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창비시선 277
이시영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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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 마을의 아침

 

 

파도에 내리꽂히는 갈매기떼들

간혹 바다가 그들의 입을 물고 놓지 않는다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中

 

+)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같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같은데 시는 아니라는 말을 과감하게 뱉어놓고 보니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아르갈의 향기』를 읽을 때도 그랬는데, 그의 시집은 주변의 것들에 대한 천착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것을 일상 생활의 일부로 보았으나, 한 선배는 그것이 그가 마지막까지 갖고 있는 민중에 대한, 사회에 대한 애정이라고 표현했다. 선배의 말을 듣고보니 어쩌면 그동안 많은 시집을 낸 시인으로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가'로서 이렇게 쓴 것은 아닐까 마음이 기울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이제 편하게 시를 쓴다할지라도 적어도 그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시정신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 어쨌든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재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표현이 좋은 작품이 몇 있지만, 어쩐지 너무 쉽게 읽혀서 나를 아쉽게 만들었다.

 

어쩌면 요즘 시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들을 자주 읽기 때문에, 한번쯤 망설이지 않게 쉼없이 읽게되는 그의 시를 '시같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시와 시같은 것을 한참 생각하게 만든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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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꽃집 창비시선 275
김중일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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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냉장고

 

 

내 생의 뒷산 가문비나무 아래, 누가 버리고 간 냉장고 한 대가 있다 그날부터 가문비나무는 독오른 한 마리 산짐승처럼 가르릉거린다 더둠이 같은 푸른 털은 공중을 잡아당긴다 부유하던 얼굴은 보드랍게 빛나고, 생생불식 꿈틀거린다 가문비나무는 냉장고를 방치하고, 얽매이고, 도망가고, 붙들린다 기억의 먼 곳에서, 썩지 않는 바람이 반짝이며 달려와 냉장고 문고리를 잡고, 비껴간다 사랑했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데리고 찬아와서 벼린 칼을 놓고 돌아갔다 상처는, 오랜 가뭄 같았다 영영 밝은 나무, 혈관으로 흐르는 고통은 몇 볼트인가 냉장고가 가문비나무 배꼽 아래로 꾸욱 플러그를 꽂아넣고, 가문비나무는 빙점 아래서 부동액 같은 혈액을 끌어올린다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고 했다 가문비나무가 냉장고 문 열고 타박타박 걸어들어가 문 닫으면 한 생 부풀어 오르는 무덥, 푸른 봉분 하나가 있다는

 

 

김중일, 『국경꽃집』中

 

 

+) 김중일의 시집에는 '시간의 퇴행' 흔적이 남아 있다. 화자는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고민한다. "나는 왜 이곳을 지키게 되었는가? 이곳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곳인가?"[구름이 구워지는 상점] 벽시계가 걸려 있는 자리를 보듬어 쓰다듬으며 기억을 건드려보기도 한다. "오늘도 플라타너스는 기억의 저층에 거대한 뿌리를 두고, 집집마다 내걸린 시계들 한가운데로 가지를 뻗고 있다."[시간의 동력]

 

시간과 기억은 화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살고 있는 존재들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시간의 해방군으로부터 마을이 점령당하"면 사람들은 "더듬이가 잘려나간 귀뚜라미처럼 숨어서 울어야" 했다. 나아갈 길을 모르고 지나온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잃어버리면서 기억도 잃어버린다.[해바라기 전쟁]

 

사람들은 "마법사"를 만나 골목과 골목을 이어 지구를 지킨다. "마법사의 가장 훌륭한 속임수는 /  모자속에서 이 골목을 내일로 꺼내놓는 일"이다. 그는 "골목을 모자 속으로 사라지게 한다는" "거짓말"도 잘한다.[마술사와 모자] "지금이 몇시쯤 됐을까요?"라는 질문은 의미없는 것이다. 한쪽이 자꾸 허물어지듯, 시간도 지나온 자취도 사라지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듣는 사람 모두 거짓말쟁이다.[담장 속으로] 시인이 존재하는 지구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의 맞물림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선택한 것이다. 그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꾸려가고 있다. 시간의 퇴행을 경험하면서 '알바도르 살리'처럼 '기억의 영속'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K는 문득 깨닫는다 스스로 오랫동안 / 이 거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 이미 깊숙이 지상에 못 박힌 자신이 / 마법양탄자처럼 날고 싶은 거리를 이제껏 / 단단히 봉인하고 있었다는 것을"[위험한 거리])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일이란 이름의 희망일까. 오늘에 대한 거부일까. "내일로 간다네 불귀 다른 데는 다 가도, 오늘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절대로 불귀 긴 야간비행 끝에 다다른, 먼 대륙이 다시 오늘이라면, 이건 정말이지 지루한 여행이구나"[불귀] 어쩌면 그는 정말로 "부메랑"같은 삶이 싫은지도 모른다. 다시 되돌아오는 길, 그 길에서 그가 느끼는 "권태"가 낯설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것들의 반복, 더 정확히 시간의 반복 틈에서 그는 "기억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야만"한다고 주장한다. [Sweet lime village] 시간의 일탈을 꿈꾸면서 기억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일상에서 그가 찾는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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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무 아래서 - 제3의 詩 8
권혁웅 지음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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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새로 두시에 산등성이를 건너온 비는

내 방 창을 두드린다 창문에

조팝나무 잎이 붙어 있다 먼데 있는 것들이

문득 소식을 전하는 거다

지나쳐온 것들이 자금성(紫金城)이나 땡삐치틴처럼

문 앞까지 다가와 다닥다닥,

붙어 있을 때 그걸 흔적 없이 긁어낼 수 있나?

웃기고 있네, 나는 요금별납처럼 살았어

내 자리 어디선가 조금씩 내가 빠져나간 거지

세시가 되니 비는 더 심해져서

파도치는 소리를 낸다 창문을 여니

먼데 불빛이 어렵게 깜박인다

누군가 구조신호를 보내는 거지

구름 뒤에 둥글게 빛나는 달이 있듯이

저곳 어디에 왕십리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외도(外道)가 지나쳤다, 라고 목월은 말했지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저 길 너머에 있었다

새로 세시에서 네시로 지나가는 저 비처럼

나는 세상을 건너갈 수 없었다

왕십리, 십리가 멀다 하고 찾아가던 곳

하지만 늘 십리는 더 가야 하던 곳

내게도 밤을 디디고 가야 할 곳이 있다

물론 왕십리에 가기 전에, 왕십리도 못 가서

나는 발병(發病)이 날지도 모르지만

 

권혁웅, 『황금나무 아래서』中

 

 

+) 권혁웅의 첫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두번째 시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고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읽은 그의 첫 시집은 두번째 시집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의 시집은 '사략(史略)'이다.

 

간략하게 기술한 역사. 그것은 한 시대를 담고 있는 이야기와, 그 기간을 거쳐 온 한 개인의 이야기다. 사람과 사회 사이에서,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서,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시인이 존재한다.[파문] 그 틈에는 간략하게 적은 역사가 숨어 있다. 개인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시대사의 흐름이 녹아있다.

 

 그의 시가 갖고 있는 매력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생을 훔쳐보며 그 사회의 면면들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시조, 그림(르네 마르리트), 영화(안소영) 등의 다양한 예술 문화 장르를 시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소재가 될 수도 있고, 형식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그의 시는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권혁웅의 두번째 시집과 이번 시집을 함께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두 시집을 함께 살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간략하게 적은 역사, 어쩌면 그가 바라보는 생(生)이 한 마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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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시선 258
이승희 지음 / 창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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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못생긴 돌멩이 맞아, 맞다고, 납작보리 같은 흉터도 선명하지. 꽃병 둥글게 날아가던 시절, 그 불길 속을 날았지. 그래 난 아직도 날고 있는 중이야, 어쩔 건데. 아직 아무것도 맞히지 못했을 뿐이야, 온전히 내 무게를 공중에 버리고 나면 떨어지지도 못하고 사라지겠지만.
 그렇게 중심을 잃는 일 두려워, 무서워 속도를 늦출 수 없네. 비껴가고 싶지는 않지만 부딪혀 깨져가거나 제 무게만으로 추락하는 일은 무서워, 그래도 비명 같던 무늬 둥글게 타오르고, 상처도 닳고 닳으면 둥글어지겠지만, 둥글게 날아가 박히는 것이 더 깊고 오랜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당신도 알아야 할 거야.

 

이승희,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中

 

 

+) 시인은 "누님"을 만나러 가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벽제 가는 길"에는 누님이 일했던 "방직공장"도 보이고, "화염병 냄새가 진동"하는 "돌멩이"들이 널려있다.[아직은 봄이 아닌걸-벽제 가는 길2] 안쓰러운 하루를 살던 누님의 과거가 묻어나는 길 위에 화자가 서 있다.

 

화자는 그곳에서 "돌멩이, 라고 나직이 불러"보면서, "손안 가득 쥐어"보기도 한다. 돌멩이를. 이내 "돌멩이 같은 마음은" "어디로 날아가 누구의 이마를 깨고, 간단히 중심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한데, 명치 끝"에 단단히 돌멩이가 박혔다. 그 "둥글지 않은 온기, 모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화자는 "그런 따뜻한 온기가 있기에 더 식지 않고 더 격렬"하게 살아갈 수 있다.[돌멩이]  

 

이 시집에는 '돌멩이, 돌, 바위' 등이 등장한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둥글고 굳건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날카로운 돌은 없다. 둥근 돌이 깎이고 닳아서 모난 돌이 되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뾰족하진 않다. 그것은 온갖 시련을 견뎌낸 사람의 태도와도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고초를 겪은 자들은 담담해지는 법을 배운다.

 

마찬가지로 돌도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었을"[웃는 돌] 것 같고, "잔주름 물결치는 생이 고스란이 남아"[둥근 것들의 다른 이름] 있을 것 같은, "웃는 돌"로 묘사된다. 생을 견뎌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화자에게 있어서,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도 꿋꿋하게 스스로를 지켜가는 돌의 형상이 마치 인간의 마음과도 같이 느껴진다. 비록 가끔씩 "못생긴 돌"처럼 못나게 굴기도 하고, "뾰족한 돌"처럼 나쁘게 굴기도 하지만, 비바람에 닳을수록 더욱 둥글어지는 끈기와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런 돌들이 깔린 "길도 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화자는 "문득 길 위에 서 있을 때" 하게 된다.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집, "어둠속에서 제 기다림을 꺼내 보이는" 집은 마치 "어머니"같은 존재이다.[집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집은 없고 어머니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당차다. 의연하게 생명의 씨앗을 키운다. 그리고 햇살과 바람과 하늘과 자연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단단한 그리움"으로 씨앗을 심고 기른다.[호박] 바로 이 단단한 것들은 부드러운 힘을 지닌 돌멩이와 같다. 길 위에서, 길 끝에서, 어머니같은 집을 마주하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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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창비시선 271
박연준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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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주세요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꺾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 않아요

 

 

박연준,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中

 

 

+) 어쩌면 요즘 여성 시인들은 여성의 '몸'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의미가 환상적인 것이든, 고상한 것이든 간에 그것이 본래 유지하고 있는 의미보다 더 부가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 시어가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보다 그것이 더 묵직해진 것은 아닐까 안타까웠다.

 

여성성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여성적'이라고 관습적으로 말하는 특성들을 포괄적으로 말하거나, 가정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어머니나 아내로서의 역할이나 위치, 혹은 수동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것들을 언급한다. 물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남성중심적 질서 아래에서 '여성성'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성차를 유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시에서 꾸준히 여성성을 재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박연준의 이번 시집은 가장 먼저 여성의 몸을 상징화하는 것이 눈에 띈다. 보편적인 여성의 역할, 그러니까 어머니로서의(모체로의) 위치나 한 가정의 딸의 역할, 그리고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의 모습이 나열된다.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나, 여성의 생리혈, 여성의 육체("피, 선혈, 빨간 양수, 붉은 흙" 등) 등을 통해 여성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존재때문에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아닐까. 화자는 수없이 아버지를 되뇌이는데, 그 모습에는 분노 및 경멸의 시선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움, 연민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죽음을 사이에 둔 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이미 죽은 당신이 자꾸 죽을까봐 겁내는/나는, 이마에 못이 박힌 스물다섯"[스물다섯]) 그것은 마치 시인이 독백체로 드러내는 한편의 자서 같다.

 

이 시집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화자의 생과 함께 성장한다. 그 존재의미 자체가 화자를 고통스럽게 만들며 때로 절망하게도, 슬프게도 만든다. 아마 여기서 화자의 여성성이 본래의 것보다 훨씬 묵직하게 만들어진 것이리라. 어머니에게 있어선 한 남자이자 화자에게 있어선 아버지였던 남자로 인해, 시인은 대조적으로 여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때문에 시적 화자는 생에서 도망치고, 은밀히 숨기며, 비명을 지르며, 자기 안에 홀로 갇힌다. 그것은 스물 다섯이 되기까지 거쳐온 여자의 삶이다. 그 안에서 맴돌던 여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여성성을 택한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그 여성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의 무게가 본래의 것보다 묵직하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것을 신성화하거나(물론 박연준의 시집에서는 거기까지는 아니다) 특별히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이런 소재들의 활용이 이 시인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을 틀에 박힌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약간 틀어 옆 길로 걸어가보면 어떨까. 그럼 한결 시집을 읽는데 편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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