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와이키키 뱀파이어>를 처음 제목을 봤을 때 문득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영화와 웹툰은 서로 다른 내용이고,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다. 하지만 와이키키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에게 와이키키가 무엇인지 정확한 의미를 알게 해 준 것이 <와이키키 뱀파이어>이다. 와이키키는 미국 화와이를 가리키는 말이고, 하와이는 아름다운 섬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다. 미국 땅에 내가 가 본 곳은 군부대 내 미군이 주둔하던 곳을 지나간 것 밖에 없던 나에게 하와이는 머나먼 영토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를 위안은 있었다. 형님과 형수님이 결혼하고 허니문 여행지가 바로 하와이였다. 영화 <친구>에서 하와이로 가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막상 하와이 가는 길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웹툰에서 왜 와이키키를 두고 그 뒤에 명사를 붙인 것일까? 주인공은 김샛별과 최행복이다. 하지만 웹툰을 보면 진정한 주인공은 최행복이고, 김샛별은 최행복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 큰 동기부여를 전달해준 인물이다.

 

그러나 <와이키키 뱀파이어>란 제목처럼, 하와이에 있는 흡혈귀이니, 제목적 의미로는 김샛별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흡혈귀 소년 김샛별은 어디에도 제대로 머물지 못한 사회적 외지인이고, 최행복은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고 자신을 책망하던 우울증 걸린 여성이다. 특히 공황장애라는 무서운 정신병에 시달렸고, 손목에 칼로 긋은 흔적이 보일 정도로 삶에 의미를 잃었다.

 

이 작품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질문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것들이 있다. 작품에서 김샛별과 최행복의 형편을 보듯이 돈이 필요하다. 따듯한 집에서 굶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생활 여건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표의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먹고 자는 것만으로 인간은 즐겁다고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당장 생명의 위기가 닥친다면 오늘 하루밤도 먹고 자는 것조차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오늘 밤이 금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그 며칠이고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육장에 갇힌 가축처럼 늘 비참한 삶이 될 것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는 바로 그런 고통의 순간에 내몰린 김샛별과 최행복이 서로를 믿고, 주변에 있는 이웃의 도움으로 세상 앞에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모든 내러티브에서 갈등은 존재하고 그 갈등의 해결은 곧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역경은 큰 고통이다.

 

TV에서 나온다. 연예인 누군가가 공황장애로 연예활동도 접고, 정신적 고통으로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과 친구조차 대하는 게 어려운 일도 많다. 그것을 극복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와이키키 뱀파이어>에서 그 치료방법은 스스로에게 그 고통의 근원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한다. 상당히 정신분석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는데, 자기를 억눌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제공하는 시작점과 마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행복에게 2가지를 정해 놓았다. 1가지는 가족이고, 다른 1가지는 선생이란 직원이다. 가족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가지게 되는 존재이고,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이다. 선생이란 직업은 자신의 선택이 필요하고, 그 선택에 따라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선천적 고통과 후천적 고통이 이렇게 최행복에게 닥친 것이다. 선생이 되고 싶은 최행복은 자신이 존경하던 분이 선생이었고, 그분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현실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운도 따르고, 심리적 상황도 따른다. 전반적으로 최행복에게 가족이란 큰 마음의 짐이 있었고, 시험 때마다 꼭 안 좋은 일들이 터졌다. 그런 최행복에게 불행을 안겨준 것은 가족이란 굴레이다. 가족은 혈연적으로 DNA를 후손에게 남겼지만, 가족의 기능과 역할에서 최근에 들어 생물학적으로 유지하기 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가족관계에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해득실로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성공은 무엇일까? 출세는 분명히 인간에게 성공하게 만드는 큰 발판 중에 하나이다. 자신이 출세해서 자식들도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자식이 성공하는데 있어 출세하는 일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같을 수 없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최행복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임원(부사장)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였다. 사회적으로 큰 명성과 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 최행복에게 상처를 주었다. 동생 최슬기는 똑똑하고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

 

모든 게 기계처럼 완벽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로부터 해야 하는 것만 잘 하여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갈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즐거운 일이 모르고, 단지 누군가의 기대감을 맞추어 살아가는 몸집만 큰 어린아이였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가장 요구하고 원하는 인물은 최슬기이다. 자신의 개성이나 의견은 필요 없고, 사회적으로 원한 도구로써 완벽한 인간이다. 남매는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행복의 삶은 여기서부터 불행의 시작이다. 이름은 행복인데 삶은 불행이다. 이름과 삶의 대비되는 지점에서 작품은 최행복이 불행하여 자신의 이름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김샛별은 밤하늘의 처음을 말한다. 밤이 오는 것은 외로움이지만, 샛별이 왔다가 밤이 온 것이 아니다. 샛별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양지를 꿈꾸는 인간이나 흡혈귀라는 속성 때문에 낮에 움직이지 못한 채 밤에만 살아간다.

 

그것도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아 배신당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늘 그는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할 수 있다며, 절망한다. 절망에 빠진 김샛별과 최행복이 만나 서로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자신도 희망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물론 그 길을 쉽지는 않다. 주변의 반대와 음모가 늘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 힘들다. 자신이 원해도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은 더욱 그렇다. 가진 것이 없기에 몸부림치는 김샛별이나, 모르는 사람에게 보자면 학교도 안나오고 불량한 애처럼 보일 뿐이다. 막상 그를 대하면 착하고 순수한 영혼이나, 그곳까지 도달하기가 너무 힘든 점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모여 다독여주는 작품이다. 김샛별과 최행복만이 아니다. 국밥집하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신을 부모로 보기보단 돈줄로 보는 점, 윤성(김샛별을 도와주는 동네형)은 학창시절 부모님이 여의고 자퇴할 때 아무도 자신을 제대로 봐주지 않은 점, 치킨집 여사장님은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일 등 많은 상처들이 이 작품에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김샛별이 윤성과 대화에서 사람을 대할 때 아무 것도 모른 것까지 그렇지만 마치 낙관론을 말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라는 부분이다. 아주 흔하고 많이 보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최악의 상황에서 어려울 때 그 고충을 말하면 도와주지 못할망정, 상대방의 자존심을 뭉개거나, 아니면 꼰대처럼 말도 안 되는 충고를 해준다. 오히려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는 작은 위로를 해 주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힘들 때 받고 싶은 도움도 있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하는 작은 용기와 위로이다. 그 후로 작고 작은 도움이 모이고 모여 어려운 상황에서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 과정은 우리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만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여 상처를 주게 된다. <와이키키 뱀파이어>에서 김샛별은 최행복에게 공부를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최행복은 김샛별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원하던 존재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선생이란 이름은 단순히 학교 안에서 학생만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었다. 선생은 다른 누군가를 그 어떤 곳에서도 가르치고 다독거리는 것 역시 가능한 일이었다. 최행복이 원한 선생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가능했고, 자신이 선생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선생이란 직업이 아니라 선생이란 역할을 통해 누군가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 것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를 보면서 이제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게 2년도 안 되는 나에게 늘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다. 자식이 크면 어떤 어른이 되면 좋을지, 그럴 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최행복에게 지옥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져야 할 부분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최행복의 부모는 딸보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면서 이름을 지어 줬지만, 가족관계는 불행으로 이어진다.

 

행복의 기준을 자녀가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품 후반부에 가면 최행복은 아버지에게 가족관계를 단절하는 증명서를 3번이나 보낸다. 그 덕분에 자신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무사히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상처가 가족이었고, 그 가족을 마주 보고 끊어낼 때 비로소 우울의 바다로 침수되지 않고, 바다 위의 파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어린 시절 최행복은 하와이에서 길을 잃을 때 일몰의 바다를 본다. 하지만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이제 큰 바다 위를 누비게 된 것이다.

 

작품을 보다시피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매우 쉽지만 어렵다. 우리는 무엇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지를 알지만, 그것을 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서 그 상처를 끌어안고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 옆에서 그것을 알아주고 조금씩 같이 밀어준다면 극복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하고, 같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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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의 가장 큰 실수이면서 억울한 점은 아마 코로나일 것이다. 세계 각국을 보아도 코로나로 인한 영향은 심각하고, 전체인구 대비 확진 및 사망률을 보면 한국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수치가 그렇다고 하도 막상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모두 힘들고 괴롭다고 한다. 솔직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특전사, CCT, UDT 등(부사관 이상만 해당)은 훈련하다 실제로 사망하는 일이 많다. 그래도 병사로 간 사람들도 무척이나 자신이 힘들었다고 한다.


남의 척도는 객관적일지라도 본인이 느낀 감정과 경험 역시 자신에게 최악인 것이다. 나 역시 군생활이 힘이 들었다. 육체적인 요소보다 정신적인 요소이다. 몇 천억짜리 국가사업을 두고 관공서에 협의다니면서 받은 압박이나, 일개 하사 주제에 공군본부에 가서 원스타에게 보고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자대에서는 공군 감찰실장(대령)에게 독대로 보고한 적도 있다.


대위정도 되는 장교도 힘든 자리에 일개 하사가 보고해야할 일이 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주관과 객관이 입장과 처지에 따라 바뀐다. 이번 대선도 그런 것이다. 자영업중들에게 이번 대산은 보급로가 막힌 상황에서 정권 교체를 외쳤다. 민심은 천심이고, 천심은 민중의 소리이다. 문제는 민심이란 존재감은 바람이 오기 전에 부는 것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떤 결과로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제 제도를 손을 본다는 공약이 있지만,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뭔가 최저임금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영업에 문제가 생겨 폐업이 늘어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영업을 연장하더라도 손님이 처음부터 가지 않으면 그 외침은 모순이다. 즉 사회적 현상에 따른 손해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그 모든 게 정부의 처사라고 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정부만으로 보는 것도 한계점인 이유가 그래도 영업이 잘 되는 식당과 가게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경제구조에서 60~70년대를 찾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든다. 그때는 1차와 2차 산업시스템이 전환되던 시기이고, 여전히 수공업에 머물다가 80년대 이르러 중공업이 발달한다.

90년대 말과 2000년에 이르러는 3차 산업이 우세한다. 4차 산업이 정보사회라고 해도 정보쪽 경제활동보다 여전히 서비스업종인 3차에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한다. 코로라로 식당과 관광업종이 타격이 큰 이유는 대부분 3차 서비스쪽에 많은 국민들이 생업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로 인한 노동자에 대한 월급에서 급여가 오를수록 자영업을 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적게 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이고, 그들 스스로 자충수 되게 하는 원인이다. 보급로와 퇴각로에서 보급이란 개념은 영업점을 찾아오는 손님이고, 퇴각로는 영업점이 폐업 후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다.


만일 작은 식당과 가게를 운영하는 점주가 장사를 접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도 다시 누군가의 밑으로 가야 하고, 수많은 가게를 접었고, 그들은 누군가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주말에 집근처에 있는 대학가 근처에 이삭토스트 가게로 갔다. 다행히도 토스트는 식당보다 테이크아웃 폼이 많으니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양옆으로 가게들을 보니 반 정도가 다 문을 닫았다.

이들이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는가? 과거 대기업과 정년이 끝이 나면 치킨가게 사장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할 일이 없으면 치킨집이나 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옛날 말이 되었다. 아니라면 배달을 위주로 판매하는 가게로 노선을 정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배달위주 식당과 배달원, 그리고 택배운송원이 크게 늘었다.


일부 또는 처음 일을 접한 사람은 거기로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식당을 다시 새로 연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모험이다. 그 모험자들이 보급로가 끊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뒤로 퇴각해야 하는데, 퇴각로는 다시 취직이다. 하지만 퇴각로마저 끊기면 어떻게 되는가? 직업이 없는 백수가 될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아우성 치는 것은 어찌 되면 퇴각로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한국의 사회는 이미 1차와 2차 산업이 컴백할 수 없다. 식량안보라는 명제 아래 시골로 가서 농사짓는 일이 녹녹치 않다. 참 어려운 일이다. 정권을 바뀐다고 해도 코로나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단지 그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날리고 싶었고, 그 화살들로 의해 다른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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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정말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육아의 세계에서 취미생활을 고사하고, 허리디스크 증세로 계속 치료를 받고, 입원도 하고 했으니 그럴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적어보는 이유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다산 선생이 만일 21세기로 회귀하여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라는 책이 있었고, 그것이 영화드라마처럼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를 보니 윤종록 작가, 분명 나하고 같은 성씨는 분명하나, 반듯이 잡아 고친다면 그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가라기보단 외가의 일족의 후예이다. 다산 선생의 어머니는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고, 공재 선생은 고산 선생의 증손자이다. 고산 선생의 증조부는 귤정공 윤구이고, 윤구 선생의 동생인  행당공 윤복이란 분이 계시는데, 이분이 바로 윤종록 작가님의 직계조상일 것이다. 


윤복 선생은 안동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안동항교를 재건하고, 퇴게 이황 선생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게다가 아들과 사위를 문하생으로 들여 퇴계학을 전남에 뿌리게 된다. 해남윤씨 일족이 남인이 된 사유, 그리고 기축옥사에서 희생당한 뿌리는 여기다. 윤복 선생의 자제분은 임진왜란 당시 의용군으로 나서, 많은 문중 사람들이 의병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군부를 보면 주로 이순신 장군이나 이억기 장군 수하에 많았다. 남인의 특성이 반영된 점이다. 아무튼 윤복선생이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일원에 터를 잡고, 귤동마을의 윗산인 만덕산으로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의 주인은 윤복의 후손인 윤규로의 것이고, 윤규로의 아들들은 다산의 제자로 활동한다. 이책 소개에서 청년미래포럼 18인에 대한 거론인데, 이것은 다신계18제자를 따온 것이다. 다신계에 대해 논하자면 한국 최초의 차모임이고, 200년 넘게 활동한다. 


매년 다산선생 제삿날에 헌다례를 올리는데, 다산선생의 후손과 다산선생의 제자의 후손이 남양주 묘에 와서 제사를 올린다. 따님은 해남윤씨로 갔는데, 윤복선생의 사촌의 후손에게 갔다. 그리고 나도 그 사촌분의 후손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다산 선생의 외손자인 방산 선생님과 상당히 먼 가계이다. 


그래서 윤종록 작가님의 다산의 외가라고 하기엔 그렇다고 한 것이다. 나도 다산 선생의 외손자 일족이니 친척이라 엮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산 선생이 해배되기 전 직계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강진만을 건너 다산초당에 가서 학문을 같이 논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산계 찻집 주인인 전 강진군수도 우리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안다. 


잡담이기도 하나, 합수 윤한봉 선생의 일대기를 읽으면 그분이 강진에서 위대한 성인인 다산 선생이 계셨고, 그분의 사상에 엄청 흠모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518과 관련하여 합수 선생은 늘 마음의 빚을 졌고, 귀국해서는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청년미래포럼 18인을 다신계에 배치한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게 그런 것이다. 


윤동환 강진군수는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을 할 때 수배가 걸려 도망칠 때 다산초당 안에 숨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청년미래포럼 18인 청년을 다산 선생 제자18인의 다신계에 비유하는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을 자유이고, 의지이나,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산선생의 책은 일제시대에도 노론의 후예에게 박해받았다고 한다. 노론의 정신적 후예를 다신계18 제자로 배치하는 건 조금 그렇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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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2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환경과 관련하여 전설의 고전이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나는 이전에 읽어보지 않았으나, 대략적으로 이 책의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대학 학부시절 환경공학 지식을 배우면서 교수님(이라보단 정말 교육자 같은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세상에서 가장 생명과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누구냐는 말을 학생에게 건넸다.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교수님이 말하시길 바로 환경을 전공하는 사람이라 했다. 환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지구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 학문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100%까지는 아니나, 생각해보면 그렇다.

 

환경이란 단어가 왜 이리 참 아이러니한 단어가 되었을까? 수업을 받으며 대기환경, 수환경, 그리고 토양환경에 대해 공부하면서 지구순환시스템은 정말 복잡하고 유기적인 존재란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특히나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지구의 생태계에 대한 지식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말하고자 바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생태학에서 공부하면 생물농축이란 개념이 나온다. 물속에 가령 오염물질 중 중금속이 유입되면 동식물 플랑크톤에 오염물질이 함유된 상태에서 저서생물이나 양서류, 기타 어류에게 먹힌 후 이것들은 다시 대형 포식자에게 먹히면 어느 순간 대형포식자의 체내에서 상당한 양의 독성이 검출된다.

 

그 독이란 치명적인 수준이며, 대형 포식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역에서도 큰 위협을 가한다. 가끔 TV뉴스나 인터넷매체에서 막말하는 어르신에 대한 기사를 본다. 그중 인상 깊은 단체가 고엽제전우회이다. 월남전쟁 중 베트남군인들은 자신들의 몸을 은폐하기 위해 밀림을 이용했다. 밀림은 나무, 지면 아래에 각종 부비트랩이 숨겨져 있었고, 특히나 독충이나 사나운 야생동물도 큰 위험이었다. 게다가 베트남군인들도 몰래 숨어 미군들을 공격했다. 미군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고엽제를 살포하거나 폭격을 가했다. 폭격을 가해도 열대지역은 비가 오고 나면 다시 식생이 몇 개월 이전 수준으로 금방 자란다.

 

고엽제는 조금 다르다. 고엽제는 식물만 아니라 식물이 자립할 수 있는 토양마저 오염시킨다. 그래서 고엽제 살포 후 밀림은 노출되었고, 미군의 작전은 통할 것이라 여겼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고엽제 살포 시 항공기가 공중살포를 하면 지표면에 있는 밀림지대만 아니라 대기흐름에 따라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특히나 작전 중인 미군과 연합군 세력에도 전파되었다. 고엽제의 독성은 인간에게 내부 장기에 영향을 주고, 신경이나 각종 유전자적 문제를 일으킨다. 1세대 고엽제 중독자가 2세대 또는 3세대 이르러 그 효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육체는 어차피 나이가 있어서 크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후손은 다르다. 만일 자신의 아이가 심각한 장애가 있다면 그 아이의 부모는 평생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그런 문제는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다. 과거 우리 한국에서 DDT를 온몸에 뿌리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이나 빈대 같은 해충을 잡기 위해 뿌리던 그 악성약품은 결국 어떤 식으로 우리 몸에서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것일까?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보며 나는 이전에 읽은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와 수수게기>라는 책을 생각했다. 인도의 농업이 전통으로 이루어지는데, 소를 이용한 농업이 효율이 좋지 않을지 모르나, 그게 결국 우리 인간의 삶을 망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현재 농기구가 발달되고, 특히나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농기계 발달은 농업생산력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농사짓다보면 농약을 사용하고, 농약 내 파라티온, 말라티온 등 각종 물질은 해충을 구제하기도 하나, 인간에게 농약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골프장 내 농약사용은 골프장 및 주변지역 하천 및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더 나아가 해양에 유입이 되어 해양오염의 발단도 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약품사용을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으면 인간이 누리려 하는 편리성, 당장 이익을 보려는 성급함이 모든 재앙이 원인이었다. 특히나 자본 세력이 관료와 학계 쪽에 결탁하면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농약 살포 후 곤충은 일시적으로 박멸했지만, 아름다운 들녘과 호수에 새들이 날아오지 않는다. 그 흔한 텃새조차 오지 않고, 모두 어디로 사라졌다. 생명으로 가득한 자연이 어느 순간 죽음의 어둠이 내리깔고 있던 것이다. 그녀가 우려하던 상황은 책을 저술한 뒤 50년 이상 지나도 여전하고, 지금도 계속 자연은 파괴되어 간다. 사람들은 자신이 쾌적한 환경에 머물면서 안락함을 향유하려 한다. 특히 아름다운 산과 호수 그리고 강이 있는 곳에 펜션이 즐비하며, 해안도로 인접한 곳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즐비하다.

 

맑은 공기 속에 자연의 공기를 느끼며, 새소리를 듣고 추억을 남기려 한다. 그러나 누리려 하는 것과 행동을 반대이다. 최근 한국에서 환경오염 중 문제가 해양오염이다. 지표면의 모든 폐기물은 지하로 매립되든지 아니면 소각으로 대기 중으로 날릴 수 있다. 2가지가 안 되면 결국 강우시 우수유출수에 의해 강으로 떠밀려 최종방류는 해역이다. 해양오염의 문제에서 인간이 보충해야할 단백질이 주로 어업에서 생산되는 각종 어패류이다. 만일 어패류도 먹지 못할 정도로 오염된 해양이라면 우리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받는다.

 

해양환경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는 이유는 플라스틱이나 미세입자의 폐기물이 문제이다. 이런 물질은 분해되지도 않으며, 분해되려면 몇 백 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미세입자가 해양생물에게 들어가서 폐와 심장, 근육에 침투하면 해양생물의 생존에 문제가 되고, 다시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점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도 방충을 하기 위해 농약을 뿌리던 작물을 수확하여 그것을 시장에 파면 소비자들도 각종 오염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농장인근에 주거하는 주민들의 안전 역시 위험하다.

 

어린아이나 노인 등 건강상으로 취약계층은 더 심한 폐해를 받는다. 안전사고 역시 문제이다. 농약 중 다이옥신이나 염소원자를 담은 방향성 유기화학물질에 인체에 직접 닿게 되면 갑작스런 통증반응이 오고, 빠르면 몇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른다. 벤젠 같은 방향족 물질들은 인체 신경이나 피부에 큰 자극을 주고, 카드뮴이나 비소는 장기나 골격에 큰 장해를 안겨준다. 이런 것들이 다 농약으로 사용했다는 점, 그것이 극소의 미량이라도 농축으로 이어지면 생물독성으로 이어지는 점이다.

 

21세기에 도래되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제작되어진 미국, 그밖에 소개된 유럽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도 환경 관련법규가 강화되어 중금속 및 유기화합물질에 대한 통제가 강해졌다.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을 보면 기준에 없었던 새로운 물질이 추가되고, 가끔 환경기준이 강화되는 경우도 본다. 하수도법이나 폐기물관리법, 대기환경보전법 등을 봐도 엄격한 기준을 정해놓는다. 이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사업시행 취소 및 공장운영 중지도 내리나, 조금 더 강한 통제성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공공재이나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얻는 이윤은 개인의 영역이다. 그 개인 당사는 환경을 파괴하여 돈을 버는 것을 원하지만, 식단에는 싱싱한 음식이 나오고, 집에서 조용한 쾌적한 정온생활을 원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와 현재 이루어야 하는 것들 그리고 이 사이에 상충관계가 미묘한 모순을 만들어낸다. 생태계가 다양한 종이 서식하고, 울창한 숲이 있다면 우리 삶은 결코 활력요소를 잃는 것이 아니다. 당장 사소한 이익을 위한 급격한 변화보다, 자연적 조건에 따라 우리가 스스로 맞추어가는 것이 옳다. 한국에서 봄이 되면 반가한 봄꽃보단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가 불청객으로 찾아온다. 미세먼지에 단순 먼지입자만 있다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중국 공장지대의 매연 같은 게 같이 섞일 가능성이 높다.

 

미세먼지 내 각종 대기오염물질이 함유되고 있으며, 유기화합문질이나 중금속도 함유될 가능성도 높다. 이게 그대로 우리 인체에 들어가면 어떨까? 중국 공장지대에서 하늘을 보면 파란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염되었다고 한다. 그런 곳이라면 새들도 살 수 없고, 비가 내리면 대기 중 각종 오염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유입되어 오염을 시킨다. 새가 날지 않은 곳은 인간이 살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은 새가 살던 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부족한지 이젠 새가 날아다니는 하늘조차 막아버렸다. 풀과 나무로 가득한 녹색세상보단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회색빛이 공간에서 인간의 삶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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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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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4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광해군 (리커버 특별판.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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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를 본 후 사람들은 광해군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올라갔을 것이나, 사실 광해군이 보여준 선정은 진짜 광해군이 아니라 하선이란 불리는 놀기 좋아하고 재주 많은 사내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광해군이 보여준 장점과 단점은 분명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그려낸 박시백 화백이 말하길 자신이 좋아하는 조선임금 중에 광해군도 포함되어 있으며, 게다가 광해군이 조선임금 중에서 그나마 밥값을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실 광해군에 대한 논점은 역사학이나 일반 대중, 혹은 인터넷 공간에서 분분하다. 그러나 현실은 광해군에 유리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유교사상이 아직 내려있다. 하지만 공자의 유학보단 주자의 성리학에 의해 만들어진 유학이 강하다. 공자의 수사학적인 관점보단 주자학의 성리학적 멘탈리즘은 새로운 학문을 펼치기보단 꼰대주의적 방향으로 틀기도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가? 그것은 향교에 배향된 유학자들의 위패를 보면 알 수 있다. 고려와 고려이전 시대는 둘째치더라도 조선의 인물을 보면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김인후, 이황, 이이, 조헌,

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로 조광조까지 사림시대를 열어간 시대의 인물이다.

 

특히 조광조 선생의 기묘사화는 연산군 시대의 갑자사화와 다른 성격이다. 성리학의 세력이 중앙권력자인 훈구세력과 지방산림에 포진된 신생선비들의 대립에서 일어난 것이 기묘사화라면, 갑자사화는 연산군 시대의 폭정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조광조 이후는 조금 다르다. 명종이 죽고, 그의 종실인 하선군을 선조로 옹립한다. 선조는 당대 명재상 동고 이준경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르고, 명종 때의 부패한 정치를 해결하려 했지만, 선조 역시 기축옥사로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선조 시대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지고, 서인은 추후 노론과 소론으로 갈린다.

 

동인과 서인의 분류에서 중요한 것은 동인에서 퇴계학파와 남명학파, 서인에서 율곡학파로 이어지고, 동인은 퇴계학파가 남인이 되고 북인은 남명학파가 중심으로 올라간다. 이황과 이이를 제외한 후대의 성리학자를 보면 대부분 서인계통이다. 조헌과 성혼은 율곡 이이과 가까운 사이이고, 김장생, 김집 역시 조헌과 성혼의 뒤를 이은 서인의 영수이다. 더구나 이들은 광해군의 실정을 주도한 인조반정의 대표적 인물이다. 송시열과 송준길은 노론의 대표적 인물이고, 박세채 역시 송시열과 혈족관계에 있는 점에서 조선의 유산인 향교의 반 이상의 서인계 인물이란 점이다.

 

향교의 인물에서 유학에 지대한 공로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차라리 의병장 조헌보단 남명 조식의 수제자인 정인홍이 더 뛰어난 인물이고, 사상적 실학적 유학적 유산으로 보자면 송시열보단 백호 윤휴 쪽이 더 많은 서적을 남겼다. 조선실록에서 가장 많은 이름이 드러난 인물은 우암 송시열이다. 분명한 사실은 뛰어난 유학자이나, 그의 학문은 부드러움이 없었다. 광해군 시대에 처음 시작은 선혜지법은 대동법으로 이어지나, 산림의 거두였던 송시열은 노론의 입장을 대변하여 대동법을 반대했다. 대동법은 농민의 부담을 줄기위한 도량화 작업이나, 그가 반대한 이유는 노론의 대부분은 농가의 대지주였던 점이다.

 

대신 한양 중심에 있던 한당(漢黨)이란 불리는 서인계열은 대동법을 찬성했고, 김육이란 분은 대동법에 모든 것을 걸은 서인계 유학자이다. 광해군과 서인들의 대립은 이렇게 복잡하게 시작된다. 당쟁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광해군이란 그저 중립노선 외교주의자 또는 잔혹한 폐모살제를 저지른 인물에 불과하다. 한명기 교수가 저술한 <광해군>2000년 초판이 나왔고, 20182판이 새로 나왔다. 그동안 반양장본을 나오다 아주 깔끔한 하드커버가 씌워진 도서로 제작되었다. 게다가 책을 사면(물론 5만 이상 소비해야 하나) 광해(光海)라는 한자가 찍한 머그컵까지 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다. 그때나 지금의 특징은 당시에 북한의 권력자 김정일이 있었으나, 이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도 세월의 부침에 따라 세상을 떠나고,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위원장으로 있다. 단순히 북한과 한국의 대립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시 외교적 정쟁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 상당한 입김이 작용했다. 최근에 일본의 입김은 줄어들었다. G2에서 중국의 변화와 거기에 드러난 트럼프 정권은 새로운 권력구도를 만들어내었다.

 

중국을 두고 공산국가를 지향하는 사회주의국가라고 하나, 사실 그 속내는 상당히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도래했고, 중국은 사회주의적 노선보다 자본주의 노선에 가깝다. 사회주의란 단지 모택동이 중공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건국헤게모니에 불과하다. 중국의 개방화는 세계의 분쟁이 이념의 문제에서 점차 경제적으로 변모했다. 명분과 실리에서 실리로 가게 되면서 세계의 시장구도는 변모했다. 중국의 물품수입을 제대로 하지 않은 한국이 이제 중국에서 많은 물품을 수입하고, 공장도 세우고 사업도 연다. 이제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식량과 공업품이 우리 일상을 덮는다.

 

러시아가 자본주의적 시장경쟁에 뛰어들면서 북한은 20세기 중후반처럼 이데올로기만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최근 외교적인 모습이 불과 2년과 다르게 변모하는 것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광해군의 이름이 다시 불려나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조선은 생각보다 평화로우면서도 아주 참혹했다. 한 국가가 600년이나 지속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문 케이스며, 전쟁을 그래 겪고도 왕조가 존재하는 것조차 어렵다. 중국의 역사에서 큰 전쟁에 타격을 입으면 그 국가는 망한다. 조선의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도 살아났다.

 

대신 민중의 삶은 헐벗고 고통이었다. 전쟁의 피해는 곧 민중의 삶을 그대로 반영된다. 고대의 전쟁은 창과 칼이나 현재는 미사일과 첨단무기이다. 한사람이 한사람씩 죽이는 게 아니라 한사람이 수만 수십만의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광해군이 가진 장점이란 바로 그런 시기에 어떻게 하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다. 전쟁을 하려면 많은 장정이 필요하고, 임진왜란 후 인구가 반 정도 사라진 현실에서 수많은 장정을 내보내면 국가적으로 손실이고, 거기에 필요한 군수물자는 백성의 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장정들이 타국에서 죽으면 그 가족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광해군 시대 삼하전투 희생자들의 부모는 다 임진왜란 당시 아비규환의 고통을 겪었다. 광해군 역시 자신도 피란의 고통을 당하고, 명나라 장수 앞에서 수모를 겪으며, 분조를 지휘하며 목숨을 잃을 뻔했다. 거리에서 죽어가는 백성을 보며 그가 느낀 조선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성을 짓는데 정신이 팔리고, 개똥이란 궁녀에게 속임을 당해 왕위를 잃는다. 내정에 제대로 돌보지 못함은 실수였고, 남인과 서인을 제대로 다독이지 못한 것도 실수이다. 이덕형, 이항복, 이원익처럼 임진왜란 당시 같이 고통을 나누던 원로대신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음도 실수다.

 

권력의 정점에서 권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은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후는 그보다 못했다. 광해군 이후 밥값을 제대로 했던 임금은 누구인가? 생각하면 정조 이름을 빼면 그다지 나오기가 어렵다. 인조는 병자호란에서 임금의 자질을 이미 절실히 보여줬고, 폐모살제란 명분에서 인조 역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소현세자와 그 가족을 박대했고, 종실에서 반역의 기미가 보이면 그 역시 숙청했다. 숙종 때 이르러 삼복의 옥사는 가까운 집안 아저씨조차 사약을 내리는 비정한 임금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당쟁에 의한 무고와 정치적 전략이었다. 여전히 백성에 대한 학대는 심했고, 백골난징과 황구첨정은 계속 나온 말이다.

 

광해군이 그렇게 무능했고, 성을 짓는 공사에 예산을 탕진했다면, 인조는 모문룡에 바친 것은 조선 전체예산의 30% 이상이라면 차라리 성을 짓는데 돈을 투자하는 게 나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행위를 문제 삼아 뒤집은 결과가 그 이상으로 되지 못했다면 의미 없는 행위일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면, 주인공은 인조반정 당시 아버지가 반정세력에 의해 참수되는 장면을 본다. 그로부터 14년 후 어른이 된 주인공은 병자호란을 겪고 자신의 여동생과 매제가 청국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구하기 위해 싸운다.

 

이때 조선의 관군은 해결사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여진족에게 사냥대상에 불과하며, 조선민중은 포로로 끌려갔을 뿐이다. 병자호란이란 거대한 서사에서 이 영화는 병자호란의 정치적 색깔보단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쟁하던 남매와 소꿉친구를 보여준다. 물론 인조반정이 실패한 정치였다는 것은 영화 전체를 보면 알겠지만, 조선이란 국가의 운명도 중요하나 그보다는 나와 내 주변의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가 내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결국 내가 지킬 수밖에 없는 점이다.

 

조선의 향교에 배향된 인물은 병자호란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인조반정의 중심인물이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비극을 본 사람도 있다. 게다가 북벌을 주장하면서 말로만 그래하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인물도 있다. 청나라의 위세를 알면서도 내부적으로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청나라는 이중적인 잣대가 적용된다. 청나라에게 분명히 패배했지만, 조선은 청나라에게 패배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청나라 사신이 오면 은을 상당히 제공하고, 온갖 거드름에 비위를 맞추며, 청나라 편에서 통역사를 맡은 자는 과거 천인이었지만, 조선에서는 당상관보다 더 높은 권세를 보여줬다.

향교에서 임진왜란 전후의 인물로 조헌과 성혼이 있으나, 사실 임진왜란에서 더 높은 활약과 학문적으로 더 뛰어난 인물로 서애 유성룡이 있다. 향교에 퇴계 이황 이후로 남인계열 학자는 없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 같은 인물들은 역적 내지 사문난적, 천주학쟁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그 이전에 기축옥사에서 곤재 정개청이나 삼봉 최영경 등 같은 명유도 죽임을 당한다. 사실 퇴계와 남명 아래 수학 받은 유학자 중에 상당한 학문을 가진 자도 있었고, 연구자료도 남긴 것도 많다. 그러한데도 여전히 향교의 배향은 현재도 그러하다. 조선의 유학을 두고 세계 유학학회에서는 조선의 정약용을 빼놓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 명유는 존재하나, 향교는 그 명맥이 끊긴 점이다. 서인의 정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왕실과 혼인하고, 지방산림의 거대한 유학자를 올려 중앙집권에서 왕을 압력하고, 지방에서도 중앙으로 입김을 작용하여 권력의 카르텔을 완성했다. 광해군은 기축옥사가 일어날 때 일개 왕자였고, 임진왜란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가 반정에 의해 실각하자 여진족에 의해 조선이 치욕을 당했다. 그러나 당쟁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선조는 기축옥사로 동인세력을 제거하고, 세자거취로 서인을 견제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남인을 활용하면서도 끝이 나자 남인 대신 북인(이산해)을 불렀다.

 

말기에는 대북파 대신 소북파 유영경을 신임하다 세상을 떠났다. 선조가 저지른 붕당의 피는 광해군 시대에 대북파의 독주로 이어지고, 결국 서인에 의해 폐위된다. 광해군의 정치사는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구도가 외부의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점이다. 국내 정치에서 현재 대통령이 촛불에 의해 태어났지만, 최근에 촛불을 배신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광해군의 역사적 현실을 봤을 때, 광해군은 권력의 구도에 의해 정치권력을 추구하던 그들의 명분에 맞게 돌아갔기 때문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정치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이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게 아니다.

 

물론 그 당시 외부의 조건, 내정의 여건, 이미 그 현실을 만들어낸 토대에 의해 움직인다. 선택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이란 몇 가지 갈림길만 두고, 그 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높은 언덕뿐이다. 언덕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길을 가지 않을 수는 없다. 어느 길이 답이라 말할 수 없지만, 답을 정해놓기 보단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결국 과거의 길을 다시금 밟아볼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정권에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을 멋대로 감옥에 잡아와 장형으로 죽게 만들고, 가족들과 친구, 그 친구의 가족조차 잡아 죽일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오던 사람들을 역사책에서 보는 것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구루시마군을 울돌목에서 격파할 때, 자신의 수하 안위 장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위가 물러서면 군령에 의해 참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안위는 살아가기 힘든 여건에 있다. 안위의 삼촌뻘 되는 사람이 기축옥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정여립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안위가 임진왜라에서 공을 세워도 추후 정묘호란이 일어날 때 기용하지 않는다. 그가 정여립의 조카라는 사실이다. 기축옥사가 1589년이고, 정묘호란이 1627년이다.

 

당장이라도 조선이 망할 위기인데도 당쟁의 관계성을 따진다. 광해군시절의 중요업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해군 시대에 이순신의 사당이 제대로 생겨났고, 유성룡의 병산서원의 액자가 내려졌으며, 원균의 가족이 받던 녹봉을 중지했다는 점이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원균의 가족에게 다시 곡식이 녹봉으로 내려졌다. 선조가 공신목록에서 1위 이순신의 옆자리에 원균과 권율을 올리는 것은 다소 과도한 처사이다. 차라리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순신 옆이라면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아니면 진주성의 김시민 장군 정도면 말이다.

 

광해군은 위에 거론한 인물과 동시대에 살아간 인간이다. 권력의 최고점에도 있지만,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던 인물이다. 시대는 변화 하고, 전쟁의 상흔은 남아있다. 한국 역시 한국전쟁의 상처가 70년이 지나지 않았다. 전쟁의 비극, 배고픈 시대, 암울한 정치, 권력에 의해 숙청되는 지식인과 정치인, 외교적 갈등 등을 보면 400년 전에 혼란하던 광해군의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향교와 관련하여 전주 경기전에 놀러간 적이 있다. 신혼여행 이후 데이트스냅을 찍으며 경기전과 전주향교를 거닐었다.

 

경기전을 재건한 인물이 광해군이고, 광해군이 폐위된 후 숙종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그곳에 모신다. 전주이씨 문중을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제사를 지낸다. 과거 조선시대의 의복을 입고, 한자어로 된 축문을 읽는 그들이 우리에겐 과거의 유산일까? 아니면 현재의 새로운 관광자원일까? 적어도 그들이 전주이씨 문중이면서도 과거의 광해군이란 먼 조상친척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복거리에 많은 여성들이 개량한복을 입고 셀카를 찍거나 아니면 추억을 기념할만한 인생사진을 남긴다. 이러나저러나 광해군은 문제가 많은 임금이나 밥값은 제대로 한 임금은 분명하다. 전주의 한복거리를 거닐며 수많은 인파가 즐거운 얼굴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광해군, 그도 사실은 한복거리처럼 수많은 한국인, 조선인의 후예들이 즐거운 삶을 살기를 바랐을까? 광해군이 다른 왕자와 같은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반찬이 뭐냐고 물었을 때 다른 왕자와 달리 지혜로운 답을 내놓았다. 소금이라 답을 했다. 소금이 있어야 음식의 맛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과 지금까지 지위와 계급, 부와 빈을 막론하고 한국과 동양에서 쌀과 소금은 모두가 공통으로 먹는 음식이다. 소금은 왕자인 본인도 물론이고, 길가의 봇짐장수조차 먹는 음식이다. 전쟁의 아픔과 당쟁의 피로는 스스로를 결국 몰아갔다. 그가 남긴 업적과 실책은 여전히 우리에게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적어도 100년 전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것이라면, 그가 남긴 업적이 우리에게 충분히 밥값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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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6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8-11-26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입니다.잘 읽었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11-28 10: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덧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일에 쫓긴지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