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일기 - 묻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민간인 학살의 기록
박건웅 지음 / 우리나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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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


언론에 보도가 되었던 사건이다. 국민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좌익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사상 전향을 하고 가입한 단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물론 좌익을 전향시키고 전향했다는 증거로 가입시킨 예도 있지만, 연맹원의 수를 부풀리기 위해 좌익이 아닌 사람들도 가입시킨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경우, 먹을거리를 준다는 이유로 어린아이까지 또 친인척까지 가입하게 한 경우가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비극의 발단이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안전을 기한다는 이유로 적군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행동을 한다. 그런 이유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었던 사람들을 불러내 학살한다. 가입되었던 사람이 모두 적군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보도연맹원으로 이름이 등록되었으면 죽음을 피할 길이 거의 없었다.


이 중에 이들의 억울함을 알고 풀어주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명령에 의해 그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묻어버린다. 잊혀버린 기억이 될 뻔한 일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듯이, 한 사람의 기억이 아닌 집단의 기억은 망각 속으로 묻혀지지 않는다. 억울한 죽음을 겪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잊혀지겠는가.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진실이 밝혀지는데는. 그리고 어느 정도는 밝혀졌다. 물론 완전히 밝혀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많은 진척이 있었다. 그 과정을 '악마'의 표식을 가슴에 달고 나온 육삼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만화로 표현하고 있다.


만화는 반전을 보여주는데, 악마의 표식이었던 666이 사실 아이가 거꾸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고, 999라고. 엄마를 찾아가는 은하철도 999. 엄마를 진실로 바꾸어보면 육삼이를 통해서 민간인 학살, 특히 보도연맹원 학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화는 보여주고 있다.


철이가 은하철도를 타고 가면서 온갖 모험을 하듯이 육삼이도 진실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온갖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 참상을 일기라는 이름으로 기록하여 남겨주는데... 만화는 6.25전쟁에서 그치지 않고 4.19, 베트남 전쟁, 광주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보여준다.


그것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도 잘살게 된 경우가 많음을. 여전히 과거는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참으로 슬픈 역사다. 우리가 지고 가야할 역사. 기억 속에서 몰아내어서는 절대 안되는 그런 역사. 사탄이 인간에게 졌다고 인간 세상에서 살 수가 없다고 떠나가는 장면에서 악마보다 더한 인간으로서 살아왔던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남들에겐 악마로 인식되지만, 그의 기록을 통해 우리들 역사가 지닌 악마성을 인식하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는 완전히 묻힐 수가 없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언젠가는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된다. 진실을 가둘 수는 없는 법이니까. 우리 역사에서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만화는 보도연맹원 학살의 진실을 마주보게 하고 있다.


이제 과거는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미래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실을 밝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지게 하는 일.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미래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이 만화는 그런 길에 서 있고,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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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가명강 시리즈 11
남성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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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생겨났다. 위기 의식이 아니라 실제로 위기다.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란 말을 썼지만, 많은 사람들은 변화라는 말보다는 위기라는 말을, 또 재앙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한다.


이미 우리 인간이 손 댈 수 없을 정도로 지구 기후는 예전에서 벗어났으며, 그러한 변화로 인해 우리들 삶에도 위기가 도래했다. 그런데 위기라고 다 같은 위기일까? 아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지만 하위 10억 명 정도에게는 기후 변화는 위기 정도가 아니라 삶을 위협하는, 재앙에 해당한다.


이대로 지구를 내버려둔다면 하위 10억 명은 살아남기가 매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지구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도 우리가 초래한.


따라서 지구 위기는 우리의 위기다. 우리 삶이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벌써 두 해째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백신이 개발되었어도 돌파 감염이 일어나고, 바이러스들은 수많은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로 홀연히 나타난 질병이 아니다. 인류의 삶이 초래한 질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질병이 우리들 삶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 두 해째 겪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는 이렇게 눈에 보이게 다가와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질병에 대한 경각심이지 우리들 삶에 대한 경각심까지는 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백신을 개발해 감염을 예방할까에 집중하고 있지, 인류의 삶에 대한 성찰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다.


정신 차리라고 경고를 하고 있는데, 그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라고나 할까.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뤄줘서 조금은 낫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겪는 자연재해들이 이러한 기후 변화, 위기로부터 초래되었는데도, 근본부터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때 그때 땜질식 처방만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는 기후변화가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그러한 변화로 인해 인류의 삶 자체도 위험한 수준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지구는 우리 인간을 살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지구를 사람처럼 비유한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야겠지만. 가이아라고 한다. 지구는 가이아다. 그렇다면 지구는 사람과 같다고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을 만들었다고 하는 신화들이 대다수니까) 한다면 역시 물이 중요하다.


사람 몸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물이 70%정도 차지한다고 하니... 그러고 보니 지구도 마찬가지다. 지구도 물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 물이 없으면 사람이 죽듯이 지구도 물이 없으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별이 되지 못한다.


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함부로 대하고, 또 그러한 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고 한다.


하긴, 우리 몸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지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바다, 물로 차 있는, 아니 그 물 속에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는 그 바다를 우리가 육지에서 했듯이 막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바다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난개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으니.. 다만 바다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을 모아둘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빅데이터 시대일텐데, 바다에 대한 자료들도 그렇게 모아두면 우리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시작해서, 자연재해, 쓰레기 문제 등을 통해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바다를 통해 인류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희망은 바다에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바다를 육지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바다는 그 자체로 기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하고, 수많은 생명체들을 품고 있고, 또 자원도 풍부하기에 우리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에서 희망을 지녀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난개발은 절대로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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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6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08-06 18: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8-06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kinye91 2021-08-06 18: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08-06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08-06 19: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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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변하게 하는 지점. 그 지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체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이 책은 여섯 명의 학자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그 학자들은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고, 근대에 들어서 전세계를 두려움에 떨게한 코로나19에 대해서 자신들이 생각한 바를 대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19를 전환점으로 삼는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전환점이라는 말에, 우리나라 가요에서 서태지가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가요를 서태지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만큼 서태지 출현 이후로 우리나라 가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가요들이 모두 사라졌냐 하면 아니다. 기존 가요에 새로운 가요들이 더해졌을 뿐. 단순히 더해졌다기보다는 다양한 가요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다시 트롯이 유행하기도 하고, 발라드도 유행하고, 그렇다고 댄스 가요가 줄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양한 가요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상태...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기존 우리 삶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기존 삶을 앞으로 우리 삶의 방향에 맞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 책에서 대담한 여섯 명의 학자들도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우리가 삶에서 지켜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일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존'이라고 할 수 있고,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차이들이 있지만, 그 차이는 대동소이 하다고 할 수 있다.


큰 틀에서는 같은데,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다. 당연한 일이지.. 어떻게 똑같은 방안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학자들이 모두 똑같은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코로나19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이렇게 여섯 명의 학자가 대담에 참여했다. 이들이 함께 이야기한 적은 없고, 정관용의 사회를 통해 한 명씩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식으로 참여했고, 그 내용이 정리되어 이 책에 정리되어 있다.


이 중에 최재천이 이야기한 화학백신보다는 생태백신, 행동백신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장하준이 경제 체제를 바꾸어서 함께 공존하는,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또 홍기빈이나 김경일이 이야기하는 공존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최재붕은 이미 인류의 생활방식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포노사피엔스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직접적인 대면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질테니, 그런 만남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고 하니, 이 역시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공존이다. 사람들끼리, 나라끼리, 그리고 사람과 다른 생명체들, 또 생명체들과 생명이 없는 존재들까지도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존재들도 존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인류가 성장, 성장, 발전, 발전 하면서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지 못했던 점을 깨닫게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인류가 지녀왔던 좋은 점들은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기 힘들게 했던 생활방식은 바꾸어야 한다고, 그런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코로나19가 알려주고 있다고.


그러니 코로나19는 벌써 두 해째 우리들 삶을 옭아매고 있지만, 이 코로나19를 통해서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생활방식, 행동방식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 책에서 대담한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책 후속편도 나왔다고 하는데, 나중에 읽어봐야겠지만, 교육에 관해서 석학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사실, 교육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하는 인류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교육에 관해서 고작해야 원격(온라인)이다, 등교 수업이다 하는 쪽으로만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우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래야 미래세대에게 '공존'을 온몸으로 학습하게 할 수 있는지... 또한 대면, 비대면을 떠나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교육은 뒷전으로 처지고 있으니... 코로나19는 교육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 코로나19는 우리를 불안에 빠뜨렸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는 우리들 삶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음을 알게 된다.


백신 만능주의에 빠지지 말고, 우리 삶을 변화시켜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앞으로 인류에게 다가올 수많은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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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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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가족을 파괴한다. 더 설명이 필요없는, 전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목숨을 앗아가는데, 가족 구성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가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는 재난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가족들은 충격에 빠진다. 전쟁을 통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지니는 상실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족을 잃었음에도 그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게 강제된다면? 전쟁이 더욱 비극적인 이유는 어떤 사람이나 가족, 친족에게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행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거나 박해받는 위치에 서게 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더 그랬다. 전쟁을 겪고 나서 극심한 이념대립. 그 이념대립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 친족의 해체..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책임지게 하는 정치권력.

 

하여 긴긴 세월동안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슬픔들이 민주화가 되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제는 당당하게 추모할 수 있게 된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전쟁 희생자들이 있다.

 

그런 희생자들의 가족, 친족에게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끝나지 않았다. 물리력만으로 전쟁을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우리나라 전쟁 희생자들이 걸어왔던 길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코리아에서의 학살 이후 친족의 정치적 삶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친근한 존재로 기억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 뒤르켐이 영혼의 권리(the right of soul)라고 정의했던 그 권리를 다시 찾기 위한 길고 지난한 싸움이었다. 영혼의 권리란 죽은 이에게는 친족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권리의 회복이고, 살아 있는 이에게는 정치적 사회 내의 시민권의 회복과 동일한 의미이다.' (265쪽)

 

이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제주 4.3사건을 예로 든다. 이제는 대통령도 추념식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친족들도 쉬쉬 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탄압이 있었는지.

 

가족이 해체되고, 친족이 붕괴되고,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어 버린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가 어떻게 회복되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렌 세월동안 수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많이 치유가 된 상태. 전쟁으로 인해 상대를 적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친족들, 마을 공동체원들 사이에서도 적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임을 당했던 그런 역사 속에서 갈등이 지속되지 않도록, 이제는 화해와 치유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온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영혼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3과 6.25로 인해 많은 가족, 친족,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었고, 그 중에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그 갈등으로부터 치유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북 관계가 잘 풀려야 이런 과정이 더욱 잘 진행될텐데...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쟁에 참여한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후대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가족들, 친족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 근대는 개인주의가 확립된 사회라고 하지만, 전쟁은 그것이 허구임을 만천하에 보여주었고... 

 

전쟁은 연대책임임을 뼛속 깊이 인식하도록 했음을, 전쟁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은 일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전쟁은 가족, 친족을 배제할 수 없는, 개인 또는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 친족, 마을공동체의 문제가 됨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치유와 화해가 정립되어갈 때다. 그래야 한다. 근대를 넘어서려 하는 이때 적어도 가족 구성원, 친족 구성원, 또는 마을 공동체 사람이 한 일로 인해 다른 구성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용서를 바탕으로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적어도 '영혼의 권리'는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영혼의 권리'를 지켜줘야 산 자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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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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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우리나라에 형식적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쿠테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나라,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라, 간혹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나라, 몇몇 분야에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언론 자유는 보장되는 나라, 교육을 통해 또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곡절이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서 현재 우리는 이 정도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지닌 힘이다. 그리고 정치가 여전히 우리에게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네 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정치를 네 개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는데, 각자 독립된 부분처럼 서술되었지만, 읽다보면 다 연결이 된다. 그렇게 정치는 분절되지 않고 통합된다.


먼저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대통령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정치 영역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너무도 막강하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곤 하니, 정말 중요한 직책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졌을까? 그 연원을 따져보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삼권분립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지만 그에게 대한민국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겐 대한제국이 있을 뿐이다. 그는 바로 군주의 역할을 하고 싶어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첫단추가 이렇게 채워졌기에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이 계속 이어졌다. 권력 분립을 할 수 있는 헌법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런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나눠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인 선거를 살펴봐야 한다.


많은 선거가 있고, 이제는 공정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시비도 있지만, 대체로 결과에 승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참여가 중요해졌고, 선거를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자세를 지니게 됐다.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선거 역사에서 일어났던 부정선거들, 그리고 그 부정선거를 거부하면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선거를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 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하다. 그 매개 역할을 정당이 해야 한다고 한다.


정당정치... 정권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집단이 정당이고, 정당을 통해서 정치를 하는 체제가 바로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정당의 역사를 훑어가고 있는 이 장을 통해서 과연 우리 정치는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가령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1인 2표제를 택하고 있지만, 턱없이 적은 숫자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인해 국민들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않은 선거제도임을 2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는 정당들의 역사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왜 다당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양당제로 운영이 되는지, 여전히 공고한 지역주의 정당들이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지금 정당들이 지닌 공과 과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 책이 2019년에 발간되어 선거 연령이 18세로 조정이 된 사실이 반영이 안 되어 아쉽지만,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당을 통해서 정치에 참여해야 함에는 동의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해야 하겠지만, 비례로 대의 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선거와 정당을 통해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당은 중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이 시민들의 영역에까지 내려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광장에 수많은 시민들이 나가게 되고, 또 국민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정치권력에 요구하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고, 또 참여하고 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정치를 할 때 정당이 매개가 되어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함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4부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가 걸어온 길을 살피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정치가 희망이다.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희망, 그런 희망이 정치니,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지 말고 관심을 지녀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게 만들도록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덧글


118쪽, 255쪽에 우리나라 선거 연령을 19세라고 하고 있는데,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의해 18세로 바뀌었다. 이 책이 발간된 다음에 개정되었으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15조(선거권) ① 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다만, 지역구국회의원의 선거권은 18세 이상의 국민으로서 제37조제1항에 따른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 한하여 인정된다.  <개정 2011. 11. 7., 2014. 1. 17., 2015. 8. 13., 2020. 1. 14.>


124쪽 1대 부통령 선거를 이야기하면서 이시형이라고 나오는데, 뒷부분에서는 이시영으로 제대로 나오니, 소소한 오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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