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과 생태적 어버니즘

하나의 분야(discipline)로서 도시설계가 형성되기 전에 하버드대학에서 논의가 있었듯이 1997년 시카고의 일리노이대학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는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landscape urbanism)‘이라는 새로운 이즘(ism)이 공표되었다.

이것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의 조경학과 교수인 찰스 왈드하임(Charles Waldheim)이 만든 신조어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조경학과 교수인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에 의하면 이새로운 사고와 행동방식‘은 "전통적인 도시설계와 계획이현대 도시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필요해졌다. 이 실패했다는 느낌은 미국의 도시들이 계속해서수평적으로 무질서하게 뻗어나간 방식에 대한 숙고, 개발도상국에서 거대도시가 증가하는 놀라운 속도, 그리고 옛 공업도시에서 한때 그 도시의 생명줄이었던 사업들이 문을 닫거나 이전하면서 공동화되는 새로운 현상에서 파생된 듯하다.

이러한 과정의 사례로 디트로이트를 들 수 있는데 이곳은 더이상 ‘자동차의 도시‘가 아니다. 이제 이곳의 도시 경관은 버려진 공장과 폐허가 된 거대한 호텔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 P203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스트는 도시설계가는 무력하며, 도시를 함께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곳의 경관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개념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도시의 기본 단위(basic block)로서의 건물에서
모든 것을 한데로 묶는 접작체 혹은 매개체(medium)로서의 경관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스트들은 도시설계가 등장한 방식과 같이 새로운 직군의 형성을 제안하지 않고 조경, 토목공학, 도시계획, 건축과 같은 업역의 개념적 영역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의 석사과정 프로그램이 북미의 여러 대학과 런던의 AA스쿨에 생겨났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이 얼마나 혁신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조경의 전통에서 오랫동안 활용되어온 아이디어를 어느 정도로 수정할 수 있는지애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의 원칙 중 하나는 경관이 어떻게작동하는지, 즉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린 인스트럭처 계획 옹호자들이 표명하는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기능에 대한 관심은 조경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때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그의 후계자들의 작업에서도 나타난 개념이다. - P204

 랜드스케이프어버니스트들도 동의하겠지만 그들이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전통에서 논쟁적으로 문제삼는 부분은 도시 안의 시골(rus inurbe)의 옹호, 도시 속에 낭만화된 자연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기껏해야 무관한 것으로, 최악의 경우 위장이나 기만의 일종으로 거부당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우리가 한 손에는경관을, 다른 손에는 도시를 놓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차이와대립이라는 19세기적 렌즈‘에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우리가 도시와 시골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주장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도시의 발자국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시골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뻗어나갔고, 시골은 먹거리, 식수, 에너지 등 도시에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와 동시에 산업의 쇠퇴로 인해 생겨난 도시 내의 공터나 인프라스트럭처의 필수 항목과 관련된 지역이 생태천이 같은 자연적 과정에 개방되어 있다. 해체(Deconstruction)가 문학적·철학적 운동으로 출현한 이후 학계에서는 이분법적 대립을 공격하는 것이 유행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포함한 많은 이분법은 매우 유용하며, 또 시골과도시의 구분을 없애면 스프롤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고 도시근교의 문화경관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때때로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의 레토릭은 ‘흐름에 따라가기(going with the flow)‘를 선호한다. - P205

이것은 우리의 도시가 극단적으로 탈중심화되고, 리좀(rhizome)같은 네트워크를 이루며, 경관 전체에 널리 퍼진다는 의미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국에서 계획법으로 이어진 ‘대상 개발‘과 도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그린벨트에 대한 우려이다.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와 통제되지 않는 스프롤이 세력을 떨칠 필요는 없다. 때로 좋은 도시계획은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혹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에는 큰 이점이 있는 아이디어도 많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스트들은 대상지와 도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제임스 코너는 ‘행동을 위한 무대(stages for action)‘ 또는 ‘행위를 위한 무대(stages for performances)‘의 준비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버려진 건물의 정리 같은 물리적인 작업 혹은 작업이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소유자가 다양한 토지의 조각을 모으거나, 자금을 조달하거나, 여러 가지 허가를 얻는 등의 보다 추상적인 활동을 지칭할 정도로 모호하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스즘은 고정된 마스터플랜 대신 유연한 불확실성을 극찬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스트들은 디트로이트의 빈 땅에 생겨난 도시 정원 가꾸기와 농업에 찬사를 보내는 글을 작성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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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의 심리학 - 무력감을 털어내고 나답게 사는 심리 처방전
브릿 프랭크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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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우울, 무기력 증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뒤로 심리학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중에 가장 실질적 도움을 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방향으로 계속 가면 터널의 끝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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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시사IN 저널북 (SJB) 2
김영화 외 지음 / 시사IN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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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마지막 부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 걱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곱씹어 생각할 게 많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만나 다행이라는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진 않는구만... 다시 찬찬히 읽어야겠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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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9쪽)

프롤로그                          나경희

ㅡ우리 가족은 정말 운이 좋았다


할머니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엄마였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방에서 할머니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엄마가 가족을 불러 모았다. 할머니의 눈자위가 누르스름했다. 여행을 떠나는 주말 아침이었다. 들떠 있는 손주들 앞에서 할머니는 황달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가 봐요" 말하면서도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말이 지나고 할머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검사는 오래 걸렸다. 결과가 나오자 엄마와 아빠는 숨김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손을 쓸 수 없는 췌장암 말기였다. 항암 요법을 받거나 수술을 해도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10살이었던 나는 할머니를 '고쳐달라'고 울면서 떼를 썼다. 엄마는 그렇게 하기에는 할머니의 나이가 너무 많고 할머니가 받을 고통도 너무 클 거라고 말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분에 못 이겨 씩씩거렸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 없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내 고통은 알지도 못하면서.'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꼐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할머니의 몸은 천천히 느려졌다. 결국 부축 없이는 걷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할머니가 하루하루 약해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면, 그래서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병문안을 갔다면 그때마다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돼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할머니와 부모님의 선택은 옳았다. 가족들에게도, 할머니 자신에게도 죄책감을 주지 않았다. 서로에게 지난 날을 정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의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6개월이 더 지나 할머니는 집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무척 슬펐지만 그뿐이었다. 아쉬움이나 분노 같은, 슬픔 이외의 마음은 들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취재를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우리 가족은 운이 좋았다. 당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엄마는 고령의 암 환자들이 병원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임종에 이르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행운이었다. 초ㆍ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우리는 일찍 집에 돌아와 할머니를 돌봤다. 문방구고 놀이터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만 끝나면 달리고 달려서 할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는 할머니를 사랑했다. 할머니가 수십 년간 살아온 집은 수십 년간 쌓여온 사랑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수술로 암이 치료될 가능성이 '조금' 있었다고 해도 할머니는 병원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행운이었다.


    우리 가족은 정말 운이 좋았다. '운이 좋았다'고 거듭 말하는 건 그렇지 못한 가족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6년 집에서 사망한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63.2%,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이 25.2%를 차지한다. 이 비율은 2003년을 기점으로 뒤바뀐다. 2019년 집에서 사망한 사람은 전체의 13.8%에 불과하고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77.1%나 된다.


    꼭 집에서 죽어야만 좋은 죽음이라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집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이 병원밖에 없다는 점이다. 병원은 효율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게 목표인 공간이다.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와 패배가 명확히 갈리는 곳이다. 비효율적이더라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후회를 걱정해야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지친 몸과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 쓸쓸할까. 모든 순간이 단 한 번뿐이지만 죽음은 정말이지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단 한 번 맞이할 죽음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상상을 해야 하고,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취재를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할머니만큼 잘 보내드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와 형제들은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고, 명절 때나 서로 얼굴을 볼 뿐이다. 이제 부모님 집에는 엄마와 아빠의 쇠잔한 몸을 보완해줄 수 있는 장치가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부엌 가스 밸브에 자동잠금 장치가 새로 달렸고, 욕실 슬리퍼는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 재질로 바뀌었다. 온갖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생기게 될 돌봄 공백은 누가 채울 수 있을까.


    부모님의 죽음보다 더 자신 없는 건 나의 죽음이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내게 함께 사는 사람이 없다면 노령의 나를 누가 부축해줄 수 있을까. 나는 할머니만큼 잘 떠날 수 있을까. 다행인 건 이 걱정을 나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과연 잘 죽을 수 있을까. '죽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끝에 나온 결론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나의 죽음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다.



*

'2019년 집에서 사망한 사람은 전체의 13.8%에 불과하고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77.1%나 된다.'는 통계 자료에 놀랐다. 이런식이면 대부분 병원에서 죽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인가? (통계청 자료 검색해보니 2023년 '사망 장소별 사망자 수 비중은 의료기관(병의원, 요양병원 등) 75.4%, 주택 15.5%, 기타(사회복지시설, 산업장, 도로 등) 9.1%임') 와아. 정신 든다. 번쩍 번쩍. 집에서 죽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니. 절대 공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나의 죽음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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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4-1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합니다. 오늘날 죽음은 병원에서... 때로는 최악의 경우 독립된 공간도 아닌 곳 커튼을 치고. 그렇게 갑니다. 많은 생각이 지나가네요.

잘잘라 2024-04-11 13:24   좋아요 0 | URL
집에서 죽고 싶습니다. 죽기 좋은 집을 짓고 싶어요. 정신 들게 해 준 말들이 고마운 책입니다.
 
불변의 법칙 -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 이야기
모건 하우절 지음, 이수경 옮김 / 서삼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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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열 아홉 번쯤 살아본 사람이 쓴 책 같다.
책을 읽은 나도 최소한 한 번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뜻밖의 위로를 얻는다.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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