 날카롭고 냉철하게 만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가끔은 자신의 인생에 회환이 생기고, 잃어버린 감정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도진기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름 이런 추측을 해 본다.
도진기 작가는 전직판사로서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다. 처음 도진기 작가를 만나 작품은 유명한 변호사 고진 시리즈 중의 하나인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비록 추리소설이었지만, 마치 응팔 시리즈처럼 80년대 감성이 짙게 묻어있는 작품이었다. 어떻게 판사이며,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작품이었다.
[악마의 증명]은 도진기 작가가 그동안 써온 8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담고 있다. 그중 첫 번째 소설의 제목이 바로 [악마의 증명]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박철은 우연히 의정부의 한 부대찌개 앞을 지나면서 돈 많은 여주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돈을 갈취할 계획을 꾸민다. 저자는 마치 주인공의 머릿속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그의 스산한 생각을 들춰낸다.
"대학에 와서는 잠깐 생각이 흔들렸다. 단지 손쉽다는 이유로 어두운 길을 전전하며 잘못 살아온 것 아닐까? 대학은 추상 도덕이 주입되는 곳이었다. 책, 강의, 친구, 모두 이타를 이야기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른 사회, 더불어 사는 길 따위를 주제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길가 돌멩이보다 숱하던 그 약삭빠른 인간들은 다 어디 간 거지? 내가 모르는 새 다른 사회로 위프 한 건가? 아니면 내가 대학에 진학할 즈음 인간 종이 전격 개량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 없다. 거룩한 '말씀'에 잠깐 현혹되었지만 난 이내 깨달았다. 그들은 사라진 게 아니다. 대신 '올바른 척'을 하면서 평판을 유지하는 쪽이 잇속을 챙기기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것이었다. -중략- 형이상학의 구덩이에서 나는 기어 나왔다. 남의 장단에 춤추는 얼치기가 될 뻔했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방향을 뒤로하고 다시금 '나'만의 인생을 위해 내 안의 '악'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P 14-15)
주인공은 밤늦은 시간 영업을 끝내고 돈을 가지고 나오는 여주인을 칼로 협박한다. 그러나 여주인의 도발에 그만 그녀를 죽인다. 그리고 그 장면이 그대로 주변 CCTV에 찍힌다. 이제 주인공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아주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과연 주인공이 생각해 낸 악마의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마음이 아프게 읽은 소설은 세 번째 소설인 [선택]이라는 소설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연정은 변호사를 개업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온다. 자신의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보험사에서는 자살이라고 보험금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 의뢰 내용이었다. 죽은 여성의 이름은 백혜령으로 외과의사였다. 얼마 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어린 두 딸과 함께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이었다. 사고 당일도 다음날 출근을 위해 큰 딸을 데리고 빗길에 무리하게 달리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로 인해 해령과 딸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해령의 왼쪽 손목에 외과의사가 쓰는 칼로 깊게 베어져 있었고, 온몸의 피가 모두 빠져나가 죽은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이 때문에 해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사랑하는 딸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엄마가 있을까? 연정은 외적인 증거만을 기계적으로 짜 맞추느라 보지 못했던 해령의 절박한 엄마의 심정을 발견해 낸다.
"감정 없는 사실만을 블록 쌓듯 쌓아올린 거죠. 가드레일을 부수고 달려나간 자동차, 창밖으로 나와 동맥이 잘린 운전자의 왼손, 추락의 흔적, 메스와 지문, 이런 것들을 의미 없는 요철만 맞게 조합한, '사람'이 빠진 결론이에요. 그래서 '아기 둘을 둔 엄마가 그중 갓난아이 하나만 뒤에 태우고 빗길에서 달리던 중 손목을 그어 자살했고, 차는 벼랑 아래로 떨어져 아이와 같이 죽었다'라는 해괴망측한 그림을 그린 거예요. 물론 경찰이 만든 그 사실의 조합 자체에도 많은 모순점이 있지만요." (P 118)
8편의 소설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시간의 뫼비우스]라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타임워프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단지 타임워프라는 소재의 흥미보다 한 판사의 인생의 회환이 담긴 무척 감성적인 소설이다. 민경은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손에 마약을 든 영한이라는 남성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자신이 무한 반복되는 영겁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기차가 앞으로 다가올 터널을 지날 때쯤이면 자신은 또다시 과거로 사라질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남자는 민경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20대에 서울로 상경해서 법대에 진학하고 판사가 되고, 그리고 승승장구하다가 인생의 덫에 걸려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어쩌면 드라마에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삶을 108번째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영한이가 잠든 시간엔 나 혼자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 난 정영한이다. 이 녀석, 영한이는 30년 전의 나다. 하지만 나는 48세의 정영한이다. 나는 어떤 사건으로 쫓기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마침 그 기차는 30년 전의 내가 대학에 합격하고 서울로 상경하면서 탔던 노선이다. 경기도에 접어들어 화남 터널을 통과할 때, 기차 안은 정전이 되었다. 그리고 새카만 어둠, 잠시 후 전깃불이 들어왔고...... 그리고 내가 있었다. 영한의 의식 속에, 도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48세의 내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영한이의 내면에 들어와 그 인생을 그대로 반복해 살고 있다. 조금도 영한이를 못 움직이면서, 영한이가 느끼는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도 그대로 내 것은 아니지만 바로 나의 의식과 결쳐 있기에 마치 내 것처럼 생생하고 안타깝다. 내 의식은 오로지 관찰과 감각만 하고 일체의 행동과 말과 외부의 작용을 할 수 없는 수수한 관념적 존재에 불과한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P 195)
30년의 똑같은 인생을 백번 이상 반복하면서도 그때의 서툼과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마치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처럼 느껴지는 묘한 기분은 왜 일까?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색깔과 느낌을 가진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