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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빛나는 글자락 (2019.7.19.)

― 경북 구미 〈책봄〉

 경북 구미시 금오산로22길 24-1

 054.443.8999.

 https://www.instagram.com/bookspring



  구미에 있는 마을책집 〈책봄〉에는 2018년 3월에 처음 마실을 한 뒤에 2019년 7월에 두걸음을 합니다. 한 해하고도 넉 달 만입니다. 이동안 〈책봄〉은 새터로 옮겼습니다. 마을책집 〈책봄〉이 있던 터에는 새로운 마을책집이 문을 열었다고 해요. 그곳은 〈그림책 산책〉이란 이름이라고 합니다.


  책집 한 곳은 새터로 옮기고, 옛터에는 새로운 책집이 엽니다. 와, 놀랍지요. 아름답지요. 바로 이런 기운이 마을을 살리고 고을을 살찌우는 어마어마한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조그마한 마을책집이 옮기거나 새로 열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책집은 굳이 커다랗게 열어야 하지 않습니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살짝 숲바람을 쐬고 싶어서, ‘숲에서 자라던 나무’라는 몸을 종이로 바꾸어 이야기라는 살을 새로 입힌 책에 흐르는 숲바람을 누리고 싶어서, 가볍게 찾아가서 다리쉼을 하면서 책 한 자락 장만하도록 이끄는 책집이면 넉넉합니다. 우리는 책집마실을 하면서 등짐 가득히 책을 장만해야 하지 않아요. 책집으로 마실을 하는 길에 1만 원이든 2만 원이든 5만 원이든, 이만큼 책을 장만해서 보금집으로 돌아가면 즐겁습니다.


  가볍게 듣는 빗방울을 재미나게 맞으면서 걷습니다. 고흥집에서 길을 나설 적에 작은아이가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우산 챙기셔야지요!” 하고 불렀어요. 저는 작은아이한테 “응, 아버지는 이 비를 그냥 신나게 맞으면서 다닐 생각이란다.” 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어요. 고흥에서 길을 나설 적에는 제법 빗줄기가 굵었는데 딱히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시원하게 맞았어요. 구미에 닿아서는 가벼운 빗방울을 혀로 낼름 받기도 하며 천천히 놀며 걸어서 〈책봄〉 새터에 이르렀습니다.


  등짐하고 끌짐을 풀어놓고서 책시렁을 살핍니다. ‘목수책방’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매우 정갈히 꽂아 놓으셨어요. 목수책방 출판사 책지기님은 이 갖춤새를 알까요? 이렇게 이쁘게 꽂아 놓은 모습을 문득 알아보신다면 기뻐서 함박웃음을 짓지 않을까요? 《과학 이전의 마음》(나카야 우키치로·후쿠오카 신이치/염혜은 옮김, 목수책방, 2017)이란 책을 먼저 고르면서 슬쩍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쁜 마을책집 〈책봄〉에 제가 쓴 책도 이렇게 이쁨을 받으며 책시렁 한켠에 놓여서 구미 이웃님 눈길을 기다릴 수 있어도 좋겠네, 하고.


  《자연의 아이》(줄리엣 디 베어라클리 레비/박준식 옮김, 목수책방, 2019)를 집습니다. 몇 자락 더 집고 싶으나, 고흥에서 서울을 거쳐 구미로 오는 길에 장만한 책으로 등짐하고 끌짐이 묵직합니다. 속으로 히유 한숨을 쉽니다. 두 자락으로 즐겁게 생각하자고 속말을 합니다. 둘 아닌 한 자락만 장만해도 즐겁지 않느냐고 마음에 대고 속말을 합니다. 저는 여러 이웃님더러 “마을책집에 마실하시면서 책을 한 자락만 사도 좋아요.” 하고 말하면서, 막상 저는 책을 등짐 가득 장만하려 한다면, 앞뒤 다르게 사는 셈 아니냐고도 살살 어르고 달랩니다.


  〈책봄〉지기님이 《자연의 아이》라는 책을 책손한테 알리려고 손글씨로 적은 글을 가만히 읽습니다. 어쩌면 이 손글을 읽기만 해도 이 책에 깃든 숨결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책을 사서 통째로 읽어도 좋고, 책집지기가 사랑을 담아 손글로 빛낸 이 단출한 글자락만 읽어도 좋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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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다 (2019.7.18.)

― 수원 〈마그앤그래〉

경기 수원시 권선구 동수원로177번길 90 104호

https://blog.naver.com/sogano

https://www.instagram.com/magandgra



  2019년 1월에 드디어 찾아간 〈마그앤그래〉를 지난 여섯 달 동안 인스타그램으로만 만났는데, 7월에 두 눈으로 만납니다. 고흥에서 구미로 가는 길에 서울을 거치기로 하면서, 서울로 가는 길목인 수원에서 기차를 내려 수원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갔어요. 지난 1월에는 전철역부터 걸어갔다가 진땀을 쏟았지만, 이제 수원 시내도 살짝 익숙해서 수원 시내버스를 씩씩하게 타 보았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따로 택시를 안 타더라도 찾아갈 만하네요. 시골사람이 도시살림에 어느 만큼 몸을 맞춘다고 할까요.


  여름빛이 살랑거리는 〈마그앤그래〉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책집 앞에 이렇게 나무가 자라면서 푸른빛을 베푸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그런데 〈마그앤그래〉는 곧 새터로 옮긴다더군요. 아, 그렇다면 오늘이 이 자리 〈마그앤그래〉 두걸음이자 끝걸음이 되겠네 싶어요. 다음걸음에서는 새터에서 새롭게 만나겠지요.


  그림책 《박물관에서》(가브리엘르 벵상/김미선 옮김, 시공주니어, 1997)를 고릅니다. 이 그림책을 장만했는지 안 장만했는지 헷갈립니다. 이렇게 헷갈릴 적에는 다시 장만하는 길이 가장 나아요. 가브리엘르 벵상 님 그림책은 ‘똑같은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여러 벌 있어도 아름답거든요.


  《붉나무네 자연 놀이터》(붉나무, 보리, 2019)를 봅니다. 서울 한켠에서 신나게 숲놀이를 즐기는 강우근 아재는 ‘붉나무’란 이름으로 숲놀이 이야기를 그림꽃으로 짓습니다. 이 책이 나온 줄 알기는 했으나 사지 않고 잊었어요. 이러다가 여기에서 만나네요. 아, 반가워라. 기쁘게 집습니다. 우리 집 놀이순이랑 놀이돌이한테, 우리 집 숲순이 숲돌이한테, 붉나무 놀이꽃은 더없이 반가운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사사키 겐이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9)를 봅니다. 이 책도 갓 나올 적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미처 장만하지 못했어요. 마침 이 책도 여기에서 만나니 기쁘게 고릅니다.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이 책을 펴서 읽는데, 핑하고 눈물이 돌았어요. 얼른 눈물을 닦고서 책을 덮었습니다. 책집에 서서 몇 자락 읽다가 가슴이 짜르르했지요.


  왜 책 한 자락 때문에 가슴이 짜르르할까요? 모든 책은 아름답거든요. 더구나 어느 누구도 안 간다 싶은 길을 홀로 씩씩하게 노래하며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혼잣걸음을 누가 알아보고는 이렇게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같은 책으로 묶어 주면, 어쩐지 찡합니다. 저는 1994년부터 ‘한국말사전 새로쓰기(사전 집필)’란 일을 합니다. 사전지음이한테 이런 책 하나는 고마운 눈물바람을 일으키는 이슬같아요.


  그림책 《안녕, 물!》(앙트아네트 포티스/이종원 옮김, 행복한그림책, 2019)을 고릅니다. 오늘 〈마그앤그래〉에서 다른 그림책을 장만하려고 골랐다가, 그 그림책을 내려놓고 《안녕, 물!》을 새로 집습니다. 모든 그림책을 다 사도 좋습니다만, 그러자면 짐이 매우 무겁습니다. 어깨힘을 조금만 쓰려고, 책짐을 너무 짊어지면 걸어다니기 벅차니, 아쉬운 마음을 삼키면서 딱 네 자락만 고르기로 합니다.


  책을 다 고르고, 책값을 치르고, 책집 사진을 찍고는 책집지기님하고 몇 마디를 주고받습니다. 수원에서 이 책집은 참 조그맣다고 말씀하시는데, 전라도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보자면, 이 수원 마을책집은 엄청난 아름터입니다. 저는 이곳 〈마그앤그래〉가 교보문고보다 훨씬 낫다고 여겨요. 책집지기가 아름다운 눈, 바로 ‘아름눈’으로 찬찬히 골라서 갖춘 책이 참으로 빛나요. 이 빛을 수원 이웃님이 기쁘게 맞아들이시리라 생각해요. 또 저처럼 수원사람 아닌 시골사람도 가끔 이곳으로 마실을 와서 새삼스러우면서 반가이 아름책을 만날 테고요.


  책집지기가 눈을 뜨니, 책손이 눈을 뜹니다. 책손이 눈을 뜨면서 책집지기도 함께 눈을 뜹니다. 우리는 다같이 눈을 뜨면서 삶을 뜨고, 삶을 뜨개질하듯 짓고, 사랑도 꿈도 노래도 같이 뜹니다. 뜨개질하듯 짓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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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꽃 (2019.7.12.)

― 전남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전남 순천시 향교길 39

 061.751.1237.

 https://www.instagram.com/walking_with_book/



  무엇을 쓰면 좋을는지 저 스스로 모릅니다. 1994년 어느 날부터 201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하루조차 안 거르고 어마어마하다 싶도록 잔뜩 글을 쓰는 길을 걸어왔는데, 참으로 저는 ‘무엇을 쓰면 좋을까?’를 어느 하루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썼어요. 마음에서 쓰라고 부르는 말을 제 입으로 되뇌면서 썼습니다.


  2019년 7월에 잇달아 나오는 두 가지 책 《이오덕 마음 읽기》하고 《우리말 글쓰기 사전》에 이런저런 속살림을 꽤 밝혔습니다. 다만 모두 밝히지는 않았어요. 속살림을 모두 밝히려면 조그마한 책 한두 자락으로는 어림조차 없습니다. 그냥 알맞게 밝힐 만큼만 밝혔어요.


  요 며칠 사이에 그동안 마음 깊이 눌러두고서 안 터뜨린 몇 가지 이야기가 터져나왔습니다. 하나는 제가 어느 몸나이부터 ‘하고픈 말’을 싹 닫아거는 길이 되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어느 몸나이부터 ‘보고 듣고 겪은 말’을 조금씩 읊다가 바아흐로 뻥 터뜨릴 수 있는가입니다.


  4500년 앞서는 우리가 무엇을 했을까요? 45000년 앞서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 무엇을 하며 꿈을 그렸을까요? 마흔다섯 해 앞서 일은 진작에 떠올려 냈고, 그림으로 다 보았어요. 마음에 담은 그림으로 보았지요. 그래서 이다음으로 450년 앞서 일을 떠올리기로 했고, 꽤 환하게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이제 4500년 앞서 누구랑 무엇을 했는가를 그려내려 할 적에, 그무렵 저한테 언니였던 ‘ㄹㄴ’가 그무렵 동생이던 저 ‘ㄹㄴ’한테 마음으로 속삭인 말이 제 몸을 거쳐서 줄줄이 흘러나왔어요.


  처음으로 알고 느꼈어요. 영어로 ‘채널’이라고 하는, ‘길’이 되는 일을 겪은 셈은 아니지 싶으나, 10분 남짓 제 몸을 다른 넋한테 빌려주어서, 다른 넋이 제 몸에서 그이가 바로 들려주고 싶던 말을 거침없이 내놓도록 했어요.


  이런저런 옛삶길을 되새기고 오늘삶길을 헤아리며 순천마실을 합니다. 순천 중앙시장 옆자락에 있는 동남사진박물관에서 사진책을 놓고서 ‘사진하고 책은 어떻게 만나 이야기꽃이 되는가’ 하는 줄거리를 밝히기로 했습니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서서 마을책집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들릅니다. 《사진의 용도》(아니 에르노·마크 마리/신유진 옮김, 1984 BOOKS, 2018)는 어떤 이야기로 사진을 풀어내려나 하고 들여다보려고 고릅니다.


  《오월 어머니의 눈물》(조현옥, 렛츠북, 2017)은 1980년 오월 광주를 품고 사는 어머니가 어떤 눈물을 온몸으로 이 땅에 흘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시로 풀어냅니다. 《친애하는 미스터 최》(사노 요코·최정호/요시카와 나기 옮김, 남해의봄날, 2019)는 한국하고 일본이란 두 나라를 사이에 두고서 글월벗으로 지낸 두 사람이 주거니받거니 길어올린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책 석 자락을 고르고서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로 걸어갑니다. 크지 않은 이야기도 작지 않은 이야기도 없다고 느껴요. 아름답지 않은 책이란 없고, 사랑스럽지 않은 님도 없다고 느껴요. 모두 아름다운 길이면서 삶일 테지요. 이것만 사진책일 수 없습니다. 저것을 사진책이라고 떼어낼 수 없습니다. 여름볕은 후끈후끈하기에 대단히 좋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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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걸음 (2019.7.4.)

― 광주 〈동네책방 숨〉

 062.954.9420

 광주 광산구 수완로74번길 11-8



  이태 만에 걸음을 합니다. 마침 광주 광산 하남산단지구에서 일하는 이웃님을 만날 일이 있어 그리 가는 길입니다. 저녁 여섯 시 무렵 이웃님을 뵙기로 했는데 〈동네책방 숨〉에 거의 여섯 시가 되어 닿았습니다. 이웃님한테 손전화 쪽글로 조금 늦겠다고 여쭈고는 후다닥 골마루를 돕니다. 참말로, 모처럼 찾아온 길인데, 1분 1초를 책집 골마루를 걷고 책시렁을 살피면서 ‘바로 일어서야 하잖아?’ 하는 속엣말을 끝없이 되뇝니다.


  그래도 그림책 《비가 주룩주룩》(다시마 세이조/김수희 옮김, 미래아이, 2019)이 눈에 뜨여서 집어듭니다. 비가 오는 하늘빛이며 놀이빛을 새파랗게 잘 담았구나 싶습니다. 척 보아도 사랑스럽고, 슬쩍슬쩍 넘겨도 새롭습니다. 저녁에 길손집에서 꼼꼼히 되읽기로 하고 다른 책을 살핍니다.


  셈대 곁에 앙증맞게 놓인 《바닷마을 책방 이야기》(치앙마이래빗, 남해의봄날, 2019)를 들여다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라고 하는 만화책이 떠오르는 책이름입니다만, 바닷마을에 있는 책집에서 일하는 살림을 새로운 붓끝으로 담아내었구나 싶습니다.


  저녁에 길손집에 머물며 이 만화책을 차근차근 보았는데, 책집지기로 짧게 일한 발자국이라 하더라도 하루하루 즐겁게 누린 걸음을 산뜻하게 그려내었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이런 책이 거의 안 나왔어요. ‘예전’이라면 스무 해 앞서입니다. 그무렵까지는 ‘책 잔뜩 읽고, 책집 다닌 걸음이 적어도 서른 해쯤’은 되어야 책집 이야기를 다룰 만하다고 여겼어요. 이제는 나라 곳곳에 이쁘게 태어나는 책집마다 이쁘게 피어나는 이야기를 그때그때 싱그러운 빛으로 바로 담아내니 새삼스럽습니다.


  책집에서 얼른 일어서야 하니 아쉽습니다만, 다음에는 이태 만이 아닌, 조금 더 짧게 사이를 두고서 찾아오자고 생각합니다. 〈동네책방 숨〉 셈대에 놓인 다크초콜릿 한 꾸러미를 더 집고는, 이 반짝반짝 책꽂이가 고운 결을 뒤로 하고서 이웃님한테 달려갑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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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할머니 (2019.1.31.)

―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

 인천 동구 금곡동 11-9



  살아오며 읽은 책이 무척 많으나, 아직 읽지 않거나 못한 책이 훨씬 많습니다. 책집으로 마실을 가서 한꾸러미 장만하는 새로운 책이 있더라도, 정작 장만하지 못하는 책이 더욱 많습니다. 이웃님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더라도 막상 나누지 못한 말이 참으로 깁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스스로 ‘아직 못했네’ 하고 생각하면 저는 늘 ‘아직 못한’ 사람이로구나 싶고, ‘앞으로 하려고’처럼 생각하면 저는 늘 ‘앞으로 하려고’ 나아가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이설야, 창비, 2016)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고장을 텃자리로 삼아서 하루를 짓는 분이 길어올린 시집입니다. 시쓴님이 어느 날 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이녁이 살아가는 인천에서 ‘인천작가회의’ 글지기가 엮는 《작가들》이라는 잡지에 ‘인천 골목 사진’을 보내 주면 좋겠다고. 이때에 비로소 인천 이웃님 이름을 들었고, 이웃님 시집을 알았으며, 이 시집을 누리책집 말고 인천마실을 하는 길에 장만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러고서 거의 한 해가 지나서야 배다리 〈나비날다〉로 마실을 가서 드디어 이 시집을 만났고, 한달음에 다 읽었습니다.


  시집 하나를 만나려고 한 해를 기다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짓을 하는구나 싶으나, 이래도 즐겁습니다. 기다리고 싶었으니 기다린걸요.


  《지붕 위 삐롱커피》(Engi, 2018)라는 자그마한 그림책을 만나고, 《고양이가 될래》(시 쓰는 수요일, 달이네, 2018)라고 하는, 오직 이 마을책집에 와야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책을 마주합니다.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 부쩍 늘어요. 아직 여러 마을책집에는 어슷비슷한 책이 많다 싶으나, 차근차근 ‘그 마을책집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책’이 늘어나지 싶습니다. 마을빛을 담는 마을책집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할까요. 고장빛을 품는 고장책집으로 거듭나는 길이기도 하달까요.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재연, 소동, 2019)라는 책을 집어들어 고흥으로 가져갔더니, 곁님이 이 책에 흐르는 그림결이 참 곱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할머니가 쓰는 글이며, 할머니가 빚은 그림이며 더없이 곱습니다. 멋을 부리기에 곱지 않아요. 그저 할머니로 살아온 나날을 오롯이 담아내어 펼치니 곱습니다.


  피어나는 할머니입니다. 이처럼 피어나는 할아버지도 나란히 늘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늦깎이로 한글을 익히고 붓을 쥐어 글꽃이랑 그림꽃을 펴듯, 시골 할배도 시골 할배다운 꿈하고 사랑을 담아 ‘할배 이야기’를 글꽃이며 그림꽃이며 노래꽃으로 길어올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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