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6


《로타와 자전거》

 아스트릿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차미례 옮김

 문선사

 1984.6.15.



  ‘백제’란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이 출판사를 차린 분은 신문기자였다는데, 어느 날 술을 잔뜩 마신 채 택시에서 ‘박정희 개새끼’ 하고 씨부렁거린 바람에 택시일꾼이 경찰서로 바로 데려가느라 기자를 그만둬야 했고, 출판사를 차렸으며, ‘과레스끼 소설책’이 얼결에 잘 팔려서 ‘그렇다면 한국에 너무 모자란 그림책을 내자’고 생각해서 ‘현대세계그림걸작동화’ 스무 자락을 한국말로 옮깁니다. 그러나 영어 교재에 손을 대다가 쫄딱 무너졌고, 이 그림책꾸러미는 1984년에 다른 출판사로 옮겨서 나왔지요. 숱한 인문책을 옮긴 차미례 님이 그림책까지 옮긴 줄 아는 분이 있을까요? 《로타와 자전거》는 1982년, 1984년, 이렇게 한국에 나왔으나 거의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러다가 2014년에 이르러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란 이름으로 바뀌어 새로 나왔지요. 새옷을 입고 나온 “로타와 자전거” 그림책을 곧장 장만하고 가슴에 안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알아본 출판사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하는 마음이었어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로타와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읽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종이가 낡고 닳아 찢어지도록.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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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5


《民靑學聯의 正體》

 문화공보부 엮음

 문화공보부 홍보조사연구소

 1974.4.29.



  이 나라는 살림길을 얼마나 고이 다스리면서 이를 글로 어떻게 여미어 책으로 남겨 놓을까요? 나중에 벼락을 맞을까 싶어서 숱한 발자취나 글을 찢거나 태우거나 감추지는 않을까요? 이 나라 도서관이나 언론사나 학교는 얼마나 우리 발자국을 찬찬히 갈무리하거나 건사해 놓을까요? 대출실적 적다고 심심하면 버리는 책마냥 우리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묻어난 발자국을 슥슥 지우거나 치우지는 않을까요? 《民靑學聯의 正體》는 쉰 쪽짜리 얇은 책입니다. 끝자락에는 ‘회람란’이 있습니다. 박정희 독재정권 때에는 나라에서 곳곳으로 뿌린 이런 알림책을 동장·이장을 시켜서 모두 읽히도록 했고, 회람란에 이름을 적도록 했지요. 나라에서 벌인 그릇된 짓이 불거질 적마다 툭하면 터뜨린 갖은 ‘간첩 사건’이 있습니다. 《민청학련의 정체》는 썩어서 문드러진 구린내가 풀풀 나는 이들이 밥그릇을 붙잡으려고 꾀한 거짓말을 사람들 머리에 심으려고 찍어서 뿌린 발자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때 온갖 신문이며 잡지에서는 문화공보부에서 돌린 이 알림책에 적힌 대로 받아쓰기를 했겠지요. 동장·이장하고 교사도 똑같은 일을 했을 테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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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4


《그림에 부치는 시》

 김환기 글·그림

 지식산업사

 1977.12.1.



  책을 빌려줄 적에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하더군요. 책을 빌린 사람이 하도 책을 안 돌려주는 터라, 잃은 책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얘기하나 싶기도 합니다. 2007년에 서재도서관을 연 뒤로 책을 제법 잃었습니다. 값진 책이기에 훔친 사람이 있고, 꼭 돌려주겠노라 하고서 끝까지 안 돌려주거나 자취를 감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에 부치는 시》는 제 손을 떠난 지 열 몇 해가 지나도록 안 돌아옵니다. 김환기 님하고 피붙이 사이라는 젊은 분이 꼭 읽고 싶다면서 찾아왔고,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했지요. 그이는 손전화 번호까지 남겼는데요, 여러 달 지나고서 쪽글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도 아무 대꾸가 없었어요. 헌책집을 샅샅이 돌며 잃은 책을 다시 살 수도 있습니다만, 그 젊은이가 너무 늦지 않게 돌려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뭔가 까닭이 있겠지요. 저는 《그림에 부치는 시》를 읽으며 김환기 님이 노래하며 그림을 그리셨네 하고 느꼈어요. 이녁 그림이며 글이란 오롯이 노래더군요. 이 별을 사랑하는 노래, 이 땅을 아끼는 노래, 뭇숨결을 그리는 노래, 그리고 책 한 자락을 어루만지는 노래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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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3


《제3세계의 관광공해》

 론 오그라디 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옮김

 민중사

 1985.12.16.



  제가 나고 자란 인천은 오늘날처럼 공항이나 발전소나 갖가지 공장이 들어서기 앞서는 서울에서 바다를 보러 놀러오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1973년에 나온 “관광기념우표 2차”에 ‘인천 팔미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송도’란 곳도 있는데, 부산에 똑같이 송도가 있는 줄 나중에 알았어요. 그런데 ‘인천 송도’는 일본 군함 이름에서 비롯했다지요. 지난날 그 고을은 ‘먼오금’이란 이름이었다고 해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학교에서는 ‘관광은 공해가 없는 훌륭한 산업’이라고 가르쳤습니다만, 인천에 몇 군데 있는 관광지에 놀러온 사람은 하나같이 쓰레기를 마구 버렸습니다. 관광지에 간다며 자가용을 달리면 매캐했습니다. 참말로 관광은 공해 없는 산업일까요? 《제3세계의 관광공해》를 읽으며 나들이나 마실이 아닌 관광이란 이름이거나 관광산업으로 이름이 늘어지면 한결같이 공해로 이어지는 얼거리를 찬찬히 볼 수 있었어요. 관광지에 세우는 갖가지 시설이나 큰 길손집은 고을사람하고는 동떨어져요. 넓은 찻길도 고을사람한테 이바지하지 않아요. 이웃을 만나서 사이좋은 길로 나아가려 한다면 돈벌이 관광을 북돋울 수 없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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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2


《포장마차》

 이상무

 자유시대사

 1988.3.1.



  포장마차에서 곁밥도 없이 소주 한 잔 마시는 살림이면서 골프를 하며 느긋하게 노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있을 수 있겠지요. 만화를 그린 이상무 님은 전두환 군사독재가 춤추던 무렵 잡지 〈만화광장〉에 싣던 토막만화를 그러모아서 1988년에 《포장마차》란 이름으로 내놓습니다. 이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골프 만화를 선보였고, 2011년에는 조갑제란 이가 쓴 글을 바탕으로 《만화 박정희》를 그렸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상무 님 스스로 그린 《포장마차》에 나오는 ‘투사’를 등치려던 일제강점기 앞잡이라든지, 투사인 할아버지를 속인 손녀라든지, ‘복서’가 앞뒤 다른 말이랑 몸짓으로 포장마차 일꾼 마음에 칼을 꽂은 일이라든지, 얼마든지 ‘돈·이름·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얼빠진 끄나풀이 되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포장마차》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끄나불’입니다. 스스로 오롯이 서지 않으면 앞잡이가 되고 말아요. 스스로 수수한 이웃하고 어울리지 않으니 ‘박정희 끄나풀’이 되어 삶하고 동떨어지고, 어느덧 만화님 스스로 꽃길을 어지럽히는 걸음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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