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의 신화 -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정희진 / 갈라파고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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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프리단이 이 책을 처음 쓸 당시는 지금부터 50년도 더 전이었다. 그 때는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시기였고 그래서 일자리가 부족했고 가난했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들은, 서부 개척시대에 남성과 동등하게 그 땅을 일구어나갔던 그 미국 여성들의 위상은 오히려 그 시절에 더 퇴보한 상태였다. 여자란, 여자의 의무란, 원래 여자의 역할이란, 이런 이야기들을 어릴 때부터 주입했고 그렇게 큰 여성들은 마음 속에 채워지지 못한 뭔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한 규범, 타인의 눈초리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시기였다. 베티 프리단은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표현 자체가 매우 과격해서 불편하기까지 했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성성에 갇혀 자신을 펴나가지 못하는 여성들을 교육을 통해 자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여성이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옥조여 사는 삶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중요한 여성적 특징을 상실하는 큰 비용을 치러야만 지성을 얻을 수 있다... 여성을 관찰한 의견들은 모두 여성이 자신의 따뜻하고 직관적인 지식이 냉철하고 비생산적인 사고에 의해 희생됨으로써 지적인 여성이 남성화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p320)

 

늘 재미나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이 지도자격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이다. 어릴 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에 대한 기사가 났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진 중의 하나가, 대처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장면이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그 사람이 난데없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어색한 모습이라니. 그러니까 기사의 논조는 그거였다. 아무리 철의 여인이라도 집에서는 요리를 하는 '자애로운 아내이자 엄마' 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까지 그 사진을 기억하는 건,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대처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던 탓이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과 수상이라는 직위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이런 관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현존하는 가장 일 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기사에도 가끔, 그녀가 장을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옷이 한벌이야, 맨날 같은 것만 입어 이런 패션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그러니까 여성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는데, 그 성별에 따른 역할을 '그래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나 할까. 이 사람은 이래도 남자는 아니야. 그럴리가 없쟎아. 이런 관점. 남성들이 지도자를 할 때는 이런 모습을 찍지 않는다. 서점에 가는 모습,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 반려견과 신나게 노니는 모습, 피곤해서 소파에 누워 쉬는 모습... 지적인 여성은 남성적이라는 의도를 깔고 이야기하는 이런 관점들은 지금도 너무나 만연하다.

 

 

하지만 여성들 자신은 왜 빗발치는 비난에 가만히 있었을까? 문화가 여성을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법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교육적으로 여성이 성숙되는 것을 차단했다면, 이런 장벽들이 무너진 후에도 여성이 집이라는 피난처를 찾기가 여전히 더 쉬웠다. 여자가 독자적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기보다 남편과 자식을 통해서 사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도 남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도 성숙하게 하지 못하는 똑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그 어머니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수동적인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성숙하지 않으면 더 잘 될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애써 주부나 엄마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p368-369)

 

 

이게 미국만의 문제일까.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딸이 시집을 잘 가면 만사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도 시집을 잘 가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요즘 남자들은 약아서 직장 없는 여자 싫어해.. 이게 만연한 말이다. 여자들은 좋겠어, 안되면 취집하면 되쟎아. 이런 말을 농담처럼 한다. 일부의 여성들은 그런 말에 기댄다. 쉬우니까. 어쩌면 그런 노력들은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버티며 일하는 것보다는 쉬운 길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은 화장품을 쓰고 좋은 옷을 걸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모로 성형을 하고 피부를 가꾸기도 한다.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무엇인지, 남자에 기대어 살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어떤 상태인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집이란 걸 잘 간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부모님에게나 동년배의 여성들에게나 다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전문직을 가지고 성공을 해도 결혼에 실패하거나 그다지 조건이 좋지 않은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뒤에서 그런다. 역시 넘 배우면 안돼. 여자는 적당히 배워야 해. .. 베티 프리단의 글을 읽으면서, 이게 50년 전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어째서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느껴지지. 라는 생각에 좀 씁쓸했더랬다.

 

그래서 소비를 조장하고 집안일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들고 성적인 부분에 에너지를 쏟게 하고 아이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인생을 걸게 한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고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다. 

 

 

몇십 년 전, 정신적으로 저능한 사람을 연구한 보고서는 집안 일이 정신박약 소녀들의 능력에나 적합하다고 기록했다. 많은 도시에서 가사 노동자로서 정신박약 환자들을 많이 요구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집안일이 훨씬 어려웠다.

자녀 교육, 실내 장식, 식단 짜기, 가계 예산, 오락에 관한 기본적 결정을 내리려면 물론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성성의 신화가 갖는 부조리함을 목격한 몇 안 되는 가족 및 가정 전문가들 중 한 사람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집안일은 대부분 "여덟살 난 아이라도 할 수 있다." (p449)

 

 

여성이 필요한 교육을 못 받게 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하게 됨으로써 가정에 얽매이게 된 결과 집안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는 반대한다. 더 많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고 사실은 가증스러운 사회의 일면이다. 하지만, 집안일 자체에 대한 이런 폄하는 개인적으로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과격한 표현이었다. 저자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데, '아이가 동성애자인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신화의 모범이다 (p481)" 이라고 하면서 아동 병리 증세나 난잡한 성교까지도 엄마의 여성성에서 기인한다고 한 부분에는 백프로 동의하기 힘들었다. 굉장히 다층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하나의 원인을 너무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렇게까지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능력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에 가두지 말라, 는 것이다. 여성들이 못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휘말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되다보니 속에 많은 것들이 쌓이는 것이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할 수 있는 바를 제시하면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다, 그 얘기이다.

 

 

그 함정의 열쇠는 물론 교육이다.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허락하는 것이 회의적이고 불필요하며 위험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야말로 미국 여성들을 여성성의 신화라는 끔찍한 위험에서 구했으며, 앞으로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610)

 

교육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낡은 이미지와 타협하고 영합하는 것을 그만두는 순간, 소녀들은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불꽃과 새로운 상을 키울 수 있다. 교육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인간 진화의 모형이며, 원형이어야 한다. (p627)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사실 가장 감명을 받았던 부분은 <나오는 말>에서였다.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펴냈던 베티 프리단은 그냥 그렇게 안주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을 벌였고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함으로써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을 찾도록 노력했으며, 임신중절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선진적인 저자는 책만 쓴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상황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책 전체에서 조금씩 불편했던 부분들을 다 잊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노력으로 지금 미국의 여성 인권, 나아가 세계의 여성 인권이 더 나아질 수 있었으리라는 예측, 그리고 그것이 베티 프리단을 살아있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는 예상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아마 앞으로의 50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역시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늘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정치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고 혹은 일상생활에서의 활동일 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동등함을 추구하기 위한 남성들의 합류가 수반되어야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두꺼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역시나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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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할로우 찰리 파커 시리즈 (구픽)
존 코널리 지음, 박산호 옮김 / 구픽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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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존 코널리의 찰리 파커 시리즈는, 범죄행위가 잔인하고 엽기적이라서 읽다보면 밥맛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냉소와 환상이 어우러져 인생의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작품이다. 다크 할로우에서는 한층 더 깊은 맛을 볼 수 있었고, 다음 작품도 역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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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5-01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범죄(?) 소설 마니아 비연님 ㅋㅋㅋㅋ

비연 2020-05-01 20:1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쟝쟝님. 저 범죄소설, 스릴러소설, 완전 좋아한답니다~ 요즘 여성주의 책 읽기 덕분에 좀 뜸하긴 하지만. 신간은 전부 챙겨서 읽는 편이에요 ㅎㅎㅎ
 
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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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좋은 점은, 주인공이 날이 갈수록 성숙해지는 방향으로 변화된다는 것에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미키 할러도 초반의 그 싸가지없을 정도의 물불 안가리고 덤비는 변호에서, 뭔가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로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반가운 그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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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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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작품은 처음인데, 왜 좋다고 하는 지 이 책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그 위에 작가의 상상력과 철학을 마음껏 녹인 秀作이다. 노예제의 허상과 여성으로 받은 핍박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이 현실화되는 과정 속에서 도드라져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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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02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3월 같이읽기 도서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으면서 토니 모리슨의 이 책을 얼른 읽어봐야겠다 싶었어요. 연결되는 페이퍼를 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사야지, 했더니 제가 이미 사둔거에요...그리고 안읽었죠.....Orz

비연 2020-04-03 10:24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읽으면서 연결해서 페이퍼 써야지 했는데.. <가부장제..>를 다 못 읽었네요 ..흠냐...

단발머리 2020-04-02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집에 <빌러비드> 있는데 아직 못 읽은 사람 1명 추가요!
저도 더 미루지 말아야겠어요!

다락방 2020-04-02 17:39   좋아요 1 | URL
역시 단발님은 나의 단짝친구...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4-02 18:10   좋아요 1 | URL
먼저 읽는 사람 천~~~~~재!
뒤에 읽는 사람 @~~~~~@!

비연 2020-04-03 10: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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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나 자주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p623)

 

아마 올해 다른 수많은 책들을 읽겠지만, 이 문구가 내겐 올해의 문구가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머리를 둔기로 맞는 듯한 충격이 왔었다. 그래, 뭐라뭐라 이유를 말하고 사상을 말하고 해도 이 문장 하나로 다 해결될 수 있겠구나. 사과를 반으로 나누듯 겹치는 부분 없이 짝 갈라지는 양쪽을 가진 것은 단 하나, 삶과 죽음 뿐이다. 그래, 정말 그렇다. 이 세상 무엇이 삶과 죽음 만큼 단호하게 갈라질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가 양편으로 나뉘어 상대를 혐오하고 핍박하고 강제하는 것은, 참 넌센스로구나. 라는 생각에 이 대목을 거듭 읽게 되었다.

 

수전 팔루디의 유명한 책 <백래시>를 두고 이 책 <다크룸>을 먼저 읽은 것은, 그 정체성이란 부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유대인이었고 수용소 생활을 했으나 헝가리인으로 살고 싶었고 그러다가 미국으로 들어와 전형적인 미국적 남자 혹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평생 애썼고 그 과정에서 때아닌 폭력과 강압을 가족에게 휘둘렀었던 아버지가 돌연 70이 넘은 나이에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면, 딸의 입장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아버지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이런 여러가지 의문점에 사롭잡혀 6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이 책을 선듯 손에 잡게 된 거이다.

 

"나는 이제 숙녀니까, 버데르가 이것저것 다 고쳐 준단다."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나를 도와야지. 나는 손가락 까닥 안 한다고." 아버지는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여자로 살아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아니겠니." 아버지가 말했다. "하긴 너는 여자의 어려움에 대해서 쓰지. 나한테는 유리한 점만 보이는구만!" (p83)

 

성별을 바꿀 때 그 결심을 할 때, 나와 다른 성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물론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성별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성별로서 살기를 마음 깊이 원하게 되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성별이 다르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생물학적인 구분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닐진대, 성전환이라는 것을 할 때 다른 성별이 처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을 과연 알고 바꾸는 걸까. 수전의 아버지 말처럼,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여성으로서 살기 힘든 점이 몸으로 마구 느껴지지만, 성전환이라는 것을 했을 때는 기존의 성이 가지지 못했던 좋은 점들만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하자면, 사회적인 진정한 '여성'의 성별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트랜스섹슈얼은 '이전의'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당신의 과거를 삭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그 성별이라고 믿는 성별처럼 '보이도록' 신체를 변형시킴으로써 당신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완고하고 성차별적인 이해에 동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은 그런 변형을 통해서 생물학이 운명이 아님을, 그리고 '트랜스'는 젠더에 처진 경계선을 단순히 건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가? (p230)

 

수전 팔루디의 이 책이 훌륭한 것은, 그저 아버지가 트랜스섹슈얼이 되었다는 것을 통해 그 일생에 집착하여 구구절절 인생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 누구보다도 복잡한 과거를 가진 그 존재를 통해 역사적이면서 사회적인 의미를 집요하게 파헤쳐 고민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트랜스섹슈얼이 되면 그 이전에 가졌던 스스로와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인가. 아버지의 과거를 기억하는 저자는, 여성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수십 년 살아온 정체성과 개인사를 가진 사람이 그것을 전부 버리고 생물학적으로 변해버린 몸만으로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겠는가.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젠더의 의미를 찾아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반유대주의에는 화수분처럼 수많은 원천이 있었지만, 근대 파시스트 국가를 위협한 유대인다움이란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젠더로서의 유대인다움이었던 것이다. (p384)" 유대인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라. 유대인 여성은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찬사를 보내면서 유대인 남성에 대해서는 '우스꽝스럽고 멋지지 않은 외모'를 가진 여성적 질환으로 병든 존재 취급을 했다는 것.

 

이런 시스템, 그리고 이런 윤리 속에서 자라나서 동화되고 싶어 안달이 난 유대인 소년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궁금했다. 어린 이슈트반은 자기 '인종'의 남자란 정신질환을 앓는 계집애일 뿐이고, 여자란 여성적인 우아함의 모범으로 귀애함을 받는 문화에서 어른이 되었다. (p386)

 

수전의 아버지는, 어쩌면 평생 주류에 들고 싶었던 존재였는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주류. 어린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어머니에게 방치되다시피 살았던 어린 시절. 덕분에 번듯한 가정을 주류로 생각하고 나는 가정을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가장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가족을 자신이 만들고자 한 방식으로 정형화시키려 했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세계대전 중에 여러 고초를 겪은 청년 시절. 그래서 유대인이길 거부하고 헝가리에서는 헝가리인으로 미국에서는 미국인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남성으로 태어나 그다지 귀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여기고 결국엔 늦은 나이에 자신이 오히려 주류라고 생각하는 여성으로 탈바꿈했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정체성은," 아버지가 고심하며 대답했다. "정체성은 사회가 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인정한 대로 행동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적이 생긴단다.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는 거야." (p517)

어쩌면 한 개인이 살아내기에 너무나 어려운 여러가지 여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한 인간으로서 수전의 아버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기를 체벌하던 방식 - 로지가 벌을 줄 때 선호했던 방법은 아들을 '어두운 방에(in the dark room)' 가두는 것이었다 (p521) - 처럼 사는 내내 스스로를 '어두운 방에' 두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고. 직업처럼,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암실에 머무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잘 몰랐던 아버지의 역사를 아버지와의 잦은 만남을 통해 듣고 이해하게 되고 친척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어쩌면 수전은 트랜스섹슈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 같다 싶다.

 

페미니즘이란, 계속되는 만트라에 따르면, '선택'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낸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 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p99)

 

그렇게 시작했지만, 결국 수전은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 혹은 그녀를 더 많이 알게 된 말년을 통해, 그 혹은 그녀를 관통하는 역사를 이해하면서, 용서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인 듯 하다.

 

순전히 트랜스섹슈얼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이었지만 읽는 동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복잡해졌었다. 단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성별 하나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럼에도 성별 하나 만으로도 수만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그런 많은 깨달음이 속에서 교차했던 좋은 시간이었다.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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