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파농




 












<파농>을 읽는다.

 


해설서를 읽는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단점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가 안내해 주는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꿈의 해석을 읽다>는 양자오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우치다 다쓰루, <현대사상입문>은 지바 마사야가 안내하고 설명한 범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경우, 당연히 저자에 대한 신뢰가 독서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설명과 통찰이 번뜩이는 경우라면, 원래 만나려던 책이나 인물보다 그에게 빠지는 경우도 가능할 텐데, 최근에 읽은 슬라보예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이 그런 경우였다. 그의 말에 현혹되어(?) 이미 품절되었다는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를 도서관 찬스를 이용해 서둘러 준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해설서 읽기의 장점이라면, 프로이트와 푸코와 바르트와 라캉의 정수를 혹은 엑기스를 살짝 맛볼 수 있다는 것인데, <꿈의 해석>을 혹은 <감시와 처벌>, <에크리>를 읽기 겁나는 경우에는, 이런 해설서는 친절하고 야무진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파농>의 저자는 이경원이고, 그래서 이 해설서는 이경원의 파농이다.

 


저자는 후대인들이 파농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고전적 파농주의와 비판적 파농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고전적 파농주의는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연계되어 있었기에 혁명적 실천성을 띠고 있었던 반면 비판적 파농주의는 파농 연구가 서구의 제도권 학계로 편입되면서 탄생한 것이기에 파농의 제3세계적 맥락과 급진적인 색채가 희석되어 버렸다. 또한 파농이 전유한 이론의 두 축이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때, 고전적 파농주의는 오직 '마르크스적 파농'만 부각해왔고 비판적 파농주의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프로이트적 파농'에만 주목하고 있다. (90/624)

 
















고전적 파농주의의 대표작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고, 비판적 파농주의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파농의 저작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다. 고전적 파농주의에서의 파농은 혁명가이고, 비판적 파농주의에서의 파농은 정신분석학자이다. 저자는 파농에 대한 이런 상반된 접근방식이 진짜 파농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파농을 정신분석학이나 탈구조주의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이 파농을 이해하기에 부족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만으로 파농을 해석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예를 든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급진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파농을 찾지 않는다. 그들이 파농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에 무관심한 제3세계 민족주의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파농이라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파농에게서 제3세계적 페미니즘, 즉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의 연대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88/624)

 


나는 이 단락에서 놀라고 말았는데, 파농의 책을 딱 1권 읽은 사람으로서, 비판적 파농주의,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고 정확히 위의 문단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석과 파농: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2050226)

 



내 영혼의 가장 검은 부분으로부터 [흑백] 줄무늬 지대를 가로질러 단번에 백인이 되려는 저 욕망이 솟아오른다. 

나는 흑인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다. 백인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그리고 이 점이 헤겔이 기술하지 않았던 인정 형태인데-백인 여성이 아니라면 다른 누가 그렇게 해주겠는가? 그 여성은 나를 사랑함으로써 내가 백인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준다. 나는 백인 남성으로서 사랑받는다. 

나는 백인 남성이다. (63) 

 


한 번밖에 읽지 않았으니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흑인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물라토(백인과 흑인 간의 혼혈) 여성에 대한 적의와 백인 여성의 사랑을 쟁취해 백인 남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 한 명의 흑인 남성 안에 혼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 차별이라는 폭력 앞에서 백인 여성에 대한 숭배와 흑인 여성에 대한 멸시가 교차하고 있다. 더 하얘지기 위해 백인이 필요하고, 더 검게 되지 않기 위해 흑인을 피하고 싶은 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두 번 버림당한, 혹은 버림당할 운명의 흑인 여성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내가 발견한 파농은, 탈식민을 시도하는 지식인이되, 완벽한 인간 백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백인 여성이 필요한 혹은 백인 여성을 도구화’  해야만 하는 유색인 남성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로 니그로로 규정된 남성이 똑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타자화,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혹은 인식이 내 읽기 방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내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그렇게 읽혔다. 이 책의 저자는, 파농을 그렇게읽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파농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 해설>이라는 챕터가 있다. 여러 개념 중에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가 눈에 띈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스피박(Gayatri hakravorty Spivak)이 페미니즘의 여성주체 논쟁에서 본질주의의 모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본질주의를 전유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가령 가부장제의 억압주체 '남성'을 데리다의 해체론을 이용하여 해체하면서 저항주체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요 이론적 허구이지만, 저항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적인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담론이 아예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95/624)

 
















계급, 인종과 함께 사회적 분석 범주(category)로서 젠더가 작동하기에, 젠더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과 사회,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103)이지만, 젠더가 성차별, 구체적으로는 여성 집단에 대한 억압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이다.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 담론으로서의 파농 읽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측면에서 탈식민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이었으되 백인 여성을 희구했던 파농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온 삶을 불태우며 흑인성식민주의타파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파농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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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4-01-29 16:55 
    내가 경계하게된 종류의 화법이 있다. 나 자신은 저들과 무관하다는 자기 인식이 드러나는. 너도 그래, 너도 똑같아라고 뱉어주려다가 참는다. 말해줘도 못 알아먹으니까. 어쨌든 나 자신은 무고하다고 항변하지만 이 구조 속에 있는 한 모두 한 비탈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정말로 무고하고,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이들을 인정하고 있다. 헌데 그게 백인성이고 그게 근대성이고 그게 애석한 (가끔 흠씬
  2. 저항주체인 여성의 전략적 본질주의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4-01-30 11:01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독특함이다. 저자 이경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딱히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학술서로 보이기도 힘든 이 책은 정신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의 온갖 범주를 넘나든다. (55/624) 파농의 정신과 삶은 사망 이후, 그가 선택한 조국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흩어지고 만다. 오히려 파농을 가장 ‘파농답게’ 기억한 곳은 생전에 파
 
 
다락방 2024-01-29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음, 좀 많이 다른 얘기인데, 나를 부정하기 위해서 혹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여성을 도구화 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파농은 인종에 대해 그랬다면, 저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 여성을 도구로 이용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영화를 싫어합니다.

이 페이퍼 읽으니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도 생각나고요.

저는 인종(차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발머리 님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주실 때마다 좋아서 읽습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8   좋아요 0 | URL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그 측면을 전 쪼금 알거 같은데요. 그니깐 전 그 영화도 책도 안 봤지만 말입니다. 둘이 아름답게 사랑할 때 그 여자아이에 대해.... 그게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과 좀 혼동되기는 하는데, 암튼 전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여름 배경이니까 겨울에 읽자 심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먼 스테인>은 완전! 연관 도서 맞다고 생각해요. 뮬라토.....의 위치와 고민과 갈등이 자세히 나오니까요.

은오 2024-01-29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또 여성 도구화 ㅋㅋㅋ 그쵸 흑인 남성도 그점에선 마찬가지고 xy의 한계....
오늘도 역시 지적임이 묻어나는 단발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4   좋아요 1 | URL
xy의 한계를 알아차린, 진즉에 알아차린 이 영리한 여성들을 보라!
퀴즈대회 1위에 빛나는 은오님 축하합니다! 한 번 더 축하할 일이에요. 번호 건은 조금 아까비.................

공쟝쟝 2024-01-29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의 파농에 나의 알튀세르 읽기를... 접 붙이는 글을 작성하고 트랙백을 걸었습니다.......... (거기다 비비면 안된다구요?ㅋㅋㅋ 힘듭니다.)

단발머리 2024-01-30 11:02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트랙백 걸었습니다. 일할 때이니 알라딘 금지인데 말이에요. 그죠? ㅋㅋㅋㅋㅋㅋ
힘내서 일하세요, 사장님!!!

망고 2024-02-08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진짜 옛날에 읽어서 기억도 안 나요ㅋㅋㅋㅋㅠㅠ 하지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4-02-10 00:04   좋아요 0 | URL
예전도 아니고 옛날에~~~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읽으신 망고님, 제가 존경합니다!
즐거운 설연휴 되시길요. 벌써 빨간 글씨 2일차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쌓아놓은 책/읽고 있는 책들을 모른 척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Christmas Guest>. 피터 스완슨 책인데 얇아서 어제 다 읽을 줄 알았는데, 낮에는 다른 거 하다가 못 읽고. 밤에 책을 펼쳤는데, 심상한 기운이 스르르 몰려온다. 무서운 거 못 읽는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책을 펼친다.

 


나와 엠마, 그리고 엠마의 잘생긴 오빠 애덤이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인류의 원초적 공포와 금기인 근친상간나오는 건가, 의심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간다.  

 


 









작년 말부터 어제까지의 책을 올려둔다. 가끔 K문고(주로 원서)와 그래24를 이용하기도 해서, 그 책을 샀던가? 하고 헷갈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사진을 찍어 두니 좋았다. <사진>에 들어가 책 이름을 검색하면, 그 책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 샀는지도 알 수 있고. 그 후로는 바로 사진을 찍어 둔다. 처음 두 개의 사진에서 누워 있는 책들은 내가 '산 책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책은 선물 받은 책들이다. 마지막 사진은 책이 두 권이라 둘 다 세워보았다.

 


책 표지에 관한 한 외모 지상주의자인 나를 배려한 친구들의 뛰어난 안목에 항상 감탄하는 나로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찬탄과 기쁨과 감사를 친구들에게 돌려드린다.

 

















잠자기 전에 읽는 책은 이 책이다. 내 평생에 가장 사랑하는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과 형제자매들과의 행복한 습작 시기 등을 보여주는 책인데, 하루에 2장씩 아껴서 읽는다. 선물해 준 친구가 아껴 읽지 말고 편하게 마음 갈 때 읽으라고 했는데, 나는 아껴 읽는다. 하루에 4페이지, 하루에 2장씩. 아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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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5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5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1-26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좋은책은 아껴읽는게 안되던데 단발님은 아껴읽기가 가능하시군요 ㅋㅋㅋ 좋은책일수록 허겁지겁 읽게되더라고요 ㅋㅋㅋ
저 분홍색 책 너무 귀엽습니다 🥹

단발머리 2024-01-27 15:38   좋아요 0 | URL
저 아껴읽다가 후회된 적이 많은데... 좋아하는 책 아껴읽습니다. 가끔 홀랑 읽고 다시 천천히 읽는 경우도 있구요.
저 분홍색 책 ㅋㅋㅋㅋㅋㅋㅋ 어쩌나, 책 아니고, 다이어리에요. 책 사야 준다기에 책을 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고많으세요, 은오님! 1등 확정 귀염둥이 화이팅!!!

수이 2024-01-26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책 선물해주는 친구라니 단발님은 역시 주변에 멋진 이들이 한가득! 단발님 전생은 대체 어땠을까? 저 혼자 가끔 궁금해합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5:3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친구들의 안목에 항상 감탄하는 단발머리입니다.
제 전생은...... 하하하! 궁금하네요, 저도요!!!

미미 2024-01-2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이 서점이 어디예요?
서점 이름으로 <감탄><표지 지상주의>도 괜찮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01-27 15:41   좋아요 1 | URL
저기 위의 사진이라면ㅋㅋㅋㅋㅋ 다 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책상이 너른 나무책상이라 그런가봐요.
<표지 지상주의> 서점이름으로 좋아요. 혹 제가 서점 내게 되면 ㅋㅋㅋㅋㅋㅋ 애용할까봐요.

그레이스 2024-01-26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봤습니다.
사진찍어서 검색하는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24-01-27 15:43   좋아요 1 | URL
아~~~ 그레이스님 검색 가능하셨다니 넘 좋은데요. 핸드폰마다 다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전 그거 알게 된 이후로 구입한 책들 사진 꼭 찍어둡니다. 원래 책사진을 많이 찍기는 하지만요 ㅎㅎㅎ
 






 












요즘 듣는 책은 <Lucy by the Sea>이다. 크레딧이 모였는데 딱히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다시 읽을 책으로 사자, 하는 마음에 샀다. 운전할 때만 잠깐씩 듣는데 참 좋다. 내용도 평이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시제는 좀 까다로운 편) 마음 편히 듣고 있는데, 읽어주시는 성우 분이 과하지 않게 읽어주셔서 더 편안하다.


 




전작<Oh! William!>에서의 윌리엄과 이 책 속의 윌리엄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Lucy by the sea>를 읽고 윌리엄과 화해했다. 그를 다시 받아주기로, 그를 안아주기로 했다. 루시의 어떠함을 보충해 주는 그를 알게 되었고, 이제 루시도 그의 어떠함을 안아줄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Oh, William!>을 꺼내 읽다가 재미있는 문단을 발견했다. 루시는 결혼 후 재혼했고, 윌리엄은 에스텔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하는데, 그날, 윌리엄은 루시에게 전화해서는 크리스마스 때 에스텔에게 값비싼 꽃병을 선물했고, 에스텔에게서 조상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회원권을 선물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렇게나 재미있다.

 

 

그가 그 선물에 실망했다는 것을 말투로 알 수 있었다. 윌리엄에게는 늘 선물이 중요한 의미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걸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에스텔이 머리를 잘 썼네." 내가 말했다. "아이디어 정말 좋은데." 내가 말했다. "당신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잖아, 윌리엄.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는 그저 "그래. 그럴지도"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나를 지치게 만든 게 바로 윌리엄의 그런 모습이었다. 기품 있고 유쾌한 태도 이면에 존재하는 잘 토라지는 소년. 하지만 그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가 더이상 내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였다. (<, 윌리엄!>, 49)

 

 

당연히 이 문단의 하이라이트는 이 문장이 되시겠다. But I did not care, he was no longer mine.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사람의 투정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빠는 호감형이다.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이 아빠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아빠가 그 사람들에게 유익할 만한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아빠를 좋아한다. 까다롭기로 하면 이 세상 누구도 안 부러울 시어머니가 상견례를 마치고 나서 아버지가 참 좋으시다고 하셨다. 친정 에어컨을 수리해 주셨던 분이 우리 집에도 잠깐 들르셨는데, 아빠가 너무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일을 보시는 내내 계속하시는 거다. 기사님, 저희 아빠를 30분 만나셨잖아요. 우리 아빠를 어떻게 아시죠? 그분이 제 아빠라니깐요.

 


아빠는 호감형이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를 별로라고 하신다. 사고 방식, 문화 양식, 행동 방식이 안 맞는다고 하신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젊은 시절의 신나는(?) 부부싸움 올나이트 시절은 물론이고, 심지어 첫인상부터 안 좋았다 하시니, 이 결혼의 신비를, 나는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전혀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아무튼 엄마는 아빠가 마음에 안 들고, 아빠도 엄마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 이런 엄마, 아빠를 별로라 하시는 엄마가 아빠의 생활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신다. 아빠의 건강과 행복한 노년은 자식으로서는 너무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엄마랑 단둘이 생활하시니 엄마의 삶에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엄마의 걱정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물론 아빠의 생활 습관이 건강을 해치기에 딱 알맞은 것은 사실이고, 건강 관리가 인생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인 엄마 같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적지 않겠지만, 요는. 엄마의 걱정은 진지하다는 거다.

 


엄마는, 진지하게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고, 듣는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농도의 잔소리 폭격으로 아빠를 지치게 한다. 왜 그럴까. 왜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아빠의 건강을 이다지도 걱정하시는 걸까.


 

 

루시의 말에 답이 있다. 아빠는 엄마꺼니까. 엄마의 관리하에 있으니까. 엄마의 관할 아래 있으니까. 아빠의 일은 엄마의 일이고, 엄마는 거리 조절에 자주 실패하시니까. 왜냐하면, 아빠는 엄마꺼니깐. 좋아하지 않지만, 내 꺼니깐. 칠순의 엄마에게 이혼을 권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혼자만 알고 있기로 한다.

 

 


윌리엄은 루시꺼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루시꺼다.

엄마는 모르시는 것 같던데, 아빠는 엄마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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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2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언젠가부터 아빠를 미워하고 계시거든요. 여러가지 이유로요. 이건 다소 진지한 버젼이죠. 물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지금도 끊임없이 엄마는 아빠한테 잔소리를 하시고 아빠는 듣다가 가끔 버럭 하십니다. 그 잔소리는 식단에 관한 것이고, 아빠는 심근경색에, 신장이 안좋아 식사 조절을 하셔야 하는게 맞아요. 그런데 조절하라고 하면 그것은 아빠에게 잔소리가 되고 아빠는 화를 내고. 저는 옆에서 보다가 ‘엄마, 그냥 둬. 아빠가 뭘 드시든 말든. 말하는 엄마 스트레스고 듣는 아빠 스트레스고. 아빠는 아빠 책임이야. 죽고 사는 문제는 다 자기가 결정하는거야.˝ 라고 했답니다. 엄마도 이제 잔소리 안할거라고 하면서 또 잔소리를.. 저는 두분 다 이해가 안되는데, 오늘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아빠가 엄마꺼라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꺼 하기 싫지만, 그런데 엄마꺼라서.. 어쨌든 엄마꺼니까.....

단발머리 2024-01-22 09:16   좋아요 0 | URL
네, 그러니깐요. 엄마들의 잔소리는 건강에 관련된 거네요. 식단과 생활습관... 저희 엄마는 아빠 핸드폰 많이 하시는 것도 잔소리 엄청 하시거든요. 눈 나빠진다고요. 그렇다면.... 그런 면에서 보면....

엄마가 아빠를 더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빠는 엄마한테 큰 관심이 없으세요. 아빠는 친구가 많으신데 엄마를 간절히 찾는 경우는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 안 계실때에요. 너희 엄마 어디 갔니? ㅋㅋㅋㅋㅋ아빠, 저도 몰라요 ㅋㅋㅋㅋㅋ전화를 안 받는다 ㅋㅋㅋㅋㅋ 다시 해보세욬ㅋㅋㅋㅋㅋ
엄마들의 잔소리는 무척 간절하잖아요. 저는 부담스럽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어지는 잔소리.
그 강도와 빈도와 농도...... 아....
 
동물성



 






























공포의 권력을 읽는다.

 


<아브젝시옹과 성스러움>, <감정의 문화정치>,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페미니즘의 개념들>, <쥘리아 크리스테바>에서 아브젝시옹’, ‘아브젝트부분을 찾아 읽었다. 마침 가족 중 한 명이 핸드폰을 교체하게 되어서 *의 서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전자책의 검색기능을 야무지게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건수하님이 소개해 주시고 다락방님이 추천해 주신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도 읽고 싶었는데, 그러다가는 <공포의 권력>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대충 이쯤에서 접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음식물에 대한 혐오를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형태의 아브젝시옹으로 본다. 또한 배설물, 오물, 땀 등과 같이 육체에서 발산된 것들 가운데 오물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시체이기에, 시체가 오물 중에서도 가장 역겨운 것(24)이라 여겨진다고 본다. 음식물이나 성적인 것과 관련된 물질을 배제하고, 한편으로는 배제 행위 자체가 신성함을 수립(42)하도록 작동하는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의 전조건이기도 하다.

 

 















어떤 관념이나 사조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그 원인을 추적하고자 할 때, 시작점은 당연히 역사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언제부터 이런 생각들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는가. 여성학 공부에서 <가부장제의 창조>라는 책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재생산 능력이 남성에 의해 이용되고 상품화된 이후, 여성이 축적 가능한사유재산으로 취급받는 일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성서 시대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아야만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여성의 성 상품화와 성매매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브젝시옹은 왜 중요한가. 아브젝트는 왜 중요한가. 크리스테바는 지금 아브젝시옹과 아브젝트 개념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 아브젝시옹을 이야기하는가

 


어머니는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를 보증하는 대상이자 또 다른 주체이다. 또한 내가 최초로 욕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이다. (65)

 


나는 아브젝시옹과 아브젝트의 개념이 미소지니의 원료로 변용되는 기점이 여기라고 본다. , 생애 초기에 자기 자신과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욕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동안, 아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혼란과 갈등을 극복하려는 과정으로서 아브젝시옹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건수하님의 페이퍼 일부를 옮겨본다.

 















아브젝시옹

 

- 주체는 자신의 아브젝트를 배제 · 추방함으로써 그 경계를 통해 주체로서의 특권적 위치를 구현하고, 사회 역시 경계를 설정한 뒤 반사회적 요소들을 몰아내거나 억압함으로써 질서를 확립한다.

 


, 주체가 자신의 일부라 여겼던 어머니를 외부로 인식하고, 최초로 욕망하던 존재였던 어머니를 배척하면서 주체로서의 특권적 위치를 구현하는 일을 통해 통합된 일체로서의 구별화된 개인으로 만들어져가는 과정 가운데 아브젝시옹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줄리아 크리스테바, 혐오스러운 매력의 영역으로>에서 조광제는 버리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글을 시작하는데, 개인의 삶과 사회 공동체의 삶을 위해 취하는 것버리는 것간의 구별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는 취하는 것못지않게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크리스테바의 작업이야말로 이러한 분비, 배출, 배제, 축출, 유기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였다고 평가한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를 비교한 것이 흥미롭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는 일체의 이분법적인 경계 전체의 바깥에 존재하는데, 이 아브젝트를 축출하는 것이 주체가 자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 이 두 개념은 한 쪽은 사회적이고 다른 쪽은 개인적이라는 점에서 다르긴 하지만, 그 구조가 워낙 유사합니다. 그런데 크리스테바는 개인과 사회집단의 현존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면서, 사회는 모성적인 내지는 여성적인 것을 아브젝트로 축출함으로써 그 현존을 유지한다고 봅니다. 크리스테바에게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바로 모성과 여성성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이북)


 

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이 아브젝트로 축출된다. 왜 그럴까? 왜 사회는 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을 아브젝트로 축출하려 하는가. 시작점은 오염이다. 오염의 대상은 두 종류인데, 그중 하나는 배설물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월경수이다. (116) 이해할 수 없는 방식,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반복되는 월경은 지금도 그렇겠지만 인류 초기에는 더욱 남성과 여성의 동일성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었다. (116) 다른 배설물과 달리 월경수는 여성 자신의 힘으로 조절하지 못하는 육체 활동이다. 피를 흘리는 여성에게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고, 야생동물은 멀리서도 그 냄새를 맡고 쫓아왔기에 월경 중인 여성은 사냥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월경은 당연히 여성 고유의 능력인 출산으로 연결된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고?>에서 임옥희는 “여성은 힘이 없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갖고 있었던 힘 때문에 혐오와 매혹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88) 그 두려움과 경외감은 여성의 출산 능력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었던 어머니가 출산 행위를 통해 가장 오염된 상태에 이른다. 나는, 아이는, 개인은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탈출해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어머니와 아브젝트의 관계, 상호주체성의 문제, 여성과 글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도록 하자. 일단 좀 쉬고. 친구가 알려준 논문을 하나 읽고 (후기-근대 전문엄마의 자리에서 읽는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모성/백소영). 그리고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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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포의 권력] 추하고 거룩한 육체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4-01-27 15:27 
    <공포의 권력>을 읽었다. 도리어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챕터 4, ‘<성서> 속의 혐오에 대한 기호학’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그나마 조금 쉽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인용된 성경 구절들은 익숙한데 그 해석으로 들어가자면, 나도 모르게 이런 표정(@@)이 되어 버렸고. 설득되지 않았는데 반박하기도 좀 어려운, 그렇게 애매모호한 시간을 이럭저럭 지나쳐왔다. 음식물에 대한 혐오가 여성의 육체
 
 
유수 2024-01-20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다..🤓

단발머리 2024-01-20 22:05   좋아요 3 | URL
(손을 꽉 맞잡고) 유수님!! 우리 <공포의 권력> 같이 읽어요. <공포의 권력>이 그렇게나 재미지다고 하네요.
완전 엄청 캡숑(연식 나오네요) 재미있다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서곡 2024-01-20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선물받은 밀리 이용권을 쓰는 중인데 이게 첨에는 굉장히 신나더니 이것저것 쓸데없이(?) 찾아보느라 기왕의 독서계획(따위 사실은 없지만ㅋㅋ)을 방해하고 ... 암튼 장단점이 다 있더라고요 슬기로운 독서생활에 잘 활용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단발머리 2024-01-20 22:07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서곡님! 첨에 그렇게 신나더니ㅋㅋㅋㅋ 안 그래도 요즘 책 안 읽고 <내서재>가 꽉 찼는데도 계속 ‘검색 중‘입니다.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보겠습니다. 서곡님 바램대로 슬기로운 독서생활 되어야 할텐데욬ㅋㅋㅋㅋ

공쟝쟝 2024-01-21 22:18   좋아요 2 | URL
두분 다 제가 아는 광폭독서자 ㅋㅋㅋㅋ 밀리의 비결이셨군요? 더욱더 넓고 넓은 장르를 개척해주시길 바라오며… 저는 자기계발 읽기용으로 애용중이었습…. (자계서 읽는 거의 유일한 서재 고인물)

공쟝쟝 2024-01-21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너무… 멋져…. 다층적 이해가 가능한 사람…

단발머리 2024-01-21 22:00   좋아요 1 | URL
혹시............ 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1-21 22:38   좋아요 2 | URL
너무 멋진 글이라서 잘 읽었어요. 저 역시 압젝트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에서 이게 ‘미소지니‘의 원형이겠구나! 생각해보고 쾌감 느낀 적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보다 압젝트가 더 미소지니를 설명해주는 느낌!!! 내가 상징계의 권력을 욕망한다해도 (그러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해야 한다 ㅋㅋㅋ 해도) 상징질서에서 권력화되지 않았다고 한들 단순히 그 이유로(여성혐오의 절반은 어머니 혐오라고 생각하는 저) 여성을 혐오하는 문화가 5천년이라는 게… (저는 남성의 미소지니나 타자화보다 여성 스스로의 미소지니를 더 제 안에서는 마주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해가 잘 안되는 구석이 있었는 데, 예전에 크리스테바 관련한 텍스트들 읽으면서 단발님 써주신 것처럼 ‘미소지니의 원초적 경험’이랄까 이런걸 좀 찾은 것 같았어요… 라캉이 못본 걸 크리스테바가 봤구나… 하면서… 이렇게 말하니까 그때 본격 읽지 못했던 크리스테바 다시 읽고 싶네요…ㅋㅋㅋ 여튼. 찌지뽕 말씀드리고 싶어서 적어봤습니다.

다락방 2024-01-22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늘 아침에 읽은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에서 ‘코라‘ 부분도 엄마의 자궁과 연결됩니다. 입문서라 도움이 되고 쉽다! 고 설레발 쳤는데 오늘 아침 읽었더니 어렵더라고요 ㅠㅠ 이거 다 읽고 공포의 권력 읽으려면 저도 도착 못할 것 같아 집어치워야 되나 싶어요. 공포의 권력으로 직해야해야지 이번 달 안에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ㅠㅠ

단발머리 2024-01-24 12:25   좋아요 0 | URL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완독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저는 그제부터 <공포의 권력>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다락방님 달리셔야겠어요. 음메, 어려운 거 ㅠㅠㅠㅠ 크리스테바 어렵더라구요.
 




















<감정의 문화정치>의 4장은 <역겨움의 수행성>. 



191쪽부터 194쪽에서 사라 아메드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 개념'을 설명한다.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언급하고 아메드가 2장에서 분석한 '비체화'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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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17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케오케. 감정의 문화정치 있으니 잘됐네요.

단발머리 2024-01-17 09:10   좋아요 0 | URL
부지런히 읽어봅시다! 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