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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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그래 얼마나 재미있게 잘 쓰셨는지 감상해보겠습니다. 하는 마음가짐 - 곱게 말하면 기대를 안고 읽는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 교과서가 아님에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저자들의 책이 있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의 저자 장석주가 그러하고,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저자 정혜윤이 그러하고 또,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방송하는 '밤은 책이다'의 저자 이동진이 그러하다. 다독을 하며 그것이 깊은 사유와 통섭의 경계로까지 이어지는 소양을 지닌 저자들이라는 것이 그 공통이다. 때문에 저자 장석주의 신간 소식을 현암사로부터 들었을때 기대가 많이 됐다. 더불어 걱정도 됐다. 배우면서 읽는 시간들이 얼마나 더디게 지나는지 예상이 되니까.

 

 신간은 총 네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사계절. 계절마다 부제가 달려있는데, 각기 [ 봄 : 고갈된 사색의 능력이 살아나다 - 여름 : 책 읽기는 독충이나 돌발사고도 없고 그리고 비행기 편으로 부친 수화물도 분실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여행이다 - 가을 : 가슴이 뛰는 이유는 책상 위에 쌓인 책들로 인해 내 지고한 쾌락이 더 감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 겨울 : 정신적 침잠 속에서 사소한 기억들을 모아 잇고 철학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으로 되어 있다. 봄의 부제를 보는 순간부터 저릿하고 달려오는 환기에, 저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질 못한 채로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을 돌이켜봤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여가라 여겼던 독서나 영화감상 등에서 멀어져 있었다. 아무리 보고 읽어도 지겹지 않던 것들을 지속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던 시간.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려해도 집중도 되지 않고 그저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지하여 핸드폰만 만지작대던 시간이 떠올랐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는데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내려놓고 사색하는 것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지나치게 광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제들이 삶과 사유를 한단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과정을 한 해 살이로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계를 다 거치고 나면 끝나서 텅 빈 것이 아니라 자신을 리프레쉬하기 위해 다져진 한 해를 완성하게 되는 것 같이.

 

 대부분 배우면서 읽었는데, -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읽는 버릇만 없었다면 밑줄이라도 치고 필기도 할 요량으로- 그 중에서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도서관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는 단락이었다. [도서관은 가슴을 뛰게 하는 공간 중의 하나다. 도서관이 각별한 것은 젊은 시절 한때 절망과 불안을 억누르며 하염없이 소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어떤 사람에게는 '비밀스러운 낭만의 공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잉태하고 키우는 모태 공간이기도 하다. ...중략... 왜 도서관들은 접근이 쉬운 도심 한가운데 있지 않고 변방의 녹지나 공원 귀퉁이에 있는 것일까? 첫째, 도서관들이 도시 중심부에 상업 업무 시설이 다 들어찬 다음에 지어졌기 때문이고, 둘째, 도서관이 이윤 창출이 없는 공공건물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무슨 수로 도심 한가운데의 높은 지가를 감당할 수 있으랴! 도서관이 소음이 덜한 도심 외곽에 있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더 다양한 작은 도서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인데, 이사오기 전 살던 지역이 작은 규모로 집중적으로 발달한 곳이라 중심부와 도서관이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 가능하고 역사와 연계된 대여 서비스도 잘 운영하고 있어 정말 감사히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즐겁게 사용했던 발달된 도서대여 시스템에 멀리서도 찬양과 감탄을 보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눈에 많이 밟히는 내용이었다. 도서와 독서를 위해 마련된 도서관이 이윤 창출이 없는 건물이라는 이유로 외따른.. 곳에 지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가치라는 것이 이윤으로 상응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또 하나는 '미국이라는 타자'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장이었는데, 개봉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졸렬한 내용에 모두가 실망을 감추지 못했던 '인터뷰'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나 '식코'같은 영화들도 떠올랐다. 어떤 내용이 인상깊게 여겨지거나 더 주의깊게 보게 되는 계기가 내가 가진 바탕에 따라 좌우하기 마련이니, 감상과 생각은 자신이 체득한 만큼의 경험과 배경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 장을 읽어보라 추천해줄 것을 말한다면 '이 여름은 전대미문의 여름이다'를 꼽을 것 같다. [ 태어남과 죽음은 우주적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나방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듯 나도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존재의 일의성 앞에서 겸허하게 나의 태어남을 우주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나는 정직한 방식으로 세계의 다채로운 삶에 참여하고 있다. ...중략... 나는 '영원성'에 대한 상념을 멈추지는 않지만, 오늘 여기에서의 하루가 결코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영원성'에 견줘 하찮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내일은 또다시 황옥같은 해가 뜨고, 그 해가 내일의 삶을 비추리라. 이 여름이 내 생에게 단 한 번 나타나는 전대미문의 여름임을, 해가 뜨고 지는 이 평범한 하루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금보다 더 값진 하루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 일상적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가 글 안으로 녹아들어가 있는 듯한 흐름이 영상을 읽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준다. 더불어 '8월에는 휴업 중이니, 글쓰기도 사양합니다'도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결에 떠올려봤는데, 물론 다 실행하기 정말 힘들겠지만 각 장마다 나온 책들 중 한권 정도를 선택해 사계절에 맞춰 읽으며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12권에서 13권 정도 되니까 계절마다 3개월 일주일에 한 권의 책 정도면 된다는 계산이 얼핏 나온다. 이런 생각을 꿈같이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워진다. 이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뜬구름이 진짜 계획이 되어 산처럼 내려지는 아득함? 책을 고르는 일부터가 1개월치의 괴로움은 될 것이다. 벤야민의 책은 '일방통행로'가 되겠다, 아마도.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궁금하지만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하고.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세번째부터는 롤랑 바르트의 책을 선택할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로 정하고 빼먹을지 선택의 연속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책 덮기도 전에 시작하고 수많은 책들 중 읽은 것은 손에 꼽기도 어렵게 적다는 사실에 낙담하기도 한다. 사실 언급된 책들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단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첫 장에서 이미 그 생각은 접게 되었으니,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심히 부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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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잉여 논문선 1
김상민 외 지음, 백욱인 엮음 / 지식공작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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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편이다. 책 읽는 공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오가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그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곤 하는데, 이 책은 들고 다니며 읽고 좀 민망한 면이 없지 않았다. 제목 자체가 마치 나의 이름표인양 강렬하다. '속물과 잉여'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는 체면치레에 민감한 속물적인 존재이자 생산 활동을 하는 시간 외의 나머지를 잉여적인 '컴질'에 쏟아붓는 여느 서대와 다름없는 잉여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런 내가 '속물과 잉여'를 들고 읽고 있다니. 마치 '철수사용설명서'를 들고 있는 철수와 같이 느껴진다.

 

 사실, 잉여와 속물에 관한 글들은 많다. 그동안 나왔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속물적인 인간에 대한 잉여적인 삶에 대한 글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 논문선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곤 하는데, 처음 몇 편이야 파격이고 세태반영이겠지만 반복되다보면 물리고 지루하고 그래서 결국은 '뭐 어쩌라고' 하기에 이르게 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물과 잉여라는 주제를 떡하니 들고 나온 책을 읽게 된 까닭은, 이 책이 논문을 모아놓은 선집이라는 이유에서 였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그렇고 그런 비슷한 삶의 구질함이 좀 지겨운 찰나 좀 더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시선으로 이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논문선을 읽어보고 싶다는 속물적인 마음과 잉여 시간도 있었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속물이나 잉여라는 단어의 광범위함과 트렌디한 뜻의 사용을 잘 못 짚어낸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속물이니 잉여니 하는 건 그렇게 딱딱한 범주로 설명되는 뜻이 아니기도 한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증여의 논리' 부분은 그저 디시인사이드 소개글에 지나지 않은,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내용들만을 뜬금포로 나열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잉여스러운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내포하는 말인 것 같아 하고싶지 않지만, 현 시대를 반영하는 코드로 학술적인 분석을 했다기 보단 이런 문화나 현상이 있었다는 소개 나열에 머무른 것 같아 아쉬웠다.

 

 학부 때 레포트 작성하려고 몇 편 뒤적여 본 것이 다 인 논문을 아예 선집으로 모아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새로웠다. 그 점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주제가 주제니 만큼 논문 사례들도 흥미로운 것도 많아서 부담갖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글들에 비해서는 다소 딱딱하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는 가볍게 읽었다. 읽으면서 이 책의 리뷰군을 디시나 다른 거대 포털 쪽에 두면 어떨까, 더 재미있는 리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더 실험적인 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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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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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핫! 하다는 셰어하우스에 대한 책이다.

 

 결혼이 언제쯤 그 의미와 깊이, 그리고 당위를 잃었을까. 집을 나누는 사람들이 공동체로 생활한다는 것. 성인이 된 후 어느 정도의 나이가 지난 사람들이 자신이 살 곳을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와 공유하길 저버리고 타인들과 나누기로 결정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주거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셰어하우스가 단순히 심플하고 합리적인 공동체 생활의 한가지 모델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시대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적이 예로 보여지는 것은 무감각한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는 남녀의 연령대는 점점 늦춰지고, 자신의 능력이 받쳐진다면 굳이 결혼을 해야 할까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점차 이성간의 만남 자체에 무기력해지고 무감해지는 사람들도 토이남이니 초식남, 알파걸, 골드미스 같은 신조어로 대변되고 있다. 성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 기존의 가족세대원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시기는 되었고- 세상은 참 녹록치 않아서 비좁은 서울 땅에 몸 눕혀 생활을 지탱해낼 재간도 마땅치 않은 딱 그런 시기에 놓인 사람들이 이상적이 형태로 주거를 마련하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한다. 저자는 그런 셰어하우스를 둥지라 표현하는데, 뿌리를 내려 생활하긴 하지만 언제든 떠나야 하는 곳인 둥지라는 표현이 참 적절한 것 같다.

 

 법적으로 하나의 가족으로 묶여지는 결혼이라는 형태보다 타인들끼리 묶여서 공간을 공유하는 개념인 하우스 셰어가 더 가벼운 것 같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서로간에 기본적인 신뢰나 믿음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이 하우스 셰어가 아닌가 싶다. 푸딩을 멋대로 먹어서 일어나는 싸움은 그저 웃음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생활하는 것이 하우스 셰어이니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생활할 수 있다고 믿고 또 아직은 티비 프로그램의 보여주기 식의 생활형태이지만,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사회에 정직과 이성이 남아있다는 뜻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 비이성과 이기를 넘어선 몰염치, 몰상식이 많았던 터라 남과 자신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해놓은 생활 형태가 가능하다고? 하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이겠다.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부분이 아니었어서 흥미롭게 읽었고, 어느 정도의 내용의 상식선에서 그렇겠거니 하는 부분이라 전문성이 있는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전반적인 스케치는 될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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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패러디다 -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5
조현준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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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 몸-신체적 성구분, 정체성, 욕망에 대한 책이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친절하게 책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전에 독자님 '개념'부터 챙겨가시라고 마련해둔 개념 정리 파트도 있었다. 좀 더 전문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전문성이 과했을까 일반적인 내용을 틀어놓았는가 싶은 곳도 눈에 띄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글에 어디 모난 부분이 있다 생각하기 어렵지만, 읽기 좀 불편한. 하지만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같은 출판사의 같은 시리즈 전권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 04' "사상의 번역"이란 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은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요 쟁점이 되는 "젠더 트러블"의 주디스 버틀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심각한지 혹은 우스운지, 결정적으로 적나라한지를 떠나 일단 한번은 관심과 눈길을 끈다. 게다가 이 책 처럼 다양한 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용보다도 더 재미있었던 것은 각 파트 사이에 있는 '깊이 읽기'라는 코너였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여성성이나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다양한 창작물들을 주제로 이해를 돕는다. 드랙에 관한 주제에서는 드랙퀸과 드랙킹 모두가 나왔던 작년에 본 '헤드윅'이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여성의 미 혹은 여성성, 여성이라는 존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어 고정되고 표현되어져 왔는지 새삼 인식하게 되기도 했다. 깊이 읽기 부분을 읽는 도중에 근대를 대표하는 신여성 나혜석과 최승희에 대한 언급도 있어 반가운 한편, 특히 영화에 대한 주제가 많았는데 한번쯤은 꼭 보고 싶은 흥미로운 작품들이라 좋았다.

 

 신체적 성구분, 성정체성, 욕망에 대한 학술적 접근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 마초와 페미니스트 같은 이분법으로 인식되는 일반론적 지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확장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움을 틔워주는 역할도 한다. 일례로 GBTQL에 대한 언급처럼.-LGTB로 알고 있던 약자가 달라지고 Q가 등장함으로 인한 헷갈림도 있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성애를 금기시 함으로써 동성애가 원천적인 선택지 중 하나임을 은연 중 인식하는 결과가 된다는 부분이나, 여성이 자신의 이상을 정하거나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에 시대 이념과 지배사상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성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의 반영에 크게 지나지 않게 인식되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부분들이었다.

 

 질리지 않고 끝가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과연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게 할 수 있을까는 문제겠지만, 초식남과 알파걸, 골드미스의 등장을 단순히 신조어의 등장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도 해석하여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꽤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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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번역 - 쑨거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4
윤여일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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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이어달리기 같은 책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인물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시도해봤는데, 타케우치 요시미를 알기 위해서는 루쉰이 등장하고, 그들의 관계 뒤로 쑨거가 이어진다. 단 하나 제대로 건진 정보가 있다면 타케우치 요시미가 남성이라는 것. 반대로 그만큼 배경 지식이 없는 채로 책을 들었다는 뜻도 된다. 사상과 학문이라는 것이 원래 다 이렇게 이어지고 갈라지는 것인지. 독자를 시험하는 듯한 사실은 이래도 계속 다음장으로 읽기를 계속할 것이냐고 확인하는 듯한 내용이 계속되고 있는 책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생각 이상으로 비워진 공간이 많은데 결국 마지막까지 가긴 했으니, 한보 나아가고 두보 밀려난 느낌이 든다.

 

 상대의 상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더 많은 시간과 공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쩌면 그저 여기서 논의되는 타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에 대해서만 포커스를 잡고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다. 책의 내용 안에서도 나온다. "사상의 번역이란 힘을 다해 상대에게 다가가려고 애쓰지만 동시에 상대와 동화될 수 없다는 자각을 품고, 상대에게 동일시하기보다 상대와 결별해 자신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노정이다." 라고. 책을 마주하고 되새기자,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자기화 된 결과물 외에는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자기화의 범주가 더 크고 넓어지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말이다.

 

 타케우치 요시미, 루쉰과 쑨거가 일본과 중국의 문학가이자 비평가이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인 내용이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특히 전후 일본에 관한 내용이 나오거나 일본과 미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는 부분은 불편하기도 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의식을 거론한 부분 등이 특히. 그 외에도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담론도 나오기 때문에 그런 사상이 담긴 부분들은 매우 흥미롭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과 동양의 구도를 두고 어떤 시선으로 세계의 흐름을 인식해야 하는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두 문화가 충돌하며 우와 열의 위치를 형성하는 상황에 대해 어느 위치에서 문제 인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는 6장의 내용은 특히 재미있었다. 다소 생소한 쩡짜의 방향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지식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리뷰가 아쉬웠다. 나같은 겉핥기가 아니라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글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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