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9


《普通 朝鮮語讀本 卷三》

 조선총독부 엮음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1932.2.17./1937.1.10.고침



  조선총독부라는 곳이 일제강점기에 이 나라를 억누르면서 일본말이랑 일본글을 쓰도록 내민 줄은 으레 들었어도, 막상 조선총독부가 어떤 교과서를 내놓고, 어떻게 하루를 이끌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어요. ‘황민화 교육’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제대로 알도록 가르치지는 않은 셈이랄까요. 한국말사전을 쓰는 길을 걸으며 ‘조선총독부 조선말 교과서’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이 교과서를 만날 길도, 보여주는 데도, 속살을 찾아볼 만한 데도 없었는데, 한국에는 헌책집이 있고, 바로 헌책집 책시렁 한켠에서 해묵은 《普通 朝鮮語讀本 卷三》을 만났어요.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이 교과서를 장만하고는 곰곰이 읽었어요. 제법 잘 짰구나 싶으면서 무섭네 싶었지요. ‘제법 잘 짰구나’는 ‘아이가 말글을 익히는 틀’을 잘 파헤쳤다는 뜻이면서, 말글을 바탕으로 ‘조선사람 아닌 일본사람 되기’를 어떻게 꾀하면 어린이가 홀랑 넘어가는가를 조선총독부가 꿰뚫었다는 소리입니다. 식민지나 독재란 군홧발만 있지 않아요. 학교·책·문화·역사·종교·과학·행정 모든 곳을 샅샅이 아울러 그야말로 종살이에 빠지도록 하더군요. 아프지만 되새길 책자취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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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8


《분교마을 아이들》

 오승강

 인간사

 1984.5.5.



  우리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며 시를 썼습니다. 신춘문예에 붙겠다는 마음으로 해마다 글을 내신 줄 아는데, 어느 해에 동시로 ‘중앙일보’에서 뽑혔습니다. 저는 우리 아버지 동시가 동시스러운지 재미있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삶하고 매우 동떨어진 글이라고 느꼈어요. 우리 아버지가 글꽃을 이룬 일은 놀랍고 기쁘지만, 부디 어린이 삶이며 사랑을 살갗으로 와닿도록 살림자리에서 길어올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설거지도 못하고 라면도 끓일 줄 모르며 중국집에 전화로 짜장국수 시키는 길도 모르던 아버지한테 ‘삶에서 길어올린 동시’를 바라기는 어려웠겠지 싶어요. ‘멧골 국민학교 분교 교사’로 일한 오승강이란 분은 이녁 텃마을인 경북 영양에서 그 고장 아이들한테 기운을 북돋울 뿐 아니라, 멧골숲이 얼마나 포근한 품인가를 동시로 밝혔습니다. 이 열매가 《분교마을 아이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동시꾸러미는 신춘문예하고는 매우 멀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 동시꾸러미를 읽으며 뭉클했고, 눈물하고 웃음을 배웠으며, ‘동시 쓰는 교사’라는 새로운 길을 만났습니다. 멋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숨결일 적에 동시가 자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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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7


《繪本 はだしのケン》

 中澤啓治

 汐文社

 1980.8.1.



  《맨발의 겐》이란 만화책이 있습니다. 저는 한글판이 나오기 앞서 일본판을 먼저 보았어요. 헌책집에서 만났지요. 어느 날 《はだしのケン》을 보고는 그림결이 매우 굵고 기운차다고 느껴서, 또 히로시마하고 전쟁이 얽힌 이야기를 그리는데, 어쩜 이렇게 대단히 그렸나 싶어 놀랐어요. 줄거리는 알지 못하고 그림으로만 《はだしのケン》을 훑다가 가슴이 찌릿찌릿 아팠습니다. 이러다가 2003년 가을부터 이오덕 어른이 살던 무너미마을 돌집에서 어른 글하고 책을 갈무리하는데요, 어른 책시렁 한켠에 《맨발의 겐》이 곱게 있었고, 이오덕 어른이 이 만화에 붙인 살뜰한 글을 만났습니다. 그러고서 하루하루 흐른 2018년 한글날에 맞춰 서울마실을 하며 신촌 〈글벗서점〉에 이틀 내리 찾아가서 책을 잔뜩 살피며 장만했는데, 이때에 《繪本 はだしのケン》을 만났고, 큼직한 판에 담긴 물빛그림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저절로 눈물이 똑 떨어졌습니다. 1980년에 처음 나오고 2007년 7월 20일에 17쇄를 찍었다던데, 요즈음에도 읽힐까요? 부디 요즈음에도 일본이며 한국에서 널리 읽혀 ‘전쟁이란 어리석은 짓을 끝장’내고 ‘평화란 사랑으로 손잡는’ 길을 북돋우길 바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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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6


《생물 상》

 남태경 글

 장왕사

 1952.5.30.



  한국말사전이란 책을 쓰자면 모든 곳에서 새롭게 배울 노릇입니다. 말을 담은 책인 사전에는 모든 갈래에서 다루는 갖은 말을 살펴서 추리고 가다듬어야 하거든요. 이러면서 옛책하고 새책을 나란히 헤아릴 노릇이고, 나라 안팎 책까지 두루 짚을 일입니다. 이러지 않는다면 사전은 외곬로 가거나 허술하거나 빈껍데기가 되기 좋습니다. 헌책집을 다니면서 해묵은 교과서를 끝없이 장만합니다. 지난 어느 때에 어느 갈래 교과서로 어떤 말이 흘렀는가를 읽어내어, 오늘은 어느 만큼 다듬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손볼 만한가를 엿봅니다. 《생물 상》처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나온 예전 교과서를 장만하자면 목돈을 써야 하는데요, 살림돈을 책에 참 많이 쏟는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힘들거나 고된 나날에도 교과서 하나를 엮어서 새빛을 나누려던 어른이 있었네’ 하고 돌아보고, 이 교과서를 알뜰히 여기며 건사했을 푸름이 눈빛을 떠올립니다. 1920∼50년대에는 교과서 한 자락 값이 쌀 한 섬하고 맞먹었다고 들었습니다. 섣불리 만질 수도 볼 수도 펼 수도 없었다지요. 참말로 땅 팔고 쌀 팔아서 우리 앞길을 일굴 숨결을 지으려 한 발자취였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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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5


《模範實用書翰文》

 大山治永

 영창서관

 1943.5.20.



  재미난 글하고 재미나지 않은 글은 매우 쉽게 알 만합니다. 남한테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쓴 글치고 재미난 글은 없다시피 합니다. 남 아닌 우리 스스로 삶을 되새기면서 눈물웃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쓰는 글이라면 어느 누가 쓴 글이든 아름다우면서 재미나구나 싶어요. 우리 누구나 남 이야기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사랑을 이야기하고, 우리 살림을 말하며, 우리 오늘을 적으면 되어요. 글이란 늘 우리 삶꽃이거든요. 1943년이라는 일제강점기에도 《模範實用書翰文》이 다 나왔네 싶어 놀랐습니다만, 아하 그무렵 일본에서 나온 책을 그대로 베껴서 내놓은 책이네 하고 다시 생각하니 썩 놀랍지 않더군요. 무슨 말인가 하면 “모범 실용서한문”이란 이름부터 일본 말씨요, 이런 책붙이는 모조리 일본책을 베끼거나 훔쳤고, 이 나라에 퍼진 숱한 글틀(서식)이란 하나같이 일본에서 세운 대로 따라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난날부터 숱한 출판사는 이런 책을 내놓아 장사를 했고, 벼슬아치나 글쟁이도 이런 글틀에 얽매였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삶말로 우리 이야기를 우리 글로 담는 길”을 갈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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