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구) 문지 스펙트럼 14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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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를 만난건 북경의 어느 학회에서였다. 서로 우연히 기회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마종기 시인의 아들임을 알았다. 모교의 선배이기도 한 마종기 시인은 그렇게 내 삶과 가까와졌다.
 
이 책은 1960년 첫시집 [조용한 개선]으로부터 2002년 나온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까지의 그의 시집중 발췌된 70여편의 시를 실었고 또 연대순으로 나열하여 시인의 삶과 비추어 살펴보는데 큰 재미가 있는 시선집이다.
 
본과 1학년을 마치고 낸 첫시집은 그의 의대생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을 담고있다. 하지만 그는 해부학교실에 누운 사체 앞에서도 인간을 발견하고 그들의 삶을 본다. 시를 마음에 가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삶의 뒷면이다. 그가 인생중 가장 고통스런 시절이라 이야기하는 미국에서의 인턴시절후 낸 공동시집 [평균율]에는 또한 그 당시의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가 죽어간 그의 환자를 속속들이 아는 까닭은 그들의 육체 구석구석 그들 자신도 보지 못했던 곳까지 부검하며 들추어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고통의 병상에서 드러내보여준 환자의 고통을 알고 들을 수 있었기에 그는 그들을 안다. 인간을 안다는 것은 육체를 안다는 것이 아니듯, 삶을 안다는 것은 살아가는 겉모양새로 아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그의 시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삶에 대한 통찰과 삶너머에 대한 희망을 비춘다. 동화작가이셨던 아버지 마해송는 너무 일찍 그의 곁을 떠나셨다. 아들이란 아버지를 나이들어가며 알아갈 뿐이다. 본질을 따라가던 아버지는 아들이 그 길로 들어선 순간 그의 앞에 여전히 앞서 가고 계시다. 사는 것은 육체가 아니다. 살 이유는 생존이 아니다. 안보이는 나라를 보고 그 나라 위해 불을 켜는 것이 삶살이다. "눈사람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나"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머나먼 이국에서의 삶과 그곳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삶에 대한 물음 그리고, 신에 대한 알아감은 그의 그 이후 시집의 주류를 이룬다. 그에게 물의 이미지는 죽음이다. 그것은 한편 죽음을 통한 씻음이며, 스스로 더러워지며 남을 깨끗케 함이며 스스로가 비천하여져 남을 낫게 함이다. 이 물은 소중한 주위의 사람과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원한 강물이 된다. 삶은 그렇게 지나간다. 평화를 전한다 다가올 세대여...내가 거저 받은 것을 그대에게 전한다. 그분은 너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사체에서 흘려내려 홀로 흐르며 쓸쓸했던 물은 이제 하얀 눈이 되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덮는다.
 
시인에게 육체를 파내고 남은 물은 다시 맑은 물이 되고 강물의 일부도 되며 하늘로 올라가 눈이 되어 사람을 잇는다. 은퇴한 후 내신 시집에는  정처 없이 가는 줄 알았던 인생에도 길은 있었구나. 저물어가는 인생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움은 모든 것을 품는구나 한다. 이 분의 시에는 내가 살았던 인생이 있고, 또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정말 그의 노래에 위로 받고 행복하다. [진심이 아닌 것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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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14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균율>이라는 시집 이름 오랜만에 듣네요.
전 그렇게 예쁜 시집을 이때까지 본 적이 없어요.
이 책도 보관함에......

카를 2005-06-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균율]의 공동저자인 황동규와는 중학교 동창이고, 김영태와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다지요...스물 여덟에 이들이 낸 시집인 셈이죠. 지금은 학교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군요. 저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가 가장 맘에 듭니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1998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220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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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의 이름을 내게 다시 들렸던가
아마 박노자였나보다. 어느 묶음글에 나온 박노자의 회고적인 글에 문득 황지우의 이름을 보았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아마도 오육년 전이었겠지
그의 시는 나에게 고욕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고통은 과장되고 그의 넋두리는 내게 엄살처럼 들렸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시간이 지나고
그의 시는 나를 펑펑 울게 한다
그의 금붕어 담긴 비닐봉지를 느끼고
그 막 너머 갈 수 없는 곳
가고 싶으나 아직은 여기의 삶이 더 소중하다는 어렴풋한 확신
그는 꺾여진 자기 날개를 바라보던 콜리지의 아픔을
이곳에서의 사랑으로 가슴 아픈 디킨슨의 승화를 다시 보게 한다
늙음과 질병과 죽음. 그 너머에 깨끼발 뛰며 마냥 웃게될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
나는 그를 다시 발견한다
술잔 앞에 고개숙인 우울한 선배가 아닌, 두눈 한가득 다음 세상을 머금은 한마음으로
이제 그와 가죽부대를 늘어뜨리고 마주 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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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를 2005-06-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꺽어진을 바꾸는 김에 아예 꺾여진으로...
 
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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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내뱉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냉소적 한마디로 이 책은 시작된다.

[친구? 그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그땐 친구라는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분명 이 책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이다. 작가의 에너지는 온통 그의 고집불통 아버지, 그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태도와 자기를 화해시키려는데 몰려있다. 이 점에서 만화이면서도 이 책이 갖는 독특하고 뛰어난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언젠가 생겼던 사실로서의 과거가 아닌, 현재 자신의 삶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충돌하는 각 개인 안에 살아있는 경험으로서의 역사와 그 의미들이다.

이해하기 힘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 구두쇠스러움, 아껴쓰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강박증, 타민족 심지어는 동족에 대해서까지 갖는 지독한 불신...죽이려드는 적들과, 서로 살아남고자하는 동족 가운데서 생긴 그의 아버지의 아픔은 과거의 고통에서 온 태도이다. 이 세상에 믿을 것은 자기자신과 친구 밖에는 없다. 살아남아야 가족을 다시 볼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집요한 삶의 끈들과 운 밖에는 없다. 이것이 그의 아버지를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었음을 작가는 차차 알아간다. 사랑과 가족, 낭만과 동정의 한 인간은 믿음과 배신을 오가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살아남고자 자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가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유대인을 쥐로 그린다. 쥐는 나치스가 표상한 유대인의 모습이다. 이걸 그대로 작가는 유대인의 모습에 사용한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나머지도 사람은 아니다.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또 다른 인종도 모두 동물로 표현된다. 인간은 없다. 아니 유대인이 쥐라면 나머지 이 쥐를 잡는데 관여한 혹은 지켜본 모든 인류도 인간이기는 어렵다. 아니 인간이 인간임을 잊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동료인간을 대상이나 수단으로 본다면 이 파국은 결국 자신의 집단에 방해되는 쓰레기를 치워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이 모든 인간의 상실을 막지 못한 인류는 모두 종류는 달라도 짐승들이다. 그렇다. 육체를 살찌우고 편안한 것을 찾으며 약자를 힘으로 정복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것만 하고 살다 죽는다면 인간이 아직 되지 못한 것이다. 옆의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자도 인간은 아닌 셈이다.

이 뼈저린 삶의 진실은 서로에 대한 적의와 자기에 대한 과잉보호로 삶에 뿌리 박힌다. 작가의 아버지가 그랬고, 또 옆나라 사람에게 고통 당하고 동족과 전쟁을 치르며, 옆집사람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야 배급을 타먹을 수 있었던 우리 부모와 조부모들이 그러했다. 극단적 굶주림과 절박한 생존의 아픔은 그래서 이 책 안에서 걸어나와 우리의 부모님 안에 여전히 숨쉬고 있는 고통스런 기억들이다. 그분들을 이해해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런 것도 있지만, 전쟁만 아니었으면 가장 완성된 [인간]이고 싶었던 그분들의 안타까운 속마음을 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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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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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좋은 어린시절을 지나, 청소년, 청년기, 혹은 장년 혹은 노년기의 어느 순간 한번은 [왜 살지?] 할 때가 오는 것 같다. 이 질문은 사실 누구나 해야만 했던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힘든 하루하루가 돌아가고 있을 때는 잘 떠오르지 않는게 사실이다. 그러다 별안간 어느 골목을 돌아서다 마주치는 사람처럼, 우린 이 질문을 마딱들인다. 카뮈가 말한 침대시트 속의 [페스트]균처럼...항상 거기 있었던 것처럼 불현듯 찾아온다. 사실 먹고사는 일이나 전쟁의 위협도 없을 때, 정말 살만할 때 찾아오기도 한다.

극단적 응답의 하나로 보이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이런 파국은 살아가다 감정적으로 더 이상 감래할 수 없어(경제적, 실연, 거절, 인격적 모욕) 하는 자살과는 다르다. 이 책의 소년이 피아노선생님에게 모욕 당하고 나무위에서 뛰어내릴까하는 감정이 치솟은 것과 다른, 선택으로서의 죽음을 좀머씨는 보여준다. 산다는 것의 부조리함에 질려서, 죽지 않기 위해 죽음을 잊어버리려 또 걷고 뛰어도 더 달아날 수 없을 때 스스로 물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게 만드는 절망으로서의 죽음이다.

시지프스의 고난과도 같은 매일 지속되는 무의미, 부조리가 인생이라면 정말 해답은 없다. 죽음만이 해결인듯 보이고 그런 죽음을 잊고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여 다니는 삶, 끊임없이 걷거나, 일해야만 잠시 잊어지는 공포와도 같은 삶의 연속이라면...정말 해답은 없다.  

작가는 이 사실을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어린아이와 대비시켜 한 고행자 좀머씨의 죽음으로 그려낸다. 피어나는 생명과 시들어갈 일만 남은 [다 살아버린 사람]. 죽음의 무게에 지쳐 한숨 속에 고통이 배어나오던 좀머씨는 끝까지 도망다니지는 못한다.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아이는, 좀머씨의 죽음이 이유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이유없이는 아무도 그렇게 빨리 도망다니듯 걷지도, 성큼성큼 물 속으로 들어가지도, 날 내버려두라고 소리지르지도 않을테니까... 결국 이 책은 독자에게 이유가 있으니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 책은 한번 잡으면 단번에 끌어들이는 흡인력으로 끝까지 읽게 한다. 우리의 어린시절 같은 해맑은 아이의 눈에 비친 삶의 어두운 진실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물 속으로 마치 가라앉듯 화석처럼 변해가는 육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우리의 모습과 그 의미가, 너무 경쾌하고 밝은 어린아이의 시선 속에서 오히려 더욱 가슴아프게 시리다. 절망의 끝에는 죽음이 아닌 도약만이 살 길이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 힘으론 날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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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1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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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 처음 이 시들을 읽었을 때 서너 개의 시를 책갈피로 접어두었다.

그리고 또 겨울이 오고 대여섯이던 표시는 이제 세번째 겨울이 다가오며 훌쩍 십여개를 넘어간다.

정말 시가 나를 찾아오고 있는걸까? 밥끼니를 채우며 살던 삶이 시를 들리게 하는걸까?

처음엔 김용택 시인의 설명이 더 좋았고 그리곤 김관식과 정호승이 좋았고 이제는 한용운과 신동엽이 들어온다.

사람은 변하는거로구나 나무잎의 빛깔처럼 하루의 하늘빛만큼 빨리...

시를 사랑하도록 변하는거라면 일년일년 지나는 것도 즐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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