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멀고도 감정적인 거리는 어려서 형성되기 시작해서 날마다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없는 문화에서 자라는 , 상상해 적이 있는가? ‘어떻게 지내니?’하는 일상적인 인사도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 말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훈련을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는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고 배우는 문화 말이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길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면서, 불필요하게 서로를 죽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켜야 했던 바이킹 생존 전략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24) 




명절마다 마주치는 기사는 정해져 있는데, 고부갈등, 가사분담, 명절 증후근, 고향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 선물 상자를 들고 재촉하는 귀성행렬 그리고 귀경행렬 등이다. 최근에는 친척들로 북적이는 집을 피해 카페 혹은 호텔로 대피 아닌 대피를 하고 있는 2030 대한 기사도 자주 보인다. ‘듣기 싫은 질문이라는 기사도 단골인데, “사귀는 사람은 있니? 언제 결혼할거니?”, “월급은 얼마니?”, “취업은 언제 할래?”등의 질문이 듣기 싫은 질문이라고 한다. 자주 만나지 못해 공통의 화제를 찾기 어렵다 보니, 인류 공통의 화제를 찾으려 하다가, 쉽게 답을 찾기 어렵고, 금방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되는 싶다. 



아버지 삼형제는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가까이는 1, 멀어도 15 거리였기에 이런 중차대한 질문을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어렸을 때는 사촌오빠, 언니들을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점점 커가면서 역시나 공통의 관심사를 잃어버리고, 명절에도 친구를 만나 노는 것이 재미있어졌으니 언니, 오빠들과도 그렇게 멀어져 갔다. 큰댁에서의 시간들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듣기 싫은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6개월이 아니라, , 이내라도 새로운 소식들은 금방 업데이트 되곤 했다. 



인용한 문단을 읽을 때는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멀고도 감정적 거리를 느낀다는 , 또한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며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농경사회였고, 원인과 결과로서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었다. 산업화를 겪으며 인구 밀집이 더욱 심각해졌고, 개인의 입신은 가정의 성공, 가문의 영광으로 이해되었기에 성공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순환 고리에 묶였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마음을 터놓을 있는 친구, 의지할 있는 선배, 용기를 주는 직장동료를 찾아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 역시 사실이다. 마지막 보루가 가정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오빠가 동생에게, 동생이 누나에게 의지가 되어야 한다는 혹은 있다는 기대는 각박해진 현대 사회 속에서 마지막 희망이다. 그런데, 북유럽 가정은 어떠한가. 바이킹의 후손들은 어떤가. 작은 마을에 살면서도 년씩 외삼촌과 이모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 사는 오빠들과도 며칠씩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고 지내는 문화 말이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없는 문화. 침묵을 공기처럼 받아들이며 그에 익숙해지며 성장하는 문화. 



우리는사실은 관심이 없으면서도 기왕에 만났으니 무언가 말해야하기에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중차대한 결정에 대해 가볍게 묻는다. 하지만, 질문은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해라, 취직해라, 결혼해라, 애낳아라, 일생일대 4 강령을 향해 돌진하는 삶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바이킹 후손들의 문화,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의 어떠한 분쟁도 피하기 위해 형성되고 굳어진 침묵의 문화를 떠올리며, 무엇이 사람을 힘들게 할까 생각해 본다. 실패의 기억과 도전의 무게 사이에서 절망하는 사람에게그래서 언제 취직할거니?”라고 묻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며칠씩 말하지 않고, 춥고 겨울의 밤들을 혼자, 완벽하게 혼자서 견디는 것이 나은가. 무엇이 사람을 힘들게 할까.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할까. 



큰조카를 집에 데려와서는 맛난 것을 하나도 주지 않은 못된 큰엄마의 행태를 반성하며,  

토요일 아침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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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2-1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반 (무많이) ..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간섭하고 싶어서 던지는 뻔한 질문들 너무 예의 없고 싫지만 긴긴 겨울 동안 혼자 벽만 보고 살기도 싫어요;;;;

설 잘 쇠셨나요? 조카 먹거리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요, 문화상품권을 퉁~ 하셔요. ㅎㅎ
그런데 문상으로 책 대신 아이들은 게임 아이템을 사겠죠?

단발머리 2018-02-18 08:34   좋아요 0 | URL
저도 두 개 다 무섭더라구요. 한 집에 사는 데 며칠씩 말을 안 한다는게 사실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조카는 아직 어려서 문상으로 상품권사는 것보다 그냥~~ 먹는 걸 좋아한답니다.
설 전날 밤에 와서, 설 아침 일찍 시댁으로 가는 코스여서 사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미안하더라구요. 쌀쌀한 큰엄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18-02-18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기름진 음식 입에 물려 울애들은 밖의 음식 사주면 더 좋아하던데~ㅋㅋ
울집은 라면 끓여 주면 애,어른 완전 행복해 합니다.(대신 엄마는 라면을 퍼지게 끓이는 바람에 꼬들거리게 끓이는 아빠 라면을 더 선호하구요.참 바람직한 현상이죠ㅋㅋ)
큰엄마의 위상은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암튼 명절 잘 보내셨나요?
단발머리님도 빠른 원기회복 부탁드립니다^^

단발머리 2018-02-18 08:35   좋아요 0 | URL
라면, 라면 완전 행복하죠. 저희도 명절음식 해장은 꼭 얼큰한 라면으로 한답니다.
라면이면 아빠죠~~ 저희집도 라면은 아빠 담당이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명절 잘 보냈습니다.
책읽는나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오늘 홀가분하게 좋은 시간 되세요~~

순오기 2018-02-1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바이킹족의 후예들에겐 그런 문화가 있군요. 어쩌면 우리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중일지도... 침묵도 견디다 보면 견딜만해지긴 하더만요.ㅋㅋ

큰조카 데려다 맛난 것도 해주지 않은 큰엄마~^^

이 책 궁금하긴 하던데 아직 사진 않아서 주민센터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생각중...

단발머리 2018-02-19 21:54   좋아요 0 | URL
네, 둘 중의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저도 침묵이 나을것 같기는 한데요. 요즘같은 쌀쌀한 날씨 정도가 아니라 극한의 지역에서라면 잘 모르겠어요.

조카에게는 미안하지요. 동서는 작은아이 먹으라고 돼지갈비를 해서 보냈더라구요.
제가 이런 큰엄마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도서관 책으로 읽고 있어요, 지금이요^^
 



















<작가의 요즘 > 알라딘 ebook인데 무료로 다운받을 있다. 나는 김연수편을 다운받았는데, 자매품으로 정유정편, 조남주편 등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요즘 책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시대의 소음』이라는데, 권력 앞에 맞선 예술가의 고뇌를 다룬 작품으로 소설 힘을 주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작가의 요즘 보다 눈길이 가는 김연수의 단편 <사월의 , 칠월의 >이다. 김연수의 소설보다 산문집을 좋아해, 제목은 눈에 익어도 실제로는 읽지 않은 작품인데, 인터뷰하는 신준봉 기자의 질문, “지금까지 많은 작품 가운데 어떤 가장 눈에 밟히느냐 물음에 김연수가 꼽은 소설이라 바로 책을 대출해 왔다. 슬럼프에 빠졌을 자신을 구제해준 작품이라는 말도 덧붙여졌다. 


젊은 시절에는 굉장히 미인이셨죠. 지금도 선생님 말씀하는 분들 많으세요.”

조카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그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니, 이모는 워낙 서구적인 미인이신데, 제가 국문과를 나왔거든요.” 

그는 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음식을 시키자고 말했다. 그가 메뉴판을 들고 이모에게 이런저런 요리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살갑게 굴자, 이모는 의자를 그쪽으로 옮겨가면서 함께 메뉴를 골랐다. 

국문과는 김치에 먹을 거지?” 

이모가 내게 말했다. 

국문과도 한자 공부는 많이 하거든요.” (94) 



거실을 치우다가 잠깐 자리에 앉아 자리에서 읽어버린 <사월의 , 칠월의 > 사랑의 기억과 사랑의 도피와 사랑의 흔적과 사랑의 소리를 불러내는 단편이다. 화자이든, 주인공이든, 주인공 친구이든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매력에 빚지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서구적인 미모의 이모는 100 만점에 98점의 매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발렌타인 데이, 전전날이며, 2018 2 14 수요일. 

모두 잠든 아침에

<김어준의 뉴스공장> 들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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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2-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썰렁하고 무해한 농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요. ^^

단발머리 2018-02-14 08:59   좋아요 1 | URL
농담 없는 삶이야말로 썰렁하죠. 전, 농담을 좋아해요. 그리고 김연수도요.

물론이예요, 전 유부만두님을 좋아해요^^
유부만두님 덕분에 롱고 커피까지 좋아할 참입니다~~~

jeje 2018-02-1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오랜만에 김연수작가의 책이 읽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

단발머리 2018-02-14 09:21   좋아요 0 | URL
jeje님께 그런 느낌을 전했다면 아주 만족스럽네요.
저도 무료 이북 덕분에 오랜만에 김연수 작가를 읽었거든요^^

icaru 2018-02-1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한참 전에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 공개 녹화에서 초대작가로 나오는 걸 티비로 봣었는데요... ㅎㅎ;; 그 자리가 긴장되는 자리였을텐데 소심하면서 편안한 ㅋ (뭔말이죠... ) 모습이 또 상당히 인상적이더라거여 ㅎ

단발머리 2018-02-14 11:13   좋아요 1 | URL
아, 예전에 저도 비밀독서단 몇 번 본 적 있는데, 김연수 작가편은 놓쳤네요.
소심하면서 편안한~~ 이 딱 정확한 표현 같아요.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조근조근 자기 할 말 다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ㅎㅎㅎㅎ

icaru 2018-02-1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생글생글 수줍어하는 듯 하면서 자기할말 다하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2-14 14:1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생글생글 자기 할 말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할 말은 하는~~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즐건 설연휴 되세요~~~~^^

라로 2018-02-1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연수 작가를 영화에서 만났는데,,,저도 소설보다는 <청춘의 문장들>같은 책을 좋아해요. 소설은 단편 읽어본 적 있는 듯. 이 책 무료로 다운이 된다니 얼렁 받아야겠어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2-18 08:31   좋아요 0 | URL
네, 무료에 이북인데 13페이지 정도라 금방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
저도 <청춘의 문장들>을 좋아한답니다^^

서니데이 2018-02-1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18-02-18 08:3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셨나요? ㅎㅎㅎ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복된 한 해 되시길요~~~~^^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자식은 안 이뻐도 이쁘다. 큰애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의젓해서 알록달록 깜찍한 옷이 안 어울렸는데, 둘째는 6학년이 된 지금도 아기 같다. 막내라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아직도 멀쩡한 의자를 나두고 꼭 아빠 위에 앉으려 해 실랑이를 벌인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설명하다가 유발 하라리는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감정 하나만큼은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듯한데, 바로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감이다. … 포유류 새끼들은 어미와 유대감을 느끼고 어미와 가까이 있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야생에서 어미와 유대를 맺지 못한 새끼 돼지, 송아지, 강아지 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최근까지 인간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포유류 새끼들은 어미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므로, 어미의 사랑과 어미-새끼 간의 끈끈한 유대는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특징임은 명백하다. (128)


이 부분을 읽고는 남편에게 말했다. 새끼를 낳은 후에 생긴다는 모성이 내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포유류 새끼가 어미에게 애착심을 느끼는 건 맞는 것 같다. (둘째를 가리키며) 쟤는 어미가 아니라 아빠에게 애착을 느끼는 것 같으니, 아직 새끼니까, 포유류 새끼니까,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해라.


그랬던 아이가, 요 며칠 친구네 집을 순례하길래, 내일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라고 하니, 주문이 여러가지다.


첫째, 아이들이 왔을 때 현관 쪽으로 나와 반갑게 맞이하지 말라는 거다. 우리 집은 사람이 들어오면, 그대로 멈추고 현관 쪽으로 나가, 들고 온 것을 받아주고, 뽀뽀하고, 안아주는 게 일상인데, 그걸 하지 말라는 거다. 친구들이 집에 들어오면 안쪽에 있다가, “그래, 너희들 왔니?”하고 인사하라는 거다. “어머~~~~~~!!!!!!!! 우리 아롱이 친구들 왔구나!!!! 어서 와, 어서 와!!” 이러지 말라는 거다.


둘째, 떡볶이는 매워야 된다는 거다. 친구네 집에서 먹은 떡볶이가 너무 매워 자기는 먹지도 못 했는데, 그래도 떡볶이는 매워야 된다는 놀라운 주장이다.


셋째, 자기 방의 장난감들을 어떻게 하냐는 고민이다. 우리 집에는 5세 어린이도 놀만한 장난감이 몇 개나 있는데, 이제서야, 6학년이 되어서야, 예비 중학생이 되어서야, 놀러간 친구들 방에는 침대와 책상, 의자 그리고 책만 있지 장난감이 없다는 걸 발견한 거다. 이 장난감들한숨을 한 번 쉬고는 학교로 향한다.


아이가 주는 기쁨과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끝없이 요구하기에, 계속 도와줘야 하기에 힘들 때도 있다. 엄마, 아빠도 사람인지라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Time out!”을 외치고 싶다. 그랬는데,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그렇게 붙어 앉고, 끌어안고 엄마 품에, 아빠 품에 꽁꽁 쌓여있던 포유류 새끼가 이제 막 알게 된 거다. 집에서는 자기가 아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친구들이 알면 안 되기에, 자기가 아기라는 걸 알면 안 되기에, 집에 들어왔을 때 너무 반갑게 맞이해서는 안 되고, 떡볶이는 매워야 하고, 방에는 장난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큰애가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할 때는 몰랐는데, 아기 같던 둘째가 이제 다 컸다며, 매운 떡볶이여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니, 한편으로는 우습고, 한편으로는 기특하다.


우당탕 떡볶이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하랴 게임하랴 마냥 행복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학원 시간에 맞춰 서둘러 일어선다. 가방을 둘러매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혼자 남은 포유류 새끼를 본다. 이제 아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제법 커버린 내 새끼를 본다.


매운 떡볶이를 해 줄게. 매운 떡볶이, 아주 매운 떡볶이를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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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2-09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귀여워......매운 떡뽂이래 ㅋㅋㅋ

무엇보다 제목 센스 좀 보소. ^-^b

단발머리 2018-02-10 08:52   좋아요 0 | URL
평소보다 맵게 만들었는데 맵다고 말한 아이는 한 명도 없더라구요. 안 매웠나봐요ㅠㅠ

제목 센스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배웠네요.
syo님, ^-^b

유부만두 2018-02-0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비슷해요, 우리집 막둥이도요!!!
불닭볶음면 먹으면서 얼마나 물을 마시는지요!

단발머리 2018-02-10 08:53   좋아요 0 | URL
저희는 불닭볶으면까지 진도 나가려면 아직도 멀었지요!
물+우유+아이스크림까지 대기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icaru 2018-02-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응!! 둘째들이란 !!

단발머리 2018-02-10 08:54   좋아요 0 | URL
으아~~~ 아직도 귀여워요^^
둘쨰들은 어째 집집마다 비슷하나가봐요~~~

psyche 2018-02-10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 귀여워라. 역시 막내는!
등치는 산만한 저희집 막내녀석도 집근처 아닌곳에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니면서 집근처만 오면 옆에도 안선다지요.

단발머리 2018-02-10 08:57   좋아요 0 | URL
이렇게 둘째들이 다 비슷한 거는, 결국 개인보다는 환경의 역할 아닌가, 그런 생각이요.
저 같은 경우 그랬거든요.
좀 더러운 거 만질라치면 첫째한테는 막 달려들어서 빼앗고 안 된다고 했는데,
둘째는..... 뭐,,,, 그게 뭐니? 하고 천천히 묻고, 천천히 달려드는ㅋㅋㅋㅋㅋ
프시케님 막내는 이제 많이 컸군요. 그래도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닌다니
이게 부러운 저는 어쩔까요....

양철나무꾼 2018-02-10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가 원래 저렇게 귀여운가요?
전 하나 밖에 없는데,
그 하나마저 다 키워놔서리~^^

주변에 둘째를 보면 저희 남편의 경우를 보게 되면,
둘째는 고집불통이던데...

암튼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소심하게 시샘폭발 댓글을 남겨봅니다~^^

단발머리 2018-02-10 10:11   좋아요 0 | URL
네네네, 고집불통 맞고요.
말이 안 통하고, 말을 안 듣고, 떼 쓰고, 난리칩니다.

근데, 그런데도 귀여워요.
둘째도 곧 커버리겠죠. 저보다 더 크겠다는 결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시샘폭발 댓글 감사해요~~^^

프레이야 2018-02-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둘째는 좀 그런 데가 있어요 ㅎㅎ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은 포유류 엄마입니다~

단발머리 2018-02-14 08:26   좋아요 0 | URL
이제 명절이라 느끼한 음식이 많을텐데요.
입가심은 매운 떡볶이로 해야할 듯해요.
즐건 설 되시길요, 프레이야님~~~~

보슬비 2018-02-11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넘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둘째들은 다 귀여운것같아요.^^
조카만봐도 둘째가 더 귀엽거든요.ㅎㅎ

단발머리 2018-02-14 08:27   좋아요 0 | URL
네, 이제 6학년 되는데 사실.... 아직도 귀여워요.
보슬비님 여행에 함께하는 조카는, 모델 포즈 조카는
첫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더 귀엽군요 ㅎㅎㅎㅎ

AgalmA 2018-02-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셋째가 있으면 둘째는 중간에 낀 미운 오리 새끼되는 이상한 포유류 인간 세계-_-)...
한국 사회 생활을 위해 매운 걸 좀 먹을 줄 알아야 되더군요ㅎ 스트레스 쌓여도 매운 걸 잘 못 먹으니 매운 거 먹다 더 스트레스ㅋㅋ;;

단발머리 2018-02-14 08:29   좋아요 0 | URL
AgalmA님 어쩜 이렇게 정확한 지적을~~~ 맞아요, 셋 있는 집의 둘째에게는 또 다른 역사와 사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커버렸을 때는 괜찮은데, 아직 어릴 때, 자기도 어릴 때는 동생을 받아들이기 힘들죠 ㅠㅠ
행복한 막내의 삶을 일순 빼앗기니까요.

저희집은 싱겁고 안 맵게, 그러니까 맛없게 먹고 살아요. 매운 것도 조금씩 연습해야할듯요~~

라로 2018-02-12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둘째도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저리 귀여웠는데, 막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독립심을 강요받은 것인지 아니면,,,,하여튼 그래도 가끔 옛날에 하던 짓을 하긴 해요. 이제 18살이 되는데~~~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저 지금 모텔 방에 앉아서 밖에 나가긴 귀찮고 해서 있는 거 먹는데 매운떡볶이라니!!!!엉엉 딸아이 오면 매운 핫윙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어요~~~유부만두 님, 보슬비 님이 늘 음식으로 고문을 하시는데 단발머리 님은 사진도 안 올리면서 고문을 하시는 기막힌 기술을 갖고 계시는군요!!!ㅠㅠ

단발머리 2018-02-14 08:34   좋아요 0 | URL
라로님의 둘째는 18살이군요. 와우~~~
모텔 방에 앉아서 매운떡볶이를 생각한다면~~~ ㅎㅎㅎ 정말 엉어이네요.
급하게 만들고 아이들 챙기느라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어요.
맛있고 매운 떡볶이를 만들게 되면 사진 올려볼께요~~~~~~~^^
 




















나는 두 가지 다 믿는 편이다.



나는 인간의 결심과 노력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환경 자체의 변화라기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환경을 다르게볼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감사하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더라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고, 그래서 더더욱 오늘의 삶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 꼭 그만큼,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냥 성공한 사람일 뿐이다. 저성장과 고용불안의 시대에, 개인이 가늠하기 어려운 더 큰 역사의 수레바퀴, 시대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덧씌우는 건 무책임한 어른들의 말이라 믿는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내가 부자라면 그것은 내가 명민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난 속에서 허우적댄다면 내 실수 때문일 것이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자유주의자 치료사는 내 부모를 탓하며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라고 나를 격려할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하고 있고, 현 사회제도에서는 내 목표를 실현할 기회가 없어서 우울한 것 같다고 말하면, 그 치료사는 내가 자신의 내적문제를 사회제도에 투사하고 있으며, 어머니와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자본주의자들에게 투사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내 어머니, 내 감정, 내 컴플렉스를 말하는 데 수년을 보내는 대신, 내가 사는 나라의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라고 한다. 내 나라의 주요 수출품과 수입품이 무엇인가? 여당 정치인들과 국제금융의 관계는 어떠한가? (349)


『매일 아침 써봤니?』의 김민식 PD는 공대를 졸업하고 영업사원으로 일했고, 통역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드라마 PD가 되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와 열정으로 자신 앞의 난관을 돌파했다. 원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때, 자신이 원하던 바로 그 위치에서, MBC 파업으로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 하게 되었을 때, 그의 태도가 인상깊다.


역사적 소명, 사회적 대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회사를 위해, 회사를 정상화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맡았을 뿐인데, 저자는 회사로부터 징계 3종 세트, 국가로부터 국립 호텔 초대권을 받게 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 부담을 겪었을 것이다. 구속 영장은 기각되고, 구속되는 일은 피했지만, 결국 드라마 부서에서 쫓겨나 편성국 주조정실에서 송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일할 수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다시 드라마를 연출할 기회가 오리라고 예상할 수 없는 답답한 시간이 끝없이 펼쳐졌다. 다시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 그 암담함 속에서 그는 선택한다. 그 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말이다.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면 지난 몇 년간 제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요. 매일 아침 글을 한 편씩 쓰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되새겼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 순간 가장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썼습니다. (10)


글쓰기의 효능 및 효과에 대해서라면, 더할 말이 없다. 공개하든, 공개하지 않든, 일기이든, 소설이든, 나를 떠나 세상으로 뛰쳐나온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단들은 달아나고 뛰어가고 움직이고 활동한다. 글쓴이를 치유한다. 글쓴이를 억눌렀던 생각에서 그녀를 자유롭게 하며, 전혀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그를 이끌어 간다.


글쓰기를 통해 절망과 낙담의 시간을 극복했다는 이 평범하고 뻔한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파일명도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단어와 문장이더라도, 내 안에서 나와 형태를 갖추었을 때, 단어는, 문장은 그리고 문단과 문단은, 의미가 있다. 움직이고 활동해 또 다른 세계에 이른다. 이르고야 만다.


식탁을 치우지 못하고 김치냉장고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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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2-0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제 생각입니다만^^

단발머리 2018-02-08 13:20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쓰지 않고 다른 것도 되겠죠~~ ㅎㅎ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연주한다. 고로 존재한다.

cyrus 2018-02-0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개인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성공을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강조하지만, 개인의 성공을 평가할 땐 ‘개인의 노력’이 아닌 ‘성공하게 만든 좋은 환경’이 있었는지 따집니다.

단발머리 2018-02-08 14:51   좋아요 0 | URL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자기 계발이 번성하는 이유가 거기 있겠죠. 그게 전부는 아닌데도 불구하구요.
 




 















<나폴리 4부작>은 나폴리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인생 역경을 보내며,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함께 했다가 다시 헤어지는 레누와 릴라, 두 여인의 우정을 다룬다. 이 소설의 화자는 엘레나 그레코, 레누이다. 레누는 어떤 아이인가.


 

나는 곱슬곱슬한 금발머리에 얼굴이 예쁘장한 아이였고 이목을 끄는 것을 즐겼으나 건방지지 않았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섬세한 마음씨의 아이였다. (54쪽) 


 

가난한 동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레누는 초등학교 선생님인 올리비에로 선생님의 강권으로 중학교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레누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공부한 사람’이다. 라파엘라 체룰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리나’라고 부르지만, 오직 레누만 ‘릴라’라고 부를 수 있는 그녀. 릴라는 어떤 아이인가. 

 


릴라는 착해 보이는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이였다. 릴라는 너무 뛰어나서 우리 같은 평범한 아이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선생님들도 릴라에 비하면 어린 시절 자신들이 멍청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릴라의 완벽한 지성은 날카롭고 도발적이고 치명적이었다. (55쪽)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춘기 시절에 친구 눈에 비친 나, 내 눈에 비친 친구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인식이나 판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친구를 통해 만들어지고, 친구는 내 시선 속에서 형성된다. 레누는 지적인 면에서 자신을 압도하는 릴라가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음에도, 그녀와의 경쟁심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릴라가 중학교에 진학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니면 릴라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신을 미워하는지. 릴라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지, 아니면 실패를 바라고 있는지. 레누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릴라는 계속해서 레누의 학업을 격려하고, 어렵고 힘든 라틴어와 그리스어 공부를 도와주지만, 레누는 모르겠다. 릴라의 본심이 무엇인지 말이다.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416쪽)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나의 눈부신 친구’로서 릴라를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면에 뛰어난 릴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물러서지 않는 릴라, 완벽하게 아름다운 릴라, 자신만의 매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사로잡아버리는 릴라. 

 

내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 릴라 같은 사람을 소설에서 만나는 일은 즐겁고 유쾌하지만, 내가 만약 레누라면, 릴라와 60년 우정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레누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섬세한 마음씨의 소유자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힘의 움직임과 긴장을 잘 포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릴라라면, 이렇게 말하는 릴라라면, 나를 응원했던 그 말의 진심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다음날 나는 릴라를 현관에서 기다리지 않고 혼자 등굣길에 나섰다. 우리는 공원에서 만났는데 입술 위에 든 멍을 본 릴라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미 지난 일이 아닌가. 

“부모님이 널 때리기만 했어?”

“그럼 뭘 더 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라틴어 수업에는 계속 보내주시겠대?”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릴라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런 걸까? 릴라는 부모님이 벌로 내 중학교 진학을 취소하게 하려고 나를 꼬드긴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중학교에 가지 못할까봐 그렇게 서둘러서 나를 다시 데려온 걸까? 세월이 흘러 오늘에 와서야 나는 생각해본다. 사실 릴라는 때에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99쪽) 




 













둘째주, 셋째주에는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그래. 네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여행 가자’, 이렇게 약속했었는데, 기약 없을 것 같던 그 시간들이, 6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 버렸다. 알라딘 적립금으로 크레마를 구입하고,『백래시』,『현남 오빠에게』 업로드를 확인하고, 『나의 눈부신 친구』, 『우리 사우나는 JTBC는 안 봐요』, 『올리브 키터리지>』 e-book을 대여했다. 계획은 『My brilliant friend』로 주로 읽다가 막히는 부분에서 크레마의 도움을 받는 거였는데, 마음은 급하고 읽는 속도는 따라주지 않아, 결국 『My brilliant friend』는 밀려나고 말았다.


 

그들이 고비를 맞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신혼여행지 때문이었다. 스테파노는 베니스에 가고 싶어 했는데 릴라는 나폴리에서 너무 멀리 나가지 말자고 고집을 피웠다. 릴라는 이후로도 항상 나폴리에서 멀리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이스키아 섬에 들렀다 카프리 섬에 가서 상황이 된다면 아말피 해변까지 들르자고 했다. 모두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였다. (384쪽) 

 


패키지여행의 영원한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관광버스 안에서 이 문장을 따라 읽던 날은, 폼페이에서 베수비오 화산을 먼 발치로 보고, 카프리 섬 ‘황제의 정원’을 둘러본 다음날이었다. 폼페이와 카프리섬을 말하는 엘레나 페란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로 전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건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핸드폰 설정을 바꾸자마자『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검색해 근처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집 앞 도서관으로 상호대차해 두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알라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폴리 4부작> 2권, 3권을 기다리는 동안 『혁명의 영점』을 읽었다. 식탁 앞에 앉아 3색볼펜을 들고 천천히 읽어나가는데,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즐거운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궁금증에 대한 답이 바로 그 책에 있었기 때문이다. 줄을 치고 별표시를 하고, 책장을 넘겼다. 



















식구들 모두와 함께 있으면서, 삼시세끼 밥걱정, 반찬걱정, 간식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멋진 장소에서의 셀카 타임 역시 소중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딱 펼치고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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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8-01-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도 가족과 함께 멋진 여행 다녀오셨군요. 저도 예전에는 여행때 책 한권은 꼭 챙겨가져갔는데, 어느순 간 가져간 책을 읽지 못하고 도로 가져오면서 이제는 여행때는 책가져가지 않게 되었어요. ^^;;;;;; 여행중에 읽는 책은 오직 여행책만...ㅋㅋㅋㅋㅋ 사진도 멋지고 글도 좋아요. 단발머리님 페이퍼 읽자마자 ‘나의 눈부신 친구‘ 책배달 신청했어요~.

단발머리 2018-01-27 23:14   좋아요 0 | URL
전 이번에 책 한 권이랑 크레마를 챙겨갔는데, 크레마가 아주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전 여행 중에 여행책을 한 권도 안 읽었군요. 이럴 수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게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었던 시간이 눈부시게 좋았던 것처럼, 보슬비님께도 그런 시간이 되기를요.

그나저나, 저는 보슬비님 조카도 그렇게 부럽습니다. 여행마다 보슬비님과 함께라니~~
이런 아름다운 이모 찬스^^ (이모 맞으시죠?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1-2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눈부신 서재 친구님!!!!
즐거운 여행 후 자리에 책과 앉으셨나요?
저도 기쁩니다. ^^

단발머리 2018-01-27 23:17   좋아요 1 | URL
저의 눈부신 서재 친구님이신 유부만두님~~
저는 책과 기쁘게 마주앉아 있습니다. (앗! 지금은 노트북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의 <My brilliant friend>는 유부만두님의 페이퍼를 타고 제게 왔는데,
저는 <나의 눈부신 친구>만 좋아라 하고 있어요~~~~~~~~

유부만두 2018-01-27 23:53   좋아요 0 | URL
엄청 부럽고 덩달아 좋네요!
전 2권 중간쯤 읽고 있어요. 아직 Ferrante 라는 라스트 네임이 안보여서 니노랑 안이어지나, 하지만 달콤도 해요...^^

단발머리 2018-01-28 17:20   좋아요 0 | URL
정말 달콤해요.
니노랑은 이어지지만.... 아흐.....
유부만두님, 마음의 준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8-01-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거 이탈리아잖아요? 나폴리 4부작 1권을 이탈리아에서 읽으시다니. 어떻해, 완전 부러워요. ^^

단발머리 2018-01-27 23:19   좋아요 1 | URL
네, 아주 큰 마음 먹고 다녀왔어요. ㅎㅎㅎㅎㅎ
<나폴리 4부작>의 작가가 어린 시절을 나폴리에서 보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책 속 지명과 연속해서 만나는 경험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

꿈꾸는섬 2018-01-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눈부신 단발머리님~ 여행다녀오셨군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함께 앉아 있으니 좋다니ㅎㅎ 좋지요.
멋진 장소 아름다운 단발머리님~ 눈부셔요.^^

단발머리 2018-01-28 17:09   좋아요 0 | URL
제가 책 링크를 잘 했나봐요~~~ ㅎㅎㅎㅎㅎㅎ
눈부시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셀카 찍을 때도 꼭 선글라스를 쓰는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이제는 차분히 앉아 읽으렵니다. 꿈꾸는섬님 독서모임 리스트를 자꾸 자꾸 바라보면서~~~

라로 2018-01-28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여행 하신 것 같아 기뻐요!! 저도 막내가 8학년이 되기 전에 여행을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봐야 겠어요!!!

단발머리 2018-01-28 17:11   좋아요 0 | URL
멋진 여행을 같이 기뻐해주셔서 감사해요.
라로님 멋쟁이 막내가 8학년이 되려면 몇 년이 남았을까요?
기대에 찬 좋은 여행 계획이 꼭 이루어지시기 바래요~~~~~~~~~^^

psyche 2018-01-28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지에서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는거 그거 정말 제 소망인데요. 그것도 이태리에서라니~부러워요 단발머리님!!
예전에는 여행할때 책을 잔뜩 넣느라 (결국 다 읽지도 못하면서) 짐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전자책 단발기 한개면 끝이니 너무 좋아요.(그래도 책도 한두권 쑤셔넣지만요 ㅎㅎ) 새로나온 크레마 사신건가요? 언제 한번 크레마 사용후기도 알려주세요~

단발머리 2018-01-28 17:15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큰 기대를 가지고 ‘나의 눈부신 친구‘를 챙긴 건 아니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지명들이 귀에 들어오는데 정말 반갑더라구요. 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여행 때 책이 큰 짐이라 크레마를 구입했는데,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크레마 사운드, 품절 직전의 예전 모델을 구입했어요. 새로운 기능들이 딱히 필요하지 않아서 그랬는데요.
페이지 넘길 때 흔들림 현상이 좀 많더라구요. 나중에 사용후기도 한 번 올려볼께요^^

AgalmA 2018-01-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행일치👍 나폴리세트 표지디자인 별로라 더 흥미가 안 가지만 책으로만 여행이 아니라 현지 만끽 여행이라니 멋짐폭발요~

단발머리 2018-01-28 17:23   좋아요 0 | URL
나폴리세트 표지 디자인은 정말..... 저도 많이 아쉽더라구요. 원서 표지가 훨씬 근사한 것 같아요.
책 표지가 판매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치니까, 출판사에서 심혈을 기울였을텐데, 그 결과는.....
공감하기 어려운 표지예요.

책행일치!라는 말, 너무 좋은대요^^

수이 2018-01-28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대가 드디어 알라딘으로 돌아왔군요. 기다리던 이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군요. 인기쟁이 ㅋㅋ
그나저나 나폴리 아 부러워. 저도 민이 중딩 되면 도전해볼까요?!

단발머리 2018-01-30 09:56   좋아요 0 | URL
인기쟁이는 아니지만, 인기쟁이 하고 싶어요~~~~~~~~~~
암요, 민이라면 중딩 전에도 가능할것 같아요^^

서니데이 2018-01-2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리의 성당이나 오래된 길, 그리고 시내의 풍경이 멋있어요.^^
여행 잘 다녀오셨나요. 요즘 날씨가 매일 춥습니다. 단발머리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8-01-30 09:58   좋아요 1 | URL
네, 여행 잘 다녀왔어요.
오늘은 *월 *일입니다~~ 서니데이님의 페이퍼를 못 보았더니, 시간이 많이 지나, 1월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네요.
서니데이님도 오늘 보람차고 따뜻한 하루 되시길요~~^^

양철나무꾼 2018-01-3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반갑게 돌아오실려고...그동안 적조하셨군요.
‘나의 눈부신 친구‘는 좋아뵈는걸요~^^

단발머리 2018-01-31 20:2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알라딘 없는 세상은 쓸쓸하고 심심하더라구요.
‘나의 눈부신 친구‘는 미친 가독성으로 소문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2018-02-01 0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1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2-0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뜸하셨군요, 단발머리님!! 여행 때문이었어요!! 꺅 >.<

단발머리 2018-02-01 22:43   좋아요 0 | URL
즐거운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꺄아악! >.<

프레이야 2018-02-0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가족여행에서 돌아오셨군요. 책과 함께 환영합니다!!! 슬금슬금 떠나고 싶어라. 혁명의 영점, 담아가요^^

단발머리 2018-02-06 10:37   좋아요 1 | URL
네, 프레이야님~~~
즐겁고 좋은 추억을 많이 안고 돌아왔습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저의 있을 곳은 바로 여기, 알라딘이네요.
혁명의 영점, 지금 읽다 잠깐 쉬고 있기는 한데요. 구절구절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공쟝쟝 2022-09-02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헷, 나폴리 가신 단발님! 저 이땐 알라딘 안했었나봐유 ..😆 암튼 넘나 재밌어버린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3-08-04 18:25   좋아요 0 | URL
나 여기 지금 댓글 다는데 ㅋㅋㅋㅋㅋㅋ 쟝님아, 지금 알라딘 안하나봐유 ㅋㅋㅋㅋ

공쟝쟝 2023-08-04 18:0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제는 안합니다. 단발머리님, 오늘 오전에 말씀주셨던 단발머리님과의 파친코를 포함해서 과거에 썼던 글들을 다시 열어는 두었다는 것을 알립니다… ㅋㅋㅋ (두리번 거리지 않을 자신이 이젠 생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