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 많이 바를수록 노화를 부르는
구희연.이은주 지음 / 거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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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나는 화장품에 별 관심이 없이 살았다. 학생 때는 세수하고 머리 감는 것도 벅찼고(그렇다고 잘 안 씻고 다녔다는 건 아니다...), 대학 들어가서는 브랜드 화장품보다 값이 싼 존슨***, 클린**** 같은 학생용 화장품, 아니면 어머니께서 생일 같은 때 사주시는 화장품으로 버텼다(?).

 

그러다가 몇 달 전부터 알라딘에서 책 살 때 특가상품이나 이벤트로 나온 화장품을 한 두 개씩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화장품 사는 재미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장바구니에 담기는 책 가격보다 화장품 가격이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이 책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이다.

 

화장품에 관한 책 중에서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마라>가 인지도로 보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은 우리나라 저자들이 쓴, 순수 국내 화장품 시장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실용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고, 읽으면서 참 많이 놀랐다.

 

 

먼저 기초 화장품은 클렌징, 화장수, 크림, 선크림, 이렇게 네 가지면 충분하다. 클렌징만 해도 수성과 유성, 화장수만 해도 스킨, 토너 등 종류가 다양하고, 크림은 로션, 에센스, 세럼, 수분크림, 영양크림 등등 가짓수가 엄청 많다. 그런데 이 모든 단계와 명칭은 화장품 회사에서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필요한 기초화장품 가짓수는 오직 네 개. 단 네 단계에 맞춰서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바르면 된다고 한다. 건조하면 크림, 지성이면 에센스를 바르면 되는 것이지, 에센스 다음에 수분크림, 영양크림, 아이크림... 이런 식으로 다 바를 필요가 없다.

 

그리고 화장품을 살 때 성분표를 꼭 읽고 따져봐야 한다. 난 이제까지 화장품을 살 때 가격, 브랜드, 효능, 디자인까지만 살펴봤고, 이렇게만 따져보고 사도 충분한 줄 알았다. 그런데 화장품에 함유된 인체 유해 성분들이 체내에 쌓이면 알레르기나 암 같은 질병을 일으키고, 여성의 경우 아이에게 아토피, 알레르기 등 피부질환을 야기할 수도 있다. 건강해지려고 아무리 음식 가려먹고 운동 열심히 해도 하루에 몇 번씩 바르는 화장품, 이 화장품에 유해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면(그것도 몇 단계씩 여러차례 바르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화장품을 살 때는 성분표를 꼭 읽고 유해성분이 함유되지 않은(적어도 '덜 함유된')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이과출신이 아니라서, 이 책에 나온 화학성분 이름 같은게 머리에 잘 안 들어오지만(ㅠㅠ)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라고 표시된 트리에탄올아민과 메칠파라벤, 이 두 개는 꼭 피하고, 에탄올, 벤조페논-5, 파라벤, 향료, 색소 등등은 피할 생각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인증기관에서 검증을 받은 화장품을 사는 것이 낫다고 하니 수고스럽고 비싸더라도 꼭 알아보고 사야지.

 

+ 이 책을 읽고 가지고 있는 화장품 성분표를 다 찾아 읽어봤는데 충격적이었다. 얼마전에 산 모 제품은 가장 유해하다고 알려진 트리에탄올아민과 메칠파라벤이 들어있고, 학생들이 많이 쓰는 브랜드의 로션은 파라벤이 무려 다섯 개나 들어있었다. (이걸 오늘 다 썼다ㅠㅠ 내 피부... 내 몸...) 샴푸, 헤어제품에도 유해성분이 적지 않게 들어있었다. 오마이갓.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피부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친구나 지인, 매장 점원의 말이나 홈쇼핑 문구에 현혹되지 말고, 먼저 내 피부 상태를 잘 알고, 피부에 문제가 있으면 먼저 피부가 스스로 자정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노화를 방지해준다고, '핫'한 성분이 들어있다고 무턱대고 사고, 하루에도 몇 겹씩 발라주면 피부 자체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정말 화장품 없이는 좋은 피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피부도 내 몸인데, 이제까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얼굴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로 보고, 몸은 조금이라도 날씬하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면서, 왜 피부에는 무심했을까?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화장품을 샀던, 그걸 열심히 발라댔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후회된다. 내가 사는 화장품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좋은 제품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 또한 현명한 소비이고, 소비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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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인생 건강교본 - 동의보감 매일매일 실전편
김태진 지음, 최정준 감수 / 북드라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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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엔 유난히 병치레를 많이 했다. 목감기, 코감기, 몸살 감기는 물론 스트레스성 위염에 생리통, 배란통 등으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앓아 누웠다. (지난주엔 어금니가 부러져서 치과에도 다녀왔네? 참 가지가지 한다...) 어릴 때부터 잔병이 많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고, 잔병이 많은 사람은 큰 병에 안 걸린다는 말도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그래도 일단 아파서 앓아 누워있으면 세상 만사가 다 원망스럽고 괴롭다.

 

지금도 요며칠 푹해진 날씨만 믿고 얇게 옷 입고 다녔다가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고 있다. 이런 나의 눈에 딱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바로 <명랑인생 건강교본>.

 

책 표지도 요란스럽고 제목도 유치해서 대충 훑어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제목이 무슨 스포츠신문 한 켠에 실리는 미니 건강정보 모음집 같아서 그렇지, 무려 우리나라 한의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동의보감>에 기반한 '인문의역학서'다. 게다가 전부터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장바구니에 넣어 두고 결제할 때만을 기다렸는데, 저자(김태진)가 고미숙 선생님과 같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인연을 맺고 계신 분이라니 이거슨 운명? 사실 고미숙의 <동의보감>은 나 같은 초심자가 읽기에는 어려워 보여서 선뜻 읽어볼 엄두가 안 났는데, 이 책은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인 것 같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책을 재밌게 읽었으니 이제는 고미숙 선생님 책도 읽어봐야지!)

 

누구나 아픈 곳 하나 쯤은 가지고 살고 있다. ... 그렇게 불완전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생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로봇이다. ... 건강하다는 것은 병에 걸렸을 때, 그 아픔을 견디고 거기서 벗어나는 힘, 다시 새로운 상태로 돌아가는 힘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p.13)

 

누구나 아픈 곳이 있고, 아픈 곳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을 들으니 잔병 많은 사람으로서 위로가 된다(ㅠㅠ)

 

책에 따르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걷고 생활하고 다시 잠을 자는 모든 행동에도 '음양'이 있다고 한다. 이 음양을 조화시키지 못했을 때 문제가 생기고 몸에 병이 나는 것이다. '음양'이라고 하니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이라고 거부감부터 불러일으킬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생각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해 질 때 자고 해 뜰 때 일어나고, 추울 때 따뜻한 음식 먹고 더울 때 서늘한 음식 먹고... 이렇게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을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음양이다. 밤에 많이 먹고, 새벽까지 게임하고, 클럽에서 놀고, 낮에 술 마시고 잠만 퍼질러 자는 사람이 병 안 걸리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지구 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대부분이 성장기간의 6배 이상을 살지 못한다. 이를 근거로 20세까지 성장하는 인간의 한계수명은 120세라고 추측한다. (p.52)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건강해지는 비결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간단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물을 마시는 것은 '음양탕'이라고 할 정도로 보약보다 몸에 좋고, 입에서 나오는 침은 우리 몸의 진액(비표준어로 '엑기스')이기 때문에 뱉지 말고 삼켜야 한다. 음식은 소화되기 쉬운 순서(잘 썩는 순서)로 먹는 것이 몸에 좋기 때문에 과일은 먼저 먹고, 식사는 곡물-생선-육류-채소 순으로 먹어야 한다. 잘 때는 태아처럼 구부려 자는 것이 허리에 좋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을 쭉 펴주면 좋다.

 

나는 다크서클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ㅠㅠ) 이 책에 따르면 비장이나 신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강, 모과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크서클은 화장으로 가리거나 수술 받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부터는 이 책을 믿고 생활습관을 바꾸는 걸로 노력해봐야겠다. 그 밖에도 치아나 뼈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신장이 나쁜 것이고, 귀를 따뜻한 손으로 자주 문질러주면 좋다고 한다. (이도 부러지고 다크서클도 있으니 나는 신장이 정말 안 좋은가 보다...)

 

이밖에도 피부병(아토피), 탈모, 여성질환 및 우울증 같은 정신병에 대해서도 한의학, 동의보감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었다. 한의학으로 정신병을 치료한다니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의학에서는 몸의 병이 정신적으로 발현된 것이 꿈이라고 보고 연구했을 정도로 정신의 세계를 신체와 연결하여 의학적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한의학은 단순한 의학이 아니라 심오하고도 깊은 철학의 세계인 것 같다. 그동안 한의학 하면 그저 뜸 뜨고 침 놓는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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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London Voice - 삶은 여행… 두 번째 이야기
이상은 지음, 신정아 사진 / 북노마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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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은이 좋다. 이 분 음악을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고, 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담다디'는 그 때 고작 두 살이었던지라 잘 알지도 못한다. 맨처음 좋아하게 된 노래는 아마도 <비밀의 화원>. 스무살 무렵 교정하느라 한창 치과에 다녔는데, 치과 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몇 번이나 이 노래가 나왔다. 우연치고는 너무 자주 나와서 '이 노래가 나랑 무슨 인연이 있나?' 싶었을 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노래도 많이 나왔는데 내가 유독 이 노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어 한동안 참 많이도 들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 서정적인 가사가 좋았다.

 

이상은이라는 뮤지션을 좋아하게 된 건 그보다 후의 일이다. 집에 있다 보면 적적해서 배경음악처럼 라디오를 틀어 놓곤 하는데, 어느날 주파수를 돌리다가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라는 방송이 잡혔다. 그 때가 마침 새로운 음악 없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좋아하는 올드팝부터 최신 외국 음악, 세계음악 등 다양한 노래가 나와서 좋았다. 진행스타일도 좋았다. 말투는 털털하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느낌은 조심스럽고 차분했다. 나도 그녀 나이쯤 되면 이렇게 때묻지 않은 느낌으로 음악 얘기, 사는 얘기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London voice는 딱 이상은 같은 느낌의 여행기다. 작은 것 하나에 유난히 감동하기도 하고, 오노 요코처럼 그녀가 무진장 좋아하는 화두에는 열정적으로 달려든 여행의 기록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팬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읽고나니 그녀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런던은 이상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도시라고 한다. 8년 전 미술을 배우는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 후 도망치듯 떠났던, 아픈 추억이 서려있는 땅. 그래서인지 첫부분부터 다시 런던땅을 밟는 설렘, 과거의 자신과 재회하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런던은, 전처럼 춥고 싸늘하고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는 예술의 의미를 알고 싶어 번민하는 처지여서 도시마저도 스산하고 쓸쓸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보헤미안 뮤지션이자 자유인이기 때문에 보는 느낌도 달라졌나보다. 만약 지금 내가 런던 땅을 밟는다면 어떤 느낌으로 보일까? 여행은 외부의 것이 아닌, 내 안의 것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녀의 경우를 보니 정말 맞는 것 같다.

 

 

8년 후 다시 런던을 찾아야 할지 꽤 많은 고민을 했다. 8년 전 아쉽게 떠나왔던 곳이기에 꼭 한번 다시 오고는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사랑에 다친 사람이 다음 사람을 겁내듯이, 또 같은 상처를 입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떠났다. 다행이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하기만 했던 내가 편안하게 웃을 줄도 알고, 무엇보다 자주 웃고 있으니까. 내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변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 확신을 믿었고, 난 지금 런던이다. (pp.102-3)


여행지뿐 아니라 그곳의 음악, 미술, 그리고 그녀 주변의 이야기 등등 많은 주제가 화제로 등장한다. 음악과 미술은 그녀의 전문분야니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을 비롯하여 그녀 주변사람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부분은 살짝 놀랐다. 하긴 나도 어떤 그림이나 어떤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녀에게도 그런 추억들이 있을터. 그때만큼은 아티스트로서의 옷을 벗고, 주변인들에게 편안하게 이런저런 바람들을 늘어놓는 느낌이 편하고 재미있었다.

 

영국 미술과 음악의 좋은 점, 우리나라 인디씬에 대한 기대, 더욱 우호적이고 풍성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소망 등등, 단순히 여행의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세심한 감성과 독특한 관점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에세이처럼 쓴 부분도 좋았다. 다른 이가 하면 빈말 같고 듣기 좋은 말로만 들릴 것도, 이상은은 몸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와닿았다. 왜 다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의 어른이 되는 걸까? 난 남들에 비해 얼마나 다르고 개성적으로 살고 있을까? 그녀를 보면 이런 내면의 소리(voice)들이 날 파고들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밑줄 한 번 긋고 반성하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책 (일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영국의 풍부한 상식)에서 인상 깊었던 건, 영국에서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이 '돈'이 아닌 성격과 취미, 취향, 흥미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말을 전적으로 신봉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와 직업을 뛰어 넘어 누구나 자신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참, 이런 대목도 있었다. (일본이나 우리처럼) "나는 어떤 회사에 다니는 누구입니다" 식으로 자신의 학력과 경제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처럼 자신의 '계급'을 여전히 강조하는 사회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나는 남미에서 수입한 유기농으로 재배한 커피를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자기소개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예찬하는 부분이 참 끌렸던 게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도 똑같다. 내 이야기를 음악에 담고, 은근슬쩍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아니지만, 가사 하나하나에서 내가 느껴지는 음악이 필요했다. 그런 음악이 좋았다. 내 작은 일부라도 음악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음악을 하는 이유다. 세상이 정해 놓은 '영토'에서 아등바등하며 살기보다 오로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네 삶도 한층 풍성해지리라.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pp.116-7)


나의 하찮은 재주로 어떤 글이야 쓰기가 쉽겠냐마는, 여행기는 감상을 글로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 책도 읽은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감상문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뭘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감상을 남기는 건데도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상은을 보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멋지다. 나도 나만의 삶, 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그녀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이상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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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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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은 원래 내가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다. 정확히는, 순전히 내 실수 때문에 읽게 되었다.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쓴 <예술가의 방>이라는 책이 있다. 언젠가 서점에서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억해두었다가 며칠 전에 마침 도서관에 있기에 빌렸는데, 아뿔싸! 잘못 빌렸다. 출판사도 똑같고 제목도 비슷한데, 이 책은 '예술가'가 아니라 <작가의 방>이었네.

 

... 뭐, 이것도 운명이려니.  

그런데 원래 실수나 우연에서 비롯되는 일 중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이 많다고 하듯이, 이 책도 행운 같은 책이었다. 내용도 좋았고, 국내 주요 문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게 되어 앞으로 책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의 방>은 한국일보 수속논설위원 박래부 기자가 여섯 명의 문인의 방을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섯 문인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이라니...!!! 인터뷰를 한분씩 따로 엮어도 책으로서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책에서 다 만나게 되다니 사치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이문열의 서재는 머리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다. 또한 지칠 때 차 마시며 쉬는 곳이기도 하며, 쓰임새에서는 또 다른 사적 열망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필용 책상 옆에 우스운 인연으로 갖게 된 검도용 죽도 한 자루가 놓여 있기도 한 그의 큰 서재는, 그 자체가 평생 추구해 온 탈이념적, 복고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혹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딧세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문열의 방 p.13)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건만, 자폐아의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또한 그의 방이기도 하다. (김영하의 방 p.63)


예술가의 방이든 작가의 방이든, 처음에 누군가의 방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은 방도 대단할까, 어떤 은밀하고 사적인 비밀이 있을까 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궁금증 말이다. 확실히 작가들의 방은 뭔가 달랐다.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장서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과 사진, 장식품들... 하나하나 특별하고 개성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방들은, 정확히는 서재 내지는 작업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은밀하고 사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조금씩 무너졌다. 뭐, 애초에 그들이 남들과 똑같이 밥 먹고 옷 갈아 입는 공간을 보고 싶다는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지만. (대체 그걸 봐서 어쩌겠느냐...)

 

오히려 이 책은 슬프고 무겁다. '작가의 방'이라는 제목은 너무 신변잡기적이어서, 마치 저자가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여기 나온 작가들의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다들 전쟁, 민주화 등 시대로부터 비롯된 깊은 아픔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치 그 아픔과 고통을 토해내고 분출하듯이 작가들은 글을 썼고, 그런 그들의 산고를 지켜본 것이 바로 그들의 방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엄숙해지고, '작가의 방'을 넘어 '작가의 삶', '작가의 숙명'이라는 주제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직 생각이 다 여물지 못해 글로 풀어쓸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아픔과 시대적인 비극을 거름 삼아 작품이라는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감성과 사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삶이고 숙명이 아닐까.

 

그들(작가들)은 책을 거름 삼아 또 다른 책을 생산해 내고 있었고, 그들의 서재는 고서점 같기도 하고 과거의 온갖 정신이 누워 있는 박물관 같기도 했다. 그 방은 과거의 무덤이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신생아실이었다. (글쓴이의 말 p.5) 


여섯 작가 중 나는 신경숙, 공지영, 강은교 같은 여성 작가들 얘기가 더 좋았다. 내가 여자라서 우대하는 게 아니라, 일단 이 분들이 소개한 방이 내가 기대한 '방'의 개념에 더 가까웠고, (김영하는 대학교에 있는 개인 연구실, 김용택은 본가 서재를 소개했다) 특히 신경숙의 <외딴 방>에 얽힌 이야기는, 저자가 신경숙을 취재하고 싶어서 이 책을 기획한 게 아닐까 싶을만큼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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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지음, 송수진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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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대미술가 세노 갓파(본명은 세노 하지메) 특유의 꼼꼼하고 치밀한 펜화 일러스트와 에세이로 구성된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마치 건축 조감도를 보는 것처럼 공간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고 치밀하게 표현하는 그의 작업은 언뜻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터뷰이 중에는 정밀한 묘사를 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도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정확한 묘사를 위한 것이라면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넓은 공간의 작은 부속품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재현해내는 정성과 노력,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인 사물 하나에도 시선을 흐트리지 않는 호기심 등 기계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감정과 인간적인 고뇌가 담겨있다. 아마도 그것이 갓파의 작업에 일본인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설국'의 카와바타 야스나리,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 작가 타치바나 타카시, 각본가 쿠라모토 소,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등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인물들의 작업실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다. 참고로 세노 갓파는 본업인 무대미술가 외에도 그래픽 디자이너, 에세이스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갓파가 엿본 일본', '갓파가 엿본 유럽' 등 일명 '엿보기'시리즈로 유명해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빌브라이슨이 생각난다), 자전적인 소설 '소년H'가 상,하권 합쳐 총 30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다. 여러가지 일을 잘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이 있지만, 세노 갓파는 예외인가 보다.

 

 

이 책은 특히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하다. 일본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는 코미디언을 주로 양성하는 일본 굴지의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요시모토흥업'의 회장실 편이 재미있었다. '매니저는 연예계와 관계없는 대졸자로 채용한다', '아침 7시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자사 탤런트가 출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전부 챙겨 본다' 등 1991년 타계한 故 하야시 쇼노스케 회장의 경영 철학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려)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인 아카시야 산마의 코멘트까지 실려 있어 금상첨화였다. 후지테레비 프로듀서 요코자와 타케시의 스튜디오 편에서는 일본의 인기 프로그램 '와랏떼이이토모(웃으면 좋고 말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1982년 10월에 처음 방영된 '이이토모'는 2010년 현재까지 평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생방송으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나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방영 초기에는 방송국 내에서조차 "지금이 웃을 때야?"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고, 진행자인 타모리 씨는 낮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유행을 간파할 줄 아는 프로듀서의 역량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이이토모'가 30년 가까이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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