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번과 마녀》때도 그랬는데 이 책 《혁명의 영점》에도 '서문'이 있는데 '들어가며'도 있다. 아아, 실비아 페데리치는 왜 본문에 들어가기까지가 이다지도 힘든가. 게다가 서문이며 들어가며 읽는 글이며 쉽지도 않아. 아아, 도대체 본문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긴장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본문에 똭- 들어갔는데, 와-


신이시여.


정말이지, 인정사정없이 도끼를 가지고 휘두르는 느낌이다. 기다랗고 날카로운 무기로 거침없이 쑤셔버리는 느낌이야. 몇 장 읽지 않은 본문에서, 와- 잔인한 말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사노동은 다른 직업들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조작행위이자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분파들을 상대로 이제까지 자행했던 폭력 중에서 가장 미세한 폭력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p.38)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계약의 일부가 됨을 의미하고, 그 의미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도, 그 일이 자연스럽게 그 노동자에게 찾아왔기 때문도 아니다. 그 일이 삶을 허락받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p.38)



가사노동의 차이는 여성에게 강요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내면 깊이 자리한 여성 특유의 기질에서 비롯된 자연적 속성, 내적 욕규, 열망[에서 기인한 행위]로 변신했다는 점에 있다. 즉, 가사노동은 부불노동이라는 운명 때문에 노동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타고난 자질에서 비롯된 행위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자본은 우리에게 가사노동이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이라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우리가 무임금노동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결국 부불 가사노동이라는 조건은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니라는 보편적인 가정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덕분에 전 사회가 비웃어마지 않는 사유화된 부엌-침실에서의 말싸움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거부하는 투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투쟁의 참가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투쟁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바가지를 긁는 년들이라고 생각한다.(p.38-39)




사랑 때문에 결혼한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여성들이 많고, 돈과 안전 때문에 결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사랑이나 돈은 결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때가 이제는 되었다. (p.39)



자본은 여성을 희생하여 진정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거부하고 가사노동을 사랑의 행위로 바꿔 놓음으로써 일거다득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먼저 터무니없이 많은 양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획득했고, 여성들이 이에 거부하는 투쟁을 일으키기는커녕 인생 최고의 일로 가사노동을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p.40)



자본은 여성이 남성노동자의 노동과 임금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남성노동자 역시 통제했다. 그리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뒤 집에 가면 부릴 수 있는 하녀를 붙여줌으로써 이 통제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여성의 역할은 임금을 받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노동계급"의 하녀가 되는 것이다. (p.40)




하느님이 아담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브를 창조하신 것과 똑같이 자본은 남성노동자를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충족시키고, 그의 아이들을 키우며 그의 양말을 기우고 자본이 그를 위해 마련한 사회적 관계(고독의 관계)와 노동 때문에 그의 자아가 산산조각 났을 때 이를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도록 주부를 창조해냈다. 바로 여성이 자본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역할과 관련된 바로 이 같은 육체적, 정신적, 성적 서비스의 독특한 결합 때문에 주부라는 이름의 하녀라는 독특한 집단이 만들어지고 주부의 노동이 힘겨우면서도 동시에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다. (p.40-41)




대부분의 남성들이 첫 직장을 잡자마자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장이 생기면 결혼비용이 생기기 때문도 있지만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누군가 집에 없을 경우 조립라인이나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미치지 안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p.41)




와... 실비아 페데리치는 뭐, 생각하는 걸 그대로 그냥 쏟아내버렸다. 위에 인용한 부분들이 36-41 페이지의 부분들인데, 사실 그냥 본문을 다 옮겼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무지개 색연필 들고 책 읽다가 너무 줄을 그어대서, 아아, 얼마전에 열자루 사놓길 잘했다고, 내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담쓰담. 보면, 참.. 애가 현명해. 앞을 내다볼 줄 알아..



아아, 여러분 혁명의 영점을 시작합시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겁나 흥분되고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아아아아. 미치겠다 진짜.

책날개 보면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 두 권이 '근간' 이라고 되어있던데, 네, 제가 다 읽겠습니다!



이 책 다 읽기 전에 무지개색연필은 준비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스티키 북마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스티키 북마크 주문하기 위해 책을 좀 주문해야겠네. (응?)


아아, 여러분, 혁명의 영점 읽읍시다. 와- 세 장 읽었는데 장난 아니네요. 피가 끓어올라요.



부글부글 부글부글..


이 책 필사해볼까? 라고 생각하다가 아아, 귀찮다, 그러지는 말자, 하고 금세 포기했다. 킁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2-21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2-21 14:24   좋아요 0 | URL
ㅎㅎ 수정했어요. 감사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3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 갈무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6세기에는 "인클로저"가 전문용어였다. 인클로저는 잉글랜드에서 지주와 부농이 공동체적 토지소유를 제거하고 자신들의 토지보유를 확대하기 위해 이용한 일련의 전략을 가리켰다. 그것은 주로 공동 경작제open-field system를 폐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공동 경작제란 주민들이 경계 없는 밭에서 서로 인접하지 않고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토지를 갖는 체제다. 또 인클로저는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는 것과, 토지가 없지만 관습권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던 가난한 농민들의 판잣집을 철거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을 전체가 절망에 빠지는 동안, 사슴 사냥터와 방목지를 만들기 위해 넓은 땅에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인클로저는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Neeson 1993). 그러나 종교개혁 이전에도 이미 2천 개가 넘는 촌락공동체가 이런 방식으로 파괴되었다(Fryde 1996:185). 농촌 마을의 몰락이 어찌나 가혹했던지 1518년에, 그리고 1548년에 조사를 명령했다. 왕립 위원회가 여럿 만들어졌지만, 대세를 멈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대신 격렬한 투쟁이 시작되어 무수한 봉기로 이어졌고, 토지사유화의 장단점에 대한 긴 논쟁이 뒤따랐다. (p.111-112)





자본주의 시초부터 전쟁과 토지사유화를 통해 노동계급의 궁핍화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국제적 현상이었다. (p.109)



유럽에서 토지사유화는 15세기 후반에 식민지 팽창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거주자 추방, 지대 인상, 빚을 지게 하여 토지를 팔게 하는 국세 인상 등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이것들을 모두 토지 수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경우에도 토지 상실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의지에 역행해서 이루어졌고 이것은 생존기반의 파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p.109)




토지 사유화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땅을 갖지 못한 농민들은 더 가난해졌고 식량 부족에 시달려야했다. 더 나은 제도라고 설득하던 사람들이 진행한 토지사유화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었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부자들의 창고에는 곡식이 쌓여가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몇 끼를 연달아 굶는 일이 허다했다. 당연히 사람들(대체적으로 여자들)은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제도가 바뀌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입에 밥을 넣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고, 그렇게 자본주의안에서 노동자의 육체노동은 제1생산수단이 된다. 가난한 자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따라 국가에서는 그들을 더 압박하고 규제를 가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사회무질서를 막기 위한 혹은 엄격한 도덕 개혁 이었다.

인구는 감소하고 경제적으로는 위기였던 이 때 여성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기가 찾아온다. 모두 하나되어 여성혐오를 하기 시작했으며, 여성을 더 코너로 몰았다. 여기 있으면 안돼 저기로 가, 거기도 안돼 저 쪽으로 가, 그렇게 자꾸만 코너로 몰리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방법을 기어코 찾아내려 했으나, 그건 또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처형되어야 했다. 읽다말고 나는 책장 한구석에 '어쩌라고' 라는 낙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대대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다. (p.145)



두 세기 동안 지속된(18세기 말에도 여전히 유럽에서 여성은 영아 살해로 사형당했다) 이 정책들의 결과 여성들은 출산노예로 전락했다. 중세에는 여성이 다양한 형태의 피임법을 쓸 수 있었고 분만과정에서 확고한 통제를 행사했지만, 이제 그들의 자궁은 남성과 국가가 지배하는 공공영역이 되어 버렸고, 출산은 자본주의 축적이라는 목적에 직접적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p.14)



여성은 원래 그들만의 직업으로 여겨지던 맥주양조나 산파 일에서 밀려나고 있었고, 여성고용에 대한 새로운 제한들에 묶이게 되었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최하층의 직업 말고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여성 노동인구 3분의 1은 하녀였고, 나머지는 농장 일 · 방적 ·뜨개질 ·자수 ·보따리장사 ·유모와 같은 일에 종사했다. 비스너Merry Wiesner가 말하듯이, 법률 ·징세기록 ·동업조합법령에서 여성은 집 바깥에서 일하지 말아야 하며 남편을 돕는 방식으로만 "생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제가 힘을 얻고 있었다. 심지어 여성이 집에서 한 일은 그것이 내다 팔기 위한 노동일지라도 비노동non-work 이라는 주장도 나타났다(Wiesner 1993:83ff). 따라서 여성이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입을 옷을 만드는 경우 이는 "집안일"로 간주되었지만, 남성이 옷을 만들면 "생산적" 노동으로 간주되었다. 여성노동이 이처럼 평가절하 되다보니 시정부는 동업조합들에게 여성의(특히 과부의) 생산물은 무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진정한 노동이 아닌데다가 공공부조 예산을 절감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비스너에 따르면 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던 여성들은 이 허구를 받아들였고, 심지어 마뜩치 않아 하면서도 일자리를 구하려 다녔다(같은 책: 84-85). 곧 가내여성은 모두 "집안일"로 분류되었고, 가외여성노동에 대한 보수도 남성노동의 보수에 비해 적었으며 생계유지에도 불충분했다. 결혼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은 당연히 생활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돼서, 독신여성은 설사 임금을 받고 있는 경우라 해도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토지를 상실한 여성들이 임노동에 고용될 힘까지 잃어버리자 결국 매춘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라뒤리Le Roy Sadurie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 어디에서나 창녀의 수가 늘어났음이 명백했다. (p.152)




어떤 일도 여성이 해서는 안되고, 설사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노동은 아니야, 라고 정한 세상에서, 그래놓고는 여자들은 생활능력이 없어..라고 말하는 부분은 대체 어느 똥머리에서 나온걸까? 다 못하게 해놓고서는 '역시 쟤네는 안돼, 능력이 부족해' 해버리면, 뭐 대체 어쩌라는건지? 그건 여자라서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누구를 갖다 놨어도 마찬가지가 되는 게 아닌가. 그러니 여자가 먹고 살아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 코너에 몰려서 찾아한 게 매춘.

하아- 그런데 이놈의 세상은 여성에게 매춘은 안된다고 한다.




많은 여성인구에게 매춘이 생계수단이 되자 제도권의 시각이 바뀌었다. 중세 후기에는 매춘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였고 창녀들이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던 반면, 16세기에는 상황이 반전되었다. 종교개혁과 마녀사냥의 전진으로 특징지어지는 격렬한 여성혐오의 시대가 오자, 매춘은 새로운 제한에 묶이게 되었고, 곧 불법화되었다. 1530~1560년 사이에 여러 도시에서 매음굴이 폐쇄되었고 창녀들, 그 중 특히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자들은 추방, 채찍질, 그리고 그밖에 온갖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p.153)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빡친 부분이었다. 다 하지 못하게 해놓고, 그래도 죽을 수는 없으니까 간신히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하려고 했더니, 그건 또 안된다고 추방하고 처벌을 한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시키는 것만 해야하는 거다. 너희들은 남자랑 결혼해서 애만 낳아,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야. 사회가 여자들에게 허락한 것은 단지 그뿐이었다. 아이와 먹고 살기 위해 거리로 내몰려 일을 하려고 해도,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휴... 진짜 인간들 머리에서 이렇게까지 한 성별을 코너로 몰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매춘이란 것은 정말이지 놀랍다. 성을 파는 여자를 세상 험한 여자로 욕을 하는데, 성을 사는 남자에 대한 욕은 없다. 심지어 그 성을 사면서 뒷골목에 들어가고 여자를 부르고 돈을 내는 남자들조차도, '창녀는 안돼'라며 그들과 자신을 선긋기 한다. 니네가 산거잖아. 나와 당신의 만남, 거래인데 왜 한쪽은 세상 천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고 한쪽은 당당한 사람이 되어 창녀를 욕하면서도 '나도 해봤지, 남자는 누구나 다 해봐'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성매매라는 것에 대해 나는 계속 생각하는데, 정말이지 이건 구매하는 남자들을 처벌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다. 성매매 여성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성매매가 없어지지도 않고, 창녀라는 욕을 뒤집어쓴채로 계속 이 제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자신이 욕을 먹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것은 여성들이니까. 남자들은 그것이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 여자들이 벌을 받거나 죽음에 놓이더라도,관계없이 다음날 또다시 성매매를 하러 가는 거다. 이래가지고 성매매가 어떻게 없어질것이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없어지겠는가.

그러나 성을 구매하는 남자들을 처벌하고, 그들을 향한 욕이 있다면, 앞으로 성매매를 하러 가려다가도 주춤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이러다가 괜히 들켜가지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근심을 좀 하게 해야하는 거 아닐까. 나는 진짜 너무너무 이상하다. 성매매 하는 남성이 성매매하는 여성을 욕하면서 산다는 게. 게다가 연애와 결혼 상대로는 성매매 여성을 껴넣지도 않아. 그런데 또 결혼해도 성매매는 한다. 이 스스로의 모순에 대해서 저들은 아무 생각도 없나? 그들은 내가 아니고 나도 그들이 아니지만, 나는, 나의 사소한 내적갈등에도 되게 힘들어하는 사람이라, 그런 스스로의 모순-내가 성매매하는데 성매매하는 사람을 세상 천박하게 욕하고 배척한다-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할것 같다. 그러고보면 남자들은 참 세상 편하게 산다.


좋겠수다..




그러나 이렇게 코너로 몰아 여성들을 아무일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오, 신이시여..나는 이 빡침이 금세 희미해짐을 느낀다. 마녀사냥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아-




피고에 대한 고문이 보여 준 성적 가학증은 역사상 필적할 데가 없는 여성혐오증을 보여 주는데, 이는 마법을 범죄의 하나로만 보았을 때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표준적인 절차에 따르면, 피고를 발가벗긴 뒤 몸에 있는 모든 털을 제거한다(악마가 털 속에 숨어있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마치 잉글랜드의 주인들이 도망노예들에게 하듯) 악마가 자신의 피조물에 남겨 놓은 표식을 찾기 위해 질을 포함한 온몸을 긴 바늘로 쑤신다. 종종 순결의 상징인 처녀성을 검사하기 위해 강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자백을 하지 않으면 더욱 혹독한 시련이 기다린다. 사지를 찢고 쇠의자에 앉힌 뒤 의자 밑에 불을 지피는가 하면 뼈를 으스러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을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하는 경우 이들의 최후를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처형은 마녀의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참석해야만 하는 중요한 공식행사였다. 특히 마녀의 딸인 경우 때로는 엄마가 산 채로 매달려 화형당하고 있는 화형대 앞에서 채찍에 맞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었다. 이는 여성을 비하하고 악마화하며 이들의 사회적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집단적인 시도였다. 동시에 고문실에서, 그리고 마녀들이 죽어가던 화형대에서 여성성과 가정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이 구축되었다. (p.274-275)







그러니까 코너로 몰고 몰고 또 몰다가, 이젠 숫제 끌고나와 죽여버리는 것. 가난하고 힘없는 나이 많은 빈곤여성들을, 이제 세상이 마녀로 몰아 죽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마녀에 대해 '마녀가 아니다' 라거나, '그런 짓은 옳지 못하다' 라며 대항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외려 마녀로 몰려 같이 처형당할까 두려워서. 마법을 쓰고 남자를 유혹하고 사탄과 결합했다는 이 말도 안되는 가정을, 그 시대의 지식인들 남자가 찰떡같이 받아들이고 온 몸으로 빨아들인다. 오, 지식인 남자들이여...진보 똥남들이여.....




베이컨 ·케플러 ·갈리레오 ·셰익스피어 ·파스칼 ·데카르트 같은 "천재들의 세기"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승리를 거두고 근대 과학이 탄생했으며, 철학적 ·과학적 합리주의가 발전했던 그 시절에, 마녀의 사술은 유럽의 지식인 엘리트들이 가장 좋아하던 토론주제였다. 판사, 변호사, 정치인,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 모두가 이 "문제"에 정신이 팔려 소책자와 악마론을 저술했고, 이것이 가장 비도덕적인 범죄라는 데 동의했으며, 이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p.246)



지식이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책을 읽고 공부했단 말인가, 지식인 엘리트들이여...




가톨릭과 청교도 국가 모두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서로 전쟁을 치르면서도 마녀를 박해할 때만큼은 어깨를 걸고 뜻을 같이했다는 사실은 마녀사냥의 정치적 본성을 깊이 드러낸다. 따라서 마녀사냥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분란 이후 유럽 통합의 첫 사례이자, 새로운 유럽 국민국가의 정치에서 최초의 통합의 장이었다는 주장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마녀사냥은 모든 국경을 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독일, 스위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스웨덴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교회는 어떤 공포를 느꼈기에 합심하여 이런 집단학살 정책을 펼쳤던 것일까? 왜 이렇게 극심한 폭력이 횡행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그 주요 대상이 여성이었던 걸까? (p.247-248)



그렇게 통합되니까 좋아?

위의 인용문을 읽다가 나는 한국의 현재가 생각났다. 자신들이 욕하던 일베와 하나되어 워마드를 사탄으로 취급하던 남자들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워마드와 메갈, 남성을 한남이라 부르는 여자들 앞에서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단결했다. 하하하하. 아마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왜냐면 워마드는 진짜 마녀니까!'.........

그렇게 통합되니까 좋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은 여성을 탄압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를 훨씬 효과적으로 억눌렀다. 지배계급은 이미 토지를 빼앗겨 빈곤해지고 범죄자로 몰린 남성들이 자신의 불행을 거세의 힘을 가진 마녀의 탓으로 돌리게 만들었고, 여성들이 당국에 저항해 획득한 힘을 자신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부분 교회의 여성혐오적인 선동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깊이 품게 된 모든 공포는 이런 맥락에서 동원되었다. (p.281)




일자리에서 차별을 당하고 임금에서도 차별을 당하는 여성들은, 그전에 이미 자라면서 학교에서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 단순히 사회적 제도의 차별을 넘어서 성추행과 성폭력에도 노출되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김치녀와 된장녀라는 혐오 발언 앞에 노출되어, '혹시 내가 그런 여자는 아닐까' 주춤하며 '나는 달라'를 보여주기 위해 애를 써야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치는 여자들에게 이제는 여자들이 임금이 더 많다, 역차별이다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같은 조건의 남자들과 임금을 비교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여자는 일단 나보다 적게 받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 다른 조건으로 비교하며 역차별 운운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옛날에 비하면 여자들 정말 살기 좋아졌지'를 말하는 건 도대체 어느 똥대가리에서 나오는건가. 그러는 당신은 지금 옛날에 살고 있는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건 당신과 내가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여자들에게는 '옛날에 비하면'이라는 전제를 붙이는가. 그걸 붙이려면 같이 붙여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언제까지 옛날에 붙들려서 헛소리 하고 있을텐가. 그러니까 멍청한거야.


정희진 쌤이 강연에서 앞으로 지식의 격차는 더 커질것인데, 가장 똑똑한 건 진보페미니스트가 될것이다, 라고 말했던 것은 내가 보기에도 사실이다. 이미 그 일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과거에 비하면', '아랍에 비하면', '아프리카에 비하면 '같은 소리하는 남성들에게 발전은 도대체 찾아오기나 할것인가.



여성혐오와 마녀사냥까지 이르는 이 책을 읽노라면, 그 분노가 단순히 이 책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이곳이라고 해서 도대체 뭐가 다른가. 여성이 자신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평범한 한국남자나 정부나 마찬가지 아닌가. 여성 가임기 지도를 만들고(맙소사..), 여성들이 결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에 다니게 해서는 안되고..(얼씨구), 그런 큰 그림을 그려가며, 작게는 구석구석에서 남자들이 여성혐오를 한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도 안되고 샤넬백을 가져서도 안돼. 수줍게 얌전하게 남자에게 웃어줘야하고, 남자가 원하면 반항하지 말고 섹스를 해줘야 해. 그런 여자를 원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여자들을 보니 화딱지가 나고, 자기를 떠받들어 줘야 되는데 그렇게 하질 않으니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다. 자기랑 자야되는데 자주질 않으니 강간을 해.. 못났다 진짜..

그런 모든 열등감들이 모여, 하나의 잘못이 드러났다치면 여성을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것은 마녀사냥과 다른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몰래 촬영하고, 그걸로 돈을 버는 거대한 알탕카르텔은, 중세에 마녀사냥하던 때랑 다른가? 강간을 저지르고 미성년자 성매매를 해도 버젓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멀쩡하게 돈 벌고 사는 남자들이 있는 지금 한국은, 마녀사냥으로 신나게 토론하던 때와 다른가?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들은 더 가난하게 된 이유가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지금은, 그 때랑 다른가?




제대로 까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제대로 읽어야한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빈곤한 사회에서 여성이 무시되고 배제되고 죽어나갔음을 이야기하며, 맑스와 푸코가 무시하고 넘어갔던 것, 모른척하고 넘어갔던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들이 부러 무시했든, 몰라서 보지 못했든, 그들은 여성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자본론》을, 그리고 《성의 역사》를 어떻게 그렇게 비판하며 읽을 수 있었을까. 모두가 위대한 저서로 얘기하는 그 책을 비판할 수 있었던 그 지식과 용기는 어디에서 온것일까.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과 《템페스트》를 읽고 나름 준비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어려워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이해 할 수나 있을까, 아직 내게는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닐까, 몇 번이나 스스로를 원망했는데, 읽으면서 친구랑 얘기하고 또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어느틈에 내가 내용 파악을 하고 있었다. 내용파악이 안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게 중세시대의 얘기라고 해도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와 페미사이드.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고 팔랑팔랑 넘어가는 책도 아니기에, 그렇기에 먼저 완독한 사람으로서 약간의 팁을 드리고자 한다. 일단, 《템페스트》를 먼저 읽어두는 건 확실히 도움이 된다. 템페스트 읽으면서 '마녀', '사생아,' 괴물'에 분노했는데, 거기에는 여성혐오만 있었던 게 아니라 계급과 인종차별도 있었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실비아 페데리치가 짚어주는 거다. 얼마나 짜릿했는지! 이래서 독서를 하는거라고 흥분했다.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이 내 배경지식을 만들고, 그렇게 쌓인 배경지식은 '더 좋은 독서'로 이끄는 게 틀림없다. 템페스트를 읽지 않는다고 해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읽는다면 분명 더 좋은 독서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맑스의 《자본》과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어두었다면 역시 더 좋은 독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읽지 않았다고 해서 위축되지 않아도 좋다. 이 책,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나니, 이 책을 읽은 후에 자본과 성의 역사를 만나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 캘리번과 마녀를 읽었는데, 어디, 맑스랑 푸코가 무슨 소리 했는지 보자, 라고 책을 펼쳐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식의 접근과 다른 식의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다. 다르면서 더 넓은 접근.



준비과정의 팁이 위와 같다면, 읽는 중간의 팁으로는 수시로 말하고 쓰라고 하고 싶다. 입밖으로 내지 않으면 정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입밖으로 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되곤 한다. 나 모르겠는데, 파악이 안돼, 라고 하다가도, 글을 쓰다 보면, 혹은 누군가에게 얘기하다 보면, 내 안에서 차곡차곡 정리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간에 그리고 책을 다 읽고나서도 바깥으로 이 책에 대해 얘기하는 걸 반드시, 꼭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얼마나 좋은 책을 완독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부터 여성주의책 같이읽기로 읽는 책들을 보며 새삼 깨닫는게, 세상에는 이미 현명하고 용기있는 여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 책들의 저자들도 그러했지만, 그 저자들이 책속에서 얼마나 많은 다른 저자들의 책들을 인용하였는지 모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지하고, 그러면 안된다고 글을 써오고 있었어. 세상에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독자가 읽는 것일테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말한다면, 그 현명하고 용기있었던 글들이 세상에 또 알려질테니까. 그렇게 알려진다면 또 거기에 말을 보태고자 하는 여자들도 늘어나지 않겠는가.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이야기나누자고 새삼 결심했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부지런히 읽을테다.












여성 "억압"과 남성에 대한 종속을 봉건적 관계의 잔재로 보는 맑스주의의 정설에 맞서, 달라 코스타와 제임스는 여성이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노동력"의 생산자이자 재생산자였던 만큼 여성 착취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달라 코스타의 말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의 착취, 즉 "임금 노예제"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졌고, 이 무임노동이 임금 노예제의 생산성의 비결이다(1972:31).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는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기 때문도 아니고, 문화적 기획이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도 아니다. 특히 여성의 삶을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남녀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p.21)

여기서 남녀간의 권력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생산체제란 노동자의 생산 및 재생산에 들어가는 무임노동의 이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활동이나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자원 또는 개인적 봉사로 신비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p.21)

"시초축적"은 맑스가 『자본』1권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전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역사적 과정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이 용어는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경제 및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는 변화를 개념화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용어가 중요한 것은 맑스가 "시초축적"을 자본주의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구조적 조건을 드러내 주는 기본적인 과정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로써 우리는 과거 속에서 현재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p.29)

그 예로 1652년 코르도바 봉기를 들 수 있다. "아침 일찍 한 가난한 여인이 굶어죽은 아들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면서 지나가자" 봉기가 시작됐다(Kamen 1971:364). 1645년 몽펠리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서, 여성들이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고" 길거리로 나섰다(같은 책:356). (p.128)

종교개혁가들은 성적 금욕에 대한 기존 기독교의 찬양을 부정하면서 결혼과 성의 가치를 드높였고, 출산능력 때문에 여성에게 가치를 부여하기까지했다. 루터는 여성이 "인류를 늘리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 "여성은 그들이 가진 온갖 약점을 전부 만회하는 한 가지 덕성을 갖고 있는데, 바로 자궁을 갖고 있으며 출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King 1991:115). (p.142)

그러나 국가가 원하는 인구비율을 회복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 중 정말 중요한 것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출산에 대해 행사하던 통제권을 파괴하기 위해 국가가 개시한 진정한 전쟁이었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마녀사냥이 이 전쟁을 수행한 주요 수단이었다. 마녀사냥은 여성이 악마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고 고발하여, 모든 형태의 피임 그리고 출산과 무관한 성관계를 문자 그대로 악마화했다. 이는 재생산 범죄의 구성요소에 대한 재정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 선박들이 아프리카에서 인간을 화물처럼 싣고 오는 한편, 유럽의 모든 정부는 피임, 낙태, 영아살해에 대해 가장 가혹한 처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p.144)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형태의 감시도 도입되었다. 1556년 프랑스 국왕은 칙령을 공포했는데, 그 내용인즉슨 모든 여성은 임신할 때마다 등록해야 하고, 만약 비밀리에 출산했다가 아이가 세례를 받기 전에 죽게 되면 그 산모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 지은 죄가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도 1624년과 1690년에 비슷한 법령이 통과되었다. 미혼모를 감시하고 그들로부터 모든 원조를 박탈하기 위한 감시인 체계 또한 만들어졌다. 임신한 미혼모가 공적 감시망을 벗어날까 염려하여,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도 불법화되었다. 그들과 친분을 맺는 사람들은 공공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Wiesner 1993: 51~52; Ozment 1983:43). (p.144-145)

독일에서는 출산장려 십자군이 어찌나 활개를 치고 다녔던지 충분한 출산 노력을 기울이지 않거나 자식을 낳으려는 열정이 부족한 여성이 처벌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Rublack 1996:92). (p.146)

피임 관련 지식은 여성이 출산에 대해 일정한 자기통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피임이 불법화되면서 여성들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어 오던 이 지식들을 박탈당했다. (p.150)

한편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창녀를 성폭행하는 것이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되었다. (p.154)

동업조합의 시도는 많은 증거를 남겼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어디에서나 직인들은 당국에 여성들과의 경쟁을 금해 달라고 청원했고, 각 직종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했으며, 이 금지사항이 지켜지지 않으면 파업을 하고, 심지어는 여성과 함께 일하는 남성과는 함께 작업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또 경제적 곤경에 처한 직인들이 파산을 피하고 독립적인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성실한 가정관리"가 필수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일을 가사노동으로 국한시키고 싶어 했다. (p.155)

다른 한편, 당국이 협조하지 않았다면 이 시도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명백히 당국의 입장에서도 여기에 협조하는 것이 수지에 맞는 일이었다. 반항적 직인들을 달랠 수도 있었거니와, 여성을 작업장으로부터 쫓아내는 것이 그들을 재생산 노동에 묶어두거나 가내수공업에서 저임노동자로 부릴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p.156)

새로운 노동편성에서 (부르주아 남성이 사유화한 여성만이 아닌) 모든 여성이 공유재산으로 변했다. 일단 여성의 활동이 비노동으로 정의되자 여성의 노동은 마치 공기처럼 누구나 마음껏 쓸 수 있는 천연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는 역사적인 패배였다. 동업조합에서 여성들이 쫓겨나고 재생산 노동이 평가절하 되면서 빈곤은 여성의 몫이 되었다. 또한 여성노동에 대한 남성의 "일차적 전유"를 이행하기 위해서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가 구축되면서 여성들은 고용주과 남성이라는 이중적 종속관계에 얽매이게 되었다. (p.157)

이 일에 종하사는 남성들은(가내수공업 노동자들) 결혼과 가정꾸리기를 피하기는 커녕 그것에 의존했다. 결혼하면 자신의 노동에 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데다, 집안일도 해결되고, 성욕도 해결되고, 자식도 생기는데, 자식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베틀을 돌리거나 잡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 감소기에도 가내수공업 노동자는 그 수가 곱절로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p.159)

잉글랜드에서는 부인이 간병이나 수유와 같은 노동을 한 경우에조차도 "아내의 소득은 법적으로 남편에게 귀속되었다." 그래서 행정교구에서 이와 같은 업무로 여성을 고용한 경우, 보수의 직접수취인을 남편으로 지정함으로써 "흔히 노동자로서의 여성을 은폐했다." 이때 "보수가 남편한테 지급될지 노동자 여성에게 직접 지급될지는 사무원의 변덕에 좌우되었다"(Mendelson and Crawford 1998:287).
이처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갖지 못하게 하는 정책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고 남성노동자가 여성노동을 전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물질적 조건을 창출했다. 내가 임금 가부장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임노동체제 아래에서 남성노동자가 형식적으로만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노동계급 여성의 처지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p.159-160)

게다가 매춘부는 가혹하게 처별하면서도 남자 손님은 거의 손대지 않는 방식의 불법화 때문에 남성의 권력이 강화되었다. 모든 남성은 이제 창녀라는 선언만으로 한 여성을 간단히 파멸시킬 수 있었다. 여성은 마치 봉건영주처럼 그들의 생사여탈을 손에 쥐고 있는 남성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명예를 빼앗지 말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Cavallo and Cerutti 1980:346ff) (p.162-163)

여성의 사회적 권력상실은 새롭게 등장한 공간적 성차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중해 국가들에서 여성은 임노동 직종에서뿐만 아니라 길거리로부터도 쫓겨났고, 홀로 다니는 여성은 놀림감이 되거나 성폭행을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Davis 1998). 몇몇 이탈리아 방문객들이 "여성의 낙원"이라 묘사했던 잉글랜드에서도 공공장소에 여성이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여성은 집 앞에 앉아 있거나 창가에 얼씬대지 않도록 교육받기 시작했다. 또 그들은 다른 여성과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장려되었다. 원래는 여성친구를 의미하는 "가십"gossip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더군다나 결혼한 여성은 친정에도 자주 가지 말라는 요구를 받았다. (p.164)

첫째로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를 극대화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형을 더욱 명확하게 구분지은 새로운 문화적 규준이 구축되었다(Fortunati 1984). 둘째로 여성은 과도하게 감정적이고 욕망이 넘치며 자기통제능력이 부족한 만큼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남성의 통제 아래에 놓여야 한다는 명제가 확립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동의는 마녀에 대한 비난과 마찬가지로 종파와 학파의 경계를 넘어서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인문주의자, 개신교 종교개혁가, 가톨릭 반종교 개혁가 모두가 협력하여 설교나 글을 통해 지속적 · 강박적으로 여성을 비방했다. (p.165)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도 입법을 통해 제도화되고 강제되어야 했다. 흑인과 백인 간의 성관계가 금지되었고, 흑인노예와 결혼한 백인여성은 비난을 받아야 했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생 노예로 살아야 했다. 1660년대에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통과된 이 법령들을 살펴보면 인종차별 사회는 위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게다가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종신노예화라는 처벌이 필요했다는 점은 그 관계가 얼마나 친밀했었는지를 보여 준다. (p.179)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 모든 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인디언을 쓸 만한 무역상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문명의 기본요소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믿고 교육에 들어갔다. 선교사들은 먼저 "남자가 주인임"과 "프랑스에서는 여자가 남편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늦은 밤의 데이트, 남녀 중 일방의사에 의한 이혼,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남녀 모두의 성적 자유가 금지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p.183-184)

여성과 시초축적의 역사를 개괄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구축, 즉 여성을 남성 노동인구의 하인으로 만든 것이 자본주의 발전의 중요한 양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반 위에서 노동의 새로운 성적 분업이 강제될 수 있었다. 새로운 분업은 남성과 여성이 수행하는 업무에 차별을 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경험, 삶, 자본과의 관계, 노동계급 내의 다른 부문들과의 관계에서도 차별을 규정했다. 그러므로 국제적 분업과 마찬가지로 성적 분업은 무엇보다도 권력관계였다. 즉 그것은 노동인구 내부의 분할임과 동시에 자본축적을 어마어마하게 촉진시켰다. (p.191)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초의 기계는 증기엔진이나 시계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신체였던 것이다. (p.218)

1세대와 2세대 마녀사냥 학자들 중에는 희생자를 탓하는 이런 경향과는 다른 예외도 있었다. 2세대 마녀사냥 연구가들 중에서는 맥팔레인Alan Macfarlane(1970), 몬터E.W.Monter(1969,1976,197), 소만Alfred Soman(1992)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마녀사냥이라는 주제는 여성주의운동이 등장한 뒤에야 그동안 처박혀 있던 음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여성주의자들 스스로 자신을 마녀와 동일시하면서 마녀가 곧 여성 저항의 상징으로 채택된 덕분이었다(Bovenschen 1978: 83ff). 여성주의자들은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권력구조에 도전하지만 않았더라도 대량살상과 극악한 고문에 시달리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순발력있게 알아냈다. (p.238-239)

박해에 가장 큰 기여를 한것은 법학자·치안판사·악마연구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종종 한 인물처럼 행동하곤 했다. 이들은[마녀박해를 지지하는] 주장을 체계화하고 비판에 답했으며, 법적인 장치를 완벽하게 갖춰 놓음으로써 16세기 말엽에는 표준화된, 거의 관료적인 수준의 마녀재판 형식을 마련했다. 이는 국가 간에 자백의 형식이 유사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업무 중에 철학자나 과학자 같은 당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의 협력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두 부류는 오늘날에도 근대 합리주의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다. 이런 협력의 대상에는 영국의 정치이론가 홉스가 있었는데, 그는 마법의 존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사회의 통제수단으로서 박해를 인정했다. (p.245-246)

마녀의 몰살을 단순한 탐욕의 산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대다수가 극빈층이었던 여성들을 처형하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한다 하더라도 결코 아메리카 대륙의 부에 비견될만한 보상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p.249)

마녀사냥이 일어난 역사적 맥락과 피소자들의 젠더와 계급, 박해의 영향 등을 살폈을 때 우리는 유럽의 마녀사냥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여성들의 저항에 대한,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에 대한 통제력과 치유능력을 통해 여성들이 획득한 권력을 공격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어야만 한다. (p.249)

마녀사냥이 늘어난 것은 "더 나은 부류의 사람들"이 "낮은 계급"에 대한 꾸준한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였다. "낮은 계급"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기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들이 사악한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p.255)

『마녀들의 망치』의 저자들은 여성이 마법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이들의 "만족을 모르는 욕정"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마틴 루터와 인본주의 작가들은 여성의 도덕적·정신적 약점을 타락의 기원으로 강조했다. 어쨌든 모두 여성을 사악한 존재로 꼽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p.267)

클락Alice Clark에 따르면


전문 직종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자리를 꾸준히 채워나갔다는 점은 여성들이 적절한 전문적 훈련을 받을 기회를 거부당함으로써 모든 전문직에서 배제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다(Clark 1968:265)

마치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 화형대의 광경은 공유지에 둘러쳐진 담장보다 더 무시무시한 장벽을 여성의 신체 주변에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p.272)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문란한 여성들(창녀나 간통한 여성,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결혼과 출산의 구속 밖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행사한 여성들)또한 마녀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녀재판에서 "평판이 나쁜"것은 유죄의 증거였다. 말대답을 하거나, 논쟁을 하고 욕을 하거나, 고문을 받으면서도 울부짖지 않는 반항적인 여성들도 마녀에 속했다. 여기서 "반항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여성들이 연루된 특정한 전복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주로 농민들이 봉건권력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여성적인 개성을 나타낸다. 당시의 투쟁에서는 이단 운동의 전면에 여성들이 앞장서서 여성들의 결사를 조직하고 남성의 권위와 교회에 점점 강하게 도전해 갔다. 마녀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면 중세 도덕극과 우화시에 나오는 여성들이 연상된다. (p.273)

이런 여성들은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하고, 남자들처럼 공격적이고 방탕하며, 남자 옷을 입고 다니거나 채찍을 들고 자랑스럽게 남편의 등에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p.273-274)

마녀사냥은 여성에게 새로운 성적 능력이나 승화된 쾌락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대신 "깨끗한 이불 속의 깨끗한 성"을 향한 기나긴 행군의 첫 출발로서, 여성의 성적 활동을 노동과 남성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출산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출산과 무관하고 비생산적인 모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반사회적이고 사실상 악마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한 것이다. (p.285)

(그림 마녀와 재판관 사이의 논쟁. 부르크마이어(Hans Burkmair)(1514년 이전).

사술을 부렸다는 이유로 기소당해 재판을 받은 많은 여성들은 늙고 가난했다. 이들은 공공구호에 의존해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술은 힘없는 자의 무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이 든 여성은 지역사회 안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으로 인한 공동체적 관계의 파괴에 저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류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역공동체의 지식과 기억을 구현한 이들이었다. 마녀사냥은 이런 나이 든 여성의 이미지를 뒤집었다. 전통적으로 현명한 여인으로 간주되던 이들이 불모와 생에 대한 적개심의 상징이 되었다. (p.287)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비난했던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응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 위한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p.288)

역사가 이슬리아에 따르면 흑인의 성적 능력에 대한 이 같은 체계적인 과장은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느끼는 불안을 드러낸다. 백인 상류계급 남성들은 자신들보다 본성/자연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노예와의 경쟁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과도한 자기통제와 분별 있는 이성적 능력 때문에 성적으로는 적절하게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Easlea 1980:249~50). (p.29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19-02-1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을 읽고 싶지만 아직 읽지 못하겠어요 ㅠㅠ 밀린것 들 읽구 또 따라갈게여~~ ㅠㅠ

다락방 2019-02-19 10:53   좋아요 0 | URL
너무 훌륭한 책입니다, 쟝쟝님.
얼른 읽고 쟝쟝님도 이 세계로 빠져들어 주옥같은 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곧 따라오세요, 지치지 말고!
 
















《캘리번과 마녀》는 각 장이 시작할 때마다 인용구들이 삽입되어 있다. 2장 <노동축적과 여성의 지위하락>에 삽입된 인용구(p.98)는 이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파편화된 상품이었다. 그녀의 감정과 선택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와 심장은 등뼈와 손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자궁과 질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그녀의 등뼈와 근육은 밭일로 내몰렸고, 손은 백인을 간호하고 양육해야 했고, 그의 성적 즐거움에 봉사하는 그녀의 질은 자궁으로 가는 통로였으며, 자궁은 그가 자본을 투자하는 장소였다. 성행위가 자본투자 행위며, 그 결과 태어나는 아이는 축적된 잉여였다 …….

-바바라 오몰라드, 「암흑의 핵심」, 1983



나는 저 바바라 오몰라드의 문장을 읽고 흥분해, 저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냥 모든 게  다 들어있지 않은가!! 아마도 단편이거나 한 게 아닐까, 아니면 논문인걸까. 검색창에 '암흑의 핵심'을 넣어봤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만 수두룩하게 나오더라. 그래서 '바바라 오몰라드'를 넣고 검색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네이버에 넣고 검색했지만,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



'바바라 오몰라드'는 누구이며, 저 인용문의 출처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것인가. 원서라도 똭- 검색이 된다면 아무 출판사에나 들이밀고, 이 책 좀 내주시면 안될까요, 해볼 수 있을텐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 어쩌면, ㅁㄹ 님은 아시지 않을까.....(  ")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캘리번과 마녀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다. 포스트잇 붙여가면서, 색연필로 밑줄 그어가면서. 그런데 이 색연필..아마도 그 뭣이냐, 무슨 어린이책 살 때 굿즈로 받았던 것 같은데, 타미 줄까 하다가 그냥 내가 쓰고 있는데, 너무 좋다! 하나의 색연필 안에 여러가지 색깔이 들어 있어서 밑줄 그을 때마다 색이 다르고, 줄 쳐지는 느낌도 좋아서 공부하는 느낌이 아주 제대로인거다. 앞으로 밑줄은 이 색연필로만 긋고 싶은데, 그런데 이런 색연필은 도대체 뭐라고 검색해서 사야 하는건지를 모르겠다. 내게는 형광펜이나 볼펜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이런 색연필 뭐라고 검색해서 사는건가요? 혼합색연필? 믹스컬러 색연필? 알 수가 없다... '컬러는 우리안에?' 아, 모르겠다.....다 가진 색연필? 아..모르겠다.....



아무튼 바바라 오몰라드의 암흑의 핵심이 궁금한 아침.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9-02-12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색연필로 줄긋기 하는데... 이게 형광펜이나 볼펜과는 또 다른 맛이라. ㅎㅎㅎ 아 이 책도 읽고 싶어요~

다락방 2019-02-12 09:5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또 다른 맛 ㅋㅋㅋ 이걸로 밑줄 그으면서 보는데 막 공부하는 느낌 들고 너무 좋아요! ㅋㅋㅋ 쟁여두고 싶어요.
비연님도 이 책 읽으세요!
근데 전 이 책 어렵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9-02-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저 색연필에 빠져서는 읽고 있는 모든 책을 빨주노초파남보로 아름답게 색칠하였더랬죠.
근데 이름을 모르겠네요, 무지개 색연필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같은 마음으로 ㅁㄹ님을 기다려봅니다^^

다락방 2019-02-12 09:54   좋아요 0 | URL
오오.. 무지개 색연필? 그건 또 생각도 못해봤네요. 무지개 색연필로 검색해야겠어요. 어쨌든 검색해서 찾게 되면 쟁여둬야 겠어요. 저 색연필 밑줄 그을 때마다 완전히 다른 색들의 향연이라 너무 씐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줄긋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닌지.... 흐음...


ㅁㄹ 님이 답을 주시지 않을까, 저도 기다려봅니다. 많은 것들을 아시는 분..이것도 아실 것 같은데 ㅠㅠ

다락방 2019-02-12 09:57   좋아요 0 | URL
꺅 >.<
단발머리님, 무지개 색연필로 검색하니 나왔어요. 막 주문을 마친 상태입니다. 저 스무개 주문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란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12 10:04   좋아요 1 | URL
진짜요????? 진짜 무지개 색연필이었어요? 생각나는대로 붙인 이름인데, 그게 맞았단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막 던졌는데 그게 맞는 말이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무개 주문했다면.... 한 자루 있으면 10권, 아니 20권은 줄 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십 곱하기 이십??
400권 확보!! 와~~~ 스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2-12 10:07   좋아요 0 | URL
아 취소하고 열 개로 줄여야겠다. 이놈의 스케일은 그냥 아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02-12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하나 있는데.. 라고 반가운 마음에 쭈욱 읽다보니.. 락방님. 20개.. 아니 줄여서 10개 주문..헉.

비연 2019-02-12 11:18   좋아요 0 | URL
https://smartstore.naver.com/dnara/products/3845185740?NaPm=ct%3Djs14zfk8%7Cci%3Dda2d213fac09d9fbcde8b1640fa683f51e80a8ed%7Ctr%3Dslsl%7Csn%3D583975%7Cic%3D%7Chk%3Dbaea878b90eba1aae60dcd9a5ad05e7ab6822d9d

이런 거죠?

다락방 2019-02-12 11:19   좋아요 1 | URL
네네 줄여서 10개 주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링크 올리신 바로 그곳에서 샀어요. 네이버페이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12 11:2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의 거침없는 주문을 부른 나의 소소한 기억력이 새삼 자랑스러운 아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2-12 11:34   좋아요 0 | URL
지름신을 몰고 오셨습니다,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2-1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영부영하다가.. ㅜㅜ 베트남에서 못 읽으셨던 다락방님 보다 더 늦네요..
빠르게 합류.. ^^:; 해서. 곧 따라 갈께요.

어? 저도 저 색연필을 단발머리님 말처럼 무지개색연필로 알고 있어요.

다락방 2019-02-12 10:01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읽고 얼른 글 좀 써주세요. 저는 이게 좀 어려워서요.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야 비로소 좀 이해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이 책 진도가 잘 안나가요. 제게는 백래시, 페미사이드,우리의의지에 반하여 보다 이 책이 더 어렵네요. 제 지식이 너무 얕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여러방면에 지식을 갖고 있어야할 것 같더라고요.

저건 무지개색연필로 검색했더니 나와서 왕창 주문해버렸어요 ㅋㅋㅋ

블랙겟타 2019-02-12 10:12   좋아요 0 | URL
네. 저라고 딱히 다락방님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요...ㅎㅎㅎㅎ^^;;
오늘부터 많이 읽어서 얼른 글 쓸게요.

아 무지개색연필이 맞았네요 ㅎㅎ 그런데.. 응? 스,,스무개?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2-12 10:17   좋아요 1 | URL
방금 정신차리고 열개로 줄여서 다시 샀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9-02-1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서 무지개 색연필 검색

다락방 2019-02-12 12:20   좋아요 0 | URL
공부가 잘되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필기구 탓하는 건 공부못하는 사람의 전형적 특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1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은 마치 <색연필과 마녀> 페이퍼에 달림직한 것들이네요 ㅎㅎㅎㅎㅎ 그 경우 마녀는 단발님인가 다락방님인가.....

다락방 2019-02-12 13:32   좋아요 0 | URL
우리 둘다 마녀하는거죠. 이곳은 마녀의 세계. 웰컴투 마녀월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바 2019-02-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는 여기서 시작된 건가요?ㅋㅋㅋㅋ 다락방님 글을 보니 저도 바바라 오몰라드가 궁금해 검색해보았습니다.

바바라 오몰라드가 쓴 ‘암흑의 핵심‘은 1995년에 발표된 에세이네요.
https://philpapers.org/rec/OMOHOD
https://alanahpierce.wordpress.com/2011/04/05/hearts-of-darkness-by-barbara-omolade/

간단한 바이오그래피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archives.qc.cuny.edu/finding_aids/Omolade
https://www.sarahlawrence.edu/archives/collections/finding-aids/b/barbara-omolade-papers1.html

다락방 2019-02-12 15:41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아니, 에이바님 아니십니까! 에이바님!! (일단 와락- 끌어안는다) 반가워요 ㅠㅠ

링크해주신 걸 구글번역을 통해 내용 봤거든요. 와, 엄청 흥미로운데(얼마전에 읽었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생각도 나고요. 거기서도 흑인여성에 대한 성착취-노예를 더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도-가 나왔었거든요), 국내 번역본은 없는가보네요. 이런 것 좀 국내에서 번역해서 내주면 좋을텐데요.

그나저나 저는 어떻게 검색해야할지도 몰랐는데 이렇듯 링크를 척- 주시니 감사합니다, 에이바님. 후훗.

단발머리 2019-02-12 15:54   좋아요 0 | URL
저도 ‘암흑의 핵심‘은 콘래드 밖에 몰라서 궁금했는데 와우!!

이런 링크 너무 고급져요.
저도 얼른 따라가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9-02-12 15:5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짜 간절하게 들어요. 흑흑 ㅠㅠ

단발머리 2019-02-12 16:01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 전화하시면 어떠실런지요.....
저는 아직 안 읽어봤지만 그런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드네요. ㅠㅠ
 















2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캘리번과 마녀]를 나는 2월1일부터 펼쳤더랬다. 2월1일은 내가 다낭에 가는 날, 밤비행기를 타고 갈 예정이었고, 캘리번과 마녀를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챙겼는데, 서문까지 읽는 동안 '자본론을 알면 더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수차례 드는 거다. 그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엄두도 안났는데, 이 책의 서문까지 자본론 얘기가 어찌나 나오는지. 설사 그 내용을 모른다고 해도 이 책을 읽는데 크게 지장이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개념을 알고 읽으면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나는 2월1일에 당일배송으로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주문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당일배송을 잘 도착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캘리번과 마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둘 다 들고 다낭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낭에서는 뜨거운 태양에 반해 책을 손에 들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려우면 어쩌지 하고 겁먹었지만,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매우 쉽고 재미있었다. 글자도 크고 잘도 넘어가. 오호라, 자본론이 이런 이야기구나, 오오, 감탄하면서, 게다가 임승수가 아주 알기 쉽게 써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하고 이 책을 다 읽었다. 재미있어! 자본론 재미있네! 자, 이제 캘리번과 마녀를 읽을 준비를 마쳤다!


나는 어젯밤, 다시 캘리번과 마녀를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읽는데, 그러고보니 내가 '캘리번'애 대해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캘리번..뭐지? 마침 나는 캘리번과 마녀에서 템페스트에 관한 언급을 읽게된다.

서론에서였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캘리번과 마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이런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서론, p.27)



하아- 캘리번...이 템페스트.... 에서 온거라고?


나는 템페스트를 아주 오래전에 읽었다. 배가 난파당해 섬에 사람들이 도착하게 되는 내용..정도로만 기억하고 있고 그 외의 것은 생각나지 않아, 캘리번이 템페스트에 나오는 이름이라니, 아아, 생소하다. 캘리번을 알면 캘리번과 마녀가 더 잘 읽히지 않겠는가, 하는수없이 나는 서론에서 또, 캘리번과 마녀의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내 서재방으로 가 책장 앞에 섰다. 내게는 분명, 템페스트가 있다. 아아, 너무 멋진 나여... 읽고 싶은 책은 책장에 있는 사람. 그렇게 아주 오래전에 읽어 기억나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아아, 어쩌면 이렇게 새로 읽는 책 같지, 처음 읽는 책 같지? 그래, 배가 난파당하는 것... 이것만 내가 기억하고 있구나. 오랜만에 다시 읽는 템페스트는 생소했고, 그리고 엄청 빻았다! 섬에서 만나게 된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데, 여자의 아버지는 남자에게 자신이 딸을 '준다'고 표현하는 거다. 아아 빻은자여, 그대이름은 푸로스퍼로.



러면 내 선물로서, 그리고 그대의 덕망으로 해서 얻은 내 딸을 받게. 그러나 만약 자네가 모든 적절한 예식을 갖추어 성스러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그애의 처녀막을 파괴한다면 하느님은 이 약혼이 결혼으로 성장하도록 달콤한 비를 내려주시지 않을 것이네. (4막1장, p.94)




푸로스퍼로여, 아무리 그대 딸이 사랑하는 남자라고는 하나, 어째서 당신이 당신의 딸을 '선물'로 준다고 표현하는 것이오. 그렇게 푸로스퍼로의 딸 '미랜다'는 '퍼디넌드'에게 '넘겨진다, 선물로서. 미랜다는 푸로스퍼로의 소유였다가 퍼디넌드의 소유가 되는 것. 아, 개빻음이여...



그런데, 아무리 오래전에 읽었다고 한들 이렇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수가 있는걸까...어쨌든 이 책에서 '캘리번'은 '마녀의 사생아'이자 괴물, 악의 상징으로 나온다. 마침 [템페스트]의 해설에 줄거리가 잘 요약되어 있어, 앞으로 [캘리번과 마녀]를 읽게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그 해설속 줄거리를 친히 옮겨오도록 하겠다.


집중하세요!




밀라노의 대공 푸로스퍼로(Prospero)는 12년 전에 마술 연구에만 몰입하여 정사를 소홀히 하다가 나폴리의 왕 알론조(Alonso)의 힘을 빌린 동생 앤토니오(Antonio)에게 대공 지위를 찬탈당했다. 앤토니오는 형 푸로스퍼로와 세 살 난 질녀 미랜더(Miranda)를 보트에 실어 망망대해에 던져버렸다. 이 부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폴리의 인자한 노대신 곤잘로(Gonzalo)가 식량과 옷, 귀중한 푸로스퍼로의 마술 서적들을 휴대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푸로스퍼로 부녀가 상륙한 무인고도는 악의 마녀 시코랙스(Sycorax)가 한때 살던 곳이기도 했다. 시코랙스는 생전에 짐승과 같은 괴물 캘리번(Caliban)을 낳았고, 에어리얼(Ariel)이란 정령을 갈라진 소나무 속에 가두어놓고 노예로 부렸었다. 푸로스퍼로는 에어리얼을 석방해주었고, 에어리얼은 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또 완전한 해방의 날을 내다보면서 푸로스퍼로를 주인으로 모시고 심부름을 하게 된다. 한편 푸로스퍼로는 캘리밴을 교육하여 문명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아 하인으로 부리게 된다. 이러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날 푸로스퍼로는 알론조 왕이 그의 일행과 더불어 튀니스에서 거행된 딸과 튀니스 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귀국하는 항해 길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동생 앤토니오도 그 일행에 끼어 승선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푸로스퍼로는 원수들을 일망타진하여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완성에 이른 자신의 마술로 폭풍우를 일으킨 후 에어리얼을 시켜서 이들을 섬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알론조 왕의 아들 퍼디넌드(Ferdinand)는 특별히 무리에서 따로 떼어 홀로 상륙시켜서 미랜더와 사랑하는 사이로 만든다. 그는 결국 자신의 자비하에 들어온 원수들을 용서하고, 마술을 버림으로써 비극적인 결말 대신에 행복한 결말을 낸다. 이것이 이 극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작품 해설, 작품내용, p.143-144)



템페스트를 읽으면서 내가 의아했던 건, '캘리번'이 괴물이나 악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푸로스퍼로는 그를 문명인으로 만들고자 했다하나, 그가 그렇게 악의 상징이었는지, 어둠의 자식이었는지 나는 딱히 설득되지 않았다. 게다가 '마녀의 사생아'라는 것도 거부반응이 일었는데, '마녀', '사생아' 가 모두 이제는 더이상 어떤 나쁨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히려 딸을 선물로 내주고, 자유를 약속하며 에어리얼을 제멋대로 부리는 푸로스퍼로가 더 짜증났달까. 내가 어린 시절 이 책을 봤다면 으으, 캘리번 나빠..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으아, 마녀의 사생아래 끔찍해, 하게 되었을까? 역시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마녀가 사생아를 낳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던건지, 그 마녀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 무엇을 그녀가 '마녀'가 되도록 만들었고, 또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사생아를 낳게' 만들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세상이 떠들어대는 '마녀이 사생아'는 세상이 말하는것처럼 나쁘거나 악이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너희들은 괜한 일로 그녀와 그녀의 자식을 비난하고 괴물로 만들었다. 마녀는 어떤 마녀의 짓을 햇을까. 무슨 짓을 했길래 마녀가 되었을까. 우리는 마녀가 하는 말에 이제 귀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마녀에게는 마녀의 이야기가 있다.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라고, 진 리스가 얘기했잖아.



에어리얼(Ariel)은 공기(air)의 정령을, 저주의 말이 입에 붙어 있다시피 하는 캘리번(Caliban)-그는 자신을 'Ban, Ban, Ca-Caliban'으로 부르기도 했다(2막 2장, 184행)-은 '저주(ban)하는' 어두움의 자식임을 우의적으로 각각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해설, p.145)



자,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나는 다시 캘리번과 마녀를 시작하련다. 처음부터, 다시. 

읽다가 또 뭔가 막히는 게 있어 다른 어떤 책을 또 꺼내들어 읽게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쨌든 시작한다.



막시무스 님은 벌써 다 읽으셨던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어느정도 읽고 계십니까? 자, 진행합시다, 여러분!! 빠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19-02-1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가분의 의도와 다르게 자본의 시초축적과 기득권 세력에 의한 음흉하고 무서운 시도에 대해 좀 더 무게를 많이 두고 읽었던것 같아서 아직 여성주의에 다가가기는 많이 요원하다는 반성도 해 봅니다!
즐거운 독서되십시요!

다락방 2019-02-11 08:20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 님, 같이읽기 도서중 다른 한 권인 [혁명의 영점]도 도전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도 아직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긴 하지만, 캘리번과 마녀 이렇게 빨리 읽으셨으니, 같이 읽어 보셔도 좋을듯합니다.

저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막시무스 2019-02-11 09:21   좋아요 0 | URL
넵넵!ㅎ 혁명의 영점도 구매완료했구요!자본의 시초축척이 현대에도 계속되는지, 마녀사냥은 어떻게 변형되는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담주부터 읽어보려구요!ㅎ

다락방 2019-02-11 09:55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어떤 책을 읽을지 알고 있으니 너무 좋네요. 같이 읽는 짜릿한 맛이 있어요. 저도 막시무스 님에 맞춰 다음주부터 혁명의 영점을 읽으려면, 이번 주 안에 캘리번과 마녀를 끝내야 하는데...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하핫.

그렇게혜윰 2019-02-1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은 덮어놓고 사다보면 읽은 때가 있는 법!!!

다락방 2019-02-11 08:2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혜윰님. 일단 사두자, 사고 싶으면 사두자, 다 쓸 때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eje 2019-02-1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진짜 짱 멋있어요. 지금 막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책이....책장에 있다니요. 짱멋!

다락방 2019-02-11 08:21   좋아요 0 | URL
짱 멋지죠! 제가 그렇더라고요? 지금도 제 방 책장 앞에 서면 제가 읽고 싶었으나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앞으로 이런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계속 책을 사도록 하겠습니다. 꺅 >.<

syo 2019-02-1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첫 번째 글이 올라왔군요...... 이제 슬슬 하나둘 올라올텐데.....
다들 다 써 놓고 눈치게임 하시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씀드리는건데요,

전 아직 못 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9-02-11 08:22   좋아요 0 | URL
저 템페스트도 읽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도 읽었는데, 하아, 캘리번과 마녀 어려워요. 그간 읽었던 백래시, 페미사이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ㅠㅠ 저 잘 읽을 수 있을까요? ㅠㅠ
얼른 저보다 먼저 읽고 안내되는 글 좀 써줘요, 쇼님 ㅠㅠ

단발머리 2019-02-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관련 없는 질문 하나 드려도 되나요?
저기 뒤에 <템페스트> 오른쪽 뒤에 <가부장제의 창조>가 왜 검정색 책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하얀색 표지거든요. 왜 제꺼랑 다른 건가요? 진지한 질문이라 ㅋㅋ는 넣지 않겠습니다.

다락방 2019-02-12 10: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구판...이라서 그런걸 겁니다, 단발머리님.
지금 나오는 흰색은 개정판일 거에요.

저도 제가 산 게 아니라 이미 구입한 사람이 저한테 준거라서... 하핫

단발머리 2019-02-12 10:20   좋아요 0 | URL
아!!! 맞다, 기억나요.
<가부장제의 창조> 예전에 사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개정판이고. 그쵸? 그래서 제가 다락방님 멋져요! 했던 게 지금 기억나네요.
답변이 완료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12 10:22   좋아요 0 | URL
동시 답변 신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AI설!!!

다락방 2019-02-12 10: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9-27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템페스트…아… 저도요.
400년전 책이 빻은 건 참아도(?) 2010년 영화가 그 멋진 배우들로 마법사를 여자로 세우고도 엉망이어서 실망했어요. 거칠고 바보로 나오는 캘리번도 힘든 캐릭터인데 흑인 배우가 연기하니 더 끔찍하더라고요. 그래서! 애트우드의 버전을 꼭! 읽어야겠어요.

미미 2021-10-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깊이 공감합니다.
이런 단순하고 일방적인 묘사로 그런 비하와 매도가 당연시되고 문화가 되어 꾸준히 답습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님의 이 글을 읽고나니 더 파고파고 파파고 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지고요!(부릅)
 
















알라딘에 처음 서재를 만들고부터 내 퍼스나콘은 쭉 '안젤리나 졸리'였다. 오랜 서재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왜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하냐, 왜 안젤리나 졸리를 퍼스나콘으로 쓰느냐 물었었고, 그 때마다 나는 답했었다. '그 사람은 혼자로도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서' 라고.


내가 보는 안젤리나 졸리는 그랬다. 자기 혼자서도 당당하고 빛나고 강하고 센 여자였다. 남자 따위 없어도 살 수 없는 그런 여자로 아주 오래전부터 내게 인식되어져 있었다. 나중에 브래드피트랑 결혼하긴 했지만, 브래드 피트가 그녀에게 있어도 좋았고 없어도 좋았다. 그러니까 브래드 피트의 명성이라든가 하는 것에 기대가는 것이 아닌, 안젤리나 졸리 스스로의 명성, 스스로의 힘. 나는 그녀가 가진 그것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여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 그녀는 나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내가 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라 봐도 좋았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대해 멋있다고 생각하고 롤모델로 삼게 되는 것은, 또한 부러워하는 것은, 내가 되고자 하는 바를 혹은 내가 원하는 바를 그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거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못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하네, 내가 못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기꺼이 해냈어! 거기에서 오는 짜릿함.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저렇게 멋지게 살아갈거야, 같은 걸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는 롤모델을 만드는 게 아닌가. 나에겐 딱히 롤모델이랄 사람은 없었지만, 굳이 들라고 하면 안젤리나 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도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그 과정에서 연애나 결혼은 있을 수도 있고 또 없을 수도 있는,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인 사람. 많은 부분을 내가 오해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게 내가 보는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남자들이 만드는 영웅,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다른 남자의 모습에 대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심한게 다 뭐야, 정말이지 부끄러웠고 다 죽어버리라고 하고 싶었다. 세상 부러워할 게 없어서 강간범이나 연쇄살인범을 부러워하다니, 그런 사람들을 찬양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가 부러워한다는 것, 열망하고 감탄하고 영웅시한다는 것은, 내 안에 '그렇게 되고 싶은 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며 광광대는 사람이 그들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그들은 연쇄살인범을, 강간범을 영웅시하는가, 왜 그들을 미화하는가, 왜 그들을 부러워하고 왜 그들에게 감탄하는가.


이 책의 9장은 <강간 영웅 신화> 다.



강간 과 영웅이 같이 쓰일 수 있다니, 이것부터가 부조리하지 않은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창조한 전설적 첩보원 제임스 본드는 소련의 방첩 기관 스메르시SMERSH와 싸워서 이길 때마다 여자를 얻어낸다. 상대에게 새로이 성적 흥미를 품으면서 본드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함께했든 그녀 안에는 그가 한 번도 침범할 수 없었던 은밀한 방 하나가 항상 있었다. ……지금 그는 그녀가 깊숙이 흥분에 들끓어 쾌락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녀의 내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저 은밀함 때문에 그녀의 몸을 정복하는 일은 매번 강간처럼 톡 쏘는 맛이 났다." (p.446-447)



그러니까, 이거야? 톡 쏘는 맛? 톡 쏘는 맛이 강간의 맛이야? 그래서 강간하는거야?

어떻게 강강처럼 톡 쏘는 맛이 났다고, 그래서 여자의 몸을 정복한다는 걸 글로 자랑스레 써제길 수 있을까? 인용된 문장은 <카지노 로얄>의 것인데, 와, 나는 저걸 모르고 영화를 잘도 봤구나. 맙소사...



하지만 작가들은 보통 과장하기 마련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가들이 과연 전쟁이든 여성이든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전쟁이 뭔지 진짜로 알았던 남자, 13세기 몽골 대정복을 이끌었던 칭지즈칸은 그의 지위에 걸맞게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성스러운 임무를 설명했다. "남자의 인생에서 최고의 업적은" 자신이 설파한 바를 실제로 실천한 남자가 말했다. "적을 무찔러 내 앞에 끌어낸 후,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무릎 사이에 있던 말을 빼앗고, 그의 여자 중 가장 탐나는 이를 품에 넣는 것이다." 이만큼 영웅적 강간을 뚜렷하게 정의한 언급은 없을 것이다. 여성은 적이 소유했던 말과 다를 것 없는 전사의 전리품이라는 단언. 남자다움, 성취, 정복과 강간의 직접적인 연결 관계를 이보다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표현한 예는 없는지라 칭기즈칸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p.447, Andreas Capellanus, The Art of Courtly Love)



나는 작가들이 강간을, 여성의 몸을 드러내고 미화하는 것에 정말이지 구역질이 난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훈도 자신의 글에서 갓난 여아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저 안은 따뜻할 것이다' 따위의 문구를 썼다는데, 도대체 어느 아빠가 딸아이의 성기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것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아빠라면, 그게 아빠인가.. 나는 그게 너무 끔찍한거다. 내 남편이 내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그딴 생각을 한다는 걸 안다면, 나는 그안에 잠재된 그 무엇이 너무 무서워서 당장 갈라서자 할것이다. 아니면 딸아이 데리고 그로부터 도망을 치던지 말이다. 어째서 남자들은 갓난아이에게도 성적대상화를 시키는가. 성적대상화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왜 물불 못가리고 다 그런식으로 덤벼대는 것인가. 너무 머저리같고 너무 한심하고 너무 찌질하다. 






다수가 자진해서 거주하고 있는 이성애 세계 내에서 남성들은 오직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만 성폭력을 이데올로기의 수준으로 승격시킨다.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는 그 파괴적인 원리를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표정이다. 오랜 판매 경험을 토대로 조성된 전통에 따라 이성애 취향에 맞춰 제작된 평범한 포르노그래피는 커다란 금기를 하나 갖고 있는데, 바로 남자가 남자에게 '그것을 하는' 장면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극단적인 예를 살펴볼 필요는 없다. 평범한 책과 영화, 노래에서도 여성을 짓밟는 폭력을 묘사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남성을 찬미하는 작품들의 인기가 얼마나 공고한지, 그런 주제에만 한 권 분량을 통째로 할애한 책도 있다. 문화가 유포하는 이런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수용할 것인지는 성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p.452-453)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라니!



잭 더 리퍼는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모습으로 남성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1888년 가을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다섯 명의 창녀의 뒤를 밟아 신체를 훼손하고 살해한 신원불명 남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살필 필요가 있다. 나는 <레이트 레이트 쇼Late Late Show>에서 리퍼가 등장하는 영화를 몇 편 접했는데,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뿐이었다. 여성인 나로서는 곧 닥쳐올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자욱한 거리를 걷는 여성 피해자에게 동일시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여성이라면 누구나 나처럼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놀랍게도 남자들은 잭 더 리퍼를 언급하며 '영웅'이라는 단어를 적용했다. 노엘 애넌Noel Annan처럼 흠잡을 데 없는 비평가(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학장으로, 교육자이기도 하다)조차도,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 글을 쓰면서 잭 더 리퍼를 "빅토리아 시대의 공포 영웅"이라고 불렀다. (p.453)



한번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co Chronicle》의 찰스 매케이브Charles McCabe가 칼럼 한 편을 통째로 할애해 리퍼를 주제로 다뤘다. 그는 리퍼를 최고 중의 최고라고 부르면서 "내 어린 시절의 위대한 영웅, 술 취한 창녀에게 인간 도살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혼자 다 해낸 숙련된 전문가"라고 썼다. 매케이브가 열광하며 떠든 소리-그는 리퍼를 영국의 '국보'에 견주었다-는 리퍼 숭배 현상에 대해 약간의 통찰을 제공해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리퍼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가 대체로 섹스와 엮여 있으면서 동기 없이 이루어지는 살인이라는 새로운 살인 유파를 창설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여성을 토막살해하는 일은 결코 동기 없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매케이브는 칼럼에 이렇게도 썼다. "리퍼는 ……역사상 중요한 살인자들 중 유일하게 이름을 모르는 자이다." 이 역시 바보 같은 소리지만, 리퍼에 대한 열광의 기원을 알려준다. 잭 더 리퍼가 중요한 살인자이자 신화적인 존재가 된 이유는 바로 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교묘히 들키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p.453-454)




리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웃사이더The Outsider》(0956)의 작가이자 도발적인 저서《현대 살인백과 A Casebook of Murder》(1969)에서 여자들을 학살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표현한 바 있는 흥미로운 영국 작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을 빠뜨리고 넘어갈 수 없다. 윌슨은 리퍼가 분명 재능 있고 우월한 상위 5퍼센트에 속할 것이라고 전제하고는 그 "행위를 통한 프로파간다"에 깊이 사로잡혔다. (p.455)



리퍼가 설사 재능있고 상위 5퍼센트에 속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그게 그를, 여자를 연쇄 살인한 그를 영웅시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범죄자의 재능으로 범죄를 감춰왔는가? 나는 텔레비젼에 여전히 그 얼굴을 자랑스레 들고 다니는 숱한 남자 연예인들을 보는 것이 괴롭다.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들, 그리고 범죄가 있는데 당당하게 광고를 찍고 영화를 찍고 개그를 하는 것을 보노라면 역겹기 짝이 없다. 이게 바로 강간문화다. 강간을 저질러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바로 이것.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 사람이 그런 행실을 했어도 연기는 잘하잖아, 그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어도 재밋잖아... 그래서? 그래서 뭐? 그 범죄자들을 말고는 연기나 노래를 할만한 사람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그 사람처럼 노래하고 그 사람만큼 연기하고, 그 사람만큼 웃긴 사람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설사 세상에 그 사람보다 더 재미있고 더 연기 잘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우리가 그의 연기나 노래로, 코미디로 그의 범죄를 용서해주는 것은 이 사회에 어떤 사인을 보내고 있는가?


리퍼를 왜 영웅화 하는가? 리퍼가 영웅이라면, 멋있다면,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의 심리에는 어떤 것들이 깔려있는가. 그게 너무 소름끼치는 거다. 왜 그가 멋있어? 응, 내가 하지 못한 걸 했으니까. 뭘 하고 싶은데? 응 그가 이미 했던 것.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는 것, 연쇄적으로.



연쇄살인범, 강간범을 영웅시한 것은 한두명만이 한 일이 아니라, 남자들 전체가 한 일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했다.



믹 재거와 롤링스톤스가 그들의 가장 장대한 공연용 곡 중 하나인 <한밤의 소요자Midnight Rambler>로 보스턴 교살자를 기념하고 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믹 재거의 트레이드마크인 스카프는 교살 도구가 된다.

한 잡지 기자는 <한 밤의 소요자> 연주에 청중이 보인 광적인 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 "키스 리처드가 길고 위험할 정도로 관능적인 기타 전주로 장악하는 동안, 믹은 천천히 밝은 금빛 띠를 푼다. 첫 줄에 '보스턴 교살자에 대해 들어본 적 있겠지'라고 뜨면서, 갑자기 조명이 어두어지고 어두운 붉은 색의 투광 조명 앞에 믹 재거의 실루엣만 남는다. 그는 무대 위에서 살금살금 움직이며 날씬한 엉덩이를 지닌 다성적 존재로 부활한 잭 더 리퍼가 된다. 그는 금빛 띠를 채찍처럼 움켜잡고 내려친다. …… '나도, 나도,' 그들이 소리친다. '나도 때려줘요, 믹." (p.456)




하드록의 전성기에 믹 재거와 롤링스톤스만 유별나게 폭력적 섹슈얼리티를 과시한 것은 아니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과 지미 헨드릭스는 둘 다 이미 죽었지만, 이들이 거둔 폭발적인 성공은 자가 발정적인 강한 한 방을 위해 무대 위에서 여성을 학대하는 흉내를 내며 쌓아올린 것이었다. 이 시기에 어빙 슐만Irving Shulman이 쓴 브루클린 갱의 삶에 대한 1940년대 후반의 동명 소설에서 이름을 딴 '앰보이 듀크스The Amboy Dukes'라는 밴드가 등장했는데, 슐만 소설에서 절정이 되는 장면은 듀크스 무리에게 '몸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이웃 소녀를 강간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익히 발견해왔듯, 낭만적인 마법 뒤의 적나라한 시상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하지만 롤링스톤스는 그중에서도 압권으로, 그들이 캘리포니아 직옥의 천사들과 잠시 연합한 결과 벌어진 비극은 폭력을 찬미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극명히 보여준다. (p.458)




덜컥, 숨이 막힌다.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자를 영웅시해 노래를 만들고, 공연장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내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의 10장으로 가면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는 강간 판타지에 대해 나온다. '수전 브라운 밀러'는 우리 여성들이 그렇게 아프게 되는걸, 죽는 걸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강간 판타지를 가진 여자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물을 수 있다. 그 여성이 가진 강간 판타지는, 그렇다면, 진정 그 여성의 판타지인가? 작가와 비평가 가수들이 모두 한 데 모여서 세상에 강간에 대해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그런 강간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여성에게 과연 강간 판타지가 생겨났을 것인가.




여성이 강간당하기를 원한다고? 우리가 굴욕과 멸시, 신체의 온전성을 침해하는 폭력을 갈망한다고? 우리가 남의 손아귀에 붙잡혀 끌려가 강간당하고 피폐해지기를 원하는 심리적 욕구를 갖고 있다고? 페미니스트가 이런 터무니없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가?

슬프게도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중문화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중문화 속에서 숨쉬며, 그것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거기에 기여하기까지 한다. 사실 조사를 하다보면 위에 언급한 문화적 메시지들이 자주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때는 모든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고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애초에 강간 같은 것은 없으며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소리치는 이유란 성관계 후에 앙심이 생겨 복수하려 드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잘못은 언제나 여성에게 있다. (p.486-487)




내가 누누이 말해왔지만, 어떤 걸 욕으로 하느냐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여자를 욕으로 쓰는 사람, 동성애자를 욕으로 쓰는 사람. 그것이 욕을 내뱉는 그 사람을 말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구를 영웅시 하느냐로도 역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연쇄살인범을, 강간범을 영웅시하며 따르는 사람,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에게, 대체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것 말고 다른 어떤 게 더 있단 말인가. 자신 안에 많은 여자를 강간하고 싶은 마음, 정복하고 싶은 마음,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자기 대신 그걸 해준 사람을 보고 영웅시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직 못했는데, 저 사람은 했네, 위대해!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각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도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다 떠나서' 그 사람은 그래도 재미있잖아, 천재적이잖아, 하며 범죄자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그럴 수 있지'라고 할 수가 없다. 왜 가장 중요한 걸 제쳐두고 '그래도 능력있잖아'가 따라오는가. 나는 싫다. 그만큼 능력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범죄자의 재능을 가져오며 범죄를 숨겨주는 사람들, 범죄를 뒤로 미뤄두는 사람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어. 그 범죄가 여성혐오에 관한 것이라면 더 그렇다. 일전에 '이사카 고타로'가 자신의 책 《골든 슬럼버》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입을 빌어 '강간에는 명분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살인이라면 복수라는 명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강간에 대해서라면 어떤 명분도 있을 수 없다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간혹 복수라는 이름으로 강간하는 남자들이 나오는 건, 그 복수가 그 여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를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남자를 향한 것이다. 그 복수가 진정한 복수인가, 결국 그들이 해를 입히고 다치게 한 건 누구인가.




현재 이 책의 10장을 읽고 있고,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12장은 <여성이 반격한다> 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벌써부터 이 부분을 읽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결국, 여자들은 말하고 살아남는다. 말하고, 살아남기 위해 반격한다. 그게 11월, 12월 그리고 1월을 지내는동안 페미니즘 책을 같이 읽으며 내가 느낀 바다. 여자들은 반격한다. 반격하고 살아남는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19-01-3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래서 안젤리나졸리를!! 다락방님 이야기 들으니 그녀가 진짜 멋져보이네요.
그나저나 강간이 톡쏘는 맛이라니ㅡ 여남 인식차이 끝판왕 표현이네요 진짜.. 노어이..

다락방 2019-01-30 13:09   좋아요 1 | URL
강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여남의 인식차이도 그렇지만 뭐랄까, 한 쪽 성은 유독 더 멍청하고 한심한 것 같아요. 무엇이 잘못인지 계속 인지하지 못하고 살면 결국 다른 한쪽 성에 비하여 뒤쳐지게 되겠죠.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그녀가 그러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저 스스로 그녀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아서 제가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1-3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저는 스타트도 늦었고 막판 스퍼트도 늦다보니 지금 저도 10장 읽는 중인데(지금 쓴 시점에 다락방님은 거의 다읽은 듯..;;) 얼른 다 읽고 오늘밤이나 내일 부터 글도 쓰려고 하는데 내일!이 마지막날이었네요. 얼른 읽어야겠네요!!

아 그리고 다락방님께서 안젤리나 졸리를 얘기하시니 작년 말에 난민 문제로 한국에 와서 법무부 장관도 만나고 정우성배우랑도 만나고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갑자기?)

공쟝쟝 2019-01-30 21:04   좋아요 1 | URL
여기 29일에 본격 읽은 제가 있사옵니다!! (ㅋㅋㅋㅋㅋㅋ) 누가 쫓아오진 않지만 너무 급히 읽다 체하시지 말기_!!

다락방 2019-01-30 21:09   좋아요 2 | URL
저 다 읽었습니다! 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서서 가면서도 들고 읽었어요. 고된 퇴근길 이었습니다. 자, 끝까지 힘내세요, 여러분! 그리고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블랙겟타 2019-01-30 21:13   좋아요 0 | URL
그그럼 쟝쟝님 믿고.. 조금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놔도 괘괜찮겠죠? 하하..

역시...다락방님. 퇴근 길의 상황속에서도 완독을.저도 마무리를 하러.

공쟝쟝 2019-01-30 21:11   좋아요 1 | URL
아 다락방 이언니 멋지시다. 롤모델 없었는데 롤모델 삶고 싶다🥺

공쟝쟝 2019-01-30 21:17   좋아요 1 | URL
전 겟타님 믿고 ㅋㅋㅋ 천천히 완독할께요 🥰

다락방 2019-01-30 21:38   좋아요 1 | URL
무릇 여자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우라도 베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다면 한다! 완독을 위해서라면 퇴근길도 마다않는 강한 정신!!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