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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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이렇게까지 분량이 늘어질 필요가 있나 싶었다. 처음엔 재밌었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듯 아닌 듯 다채로우면서 지루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재미가 없어졌다…

내게만 주어지는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 평한 불행과 재난에 안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 P17

"별 볼 일 없이 살다가도 고결한 돼지처럼 죽을 수 있다고 믿는 거 보세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이렇게 속물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들, 자기혐오와 자기 구애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마침내 고독사에 이르는 법이거든요.
저는 말입니다, 고독사란 결국 인간의 존엄이랄지 위험에 대 한 절박한 구애의 형태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 P19

경로를 이탈해도 길은 이어진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일 뿐이다. - P28

송영달은 어떤 조롱이나 모욕에도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양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감정에 솔직하고 용기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모욕도 모욕이 아니었다. - P34

사람들이 꺼리는 대상이 되는 건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 P39

보편적이고 무난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지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선호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 P50

소문으로 사람을 훼손하고 그 훼손 됨에 우월감을 느끼며 만만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저열한 태도 를 젊은 날 질리도록 겪어 왔는데 결국 김자옥 씨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가 아니라니. 이윤영이 편한 건 그래서였다. - P73

모든 게 그렇듯 취향의 세계 역시 일부에게 만 너그러워서 이미 가진 자들만이 취향을 탐색하고 키워 나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취향은 곧 또 다른 능력이 되 었다. 알리스의 경우에는 취향 없음을 숨기기 위해 타인의 취 향을 훔쳐보며 다수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 정도 가 유일한 취향이었다. - P129

일단 시작하면 노오오오오력이라는 걸 하 는 사람들, 게으르거나 불성실하더라도 그대로 머무는 게 아 니라 지금의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것이 무어 건 애쓰게 되는 사람의 변태(한) 본능이란 고독사 앞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 모든 무용에 이르는 실수를 죄책감 없이 하루하루 해내도 된다는 안도감을 배우기 위해 그들은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노오오오오력이라는 걸 하는 거였다. 오 대리가 볼 때 그들은 이미 저마다 고독사의 거장들이었으나 타인의 고독사를 학습하고 모방하며 자신의 고독사를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고자 했다. - P145

고결한 돼지처럼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인간들이 웃기지도 않는 것을 벌이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신청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회복되는 삶 같은 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결한 죽음 따위는 없었다. 남은 이들에게 가능한 건 개죽 음뿐이었다. 방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못된 장난이 장난 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건 이 고독사 워크숍에 진짜 고독 사를 선물하는 거였다. - P154

자신은 피해자였을 뿐인데 피해자의 얼굴을 한 가해자가 되 어 있었다. 소문 속의 여자는 자신이 아니었으나 못돼 처먹은 건 사실이라서 무얼 부정하고 무얼 해명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 지겨워졌다. 4개월 넘게 버틴 선배보다 더 빨리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리고 알게 되었다. 선배도 참 지겨웠겠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다움을 잃어 가는 하루하루가 저마다 피해자의 얼굴로 가해자의 얼굴을 감춘 채 무리의 습성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이. 무엇보다도 타인의 불행 앞에서 다행을 챙기는 다행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과 자꾸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 - P246

시스젠더의 정의는 단순하게는 지 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 말을 마르템은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고 시시하고 볼품없다는 의미를 담아 말하곤 했다. 성 정체성의 결정권을 스스로 갖지 못하고 부여된 성에 적응해 그 밖의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도태된 존재라고들 했다. 덜 진화된 구시 대의 인물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옛날 사람을 나는 사랑 하지. 안드로진과 데미젠더를 거쳐 지금은 논바이너리로 자신 을 규정했다는 마르은 말하곤 했다. - P298

개소리였다. 락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촌 형은 망 쳐져 있는 자신을 위한 변명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락스는 소 년이 아는 가장 순결하고 무해한 것이었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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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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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절박한 상황에선 서로 의지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적정을 넘어선 불행한 상황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준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다.

구는 결국 살아나진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살아갈 의미를 주는 것, 세상에 큰 별이 되진 않더라도 한 사람에게 기억되고, 의미가 되어 주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성서는 언제 쓰였지? 적어도 이천 년은 넘지 않았나?
어떤 사람은 이천 년 전에 써진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위로받고 황홀해하고 미친다. 그리고 믿는다. 섹스 없 이 아이를 낳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그 건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다거나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사건인데.....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 P10

그 나이에 요구되는 것을 이룬 사람 같았다.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고 돈을 모아 작은 빌라를 얻고 자동차 할부를 갚고 있는 사람. 아직 하지 못한 것은 결혼뿐인 사람. - P124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 P131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 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 P133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 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이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고,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 택 문제가 아니다. - P157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 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 P159

만약에 너 때문에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너는 술병을 치우는 대신 내 술잔에 술을 따라줘야 해. 우린 그렇게라도 같이 있어야 해. - P160

사람이란 뭘까.
구를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 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나를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 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 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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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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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만큼 틀린 명제도 없다. 살람들이 가지각색으로 사는데, 한 사람도 여러 상황에서 가지각색의 면모를 보인다.
나 자신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데,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재개발이 될지도 모른다는 집주인의 설명이 있었고, 언제든 나가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 계약을 했고, 시세보 다 저렴하게 7년이나 살았으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라고 여겨온 내가 멍청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모든 일이 요령 없이 살아온 내 탓인가, 하는 자책이 살아났다. 도대체 네 눈엔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 걸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는 그곳에 있기가 힘들었다. - P30

서른 중반이 다 되도록 아무 요령도, 준비도 없이 살 아왔다는 생각은 차츰 잦아들었다. 틀림없이 내가 무능 하고 한심하게 보였을 거라는 생각도 점점 옅어졌다. 끝 까지 남는 건 멀쩡한 동네에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하 는 기대감을 전염시키고 10년이 넘도록 그곳 사람들을 끙끙앓게 만드는 게 바로 너 같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깨 달음이었다. - P31

너는 길고양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고 요령 있 게 집을 사고 팔며 차익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고 내게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고, 누구나 관심 있어 하고 궁금해할 정보를 대가 없이 공유하는 사람이고, 낡고 오래된 것들은 말끔히 부수어 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몇 날 며칠씩 오지 않는 고양이 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결코 내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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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관계, 그리고 행복
최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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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출산을 결정한 이들에게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다행인 일이기도 하다. 그들의 자식은 (이 시대가 출산에 기대하는) 사회 재생산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사회적 비용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출산의 결정권은 여자에게? 혹시 그러면서 양육의 책임은 동등하게...?

이 책은 안타깝게도 부모는 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 아니라, 엄마는 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출산을 여성의 시각으로만 서술하겠다는 책이라 여성들의 정화되지 않은 의견들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으며, 출산에 대한 화두를 성대결로 결부시키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인다.
남들이 무심코 출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는 게 듣기 싫다는 사고 회로도 문제다. 주변의 평판에 집착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런 책을 내는 분노의 원천인 듯싶다. 무자녀라는 결정을 모두에게 축복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는데, 정신 나간 출산 예찬론자들의 헛소리를 들어주는 것만큼 혐오스럽다. 어차피 생각도 태도도 바뀌지 않을텐데, 타인이 짖는 소리 한 귀로 흘리지도 못할 거면서 자기 주관대로 살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 주변엔 딩크만큼 불임부부도 적지 않은데, 불임으로 속이 타들어 가는 누군가가 비출산자들의 의견이 듣기 싫다고 하면 자신들의 경솔함을 쉽게 인정하고 입을 다물 것 같지도 않다. 그 상황에서 자신들의 의견은 다양성으로 합리화할 거니까.

아이를 낳기 포기한 사람들은 스스로 아이에게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할 목록을 과도하게 정해 놓고, 이에 불평하며 세상을 탓한다.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인격체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양육을 해야한다는 자신의 책임감에 무게를 더하고 더해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괴롭힌다. 거기다 아이가 없으면 자기와 주변 사람들만 비교하면 되는데 아이를 낳으면 아이와 주변 아이들도 비교해야 하니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그 강박이 ’아이 없는 부부의 집안일 나누기‘ 편에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정신줄 놓고 떠들다 이성을 상실한 발언도 편집 없이 출판됐다. 남자가 집 해오는 거 보고 결혼해 놓고 자기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이나, 출산은 오직 여자의 결정권이니 무자녀를 결혼 전에 합의할 필요가 없다는 (결혼 사기나 다름없는) 발언은 좀 걸러야 했다. 무엇보다 나도 80년대 태어났고 주변에 70~80년대 태어난 무자녀부부들이 많은데 저자와 인터뷰 참여자들은 내 주변인들과는 다르게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고통받고 주변인들의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을 들으니 측은한 마음이 든다.

방송 만드는 사람들이 공공재를 가지고 쓰레기를 내놔도 되나.

나 때문이라기보다 자기 아들이 살 집이니까 해주셨겠지 싶어서 별생각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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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뒤에 쓴 유서 오늘의 젊은 작가 41
민병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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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전위적인 글쓰기처럼 보였으나 생각보다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완전 무심한 책은 아니었다.
죽음(자살)의 당사자만 주목하기 쉬우나 그 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우열을 가릴 수 없게 중요하다. 아버지의 이야기 보다는 화자의 감정이 더 부각되어 있어서, 죽음 뒤 주변인물들을 상기시킨다는 점이 좋았다.

작가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독서에 대한 생각으로 바꾸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령 ‘소설을 완독한다고 기분이 나아지진 않는다. 다만 소설로 숨어든 동안에는 기분이 좋다’…라고.

나는 글쓰기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한다는 말 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쓰지 않 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 랜 기간, 아니 매일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 P9

K는 소설 안에서 서 술자의 솔직함과 가공의 비중을, A는 자전적인 소설이 갖는 효용성을 물었다. 소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다고 해서 긍정적인 함의가 장착되는지, 그 이야기를 과연 누가 궁 금해하는지, 소설가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닌지. 그러 면 안 되는지, 의미만 찾다가 이 바닥이 이렇게 된 건 아닌지, 의미는 누가 만드는지, 왜 만드는지, 제목을 의미라고 하면 어 떤지, 강변을 따라 걸으며 다시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였고, 나 는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하며 그들 뒤에서 멀찍이 걸었다. - P91

소설을 완성한다고 기분이 나아지진 않는다. 다만 소설로 숨 어든 동안에는 기분이 좋다. 소설이라는 어두운 품에서, 점점 꺼져 가는 모닥불의 도움을 받아 벽화를 그리듯 웃으며 새로 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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