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반다나 시바와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마리아 미스의 공동 저작이다. 3세계 사람들, , 대지,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의 착취를 고발하는 반다나 시바의 환경운동과 백인중심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약자를 착취해온 과정을 연구해온 마리아 미스는 환경운동과 여성운동간에 새로운 지구를 위한 공통의 해법이 존재함을 확인하고, 이 책을 함께 쓴다.


<4장 따라잡기식 개발의 신화>에서 반다나 시바는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저개발된 국가들의 북반구 산업국 따라잡기는 신화로서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잉개발된 중심 및 대도시와 저개발된 주변의 관계는 식민지적이다. 오늘날 이와 유사한 식민관계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도시와 시골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백인남성의 식민지라 부른다. 그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력과 폭력은 언제나 필수적이다. (128)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북반구의 행복(?)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남반구 사람들의 욕망은 좌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북반부 사람들의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은 남반구 사람들의 희생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이는 비용의 외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식민통치가 끝난 후에도 식민화된 주변부 노동자들은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저임금하에서 노동해야만 하고, 산업국의 노동자들은 그들보다 10배 이상의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131). 가부장적, 자본주의적 성별분업을 통해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이해된다. 가사노동은 비생산적 무보수 노동이기 때문에 GNP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여성은 가정주부로 규정되기에 여성에 의해 수행되는 다른 노동 역시 가치절하된다.


자본주의는 체제의 내부 구성원인 여성을 식민지화하고 외부 세계를 식민지화한다. 얼굴을 알 수 없는 다국적기업은 국가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초토화시키며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이익은 북반구 소수의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제3세계 국가에 대한 자본 침략은 환경 악화와 빈곤을 초래한다(148). 이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룬다티 로이의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가 이해를 도와준다.  



초국적 기업은 국가의 지원 아래 인도의 산과 숲, 강을 약탈하고, 광산과 철광이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고 있으며, 기름진 토지가 사막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지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 적합한 지속 가능한 식량 작물이 뽑혀 나가고, 그 자리에 물 집약적이고 교배종인 유전자 변형 환금작물이 경작된다.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나거나 지력의 약화로 수확량이 줄어들어 빚의 구렁텅이에 빠져 든다. 인도에서는 최근 몇 년 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이 18만 명이 넘는다.(23)






이 모든 것은 개발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도 북반부의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개발로 인한 이익이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남반구 사람들의 상상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GNP 계산법으로는 숲의 벌목이 경제성장(149)이다. 자본은 경제성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농부를 농토에서 내쫓고 그 모든 수확물을 북반구로 가져가고 있다. 환경파괴와 자원전쟁이 예상되는 암울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 반다사 시바는 의식적이고 전면적인 생활양식의 변화, 소비의 감소, 북의 소비패턴의 근본적 변화, 그리고 에너지 보존을 위한 단호하고 광범위한 운동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137)



더 나은 생활환경과 편리함에 대한 추구는 멈출 수가 없다. 건조기를 구입하고 나서는 식기세척기가 눈에 들어오고, 새로 나왔다는 근사한 디자인의 커피 머신을 구입하고 싶어진다. 더 사고 싶고, 더 갖고 싶고, 더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를 어떤 식으로 풀어 가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다. 비행기를 타고 이 곳까지 배송되어 어마어마한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열대 과일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자란 수박을 선택하는 일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기까지.



근사한 핸드백에 대한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나도 모르게 에어컨 리모컨을 눌러버리는, 쉽게 조리식품을 배달시키는, 그런 나는 더욱 고민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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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6-16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 자본주의.. 너네 참 달다...

단발머리 2020-06-19 07:34   좋아요 0 | URL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만나 아주 날개를 달았다지요. 너네는 참 좋겠다. 사이가 좋아서 ㅠㅠ
 





 












핸드폰을 바꾸고 나서 이리저리 만지고 여기저기 들어가보던 중에 <도서>라는 앱에 들어갔. 보통 고전, 정확히는 서양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당장 읽을 생각은 없어도, 언제 어디에선가, 와이파이가 안 되는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당장 가지고 있는 책도 없을 때, 어쩌면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으리라 하는 기대를 가지고 몇 권을 다운로드 받았다. 그 중의 한 권이 <Villette>였다.

 


샬롯 브론테를 그렇게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빌레뜨를 아직까지 읽지 않은 스스로를 탓하며 읽기를 시작한다. 제일 먼저 우롱상자의 실상을 고발해주신 폴스타프님, 일정을 취소하고 택배상자를 받겠다고 집으로 뛰어갔으나 크게 실망했던 금요일 밤을 고백해 주신 레삭매냐님, 개인 취향과 의견 개진의 소중함을 보여주신 실명 다락방님, 잠자일보로 언론을 일깨워주신 잠자냥님, 창비에 알라딘 글 읽는 사람 많아요,라며 어쩌면 창비에 이 상황을 전달해 주셨을지도 모르는 순오기님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쉽기는 하지만, 나름 독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보여준 창비에게도 감사드린다. 책이 아주 어여뻐, 의외의 책선물에 전혀 공헌한 바 없는 단발머리는 심히 마음이 기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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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1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택배가 도착했나는 뉘우스를
들었습니다.

정말 애증, 아니 애정할 수 밖에 없네요.
빨랑 가서 인증샷 올려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0-06-10 18:16   좋아요 0 | URL
전 특히 기다리던 택배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레삭매냐님은 어떤 책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인증샷 기다립니다^^

잠자냥 2020-06-10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원하던 거 받으셨군요. 저도 집에 도착했을 우롱상자를 받으러 퇴근 =33

단발머리 2020-06-10 18:27   좋아요 1 | URL
너무 이쁘지 않나요, 잠자냥님! 이전의 아쉬운 마음, 허전한 마음 모두 다 날아가버렸답니다! 빌레뜨 만세!

다락방 2020-06-1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름다워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0-06-10 20:13   좋아요 0 | URL
실물은 더 이쁘다고 합니다. 이제 읽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하하!

비연 2020-06-1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요. 샬롯 브론테를 좋아하시는군요!

단발머리 2020-06-10 20:44   좋아요 1 | URL
네~ 책이 이쁩니다. 브론테 자매 셋 다 좋아하지만, 전 특히 샬롯 브론테를 좋아합니다. 제 프사 왼쪽이 <제인 에어>의 제인이고 오른쪽이 로체스터라고 합니다^^

비연 2020-06-10 21:12   좋아요 0 | URL
이런, 이제야 단발머리님 프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네요. ㅎㅎㅎ
저는 예전에 <폭풍의 언덕>을 좋아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여주는.. 넘 수동적이었어요..;;;

Falstaff 2020-06-10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저도 퇴근 바로 전에 이 글 읽고 얼마나 좋아했는지요. 근데 술 약속이 있어 쐬주 각 이 병 얼른 까고 왔습니다.
ㅋㅎㅎㅎㅎ 오늘 제 집에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1,2가 왔습니다. 참 기분이 좋습니다. 진즉 이렇게 할 것을, 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여간 다행입니다.
단발머리 님의 마음이 빌레트 표지보다 더 예쁘시네요. 전 심술쟁이고요. ㅎㅎㅎㅎㅎ 하긴 심술하면 신문사 편집장께서 한 수 위시겠습니다만.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6-11 13:04   좋아요 1 | URL
모두 각각 다른 책이지만 모두 다 같이 흐믓한 마음이어서 넘 좋아요. 이렇게 쉬운것을... 왜 그렇게 힘들게 돌아갔는지 오히려 그게 더 궁금해질 지경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이 정말 이뻐서 읽기 전에 감동받았습니다. 절로 웃음이 나요. 하하 하하하!

blanca 2020-06-2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빌레뜨> 재미있어요? 그러면 시작하려고요. ^^

단발머리 2020-06-23 06:49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요!!!
제인 에어의 음습하고 고딕적 느낌은 좀 적지만요, 샬롯 브론테의 발랄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츤데레 남주 등장해 주시고요.
제인 에어가 제일 좋지만 빌레뜨도 참 좋아요^^저는 그렇게 읽었답니다, 블랑카님!!!
 




 











나는 지구에 대한 강간과 여성에 대한 강간은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왔다. (17)

 


읽었는데 리뷰를 쓰지 못한 책 중에 기억에 남는 걸 고르자면 이렇게 3권이다

















읽었던 책이 별로라면 리뷰를 쓸 필요가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건 아니다, 할 정도로 이상한 책이 아니라면 역시 리뷰를 쓸 필요가 없다. 당연하다. 나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리뷰를 써야 하고, 꼭 쓰고 싶은데도, 쓰지 못한 책이 있다. 쓰지 못할 정도의 충격을 주는 책들이 그렇다.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그런 책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든 고민과 갈등을 단 한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적이고 불안정한 핵을, 우리는 머리에 이고 산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철저한 무지와 대안 부재에 난 며칠 동안이나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지구를 떠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전문가가 말했다. 일본은 탈핵이 아니라, 탈출을 말할 때이다. 핵의 위험이 이렇게 상존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평화는 너무 조용하다. 지옥이 바로 문 앞에 있는데도. 월성과 고리, 그리고 한빛.

 


체르노빌의 참사는 특히 이러한 전쟁기술과 전반적인 산업의 전사(warrior)체제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와 저항을 자연스레 불러일으켰다. 핵기술이 폭탄으로 사용될 때는 나쁜 것이지만 북(반구)의 가정의 가전제품을 작동할 전기를 발생시키는 데 사용된다면 좋은 것이라는 허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70)

 

 


저자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침략과 침탈을 강간이라고 규정한다. 자연의 것을 빼앗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해 버리는 행위의 잔혹함을 강간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서구에서 여성과 자연을 등치시키고, 동양과 자연을 등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여성에 대한 지배와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해왔던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정희진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수도 있으니 아주 간단하게만 덧붙이자면.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정희진처럼 스마트폰 없이, 자동차 없이, 한겨울에도 스킨로션 하나 없이, 새 옷을 사지 않고, 오직 일용할 양식만을 구입하고 소비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런 정도의 실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페미니스트라고 모두 채식주의자인것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라고 모두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맞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의 비겁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에코 페미니즘』은 읽기에 많이 부담스러운 책이지만, 지구 파괴와 인류 공영, 에코 페미니즘의 실현과 가능성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 삶의 작은 영역에서만이라도 가능한 실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겠다는 결심 정도는 가지고 간다. 이를테면, 일회용품 덜 사용하기나 건조기 덜 사용하기 같은 것.

 


나는 아직도, 두 자리수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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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0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문장은 저도 읽으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문장이에요. 저는 아마도 18페이지 라고 합니다.

단발머리 2020-06-08 18:12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억날 문장이지요. 저는 8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에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서문 두 개 끝나면 서론 있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6-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아직도 18쪽 못 읽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정희진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말 진짜 좋아요. 근데 아무래도 정희진 선생님처럼 살아가는 건 이번 생에는 글렀다 싶은 느낌이에요. 나는 때때로 페미니스트입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할 때도 막 부끄럽더라구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볼 것도 없이 페미니즘 실행력이 빵점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음 정희진 선생님 이야기 들어서 생각난 건데 정리의 달인이 한 말이 떠올랐어요. 불행한 사람일수록 집 안에 물건이 그득하다. 물건을 사고 사고 쟁여둔다. 이 말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문득 단발머리님 떠올랐어. 단발머리님은 책을 잘 안 사신다고 했잖아요. 저는 읽지도 않을 책을 가끔 왕창 사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 읽고 구입하고싶은 책은 한 달에 두 권으로 줄여볼까 하고 있어요. 아 막 말하다보니 맥락 없이 댓글 달았다 ㅋㅋㅋㅋㅋ 결론은 굿저녁!! 근데 에코 페미니스트가 라면 막 끓여서 딸아이랑 먹어도 괜찮은 거야? ㅋㅋㅋㅋ 갑자기 궁금해졌어

단발머리 2020-06-08 19:32   좋아요 1 | URL
저도 정희진샘처럼 실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건 노력의 범위를 넘어선것이 아닌가 싶어요 ㅠㅠ 그래도 하나라도, 딱 한 가지라도 실천해보자 하는데, 장바구니 자꾸 까먹는 저는 여기에서부터 좌절을 경험하곤 합니다. 불행한 사람일수록 집 안에 물건이 그득하다는,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부자들은 수납 공간이 충분해서 물건들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좁으면 아무리 정리해도 물건이 그득합니다, 라고 변명의 말을 해봅니다. 전 책을 많이 안 사는데 대신(?) 옷을 많이 샀습니다(과거형). 그래도 막상 외출하려면 입을 옷은 없잖아요.(현실) 올해는 결심한대로 잘 지나간다 했는데, 그제 저녁에 못 참고 또 요가복을 사고 말았습니다. 배송비 아낀다고 하나 더 사는 이 못된 버릇을 코로나 시대 맞이해서 고쳤나 했더니 역시나... 에코 페미니스트도 라면 끓여서 딸아이랑 먹어도 됩니다. 저처럼 자주 먹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6-0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정희진처럼 쓰고 싶다!!! 구래서 정희진처럼쓰기를 사서 읽었지만, 구렇게 살아야 그런 글쓰기가 나오나봄용? (에코페미니즘에 만개한 정희진 샘 관련 댓글)

단발머리 2020-06-11 13:07   좋아요 0 | URL
페미니스트가 살기 참 힘들죠. 채식주의자도 그렇구여. 옳은 생각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생활의 갖은 제약을... 감당해야지요. 정희진쌤은 알아갈수록 존경하게 되는... 신비하고 놀라운^^
 






 












큰아이는 7살때부터 유치원에 다녔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집 앞 어린이집에 오전에만 다니다가 내내 집에서 놀았는데, 7살이 되니 어쩔 수 없이 유치원에 보냈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작은 아이와 도서관에 갔다. 매일은 아니었고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집 앞 ㅅㅅ도서관에 갔다. 3층 어린이실의 선생님이 아롱이를 너무 예뻐해주셔서, 그 땐 아롱이가 (남달리) 귀여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이셨다. 언젠가는 아롱이의 손을 잡고 흔드시며 말씀하시기를, 딸만 셋을 낳아 요만한 남자 아이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아 아롱이가 골라오는 책을 읽어줬다. 글씨를 모르는 아이, 그림만으로만 세상을 상상하는 아이에게 소리를 내어 책 위에 새겨진 글자를 읽어줬다. 가끔 아롱이처럼 엄마랑 도서관에 온 아이들이 어린이실에 들어오면 아롱이는 그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나를 내몰라라 했다. 나는 나대로 육아 관련서를 읽거나 소설을 읽었다. 아무도 없는 날이면 내내 아롱이와 둘이 앉아 책을 읽다가 큰애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오면서는 자동판매기에서 600원짜리 제크 코코아를 사줬다.


 

사람들이 나처럼 책을 안 산다면 한국의 출판 문화가 많이 걱정되기는 하는데, 아무튼 나는 책을 많이 사지 않는 편이다.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기도 하고, 더 이상 쌓을 곳이 없기도 하지만, 제일 주요한 이유는 도서관이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책은 검색을 하고, 대출을 하고, 먼 곳 도서관 책은 상호대차를 신청하고, 신간은 이달의 희망도서로 신청을 한다. 새 책에 대한 열망만은 나도 남부럽지 않은데, 새 책이, 새 책들이, 엄청나게 많은 새 책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환상은 항상 나를 들뜨게 한다.

 


내게 도서관은 해방의 공간이다. 조용한 도서관 열람실에서 혼자 가만히 책장을 넘길 때, 걱정과 염려, 분노와 불안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답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곳이라는 확신은 갖게 됐다. 도서관은 내게 그런 장소였다. 아이들을 통해 만나게 되어, 아이들 독서모임에서 시작해 이제는 우리만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언니들과의 카톡 중에, J언니가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답답한 거 다른 거는 그냥 참을 만한데, 도서관 못 가는게 제일 그래. 그치? 우리 모두 다 같은 마음인데, 이 언니들도 도서관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분들로서, 이번 코로나로 인한 변화 중 도서관 휴관을 가장 힘들어하셨다.

 


3주 전쯤에 이사 온 동네에 도서관이 대출업무를 다시 시작했다고 해, 온 가족이 출동했다. 간격을 유지해 줄을 서고, 카드를 스캔하고, 체온을 재고, 손소독을 한 후에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자리에는 앉을 수 없고 대출만 가능하다고 했다. 작년 12월에 개관했다고 하는데, 3개월 정도 운영하고 나서 코로나 사태가 벌어져 내내 닫혀 있다가 이제야 문을 다시 연 것이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었고, 나름 신경 쓴 듯한 내부가 눈에 띄었다. 작은 화분 아래가 페미니즘 자리다. 『2의 성』,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자 전쟁』 등이 눈에 띈다. 『당신 엄마 맞아?』를 발견한 곳도 바로 여기다. 1인당 5, 모두 20권을 대출해서는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건만, 수도권 확진자 증가세로 도서관은 다시 휴관에 들어갔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 이제는 무색해졌다.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불안한 예감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코로나 19가 지나가면 코로나 19와 다른, 혹은 코로나 19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이제는 평범했던 이 모든 일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봐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전의 경험은 이제 추억으로서 혹은 과거로서만 존재할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낸 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자리에 앉아 목차를 펼칠 때의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 같은 것들.




유럽에 있는 제 지인들은 코로나19를 흑사병과 비교를 많이 합니다. 물론 사상자 숫자는 비교가 안 되죠. 14세기에는 인구의 거의 절반이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유럽 사람들이 이번에 워낙 큰 충격과 비극을 느끼면서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사건이란 점에서 같다고 보는 겁니다. 코로나19 이후에 문명 전체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지 않겠느냐,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지구적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던 구조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는 네 가지인데요.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생태 위기입니다. _포스트 코로나[4] 새로운 체제_ 홍기빈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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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6-0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을 좋아해요. 가까운 시립 도서관은 버스로 5정거장인데 잠시 열었다가 다시 닫았어요. 전 어린이실에서 혼자 평일 낮에 동화랑 그림책 읽기 좋아하는데 그 즐거움을 다시 갖기는 어려워 보여요. 그 편안한 혼자의 시간.... 은 멀리 있었고요, 요즘은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밥하고 치우고 책은 조금씩 멀어져 가는 ... 아아아 쓰다 보니 이런 디스토피아 종말이라니!!!! 아니에요, 저 책 계속 사고 읽고 있어요. 암요, 희망을 버리진 않겠어요.

단발머리 2020-06-07 21:16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이 언제쯤이나 가능할까요. 전.... 일단 올해는 마음을 좀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혹시(혹시ㅠ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해도 그 일상이 예전의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않구요.
저도 사실 요 몇달간 책을 좀 사기는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릴 수 없어서 급한(?) 책들 위주로 좀 구입을 했더랬죠.
구입한 책들은 대출한 책들에 밀리고, 대출한 책들은 그 전에 빌렸던 책들에게 밀리는 이 신기한 현상....
그래요, 유부만두님. 우리 희망을 버리지 말아요~~~ 엉엉!

다락방 2020-06-0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방금전에 예스이십사에서 컬러퍼플 주문했어요. 주말상품권까지 3천원 혜택을 주기 때문에... ㅎㅎ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같이 읽은 사람들에게 컾러 퍼플은 통과의례인가요!!

저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는데 빌려오고나서 다시 휴관이 되더라고요. 저는 세 권만 빌렸다가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다섯권 빌릴 걸 그랬다, 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사두고 안읽은 책이 많으니까요.

저는 4월의 여행도 8월의 여행도 취소하고 9월 여행은 아직 취소전인데, 그걸 취소해야 될까봐 너무 속상해요. 저 너무 가고싶거든요. 제 경우엔 책은 거의 사서 읽는 편이니 도서관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지만, 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너무 커요. 공항 리무진과 공항 라운지 비행기, 호텔이 다 너무너무 그리워요. 너무 그리워서 미치겠어요. ㅠㅠ

단발머리 2020-06-08 09:13   좋아요 0 | URL
방금 전 주문 축하드립니다, 다락방님. 아주 적절한 소비였어요. 전 이번에 컬러 퍼플 빌리기만 하고 읽기를 못 했는데, 앨리스 워커 책이라 꼭 다시 도전해보려 합니다!

여행 취소 이야기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다락방님 여행기 읽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다락방님이 여행을 못 가시니 여행 페이퍼도 읽을 수 없고..... ㅠㅠ 다락방님 속상한 마음에는 비기지 못하겠지만 저도 안타깝네요. 위에 링크한 책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홍기빈 칼폴라니 소장이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코로나 이후 여행, 특히 세계 여행에 대해서요. 자세히 이야기하다보면, 안타까움이 배가될 것이라는 예고만 해드립니다. 결론은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건데, 그건 어차피 진단이고요.
현 상황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 뿐이에요. 휴우~~

syo 2020-06-0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가보고 싶다... 여유롭게 서가를 기웃거려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요.

단발머리 2020-06-07 22:38   좋아요 0 | URL
전 syo님이 <도서관 무림의 고수> 그런 페이퍼 썼던 거 기억나네요. 저도 여유롭게 서가를 기웃거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놈의 코로나 ㅠㅠ

감은빛 2020-06-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로 인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 일상이 얼마나 더 달라질지 쉽게 예상하기 어렵죠.

도서관과 관련해 먹고 사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요. 비록 도서관은 오래 문을 닫고 있지만, 일하는 분들은 계속 거기서 일하고 계시더라구요.

다시 도서관을 맘껏 돌아다니고, 책도 빌려볼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단발머리 2020-06-08 07:58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는 신청자에 한해 책을 대출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더라구요. 전 아직 한 번도 안 해보기는 했는데, 오전에 책이름, 청구기호 등 기입하면 선착순으로 책을 대출해주더라구요. 책은 사물함에 보관하고 비밀번호 문자로 보내주고요. 책을 완전히 찾아주는 서비스죠^^

확진자 증가세가 워낙 뚜렷해서 한동안 수도권은 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얼른 도서관 맘 편히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psyche 2020-06-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어릴 때 동네 도서관 뿐 아니라 이웃 동네 도서관들 돌아가면서 다니곤 했었는데 (저희 동네 도서관이 넘 후져서요 ㅎㅎ) 옛날 생각나네요. 아이들이 크고나서는 나 혼자 오가며 들리던 도서관. 언제쯤 그 곳에서 갈 수 있으려나요 ㅜㅜ

단발머리 2020-06-11 13:14   좋아요 0 | URL
얼마전 미국 친구가 밴드에 사진이랑 근황 올렸는데요. 온 가족 집에만 옹기종기.. 막내가 누나들 돌아와서 너무 좋아한다고 해요. 철모르는 막내만 좋아하는 슬픈 세상 ㅠㅠ
언제쯤 도서관에 갈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어요. 다행히 여기는 지하철 무인기를 이용한 대출이 가능해서요. 어제도 아롱이 책을 하나 빌리기는 했는데, 참 아쉽고 그렇습니다.
프시케님도 온 가족 모두 건강하게 이 어려운 시기 잘 보내시기 바래요~~~~~~~ 좋은 날 오겠지요, 흑흑.

다락방 2020-06-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내일 이 책에 대한 땡투 들어올겁니다. 제가 드리는겁니다. 으하하핫.

단발머리 2020-06-10 14:43   좋아요 0 | URL
이야호! 감사해요, 다락방님!
으랏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

다락방 2020-06-11 08:17   좋아요 0 | URL
부자되세요! 으르렁-

단발머리 2020-06-11 08:41   좋아요 0 | URL
태산은 티끌 모아 가능한데, 땡투는 티끌 중에서도 우량주죠. 반드시 부자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으르렁!! 😤

노련한초보 2020-06-13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근처에 도서관이 두 군데나 있던데 살다가 도서관 불모지로 이사온지 일년이 다되어 갑니다. 그 일년 가까이의 절반은 코로나 시대이구요. 도서관이 없어서 5월부터 2주에 한번 이동도서관이 출동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한번 오고서 다시 중단되었답니다. 일상의 소중함은 떠나보내고서야 와닿기 시작하나봐요. 아이들 등교후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던게 사치일 줄이야.. 새삼 그리워지는 일상이지만 잘 읽지 않던 소설책을 하나씩 사서 읽으며 그리움을 달래봅니다.

단발머리 2020-06-14 18: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련한 초보님^^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시던 분들은 도서관 이용하기 어려워질 때 많이 힘들어하시죠. 저도 이사하면서 도서관이 좀 멀어져서 그 때 생각이 자주 납니다. 아이들 등교 후 도서관 서가에서의 시간은, 뭐랄까여. 최고의 시간이죠. 돈으로도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귀한 시간이죠. 코로나 덕분에(?) 저도 책을 좀 구입했습니다. 휴관이 생각보다 길어질 분위기에요. 에휴ㅠㅠ
 




 













바바라 스미스는 설득력 있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성애 특권은 흑인여성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인종이나 성에 따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들 거의 모두가 계급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동성애자가 아니라서 똑바른 처지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223)

 


이성애자 흑인여성들이 흑인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상성으로 인정받는 창구가 단 하나, 이성애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애 여성이라는 사실이 다른 불합리를 상쇄시키지는 않았다. 여성이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여성인데다가 흑인이라는 건, 그들이 속한 세계의 제일 밑바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의 역사를 고려하자면, 백인 파트너를 선택하는 흑인여성 개개인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흑인여성에게 이 고통스런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계를 역사적인 주인/노예 관계를 상기시키기에 흑인집단의 아픈 곳을 다시 헤집는 것이다. (282)

 


백인남성은 백인여성을 선호했고, 흑인여성을 착취했다. 백인여성은 백인남성을 선호했고, 새로운 욕망의 대상으로 흑인남성을 선택하기도 했다.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을 한없이 숭배했고, 흑인여성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마약, 범죄 행위, 구금 등의 이유로 젊은 흑인남성의 숫자가 한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흑인여성은 백인남성을 파트너를 선택할 경우 흑인공동체에서 인종배신자또는 창녀로 비난받았고,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이 손짓만 해도 뛰쳐나갔다. 그러니,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도 흑인여성들은 이 세계의 밑바닥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골라 둔 책은 이렇게 3권이다. 『빌러비드는 내용은 알고 있지만 반드시 읽어야할 책으로 말하자면 고전 중의 고전이고, 『컬러 퍼플』 역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고 한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 이 여성을, 이 작가를, 마야 안젤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그녀의 솔직함과 용기, 그리고 도전정신은 그녀의 단어와 문장, 문체 속에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살아있다. 같은 세계를 사는 인간으로서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올해의 책 후보라 할 수 있겠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나 그리고 엄마도 찾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흑인여성의 서사인 린다 브렌트 이야기.  















흑인 노예여성 해리엇 제이콥스는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자서전을 출간했다. 노예 여성들이 겪는 성적착취와 학대 문제를 다룬 책으로 탈출과 유폐 생활, 자유주로의 재탈출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특히 그녀의 할머니가 판매되기 위해 경매장에 세워지는 모습에서는 노예제도의 비극 뿐 아니라 의 잔인함이 엿보인다.

 

백인에 가까운 밝은 피부색의 할머니는 오랜 세월 크래커와 통조림을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수완이 좋았고, ‘마사 아주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평생 동안 백인 가족에게 충실한 하녀였기에, 이전 주인은 유언으로 할머니에게 자유를 약속했고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위 플린트씨는 이제 그의 재산이 된 할머니를 개인적인 거래로 판매하려고 한다. 할머니는 그의 비열한 제안을 거절하고, 공개 경매대 위에 선다.

 

 

말도 안 돼! 마사 아주머니를 판다니 말도 안 돼! 어서 내려와요! 거기는 아주머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에요!” 할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운명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마침내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50달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독신으로 살아온 일흔 살 된, 할머니 주인의 언니였다. 40년 가까이 할머니와 한 지붕 아래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주인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보호하기로 나선 것이다. 경매사는 더 높은 경매가가 나오는지 기다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바람을 존중했다. 아무도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기 때문에 매매계약서에 십자가를 그어 서명했다. 그런 다음 인간다운 정이 넘치는 넓은 가슴으로 어떤 일을 했겠는가? 그녀는 할머니에게 자유를 주었다. (23)

 

 

이 모든 것은 돈의 문제다. 흑인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라는 거짓말로 노예제를 옹호했던 것도, n번방 때문에 온 나라가 그렇게 떠들썩했는데도 트위터에 이와 유사한 영상이 유포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돈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상관 없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괴로움은 상관없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그 천박하고 잔인한 생각이 이런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흑인여성이 소나 말처럼 경매대에 세워져 고통받던 그 시간부터 바로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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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을 읽고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인 것 같아요. 책을 읽는 기쁨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저는 [빌러비드] 사두었는데 그걸 읽고 싶은 마음보다는 [컬러 퍼플]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아직 사지도 않앗지만요 ㅎㅎ 컬러 퍼플 아주아주 오래전에 영화로 보면서 되게 기막혀했던 감상이 남아 있거든요.

맨 위에 인용하신 223쪽의 글이요. 저 부분은 저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흑인 여성 레즈비언은 가장 밑바닥일 수밖에 없겠구나. 여성이면서, 흑인이면서, 동성애자라니. 여성도, 흑인도, 동성애자도 무엇하나 잘못된 것도 그릇된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는 비정상성이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세상인가요.


그건 그렇고, 저는 참 좋으네요, 단발머리님.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내가 알라딘을 통해 단발머리 님이라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건 얼마나 행운인가 싶어요. 단발머리님에 대한 애정이 폭발합니다...넘쳐흘러요.....

저는 최근에 읽고 쓰기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있는데, 단발님은 멈추지말고 읽고 써주세요, 아셨죠?

단발머리 2020-06-04 14:22   좋아요 0 | URL
[빌러비드]는 사실 오랜 숙제같은 책이지요. 전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좀 더 일찍 [빌러비드]를 읽었더라면 나는 그 선택에 동의할 수 있었을까.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고, [린다 브렌트 이야기]를 읽은 후에 나여야 비로서, [빌러비드]를, [빌러비드]의 선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니까 [빌러비드]를 전 최강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맥락 없는 글인데도 읽어주시는 다정한 다락방님이 계셔서 저도 참 좋아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이 행운이라 말해줘서 감사하구요. 알라딘서재에서 혼자 낄낄대며 다락방님 글을 찾아읽고, 새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그때부터 한결같이 전 다락방님의 팬이에요. 팬으로서 친구로 여겨진다는 건 진짜 대단한 성공 아닙니까?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팬의 입장으로 말씀드리자면, 기다리는 수많은 팬들을 위해, 다락방님도 멈추지 말고 읽고 써주세요!! 저도 그렇게 할께요!

다락방 2020-06-04 14:2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2020-06-04 14:33   좋아요 0 | URL
😍

잠자냥 2020-06-04 14:38   좋아요 0 | URL
아니 왜요? 왜! 읽고 쓰기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비밀이에요?? 잡아봐도 말 안해주실 건가요? ㅋㅋㅋㅋㅋ
좀 쉬시다가 그 욕망이 다시 생기길 바랄게요~

다락방 2020-06-04 14:47   좋아요 0 | URL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하아-
다시 쓰고싶어지겠죠? ㅠㅠ

단발머리 2020-06-04 14:50   좋아요 0 | URL
이제 잠자냥님과 제가 다락방님 쫓아가고 다락방님이 ‘나 잡아봐라~~!!’ 할 때인가요? ㅠㅠ 쪼금만 아주 쪼오금만 쉬시고요 다시 읽고 쓰기의 욕망이 불타오르리라 믿쑵니다! 🔥🔥

2020-06-04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4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