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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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몸도 찌뿌두둥하고 마음도 축 가라앉은 것이 공부할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 참에 밀린 리뷰나 쓰면서 시간을 떼워야겠다. 오늘은, 오늘만은 괜찮겠지. 요즘 나의 화두는 환경, 소비(브라보! 노 임팩트 맨), 그리고 명상인데, 먼저 명상에 관해 읽은 책 한 권에 대해 써보겠다.

 


올해 초에 MBC에서 방영된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으로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도쿄대 출신이다. 그 간판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직장에든 들어가 승승장구하며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 믿었다. (결혼도 했던 걸 보니 직장도 다녔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망나니가 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DV'의 가해자였던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그는 그길로 아내와 헤어지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도시로 돌아왔고 지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명상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장래가 보장된 도쿄대 졸업생에서 고된 수행을 하는 불자로의 변신. 이만큼 극적인 인생의 변화가 또 있을까. 방송을 보고 하도 신기해서 일부러 그의 웹사이트 '가출공간(http://iede.cc/)'에도 방문해보고 그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명상과 수련을 지향하는 그는 '신세대 스님' 답게 웹사이트를 만들어 명상 철학이 담긴 그림일기를 올리고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불교식 요리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도 웬일인지 그의 책을 읽을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얼마전 도서관에서 <번뇌 리셋>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바로 읽었다. 군데군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솔직히 거슬릴 정도였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기에는 괜찮았다. (많이 참았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번뇌, 즉 화, 짜증, 우울,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살면서 안 좋은 일 한번 안 겪는 사람 없고,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안 좋은 감정을 완전히 극복하며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자신의 삶을 좀먹는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진짜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은 이런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내가 나라고 느끼는 존재는 온갖 감정이 모인 감정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더욱 강해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났다는 걸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멈춰야 한다. 화를 참거나 애써 괜찮은 척 하는 것 또한 '화를 참는 자기', '착한 자기' 등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산다는 건 자식, 부모, 학생, 친구, 연인, 사회인 등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는 과정의 반복이다. 더 많은 가면, 더 비싸고 좋은 가면을 쓰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인생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눈 가리기'일뿐이고 그 가면에 만족해서는 진정한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자기 이미지는 상처입기 쉽고 불안정하고 취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 즉 자기라는 것은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까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서 많은 환영을 계속 모으는 고생, 수고는 일종의 함정입니다. 자기 이미지는 상처입고 깨지기 쉬운 것입니다. 쉴 새 없이 깨지는 것을 부실하고 이상한 실로 꿰맨다든가, 접착제로 보강한다든가 영양을 계속 보충해 주어야만 합니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기', '유머와 센스가 있는 자기',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자기', '기독교도인 자기', '불교도인 자기', '사랑받고 있는 자기',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일에 익숙한 자기', '당신을 이렇게도 사랑하고 있는 자기'... 실이나 접착제로 봉합한 가지가지의 아이템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발가벗겨진 우리의 속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렇게 눈 가리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pp.108-9)
 
   

  
 

정말 그럴까? 이 부분은 마침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내 인생이다>라는 책인데, 이 책에는 멀쩡한 직업 가지고 잘 살다가 인생 중반에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극적으로 전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고보니 전환, 리셋... 비슷하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새로운 인생을 찾은 느낌이 마치 안 맞는 옷을 벗은 것처럼 시원하고 자연스러운 기분이라고 한다. <번뇌 리셋>의 저자의 말대로 직장이나 사회에서 쓰고 있었던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긴 고민 끝에 자기한테 가장 맞는 삶을 선택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고보면 명상이든 일이든 인생이든 모두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되기(Be yourself), 그리고 선택과 집중, 나에게 올인. 그걸 몰라서 이제까지 빌빌대고 살았나보다. 아니, 알면서도 일부러 피해다녔던 걸까. 아무튼 끈적끈적한 날씨 때문에 치밀어오르는 화와 짜증은 그만 '인정'하고 이제는 오늘 일과로 다시 복귀해야겠다. (하루 리셋?) 아, 그리고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은 '다른 번역자의 책으로' 더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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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생 - 평범한 삶이 아주 특별한 삶으로 바뀌는 7가지 이야기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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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에는 그 자체로 성 같고 집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다른 책으로 인도하는 다리 같은 책도 있다. 구본형의 <깊은 인생>은 후자다. 저자가 1인 기업 개념을 처음 소개하고 자기계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분이라고 하는데 다른 책을 읽어본 적도 없거니와 이 책만 놓고 봤을 때에도 솔직히 '뭐가 깊은 인생이라는 거지?' 라는 물음만 가득했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찾자면 역사 속의 인물들을 탐구하여 그들의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한 태도와 미덕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점이다.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 걱정이 떠나지 않을 때가 있으면 좀 유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주술을 걸어보았다. 서랍의 맨 위 칸에 1달러짜리를 넣어두고는 "여기 1달러가 있는 동안은 나는 빈털터리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위로가 많이 되었다.
나는 그 때 알게 되었다.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우리를 생활고에서 구해준다. 고생은 앞으로 언젠가의 영광을 더 빛내주는 배경이고, 빈곤은 내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커져가도록 만들었다. (p.104)
 
   

 

인용한 부분은 신화 연구로 유명한 조셉 캠벨이 우드스탁에 칩거하던 시절에 남긴 말이다. 조셉 캠벨은 프랑스 유학을 떠났지만 학위를 포기하고 돌아와 시골에서 무려 5년이나 은둔생활을 하며 책을 읽었다. 말이 좋아서 은둔생활이고 책 읽기지, 명문대 나온 아들이 장학금 받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시골에 쳐박혀 있는 동안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아마 본인도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도 성인이고 남자인데, 왜 세속적인 욕망이 없겠는가. 남들처럼 편하게 돈벌고 여자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 꾸리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데 왜 그걸 못하고 이 고생인가 싶었겠지.

 

하지만 남들 찬사 받고 누릴 것 다 누리고 하는 것이 학문이고 예술이라면 누가 안 할까.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다 내놓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경지의 삶을 택하는 대가는 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자는 그런 인생을 가리켜 보통 사람들은 다다르지도 못할 차원의 삶, 즉 '깊은' 인생이라고 일컬은 게 아닐까 싶다. 조셉 캠벨 외에도 스피노자, 간디, 피카소 등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고 감명 받은 인물들이 많다. 앞으로 이들의 삶에 대한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지.
 

   
  평범한 자가 비범한 자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분야를 정하고 들이파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침묵의 10년을 보내라. 고독한 10년, 궁핍한 10년을 보내라. 누구든 우드스탁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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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 - 개정판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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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5 

 

아마도 사회과학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수업 시간이었을 것이다. 경제학과 교수님께서 경제학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진다면 읽어보라시며 책 제목 몇 개를 칠판에 적어주셨다. 그 책들은 대부분 '경제팩션(faction)' 이었다. 당시 나는 [북& 월드] 에서 나온 [소설로 읽는 경제학] 시리즈를 찾아서 읽었는데, 이 책들이 나의 경제학 성적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경제학적 사고방식에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 역시 그 목록에 있었으리라고 짐작되는데, 당시에는 읽어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2003년 1쇄 발행되고, 올해 12쇄 발행된 [애덤 스미스 구하기] 는 세계 유명대학이 교재로 택하고 있으며, 여러 신문과 잡지, 단체에서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기도 있고 명성도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이~ 경제학 책이 재밌어봤자 얼마나 재밌겠어?' 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경제학 책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의 매력은 첫째, 애덤 스미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와 자유무역 경제의 기초를 제공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제학이나 애덤 스미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나 푸줏간 주인의 일화 등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실은 도덕성과 정의를 중시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은 매우 낯설다.  

 

   
  이기심은 인성의 본성이지만 그 이기심을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안정감을 얻으면서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 그게 바로 자기애야. 이기심이란 자신의 욕구가 타인의 합법적인 권리와 상충될 때 자기 본위대로 자기 욕구에만 집착하는 것을 뜻하니까. (p.197)  
   



[애덤 스미스 구하기] 는 경제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철학 서적에 가깝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가 아닌 도덕 철학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제학 공부에 보탬이 되거나 지식을 얻기 위한 '참고서'로서 이 책을 읽는다면 곤란하다. 오히려 이 책은 이제까지의 경제학적 개념을 뒤흔드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 초보나 학부 신입생이 읽는다면 미리 경제학적 배경을 다진다는 점에서 좋을 것이고, 경제학을 오래 배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적어도 말로만 들었던(!) 애덤 스미스의 책들을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둘째, 여행기 혹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과 대학원생인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애덤 스미스를 만나서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을 하는 틈틈이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대한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편안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여행 도중에 애덤 스미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괴한에게 연달아 습격을 당하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나가는 후반의 즐거리는 흡사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 책은 본문 외에도 애덤 스미스 연보, 자료 노트, 참고문헌 가이드, 교사를 위한 가이드 등 알찬 부록이 실려 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나는 초록색 표지와 가로 폭이 좁은 디자인, 그림과 사진 등 이미지가 거의 없고 활자가 위주인 편집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이런 '책 다운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양장본에, 활자는 별로 없고 이미지만 잔뜩 들어있는 책이 많이 나와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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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메커니즘 - 경제학의 '오래된 미래' 케인스주의를 다시 읽는다
오노 요시야스 지음, 김경원 옮김, 박종현 감수 / 지형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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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6  

요즘 나는 미국 드라마 [grey's anatomy] 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할지 답을 구하는 'Consult(컨설트)' 라는 것을 한다. 경제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이 문제들이 의학, 넓게는 과학 문제처럼 쉽고 간단하게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경제학은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라는 문제를 풀기가 녹록치 않다. 의사들이 '병을, 최적의 방법으로, 환자를 위하여' 치료하겠다는 하나의 답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어쩌면 이는 경제학이 정치학, 나아가서는 철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가 도덕철학자였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르크스의 '주의'는 원래 독일의 관념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제학은 정치학 문제와 마찬가지로 다수와 소수의 싸움이며, 철학 문제처럼 답이 없고 골치 아프다.  

  

[불황의 메커니즘] 은 일반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일본의 경제학자인 오노 요시야스가 해석한 책이다. 일반이론은 몇 가지 점에서 '불운한 명저' 라고 할 수 있다. '불운' 한 것은 케인즈가 이 책에서 완벽한 논증을 펼치지 못했으며, 이후 정치적으로 오남용 되면서 책의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신고전파의 주류 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주장을 제시했으며, 현대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명저' 라고 이를만 하다.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케인즈 경제학의 기본 구조] 를 설명하고, 2장과 3장에서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해석한다. 그리고 4장과 5장은 경제정책 및 불황이론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한다. 각 장마다 경제학적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 등 경제학 이론서와 병행하여 공부한다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케인즈의 주장에서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제하고, 이론의 적부에만 집중하여 서술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 하다.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서나 서적에서 케인즈는 유효수요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부의 공공지출을 늘릴 것을 주장하여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을 뿐, 실제로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 위키백과)고 알려져있다. 주류 경제학적 사고에 젖어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에는 언뜻 분배를 중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일 뿐, 케인즈 자신은 철저히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력 감축은 불황 타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노동수요를 줄이면 임금이 낮아지고, 소비가 줄면 총수요가 줄어서 불황이 더 심각해질 분이다. 하지만 잉여노동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주고, 소비가 늘어서 총수요가 늘어나면 공급이 다시 늘어난다. 이런 메커니즘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메커니즘의 옳고 그름 여부에만 집중해보자. 예비 실업자나 다름 없는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 나는 왠지 케인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 책은 일본 학자가 쓴 만큼 일본의 상황이 주로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고이즈미의 親기업적 경제정책이라든가 민영화, 잡 셰어링(Job-sharing) 등의 문제는 한국인의 눈에도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저자는 일본의 높은 저축열(?)을 굉장히 비판한다. 한국도 저축율이 높은 나라였지만, 요즘은 저축보다는 투자(혹은 투기)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저축이든 수익 자산의 보유든 똑같이 소비와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간과하기 어렵다. 

 

다만 예시가 많지 않고, 서술 방식이 딱딱해서 경제학적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벅찰 것 같다. 학부생 이상이 읽어야 대충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나는 '게으른' 복수전공생이라서 그런지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케인즈 경제학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을 자주 만나기 어려운 만큼 한번쯤 읽어볼 만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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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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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대학시절, 언젠가 한 교수님이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경제학은 서양의 학문이라고 여겼던 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개념과 수식을 외우며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우리나라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엄두도 못 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얼마전 다산초당에서 나온 한정주의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세웠으며, 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이 득세했던 조선에서 경제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이 발붙일 틈이나 있었을까? 목차를 살펴보니 박제가, 이익, 정약용, 박규수 등 18세기를 전후로 등장한 실학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이지함, 이중환, 채제공 등 언뜻 실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들도 있다. 빙허각 이씨라는 여성 경제학자의 존재는 아예 새롭다. 이들을 왜 경제학자라고 부르며, 이들이 어떻게 조선을 구한 것일까? 의문을 품고 책을 펼쳤다.  

 

책머리에는 ‘조선을 구한 경제학자 13인의 가상 좌담’이 펼쳐진다. 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 사상의 연결점과 차이점 등을 제시하여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대해 대략적인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간의 논쟁을 자유무역협정(FTA)과 결부시켜, 이러한 논의가 현실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생각해보게끔 한 점도 좋았다. 

 

학자들의 사상과 현대의 문제를 연결하는 시도는 좌담 후에 이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 중에도 자주 엿보인다. 가령 채제공이 ‘시전 상인은 생활필수품을 개인 상인으로부터 싼값에 매점한 후 비싼 독점 가격을 매겨 백성에게 팔아 큰 이익을 남기려고 했다(p.81)’고 지적한 부분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독점의 문제, 그 중에서도 대형 유통업체의 폐단을 이르는 듯했다. 박제가가 ‘소비를 촉진하면 생산 역시 활기를 띠고 상업은 나날이 발전해 나라와 백성의 삶은 풍요로워진다(p.137)’고 말한 대목에서는 케인즈의 유효수요설의 원조가 조선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질 정도다. 조선의 사상이라고 하면 왠지 고루하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그 당시에 이미 이렇게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장을 했다니 신기하다.

 

이 책의 제목은 언뜻 부적절하게 보인다. 18세기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급속히 몰락한 조선의 향방을 보면, 그들의 사상이 ‘조선을 구한’ 것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조선의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치열한 지적 환경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는 조선을 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리 역사에도 이런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조선의 경제학자’라는 주제 외에는 서술방식과 구성 면에서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책머리의 ‘가상좌담’처럼 새로운 서술방식을 계속 시도했다든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나오는 대로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순으로 인물들의 순서를 개연성 있게 배치했더라면 더욱 읽기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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