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3


《한국미, 한국의 마음》

 최순우

 지식산업사

 1980.7.1.



  어릴 적에 학교에서 배움마실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꽤 따분했습니다. 저나 동무가 살아가는 길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 세간만 줄줄이 놓고, 때로는 싸움판에서 쓰던 것을 잔뜩 놓으면서, 이러한 세간이나 연장 이름을 외우도록 시켜서 시험문제를 냈거든요. 이제는 따로 ‘생활사’라고도 하지만, 모름지기 역사라면 ‘정치권력자 발자취’가 아닌 ‘사람들 살림길’이어야지 싶습니다. 무량수전도 다보탑도 아름답겠지만, 둥구미도 키도 아름답습니다. 호미나 넉가래 한 자루가 아름답고, 절구나 도마가 아름다워요. 《한국미, 한국의 마음》은 박물관 으뜸지기를 맡은 분으로서 우리 옛살림 가운데 어느 한 토막에 흐르는 아름다운 숨결을 읽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최순우 님은 다른 학자나 역사학자나 예술가나 지식인보다는 ‘사람들 살림길’에 조금 더 눈길을 두었다고 느낍니다. 다만 이분도 스스로 안 넘은 담이 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오늘이 바로 빛이자 숨결이고 사랑입니다. 오늘을 이룬 어제를 ‘숲에서 누구나 손수 지은 밥옷집 살림’이라는 마음으로는 어루만지지 못했어요. 그래도 박물관 으뜸지기로서 글을 여미고 책을 써낸 대목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박물’에서 그치고 말았어도.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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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2


《續 韓國からの通信》

 T·K生 글

 ‘世界’ 編集部 엮음

 岩波書店

 1975.7.21.



  2003년에 지명관이라는 분이 스스로 ‘T·K生’이라고 밝힌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분이 그렇게 안 밝혔어도 ‘T·K生’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2000년대 첫무렵까지 헌책집을 드나들던 ‘숨은 똑똑이 어르신’이 참 많았어요. 이분들 가운데 한 분이 어느 날 불쑥 저한테 말을 걸어요. “자네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일본책은 잘 모르겠네요.” 그분은 ‘世界’라는 일본 잡지에 1973∼1988년에 실린 글하고 얽혀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에는 좀 시큰둥했습니다. 이러다가 사전 짓는 밑책을 그러모으며 《續 韓國からの通信》을 헌책집에서 장만하여 사전편찬실로 가져가니 출판사 사장님이 “너 어떻게 이런 책을 알아서 사 왔니?” 하고 놀라시면서 “얘, 예전에 이 책 보았다가는 잡혀갔다.” 하면서 주섬주섬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를 나무란 글을 일본 어느 잡지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실었구나 싶던데, 알 만한 분은 글쓴이도 알고 뒷이야기도 다 아셨구나 싶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서슬퍼런 때에 ‘사복경찰’조차 일본에서 지명관 님을 감싸 주었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입도 눈도 귀도 코도 모조리 틀어막았고, 옆나라는 숨통을 틔워 주었고 …… 그런데 오늘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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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34


《Concise ENGLISH-KOREAN DICTIONARY Romanized》

 Joan V. Underwood 엮음

 Charles E. Tuttle Co.

 1954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가 한 일이 꽤 많습니다. 종교를 퍼뜨릴 셈이었다고 하더라도, 학교를 짓고 병원을 올리고 사전까지 엮었어요. 이들이 한 여러 일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이 나라에 없거나 이 나라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대목을 짚었으니 고마운 노릇이지 싶습니다. 조안 언더우드(Joan V. Underwood)라는 분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합니다. 스무 살 즈음까지 한국에서만 지내다가 배움길을 걸으려고 비로소 서양에 다녀왔고, 선교사라는 일을 하려고 애썼다고 하는데요, 이러면서 《Concise ENGLISH-KOREAN DICTIONARY Romanized》라고 하는 단출한 사전, ‘낱말꾸러미(단어장)’라고 할 책을 엮습니다. ‘한국 사전 역사’에 이름이 없는 사전 가운데 하나인데, 2002년에 새로 나오기도 했고 2020년에 다시금 새로 나옵니다. 뜻풀이는 없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이 ‘한국말을 어떻게 소리내는가’를 낱낱이 밝혀 줍니다. 선교사를 비롯해서 한국하고 사귀려는 이한테 이바지하는 주머니사전입니다. 큰뜻은 종교를 퍼뜨리는 일이라지만, 사전에는 종교빛이 없습니다. 마땅하겠지요. 미국사람·영국사람이 한국을 사귀려면 ‘수수한 사람들 살림들’을 알아야 할 테니까요. ㅅㄴㄹ


accompany : 같이가다

aside : 곁으로

jacket : 저고리

janitor : 집직이

mat : 거적. 대자리

mate : 배필,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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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1


《標音 露和辭典》

 岩澤丙吉 엮음

 白水社

 1936



  서울 용산 〈뿌리서점〉은 둘도 없는 아름책집입니다. 이곳에서 아름책을 숱하게 만나기도 했고, 이곳을 드나드는 숱한 책손한테서 밝은 눈썰미를 익히기도 했으며, 이곳 책집지기한테서 책을 돌보는 손길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서울 용산 언저리에는 이웃나라 사람이 많이 드나들기에 이웃나라 책도 무척 자주 들어왔어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오가며 배운 분이 저승으로 떠나면 그 집에 있던 묵은 책이 으레 이곳으로 들어왔지요. 이런 날은 〈뿌리〉 책집지기님이 비손을 올립니다. “오늘은 고사를 지내야지” 하시면서 ‘새 임자를 만날 묵은 헌책’한테 절을 하셨어요. 이런 책을 제가 집어서 사려 하면 “자네도 그냥 가져가지 말아. 자네도 절을 해야지.” 하셨어요. 《標音 露和辭典》은 책자취가 뜯겼으나 안쪽에 “1948.5.4. at Tokyo 有樂町”라고 적혔습니다. 일본 도쿄 유라쿠초에서 ‘러일사전’을 장만한 분은 두 가지 말을 아셨겠지요? 얼마나 살뜰히 본 사전인지 곱게 닳았습니다. 러시아사전을 엮은이는 ‘이와세와 헤이키치(1863∼1943)’라 합니다. 신학교를 마치고 러시아말-일본말 다리를 놓은 배움빛입니다. 사전은 이웃을 알도록 다리를 놓는 책입니다. 이웃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기에 서로 다가서려는 첫걸음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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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0


《Starlings》

 Wilfrid S.Bronson 글·그림

 Harcourt, Brace & World

 1948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랑하니까 다르지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같습니다. 사랑을 모르니까 틀에 박힌 길로 가요. 사랑할 줄 알기에 새가 노래하는 소리뿐 아니라, 풀벌레랑 개미랑 나비랑 벌이랑 꽃이 노래하는 소리를 귀여겨듣습니다. 사랑을 모르니까 새도 풀벌레도 개미도 나비도 벌도 곁에 두지 않을 뿐더러, 들꽃이나 숲꽃은 모르거나 등집니다. 《Starlings》를 만나고서 대단히 반가웠습니다. 1948년이라는 해에 미국에서 이러한 사랑으로 이만한 그림책을 묶어낼 줄 아는 이웃이 있고, 이러한 책을 펴낸 곳이 있다니, 그저 반가우면서 고맙고 사랑스러웠어요. ‘starling’이란 이름도 곱습니다. ‘star + ling’이에요. ‘찌르레기’란 이름도 곱살하지요. 노래하는 새라는 대목을 이름으로 고스란히 밝혀요. 그나저나 이 그림책은 어떻게 한국에 흘러들었을까요. 주한미군 도서관이었을까요, 외국인학교 도서관이었을까요. 미국 어느 도서관에서 ‘한국에 온 미국사람’이 보도록 보낸 책은 마르고 닳도록 읽히다가 서울 노고산동에 있는 헌책집으로 들어왔고, 제 손을 탔으며, 이제 우리 집 아이들이 마음껏 누리는 새책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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