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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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암 환자가 한 명 있다면 가족들은 그 분야에서 거의 전문가가 된다. 어떤 식으로 발병을 하고 어떻게 치료 과정을 밟으며 그것과 상관 없이 어떤 모습으로 내 가족이 스러지는지 낱낱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하나하나 장면으로 찍혀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뭘 잘못했는지의 후회보다 그나마 좋았던 기억이 더 자주 추억된다.

최근 "죽음"에 관한 에세이를 두 편이나 연달아서 읽고 있는 중이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읽다 보니 엄마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두 책 모두 암 환자들의 이야기라 '그래, 엄마도 그랬지~', '우리도 그랬는데'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36살의 전도유망한 의사가 최고참 레지던트 과정을 성공리에 마쳐갈 때 즈음 폐암 선고를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다. 누구보다 병에 대해 잘 아는 의사가, 자신의 CT 결과를 보며 좌절했을 순간과 그 이후 병을 이겨내려고 하루하루 노력한 날들, 더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인식한 후의 삶까지 작가 폴 칼라니티는 담담하게 때로는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좌절이나 슬픔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이들을 위한 노력과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생활을 하기 위한 노력을 읽다 보면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는 폐암에서 온몸으로 전이된 순간까지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다. 책을 쓰는 목적 또한,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252p)이라고 했다. 죽어가고 있지만 살기로 작정했던 이 젊은 의상의 사색과 생에 대한 통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고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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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
보도 키르히호프 지음, 서윤정 옮김 / 붉은삼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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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 최고의 소설로 2016 독일 올해의 책 수상작"

이 책에 붙은 타이틀이다. 책은 제 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한 책. 아마도 이 책을 2016년에 읽었다면 무척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소설은 따옴표 하나 없이 서술된다. 그렇다고 대화가 없는 건 아니다. 대화체 형식을 넣는 대신 문장에 이어 글자 크기를 키운 채로 대화가 오고 간다. 처음엔 무척 낯선 이런 방식에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쉼 없이 이어지는 이런 대화 속에 금방 집중하게 한다.

그보다는 이 두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가 감이 잡히지 않아 오래 헤매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의 대화를 통해 다시 찾아낼 수 있다. 모자 상점을 하다가 폐업한 여자가 쓴 한 권의 책, 이 책을 출판업을 하다 접은 남자가 발견하게 되고 여자가 남자를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자가 가진 상처는 공통의 관심사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둘은 느닷없는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그 드라이브는 드라이브를 넘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의 여행으로 이어지고 그 길에서 이들은 사랑과 상실, 부모의 정, 난민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솔직히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 않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주인공들에게 쉽게 공감되지도 않는다. 다만 뒤쪽에 등장하는 다양한 난민들을 통해 그 시대 자체를 이야기하려 했구나~ 정도에서 그쳤다. 많이 아쉬웠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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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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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만나면 이 책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되고 그 작가의 책을 계속 따라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지내요>를 읽은 후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가 각인되었고 그 이후 <친구>는 그녀의 세 번째 읽는 작품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이름을 알린 첫 작품은 <A Feather on the Breath of God>이라고 하는데 국내 번역 작품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이후 <친구>로 2018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하고 기 이후의 두 작품을 내가 먼저 읽어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처음 읽었던 <어떻게 지내요>가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주제가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지내요>가 그 주제를 가장 편안하고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는 무척이나 실험적인 작품이다.

1인칭 화자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그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인 <친구>는 하지만 그 친구의 의미가 비단 그 한 명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또한 독자는 이 편지를 읽어나가며 화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 추측해야 한다. 그러니 결코 쉬운 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하나도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사유가 깊다.

"나"와 죽은 이는 한때 잠깐 연인이기는 했으나 이후 계속해서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단순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고 그의 부인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 <친구>에서 "나"는 자살한 나의 친구에게 그동안 자신과 그가 나눈 이야기들, 주변의 상황, 나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쓰는 작품의 이야기와 깊은 고민까지 두서없이 적어나간다. 여기에 하나 더. 그가 죽은 후 세 번째 부인에게서 떠맡게 된 아폴로라는 그의 개와의 일상까지. "나"는 마치 남편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서 이 아폴로와의 동거를 통해 조금씩 안정되어 가지만 이미 나이가 많은 아폴로와의 이별도 차차 생각해야 한다.

두 친구는 작가이며 교수다. 문학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서로 나눈 작품들이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기쁨이 크지만 무엇보다 죽은 사람과 죽음을 곧 맞이해야 하는 상황, 더불어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여러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역시 좋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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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블루 컬렉션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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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얇은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얼마나 연장을 했는지~ 다 읽고 나니 허무함~ 한가득 ㅋ



뭐,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설렘, 기다림, 운명론에 공감하기엔 내가 음~ 늙어버렸다는 거 ㅎㅎ



여주인공 콩스탕스는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를 사랑한다. 그의 모든 책을 구해놓고 아껴 읽는 중. 하지만 작가는 이미 세상에 없으므로 언젠가 그의 책을 더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 후 다른 작가도 찾아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대여한다. 그러다 발견한 밑줄. 콩스탕스는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운명의 그를 찾기로 한다.



나도 한때는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로망을 가졌더랬다. 중학교 시절 순정 만화를 보며 말이다. 하지만 이미 20대에는 그런 로망을 가졌던 것 같지 않다. 역시 극T는 어쩔 수 없는가~ㅋ



아마도 <밑줄 긋는 남자>는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이나 영화, 상상 속의 인물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허무맹랑한 소설들보다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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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
오경아 지음 / 몽스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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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싱숭생숭하다. 길가에 핀 민들레나 애기똥풀을 봐도 강동스럽고 아무것도 없던 가지 끝에 맺힌 새싹이 어느새 푸릇해진 것을 봐도 감격스럽다. 그쯤 되면 매년 화초를, 예쁜 꽃을 한두 개 사야 하나~ 고민한다. 그 고민은 길가에 핀 여러 식물들을 보고 아파트 화단이나 다른 집 화분 속 식물을 보는 것으로 곧 대체된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온 후 제대로 길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에 이어 수업용이긴 하지만 강낭콩을 키우고 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정원이 딸린 전원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꿔 왔다. 타샤 튜더처럼 몇 만 평까지야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흙과 식물과 동물과 함께 살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는 그런 나의 꿈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는(싫어서가 아니다. 대리 만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역할을 한 책이 되었다.

속초에서 자리를 잡고 10년 넘게 살아오며 생각한 것, 느낀 것, 정원 생활 속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번 책이 즐거웠던 건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덕분이다. 다소 거친 듯 하지만 너무나 예쁜 일러스트를 통해 글을 읽고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것을 직접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계절 속에서 바라본 정원 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인위적인 무엇이 아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그런대로, 원래의 생태계가 나아가듯 그렇게 작가의 정원은 흘러간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치열한 잡초와의 전쟁이 있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로 인한 갑작스런 온도 변화나 폭우, 건조함도 있으니 그런 것 앞에 인간은 초라하다. 그럼에도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모른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상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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