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야, 그때 언니 나이가 불과 열여섯, 열일곱 정도였죠?"나십일낭의 목소리는 살랑이는 새벽바람처럼 부드러웠다."언니는 분명 후야가 책망하실 게 두려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걸 거예요. 당시 후야가 언니에게 잘못이 있어도 용서할 거고 뒷수습을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했다면 언니는 후야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했을 거고요."서령의가 흠칫 놀랐다."세상에 손해 보는 일은 없어요. 그저 그만한 가치가 있냐 없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진 이낭의 일을 겪으면서 나십일낭은 계급 차이 속에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평등과 자유를 중요시하던 그 사회 역시 이런 일이 똑같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은 취약 계층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충격이 이번만큼 강렬하진 않았을 뿐일 것이다.
지금의 십일낭도 그때의 나와 같지 않을까. 두려움, 후회, 망설임, 미련 등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던 거겠지. 눈앞에는 높고 험난한 산이 버티고 있고 뒤로는 깊은 연못과 골짜기가 있으니 그저 묵묵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