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사랑이라면,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저도 모르게 저이랑 손잡고 사람 없는 바닷가 모래밭쯤을 걸어 보기라도 한다면, 싶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붉어지고, 고개가 돌려지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러다가 억지로 손에 일을 잡는 것도 사랑이라면, 글쎄 사랑이었다. 승희네가 보기에 문기사의 긴 머리가 손가락 걸기 좋아하던 남자와 닮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이름하여 부르기 어려운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파고들고 몸을 가볍게 했다. 그래서 그녀의 가슴은 근래 들어 벙글어지고, 가렵고,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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