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부모가 된다는 것 - 세계적인 교육학자 루돌프 드라이커스의
루돌프 드라이커스.비키 솔츠 지음, 김선경 옮김 / 우듬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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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부모라는 말이 시작부터 쉽지 않다. 변화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네의 전통적인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민주적인 형태를 띄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부모에게 권위를 바라고 아이에게 순종을 바라는 사회에서 살고 있던 것이 아닌가 먼저 생각해보게 된다. 언뜻, 이상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권위와 순종은 바람직한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가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사회라는 말은 사회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서에도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곧이어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그런 걸 따지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는 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가져왔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더 이상 권위의 역할을 맡을 수 없다. 권위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우위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평등한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

 

 책에서 부모는 이제 권위의 역을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와 어떤 관계로 자신의 위치를 형성해야 하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분명 아이에게 규칙이나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적절히 지켜야할 선을 알려주는 역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아이를 무섭게 종용하거나 소리지는, 협박, 폭력 따위는 사용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이와의 힘겨루기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엄격할 필요는 있지만 그 엄격함을 아이를 굴복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데에는 다른 요인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이 이상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기력한 아이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부분이 많으며, 여러 상황에서 어른보다 더 슬기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처럼 평등의 개념이 아직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이미 우리 문화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못견뎌한다. 그것이 아이가 자신의 몫을 다 해내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반항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타인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올려세우려는 행동과 다름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도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함을 말한다. 아이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야 만족하거나, 모든 것을 대신 해주고 싶은 욕구가 드는 부모입장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고, 모든 것을 도와주고 싶은 만큼 아이의 자율과 가능성 또한 지켜주어야 한다.

 

 "형제가 세 명인 가정에서 한 때 '아기'라는 영예로운 위치를 차지했던 둘째 아이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 '중간'이라는 위치에 놓이는 경우에 이 아이의 입장은 특히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는 이제 큰 아이가 지니는 이점도, 아기로서 누렸던 특권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둘째 아이는 위아래로 압력을 받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자기만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인생도, 사람들도 모두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더욱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러 도발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행동의 지침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해가 쉽도록 해놓았는데, 그 중에서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잡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은 소속감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요새는 아이가 하나인 가정이 많고 많아야 둘 정도겠지만, 형제가 많던 시절에는 보통 둘째들의 개성이 강한 편이었다. 왜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비교적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답을 내놓고 있는 부분이라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의 행동은 대부분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하고 부모와 주변의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 많았다. 그 점을 가장 주의깊게 여겨야할 것 같았다.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지라도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일이 잘 안 돼서 정말 안됐다."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아서 어떡하지?" 하고 아이와 아이의 행동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는 단지 기술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한다."

 

 요새 아이들은, 자존심만을 알고 자신감, 자존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가치에 대한 확신, 가능성을 믿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실수, 실패를 아이가 한 행동의 결과물로 문제삼기 보다는 그 일 자체의 결과로 봐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공감이 됐다. 자신의 가치를 믿고 자기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생각 외로 많지 않다. 매우 중요한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의 도전을 염려하기 보다는 응원하고 실패를 탓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또 다음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화를 하는 수단이 언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언어가 더 비효과적일 때가 많다.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부모 자신의 행동부터 살펴야 한다. 부모가 하는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니면 단순히 귀찮은 행동을 잠시 털어 버리는 것에 불과한지 잘 살펴야 한다."

 

 "아이가 편명한 선택을 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실수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지 우리의 설교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기지를 발휘한다. 그것이 부모가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모습이든, 부정적인 모습이든 타인의 관심만을 바라고 하는 행위는 아이에게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매번 같은 방식으로만 행동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착한 행동만을 하려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부담을 줄 수도 있고, 온통 비뚤어진 행동으로 상처입으면서 관심을 받으려는 무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힘겨루기나 관심받으려는 아이의 노력들은 너무나도 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임이 분명한 만큼 부모의 말과 행동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우리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들이 이 책 속에 녹아있다. 우리는 보통 그 덕목들을 나와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세련된 행동 양식으로 생각한다. 우리보다 미성숙한 존재인 아이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필요치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숙한 행동 양식이 필요한 것은 아이와의 관계인 것 같다. 아이는 마치 거울처럼, 그리고 무섭도록 부모의 행동과 말에 집중하고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성적인 호기심과 장난 등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도 있었는데 큰 문제가 없는 한 아이를 훈육하지 않고 지켜보는 정도로 두도록 조언한 점이 특이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다소 난감하지만 관여하기 껄끄럽게 여겨지는 문제라서 요새는 성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적 내용이 담긴 책, 만화, 연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시키거나 직접 주의를 주는 대신 자율적으로 두면 스스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다. 

 

 또 가족과 함께 하는 활동에 대한 부분에서도 텔레비전에 관한 얘기는 컴퓨터와 연결해볼 수도 있다. 과거에는 텔레비전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했고 그것에서 아이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요즘은 컴퓨터나 핸드폰 등의 기기로 그 염려가 옮겨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유해한 매체와 중독성은 과거 텔레비전이 주는 고민보다 더 큰 것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례들이 책 안에 있고 그 사례에 대한 원인 설명과 대처 방법의 제시가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다. 아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그 위치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놀랍다. 책은 매우 이성적이면서 엄격한 태도로 아이를 훈육하길 조언하고 있는데, 확실히 우리의 정서로는 쉽지 않은 길임이 느껴진다. 하지만 매우 유익한 길잡이가 될 책임은 분명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있어 강압이나 귄위가 아니라 존중을 통한 자아실현을 도울 이야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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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흔아홉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2
김도연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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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전작 목록을 보다가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눈에 띄었었다. 내가 읽은 책은 후지사와 슈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오전 0시'였다. 탱고를 추는 장님여자와 온천 호텔의 종업원에 대한 얘기였는데 왜 헷갈렸는지도 모를 묘한 착각이었다. 책 '아흔아홉'은 세 남녀의 이야기다. 남자와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애인이 함께 아흔아홉 대관령 고갯길로 소풍을 떠난다는 얘기다. 판타지 소설같지만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하나 아흔 아홉번째 고개 밑으로 떠밀려 떨어지는 치정 얽힌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생각 외로 드라이하고 산뜻한 이야기다. 생각 외로.

 

 "시트와 바닥을 배설물로 더럽히는 히치 하이커들에게 고함을 내질렀을 때 그때까지 조수석에서 얌전히 있던 고라니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저씨 와이프 사라진 거 알아요?" "......집사람이 왜 사라져?" "그건 저도 모르죠."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대관령이 우리 운동장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고라니의 윤기 흐르는 까만 코와 동그란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설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아내의 죽음을 예감한 김첨지가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술집에서 오기를 부리는 장면이 겹쳐 보였다. 그도 마찬가지로 이미 집을 떠나버린 아내를 두고 고라니와 대거리를 한다. 고라니와의 대화라니 좀 이상하지만, 또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럽다. 그는 아내에게 답문이 왔다고 아내의 실종, 혹은 가출을 부인하려 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텅 빈 집에는 그만이 남았다.

 

 아내가 집을 떠난 뒤로 그는 아내를 찾으려고 하는 한 편, 애인인 Y를 부른다. 그녀와 아내가 없는 대관령 일대를 돌며 날선 대화를 나눈다. Y는 그와의 잠자리를 거부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아내의 눈을 피해 몇 번이고 가졌을 일인데 아내가 사라지고 나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두 사람의 관계가 아내를 통해 성립된다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준다는 건 두 사람 모두를 채워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그는 정작 두 사람 분의 몫을 충분히 받고 있으면서도.

 

 "길고 깊은 겨울을 대관령 골짜기 외딴 집에서 홀로 보내는 동안 그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선택권을 그에게 떠넘기고 떠난 거였다. 그런데...... 그 간단한 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그의 마음을 휘감아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메시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글쎄,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남자에게 경멸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미성숙을 보았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은 종종 자기 몫의 선택을, 스스로 짊어져야 할 잔인함을 남의 손에 떠넘긴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사람이라 잘 알고 있다. 나쁜 역을 하고 싶지 않고 가능하면 좋은 입장에 서서 좋은 사람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 내 행동을 이해받는 위치에만 머물고 싶어하는 어림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니 도리어 그 위선으로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아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그만의 추측으로 아내가 집을 나간 이유를 짐작해볼 뿐이다. 아내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와서 진저리를 치며 집안을 청소하고 낯선 이의 흔적을 찾으려는지, 지우려는지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그저 잠시 떠나있었을 뿐이지만 그 전까지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아내가 자신에게 선택권을 떠넘겼다는 표현을 쓰고, 그럼에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남자는 이렇게 나약할지도 모른다. 그를 경멸하거나 역겨워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사실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이렇게라니?" 그는 서둘러 침을 삼켰다. "......마음 없이." 그녀는 뒤늦게 시린 기운이 몰려온 듯 눈을 찡그렸다. 사랑이나 정이 없다는 말을 그 덕에 간신히 바꿔놓은 것처럼. "......어쩌면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아닐까. 영원한 건 없잖아." "믿음 없이." "......아기를 갖는 건 어떨까." "아기." 그녀가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아내는 그에게 Y를 불러 함께 소풍을 떠나자고 제의한다. 심지어 먹을거리를 마련하겠다고도 한다. 그 제의에 Y는 응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친근하게 주거니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는다. 이 기묘한 동행이 어떻게 성립되는 것일까. 그녀들은 왜 도로에 그어진 선 이편에도 저편에도 서지 못한 채 가운데 흰 선만 밟으며 길을 가려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까. 사랑이란 것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다 채워지지 않아 불안정해도 그로도 충분하게 느껴지는.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더 인상깊게 생각된다. 꼭 채워진 백이라는 수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아흔아홉으로도 충분하고 꼭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나가 모자라 더 제것처럼 걸맞는 느낌이다. 겹겹이 싸인 골짜기들 사이사이로 사람의 옆모습을 본 딴 골짜기가 숨어있는 표지도 재미있다. 대관령의 아흔아홉 골짜기 마다 사람이 숨어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만한 거리에 서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존재한다. 사람들의 삶은, 인생은 그런 모습으로 세상에 흩어져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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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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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첫날과 둘째날의 마음이 달랐다. 처음에 읽으면서 눈에 띄는 표현들이 상투적이고 산부심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지 모르게 산에 대한 찬양인 것이 어쩐지 영 마음에 까칠하게만 닿았다. 부정적인 시선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운의 제목부터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져서 갑갑하고 의식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밤 자고나서 뒷 부분을 연이어 읽어내려가다 보니 전날 느꼈던 불편한 마음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이 책이 좋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다. 달라진 건 별로 없는데 다 읽고 나니 책이 온통 내가 붙여놓은 갈피들로 화려해졌을 지경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산을 오를때와 내릴때 마음이 달라지듯이 하루만에 내 마음도 어딘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설산 하나를 넘어 다시 설산, 깊은 겨울 속으로 서서히 빨려든다. 몰아치는 찬바람을 피하려 손수건을 둘러매어 입을 가리니 쌔근거리는 내 숨소리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차가운 침묵, 순정한 고독. 이 또한 겨울 산이 마련해 둔 비밀한 축복이다."

 

 위의 문구를 시작으로 그녀의 글이 내 마음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을 든 첫날 많은 분량을 읽지 않아서 꽤 초반부터 울림이 느껴진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산행과 작가 김별아 그리고 에세이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녀도 책에서 표현했듯이 내려올 것을 무엇하러 올라가는지 잘 모르겠고, 이해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산행이라면 손사래를 칠 정도로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오랫동안 산이라는 것이 멀리서 철마다 바뀌는 모습을 보는 용도 외에 내 삶속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처음의 불편함은 그곳에서부터 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발이 290이나 되는 다 큰 아들을 가진 그녀가 나와 매우 다른 사람인데 김별아라는 여리한 이름이 내 예상과 달라 무색한 인물인데 꽤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으로.

 

 책에 프랑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반가웠다. 개봉했을 당시 혼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화였다는 것을 알고 갔는지 모르고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역시나 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는 것과 그닥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책에서 언급된 영화 외에도 각 부분을 마무리 짓는 어귀마다 시가 한편씩 실려 있는데 대부분 좋은 시들이어서 곁에 누가 귀라도 기울여 준다면 소리내어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들이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산에서만 머물지 않고 그녀 주변의, 그녀가 읽은 책과 시와 수필, 세상의 소식들까지 다채롭게 번져있었는데 그 점이 더욱 마음을 끌었다. 마치 같이 산을 오르며 생각이 닿는 여러 이야기를 끌어다 부담없는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대거리를 해야할까, 무슨 주제를 끄집어내야 할까 걱정없이 술술 흘러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말벗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마음을 다친 사람의 삶의 원동력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나는 오랫동안 삶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불신하며 두려움과 불안을 앓아왔다."

 

 전권에서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읽어보지 못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없듯이 그녀도 나름의 어려움을 디뎌가며 삶을 견뎌낸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러기에 저런 문구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일테다. 말미에 가면 함께 산행을 했던 아이들과 삶에 있어 고난이 어떤 의미인지 토론하는 부분이 짧게 나오는데, 그녀가 던진 반문에 아이들이 어리둥절했듯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고난이 꼭 심적인 문제는 아니더라도, 삶을 풍족하게 살아내려면 온 마음을 다 써야하는데 남의 것보다 내 것이 먼저 다 쓰고 없어질까봐 마음을 아끼고 사는 요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깟거 다 버리듯 훌훌 써버리면 어쩔까 싶어도 혹시나 마음을 다 쓰고나면 나도 빈껍데기처럼 텅 비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나이를 먹을수록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마음을 다주고 다쳐본 적도 없으면서 다친 흉내부터 내고 산다.

 

 "어쩌면 립 서비스에 가깝긴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이따금 말하곤 한다. "만약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너를 손가락질하며 네게서 등을 돌리는 한이 있다 해도,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나는 너의 마지막 사람이야."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온전한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부모에게서 받았던 것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을 뿐이다."

 

 아이와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여정을 담아낸 책이라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물씬 담겨있기도 하다. 몇개월간 성큼 자란 아이에 대한 애틋함도 담겨있고, 함께 산행을 하는 다른 아이들이 쓴 글들이 군데군데 들어앉아 있기도 하다. 새삼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느껴지는 모습을 느낄때면, 이런 삶을 살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 휴일이건 남는 시간에 각자의 공간에 틀어박혀 지금 내 가족이 우는지 웃는지도 모르고 사는것보다, 이렇게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것이 좀 덜 편할지는 몰라도 더 예쁜 모습인 것은 확실해보였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아마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열린 자아(open self)', 두 번째는 나는 모르고 남은 아는 '눈먼 자아(blind self)', 세 번째는 나는 알지만 드러내지 않아 남은 모르는 '숨겨진 자아(hidden self)', 그리고 마지막은 나도 남도 모르는 무의식 속의 자아인 '미지의 자아(unknown self)'이다."

 

 자아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어 있기에 마음이 쓰여 옮겼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대번에 나를 방해하는 것이 숨겨진 자아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눈먼 자아고, 내가 가장 어색한 것이 열린 자아고, 내가 모르는 것이 미지의 자아라고 생각되었다. 한심스런 생각이라 생각한 것을 옮겨와 쓰면서도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녀처럼 산에 오르거나,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뭔가에 집중한다면 이런 구질함이 좀 벗겨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그래도 한참 먼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여진 여러 모습들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렇게 책을 읽다가도 문득 이런 부분이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저 네가지 자아에 대한 부분을 읽고 각각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 저마다 다 다른 생각을 할 것은 분명하다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책, 참 특이했다. 첫인상이 별로였던 상대도 만나보면 이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끼게 된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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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 - 열입곱 살 미치루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
가타카와 요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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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큰 결심이나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길고 먼 거리를 향해 한 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 직접 이 100km걷기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30, 40, 50, 60, 72, 86,... 각 체크포인트마다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꽤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마디로 걷기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들이 꽤 실감난다. 이 100km걷기라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생소한 얘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는 될 것이다.

 

 여고생인 미치루는 부모님이 어린시절 이혼하여 엄마와 남동생 사토시와 지낸다. 엄마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입원한 이후 마치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듯이 변하고, 사토시는 위기에 처한 집안 사정은 나몰라라 철없이 지낸다. 막막한 때에 엄마의 동생인 외삼촌이 난데없이 100km 걷기 대회에 미치루를 참가하도록 신청해놓았다. 운동에 소질도 없고 끈기도 없다며 남동생이 놀리는 바람에 미치루는 어쩐지 욱하는 마음으로 걷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 '그래, 내가 100킬로미터를 완보하고 나면 어쩌면 엄마도 달라질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을 받듯 이야기하며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옮겼다. '내가 100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 이렇게 고통스럽게 밤을 세워 걷는 것으로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만 있다면......' "

 

 미치루의 걷기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저 나도 한다면 한다는 것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걸으면서, 힘듦을 느끼면서 걷는 의미도 달라졌다. 내가 뭔가 어려움을 이겨내면 내 주위 환경도 달라질지 몰라, 이런 일들도 좀 변하게 될지 몰라 하는 바람이 헛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들은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변한다면 내 주위 환경도, 풀기 어려운 일도 나로 인해 달라지게 된다. 내가 도전한 일이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한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뭔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문득 왠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나카타 할아버지는 대회 중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 전까지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던 생판 남인 사람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생활 환경도 전혀 다른 할아버지와 이곳까지 서로 의지해 가며 함께 걸어오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이유는 이것인 것 같다. 나와 접점이 없던 남과 만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런 만남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만남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더라도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과 세상은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나라에서, 옆 동네에서, 이웃집에서 누군가 아파하고 고통받는다면 그 고통이 곧 나에게도 전해질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는 내내 즐거웠던 추억부터 괴로웠던 기억까지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대로 죽는 것도 아닌데, 그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걷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자꾸 비장한 마음이 드는 거지?"

 

 한참을 걷기만 한다면 그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바로 수없이 많은 생각일 것이다. 주인공 미치루도 그랬다. 안그래도 복잡한 가정사로 머리속이 어지러운데 힘에 부칠 때마다 안좋은 기억들, 묻어두었던 추억들이 이리저리 번져나간다. 막기에도, 떨쳐내기에도 어려운 생각들 틈에서 혼자 100km를 걷는다는 상황까지 겹쳐 자기 자신을 쓸쓸하게 여기는 미치루의 모습이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 '나는 나를 믿어'라는 말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감이 나에게는 없었다. 엄마는 늘 그것을 신조로 살아왔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래, 지금이 바로 그때다!"

 

 주인공 미치루가 30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 한번도 아니고 삶의 자잘한 순간들마다 고루해지는 자신을 환기시킬 계기가 크고 작게 있어야 한다. 이 100km걷기도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체험이 될 것이고, 이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독자들도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달라지고 싶었지만 달라질 계기를 잡지 못했을 때, 달라질 타이밍을 알 수 없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다른 책은 미국청년이 쓴 것으로 미국의 50개 주를 돌며 50가지의 직업체험을 해 낸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도 현실이 주는 시련에 괴로워하던 때에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으로 그런 도전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미치루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도전을 이뤄낸 점이 비슷하다. 이 책을 접하는 많은 청소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감화를 일으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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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힐링캠프 - 언제라도 놀러오세요!
김정윤 외 지음, 안치용 / 위즈덤경향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힐링캠프라고 해서 TV프로그램에 나온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책 소개를 찬찬히 읽어보니 오히려 읽는 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이 될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딱 얼굴이 떠오를만한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정치인, 연예인, 예술가 등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멘토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 있다. 학생기자들이 책을 만드는데 직접 참여했다고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는 질문들에서 그런 느낌이 좀 느껴졌다. 다소 가볍다 싶지만 재미도 있는 젊은 느낌이 나는 책이다.

 

 받자마자 책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온통 내가 끼워놓은 책갈피로 책이 울긋불긋해졌다. 그만큼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다.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전기 형식보다는 읽기 훨씬 수월했다.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화가 아니라 좀 더 자신을 낮춘 자세로 인터뷰에 임한 스무명의 인터뷰이들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게 그들에게서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김연아와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일로 구설수에 오른 김미화씨나 전에 직접 섬진강 가에서 찾아뵈었던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 못지 않게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의 유명한 문호 마르틴 발저의 말처럼,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 "물건을 든 손을 그대 손이 아니다." 물건을 내려놓고 빈손이 됐을 때, 그때서야 남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따뜻한 체온을 함께 나눌 수 있잖아요. 지나친 욕심으로 손에 무언가를 가득 움켜쥐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 겨를이 없어지게 되죠. 힘든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구요." 

 

 "리영희 선생님께선 글이란 자기의 피를 가지고 쓰는 건데 몇 백 원짜리 볼펜 가지고는 못 쓴다고 하셨어요. 글은 마치 내 피를 넣듯이 잉크를 넣어서 써야지 소모품인 볼펜으로는 쓸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글은 피로 쓴다. 학자란, 지식인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운 거죠."

 

 인터뷰를 한 멘토 스무명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들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 이들의 말도 함께 접할 수 있다. 저 세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나를 이루는 것, 나와 남을 연결해주는 것,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것에 대한 말들이다.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 독서하는 사람에게 있어 책은 그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 그렇게 이루어진 나는 나를 위한 물질에 연연하기보다, 물질을 쥔 손을 폈을 때 잡을 수 있는 타자와의 소통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내 목소리를 알릴 때는 나의 일부를 담아서 진정으로 치열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저 세가지 메시지만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 가운데 '삶의 원칙'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원칙'과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원칙'으로요." - 안철수

 

 요즘 뜨거운 감자로 올라있는 인물이다. 다른 내용들도 매우 뜻깊었지만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남에게 인색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그 반대로 행동하기 위해 늘 조심하고 있다고 해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역시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인색하기 위해 삶의 원칙을 두 부류로 나누어 놓는 면모를 보인다. 나를 절제하고 남을 포용하는 일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주입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까요? 내면에서 끓어 나온 생각이나 열정이 없어요. 뭐랄까...... 헛헛하달까요? 이건 지적인 헛헛함일 수도 있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 것일 수도 있어요. 문제는 이런 헛헛함을 채우려는 욕구가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대신 소비나 소유에 몰두해 상실감을 채우는 것 같아요." - 홍세화

 

 예리한 분석에 허를 찔렸다. 맞다. 헛헛하다. 2-30대는 일종의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다. 패배주의, 비관주의, 허무주의에 물들었다. 꿈은 큰데 자신이 너무 작다거나,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입에 풀칠하기 위한 목적을 띈 일이거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하고 자립심없이 자라온 탓에 나약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높이는데 있어 돈을 벌고, 쓰는 일 외에 어떤 것을 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나를 세상에 알리는데에 있어 가진 물질을 자랑하는 것 밖에 다른 것을 모른다. 이런 결핍이 너무나 만연해 오히려 의식하고 있기 어려운데 이렇게 보니 한 눈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한 부분이었다. 

 

 "또 많은 경우에 '나만 조금 불편하면 되겠지'하고 돌아가는데, 나중에 보면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불편했던 경우도 많죠. 어떨 때는 문제제기를 하고, 좌충우돌 시끄럽게 해서 내가 깨져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덜 불편한 건데 말이에요. 순간 생각할 때는 '내가 더 고생하면 되겠지'싶어서 한 일인데, 나중에 보면 차라리 내가 문제라고 말을 했어야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편했을 일이 자꾸 벌어져요." - 최재천

 

 굉장히 공감이 됐다. 불편을 뻔히 느끼면서 남의 이목을 끌거나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그것을 감수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바꾸거나, 개선할 점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일은 작은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 작은 용기조차 내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말이었다. 오히려 저렇게 나서서 '깨져주는'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왜 참지 않고 일을 만들려고 하나, 관습에 사로잡힌 시선을 보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더욱 더 부끄럽다.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학생을 봤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실험을 한 상황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서기를 꺼려하거나, 나까지 피해를 입을까 걱정해 모르는 척 지나쳐버렸다. 힘이 세거나,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만이 그 앞에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비슷한 뜻을 가진 여러 사람을 불러모은 것이다. 그냥 지나쳐가려던 여러 사람이 멈춰서서 개입하자 상황은 해결되었다. 이처럼 한사람이 나서서 큰소리내고 이목을 끄는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서는 사회야 말로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다. 

 

 "신을 가장 절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그 신을 철저하게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신을 완전히 타자로 둠으로써 자꾸 뭘 받고 얻어내고 뜯어내고 싶어 한다는 얘기입니다. 진정 신을 섬긴다는 것은 신과 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인데, 거기에 어떻게 '우리 아이 무슨 대학 가게 해주세요' 혹은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성립되겠어요? 우리의 신관은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 김규항

 

 뜻을 같이 한다. 사람이 곧 신이라는 말은 사람을 신처럼 모시라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이 신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을 용서받기 위함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함도 아니다. 용서는 죄를 저지른 상대와 자기 자신에게서 구해야하고, 원하는 것은 스스로 이뤄야 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 내가 이룬 것에 대한 감사도 마찬가지로 오로지 신만의 몫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쓴 모든 이에게로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 전에 위 내시경 검사를 했어요.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교수님, 왜 그러세요?"라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왜 그렇게 박정희 욕을 하냐는 거예요. 마취를 하면 잠재의식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제가 "박정희! XXX!" 이러면서 계속 욕을 했다는 거예요." - 손호철

 

 다른 것은 아니고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자기 마음 속에 숨겨둔 비밀을 갖고 있는 여자가 병을 얻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마취 상태로 비밀을 이야기 할까봐 수술을 포기한다. 주위 사람들이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목숨을 건지기 위해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떻냐고 하자, 말하지 못해 이렇게 괴로운 마음이라면 분명 자신도 모르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수술을 하지 않고 죽어간 여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내 무의식이 저렇듯 표출된다니, 재미있으면서도 무서운 일화였다.

 

"초심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리고 또 나도 변하고, 삶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죠.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까요. 초심을 버려야 합니다. 늘 나를 바꾸고 혁신해야 합니다. 나를 혁명해야지요. 그래야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초심이 시원한 물줄기로 흐릅니다. 눈물 같은 물줄기지요. 그 청춘의 푸른 눈물 같은 물줄기가 사랑입니다. 결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게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불멸의 초심입니다."

 

 김용택 시인 인터뷰의 일부이다. 표현이 아름다워서 따로 적어보았다.

 

 "없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돌아갑니까. 부질없는 질문이고, 어리석은 질문이고, 짜증나는 질문입니다. 지금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게 우선입니다." - 김용택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는 요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는 다소 딱딱한 느낌도 드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구태의연한 질문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답변이었다. 이 질문도 그렇지만 첫사랑에 대한 질문이나, '돈'의 의미를 묻는다거나,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들은 소모적이었던 면이 많았다.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첫사랑에 대해서는 모호한 답변을 고수했고, 돈과 관련해서는 비슷한 취지의 답이 일관되었으며,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겸손으로 응수하였다. 어느 정도 비슷한 틀을 갖고 질문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이런 응답이 계속됨에 따라 책의 내용이 약간은 단조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인터뷰이에 따라 좀 더 개성있는 질문을 더 마련했다면 인터뷰 내용도 살고, 읽는 이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명의 멘토들의 이야기는 전부 다 다르면서 전부 다 같다.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고,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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