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2] 무슨 밥 먹을까



  밥상을 차리는 어버이를 바라보는 아이가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하고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밥을 먹을까?” 하고 얘기하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풀밥’을 할 수 있고 ‘고기밥’을 할 수 있으며 ‘미역국밥’이라든지 ‘감자국밥’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먹는 대로 밥이름을 붙입니다. 밥을 하니까 밥하기이고, 밥이름을 붙이며, 밥먹기를 누리고, 밥삶을 헤아립니다. 바깥에 나가거나 다른 집에 가면, 으레 ‘요리’와 ‘식사’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이 ‘요리·식사’라는 말마디를 들으면 으레 이러한 말을 쓰면서 “오늘은 무슨 요리?”나 “오늘은 무슨 식사?” 하고 묻겠지요.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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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1] 까만조개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수세미로 껍데기를 박박 문지릅니다. 뻘물이 거의 빠졌다 싶어 커다란 냄비에 넣어 펄펄 끓입니다.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끓이니 국물이 파르스름합니다. 어쩜 이런 국물 빛깔이 나올까 늘 놀라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밥상에 국물과 조개를 올리니 아이들이 묻습니다. “까만 조개야?” “응, 까만 조개야. ‘홍합’이라고도 해.” 아이들은 ‘홍합’이라는 말은 못 알아듣습니다. 낱낱으로 뜯어 ‘홍·합’이라 말하니 비로소 알아듣지만, 아이들 눈으로 볼 적에 껍데기가 까만 빛깔이니 ‘까만조개(또는 깜조개)’라는 이름을 써야 제대로 알아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조개를 두고 ‘조개’라 하기보다 ‘蛤’이라는 한자를 자꾸 쓰려 합니다. 커다란 조개라면 ‘큰조개’라 하면 될 텐데 굳이 ‘대합’이라 하고, 하얀 조개라면 ‘흰조개’라 하면 될 텐데 애써 ‘백합’이라 해요. 꽃과 같이 고운 무늬라 하면 ‘꽃조개’라 할 때에 쉬 알아들을 텐데 왜 ‘화합’이라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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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0] 물뿅뿅이



  여덟 살 큰아이가 읍내 가게에서 ‘물게임기’를 보았습니다. 물게임기를 사 달라면서 나를 부릅니다. ‘물게임기’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그거 있잖아요. 물 뿅뿅 쏘는 거.” 이렇게 말해도 도무지 모르겠어서, 아이가 이끄는 데로 가서 쳐다봅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로구나. 아이 말대로 ‘물게임기’는 물을 뿅뿅 쏘아서 조그마한 고리를 꽂는 놀잇감입니다. 네모난 물틀에 작은 고리가 헤엄치듯이 동동 떠다니는데, 단추를 눌러서 바람을 뿅뿅 넣으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고리가 춤을 추는데 작은 막대기에 꽂힐랑 말랑 흔들립니다. 이 놀잇감을 놓고 ‘물게임기’라 하는군요. 그러니까, 물을 뿅뿅 쏘아서 고리를 넣는 놀잇감이니 ‘물뿅뿅이’라든지 ‘물고리넣기’라고도 할 만합니다.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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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9] 튿다, 튿어지다



  나는 어릴 적부터 ‘튿다’와 ‘튿어지다’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내 둘레 어른이나 아이 모두 이러한 말을 썼어요. 그런데, 학교에만 가면 표준말로 ‘뜯다·뜯어지다’만 나옵니다. 우리가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괜찮지만, 받아쓰기를 하거나 글을 쓸 적에 ‘튿다·튿어지다’라 적으면 언제나 ‘틀렸다’고 가르쳤습니다. 한국말사전을 보아도 ‘튿다’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튿다’는 고장말입니다. 그러니까, 서울말이나 표준말은 아닐는지 모르나, 고장에 따라서 쓰는 낱말입니다. 서울에서 다루는 표준 맞춤법에서는 ‘튿어지다 (x) 뜯어지다 (o)’로 가를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에서 쓰는 말을 살피면, 섣불리 ‘x o’로 가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말을 주고받는 사람이지, 어떤 틀에 스스로 가두어 표준이 되어야 하지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공문서라든지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표준말만 써야 한다고 하면서, ‘뜯다·뜯어지다’만 옳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표준말은 틀에 박힌 굳은 말일 수 없습니다. 한국말은 센말과 여린말로 나누어 함께 쓰는 말결이 아름다운 말입니다. ‘튿다/뜯다’를 얼마든지 함께 쓸 수 있고, ‘튿어지다/뜯어지다’도 얼마든지 나란히 쓸 수 있습니다. 두 말을 골고루 쓸 때에 한국말이 한결 보드랍고 부드러우면서 넉넉하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4348.3.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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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8] 꽃송이



  할머니가 여덟 살 큰아이를 부르면서 “벼리야, 여기 봐. 뭐가 있나?” 하고 말씀합니다. 여덟 살 큰아이는, “응? 어? 와? 꽃이 있네. 꽃이 한 개다!” 하고 말합니다. 이 소리를 문득 듣고는 내가 우리 집 아이한테 꽃을 가리키는 이름을 말하지 않거나 안 가르쳤는가 하고 가만히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벼리야, 꽃은 ‘한 개’가 아닌 ‘한 송이’라고 말해.” 꽃은 ‘송이’로 셉니다. 풀은 ‘포기’로 셉니다. ‘꽃송이·풀포기’처럼 쓰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꽃송이와 풀포기처럼 말할 수 있어도 ‘꽃개·풀개’처럼 쓰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대목이나 말결을 헤아리는 어른이 차츰 줄어,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영화에서조차 꽃이든 풀이든 열매이든 나무이든 그냥 ‘개’로 세기 일쑤입니다. 이러다 보니 여덟 살 아이는 이러한 말에 젖어들었을 테지요. 4348.2.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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