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비 신통한 단원평가+서술형평가 5-1 - 국어.수학.사회.과학, 2014년 우공비 신통한 단원평가 2014년
신사고초등콘텐츠연구회 엮음 / 좋은책신사고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풀어보지는 않았구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단원평가 문제집입니다. 학교시험 대비(^^)용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사고 우공비 초등 수학 2-1 - 2014년 초등 신사고 우공비 시리즈 2014년
홍범준.신사고수학콘텐츠연구회 지음 / 좋은책신사고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편집이 그렇게는 마음에 안 드는데, 딸롱이가 강력 추천해서 구입했습니다. 한 학기에 문제집 한 권 정도는 풀어줘야 한다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크린 영어회화 : 겨울왕국 (전체 대본 + 워크북 + MP3 CD 1장) - 30 장면으로 끝내는 스크린 영어회화 시리즈
강윤혜 / 길벗이지톡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사`에 푹 빠진 딸롱이를 위해 구입했어요. 비슷한 종류의 책이 많았지만, 스크립트 전체가 같이 포함되어 있어서 선택했어요. 영어를 배우는데는 역시 영화가 최고인거 같아요. 노래부르면서, 대사를 외워가며 재미있게, 공부 아닌 공부를 할 수 있네요. 지금까지 뭐했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읽었던 문장/문단 중 몇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구절이 있다. 오래 전, 김훈의 인터뷰 기사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至純하고 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2002.02 월간조선 김훈 인터뷰 中>

<출처> http://blog.naver.com/lemonplanet/120000691648

 

김훈이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읽을 수 밖에 없기에, 또 지금 바로 죽을 수는 없기에, 문학이 인간이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그런 개소리를 집어치운다.

<화장(火葬)>

아내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발작적인 두통에 먹던 것을 뱉어내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놓고 정신을 잃곤 했다(37쪽).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45쪽).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45쪽).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54쪽)

 

그녀의 이름은 ‘추은주’. ‘내’가 상무로 있는 회사에 오년 전에 입사했다.

장맛비가 며칠째 쏟아지던 여름 분기 말의 저녁이었습니다. 당신은 목둘레가 둥글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당신의 목 아래로 당신의 빗장뼈 한 쌍이 드러났습니다. 결재서류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칸막이 너머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의 융기가 시작되려는 그곳에서 당신의 빗장뼈는 당신의 가슴뼈에서 당신의 어깨뼈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빗장뼈 위로 드러난 당신의 푸른 정맥은 희미했고, 그리고 선명했습니다. 내 자리 칸막이 너머로 당신의 빗장뼈를 바라보면서 저는 저의 손으로 저의 빗장뼈를 더듬었지요. (55-6쪽)

 

종양은 살아있는 조직 안에서만 발생한다고 했나. 생명현상의 일부인 종양의 발생과 팽창으로 아내는 괴로워한다. 그렇게 종양과의 끈질긴 2년간의 사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의 육체는 점점 스러져간다. 까맣게 변해간다. 천천히 죽어간다.

아내의 빈소를 혼자서 지키던 새벽에 ‘나’는 다시 추은주를, 추은주의 육체를 생각한다. 참혹한 일이지만(75쪽), 그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당신은 빈 그릇에 당신의 국밥을 덜어서 아기 앞에 놓았습니다. 숟가락질이 서툰 아기는 밥알을 많이 흘렸습니다. 당신은 손수건을 아기의 턱 밑에 걸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밥을 떠서 입으로 후후 불어서 식혔고, 당신이 반쯤 먹고 숟가락 위에 남은 밥을 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아기가 입을 크게 벌렸지요. 아기의 입 속은 분홍색이었고 젖어 있었습니다.... 때때로 당신 가까이서 당신의 생명을 바라보는 일은 무참했습니다. 당신의 아기의 분홍빛 입 속은 깊고 어둡고 젖어 있었는데, 당신의 산도는 당신의 아기의 입 속 같은 것인지요. 그 젖은 분홍빛 어둠 속으로 넘겨지는 밥알과 고등어 토막과 무김치 쪽의 여정을 떠올리면서, 저의 마음은 캄캄히 어두워졌습니다. (78-9쪽)

 

그리고 그 날 저녁, 아픈 아내를 목욕시키던 일을 생각한다.

아내의 두 다리는 해부학 교실에 걸린 뼈처럼, 그야말로 뼈뿐이었습니다.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닦기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똥물을 흘렸습니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악취가 찌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여보᠁᠁미안해᠁᠁” 아내는 또 울었습니다. ... 울면서, 아내는 자꾸만 고개를 돌리면서 두리번거렸습니다. (80쪽)

 

그가 돌봐야하는 여자, 그가 돌봐야하는 여자의 육체,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육체가 겹쳐져 보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가 간절히 원하나 가질 수 없는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그가 숭배하는 여자의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아득하고 깜깜하게 그를 사로잡는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내가 가진 육체는 어떤 육체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입 속이 분홍색이었던 작은 여자아이였고, 5월의 청초함보다 더 푸르른 어린 소녀였고, 목 아래 빗장뼈로 스스로를 가두었던 순결한 처녀였으며, 그리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엷고도 비린 젖냄새를 품기던 젊은 엄마(58쪽)였다. 그가 숭배하는 그 여자가 바로 나다. 그가 숭배하는 육체의 진정한 주인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겹쳐서 보이는 두 여자의 육체 중에, 왜 스스로를 ‘추은주’로 상정하는가. 나는 왜 자신을, 까맣게 변해가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 하얀색 반팔 블라우스의 머리를 틀어올린 ‘추은주’로 상상하는가. 죽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다. 죽음이 두려운가. 아니다.

그건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가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건 내 나이가 추은주와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를 죽음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집념 때문이다. 나 스스로는 오래도록 젊으리라는 고집 때문이다.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아프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내 몸을 맡기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까맣게 죽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젊으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아름다우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마지막 만남에서도 여자이리라.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여자이리라. 여자의 육체이리라.

 

김훈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언제나 똑같다. 참 좋고, 그리고 참 싫다. 방금 읽은 문장을, 지금 읽은 단락을, 어제 읽은 단편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다시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로쟈님의 표현은 정확하다. 때로 전설은 그 자신이 전설임을 알지 못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4-02-11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독으로 읽을 수만은 없는 페이퍼네요 ㅠ)

한때는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가 제 인생의 모토 같은 거 였는데,,, 정말 들여다본 현실은,, '죽음'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죽음'이 가장 실감나게 다가올 때는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의 병을 알았을 때, 그리고 죽음이 뚜벅뚜벅 하며 정면에서 마주 걸어 올 때일까요..
남편은 항상 자기가 치매가 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하면,, 간병할 생각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굉장히 차갑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고,,, 뭔가 달관한 듯 느껴지기도 하고..


아,,, 참 좋고 참 싫다,,, ㅎㅎㅎ 어쩐지 애정과 혐오가 동시에 느껴지네요~ 저도 그런 작가가 있어요.

가오리,, 씨...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쓴 그녀요~

단발머리 2014-02-12 09:27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직, 어리고 (ㅋㅎㅎㅎ 어리고....) 아직 죽음이 저에게서는 멀리 있다고 믿고 있고, 또 믿고 싶기 때문에, 죽음 멀리에 제 자리를 두려하는 이런 글이 써진다는 생각이요.

김훈님은 언제나 참 좋고, 참 싫죠. 아직 [강산무진]도 다 안 읽었고, 김훈님의 산문집은 아직 시작도 못 했어요. 참 좋고, 참 싫어요.

그 유명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아직 못 읽었구요. (저 숙제 너무 많은거 아니예요?) ㅋㅎㅎㅎ

다크아이즈 2014-02-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인터뷰 기사 똑똑히 기억해요. 김훈 식 적나라한 사유, 김훈의 문체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추은주, 가 나오는 김훈의 소설도 똑똑히 기억해요. 처음 화장 말고, 어딘가 문학 잡지에 추은주가 나오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한두 횐가 하다 말고 포기했어요. 어리둥절했는데 나중에 화장이란 작품에서 추은주가 다시 등장하더군요.
추은주에 대한 이미지를 작가는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단발머리 2014-02-12 09:31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은 예전부터 김훈을 주의깊게 보고 계셨나봐요.
저는 워낙에나, 독서력이라는게 없어서요. 김훈은 [칼의노래], [남한산성]으로 온 나라가 들썩들썩할 때부터 알게 됐어요. 이 단편소설집도 김훈 책 다 절판되기 전에 몇 권 사놔야되겠다 해서 구매한거거든요.

추은주에 대한 이미지, 참 놀랐죠.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 주위에 아주 많은 '여자들'에 대한 이미지 중 하나인데, 김훈 손을 거치니까 '여신'이 되네요. 여신....^^
 
초조한 마음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은 함께 있을 때는 기쁨을, 반대로 떨어져 있을 때는 슬픔을 가져다주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연민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서글픈 감정일 수밖에 없다. ... 결국 연민을 계속 품고 있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이 계속 불행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203쪽)

 

안톤 호프밀러는 케케스팔바 성으로의 방문이 즐거웠다.

난생처음 나보다 계급이 높은 상관이 계급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나를 대해주었다. 그는 내게 부대 생활에 만족하는지, 진급 가능성은 어떤지 등을 물어보았고, 빈에 오거나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해주었다. (63쪽)

 

일개 장교에 불과한 자신이 상류층의 사람들과 격의 없이 편안하게 어울리고,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진귀한 음식들을 대접받았을 때, 호프밀러는 행복했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감탄을 자아냈고,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상상할 수도 없는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뿌듯해했다. (64쪽)

그 뿐이 아니다.

매일 오후 나는 여러 마리의 암탉을 거느린 수탉처럼 두 여자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밝고 여성스러운 목소리에 몸이 노곤노곤해지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나는 난생처음 젊은 여인들과 있으면서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 나의 모습을 즐겼다. (72쪽) 

 

케케스팔바 성에 속해 있을 때,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수염이 덥수룩한 거친 남자 동료들 대신에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게 케케스팔바 성은 황홀경이다. 지옥 아닌 천국, 지상 아닌 낙원, 케케스팔바 성과 부대, 호프밀러는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겹쳐서 살고 있었다.

케케스팔바는 마치 어린아이나 여자를 쓰다듬듯이 아주 부드럽고 수줍게 내 팔을 어루만졌다. 이 수줍은 손길에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애정과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깊은 행복감과 절망감이 또 다시 나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67쪽)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자신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지구상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확신(68쪽), 희망 없는 에디트에게 자신이 환희와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에 호프밀러는 계속해서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한다.

하지만, 술집에서 만난 친구들의 조롱 때문에 호프밀러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자기를 그저 부자들의 환심이나 사고 저녁식사비를 아끼고 선물이나 받을 요량으로 그 화려한 저택에 드나들고 있다(85쪽)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프밀러는 자신의 선한 의도가 그렇게 이해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그는 아무런 연락 없이 매일 방문하던 케케스팔바 성에 가지 않는다.

케케스팔바 성은, 케케스팔바 성 전체는,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결국에는 그를 찾는 사람이 그가 죽치고 있던 카페 근처까지 오게 된다. 무심한듯 하지만 사뭇 진지한 초대 때문에 호프밀러는 다음날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다음날, 어설프게 핑계거리를 찾던 호프밀러의 거짓말은 ‘연민으로서는 찾아오지 말라’는 에디트의 솔직함 앞에서 떨어진 낙엽처럼 초라하게 굴러다닌다.

소설 첫 장에서, 호프밀러는 말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디까지가 나의 단순한 실수이고 어디서부터 나의 죄가 성립되는지 그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19쪽)

 

영 모르겠다니, 내가 알려준다. 호프밀러의 단순한 실수가 죄로 변용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부터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연민으로써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는 에디트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실수다. 자신에게 희생하지 말라는 에디트의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것, 그것이 그의 잘못이다.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는 에디트의 말의 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그것이 그의 죄다. 바로 이 지점부터, 호프밀러는 ‘연민’의 감정을 ‘우정’으로 위장한 채,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한다. 그와의 모든 시간을 한없이 소중히 여기는 에디트의 본심을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다.

케케스팔바 성에서 한 발짝 발을 빼려 했던 호프밀러는 오히려 콘도어 박사에게 에디트의 병에 대한 진척 여부를 물어봐 주기로 케케스팔바씨와 약속한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케케스팔바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접근해간다. 케케스팔바씨의 딸이자 케케스팔바성의 진정한 주인, 불쌍한 소녀 에디트의 삶 속으로 그렇게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상대방이 연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까. 에디트에 대한 연민으로 호프밀러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쾌유를 기원하고, 회복 후 그녀 앞에 펼쳐질 밝은 미래를 기약한다. 그는 그녀를 돕기 원했다. 그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그녀를 격려해 주고,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그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와 체스게임을 두고, 그리고 그녀와 식사를 했다.

그는 그것이 그녀를 돕는 일이라 생각했다. 에디트, 아름다운 소녀이자 성숙한 여인, 불구의 몸이나 날개처럼 가벼운 사람. 어쩌면 그녀는 그에게 신비롭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민은, 호기심은, 그리고 희생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다.

호프밀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혹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에는 아직 나약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직면하는 에디트와 비교하면 그의 나약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결정을 번복하고, 이별을 연기하고, 사람들의 눈물 어린 부탁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의 이런 우유부단함은 에디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나약한 호프밀러의 연민, 그의 연민에 사랑을 기대하는 에디트, 그런 에디트에 종속되어 있는 케케스팔바성. 아슬아슬하다.

다만, 호프밀러를 위해 변명 한 마디를 하자면, 이렇다.

호프밀러는 여러 번 케케스팔바 성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에디트의 아버지, 에디트의 주치의, 에디트의 사촌언니, 그리고 케케스팔바 성의 하인들은 그에게 간청하고 또 간청한다.

“제발 이 곳에 와 주세요.”

“내일 아침 일찍 와 주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꼭 와 주세요.”

그들에게 에디트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 그 자체’이다.

그녀는 불행하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아무도 부럽지 않은 환경속에서 자랐지만, 에디트는 불행하다. 앞으로도 살날이 창창한 그녀는 족쇄같은 기계에 매여 있다. 언제 회복될지 모르며, 효능을 예상할 수 없는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친구를 만날 수도, 산책할 수도,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없다.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녀는 불쌍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 그 아이가 얼마나 예민한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모든 것을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느낀답니다. 지금도 자신이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자제를 하겠습니까? (56쪽)

 

에디트는 불행하고, 불행한 그 소녀는 스스로를 자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종종 자제력을 잃을 수도 있고, 그리고 자신이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통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많이 불행하다고 해서, 그녀가 스스로를 자제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본문 인용의 굵은 글씨체는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케케스팔바씨가 말한다.

“... 어떻게 자제를 하겠습니까?“

불쌍한 딸을 둔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이, 사촌언니의 애달픈 마음이, 케케스팔바 성 하인들의 충심이 한데 모아져서, 결국에는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든 욕망을 끝까지 관철시키고야 마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졸도해버리고 마는, 그런 에디트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주, 안톤 호프밀러 소위를 위한 한 가지 변명이다.

결국에는 케케스팔바 성 전체를 파국으로 이끌었지만, 그래도 한 때는, 그 성에서 가장 활기찬 웃음소리를 만들어냈던 남주 안톤 호프밀러를 위한 내 작은 배려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크아이즈 2014-02-05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디까지가 나의 단순한 실수이고 어디서부터 나의 죄가 성립되는지 그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적나라한 자기고백적 문장을 술술 구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자기검열(주인공 시점이든, 작가적 시점이든)이 덜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 일단 초조한 마음, 보관함에 넣습니다. 단발님 덕이지요.

볼 때마다 깊이 읽고, 높이 읽으시는 단발님...
열심히 보고 배울게요. 오늘 하루도 상큼하게 출발하시어요.^^*

단발머리 2014-02-05 10:35   좋아요 1 | URL
팜므느와르님,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저는 읽고 쓰는게 아직 서툴러서 솔직히 이렇게 리뷰 올리는게 아직 부끄러워요.
그래도 팜님처럼 응원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얼마나 신나는지 모르겠어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겠습니다.
한 수 말고, 다섯 수, 열 수 가르쳐주세요~~~~~~~~~~~~~~~~~~~


다락방 2014-02-05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나게 좋지요, 단발머리님? 진짜 최고에요 최고!!
구구절절 단발머리님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단발머리 2014-02-05 10:44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다락방님. 진짜 최고라는 말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소재도 특별하지만, 츠바이크가 사건과 심리를 엮어서 전개하는 방식도 너무 좋구요.
말 그대로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다락방님께서는 [연민]으로 읽으셨다고 하셨죠? 저는 도서관에서 요 책을 만나 '한 번 읽어볼까?'하고 마믐 편하게 시작했다가, 단번에 읽었다는.... ㅋㅎ 요 위에 페이퍼에는 못 썼는데, 번역도 아주 유려하고요.

이 나이에 츠바이크
조금 늦은감 있지만,
이제라도 츠바이크
읽으니 다행이다...

착한시경 2014-02-05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넘 멋진 글~ 저도 이 책 지난달에 구입해 놓고 아직 표지만 구경 중인데~ 단발머리님 글을 읽고 나니 맘이 급해져요~ 빨리 읽고 싶네요^^

단발머리 2014-02-06 09:07   좋아요 1 | URL
착한시경님, 벌써 구입하셨군요. 저는 책을 집어들고 이렇게 빨리 읽게 될 줄 몰랐어요. 폭풍처럼 몰아치는~~ ㅋㅎㅎ 저는 책을 빨리 못 읽거든요. 근데 빨리,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늘 서울은 별로 안 춥네요. 착한시경님, 즐건 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