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목요일에 있을 독서 모임을 위해 오랜만에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소설을 읽었다. 독서 모임 선정도서는 파묵의 아홉 번째 장편 소설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건 파묵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민음사)이다. 엉뚱한 선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파묵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의 첫 번째 작품부터 봐야 한다. 파묵 본인이 자신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오르한 파묵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민음사, 2012)

* [읽을 예정인 책]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 2017)

 

 

 

파묵은 1979년에 발표한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문학상에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터키 문단에 데뷔했다. 내년은 파묵이 터키 문단에 등단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게 된 그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 파묵이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발표했을 당시 터키 문단은 농촌 문제를 다룬 소설을 선호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의 공간적 배경은 농촌이 아니라 터키의 대도시 이스탄불(Istanbul)이었고, 작가의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일종의 ‘교양소설(Bildungsroman)이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문학상을 받은 지 3년이나 지나서야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파묵은 이스탄불에서 펼쳐지는 동 · 서양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들을 써왔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세계화라는 서양 중심의 거대한 흐름과, 그 속에서 점점 주변부화해 가는 터키의 사회적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파묵은 첫 소설에서 시간적 배경을 아주 넓게 설정하는 대범한 시도를 하는데, 오스만 제국이 점점 몰락해가는 시기인 1905년부터 시작해서 터키 공화국으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1930년대를 거쳐, 고속 성장기에 접어든 1970년대 터키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묵은 3대째 이어지는 제브데트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과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얽힌 격동기 터키 사회의 모순과 갈등까지 고스란히 그려낸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한 가족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터키의 굴곡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 또는 ‘역사소설’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19세기 유럽의 교양 소설 형식의 틀로 쓰였기 때문에 ‘교양소설’로도 볼 수 있다.

 

 

 

 

 

 

 

 

 

 

 

 

 

 

 

 

 

 

 

 

 

 

 

 

 

 

 

 

 

 

 

 

 

 

* [아직 안 읽은 책]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민음사, 1999)

* [아직 안 읽은 책] 헤르만 헤세 《데미안》(민음사, 2000)

* [아직 안 읽은 책] 토마스 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민음사, 2001)

 

 

 

 

교양소설은 한 인간의 전인적인 ‘교양’이 어떻게 완성돼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교양’이란 소설 속 주인공이 스스로 자아 정체성을 발견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시작된 교양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도 불린다. 괴테(Goethe)《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토마스 만(Thomas Mann)《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데미안》등은 독일의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교양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분명히 인식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도전적으로 대응하는 젊은이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 교양소설의 주인공들은 격변하는 현실 간의 대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 · 외적 갈등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묵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썼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부에 제브데트의 둘째 아들 레피크와 그의 친구인 외메르무히틴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생활환경, 직업, 사회적 지위는 달라도 모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내면적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다. 레피크는 자신만의 뚜렷한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무히틴은 시인이지만 제대로 된 시집 한 권조차 펴내지 못한다. 불투명한 앞날과,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 경제적 궁핍함 등에 둘러싸여 발버둥치면서 생활한다. 파묵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서구화와 경제 성장에 가려진 터키 청년들의 고뇌를 생생히 재현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을유문화사, 2010)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열린책들, 2009)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민음사, 1999)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읽어 보면, 파묵이 유럽 교양소설을 오마주(hommage)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부와 명예를 원하는 외메르를 발자크(Balzac)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라스티냐크와 닮았다고 언급하는 대사가 있다. 《고리오 영감》은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가 파리에 살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점에서 교양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아직 《내 마음의 낯섦》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보여준 파묵 문학 세계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이스탄불 중산층 가족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면, 《내 마음의 낯섦》은 이스탄불 하층민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하나로 이어진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1900년대, 1930년대, 1970년대 이야기고, 《내 마음의 낯섦》은 1960년대에서 2012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두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터키 근현대사를 관통해 살아간다. 그리고 첫 소설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내 마음의 낯섦》에서도 ‘전통-전근대-동양’과 ‘현대-근대-서양’의 사회적 · 문화적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Trivia

 

 이 작품이 구체적 사실로 구성된 역사소설적인 면이 다분히 있지만 이에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점에 대해, 파묵은 “역사는 순수하고 순결한 상상력을 부여해 준다.” 라고 밝히면서 이후의 작품에서도(예를 들면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등) 실제 역자와 허구를 버무리는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권에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543쪽에 ‘실제 역자와 허구를 버무리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역사’의 오자인 듯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11-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올만한데 안타깝네요...

cyrus 2018-11-22 17:00   좋아요 1 | URL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없다는 게 아쉽죠. 그런 작가가 되려면 ‘한국적인 색채가 있으면서도 서양적인 색채도 띄고 있는 문학 작품’을 써야 할 것입니다(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도 직접 읽어보면 서양문학 작품을 읽는 느낌이 나는 작품인 거죠.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가 쓴 대표작들은 터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서양문학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입니다. 아마도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터키 출신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8-11-22 17:06   좋아요 0 | URL
그렇게도 볼수있겠군요 사이러스님 글을 읽으면서 터키출신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왜 우리나라 출신작가는 못 받았을까 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더랬어요! ...역쉬 Sㅣ루스 박사님이십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정보를 제공한다면, 알라딘에서 사이러스 님 월급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boooo 2018-11-21 17:19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ㅎㅎ

카스피 2018-11-22 11:0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공감합니다2 ^^

cyrus 2018-11-22 17:11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ㅎㅎㅎㅎ 요즘 알라딘/북플에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분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
 

 

 

러시아 문학은 약 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논하면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제목으로 잔잔한 어조로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푸시킨은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과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로 맥을 이어가면서 그 황금기를 구가한다. 특히 이 시기의 러시아 문학은 사회 현실을 농도 짙게 반영하는 사실주의 문학으로서 세계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이정식 《시베리아 문학기행》 (서울문화사, 2017)

* 김진영 《시베리아의 향수 : 근대 한국과 러시아 문학, 1896-1946》 (이숲, 2017)

* 이광수 《유정》 (애플북스, 2014)

 

 

 

민중성이 짙고, 사상성이 강했던 러시아 문학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민중과 지식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조선 지식인들이 바라본 러시아는 근대화될 조선의 미래가 그려진 ‘유토피아’였다. 생경한 서양문화를 접한 조선 지식인들은 러시아를 ‘제1세계’로 받아들였다. 특히 조선 지식인들은 시베리아를 방랑과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조선인의 러시아행은 피식민지인의 위치로서 겪는 좌절감을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으로 바꾸려는 식민지 조선 탈출의 여정이었다.

 

춘원 이광수는 1914년 6개월 동안 바이칼 호수 근처에 생활한 적이 있으며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유정》을 썼다. 소설은 양부, 양녀 관계로 살아온 최석과 남정임,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최석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의 친딸 남정임을 맡아 기르는 교사이다. 그러나 정임은 석을 좋아하게 되고, 석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임과의 애정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조선을 떠나 시베리아로 향한다. 석이 홀로 향하는 시베리아는 세속의 혼잡한 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안전지대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방대하면서도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에 가려진 작가를 꼽자면, 프세볼로트 미하일로비치 가르신(Vsevolod Mikhailovich Garshin)이다. 가르신은 1880년대 중후반에 활동했던 작가였고, 생전에 20여 편의 소설을 썼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 [e-Book] 가르신 《나흘 동안》 (이북코리아, 2013)

* [e-Book] 가르신 《시그널》 (이북코리아, 2017)

* [e-Book] 가르신 《붉은 꽃》 (위즈덤커넥트, 2018)

 

 

 

1877년에 러시아와 터키 간의 전쟁이 일어나자 가르신은 의용군으로 입대한다. 그러나 그는 전장에서 다리에 상처를 입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첫 작품이 바로 단편소설 《나흘 동안》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전쟁 중에 크게 다쳐 대열에서 이탈한 병사가 나흘 동안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사는 나흘 동안 전사한 터키 병사의 시체 옆에서 지내게 된다. 병사는 시체가 썩어가는 장면을 눈앞에 보면서 전쟁의 참상을 깨닫는다.

 

 

 사내에게는 이미 얼굴이 없었다. 뼈에서 밀려 내린 것이다. 나도 몇 번이나 두개골을 손에 잡아본 일이 있고, 머리의 표본을 여러 개 만든 일이 있지만, 이 무서운 해골의 웃음은, 영원한 웃음은, 여태까지 느끼지 못한, 기분이 나쁘고 추악한 것으로 느껴졌다. 반짝이는 단추가 달린 군복 차림의 이 해골은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전쟁의 모습이다.’

  나는 생각했다.

 

(가르신, 《나흘 동안》 24쪽)

 

 

소설은 전사자의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민중이 희생당하는 전쟁의 참상을 극대화한다. 가르신은 이 데뷔작 한 편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는 정신 발작에 시달렸고,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붉은 꽃》은 작가의 정신병원 입원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내부의 음울한 풍경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군인인데, 그는 자신을 병원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차르(Tsar, 러시아 황제)의 감독관이라고 주장한다. 병원 관계자는 이 군인을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그를 독방과 비슷한 병실에 강제로 보낸다. 군인은 의사와 면담하면서 자신과 같이 불행한 사람을 고문하고, 가둬 두기만 하는 감시 보호 체제의 기능에 의문을 드러낸다. 그러나 의사는 그의 말을 ‘정선이 불안정한 환자’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대충 흘려 넘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인은 범상치 않은 언행을 한다.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공’의 형태 속에 있고, 자신이 그 공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공이 부여하는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군인은 정신병원 내부 안에 있는 정원에 핀 ‘붉은 꽃’에 집착한다. 그는 이 붉은 꽃에서 ‘신비하고 강한 힘의 흐름’을 느꼈다면서, 언젠가는 꽃이 세상을 파괴할 것으로 생각한다. 군인이 보기에 붉은 꽃에는 신에게 대항하는 사악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은 붉은 꽃에 사로잡혀 망상과 환상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꽃을 제 손으로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군인은 기어이 꽃을 꺾는 데 성공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숨을 거둔다. 그토록 파괴하고 싶었던 꽃을 손에 꼭 쥔 채. 그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군인에게는 꽃을 파괴하는 일이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찾기 위한 ‘의무’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상’의 위치에 있는 의사들, 그리고 작품 밖에 있는 독자의 시선에는 그의 행동은 ‘비정상’으로만 보일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판단은 개인이 자유와 해방을 찾는 방식을 일차원적으로 보게 만든다. 소설은 인간의 사소한 행위마저 일차원적으로 보는 ‘정상-비정상’으로 선을 그은 경계를 허물고 비웃는다. 이러한 도발적 글쓰기는 주류의 경계에 벗어난 ‘광인’이라면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가르신도 《유정》의 최석, 그리고 《붉은 꽃》의 병사처럼 죽음을 숨 막히는 세상에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탈출구로 여겼던 것일까. 가르신은 계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심현정, 이은희 옮김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37》 (혜문서관, 2012)

 

 

 

《시그널》은 가르신 사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나흘 동안》 《붉은 꽃》과는 다르게 감동적인 여운이 있다.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37》에 ‘신호’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10-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르신이 종이책으로 나온 건 없나보구나.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한 번 읽어봐야겠네.
우리 땐 저런 책이 없었는데.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삼중당이 고작일까?
그나마 난 그걸 보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단편들이 많이 있네.^^

cyrus 2018-10-02 17:50   좋아요 0 | URL
우리 집에 ‘세로쓰기’로 된 세계 단편소설 전집이 있어요. 그 책에는 요즘 잘 번역되지 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 중 한 편이 가르신의 소설이었어요. 전집이 창고에 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책에 <붉은 꽃>이 수록되어 있었어요. ^^
 
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끔찍한 사건이 삶을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몸도 마음도, 심지어 사랑까지도. 이별과 죽음은 예상했던 것일지라도 언제나 기습처럼 심장을 찌른다.

 

사야카는 사물에 말 거는 신기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왼손 엄지손가락은 펴지지 않는다. 그녀에게 어린 딸 미치루는 사별한 전 남편 사토루의 빈자리를 덮어주고 위안을 주는 존재이다. 어느 날, 사야카에게 옛 연인 이치로의 편지가 찾아온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서커스 나이트는 의문의 편지와 함께 시작된다. 이치로는 왜 사야카의 집 마당에 자라는 히비스커스 나무가 있는 곳을 파려고 하는 걸까? 이 나무는 뜨겁게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이치로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토루라는 이중의 상실에 처한 사야카가 풀어내야만 하는 수수께끼이다.

 

외로움, 정신적 상처,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했던 요시모토 바나나. 이번 신작 서커스 나이트에서 그녀는 기억을 매개로 사람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도 바나나는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지만 무게 중심은 상처보다는 치유 쪽에 가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서로의 관계와 인연 속에서 잊힌 추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등단 때부터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바나나는 상실의 상처, 그 슬픔을 이겨나가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왔다. 사야카는 사토루가 심은 히비스커스 나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포용하면서 죽음을 긍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얻는다. 히비스커스 나무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삶의 일부분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삶의 거친 물살 속에 휩쓸려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이 새겨진 조각이다. 사야카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히비스커스 나무를 통해 과거와 현재, 자신과 세계를 포용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와 힘을 얻는다. 바나나는 치유의 힘을 지닌 자연에 향한 경외감을 사뭇 진지하게 표현한다.

 

사야카에게 기억이란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함께 성장하면서 고통을 안겨주며 때로는 위로하고 행복을 선사하는 절친한 친구 같은 것이다. 작가는 그녀의 입을 빌려 슬프지만 즐거운 추억[]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통과 행복의 순간이 뒤죽박죽 엉켜있는 추억은 마음의 상처를 헤집어 쑤시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이 된다.

 

서커스 나이트가 주는 느낌은 이러하다. 무언가 부족한 듯하면서도 무언가 꽉 찬 느낌. 바나나는 독자들이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썼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독자들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으며 서정적이지만 신파는 아니다. 그녀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소설은 삶에 대한 진지한 교훈을 전달하기보다는 인물들이 과거의 아픔을 회복하는 과정을 사분사분하게 보여준다. 독자들이 서커스 나이트를 읽으면서 평소 잊고 있었던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다시 느꼈으면 좋겠다. 한 번쯤 인생의 짐이 무거워 질 때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왠지 모를 공감과 함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

 

 

 

[주] 《서커스 나이트》 45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7-2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한권 읽은것같아요 사이러스님 역쉬 글이~

cyrus 2018-07-21 13:10   좋아요 0 | URL
줄거리를 너무 많이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책의 가장 중요한 장면만 골라 언급했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8-07-21 13:30   좋아요 0 | URL
전 요즘 스포노출에 대해 신경을 끄고 글을 적는데...이랬다 저랬다 하네요!
 

 

 

현재 시중에 나온 톨스토이(Tolstoy)《전쟁과 평화》 번역본은 1869년에 완성한 최종 판본을 원본으로 출간된 것이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톨스토이는 1860년부터 《전쟁과 평화》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처음부터 생각한 《전쟁과 평화》는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데카브리스트(Dekabrist: 1825년에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들을 가리키는 명칭)가 등장하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잠시 집필을 중단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아이들에게 1812년 나폴레옹(Napoléon)의 러시아 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이유로 톨스토이는 이야기가 1805년부터 시작되는 《전쟁과 평화》를 쓰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에 구상했던 주인공들에 대한 묘사가 달라진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문학동네, 2016~2017)

* [절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이룸, 2001)

 

 

 

 

 

 

 

 

 

 

 

 

 

 

 

 

 

 

 

 

 

 

 

 

 

 

 

* 미셸 오쿠튀리에 《톨스토이 : 러시아의 위대한 영혼》 (시공사, 2014)

* 빅토르 쉬클롭스키 《톨스토이》 (나남출판, 2009)

* [절판] 얀코 라브린 《톨스토이》 (한길사, 1997)

 

 

 

 

1865년부터 1866년까지 <러시아 통보>라는 잡지에 《전쟁과 평화》 제1권에 해당하는 《1805년 : L. N. 톨스토이 백작의 장편소설》이 연재된다. 이때 톨스토이는 거의 완성된 《전쟁과 평화》 원고를 교정하고 있었다. 1866년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제목이 붙여진 초고본이 완성된다. 이 초고본과 현재 알려진 최종 판본 사이에 차이가 있다. 초고본에서 안드레이 공작페탸 로스토프(로스토프 백작의 차남)는 살아 남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전쟁과 평화》 초고본은 출판사 사정으로 출간되지 못한다. 1868~1869년에 톨스토이는 다시 소설을 수정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전쟁과 평화》는 오랜 증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최종 판본이다.

 

 

 

 

 

 

톨스토이 전기 작가인 빅토르 쉬클롭스키(Victor Shklovsky)는 톨스토이가 ‘잘못 치료된 팔을 다시 고치듯이 낡은 소설을 부수고 이런 저런 안으로 바꾸어 가며 새롭게 집필’[1]했다고 썼다. 쉬클롭스키는 최종 판본이 ‘결정적 텍스트’라고 판단한 편집자들의 결정을 비판한다. 쉬클롭스키의 지적에 따르면 편집자들은 《전쟁과 평화》 원고를 완벽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수정 작업을 하면서 따로 떼어낸 원고를 복원해야 전체적으로 완벽한 《전쟁과 평화》를 만날 수 있다. 쉬클롭스키의 톨스토이 전기가 나온 연도는 1963년이다. 이때 당시만 해도 톨스토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전쟁과 평화》 초고본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톨스토이는 초고본 원고를 ‘잘못 치료된 팔을 다시 고치듯이’ 개작했는데, 이미 썼던 글을 지우거나 새로운 문장을 추가해 덧붙여 썼다. 하지만 톨스토이 연구가 에벨리나 자이덴슈르는 50년에 걸쳐 5000장에 달하는 최종 필사본을 검토하여 초고본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1983년에 유실된 내용을 복원한 초고본이 공개되었고, 2000년에 독자들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만들어져 출간되었다. 이듬해 우리나라에 초고본을 완역한 《전쟁과 평화》 번역본이 세 권짜리로 나왔으나 절판되었다[2]. 초고본과 최종 판본을 놓고 어느 것이 진짜 완전한 《전쟁과 평화》 텍스트인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러시아 학계 일각에서는 초고본 복원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실수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초고본의 존재를 부정한다.

 

 

 

 

 

[1] 빅토르 쉬클롭스키, 《톨스토이 2》(나남출판, 2009), 41쪽.

[2] 류필하 옮김, 《전쟁과 평화》(이룸, 2001), 이룸출판사는 ‘자음과모음’ 출판사 계열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7-1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가슴에 불을 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활활 탈 지는 모르겠네요 ㅋ전쟁과 평화...아

cyrus 2018-07-13 14:45   좋아요 0 | URL
<전쟁과 평화> 작품 배경, 등장인물 정보를 먼저 알고 난 뒤에 소설을 읽으면 완독할 수 있어요. 사실 소설에 불필요한 인물 대화나 장면이 많아요. 저는 이 부분은 속독했어요.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톨스토이의 논문은 반드시 정독해야 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07-13 15:20   좋아요 0 | URL
소설읽기전에 먼저 사전예비지식을 갖고 들어가야한다는 말씀! 오케이!

수이 2018-07-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 전쟁 평화 읽기 시작했는데~~

cyrus 2018-07-14 07:10   좋아요 0 | URL
문동꺼 다 읽어가고 있을 때 민음사꺼 나왔더라고요. 민음사꺼는 내년에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oren 2018-08-13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년에 걸쳐 5000장에 달하는 최종 필사본을 검토하여 초고본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었군요. 더군다나 그 초고본을 우리말로 완역해 놓은 절판본도 있다니, 정말 깜놀입니다.^^

cyrus 2018-08-14 10:34   좋아요 0 | URL
초판본을 번역한 책과 최종 판본을 번역한 책(문학동네 판)을 비교해서 읽어보니 내용이나 인물 묘사에 차이가 있었어요. ^^

막시무스 2020-12-2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를 읽어내기 위해 선행학습 차원에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 주실수 있을까요?

cyrus 2020-12-20 23:51   좋아요 0 | URL
로쟈 님이라면 막시무스의 질문에 답변을 잘 해드릴 것 같은데요.. ㅎㅎㅎ
이때 당시 제가 <전쟁과 평화>를 읽기 전에 선행 독서를 한 책은 빅토르 쉬클롭스키의 <톨스토이> 뿐이었어요. 2권에 <전쟁과 평화> 집필 배경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저는 읽은 책만 언급하는 성격이라 한 번도 안 읽은 책에 대해서 얘기해줄 수 없어요. 죄송해요. ^^;;
 
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라.

그러면 그가 펼치게 되는 미학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올더스 헉슬리, 《연애대위법》, 동서문화사, 606쪽)

 

 

 

톨스토이(Tolstoy)《전쟁과 평화》는 한마디로 웅장하다. 이야기가 묵직한 데다 분량도 방대해 완독이 쉽지 않다. 《전쟁과 평화》는 귀족 사회의 허례허식, 남녀 간 사랑, 군인들의 애국심, 러시아 민중의 낙천성 등 인간의 다양한 정서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다채로운 삶의 유형을 그린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 이야기 속에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있다. 아무도 톨스토이만큼 작중 인물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표현력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는 1805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부터 데카브리스트(Decabrist, 십이월당원) 반란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 동안 격동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쓰였다. 이 소설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한두 명으로 특정할 수 없다. 《전쟁과 평화》의 기본 줄거리는 네 가문의 흥망성쇠다. 볼콘스키 가문, 베주호프 가문, 로스토프 가문, 쿠라긴 가문의 일원들이 등장한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냉철한 두뇌를 가진 인물이다. 그의 친구 피예르 베주호프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이상주의자이다. 피예르는 표도르 돌로호프와 바람난 아내 옐렌과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프리메이슨에 가입한다. 프리메이슨 가입 이후로 그는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기분을 느낀다. 피예르는 신(神),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 고민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기병 장교로 복무한 후 퇴역하여 영지를 경영한다. 옐렌의 오빠 아나톨 쿠라긴은 니콜라이의 여동생 나타샤를 유혹하는 바람둥이로 그녀와 약혼했던 안드레이 공작과 대립한다. 나타샤는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이다. 소설 초반부에 아름답고 기품 있는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로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성격의 변화가 나타난다. 나타샤와 쿠라긴의 염문이 알려지면서 안드레이 공작과의 약혼은 깨지게 되고, 한동안 나타샤는 실의에 빠진다. 그 후 종교에 귀의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다. 전투 중에 크게 다친 안드레이 공작을 만난 나타샤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간호한다. 그녀는 피예르와 결혼하여 남편과 자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아내로 살아간다.

 

《전쟁과 평화》는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쉽게 읽힐 책도 아니다. 사상 최대의 인물들이 나오는 만큼 서사 구조가 산만하다. 소설에 5백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고 얽히기도 한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기 힘든 작품에 열광하는 걸까. 답은 책장을 넘기면서 경험하는 일반 소설과 다른 독특한 구성 방식에 있다.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의 소설 《트리스트럼 샌디》만큼은 아니지만, 《전쟁과 평화》는 독특한 서사 구조로 되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 또는 특정 사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두고, 작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작가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러나 《트리스트럼 샌디》는 작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이야기가 샛길로 빠져서 두서없이 전개된다. 《전쟁과 평화》도 ‘기승전결’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탈피해 독자가 기대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거부한다. 톨스토이는 이야기 중간마다 전쟁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

 

《전쟁과 평화》 3권 2부 19장은 보로디노(Borodino) 전투의 과정을 분석한 톨스토이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낸 글이다[1]. 18장과 20장은 피예르와 그 주변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다. 보로디노 전투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시간적 배경이지만, 전쟁사에 관심 없는 독자라면 역사적 전투에 대한 작가의 분석을 건너뛸 수 있다. 《전쟁과 평화》는 총 2부로 구성된 ‘에필로그’로 끝맺는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역사관을 주장하기 위해 에필로그를 썼다. 이처럼 소설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내는 작가의 개입이 《전쟁과 평화》의 독특한 매력이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등장과 러시아의 승리 원인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하는 역사적 관점을 비판한다. 그에게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사람의 힘이 합쳐져서 생긴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무슨 이런 장르가 불분명한 소설이 있을까. 사실 에필로그(정확히 말하면 ‘논문’)를 읽지 않아도 소설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작가의 개입은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만 다른 러시아 근대소설에서 볼 수 없는 《전쟁과 평화》만의 문학적 가치는 훌륭하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야기 군데군데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다.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의 중심인물이 되어 활동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환락과 방탕 속에서 헛되이 낭비된다. 1847년 톨스토이는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에 돌아와 농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이상적인 경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상류사회에서 방탕과 나태한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욕망, 죄의식에 관대하지 않았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결점과 자기비판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피예르처럼 지치지 않고 자신의 결점을 되돌아보면서 반성과 성찰을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톨스토이는 청년 시절부터 뼈아프게 고민했다. 《전쟁과 평화》 속에는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찾은 몇 개의 해답이 들어 있다.

 

 ‘삶은 모든 것이다. 삶은 신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이며, 이 움직임은 신이다. 삶이 있는 한, 신을 자각하는 기쁨이 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의 고통 속에서, 죄 없이 받는 고통 속에서 이 삶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가장 커다란 기쁨이다.[2]

 

 우리는 익숙한 생활의 궤도에서 내던져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버리지만, 사실은 거기서부터 새롭고 좋은 것이 시작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행복이 있습니다. 앞길에는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있습니다[3].

 

 

피예르의 말은 톨스토이의 목소리다. 그 말 속에는 주어진 삶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는 의지력이 있다. 톨스토이의 인생관은 인생의 목표를 ‘현재’에 두고 있다. ‘현재’는 ‘살아야 할 이유’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는 삶의 의미였다. 톨스토이가 생각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선(善)이다. 그는 인간이라면 모두 이 선을 향해서 정진해야 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은 ‘사랑’이라고 했다. 각자가 자기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 즉 신과 삶을 사랑하는 선이 인생을 잘 살기 위한 힘이다. 이것이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발견한 ‘인생의 의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네 권짜리 두꺼운 소설을 볼 필요가 있나요?” 만약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한 번은 아닌 두세 번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톨스토이는 역사와 현실 속 자잘한 삶의 체험을 세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썼다. 무수히 얽힌 인간 관계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뛰어난 묘사력 덕분에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역사의 큰 물결 속에 흔들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던 청년 톨스토이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는 소설이 아니라 '톨스토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펼친 인생론은 적어도 이 책을 참고 끝까지 읽은 독자에게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1] 《전쟁과 평화 3》 284~291쪽

[2] 《전쟁과 평화 4》 249~250쪽

[3] 《전쟁과 평화 4》 346쪽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7-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는 오래전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번역자가 달라지만, 같은 책도 조금은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cyrus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7-08 20:00   좋아요 1 | URL
《전쟁과 평화》는 완역본으로 읽어야 이 소설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7-0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아요! 늘 미루던 이 고전을 언제쯤 읽을까 ㅎ

cyrus 2018-07-08 20:02   좋아요 0 | URL
진짜 큰 맘 먹고 시도해보세요. 정말 재미없으면 읽다가 덮으면 되니까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7-08 20:28   좋아요 0 | URL
러시아 소설은 왜 이리 손이 안 갈까요? 도스토예프스키도 사 놓고 먼지만 쌓이고 ㅜㅜ

cyrus 2018-07-08 20:32   좋아요 1 | URL
저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안 읽어봤어요. 늙어서 시력이 떨어지기 전까지 꼭 읽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8-07-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디북에서 박형규 교수님 버전으로
읽어 보겠다고 하나씩 사기 시작했는데, 그만
절판되어 버리는 바람에 마저 사지 못해서
읽지 못했다는 변명을... ㅋㅋㅋ

cyrus 2018-07-08 20:21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이 언급한 책이 다섯권으로 된 그 책인거죠? ㅎㅎㅎ 저는 이룸출판사에서 나온 《전쟁과 평화》 원본을 번역한 세 권짜리 책을 가지고 있어요. 문학동네 번역본은 톨스토이가 여러 번 고친 텍스트예요. ^^

2018-07-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8 20:31   좋아요 0 | URL
저는 블로그, SNS 둘 중 하나만 등록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SNS에 리뷰를 등록하지 않은 응모자를 심사에 배제한 건 아니라고 봐요. 공지에 보면 출판사가 ‘블로그 및 SNS 주소 동시 등록, 하나라도 등록 안하면 심사 불이익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말이 없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네이버 블로그에도 리뷰 등록할께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stella.K 2018-07-0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작년인가, 재작년에 이걸 영화로 봤지.
BBC에서 6부작인가로 만들었는데 나름 꽤 잘 만들었어.
근데 솔직히 톨 할배도 그렇고, 도 선생도 그렇고
둘 다 산맥 같은 존재라 넘기가 어려워.
그런 걸 넌 읽고 이렇게 리뷰까지 썼구나.
잘 썼다. 아무래도 다음 달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농후해 보인다.ㅋㅋ

cyrus 2018-07-09 18:13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셨으면 원작 소설 읽기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ㅎㅎㅎ

리뷰 대회 응모글이에요. 잘 쓴 분들이 많아서 3등에 입선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 ㅠ

stella.K 2018-07-09 19:3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
그렇다면 리뷰 대회는 정말 모르겠다.
그 보단 심사위원이 다르잖아.ㅋㅋ
그게 아니어도 넌 매달 4만원의 도서구입비가
생기는대도 양이 차질 않냐? 욕심은...
난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알았는데 까먹고 있었나?
아무튼 핑계낌에 잘 읽었네.
혹시 1등하면 한턱 쏴!ㅋㅋㅋ

2018-07-09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9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