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1


《風と共に去りめ 第二冊》

Margaret Mitchell

大久保康雄 옮김

三笠書房

1938



헌책집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묵은 일본책이 있는 자리에서 《風と共に去りめ 第二冊》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설마 이 이름이 그 문학책을 일본에서 옮긴 말인가 하고요. 마가렛 미첼 님 글을 옮긴 일본 분은 1905년에 태어나 1987년에 숨을 거두었다는데 무척 오래도록 ‘세계문학을 일본에 알려서 읽히는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더군요. 더 알아보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은 1937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나오고 한 해 만에 일본글로 옮긴 셈입니다. 이 책은 한국말로 언제쯤 처음 나왔을까요? 일본글 아닌 영어로 옮긴 문학은 언제쯤 제대로 나왔을까요? 요즈음은 일본책을 슬쩍 되옮기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만, 요즈음 옮김말씨는 지난날에 대면 아직 어설픕니다. 잘못 옮기는 데가 있다는 핀잔을 넘어, 한국말로 옮기는 뜻을 잊기 일쑤예요.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는 채 세계문학을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바깥말만 잘한들 통·번역을 해내지 못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바탕을 이루고 생각을 밝히는 텃말부터 바람처럼, 해님처럼, 꽃님처럼, 샘물처럼 홀가분하면서 상냥하고 사랑스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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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0


《백두산부대의 얼》

 김선호

 보병제21사단

 1988.12.



1997년 12월 31일은 제가 강원도 양구 동면 ‘완전무장지대’에서 살아남아 바깥으로 나간 날입니다. 비무장지대가 아니지요. 순 거짓말입니다. ‘완전무장지대’입니다. 무기에 군인이 얼마나 바글바글한데요. 미사일에 전차에 폭탄이 얼마나 아슬아슬한데요. 주먹다짐이나 총질은 가볍게 흐르던 그곳에서 웃자리에 있는 분들이 허울좋은 거짓말을 일삼으며 젊은이를 짓밟아 바보로 길들이고 갖은 검은짓을 일삼는 하루하루를 똑똑히 지켜보면서 생각했어요. ‘너희 막짓에 주먹질에 발길질에 총질에 목숨이며 넋을 빼앗기지 않겠어!’ 하고요. 서슬퍼런 데에서 빠져나오던 때에 살그머니 챙긴 ‘2급비밀 책’이 있습니다. ‘신병교육훈련자료’라 하는 《백두산부대의 얼》인데, 찬찬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뻥튀기에 거짓말만 가득한데 뭔 2급비밀인지 우스웠어요. 아마 뻥튀기에 거짓말이기에 숨기려 들겠지요. 그때 2급비밀 가운데 하나는 이제 사라진 주둔지인 ‘도솔대대’ 최저온도 -54℃입니다. 온도계로 찍은 이 숫자까지 2급비밀이라 하니 할 말이 없지요. 군대가 있으니 평화가 동떨어집니다. 얼빠진 채 군대와 무기를 때려박으니 사람들이 얼간이가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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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시렁 209


《スポツの施設と用具》

 東次右衛門 글

 旺文社

 1950.10.30.



지난 2007년에 저로서는 텃마을인 인천으로 돌아가서 서재도서관을 열었는데요, 이때에나 예전에나 요즈음에나 인천을 비롯한 나라 곳곳에서는 오랜마을을 하루 빨리 허물어 높다란 시멘트 아파트로 바꾸는 짓을 끝없이 일삼습니다. 한 사람이 사랑을 담아 지은 집은 백 해뿐 아니라 이백 해나 삼백 해는 거뜬히 갑니다. 장삿속이나 돈벌이로 올리는 시멘트 아파트는 고작 서른 해도 못 버티기 일쑤입니다. 시멘트 아파트를 허물자면 쓰레기가 엄청나지요. 사랑으로 지은 오랜마을 살림집은 나무나 흙이나 돌 모두 되살릴 수 있어요. 그나저나 인천은 한국에서 처음 닦은 야구장을 2008년에 가뿐하게 헐었습니다. 그 터에 축구장을 새로 지었지요. 이러면서 몇 해 앞서부터 ‘류현진 길’이니 뭐니 시끄럽습니다. 웃기지요. ‘처음’인 집이며 경기장이며 시설이 잔뜩 있던 인천인데 거의 몽땅 쓸어냈거든요. 《スポツの施設と用具》는 1950년에 나온 책이라는데 매우 정갈합니다. 운동경기장을 어떻게 짓는가를 꼼꼼히 다룹니다. 일본이란 나라가 처음부터 빈틈없거나 꼼꼼하지는 않았다고 느껴요. 모두 스스로 애쓰고 아끼고 가꾸고 돌보면서 오늘에 이르렀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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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08


《직장훈련교재》

 부산시

 1970년대?



1970년대 첫무렵에 부산시에서 내놓았지 싶은 《직장훈련교재》를 보면서 그 뒤 쉰 해쯤 지난 요즈막 온나라 벼슬아치는 얼마나 달라졌으려나 하고 돌아봅니다. 벼슬아치 자리에 서는 모든 이가 엉터리이거나 바보스럽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엉터리나 바보가 되어 벼슬힘을 부린다든지 뒷돈을 챙기는 이가 꽤 보일 뿐입니다. 스스로 슬기롭게 일하면서 마을살림을 넉넉히 가꾸는 길은 멀리하면서, 자리를 건사하거나 쇠밥그릇을 움켜쥐려는 이가 자꾸 보일 뿐이에요. 높은벼슬이건 낮은벼슬이건 매한가지예요. 왜 심부름꾼이 아닌 벼슬지기가 되려 하고, 감투놀음을 할까요? 오직 돈하고 힘 이 두 가지를 두고두고 거머쥐려는 뜻으로 벼슬자리를 노리고 감투다툼을 한다면 삶이 즐거울까요? ㅅㄴㄹ


…… 이 책자는 단순한 외식금지, 출퇴근엄수, 무단이석금지, 당직철저 등의 외형적 복무자세확립을 위해 쓰여진 목적보다, 조국근대화는 결코 물질의 재건만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정신의 재건이 앞서야 한다는 과제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므로, 직장훈련담당관 역시 이 점을 직시하고, 공무원의 보다 철저한 정신의 재건과 윤리관확립에 성실한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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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07


《까치 울던 날》

 권정생 글

 제오문화사

 1979.1.25.



사람은 어떻게 사람을 만날까요? 늘 수수께끼라고 여깁니다. 저는 중학교란 데부터 그만 다니고 싶었으나 1988년에 ‘중학교 자퇴’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고, ‘고등학교 자퇴’를 1991년에 입밖에 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본 대학생 노닥질이 너무 어이없어서 ‘대학교 자퇴’를 외치면서 신문돌림이라는 길로 삶을 틀었습니다. 신문사지국은 뭘 믿고 저를 일꾼으로 뽑았을까요? 그때 새벽 두 시부터 네 시 반 사이에 일을 마쳤는데, 1999년에 얼결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2001년에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더구나 2003년에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하는 자리로, 한 칸씩 옮겼습니다. 아무런 사람줄·배움줄·돈줄 없이 이런 길을 가는 삶이 아리송했어요. 2003년 겨울이었는데 이오덕 어른 책시렁을 갈무리하다가 《까치 울던 날》을 처음 보았어요. 이오덕 어른 큰아드님이 “자네 이 책을 모르나? 못 봤나? 자네처럼 책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이 책을 모르네? 아버지한테 여러 권이 있으니 한 권은 자네가 가지게.” 하셨어요. 아주 파묻혔다 싶던 권정생 님 오랜 동화책을 처음 만나고, 게다가 얻을 줄 모두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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