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못 벗어나는 새끼 제비



  어제부터 우리 집 처마에서 ‘새끼 제비 둥지 떠나 보내기’를 어미 제비가 시킨다. 둥지에는 새끼 제비가 다섯 마리 있었고, 이 가운데 세 마리는 씩씩하게 밖으로 나와서 한참 깃을 다독인 뒤에 어미 제비하고 날아올랐다. 그런데 두 마리는 하루가 지나도 아직 둥지 바깥으로 뛰쳐나오지 못한다. 멀뚱멀뚱 눈치만 보는지 두려워하는지 둥지에서 조금도 못 벗어난다.


  어미 제비는 둥지에 남은 새끼한테는 먹이를 거의 안 물어 준다. 그렇다고 아예 안 물어 주지는 않는다. 배고파서 스스로 뛰쳐나올 만큼만 주는구나 싶다. 안 주지도 않으나 넉넉히 주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새끼 제비 두 마리는 다른 새끼보다 몸집이 작을 수 있겠지.


  얘들아, 너희가 이 여름이 끝날 무렵 태평양을 가로질러 먼먼 길을 날아오르려면 어서 둥지를 떠나야 해. 앞으로 한 달 동안 바지런히 날개힘을 길러야 해. 너희는 오뉴월이 아닌 칠월에 다 자란 새끼라서 올해에 깨어난 다른 새끼보다 훨씬 늦었어. 두려움을 떨치렴. 모든 새끼 제비는 처음에는 날갯짓이 서툴단다. 너희한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예전 어미 제비는 우리 집 처마 둘레에서 하루 내내 맴돌이만 했고, 때로는 종이상자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지. 새로운 곳을 찾아서 훨훨 날아오르렴. 둥지에 스스로 갇힌 채 머물지 말고, 네 씩씩한 날개를 힘차게 펼쳐서 새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렴. 4348.7.3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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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7-31 18:07   좋아요 0 | URL
제 친정 아파트 난간에도 얼마전에 비둘기가 와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적 있어요. 제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미와 새끼 모두 놀란다고 엄마께서 하도 주의를 주셔서 사진 몇장 못찍었지요. 하루 이틀 아니다보니 정이 많이 드셨던 모양인데 전 그때부터 걱정이 좀 되었지요. 언젠가 어미와 새끼 모두 제 세상으로 날라가고 빈 둥지만 남은 걸 보면 안그래도 혼자 집 지키고 있는 엄마가 허무한 느낌이 들지않으실까...결국 그 날은 왔고 역시 엄마는 허무해하시고 저도 옆에서 함께 그랬고요. 숲노래님 글을 읽으니 제가 너무 사람 입장에서만 생각을 했었던거네요. 그들은 성공적으로 제 앞길을 찾아간건데 말입니다.

숲노래 2015-07-31 17:40   좋아요 0 | URL
아마 새끼 비둘기가 무럭무럭 자라서
hnine 님 어머님이 사는 그곳 난간에
다시 찾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새는 대단히 똑똑한 넋이라서
아무 자리에나 둥지를 틀지 않아요.
저희를 지켜 줄 만하다고 여긴 그곳에 둥지를 틀었으니
`난간이 고향이 된 비둘기`가 다시 돌아올 날을 그려 봅니다.

저희 집 새끼 제비가 오늘로 이틀째
둥지에서 꼼짝을 못 하는데
이러다가 어미 제비가 아예 팽개칠 수 있는데...
(새끼 제비는 딱 하루 만에 둥지를 떠나 날갯짓을 해야 어미를 따라다닐 수 있어요)
어서 두려움을 떨쳐내기를... 하고 빌어 봅니다...
 

작은 길꽃



  길바닥에서 돋은 꽃을 본다. 사람들이 걸어서 오가는 일이 드문 듯한 길을 걷다가 본다. 아이들하고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참으로 작게 꽃송이를 피웠다가, 더없이 작게 씨앗을 맺은 길꽃을 본다. 오늘 이곳은 돌이 깔린 거님길이 되었으나, 얼마 앞서까지 여느 들이거나 숲이었겠지. 얼마 앞서까지 이 작은 꽃송이는 ‘길꽃’이 아닌 ‘들꽃’이나 ‘숲꽃’이었겠지.


  길에서든 들에서든 숲에서든, 꽃은 언제나 꽃이다. 꽃은 늘 꽃내음을 풍기면서 우리 마음에 고운 숨결을 나누어 준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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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에 서울마실을 하며 본.

..

까마중꽃은 어디에서나 핀다


  까마중풀은 어디에서나 잘 돋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흔히 돋습니다. 까마중잎은 풀벌레가 매우 좋아합니다. 보드라우면서 맛있으니까요. 해가 잘 드는 곳에서도, 그늘진 곳에서도, 까마중은 씩씩하게 자랍니다. 볕바른 자리에서 자라는 까마중하고 그늘진 자리에서 자라는 까마중은 여러모로 다르게 생기지만, 똑같이 조그마한 흰꽃을 터뜨리고, 똑같이 새까맣고 동그란 열매를 맺습니다. 서울마실을 하다가 거님길 한쪽에서 앙증맞게 돋은 까마중풀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춥니다. 하얗게 핀 꽃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하얀 꽃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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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우리 달걀버섯이야



  지난해에는 달걀버섯을 구경만 하고 못 먹었다. 올해에는 꼭 달걀버섯을 먹고야 말 테다 하고 꿈을 꾸었는데, 골짝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아이가 달걀버섯을 찾아 주었다. “아버지, 저기! 버섯이야, 버섯 있어!”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찾아보는데, 처음에는 안 보였다. 허리를 숙이고 가만히 고개를 돌리니, 옳거니 바위 밑에서 돋는구나.


  달걀버섯을 살살 든다. 밑둥까지 보드랍게 뽑힌다. 큼직하고 어여쁜 버섯이다. 어떻게 먹으면 맛날까? 날로 먹어도 될 텐데, 집으로 잘 갖고 돌아가서 곁님한테도 보여주고, 저녁밥 먹는 밥상에 올릴까 하고 생각한다. 4348.7.1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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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7-17 08:02   좋아요 0 | URL
식용버섯이군요. 맛은 달걀 맛이 아니겠지요 물론? ^^

숲노래 2015-07-17 08:30   좋아요 0 | URL
처음 땅을 비집고 올라올 적에 동그스름한 갓 모습이
달걀하고 거의 같아서 달걀버섯이라고 해요.

`황제버섯`이라는 이름이 있기도 해요.
먼 옛날에 황제가 이 버섯을 맛나게 먹으며
다른 백성은 못 먹게 해서 `황제버섯`이라고 했다더군요 -_-;;;
 

웅크린 괭이밥꽃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거나 볕이 들지 않거나 쌀쌀한 날이면, 괭이밥꽃은 노랗고 조그마한 꽃송이를 야물게 닫는다. 비가 그치거나 바람이 자거나 볕이 들거나 따스한 날이면, 괭이밥꽃은 노랗고 조그마한 꽃송이를 활짝 벌린다.


  꽃이 피어나도록 북돋우려면 따스한 사랑 같은 바람이 가만히 흘러야 한다. 사람이 손으로 억지로 꽃송이를 벌릴 수 없다. 따스한 볕살과 보드라운 바람이 있을 때에 비로소 꽃송이가 스스로 벌어진다.


  곱게 따스한 볕이 사랑스럽다. 부드럽고 싱그러운 바람이 아름답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숨결이 서로 만날 적에 너와 나는 기쁘게 마음을 연다. 4348.7.1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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