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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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러 사람들이 언급했던 소설이라 언젠가는 읽어야 겠다고 미루어 두었던 것이 30대 중반이 초읽기에 이르러서야 읽게 되었다. 또 제멋대로의 상상력으로 제목만으로 '좀머씨 이야기' 정도 되는 소설일 것이라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풍경도 시골의 목가적인 것으로 윤색해 내고 있었다. 사실 이런 청소년 대상 소설(선입견)을 지금에 이르러서야 펼치게 되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강렬한 동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티티마' 그룹 출신의 소이가 어떤 프로에 나와 눈을 반짝이며 이 주인공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가장 매력적인 친구로 묘사하며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또 가장 친한 친구가 이 책을 극찬했던 기억 등이 결국 읽어야 겠다는 결심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정말 홀든 콜필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소설적 허구가 가지는 한계, 으레히 사고나 상상력의 경직된 경계 철책이 너무나 유연하게 물렁물렁한 스펀지처럼 변모하고, 내가 한 때 빠져있던 유치한 사고의 편린들이 이렇게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부분에서는 오랫만에 책보다 큰 소리로 미친 듯이 웃게 되고 또 그 모습을 보고 아기가 웃고 이런 식이다. 

못생긴 여자들은 세상살기 힘들다는 대목,동생의 죽음에 정형화되고 진부한 표현을 지독한 입냄새를 풍기며 숙모가 형에게 되풀이했었다는 대목 등에서는 어린 시절 연년생 동생과 까불까불하며 밤새도록 나누었던 원초적이고 유치한 10대 특유의 사연들이 떠올라 웃음이 삐죽 삐죽 삐여져 나오고 만다. 생긴 것으로 가차없이 존재의 무게를 평가하고, 냄새에 관련된 유치한 묘사만으로도 몇 날 며칠의 사연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사춘기 아이들이다.

홀든의 여동생 피비(고흐의 동생 테오처럼 유일하게 그와 소통되는 가족)는 정말 지금이라도 똑같은 여동생을 복제해서 가지고 싶을 만큼 상큼하고 귀여운 존재이다. 결국 콜필드가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제공하기도 한다. 나이답지 않게 오빠의 얘기를 경청하고 이해해 주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어린 아이다운 기발한 행동으로 더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가장 기대했던 대목은 역시나 제목에 관련된 홀든의 고백이다.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는 내용, 자신은 유일한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어쩌면 이것은 사춘기 아이들이 바라는 어른들의 역할일 듯 싶다. 그저 행복하게 자유스럽게 지내는 자신들을 지켜보다 길을 잃게 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해주는 것... 

역시 명작은 명작이다.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소설이다. 더 일찍 읽었더라면 더 많이 웃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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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10-1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정말 좋아요. 홀든의 여동생 피비,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이고 싶다는 홀든의 고백. 휴머니즘이 넘치는 귀엽고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blanca 2016-10-15 10:40   좋아요 1 | URL
제가 2009년에 이런 리뷰도 썼군요. ^^ 누구나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고 그 시기는 홀든이 경험한 시간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시간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고양이라디오 2016-10-15 11:39   좋아요 0 | URL
인생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홀든에게도 그 시기가 결정적 시기였군요.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김성 옮김 / 책만드는집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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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수시절부터 '월든송'은 계속되었다. 명작중의 명작이며 읽지 않고 표지만 구경하고 다니던 시절에도 언젠가는 꼭 완독하고 인생의 진리를 획득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졌드랬다. 

결론은 좌절이다. 완전 착각하고 있었다. 소로우가 한 50대에 모든 물질적인 가치를 뒤로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며 철학적 성찰을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는 50 이전에 죽었고, 월든 호숫가에는 30대 초반 2년 정도 살았던 경험 얘기가 '월든'이다. 물론 출판이 지연되어 8년 정도의 긴 탈고 기간이 있었지만, 작품의 위대함을 떠나 내가 생각했던 스타일의 책이 아니었다. 일단 번역의 한계로 인해 수사어구가 많은 그의 문장을 쉽게 소화해 낼 수 없었고, 이따금씩 드러나는 자만이 조금 거슬렸고, 특히나 자선에 대한 그의 폄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고로 내가 아직 이 명작을 소화하기에 충분치 않거나....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책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완독의 꿈은 이루었으나, 인생의 진리를 얻기에는 서로가 역부족이었다. 아니 인생의 진리 타령이나 해대는 내가 한심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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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는 이광수와 윤동주를 좋아했다. 이광수의 소설은 다 샅샅이 뒤져 읽었던 기억이...일단 스토리 스케일이 광대하고 또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고 '단종애사'는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 책 겉표지까지 고이 싸두었던 기억이 난다. 중3때 밤을 새서 읽으며 사육신이 사형장으로 가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읽으면서 어떤 검증안된 이념에 목숨까지 건 그들을 과연 온전히 존경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 당시로서는 여린 마음에 '충신'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사육신'을 외칠 수 있어서 기뻤던 기억이 ㅋㅋㅋ 윤동주는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 좋아해서 사진을 코팅해서 다니기도 했다. 

음..최근까지는 에쿠니 가오리...그녀의 약간 가벼우면서도 상큼한 글쓰기가 향기롭다.  

지존 박완서 선생님... 더 소설작업을 하시기에는 무리인 연세라는 데에 아쉬움을 가진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역시 작가 자신의 연륜과 인생경험의 깊이가 어우러질 때 서사구조가 자연스럽고 공감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의 예증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이를테면 어떤 소설작품을 접할 때 이 작가는 이 경험을 해보지 않고 막연하게 쓰고 있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가독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 

우연히 조우하게 된 올리버 색스..아..이 작가는 진짜 대단하다. 유명의사에 그런 문학적 자질까지 겸비하다니... 

공지영 작가는 좋아하지만 또 어떤 책은 힘들어서 못읽겠다는-..- 

책이 너무 좋아서 죽을 때까지 책을 쌓아 놓고 읽고 싶다. 노안이 제일 무섭다... 그리고 최고의 꿈은 나만의 멋진 서재를 가지는 것...생각만 해도 엉덩이가 실룩거린다는...친정에 두고 온 나의 아그들은 아부지께서 동의도 없이 처분하셨다. 책은 빌려주지 않는 편인데 동생들의 요구에는 응하느라 몇 권 빌려줬더니 돌아오지 않고 친정에 가도 없다. 이는 무슨 시추에이션인지...이 좁은 집에도 내 책은 계속 쌓이고 있다. 괜히 눈치보이는 건 왜 그런지...묻지도 않았는데 중고로 샀다느니 빌렸다느니 어줍잖은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아..내 신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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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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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얇고 글씨가 커서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면서 또 아쉬웠다. 그런데 그렇게 가독력이 좋은 책은 아닌 듯...1부에서 미하일과 한나의 만남부터 그들의 관계를 그린 부분이 번역본의 한계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썩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나 2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자칫 자극적인 로맨스 소설로 그칠 뻔한 작품이 독일 전후 세대들의 해결되지 않는 미진한 감정의 편린들의 원류와 가해자와 피해자,또 방조자들이 형성해 내는 역사의 구도가 가지는 의미와 그 의미를 내면화해내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스토리라인이 굉장히 파격적이고 진부하지 않은 점이 훌륭하다. 그러나 자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육체적인 관계에서 시작된 허무로 종결되야 할 것 같은 관계가 결국 인간 대 인간의 애정이었다는 깨달음..그리고 눈물이라는 도식이 골격이어서 그런 것일까 싶다.  

이제 소설을 읽고 온전히  빠지고 온전히 느끼기에는 넘 내 마음이 노쇠했나 보다. 예전 소설 한 권을 손에 쥐면 밤을 새어 울고 웃던 시간들의 잔상이 아프다. 독일 소설은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강추한다. 재미와 감동이 어떻게 함께 녹아들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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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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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은 예전 상사가  '노동의 종말'을 언급했던 때 듣기만 해도 지루하다는 생각(ㅋㅋ)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그런 작가의 이름을 꽤 오래 기억의 창고 속에 넣어두고 있었다는 것...돌아서면 만난 사람의 이름도 잊어버리는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노무현 대통령이 꼭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고 극찬했다는 대목에 '그래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미없는 책은 정말 싫어라 하는데 받아보고 책의 두께와 딱딱한 문체에 처음부터 겁에 질린 것이 사실...'아..이렇게 또 읽다 말겠구나...' 

그러나 그러나 이 책 정말 멋지다...물론 사회과학책의 특성상 정말 재미있어 책장이 마구 넘어간다는 거짓말은 못하겠다..하지만 정말 읽을만 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세계관에 '그래..우리는 진보하고 있는 거야..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 거야..'라고 마구 끄덕거리며 신이 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신  두 분에게 정말 '고맙다'고 하고 싶다. 두 분 다 이제 뵙기는 요원해졌지만... 

세계적인 연결과 동시에 지역적으로 소속감을 갈망하는세대는 포괄성,다양성,삶의 질,지속 가능성,심오한 놀이,보편적 인권,자연의 권리,평화에 중점을 두는 유러피한 드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물론 유러피안 드림이 아메리칸 드림과 대척점에 설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대결 구도로 유러피안 드림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혼돈의 절망의 시대에서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설명하고 지칭하는 데에 EU의 지향점을 시작으로 풀어나간 것 같다. 이 둘의 기본적인 차이는 자유와 안전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되며 미국인들은 자유를 자율과 연관지어 재산소유로 배타적인 안전이 비롯된다고 보았고, 유럽인들은 상호관계에서 포괄성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안전이 보장된다고 보았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이 한권으로 대략적이나마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개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족국가의 등장과 자본주의가 결국은 근대에 개인이 재산을 사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재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통로였다는 사실과 이주로 이루어진 미합중국이 그 개념을 가장 열정적으로 받아들여 아메리칸 드림의 근간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인들은 현대에도 자유시장 경제와 정부가 아메리칸 드림의 보증 역할을 한다고 맹신하고 있으며 이는 더 많은 미국인들이 정치에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고 종국에는  대기업이 미국을 다스리고 있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이 모든 가치체계를 흔들다 보면 기본적 인권 개념은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하나 이러한 적대적인 시장모델에서 새로운 네트워크 시트템이 태동하고 있으며 이 안에서는 자유는 재산소유보다는 네트워크에 소속됨으로써 확보된다. 무엇보다 네트워크안에서는 모든 인간의 선한 동기를 가져야 윈윈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네트워크 통치는 다중심 통치 스타일로서 강압적인 아닌 포용성이 강조되야 하며, 지시를 내리는 군사령관보다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특히 사형에 관한 대목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EU가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최상의 원칙이 사형의 폐지라는 대목에는 사실 약간 충격도 받았다. 너무나 미묘한 문제라 대놓고 나의 가치관을 피력한 적도 그렇다고 깊이 숙고해 본 적도 없는 논제였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폐지에 미온적이었나 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적인 흐름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보편적 인권에 대한 깊은 신뢰이고 이것은 자동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그 생명까지 처단할 수 있는 사형의 권한에 대한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한편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고찰중에 저자가 진보적인 민주당 대통령이 선출된다 하더라도 미국이 패권주의 외교 정책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은 없다는 대목은 자칫 섬뜩하기까지 했다. 현 오바마 정권의 외교정책이 전임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치 예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는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미국인들의 가치관에 관련된 문제인 것 같다. 아메리칸 드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므로...

후반부에는 아시아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어 있어 흥미롭다. 저자는 아시아인들과 아시아 국가들이 네트워크통치체제, 초국가적 공간, 글로벌 의식을 형성하는 데 유럽인들보다 더 적합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유교,불교,도교의 전통으로 전체에 촛점을 맞추는 시스템적 접근법이 그것이란다. 그러나 과도한 집단주의의 한계또한 지적하고 있다. 제2의 EU를 기대해 볼만한 것인가. 

마지막으로 유러피안 드림의 보편화를 논하면서 저자는 바필드가 프로이트의 인간의식의 발전과 역사의 발전을 비유한 대목을 차용한다. 아기때 엄마와의 일체감을 잃으며 느끼는 죽음의 두려움이 문명의 역사를 이끌어 왔으며, 이는 '죽음 본능'을 외부에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현재 인간은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자연과 재결합하는 세번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는 깊은 공감에서 '다른 존재'에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인류의 미완성 임무는 지구를 구성하는 더 큰 생명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책임 의식'의 확립이다. 이 부분에서 환경운동 및 거기에 대한 동참이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따른다. 봉사활동과 기부,환경보호 등이 사실은 더 큰 생명 공통체에 대한 자그마한 책임행동이리라. 

이 책을 흐르는 기본적인 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이며 미래에 대한 낙관인 듯 하다. 그래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인간들이 개인의 안위 그 자체보다는 더 큰 공통체에 소속되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타인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또 그러고 있다는 것...비폭력 대화의 공감과 칼 로저스의 상담이론에서의 공감과 트라이앵글이라도 이루는 듯한 모습...'공감' 너무 큰 메시지이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북극 얼음이 녹고 있고, 시국 선언은 이어지고, 북핵위기는 사면초가라고 한다. 이제는 진정 리프킨의 말처럼 자본의 사유를 통한 안전감의 확보가 아닌, 더 큰 생명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 의식으로 존재감과 안전감을 얻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유러피안 드림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것 같이 느껴져 왠지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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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2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역시 제레미 러프킨이네요. 근데... 요즘 유재현의 '아시아를 걷다'를 읽고 있는데... 아시안 드림은... 젬병인듯... ㅠㅜ

blanca 2009-06-23 22:11   좋아요 0 | URL
잘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네요^^ 아시안 드림...저도 사실 회의적이긴 한데 희망을 가지지 않으면 오늘이 너무 슬퍼지니까요

이용빈 2021-11-24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후감 잘 읽고 갑니다. 개인의 욕망에서 세계의 발전 동기를 파악하고 개신교적 이윤동기를 추구해온 아메리칸드림은 양극화된 사회의 표상에 머물러버린 실패한 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20세기로 시대전환 의 시기에 우리가 꽃피우지 못한 동학의 꿈은 한반도 공동체가 21세기 새로운 시대전환의 꿈으로 던지고 승부를 걸어볼 가치가 전지구적 규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