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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동의보감 1 : 죽을래 살래? ㅣ 허영만 허허 동의보감 1
허영만 지음, 박석준.오수석.황인태 감수 / 시루 / 2013년 8월
평점 :
일본에 데즈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허영만이 있다. 허영만이 데즈카 오사무나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해왔고, 국민들도 만화를 예술과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숭상'하는 분위기다. 반면 우리나라는 순수미술을 하는 화가를 '환쟁이'로 비하하고 만화가는 그보다 못한 대우를 했다. 심지어 80년대에는 만화를 청소년 유해매체, 불법물로 간주하며 만화를 보고 그리는 것을 '범죄' 취급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40년 넘게 만화가로서 굳건하게 활동하고 있는 거장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등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른다. 영화화, 드라마화 된 작품도 많고 대부분이 흥행에 크게 성공해서, 만약 허영만이라는 원작자, 스토리텔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영화계, 방송계가 덜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허영만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오랜만에 그의 신작이 나왔다. 제목은 <허허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그렇다 치고 '허허'는 무슨 뜻인가 하고 봤더니, 양천 허씨 20대손 허준과 31대손 허영만 두 사람의 작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 가문에서 허준과 허영만, 두 명의 걸출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도 대단한데, 후손인 허영만이 조상인 허준의 작품을 만화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했다는 것도 놀랍다. 책의 기본틀은 전작 <꼴>과 유사하다. <꼴>이 관상학적 지식을 재미있는 그림과 유머로 전달하는 책이었던 것처럼 <허허 동의보감> 역시 원전인 동의보감의 한의학적 지식을 재미있게 풀었다.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우면서 알차기까지 하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이제까지 동의보감에 대한 책만 해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은 슬렁슬렁 쉽게 읽히면서도 동의보감의 핵심을 꼼꼼하게 담고 있다. 동의보감의 주요 문구와 핵심 개념도 어렵지 않게 설명이 되어 있다. 그래도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어보면 어떨까? 초심자가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것이 흠인데, <허허 동의보감>에 나온 내용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고미숙의 책을 먼저 읽고 <허허 동의보감>을 읽었는데, 고미숙의 책에서 어렵게 느껴졌던 대목, 잘 이해되지 않았던 대목을 <허허 동의보감>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어 좋았다.
<허허 동의보감> 시리즈의 1권인 이 책의 소제목은 '죽을래 살래'다. 왜 이렇게 위협적(!)인 제목을 지었나 하고 봤더니 장수 비법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일단 전반부에는 동의보감의 탄생 배경과 기본 사상, 남녀의 신체적 차이, 병의 원인과 치료법 등이 나오고, 후반부에는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양생법이 나온다. 치료법과 양생법 모두 궁극적으로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책과 신문, TV, 라디오 등등에서 건강에 관한 정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데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첫째, 과식하지 마라. 둘째, 숨을 깊고 느리게 쉬어라. 소식하고 느리게 숨 쉬기만 해도 장수한다는데 이 만화를 그리면서도 이걸 실행하지 못한다. 과식하고 무심코 숨 쉰다. 그저 알고 있느냐, 아는 것을 실행하느냐, 단명과 장수의 차이다. (장수의 조건 pp.64-5)"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건강을 불신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저자는 몸의 병도 문제지만 마음의 병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64세 때 늙고 죽는 것을 두려워했던 노인이 좋은 스승을 만나 도를 튼 후 100세 넘게 살았다. '본디 아무것도 없었는데 티끌인들 담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비우면 도가 튼다. 도를 깨닫는 데는 나이가 없다. (무심은 도로 가는 지름길 p.135)"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다는 것, 마음의 건강의 핵심은 무심, 즉 욕심을 버리는 데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