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모놀로그 - 개정판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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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가는 밤기차 안에서 보지의 독백을 읽는다. 보지의 털을 미는 것에 대한 화자의 느낌이 나와 같다. 성인 여자에게 보지의 털은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걸 왜 밀라고 하지? 왜 보지에 털이 나기 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거지? 왜죠?

거기에 털 있는 거 싫으면 니꺼나 밀어,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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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7-03-25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제목의 연극을 본 기억이 있어요

묵호라는 지명도 오랜만이네요
정동진도 아니고 묵호가 목적지라는게 이색적이네요 :)

다락방 2017-03-25 00:35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래전에 연극으로 먼저 봤었어요. 이제는 기억이 희미한데, 책으로 읽으니 참 좋으네요.
사실 묵호는 저의 경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가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저는 여태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그나저나, 밤이 늦었는데 안주무십니까!!

비로그인 2017-03-25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 저녁이라 늑장부리고 있어요

묵호역 근처에 어판장이 있는데 가보심이 어떨지. . 등대에도 올라가 보시구요



묵호까지는 아직 한참이고 차창 밖도 고요할텐데요
밤기차 부럽네요 😊

다락방 2017-03-25 02:20   좋아요 1 | URL
네 가능하면 그렇게 할게요. 저는 아직도 도착 전이에요. 한 숨 자고 일어났네요. 하핫

기억의집 2017-03-25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미치겠다~ 다락방님!!!

다락방 2017-03-25 13:03   좋아요 1 | URL
^_____________^

자작나무 2017-03-25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좋네요

다락방 2017-03-26 08:49   좋아요 1 | URL
하하 오랜만입니다!

[그장소] 2017-03-2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김영하의 소설 비상구 ㅡ였나 그걸 처음 읽었을 때 충격 ㅡ ㅋㅎ 다시 느끼는 중 !
영화 러브픽션 ㅡ인가요? 공효진 , 하정우 나온 영화 ..거기선 겨드랑이 털이 나오는데 음 , 그 때 그 장면은 기묘하면서 시원한(?) ㅡ 그런 감정였어요 . ^^ 한마디로 정의되진 않는 기분요.

다락방 2017-03-27 08:30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러브 픽션 그 영화는 저도 봤어요! 거기에서 공효진이 겨드랑이 털이 아주 무성한 여자로 나왔지요. 영화 색,계 에서도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이 나왔고요. 사실 성장하면서 털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걸 미는게 미덕처럼 되어버린 게 영 못마땅해요. 겨드랑이 털 면도하는 거, 정말 귀찮잖아요. 그런데 성기의 털을 미는 것은 겨드랑이 털을 미는 것과는 또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래저래 복잡한 기분이었고, 나빴고, 책 속 등장인물처럼 화가 났어요.

이 책 좋았어요, 그장소님! 버자이너 모놀로그 말입니다. 후훗

[그장소] 2017-03-27 12:27   좋아요 0 | URL
시대를 따른 미의식이 겨드랑이 털마저 밀어버려야 할 것으로 되버리긴 했는데 , 극속에서 공효진의 겨드랑이 털은 남친에 의해 은밀성을 강요받잖아요 . 사랑이란 이유로 ...거기서 더 번져서는 나중에 몇명이랑 잤냐가 결과값처럼 나오고요 . 공효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밖에 드러내도 이상할 게 없는 신체 일부 예를들면 손 ㅡ같이 그러거였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말하려니 복잡해지네요 . ㅎㅎㅎ
분명 신체에 있는 필요에의해 자라는 털인데 음모의 면도와 겨드랑이의 면도 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니 ㅡ 뭐랄까 ㅡ 로리즘? 미성숙한 신체를 원하는 듯 여겨지네요.

버자이너 모놀로그 ㅡ이.책 메모해 놓을게요!^^

다락방 2017-04-01 19:37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네요. 그장소님, 저 역시 성기의 털을 밀라는 것은 미성숙의 여체를 원한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불편하고 ‘이건 아니다‘의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것이 아니라면, 털이 털로써 싫었다면, 그렇다면 자신의 털을 미는 게 먼저여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장소] 2017-04-02 04: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 자신 것을 먼저 밀고 , 취향이야 ㅡ 한다면 마음에 닿는 것도 덜 까칠 했을 텐데 .. 그쵸? 그런 녀석 걸리면 신나게 육탄전으로 눈 밤탱이 만들어 주고 싶네요 . 징그럽다 이녀석아! 하고요 . ㅎㅎㅎ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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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모든 남성들이 젠더관계의 이데올로기적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단어 앞에 '여성을 혐오하는' 이라는 수사를 붙여 혐오 집단을 제한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가 있다면, 나는 스스로 질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성의 자율성과 권리를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신은 대학 내 압도적인 남성 전임교수 비율을 조정하거나, 여성에게 부과되는 양육과 돌봄의 책무를 시정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거나,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거나, 여성노동의 저임금화를 극복할 물질적 토대를 고민하는 일을 방기하거나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제도적 물질적 변화를 강구하기보다 그러한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말하기 방법이 잘못되었다거나, 폭력적이라는 점만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남녀평등의 수사학을 쓰면서도, 페미니즘 연구 환경의 척박함을 개선하기보다 인용할 만한 수준을 가진 여성 철학자가 없다거나, 여성에서 출발하는 이론이 모두 파시즘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면, 당신은 인정의 수사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는 여성혐오 집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 p.101-102)

고백하건대 심경이 복잡해진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었다. 일부 여성들, 아니 오랫동안 여성철학을 연구해온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메갈리안이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메갈리안들이듯, 여성도 여성들이며 페미니스트도 페미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p.10)

그러던 내가 이제 글을 쓰기로 했다. ‘결국, 난 꼰대였던 거야‘라는 좌절에서 ‘그래, 이왕이면 제대로 꼰대질 하자‘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동안 궁리해온 페미니즘 철학과 이를 가능하게 해준 페미니즘의 계보들을 인용하는 가운데 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도 않은 채 소거될지라도 내 언어를 입 밖으로 꺼내보기로 했다.
내가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비체abject‘라는 개념을 재고하게 되면서였다. 다시 보니 ‘비a-체object‘, 즉 어떤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참 유용한 언어였다. 어떤 존재를 무엇이다(A) 라고 규정하기 않고, 무엇이 아니다(~A)라고 말하는 방식은 그 존재를 어떤 경계에 가두기보다 그 여분의 공간, 경계의 열림에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페미니즘의 역사는 남성이 정해놓은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었던 여성들, 항상 흐르고 있기에 개념적으로 잡힐 수 없는 ‘비-체‘가 되었던 여성들에 의해 쓰인 것이었다. 그녀들이 비판받거나 마년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기존의 언어나 질서로는 파악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p.12-13)

여기서 함께 아파함, 타자에 대한 연민, 즉 동정심에 주목해 보자. 기존의 도덕과 법에서 동정심은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가령 "동정심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나 전지구적 차원의 정의를 위한 해외 원조와 같은 노력을 뒷받침하는 중심적 지주가 될 수 있으며, 취약한 집단이 겪고 있는 억압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정심이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라는 데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게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혹은 그들의 수준은 우리의 수준보다 낮다는 믿음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는 고통을 이겨내거나 고통받고 있지 않은 내가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길리건과 위긴스는 동정이 사랑과 별 상관 없는 말이라고 한다. 오히려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은 그/녀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동정은 대상에 대한 나의 우월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p.96-97)

공감은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감은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정서적 결합관계인 것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우월이나 열등과 같은 불평등이 아니라 서로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경험이 잠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사람들은 공감 안에서 서로의 다름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공감은 내가 타인의 삶에 참여participate하는 태도이다. 공감은 타자를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것은 "그의 곁에with"서 나와 다른 그의 상황과 감정을 함께 경험한다는 의미이지, 그와 동일하게 느낀다거나 그의 옆에서 거리를 두며 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감을 통해 나는 나와는 다른 타자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p.131-132)

가령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녀를 판단하기보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나 조건, 경험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녀의 고통에 참여한다면, 나는 이를 통해 경험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타자의 차이를 경험하는 공감은 타자 속에서 자신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동감과는 대조적이다.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공감은 타자의 곁에서 타자의 경험에 참여하는 가운데 타자의 다름을 경험한다. 따라서 공감은 경험의 확장 속에서 자아 자체를 변화 시킨다.
마지막으로 공감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관계, 즉 "상호감응responsiveness to each other"하는 관계이다.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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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2-0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경험에 비추어 가 아니라 상대가 처한 상황 등에 관심을 기울여 상대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공감이군요. 많은 생각 하고 갑니다.

블라디보스톡은 좋았나요?^^

다락방 2017-02-06 08:20   좋아요 0 | URL
동정이나 동감과는 다른, 상대와 같은 위치에 서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서 참 좋더라고요. 역시 공감이 살 길이기구나 싶었어요. 그러고보면 많은 문제들이 공감하지 못해 일어난 일인 것 같고요.

블라디보스톡은 막 좋았던 건 아니고요 ㅎㅎㅎ 가서 추위를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볼 찢어질 것 같은 순간들은 어찌나 많던지요.. 하하하하하. 저는 러시아 찬바람 맞으러 다녀왔다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아무개 2017-02-06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저도 딱 저 부분 강조해서 발췌했었는데요!!!

공감이 중요하죠. 그럼요 그럼. ‘독서공감‘ 처럼요 *^^*

내일이 첫강의시간인데 뭔가 긴장됩니다.
한개도 못알아 먹을꺼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ㅡ..ㅡ

다락방 2017-02-06 08:18   좋아요 0 | URL
책 내용이 좋긴 했는데 되게 학술적인 논문의 느낌이라 저는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이렇게 안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쉽게 어떻게 안될까? 라고 어제 책장을 덮고 고민하다가, 역시 내가 쓰자...라고 생각하다가...음 그렇지만 공부가 부족해, 갈 길이 멀다... 했어요. 아하하하하.

저는 내일 강의 신청 안했어요. 사실 안들을 생각이긴 한데, 아직까지 확 결정한 건 아닌것 같고... 하아- 몰라요. 어쨌든 잘 다녀와요!

아무개 2017-02-06 08:26   좋아요 0 | URL
저는 바로 그 학술적인 논문 느낌이라서 좋았거든요.
입문서 보다는 조금더 깊이 있게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
아마도 각자가 책에서 기대하는 바가 달라서 그런듯요.

넵. 근데 첫 강의부터 쥬디스 버틀러 라니 크흡.


다락방 2017-02-06 08:33   좋아요 1 | URL
저는 제가 듣지 않는 것에 대해 뭔가 스스로 변명을 만들고 있어요. ㅎㅎㅎ 2월달에 둘째주와 넷째주에 많이 늦을테니 안듣는게 낫다...라고 스스로 합리화 ㅋㅋㅋㅋㅋ 듣고 싶은데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ㅠㅠ 저는 봄이나 여름에 또 하면 그 때 노려보려고요.

이현재 선생님은 강의에서도 말씀하셨었는데, 본인이 온건파 페미니스트였다고 해요(책에도 나오지요?). 그런데 온건파로 있다보니 아무도 그 말을 안들어주는 것 같아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쎄게 주장해야 그나마 들어주는 척이라도 한다고... 이 책이 뭔가 확 새롭다기 보다는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흐름을 잘 정리해준 것 같은데, 메갈리안과 워마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서 뭔가 든든하고 좋더라고요. 게다가 이 분 강의가 저는 제일 좋았어요. 본인이 열정과 흥미를 갖고 계시고 잔뜩 흥분한 채로 설명하셔서 참 좋더라고요.

아무개님, 공부 화이팅!!
 





노동자들의 행동에는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열악한 노동 조건, (적절한 것과는 거리가 멂에도 불구하고 강자의 논리에 따르면) 적절한 보수, 사회적으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오랫동안 견뎌왔던 노동자들이 일을 중단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당연히 주주들의 악랄한 남용이 작용했을 겁니다.
노동자들이 언제 수익 배당금, 주식 매입 선택권 업무용 고급 승용차, 개인 잠수함, 제트기 따위를 요구하며 파업하는 것을 본 적 있나요?
반면 수익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할 수는 없는데도, 이윤에 대한 주주들의 욕망은 한도 끝도 없이 높아만 가요.
어린아이가 사탕 봉지에서 그 작은 주먹으로 사탕을 한 움큼 꺼내면, 보통 다시 내려놓으라고 충고하잖아요. "그렇게 많이 먹으면 안 돼!" 라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억만장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러면 안 돼!
혼자 다 먹어버리면 안 돼.
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어야지.
옷을 입은 채로 수영장에 뛰어드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오직 수익만 생각하고 공장 문을 닫으면 안 돼! (p.134-135)

아, 참.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그리스 파산, 유럽 부채, 긴축 재정,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뭐 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니, 상관있다고?
그게 자기 아이디어였어?
왜 그랬어. 불쌍한 그리스 사람들!
아 헤지펀드의 전설 조지 소로스와 내기를 한 거였다고. (조지는 세계 70억 인구 중에 스물세 번째 부자예요. 그는 내기를 너무 좋아해요. 문제는 돈이 많디 보니까 로또를 사도 배합 가능한 모든 번호를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는 어느 쪽에 걸었는데?
유럽 경제가 붕괴되고 이자율이 인상된다는 데에? (p.103-104)

그중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비리와 특혜의 선봉에 서 있는 기업은 삼성이다. 최순실에게 35억 원을 던져주고, 국민들이 한두 푼 모아 만든 국민연금에서 7천 9백억 원을 축내면서 8조 원을 주머니에 챙긴 대범한 자들의 이름은 이 책의 첫장에도 꼼꼼히 등장한다. 이건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홍라희... 한 패밀리가 수세대를 걸쳐 법치를 무력화시키며,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감옥의 문턱을 밟지 않았다. 슈퍼리치들의 행태는 세게 어디서나 같다. 그들이 무너지면 이 나라도 같이 무너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하는 짓을 눈감아줘야 한다고 믿는 노예들이 있는 한, 그들은 점점 더 가혹하게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 p.19)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이력에 좋을 것 같다고 판단되어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 이어간다면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노후를 위해 섹스를 참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p.174, 워런 버핏의 명언 베스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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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7-01-26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돈은 모두S 가족들이나 친인척이 다 쥐고 있군요.. 흠...... 이럴 수 가.

[그장소] 2017-01-2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녈 가계도 를 그림이 빠르겠는걸요!^^;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 - 우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
클레망틴 오탱 지음, 류은소라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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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서로 적당할 듯하다. 분량이 적고 애초에 십대 후반의 남성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거라, 기초적인 설명들이 나오니까. 그러나 여러권의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은 건너뛰어도 좋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에게 "그럼 왜 뛰쳐나오지 않고 같이 사는 거야?"라며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장 확실하고 빠른 해겨책은 피해자가 집을 나오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식의 이런 판단은 너무 단순하고 미숙한 태도야.
어떠한 권한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세계의 전부인 가정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런 식의 생각은 정작 심리적 가해자가 가정 폭력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거지. 저마다의 개인이 마른 나뭇가지 꺾듯 단박에 가부장제 역사의 무게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p.17-18)

저널리스트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이야. "나는 한 번도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된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나는 사람들이 나를 흙이나 터는 발판 취급하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을 뿐인데, 그런 행동을 두고 나를 페미니스트로 대한다는 것이다." (p.100)

페미니스트가 원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지배 관계를 역전하는 것이 아니야. 여성들의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버리지 않는 것,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 가증성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기를 바라는 거야. (p.101-103)

페미니스트들을 구별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매기는 일은 쉽지 않아. 페미니즘이 하나의 교리적 이론일거라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페미니즘이야말로 다양한 견해들 사이에 토론해야 할 주제이며, 그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해.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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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다시 쓴다 -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정희진 엮음, 한국 여성의전화 연합 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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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이 너무나 적절하게 말했듯이, 식민지 사람들은 지배자의 언어와 자기 언어, 두 개의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자기 언어만 알면 된다. 여성은 남성의 언어를 이해해야 생존할 수 있지만, 남성은 여성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정희진,p.9)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폭력의 범주는 직접적, 가시적, 신체적인 의미의 폭력에만 머물러 있다. 성적, 심리적, 정서적, 경제적 차원의 성차별 제도 안에서 형성된 여성의 인식과 해석은 여성폭력 개념 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소위 ‘정조 관념이 투철한 순결한 여성이 목숨 걸고 저항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당한‘ 사건처럼, 성폭력에 대한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 부합할 경우에만 폭력을 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여성은 자신의 성역할(‘순결‘)과 목숨을 바꿀 것을 요구받는다. 때문에 유아 성폭력이나 윤간처럼, 여성의 행위성이 삭제된 저항 불능 상황의 폭력만 성폭력으로 인정되고 이러한 피해자만 ‘진짜‘ 피해자가 된다. 이로 인해 검거되는 성폭력 가해자는 언제나 10대 남성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는 다시 성폭력이 10대의 ‘혈기 왕성한 본능‘으로 해석되는 근거를 제공한다. 남성 시각의 성폭력 해석이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정희진,p.31-32)

섹슈얼리티로 인한 여성의 고통은 비가시화된다. 낙태, 구타, 성매매등 대개의 여성 섹규얼리티 관련 문제는 형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합법이다. 그래서 섹슈얼리티 문제는 법 제정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련법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남성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시각과 의지가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희진,p.33)

운동사회 성폭력을 문제화할 때 항상 제기되는 대표적 담론인 ‘음모론‘과 ‘조직보위론‘은, 남성의 경험에서 정의된 ‘진보‘의 대의·조직이 어떻게 여성의 경험을 주변화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선 ‘음모론‘은 성폭력을 여성-남성의 문제가 아닌 남성-남성의 문제로 환원하는 방식의 하나이다. KBS사건에서 피해자들의 경험은 가해자와 대립하는 다른 남성(집단)의 음모로 끊임없이 치환되었다. 2000년 말 노조 선거 당시에는 "상대 후보의 조작"으로, 2001년 2월 100인위 공개 당시에는 "막 출범한 노조의 단합을 흔들려는 세력의 발흥"으로, 2001년 5월 언놀노조의 가해자 징계 당시에는 "비리를 감추기 위한 언론 노조 일각의 비이성적 작태"로, 가해자는 전가의 보도처럼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러한 해석 속에서 피해여성들은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배후 세력‘의 조종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수단‘일 뿐이며, 성폭력은 여성 인권 침해가 아니라 남성간 권력 투쟁에서 활용되는 ‘빌미‘일 뿐이다. 피해자들과 친한 주변사람에서부터 기자, 검사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논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전희경, p.59)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 무고, 모욕, 심지어 간통 등으로 역고소한 예는 이전에도 있었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명예훼손 역고소), 1988년 강정순 씨 피해 사건(무고 및 간통죄로 피해자 구속), 1993년 서울대 신정휴 성희롱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폭력 피해 말하기‘를 범죄로 만듦으로써 성폭력 근절 노력을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이때 피해여성의 성폭력 문제 해결 노력은 남성 특권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전희경, p.63)

아내구타를 제외하고 아내강간을 포함시킨 성폭력특별법안은 이후 국회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내강간 조항마저 삭제된다. 당시 한 국회의원은 "아내강간을 처벌한다면 우리나라 남자들의 대부분은 아침에 직장에 가지 못하고 경찰서로 오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아내강간‘이 남편의 권리이자 아내의 의무로서 얼마나 일상화·정상화 되어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일상‘이고 ‘정상‘인 여성폭력을 문제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증한다. (정춘숙, p.95)

이미 한 번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다 잡혀 들어와 폭행당했고, 성적 학ㄱ대로 수치심과 두려움에 숨죽여 있던 피고인이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죽여버리겠다"고 가위를 들고 몸을 일으키는 남편에게 대항할 때, 어떻게 팔 다리를 구분하여 찌를 수 있으며 어떻게 다시 도망갈 엄두를 낸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항소 이유서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사망케 하는 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감히 살인이라는 결과를 의욕하였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합니다"라고 살인의 고의성을 주장했다. 검사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였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이를 인정하여 김정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였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은 성인-비장애-남성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화하는 남성 권력의 실천일 뿐이다. (정춘숙, p.110)

젠더 폭력으로서 ‘몰카‘와 성폭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피해여성이 ‘죄인‘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강간 범죄에서나 ‘몰카‘ 범죄에서나 문제화되는 것은 ‘가해자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신이다. 둘째,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 자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긴다. ㅂ씨 피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스스로 ‘ㅂ씨와의 성관계를 찍은 몰카를 가지고 있다‘며 언론에 범죄 사실을 알렸으며, ㅂ씨는 사건 발생 초기에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는 강간범이 강간 피해여성에게 ‘강간 사실을 가족·주변 등지에 알리겠다‘며 협박하고, 피해여성은 이를 숨기기 위해 가해자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메커니즘과 똑같다. 범죄는 가해자가 저질렀으되, 사회적 처벌은 피해여성을 향한다. (강김아리, p.135)

셋째, 강간과 ‘몰카‘의 정치적 효과는 일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일상적으로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 이제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 숙박 시설을 이용할 때 ‘몰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에 대한 주변의 반응과 처벌 과정은, 잠재적 피해여성들에게 ‘이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기제가 없으며, 당하는 사람만 피해를 보는 것이니, 미연에 알아서 조심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즉 ‘ㅂ씨 비디오‘의 존재 자체가 일반 여성들에게 일종의 ‘경고‘이자 ‘본보기‘인 것이다.
강간 문제에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남성의 폭력성‘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었듯이, ‘몰카‘ 역시 여성의 몸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든다. 강간과 ‘몰카‘, 그것은 여성들 스스로 종속을 체화하게 하는 가부장제적 공포와 통제의 수행자이다. (강김아리, p.136)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돕는 상담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피해자들을 특정한 전형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폭력 피해여성들이 항상 불안해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폭력의 결과일 뿐이지, 그런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피해여성들 중에는 가해남성보다 기질이 세거나 활동적인 사람도 있으며, 착하지도 않고, 일상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이도 있을 수 있다. 피해여성들은 가해남성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이러한 피해여성을 만나면 혼란스러워한다. 특별한 사람만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혼란을 갖게 되는 이면에는 ‘순수한 피해자‘,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라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통념은 여성 폭력에 대한 비판을 ‘피해 사실‘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게 한다. (김효선, p.176-177)

‘전형적인 피해자‘란 남성 사회의 신화이자 남성들이 투사하는 희망적 판타지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그런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폭력을 문제화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피해 사실, 그 자체여야 한다. (김효선, p.177)

우 지사 성추행 사건을 공개하고 정치적 법적 역공세에 대응하는 동안 제주여민회에 대한 지역 여론은, 한마디로 ‘요망지지만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왜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권력의 무서움을 모르고 대항하는 당돌한 운동 방법 역시 미숙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어떤 이는 우 지사 성추행 사건이 선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변화 불가능한 것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무모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제주 사람들은 4·3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권력의 요구에 순응해왔고, 선거는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해 좌우되어왔다. 이와 더불어 제주지역에서 ‘정치‘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고 남성적인 문제로 간주되어왔기에 성추행은 선거에서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았다. ‘당돌하다‘라는 말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평가적 언어이다. 이런 의미를 여성단체 활동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남성의 눈으로 여성단체의 활동을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효선, p.180)

현숙 씨 자신이 강력히 제기하고 있는 ‘미혼모‘용어의 부당성이다. 이런 맥락에선 ‘비혼모‘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현숙 씨는 지적하고 있다. 즉 ‘결혼‘을 기준으로 해서 ‘미혼모‘ 혹은 ‘비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지금처럼 결혼이 선택인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숙 씨는 "‘미혼모‘란 용어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여성이 아이를 키우거나 또는 키우지 않기로 하는 상황과는 별개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만 강조하는 감이 있다"며 "‘독신모‘나, 외래어지만 ‘싱글 맘(single mom)‘이란 용어가 훨씬 평등한 용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 자신도 스스로를 ‘싱글 맘‘이라 부르며 딸에게도 "우린 싱글 맘 가족이지, 그치"라고 말한다. 혼인 관계만을 잣대로 모성을 규정한다면, 스스로 어머니가 되기로 결정한 여성의 권리가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이은경, p.201-202)

군산시 대명동 윤락가 화재 사건은 처음 불이 났을 때부터 진화까지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5명이 숨졌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참사였다. 특히 5명이라는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는 윤락 업주가 윤락녀들이 도망가지 못하기 위해 쇠창살로 창문을 막고 통로를 한 곳에만 설치한 데다 윤락가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인 무관심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미례, p.208, 당시 언론재인용)

그런데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군산 지역 성매매업소(개복동 유흥주점) 여성들이 경찰에 정기적으로 ‘성 상납‘을 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충격을 주었다. 당시 3명의 여성들은 배 변호사에게 "1998년 중순부터 18개월 동안 군산 지역 형사들에게 100여 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술 접대를 했으며 경찰 고위 간부 등에게 수차례 ‘성 상납‘도 했다"고 밝혔다. 이는 성매매 업주들이 군산 지역 공무원들에게 정기적인 ‘성 상납‘을 해왔으며 이런 유착 관계 때문에 경찰이 성매매업소 단속을 사실상 방치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정미례, p.215)

한편 2000년 9월 26일 《한겨레》에 서울 미아리 성매매업소 포주들이 ‘상납계‘를 만들어 단속 경찰들에게 3년여에 걸쳐 6~7억 원대의 뇌물을 전해온 사실이 보도되면서, 성매매 업주와 경찰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에 있음이 전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었다. 법으로는 성매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성매매가 광범위하게 용인되는 한국 사회에서, 경찰은 이미 성매매 산업 구조의 일부이다. (정미례, p.219)

현행법상 명예훼손은 피해여성이 여성단체에 상담하는 등 피해 사실을 제3자에게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해남성은, 성폭력 가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피해여성을 괴롭히는 자신의 행위를 남성의 인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 중ㅅ임적 사회 구조에 편승한 가해남성의 2차 성폭력 행위(social rape, second rape)가, "성폭력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보편적 인권 개념으로 옹호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폭력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인권은 성폭력 가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 등을 의미하는 것이지,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여성을 억압하는 가해남성의 권력이 인권은 아니다. (정희진, p.236-237)

성매매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의 입장을 ‘여성 이기주의‘, ‘장애인 차별‘, ‘비장애인 중심주의‘의 일환으로 보는 남성 장애 인권운동가의 전제는 장애 남성도 비장애 남성과 똑같이 매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장애 여성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같은 입장을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적인 장애 인권론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일부 장애 남성의 주장은 그들 자신이 비장애 남성으로부터 차별 받으면서도 그것을 비판하기 보다는, 남성 성기 중심적이며 여성과 장애인에게 억압적인 이성애자의 섹스를 끊임없이 모방함으로써 정상성을 욕망하는 것이다. 장애 여성, 비장애 여성, 장애 남성은 비장애 남성 섹슈얼리티의 공동의 피해자이다. (정희진,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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