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별의 집 - 엄마가 쓴 열두 달 야영 일기
김선미 지음 / 마고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엄마와 아빠와 딸 둘, 이렇게 한 식구가 한 달에 한 번씩 절기마다 집을 떠나 자연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온다. 우선 참 부러운 모습이고,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집 아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매달 받은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 본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로서도 마찬가지이겠다. 요즘 세상에 다큰 자식들이 누가 그렇게 선뜻 따라나서겠는가? 이런 아이들을 둔 부모 입장에서도 매달 소중한 선물을 받아 온 것이다. 가만 나는 자라면서 식구들과 야영을 해 본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야영을 해 본건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힐테고, 그 중에서 우리 식구끼리만 여행을 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모두다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들과 단체로 여름휴가를 가서 야영을 한 것이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야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경험의 차이가 나중에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얼마나 될 지 상상할 수 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 책에 나오는 부모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제목인 [바람과 별의 집]이란 말이 참 좋다! 총 열 두 번의 야영기록을 읽으면서 매번 바람과 별과 함께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봤다. 얼마나 멋진 밤이 될 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 책의 표지는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밤하늘 아래에 키 큰 나무가 여러 그루. 그리고 그 아래에 빨간 텐트와 자동차. 하늘에는 빨간 텐트가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다. 표지에는 달도, 별도, 바람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이울어가는 초승달과 밝게 빛나는 오리온자리의 별들 그리고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이 내 머릿속에 환히 그려졌다. 수없이 많은 별이 수놓아진 검은 밤이라는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은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친 일상의 피로를 날려준다. 그렇게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자연 속에서 보내는 황홀한 하룻밤을 그려보는 것만으로 위안 받으며 나는 지친 일상 속을 헤쳐 나갔다.

책 뒤표지에는 이 식구들의 조그만 사진과 함께 짤막한 소개문구가 들어있다. 생협운동을 하는 아빠는 빛나는 별. 높은산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큰 딸, 큰 바다란 뜻의 이름을 가진 작은 딸 그리고 산악잡지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글쓴이는 강한 바람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보니 다 공감이 가는데, 다만 아빠의 경우는 조금 어색하다. 말없이 묵묵히 모든 일을 척척 다 해결하는 아빠는 좀 다른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오랜 기자생활 덕분인지 글쓴이의 필력이 여간 아닌것 같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산악잡지 기자 출신이라서 야외에서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읽기만 해도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야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천천히 두 번 읽으면서 많은 새로운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이 식구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볼만한 곳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역시 고수는 이런 데에서도 다른가보다. 남들 다 잘아는 유명한 곳들 보다는 아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는데, 그 장소들이 마침 절기랑 잘 맞아떨어져서 멋진 경험을 선사해주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로 내뱉게 된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적지 않고 총 열두번이나 되는 여행을 담고 있는 데 비해 내용이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글쓴이가 아는게 워낙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에 이런 저런 내용들이 계속 들어가면서 글을 영양가 있게 만드는건 좋은데, 뭔가 하나의 주제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었겠다고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 산만해도 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조금은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대부분 아이를 위하는 엄마와 아빠의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들이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질 수 있었다. 특히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면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왠지 지루하게 읽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책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쓴 열두달 야영일기’라는 부제가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왠지 눈에 잘 안들어올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굉장히 쉽게 잘 읽혔다. 지친 일상속에서 다만 하루밤만이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속에서  살 수 있는 이들의 용기와 결단력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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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최규석 님께서 기륭온라인카페(http://cafe.daum.net/kirungRelay)에 올려주신 그림입니다.
아마도 제가 취재글을 쓰기도 했던 지난 10월 20일 사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인 듯 합니다.
아래 글을 참고 하시면 왜 이런 그림이 나왔는 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idolovepink/2363317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최규석님께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니, 시간날때 여기저기 맘껏 뿌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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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금까지 두 명의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첫 남자친구는 아이의 첫번째 어린이집에서 만났다. 같은반(아이들은 나이별로 반을 나눈다. 그러니 같은 나이라는 소리다.)인 남자아이중에 제일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였다. 둘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날부터 엄청 친해져서는 아침에 아이를 데려가면 남자아이가 뛰쳐나와서 서로 반겨주고, 저녁에 데리러갈때까지 꼭 붙어있었다. 그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나 아이들 사이에서도 거의 공식커플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아이가 제 고모의 결혼식에 한번 다녀온 다음부터는 틈만나면 머리에 손수건을 덮어쓰고는 '딴딴따단 딴딴따단 ~~'하고 둘이서 결혼식 흉내를 내곤 했다고 선생님들은 전했다. 그렇게 1년넘게 친하게 지내다가 그 남자아이를 비롯해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모두 그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졌다.(도중에 어린이집 원장이 바뀌면서 선생님들이 자주 교체되고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을 옮겨버렸다!) 전혀 상황을 모르고 있던 탓에 우리 아이만 혼자서 한 달을 더 다녔다. 친구도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동생들이랑 함께 지내면서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동안 아이엄마랑 나랑 열심히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공식커플이었던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새로 옮겨간 어린이집 원장이 알고보니 교육자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카테고리 아랫쪽의 글들을 보면 이전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 원장과는 아직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못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더니 자신이 잘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안면몰수하고, 오히려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무척 화가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원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인간이 덜되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데, 그 나이가 되도록(나이가 많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엄마이고, 어린이집의 원장을 할 정도의 나이니까 하는 소리다!) 인간이 될 기회를 못 가졌다는 사실에 인간적 연민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원장보다는 그 밑에 있는 선생들이, 선생들보다는 아이를 맡기고 있는 부모들이 더 불쌍하다! 무엇보다 가장 불쌍한 건 그 인간이 덜된 원장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하는 아이들일 것이다! 아이를 볼모로 붙잡고 부모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협박하는 원장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야기가 잠시 새버렸는데, 암튼 그렇게 헤어져 있던 두 아이는 세 달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 아이가 그 남자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옮겨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난 두 아이는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반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다녔던 어린이집과 달리 여기는 규모가 굉장히 큰 곳이어서 같은 나이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반이 여러개로 나뉘어 있었고 먼저 들어온 남자아이와 뒤에 들어온 우리아이는 다른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둘이 예전 어린이집에서 공식커플이었다는 사실이 여기 어린이집에도 알려져 있었다.

내가 여기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처음으로 데려간 날 아침, 아이는 낯선 방(교실)과 낯선 선생님들 그리고 낯선 친구들에 둘러쌓여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도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옆반 선생님이 그 남자아이를 데려왔다. 우리 아이는 아는 얼굴을 만나자(그것도 늘 붙어다녔고, 딴딴따단도 수십번 했던 남자친구가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울음을 그치고 다가가서 껴안았다. 마치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오랫만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으니 반가울듯한데 그저그런 표정이었다. 우리 아이가 자꾸만 그 남자아이에게 다가가려하고 껴안으려 하는데 반해 그 남자아이는 뻣뻣하게 서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온 옆반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그러나 복도까지 다 들리는 목소리로) 요새 같은 반의 어느 여자아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지지말라고 응원을 해줬다. 기필코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고 선생님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린이집을 나왔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에서 두 달째 되는 요즘 우리 아이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들에 의하면 아이랑 같은 반에 예쁘장하게 생긴 어느 남자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아이가 요즘 그 남자아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 남자아이 이름을 대고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종종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아이의 이름을 대면서 요즘 자주 만나냐고 물었는데, 못 본다는 대답이 계속 돌아왔다. 아이는 어느새 옛 사랑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선 것이다! 며칠 전에는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갔더니 원감님이 아이를 데리고 계셨다. 원감님이 나를 붙들고는 '아버님 어떡해요. 이젠 ㅇㅇ(옛사랑)은 안좋아하고 ㅁㅁ(새로운 사랑)만 좋아한대요. 제가 순서를 바꿔가면서 열번도 넘게 물어봤더니 계속 ㅁㅁ만 좋아한다고 하네요.'라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아이에게 남자친구랑 엄마랑 아빠중에 누가 제일 좋은지 물어봤다. 아이는 남자친구가 제일 좋고, 그다음으로 엄마가 좋고, 그 다음에 아빠가 좋단다. 내가 제일 꼴찌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아빠보다 남자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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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11-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새 어린이집에 금새 적응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고, 기쁜 일이죠.축하드려요.

감은빛 2008-11-20 19: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정말 이곳 어린이집에는 빨리 적응하더라구요.
마침 그때가 아이엄마가 해외출장중일때여서 저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었을 때라서,
만약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하면 엄청 애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다행히 엄마없는 동안 잘 지내주어서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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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이 책의 광고를 여러 차례 보았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의 표지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주 여행 책이거니 싶었다. 자세히 보지 않은 탓에 ‘제주’와 ‘여행’ 사이에 끼어 있는 ‘걷기’라는 단어를 놓친 것이다.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여행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제주 걷기 여행>이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광고로 자주 접했던 그 책이었다.

책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표지 위쪽에 투명한 걷는 발 모양의 그림이 있는데 도드라져 있어서, 만져보면 손끝으로 오돌도돌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손이 그 그림에 닿으면 그 느낌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다시 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 뒤쪽에는 작은 책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책 속에 저자를 도와준 사람으로 나오는 무적전설이란 사람이 쓴 것이었다. 실제로 올레 길을 찾을 때, 가져가면 유용할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가위질 표시대로 잘라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도록 작고 얇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당장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시원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를 유혹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기분을 참아 넘기느라 무척 힘들었다. 내년 봄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여러 차례 제주를 다녀왔으면서도 참 제주를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자가 직접 책 속에서 말했듯이 차를 타고 몇몇 곳만 들렀다가 가는 여행은 정말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면서 길 가의 작은 풀꽃까지 즐겨야 제대로 그 곳을 다녀갔다는 느낌을 품을 수 있으리라.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제주 올레 길을 한 코스 한 코스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겨있고, 그 뒤로는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오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올레 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올레 길을 접하고 느낀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저자의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다음 부분, 그러니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조금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책 읽는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제주 올레 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앞부분이 책 전체의 분량으로 봤을 때 대략 삼분의 일 정도 되고, 중간에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는 부분이 또 삼분의 일 정도 되고 뒷부분이 나머지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전체적인 비중 면에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듯한데, 두꺼운 책에 비해 내용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을 재미있게 읽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는 얘기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 그러니까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간 듯하다. 시작점인 1코스를 제외하고 2코스부터 6코스까지는 이어지는데, 1코스만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7코스는 1코스에서 이어져 있었다. 내년에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 1코스에서 이어지는 8, 9 코스들도 걸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니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차를 타고 하는 여행의 한계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차례 느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만약 유명한 곳들을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오래 천천히 돌아보려면 걷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올레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정도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레 길로 해안을 죽 이어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올레길이 산티아고 길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어서 잘 모르지만 제주의 개발열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말 제주를 위한다면 대규모 관광지의 개발보다는 여기 저자가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더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제주말로 게으름뱅이라는 간세다리가 저자의 별명이란다. 저자는 올레 길에서는 간세다리가 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 자신이 간세다리의 방식으로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고, 올레 길도 개척했으므로 그런 것이리라. 일중독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걷기에 빠져들면서 삶에서도 간세다리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요즘 일중독이 되어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경을 아이와 아내에게 쏟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에 지쳐 피곤하다보니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도 간세다리가 되어 삶을 천천히 즐기면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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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11-0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섭지코지의 불행... 넘 섭섭하네요. 제주도에 예닐곱번 가보았는데, 저는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가 그곳이었어요.

감은빛 2008-11-03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섭지코지가 제주에서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갔을때 대대적인 공사중이더군요. 다시 가면 실망할 것 같아서 되도록 안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순오기 2008-11-1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여러권 샀는데 다 선물로 나갔고~ 드디어 어제 내 책이 도착했어요.
스무살 큰딸이 세살일 때 시어른들 모시고 갔다 온 제주도, 큰딸이랑 제주올레를 꿈꾸고 있답니다.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감은빛 2008-11-19 13:52   좋아요 0 | URL
와 여러분들께 이 책을 선물하셨나보네요. 선물 받으신 분들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댓글을 늦게 읽었는데, 지금쯤이면 이 책을 어느정도 읽으셨겠군요.
책도 재미있지만, 정말 빨리가서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따님이랑 함께 걸으면 무척 좋을실 것 같네요!
앗! 축하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적립금이 들어와 있어서 깜짝 놀랐었어요.
 

경찰이 보는 바로 앞에서 가만히 있는 시민을 깡패가 두들겨 패도 경찰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냥 모른체하고 시민을 두들겨 팬 그 깡패는 계속해서 다른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성들에게 성희롱으로 판단되는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을 마구 내뱉는다. 그래서 주위의 시민들이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은 언제 어디서 폭력행위가 일어났느냐고 자신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기냐구? 바로 몇 시간 전에 기륭전자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기륭 전자 앞에서는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조계사 앞에서 어떤 사람이(솜씨로 보아 전문 칼잡이가 분명한) 가만히 있는 세 명의 시민에게 칼을 휘두르고 이마에 꽂고 도망쳤는데, 경찰은 그가 칼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도 막지 않았으며, 살인 현행범이 사람을 찌르고 도망치는 데도 잡지 않았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KBS앞에서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부탄가스를 싣고와서 휘두르는 온갖 폭력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 그리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택에서 그리고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여러차례 경찰의 비호아래 용역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희생당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항상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휘두를때는 주변에 늘 수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바로 눈 앞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폭행현행범인 깡패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이 깡패들이 무사히 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었다.

한가지 억울한 사실은 경찰이라는 이름의 불법 폭력집단이 이처럼 폭행현행범이나 살인현행범을 보호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피땀흘려 번 돈으로 꼬박꼬박 내고 있는 세금으로 제 뱃속을 채우고 있는 집단이 바로 이 폭력집단 경찰인 것이다.

이제 몇 시간 전 기륭전자 앞에서 벌어졌던 경찰과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완벽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멋진 범행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다! 최대한 표현을 정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경찰과 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묘사될 수도 있음을 미리 경고한다.

10월 20일 5시 10분쯤
4시경부터 진행하고 있는 집회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기륭 전자 정문앞 골목길로 경찰 1백여명이 몰려들어왔다.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경찰을 막으러 나가고 남성들은 남아 트럭에서 철재 자제(아시바)를 옮겼다. 경찰들이 방패로 밀고 들어오고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커지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대열 맨 앞으로가서 방패를 막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아내가 일주일만에 독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서 일찍 퇴근하여 오랫만에 아내와 저녁을 먹고 함께 지낼 생각이었는데, 기륭쪽이 심상치 않다고 꼭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서 차마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왔다. 그래도 적당히 뒤에 있다가 상황봐서 일찍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혼자서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또 직장일도 하면서 너무 피곤했기에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 아닌가? 월요일부터 너무 무리하면 일주일동안 너무 힘들어지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좀 살살하자고 머리속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어느새 맨 앞에서 방패와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기 저기서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욕설과 욕설이 오가고 어깨와 방패가 부딪쳤다. 한 여성이 방패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흥분해버린 내가 방패를 밀어내고 그 여성을 방패 사이에서 꺼냈다. 이 여성은 이미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나는 큰 소리로 사람이 쓰러졌다고 소리치고 뒤쪽으로 끌고 나갔다. 머리속에는 지난 6월 1일 새벽에 바로 내 뒤에서 쓰러져서 실려나간 한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에 엄청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경찰 방패와 뒤쪽의 사람들 사이에서 휘둘리고 있을 때, 이 여성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위험하니 뒤로 일단 물러나 있으라고 했지만 이 여성은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내가 그 여성 앞에 서서 방패를 막고 버텼다. 밀고 밀리는 사이에 뒷 열의 전경이 사진을 찍던 한 시민의 카메라를 잡아 챘고 그 사람이 끌려 가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몰렸다. 나는 카메라를 낚아 챈 전경의 손을 잡아서 비틀었고, 내 손을 또 다른 전경이 잡아서 비틀려고 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서로 엉키면서 힘싸움이 이어졌다. 갑자기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목에서 시계가 떨어져 나왔다!



장만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부서진 내 시계


미리 시계를 벗어놓았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산 지 한 달도 채 안된 시계가 망가져 버렸다!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이었는데, 부서진 것이다. 나는 계속 방패를 막고 있었기에 시계를 줍지 못했는데 내 뒤쪽에 있던 여성이 시계를 주워주었다. 그 골목에서 경찰은 수적으로 열세라고 판단했는지 일단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적당히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아시바를 쌓아서 구조물을 만드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철탑? 아니면 망루? 참세상에서는 골리앗이라고 불렀던데, 암튼 아시바를 5단으로 쌓아서 올린 건물 3층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 완성되고 그 위에 김소연 분회장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이상규 위원장이 올라갔다. 인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서 철탑을 완전히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쪽문쪽으로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밀고 들어왔다.



골리앗 위에 올라선 이상규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과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


5시 30분쯤
푸른 옷을 입은 구사대 80여명과 검은 옷을 입은 용역깡패 40여명이 주먹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먼저 몰려 나왔다. 순식간에 여러명의 시민들이 두들겨 맞고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우루루 뒤로 물러나면서 그 틈으로 경찰 100여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철제 구조물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과 버티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에게 쫓겨서 기륭전자 앞쪽에서 골목쪽으로 이미 물러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전경들이 우리를 에워싸듯 덤벼들었다. 나는 그래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방패를 막았다. 여성들이 악을 썼고, 욕설이 오갔다. 밀고 밀리다가 갑자기 경찰들이 더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전세는 바뀌었다. 우리는 완전히 뒤로 밀려났다. 나는 잠시 철제 구조물과 전경 사이에 끼어서 고립될 뻔 했으나 다행히 빠져나왔다. 철제 구조물은 완전히 전경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구조물 안쪽에 몇 명의 시민들이 버티고 있었으나 전경들에게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상황을 보니 밖으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과 대치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이 대충 50여명 정도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몇 명쯤 되는 지는 잘 안보여서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전에 집회 참가 인원으로 짐작해 보건대 대략 70여명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완전히 갇혀버린 꼴이었다. 이거 이대로 연행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골리앗을 포위한 전경병력


주위에는 르뽀작가 박수정 선배와 송경동 시인이 있었다. 이 두사람은 부부인데, 둘 다 여기 있으면 아이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역시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기 전에 경동선배가 수정선배를 데리고 갔다. 아마도 어떻게든 수정선배를 밖으로 내보낸 듯하다. 돌아온 경동선배는 더 활기차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비행기 소리와 함께 낮은 고도로 여객기가 하나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이 동네에는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서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지난 번 아이와 함께 두어번 기륭에 왔을 때, 아이가 비행기만 보면 손가락질 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비행기가 철제 구조물 위를 지나쳐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왠지 우울해져서 몸에서 힘이 빠졌다.

6시 반경
구사대와 깡패들 너머 밖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촛불을 꺼내들었다. 안쪽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열맞춰 앉아서 촛불을 들었다. 나는 문동만 시인 옆에 앉았는데, 용역 깡패들이 정말 힘이 쎄다고 말을 붙여왔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덩치가 큰 거구들이었다. 다들 1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듯 했다. 힘이 무지 쎌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그나저나 저 덩어리들은 정말 조폭인 것 같은데, 역시 경찰과 조폭은 한 통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쪽에는 여성 용역들도 있었다. 여성 용역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 인 듯 한데, 이 쪽도 역시 한 덩치들 하며, 조폭냄새를 살짝 풍기고 있었다. 이 중 몇 명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몇 명은 비웃는 눈빛을 우리에게 던지며 도발하고 있었다.



파란색 잠바를 입은 구사대들(약간 옅은 회색을 입은 이들도 역시 구사대)



잠시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전경들 200여명이 뛰쳐나왔다. 구사대와 깡패들이 원래 있던 쪽문 안쪽으로 돌아가고, 전경들이 그 자리를 넘겨받아서 사수했다. 이거 완전 근무교대도 아니고 사이좋게 서로 자리를 바꾼 경찰과 깡패들이 열심히 욕설을 내뱉았다.

7시
전경들은 바깥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돌진하듯 덤벼들어 대오를 밀어냈다. 이 와중에서 심하게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안쪽에서도 전경병력들이 앉아있던 사람들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여경들이 투입되어 여성들의 주위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전원 연행을 감행하려는 것 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철제 구조물 근처에서 였다. 나와 주위의 사람들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상황을 보려고 했으나, 우리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비켜주지 않았다. 나는 강하게 저항하며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서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륭 바깥쪽에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계속 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은 전경들에게 막혀 들어오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찌된 상황인지 갑자기 안쪽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막고 있던 전경들 수십여명이 바깥쪽으로 일제히 달려나갔다. 우리는 갑자기 넓은 안쪽 공간에 멍하니 남겨졌다. 철제 구조물을 둘러싼 전경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옆으로 쪽 문쪽에는 아까 빠져나갔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7시 15분경
갑자기 쪽문쪽이 소란스러워져서 다가갔더니 경찰이 보는 바로 코 앞에서 깡패가 한 시민을 때렸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문재훈 선배님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경찰 지휘관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도 모두 흥분하여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철제 구조물 옆에서 가만히 있던 문재훈 선배님을 근처에 있던 용역깡패가 두들겨 팬 모양이었다. 그 바로 옆에 있던 경찰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경찰 지휘관은 계속 다른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삼류 코메디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문재훈 선배님은 안경도 깨지고 신발도 잃어버린데다가 옷도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나도 피가 끓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경찰이 무슨 깡패들과 한 통속이냐? 너희가 최동렬의 사조직이냐? 개인 소유의 경찰이냐? 그럼 시민들 세금 받아먹지 말고 최동렬이에게 월급 받아 먹어라! 경찰이 돈을 얼마나 먹었으면 바로 코 앞에서 시민을 폭행한 현행범을 잡지 않고 모른 채 할 수 있을까!' 등등 다양한 항의들이 쏟아졌다. 한 시민 욕설을 섞어가며 좀 과격하게 항의을 했는데, 지휘관은 계속 '반말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라고만 대꾸하고, 옆에 있던 부관인 듯한 경찰이 어딘가로 가더니 채증 경찰관을 데려왔다. 카메라와 플래시를 들이대며 계속 해보라고 협박하는 경찰! 참 이게 무슨 짓인가!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칼라티비의 여기자가 다가오며 상황을 전했다. 쪽문 저쪽에 모여있던 구사대들이 카메라를 의식해 종이박스를 찢은 조각들을 손에 들고 얼굴을 가린 채로 여기자를 향해 욕설을 내뱉았다. 성적 모욕이 포함된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어느 시민이 경찰 지휘관에게 다가가서 이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지금 성희롱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왜 체포하지 않냐고 소리질르며 물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였다. 어깨를 보니 <서울 4 기동대>라고 적혀있었다. 구사대들은 계속 해서 얼굴을 박스를 들어 가린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는데, 그 꼴이 또 얼마나 우습던지. 이건 정말 삼류 코메디 녹화장인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와 주변의 시민들이 얼굴이나 내놓고 욕을 하려면 욕을 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 측과 용역측 채증요원들이 열심히 우리 얼굴을 담고 있었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다. 찍을테면 찍으라지!



바로 코 앞에서 폭행 현행범을 눈감아준 서울 4 기동대 현장 지휘관


바깥쪽도 안쪽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문재훈 선배님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어서 병원을 가시라고 설득했다. 선배님은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안가겠다고 버텼지만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그래도 병원을 가야한다고 설득하자 마침내 움직이셨다. 문재훈 선배님과 또 한 분의 노동자가 부상으로 병원을 가기 위해 전경들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7시 35분
철제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던 전경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바깥쪽으로 투입되었다. 전경 병력 약 300여명 전원이 바깥쪽 시민들을 밀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경찰이 빠진 자리에 다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들어왔다. 또다시 자리를 바꾼 것이다.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발맞춰 움직이는 것을 보니 분명히 경찰과 구사대와 깡패들이 한 명의 지휘관에게 명력을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지휘관이 경찰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안쪽에는 경찰 병력이 완전히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용역깡패들의 천국이 되었다. 용역들은 거친 몸짓으로 들어오면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위협하고 시민들을 협박했다. 완전히 제 세상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나이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주었다! 그 모멸감은 참기 어려웠다. 여성 용역 한명이 한 아줌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으며 비아냥 거렸다. 그 아줌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덤벼들었지만 주위의 시민들이 말렸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내 옆에서는 문동만 선배가 깡패들이랑 욕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동만 선배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나역시 화가 났지만 일단 선배를 말렸다. 문득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라는 노래가 머리속에서 재생되었다. 바로 이 곳이 인간같지 않은 깡패들의 천국이었다!



검은 반팔 옷을 입은 덩어리들이 바로 용역깡패들


경찰은 작정하고 시민들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보령 할인마트' 좌우의 골목길로 분산되어서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었다. 안쪽에 남은 시민들은 대략 삼십여명쯤 되어 보였는데, 오십여명의 용역깡패들과 역시 오십여명의 구사대들에게 포위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바깥쪽 시민들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역깡패들은 심심해서 그런지 지들끼리 계속 욕설을 내뱉고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놈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진보신당에는 분명히 싸이비 교주가 있다!','진보신당이 대체 뭐냐?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냐?','진보신당은 모두 또라이들이다!' 등등 진보신당을 헐뜯고 있었다. 아마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는 칼라티비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한 무리의 덩치들이 심심했던지 앉아있던 여학생 두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뭔가 협박을 했음이 틀림없다. 민노당 학생위원회 소속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은 기죽지 않고 맞섰다. 갑자기 한 덩치가 여학생들에게 확 다가서더니 땅에서 피켓 하나를 주워들었는데, 위협하는 척 하면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놀란 시민들이 일제히 욕설을 퍼부었다. 깡패들은 할말있으면 뒤에서 하지 말고 앞으로 나와서 주먹으로 해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나라는 입과 손가락만 쎈 놈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나. 앞에 나서서는 한마디도 못할 놈들이 뒤에서 입을 나불대는 거랑 손가락으로 자판 두드리는 짓만 졸라 잘 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7시 57분
전경들이 갑자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몇 몇 시민들이 머리를 잡힌채 혹은 사지를 들린 채 끌려나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우리는 소리를 질러 분노를 표현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깡패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끌려갔다, 또 누가 끌려갔다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 와중에 송경동 선배가 끌려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지만 욕설을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어느 깡패가 전경들이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신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저렇게 밀어내도 또 꾸역꾸역 몰려 올거 아냐? 응! 그럼 우린 또 돈 버는 거지 뭐! 하하하!' 돈을 많이 벌어서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또 듣자니 용역깡패들 하루 일당이 25만원이란다. 의외로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었구나. 꾸준히 일만 들어오면 나보다 두세배는 더 많이 버는 직업이었다! 젠장 나도 진작에 깡패짓 좀 하다가 이쪽으로 진출할 걸!

8시 30분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철제 구조물을 아래에서 흔들어댔다. 위에 있던 김소연 분회장이 노성을 지르더니 뛰어내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옆에 있던 이상규 위원장이 재빨리 분회장을 붙잡았지만 이미 두 팔로만 의지한 채 온 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몰려들었고, 위세 등등하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도 이때만은 움찔 놀라서 물러서는 모양이었다. 이상규 위원장과 김소연 분회장이 계속해서 쉰 목소리로 '깡패 새끼들은 물러나라!'고 소릴 질러댔다!

울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둘러보니 주위의 여성분들은 거의 대부분 울고 있었다. 기륭 투쟁의 초기부터 4년 가까운 시간동안 늘 함께 생활하며 취재했던 연정씨도 눈물을 흘리며 수첩에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박혀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계속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이상규 위원장이 김소연 분회장을 끌어올려 간신히 위기를 넘긴 모습이었다. 때마침 민노당 홍희덕 의원이 나타나서 김소연 분회장을 달랬다.

8시 44분
경찰은 트럭으로 대형 매트를 구해와서 철제 구조물 앞 쪽에다 설치했다. 안쪽에서는 칼라티비와 참세상 등 각종 진보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열심히 활동중이었는데, 용역깡패들이 계속 해서 이들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진보신당 기자 하나가 여러명의 깡패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기자는 안경이 벗겨져서 땅에 떨어지는 등 물리적 위협을 당하고도 그닥 기죽지 않고 깡패들과 말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배짱이 두둑한 기자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한 깡패가 뒤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몇 몇 기자들을 향해 돌진하여 그들이 밟고 서있던 나무 판을 발로 차고 돌아갔다. 잠시후 이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사람 한명이 조용히 책임자로 보이는 깡패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속삭였다. 꼴을 보아하니 용역측 채증요원이었던 모양이다. 방금 그 깡패가 자기측 채증요원까지 위협하자 이 채증요원이 거기에 대한 항의와 주의를 요청하는 듯 했다. 이 채증요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계속 찍고 있었다.

기륭 정문에서 정면으로 난 골목쪽으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상당히 많이 밀어내서 대략 50여미터를 전진한 모습이었다. 이미 시간은 아홉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무척 지쳐있었다. 차라리 저 바깥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이라도 벌이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이 안에서 깡패들의 모욕을 견디고 있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깡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시민들과 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섞여 있었다. 전경들이 밀고 나가면서 넓어진 울타리(?) 안쪽에서 우린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동만 선배가 이러고 있지 말고 밥이라도 먹자고 해서 역시 전경들이 밀고 나간 덕분에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온 식당으로 가서 일단 배를 채웠다. 그러나 밥을 억지로 퍼 넣으면서도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밤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암튼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이젠 새벽까지 장기전으로 이어질 듯 했다.

10시 20분
공중파 3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대낮처럼 밝은 후레시가 비추자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쌍욕을 내뱉았다. 마침 MBC 기자를 행해 협박하는 깡패가 있었다. MBC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그 깡패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고성이 오고갔다. KBS나 SBS가 주로 전경병력 뒤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MBC는 시위대쪽에서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수십여명의 구사대들이 종이박스로 얼굴을 가린채 앞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대로 들이닥쳐서 방송 카메라 앞으로 쇄도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이들을 찍는동안 갑자기 골목을 봉쇄하고 있던 일부 경찰병력들이 뛰어들어왔다. 동시에 철제 구조물 앞을 막고 있던 용역깡패들이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경찰 병력들이 막아서서 벽을 구축했다. 그 동안 공중파 카메라들은 구사대의 종이박스에 가려져 있었다. 경찰들이 자리를 잡자 이 구사대들드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림같은 움직임이었다. 멋진 작전이었다. 구사대와 깡패와 경찰들의 환상적인 연계작전이 훌륭하게 공중파 카메라들을 속였다.

이후에는 다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양쪽 골목 입구에서는 여전히 들어오려고 애쓰는 시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 새벽까지 별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듯 했다. 새벽이 되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돌아간 다음에 경찰이 다시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도저히 여기서 새벽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11시가 넘어가고 집으로 갈 막차가 끊어질 상황에 처할때쯤 일단 집에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목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과연 열어줄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우리와 함께 있던 어느 스님이 경찰 병력 틈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재빨리 스님의 뒤를 따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이십여명의 시민들이 지친 모습으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오늘은 나도 할만큼 했다고 자위하면서 지하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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