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민토, 논리의 기술
바바라 민토 지음, 이진원 옮김 / 더난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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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접한 건 같은 출판사의 [논리적으로 글쓰기,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를 통해서였다. [피라미드 원칙]이라는 원래 책 제목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붙여진 제목으로 이번 개정판도 [논리의 기술]이란 다른 제목으로 나왔다.

처음 2000년에 구판((1987년판의 번역)을 보았을때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놀라움. 뭔가 대단한 책인데, 도저히 독해가 안되는 번역의 벽 너머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어찌 [도입부] 쓰는 법을 그 책을 통해 배워 크게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구판을 주위 사람에게 추천하면서도 늘 [좀 번역이...]라 말하곤 했었다.

이번에 1996년판의 번역인 이 책은 일단 번역은 합격권 안인 것 같다. 무슨 이야기인지 좀 알아들을 것 같다. 특히 구판을 몇번 보아도 알 수 없었던 [문제해결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번 훨씬 비싼 신판책(8000원->18000원)을 사서 그래도 얻은 혜택이다.

글쓰기를 처음 하는 사람에겐 경영과 관련된 예화와 예제들이 다소 낯설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곰곰 그 사례들을 자기 일상의 사례로 바꾸어 예를 만들어가며 읽으면 이 방법론이 왜 그리도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 문서 특히 사건해결형 문서 작성엔 이만한 책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투덜거림 속에서도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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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1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비싸네요. 하지만 기억하죠.^^

설박사 2004-11-1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매력적이네요... 저는 이런 제목이 좋더라고요...

음... 사건 해결형 문서라....

저도 이 책 한 번 사서 보아야겠군요. ^^

좋은 정보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한계시록 주석
쟈끄 엘뢸 지음 / 한들출판사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나를 깊은 깨달음과 고민으로 몰아넣은 책이다. 잘 모르던 사람 얘기를 듣고 고민하진 않는다. 고민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좋아하던 사람의 [낯선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사람을 좋아하면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엘룰은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고, 엘룰은 바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엘룰의 변증적 성서해석과 바르트의 객관적 화해론이 만나고 있다. 내 고민은 엘룰을 통해 만난 바르트와 물려있다.

우선 이 책이 준 독특하고 뛰어난 인사이트부터 살펴보면... 첫째 요한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분석과 그 구조에서 그리스도 성육신의 중심성이다 (바르트적이지...). 중심인 8-14장을 전적으로 성육신 사건으로 해석해낸다. 그리고 그 연관구조로서 그 앞의 역사에 대한 그림과 그 뒷부분의 심판의 부분을 엮어내고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5장에서 22장에 걸친 반복적 구조에서 벗어나 하나의 스토리를 보여준다.

둘째,  계시록의 심판을 십자가 사건과 연관시킨 부분이다. 중심부인 8-14장의 해석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심판은 온전히 그리스도위에 쏟아진다. 우리가 당할 심판을 그가 대신 하시는 [그리스도의 열정]의 고난이다.  그리스도위에 인간전체가 당할 고난이 쏟아진다.(그 채찍, 인간의 분노와 광기, 하나님의 유기, 십자가) 그리고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의 침묵자가 된다.

셋째 국가권력과 그 지배에 대한 이해이다. 수많은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뛰어넘어, 국가(첫째 짐승)와 그 지배시스템(둘째 짐승)에 대한 이런 통찰은 사실 어느 누구의 책에서도 볼 수 없는 큰 전망(perspective)를 준다. 우리의 시대 역시 세계대전 시대 못지 않게, 국가 논리위에 휘둘리어 살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니까...미국은 또다시 팔루자를 폭격했다.

넷째 천년왕국에 있어 인간행위의 의미들에 대한 통찰이다. 그리스도이후에 사단의 매임과 다시 풀려남 사이의 기간을 교회시대로 본 것은 [무천년설]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인간책임의 절대적 의미]의 기간으로 본다. 마치  에덴동산이 회복된 것과 같이 더이상 역사의 책임이 악한 권세에 있지 않다. 비록 그가 위협하긴 하지만... 인간은 이 시기에 자유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다. 성육신으로 인해 인간의 책임이 회복된 것이다. 사단은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졌고 다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두번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삶에 의해 그 진실성이 검증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겐 이 책안에 비판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주장들도 없지않았다. 첫째 엘룰은 십자가사건이 무효화시킨 심판이 인간 위에 임할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류전체에 대한 대재앙이 주제인 계시록은 그래서, [선택의 문제]에 봉착케 한다.  엘룰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선택이 [권세와 타락의 결과]와 같은 영적인 것이라 해석한다. 물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성경자체와의 충돌, 심지어 계시록 자체와의 충돌은 어찌할까. 정죄와 둘째사망은 결코 인간에게 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 구절들을 게속 읽어봐도, 다른 부분들과 비교해보아도 무리다. 심지어 이런 구절에 손대지 말라고까지 계시록은 경고한다.  

둘째, 십자가사건에 의한 은혜의 편만성을 주장하다보니, 인간책임의 무효화까지 가게 된다. 인간의 의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논리의 확장이, 인간의 모든 책임도 무효하고 의미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인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간 아브라함의 믿음도, 먹고 죽을 떡을 선지자에게 대접한 과부의 믿음도, 생활비 전체, 아니 목숨 전체를 던져넣은 가난한 과부의 믿음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의미가 없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예표로 세우신 것이외의 이 성경의 인물들은 아무런 다른 계시를 우리에게 전달하진 않는 것일까? 이 점에서 [오직 은혜로]와 더불어 [오직 믿음으로]를 같이 말한 종교개혁자들의 강조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은혜의 자리에 믿음이 같이 있어야한다.

셋째, 이런 생각 발전의 배경에는 똘레랑스를 위한 [타종교와의 화해의 필요]가 깔려있다. 더 이상의 종교분쟁은 우리가 갖는 이성적 하나님 상(image)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종교간 충돌의 기저엔 독선적 유일주의가 있으므로 그 뿌리를 교정하자는거다. 과연 그럴까? 성경이 말하는 바를 부분적으로 접고, 이성적으로 좋은 것(그것을 현재적 성령사역이라 부르던, 십자가 사건 이후의 인간이성의 해방이라 부르던)을 따른다면, 그런 진리가 우리를 이끌 자격이 있는 것인가? 상대적이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진리라면 그리고 성경의 해석이라면, 우리 본성을 따라 필요에 따라 또 이리저리 왜곡되어져 가진 않을까?. 논리적 귀결이나 현실적 필요가 진리자체를 바꾸려해선 안된다. 화목하고 사랑하는 일에 대해 선한 의지를 갖는 것과 구원의 방향 자체를 돌리려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생전에 바르트 자신은 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미루었을까? 미루는 것도 답변이다. 우리가 대답할 문제인가 생각해 볼만하다. 칼 라너의 답변을 바르트가 몰라서 내뱉지 못한 건 아니리라... 바르트의 답변은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 아는바로는, 너무 은혜롭고 자비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엄하고 잔인한 심판이 있을까? 그러나 여기까지다. 내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을 느껴 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세상에 대한 판단을 배워 알 뿐이다. 우리 입맛에 안 맞아도 어쩔 수 없다.우리가 의논해서 결정하면 그렇게 되는건 신학이고, 신앙은 우리 결정권 밖 심지어 그리스도의 결정권 밖에 있었다. 그래서 아들이셨을까? 완성의 시간은 이곳에 사셨던 그리스도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분은 깨어있으라고, 성문밖에 내어쫓기는자들을 통해 우리 정신을 번쩍 들게 하실 뿐이다.

엘룰을 좋아하는 나로선 엘룰이 이런 한쪽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변증법적 반대를 이루어 구원의 하나님은혜에 대한 더 감격스런 신앙고백이 있게 하려 한건 아닐지,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분명 이런 예수님의 죄인사랑은, 우리맘 속에 있는 의인의식을 깨고, 믿음을 자기의로 삼는 교만을 무너뜨린다. 오직 그분을 구주로 고백하는자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나(죄인이 구원받는다는) 부정적으로나(죄인이 구원 받지 못한다는),  여전히 이성으로 받이들이기 어려운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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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 아크로 총서 1
콜린 존스 지음, 방문숙 외 옮김 / 시공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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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미덕은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 그림, 일목요연하게 그림만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도표와 지도들, 그리고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의 다각적 조망이다(몇 리뷰에서 이 점은 충분히 지적된 듯하다).

특히 박스로 다룬 몇몇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이런 역사서술에서 놓치기 쉬운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 영국사람이 쓴 프랑스사라는 점도 재미있다. 일본사람이 쓴 한국사와도 같다고 할까? 여성의 지위와 그 역할의 변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이 책만의 미덕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림과 상세한 기술을 담다보니 취약해진 조망이다. 일괄적 조망과 틀을 잡는데 리비에르의 책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그 틀안에 이 책의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소 앞뒤를 오가는 내용을 정리하는건 이 책에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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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 - 개정판
다니엘 리비에르 지음, 최갑수 옮김 / 까치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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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마와 접촉을 시작하면서 역사속으로 나온 프랑크족의 이야기로부터 1986년 총선까지의 프랑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역사를 총괄하면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 개괄이면서도 산만하지 않아 읽기에 편한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지도와 그림, 그리고 사진들이다. 페이지당 1-3장의 그림이 있을 정도로 시각적 정보에 충실한 이 책은 그래서 읽기에 지루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당인물의 모습과 당시 시대 삽화 등으로 역사학도가 아닌 사람으로 하여금 프랑스 역사의 디테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피로 얼룩진 반항과 혁명의 역사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근대사는 특히 인상적이었고, 그 당시의 다른 저술을 읽는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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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와인
한관규 지음 / 그랑벵코리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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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페이지가 오직 보르도 와인에 대해서만 씌여져 있다. 실제에 적용하기 위한 지식은 자세하고 디테일한 것이어야 할 때가 많다. 어설픈 겉핥기식은 아는 건 많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쓸모없는 경우도 많다.이 책을 읽고 보르도 지역-사실 가장 큰 프랑스 와인의 덩어리-의 와인에 대해선 어느정도 현실적용 가능한 지식을 얻는다. 

자세한 내용에, 좋은 그림과 사진으로 읽는 맛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산지별 떼르와르(기후, 조건, 토양)의 특징과 풍경까지 보여주어 책 보는 재미를 준다. 보르도 해당 크뤼(포도원)의 특성과 각 와인의 특성까지도 자세히 언급한다. 또한 각 와인의 라벨도 사진으로 보여주어, 실전에 눈도 준비시켜준다.

상세함과 세심한 배려에 이만한 완성본은 아직 보지 못했다. 만약 AOC의 보로도 한병을 가졌다면 이 책이 가장 도움이 되리라 싶다. 초보자용으로 너무 자세하고 비싼게 흠이지만 포도주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필요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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