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
마티 올슨 래니 지음, 박윤정 옮김 / 서돌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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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용기를 내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은 내성적이신 것 같아요." 그러자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그래서 나는 내향성이란 여러 가지 타고난 특성들의 총합체이지,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수줍음을 잘 타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안심하며 말했다. "제 성격이 이런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내성적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p.19)

 
 

학창시절 나는 학급 임원이었던 적이 많다. 성적도 좋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니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은 어김없이 날 추천했고 뽑아주었다. 학급 임원이 되면 선생님들 눈에 띌 일도 많고, 내신이나 수행평가 점수를 잘 받는 일도 많으니 나 또한 싫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갔을 때 학년주임 선생님이 나에게 학년 대표로 선서인가 인사를 시킨 적이 있는데, 왠일인지 너무나도 하기가 싫었다. 우리반 아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 나 혼자 나간다는 게 너무 싫고 두려웠다. 그 얘기를 선생님께 했더니 선생님은 별일도 아닌걸 가지고 유난스럽게 군다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다른 아이에게 그 일을 시켰는데, 그 아이는 너무도 기뻐하며 하겠다고 했다. 그 때 난 처음으로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알다시피 이 세계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다. 학교는 발표를 잘 하고 적극적인 아이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회사 면접에서도 춤이나 노래 같은 장기자랑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튀고 눈에 띄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경쟁 사회는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되어있다.  

 

심리치료사이자 작가인 마티 올슨 래니 박사는 외향적인 사람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소외받고 상처입기 쉬운 내향적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를 썼다고 한다. 마티는 어려서부터 평소엔 말을 잘 하는데도 남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닌데도 외출하는 게 두려워서 성격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심리치료사가 되가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은 그저 내향적인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분개했다. 그저 성격일뿐인데도, 외향적인 사람은 늘 '적극적이다, 활달하다, 사교적이다, 즐겁다, 열정적이다' 등등의 좋은 평가를 받는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소심한 사람, 사회부적응자, 히키코모리' 등 부정적인 낙인만 찍히는 이 더러운 세상...!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적극적이고 활발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생활에도 별 문제가 없었고, 방송반, 편집부, 오케스트라 등 다른 친구들이 안 하는 클럽활동도 여러 개나 했고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나서 달라졌다.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사람들과 만나도 그리 즐겁지 않았고, 쉽게 피로를 느꼈다. 급기야는 전화공포증까지 생겨서 집에 오는 전화는 물론 내 휴대폰으로 오는 전화도 피하기 일쑤였다. 난 이게 병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책에 따르면 이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지극히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한다.(p.167) 내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깊이 몰입하기 때문에 전화 등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뿐이라고. 이런 내가 예전과 다르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조용히 있는 시간이 더 나답고 편하고 행복했다. 난 사실 내성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인지 알아보는 간단한 테스트  


혼자, 아니면 몇몇 친한 친구들과 편안히 쉬는 것을 좋아한다.
깊은 관계만 친구로 여긴다.
바깥에서 아무리 즐겁게 보냈어도,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주로 듣는 편이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화제일 때는 말을 많이 한다.
차분해 보이고 말이 없는 편이며 지켜보기를 좋아한다.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세상의 들러리'라고 비관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장점이 많다.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줄리아 로버츠, 마이클 조던, 에디슨, 기네스 팰트로, 다이앤 소여,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세상에는 내성적인 성격을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사람이 매우 많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웨스트 윙>의 조사이어 바틀렛 대통령(마틴 쉰)도 대표적인 내성적인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박학다식하고, 조용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참모들의 사이를 잘 조율하고, 가정적인 바틀렛 대통령의 모습에 얼마나 많이 감동했던가!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성격의 장점을 살리되, 외향적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마치~인 것처럼' 가장하며 자신감을 높이고(정말로 자신이 생길 때까지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자기만의 제한 범위를 지나치게 완고하게 설정하지 않도록 여유를 가지고(유머와 약간의 일탈이나 도전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음악을 듣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일상 속에서 휴식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자주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한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남들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일에서도 '이건 잘못 한 것 같다'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인데, 상처가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칭찬한다면 자기 능력을 신뢰할 수 있고 위기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라고 하는 놀이터는 좀 더 공평해져야 한다. 지금까지 외향적인 사람들만 칭찬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성적인 사람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내성적인 성향을 긍정하는 쪽으로 문화를 바꿀 만큼 성숙하다. 더 이상 자신을 억지로 사회에 꿰맞추거나 '컨디션'을 좋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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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앤드 밸리 - 절망의 골짜기에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라
스펜서 존슨 지음, 김유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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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지난 한 주를 마무리 하고 새로운 일주일을 맞이할 겸, 어제는 늦은 밤까지 책을 읽었다. 딱딱하고 어려운 책은 가급적 피하고, 피로를 달래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밸리(valley)' 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어 책장에서 이 책을 골랐다. 골짜기. 나는 지금 골짜기에 빠진 것만 같다. 끝이 어딘지 모르고 바닥까지 굴러떨어지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오를 일만 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 어서 피크에 올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만은 확실하다. 

저자 스펜서 존슨은 전 세계 6천만 독자들에게 읽힌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선물> 등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피크 앤드 밸리>는 그의 2009년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출간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 또한 2009년 출간 당시 이 책을 구입하여 읽었고, 한동안 잊고 있다가 어제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의 구성은 스펜서 존슨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교훈을 설명할 뿐이다. 하지만 시간의 힘 때문인지 전에 읽었던 것과는 또 다른 감동과 교훈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때는 인생의 무게를 아직 잘 몰랐고, 내 상황이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그 누구도 내 손을 잡아주고 부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니 이런 책의 작은 교훈 한 줄에도 감동이 오나보다.

 
책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인생에는 수많은 골짜기와 산봉우리가 있지만 인간은 그것을 조절할 수 없고 다만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골짜기를 만드는 것, 아니 골짜기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태도 문제인 것이다.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돈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고, 골짜기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절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 없이 구하고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는 중에 얻어지는 것은 분명히 있다. (반드시 돈 같은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도 말이다.) 젊은 시절을 한 가지 일만 하면서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가지 일에 도전해 보면서 나의 가능성을 넓힐 기회를 얻었으니 더 좋은지도 모른다. 나처럼 한달에 수십권씩 책을 읽고 원하는 대로 글을 쓰고 생각하는 청춘이 그리 많지는 않을테니. 그러니 오늘 하루 또 여유로운 날을 얻은 것을 자책하지 말고 감사히 여기며 귀하게 써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꼭 지금의 시련들을 안주거리 삼아 얘기할 수 있는 날을 맞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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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식사전 2 - 세계경제편 길벗 상식 사전 11
정재학 지음 / 길벗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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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리뷰를 쓴 김민구 저자의 <경제상식사전>의 후속편 격인 책이다. <경제상식사전>이 경제학 기초와 국내 이슈에 비중을 많이 둔 반면, <경제상식사전2>는 세계경제를 비롯하여 환율, 금융이 주내용이다. 전편에 비해 세계경제와 관련된 이슈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전편을 읽은 사람으로서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고, 후반의 환율, 금융 부분은 대학에서 국제금융론을 수강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만한 내용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경제편'인만큼 세계경제의 역사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비롯한 최근 이슈에 대해 알기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점은 좋다. 첫째마당 '아는척하기 딱 좋은 세계경제 기초상식'에 소개되어 있는 동인도회사, 튤립 버블, 로스차일드, 폰지 기법, 브레튼우즈 체제 등의 토픽들은 신문, 뉴스는 물론 헐리우드 영화나 영미권 소설을 볼 때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들이라서 배경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둘째마당 '세계경제 핫이슈 따라잡기'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를 비롯하여 G20까지 비교적 최신 이슈에 대해 일반인들도 알기 쉽도록 여러가지 사례와 도표, 그림을 활용하여 간결하고 재미있게 설명한 점이 좋았다. 

셋째마당 '알아두면 돈 되는 해외투자 정보'는 중국, 인도, 베트남, 남미 등 신흥 경제시장에 대한 설명이 주로 나와 있다. 이머징 마켓, 브릭스 등 익숙한 개념부터, 중국 주식시장의 시스템과 인도 경제의 강점, 베트남 시장의 성장 등 평소 궁금했지만 정보를 찾기 힘들었던 내용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넷째마당은 '환율과 금융 상식' 부분인데, 나는 대학에서 국제금융론을 수강할 때 배운 내용이라서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금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평소 신문을 볼 때 환율에 대한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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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드는 법 31 : 여성 편 멋지게 나이 드는 법
장윤희 지음 / 작은씨앗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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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여러 권 있는 모양이다. 그 책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다지 권해주고 싶지 않다.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이라고 하기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나 멋진 중년, 노년을 보내기 위한 준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을줄 알았는데, 와인 즐기기, 피부 관리, 옷차림 연출, 휴식 방법 등 굳이 이 책에서 다뤄져야 하는가 싶을만큼 일반적인(또는 잡다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뭐, 책에 소개된 방법을 따르면 '멋'있게 나이 들 수 있을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멋'이 꼭 그 멋 뿐만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에서 마음에 남는 부분이 한 곳 있다. 직업적 성공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의 저자인 오현숙씨의 사례를 소개한다. 오현숙씨는 커리어 우먼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살다가, 쉰 살을 얼마 앞둔 어느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돌연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가족, 친구가 모두 말렸던 그 여행에서 그녀는 여러 나라의 특징을 몸소 체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했다. 더 가지고 모으고 욕심부리기만 했던 지난날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던 여행길에서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이 아니라 <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의 내용이다. 인용 부분이 가장 좋았다니... 역시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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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잉글리시 - 영어를 삼킨 아시아, 표준 영어를 흔들다
리처드 파월 지음, 김희경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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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사람들은 아시아권 사람들이 쓰는 영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으로 고른 책인데 마침 카이스트에서 연이어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 중 하나가 '100% 영어강의' 가 아니냐고 지적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본의 아니게 시사 이슈와 맞아떨어진 덕분에 평소보다 진지한 태도로 읽었다.

저자 리처드 파월은 법학자 겸 언어학자인 영국인으로 일본에 체류하던 중에 간판이나 홍보물, 안내문의 잘못된 영어 표기는 물론, 잘 알아보고 만들었을 브랜드명마저 (가령 '포카리 스웨트'는 땀(sweat)을 마신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이상한 영어 표현을 쓴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생활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의 가짓수는 늘거나, 아예 새로운 영어식 조어를 만들어 쓸 정도였다. 이에 영감을 얻어 25년간 아시아에 거주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언어인 영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사례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저자가 주로 생활한 곳이 일본이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타이, 미얀마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연구했는데도 한국의 사례가 많다는 것은 곧 한국 내의 영어에 대한 열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고, 그만큼 특징이 두드러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내용에 대한 사례로 등장한다. (슬프게도 그의 지적은 사실이다.) 영어 사교육 열풍부터 '넘버 원', '프리미엄' 등 경쟁이나 비교의 뜻을 담은 말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저자가 한국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언어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외래어까지도 한국 문화의 부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지만 74퍼센트에 이르는 학생들이 1,2학년부터 영어 사교육을 받는다. ...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시작한다면 영어 사교육에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응답이다. "내가 영어에 미쳐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내가 만난 젊은 한국 아버지가 말했다. "그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뿐입니다. 다 영어 과외를 시켜요. 영어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도 얻거든요.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교육 수준은 믿을 수가 없어요. 내 아들을 학원에 안 보내면 다른 아이들한테 뒤처져요." (p.55)

한국에서도 나는 약간 이상한 영어 자막이나 내레이션이 흐르는 광고들을 봤다. 가령 "넘버원 이미지(이미지가 어떻게 '넘버 원'이라는 걸까? 그리고 한국인들은 왜 '넘버 원'이라는 표현을 좋아할까?)라던가 "프리미엄 버거, 빅 태이스티(...)" ... "프리미엄 디지털 카메라 : 한국의 광고 제작자들은 '프리미엄'이라는 말을 유난히 좋아한다)" 같은 말들이다.(pp.104-5) 

 

저자는 영어가 아시아권에서 가지는 '파워' 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여기서 '파워'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이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격차나 차별까지도 포함한다. 사실 아시아 국가들이 고유의 언어를 버리고 영어를 강조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저자가 이 연구를 하게 된 것 역시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자 학교와 가난한 학교의 격차는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유달리 커 보인다. 급속한 산업화와 중산층의 교육에 대한 집착 탓이다. 그 격차는 영어에 대한 접근성의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서울 강남구의 서울대 진학률은 다른 지역보다 최고 아홉 배나 높다. (p.195) 

 

영어의 파워는 국가간의 힘의 상징일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많은 격차를 야기한다. 전에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 vs 못 하는 사람'의 대결이었다면, 이제는 '영어를 어릴 때부터 배우는 사람 vs 성인이 되어서야 배우는 사람', '외국에서 배우는 사람 vs 국내에서 배우는 사람'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영어 실력은 경제력의 차이를 낳고, 이는 자식들의 교육 접근성 차이로 이어지며 격차를 대물림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영어 학습지만 구독해도 유별난 집, 부모가 극성 맞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이른 아침부터 영어유치원 버스에 오르는 '케이트', '조나단'을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저 아이들과 같은 세대인 아이들은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 아이들이 서로 의사소통이나 될까? 

뿐만 아니라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학가 100% 영어 강의 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한국의 사례는 나오지 않지만, 굳이 고급 학문을 다루는 대학 수업을 영어로 강의할 필요가 있는가, 필요하다면 과연 대학 자체의 국제화는 얼마나 진행되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시아 대학들은 영어로 진행하는 자체 수업도 새로 열고 있다. 태국 고등교육위원회에 따르면 대학에서 2008년 현재 영어로 가르치는 국제 프로그램은 727개다. 학교들은 '국제적'이라고 내세우지만 태국 학생 비율이 99.8%로 압도적으로 많다. (pp.172-3)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영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오로지 '목적'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영'어'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영미권의 문학을 공부하는 '영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아시아인이 줄고, 인도나 필리핀의 고급 인력들이 자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 일하지 못하고 영미권 기업의 전화상담원 역할만 하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들의 영어 교육 열기를 이용하여 미국이나 영국에서 언어연수 등을 명목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영어 광풍의 이면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영어가 다른 언어를 희생시키며 확산되는 '킬러 언어'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치더라도, 이를 이용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격차가 더 심해지는 이면을 놓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학 전공자가 아니고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현주소에 대해 생각해보고 올바른 언어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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