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읽기와 소설교육 푸른사상 현대문학연구총서 28
정래필 지음 / 푸른사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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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이 소설보다도 더 긴박하고 박진감이 넘치는데, 누가 소설을 읽을까? 소설 속에 나오는 현실이나 인물들보다 현실 속의 사건들과 인물들이 더 흥미롭다면 소설은 제 역할을 하기도 전에 고사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이유말고도 소설이 읽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소설을 읽을 여유가 없다. 어른들은 먹고 살기 바쁘고, 아이들은 공부하기 바쁘니, 서로 바쁜 세상에서 책을 마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지친 몸과 뇌를 쉬게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또 하나, 엄청나게 발달한 스마트 기기들이 소설을 읽지 않게 한다. 스마트 기기들로 소설보다도 더 흥미로운 것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인문학의 위기도 위기지만, 소설 또한 고사 직전에 있다. 그럼에도 엄청나게 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니, 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가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교육에서 소설을 배운다. 그들은 소설을 배우는데, 단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배운다.

 

소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접경험하고 자신의 삶과 비교하여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천해 간다는 자아실현으로서의 문학교육은 말로만 존재한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거창한 내용보다는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학교를 졸업하면 시험에만 필요했던 소설 따위는 집어치워버리고 만다. 이게 소설의 운명이다.

 

소설의 운명? 이렇게 버려지는 것이? 그런데도 왜 소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 작가 지망생도 많고, 그 많은 출판사들도 아직 소설 분야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설은 이제 운명이 다했다고 생각해도 아직 소설의 운명은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소설이 주요한 교육내용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읽어야 할테고, 소설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 사람들에게도 소설은 계속 필요하리라.

 

그러면  소설이 고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소설을 교육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의미를 전해주는 소설 교육이 되어야 한다. 도대체 내 인생에서 소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읽을 것 아니겠는가?

 

삶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학이 소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고, 내 삶임을 알게 해주는 문학이 소설임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에 대한 고민에 어느 정도 해답을 주는 책이 이 책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기억 읽기를 시도하라는 이 책. 기억 읽기가 왜 중요한지를 논증하고 있는 이 책은 기억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작가가 쓰면서 자신의 기억을 불러내어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는 작가가 형상화한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의 기억을 불러내어 재형상화해야 한다고, 그렇게 재형상화했을 때 그 소설은 자신에게 의미있게 다가온다고... 그런 재형상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학술적인 책이라서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소설을 가운데 두고 작가와 작중인물과 대화를 할 수 있음을, 대화를 해야함을 인식하게 해주고 있기에 의미가 있는 책이다.

 

작가의 기억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촉발할 수 있는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또는 숨어있던 기억이 자연스레 표출되어 기억을 언어로 다시 표현해낸다면,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소설이 이런 의미가 있기에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 말고 읽어야 한다.

 

소설을 읽으며 그동안 숨겨왔던, 또는 잃었던 자신을 만나야 한다. 그렇게 만나는 자신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고, 현재의 자신도 아니다. 현재의 내가 불러낸 과거의 나이기에 그렇게 기억된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디딤돌이 된다.

 

스마트 기기에 얼굴을 박고 수시로 변하는 그 기기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소설을 읽으며 자신 속의 다른 자신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 복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다른 나'들'이 산재해 있는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소설을 더욱 잘 읽기 위해서는 내 기억도 읽어내야 한다. 내 기억과 소설에 나오는 기억이 만나는 순간,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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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멘토링 -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스토리텔링 교수법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조정래 지음 / 행복한미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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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다가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야기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수학에서도 스톨리텔링 수학이라고 할 정도니, 이제 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분야가 영상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영상 분야 말고도 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을 활용해야만 더욱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스토리텔링이 왜 중요한지를 1부에서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스토리텔링을 실시하는 4가지 방법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런 방법을 실행한다면 학생들이 스토리텔링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 키워드는 '왜?라고 묻게 하라' '목표를 갖게 하라''육하원칙으로 시작하라''설계도를 그리게 하라'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쉬운만큼 실천은 잘 안되는 요소들인데, 그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기본에 대해서 확고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음에는 스토리텔링으로 나를 찾는다는 제목을 단 3부인데,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하는데,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야기없이 살아가기는 힘들고, 또 이야기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가지 계속 접하는 요소이니, 그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민담이니, 소설이니 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나를 비추어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보고, 나를 찾는 연습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4부는 스토리텔링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실천 가능한 방법을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늘 접하고, 활용하고 있는 요소인데, 이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연습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

 

미래세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이 된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스토리텔링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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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변화를 꿈꾸는 기적의 수업 멘토링 - 최고의 교사를 만드는 행복한 교과서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6
김성효 지음 / 행복한미래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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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교실붕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교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런 방송에서 보여지는 교실은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가르침이 일어나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냥 여러 무리들이 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소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는 그런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 공간에서는 수업이 이루어질 수 없다. 수업도 이루어지지 않는 교실이니 교실붕괴라는 말이 맞는 현실이었다.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자연스레 학생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런 갈등들은 왕따문제로 불거지게 되었다.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폭력, 소통의 부재가 따돌림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런 모습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 자신이었다. 왕따 가해자가 언제 왕따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가해자 그룹에 속하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끼리의 관계가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교사들은 기본적인 생활지도에서 좌절하고, 또한 수업에서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적도 우등생 쪽에 속해 있었던 교사들이 자신들과 전혀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교사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의 생활태도를 이해하고 바꾸기 위해서 자신을 바꿔가기 시작했으며, 어떤 교사는 수업을 바꾸려는 노력을 했고, 어떤 교사는 학교를 바꾸려는 노력을, 어떤 교사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했다.

 

아마도 이런 노력이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모습이리라.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이 때쯤이니까.

 

이런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하고, 학생들이 변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이제는 체념한 것인지 교실붕괴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대신 학습부진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와 국제학업성취도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학업 흥미도에서는 최하위라는 좋지 못한 얘기가 들린다.

 

이제는 수업이다. 일본에서 사토 마나부 교수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말이 우리나라에 유행처럼 들어오고, 배움의 공동체를 표방한 학교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사들, 사회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상당히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수업에 관해서, 자신들에 대해서...

 

그래서 수업이 안 되었을 때, 남들의 비난보다는 우선 자신들이 견디지 못한다. 나는 왜 이럴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을 늘 안고 산다. 그리고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수업에 관한 연수도 찾아 듣고, 책을 찾아 부단히 고민하고, 동료 교사들, 선배교사들에게도 질문을 수시로 한다. 아무리 그래도 수업에서는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 교사들은 좌절한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한다. 현실에의 안주, 그것은 곧 교사의 무덤이다.

 

하루하루 수업시간마다 짜증내고 화내고 한숨쉬는 생활. 그것은 교사에게는 지옥이다. 그런 지옥에서 교사들은 벗어나고 싶어한다. 수업이 안되었을 때 피해는 학생들도 받지만, 교사 자신도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수업을 못 하고 싶은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게 잘 안될 뿐이다. 그 안되는 문제를 가지고 안된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데 교사의 딜레마가 있다.

 

교사는 자신이 주저앉는 순간 자신과 더불어 학생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이 책에서는 그런 말을 학생들보다 반 발자국만 앞서 가라고 했다. 한 발자국이 아니라, 반 발자국. 언제든지 학생들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그리고 학생들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뒤처져지지 않는 자리. 그게 반 걸음 앞서가는 거다.

 

너무 멀리 가지 않았기에 학생들은 충분히 따라올 수 있고, 교사들도 학생들과 비슷한 걸음으로 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이것만 되면 된다. 학생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기. 즉, 학생들과 소통이 되기. 이것이 수업의 처음과 끝이다.

 

이 책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끝까지 지치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학생을 이해하는 마음이 열정보다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마음이 열정보다 앞설 때 교사는 학생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학생들도 최고의 성장을 보여준다. (245쪽)

 

그것이다. 수업멘토링,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로 학생을 이해하라는 것. 잘 가르치려는 열정이 수업 기술 쪽으로 치우치기 쉽다면 학생을 이해한다는 것은 학생의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 가지 수업 기술보다는 바로 학생을 이해하는 마음, 이것이 수업을 잘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끝이 된다.

 

이런 마음가짐을 지니고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면 시나브로 수업은 좋아진다. 학생들도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성장하게 된다. 나머지는 이 책의 구체적인 수업기술을 참조하면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수업기술 외에도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면 수업은 즐거워진다. 좋아진다.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중학교 교사가 읽어도 참조할 내용이 많다. 함께 고민하면서 함께 실천한다면, 교사들이 만족한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교사들이 만족한 수업을 한다면 그 수업의 결과는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될 것이다.

 

수업. 교사의 처음이자 끝이다.

 

반 걸음 앞서 가기

       - 선생 노릇1

 

딱 반 걸음만 앞서가야지.

의식하지 못해도

늘 눈 앞에 보이게.

하는 행동 하나 하나

모두 보이게.

강요하지 않고,

빨리도 가지 않고,

늦게도 가지 않고,

오직 반 걸음,

겨우 저 정도야,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을 걸

하게 해야지.

그래서 반 걸음

손을 내밀면

언제든 

잡을 수 있게,

손 잡고 함께

함께

갈 수 있게,

반 걸음만

겨우 반 걸음만 앞서 가야지,

그 힘든 길을.

덧글

197쪽. 국어 수업에 대한 설명에서 '반모음'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 말에서 반모음이라는 개념을 학교 문법에서는 쓰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기본 모음이 10자나 되는 나라가 드문데, 우리나라는 기본 모음에 이중모음까지 모음이 많아서 영어식의 반모음을 굳이 설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냥 모음이라고 해야 한다. 누가 '으'를 반모음이라고 하는가? 'ㅡ'는 우리나라 기본 모음자 중의 하나이다.

 

모든 교사들은 페스탈로치를 꿈꾼다. 그런데 페스탈로치가 되기 힘든 환경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교사들이 페스탈로치가 될 수 있도록 환경적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세계 최장의 수업시간, 아직도 많은 학급 학생수 등등...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을 때 교사와 학생의 수업시간은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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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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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요즘에 많이 읽고 있는 일본 학자다. 교육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있는데, 이 책에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늘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장바구니에서 지우곤 했던 책이다.

 

"하류지향"이라는 제목에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책이라, 당연한 얘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사서 볼까 망설이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펴낸 "민들레"에서 오랫동안 정기 구독을 했다고 이 책을 보내주었다. 결국 이 책은 내게 올 책이었구나.

 

이렇듯 어떻게든 내 손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이 책은 내게 다가와 내 정신의 일부가 되었다.

 

책은 쉽게 읽힌다. 우치다의 책이 그렇듯이. 또한 읽으면서 '그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교육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 얘기하고 할 수 있고, 일본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이 되었다고 판절이 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민들레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을 하였고, 서문에 그런 경위에 대한 우치다의 감상이 실려 있다.

 

처음에 잘 읽혔기에 판절이 되었을텐데, 몇 년 지나 다시 책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일테고, 그러한 현실에 대한 분석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민들레 출판사는 계속해서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을 보여온 출판사이니,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우리 교육을 바꾸어가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을 내렸을리라.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사토 마나부 교수가 썼고, 사토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돌하하기 위하여 '배움의 공동체'를 시도하였고, 나름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배움의 공동체'가 소개되었고, 시도하고 있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학교도 있으니 말이다.

 

사토 교수가 이렇듯 교육 실천에 주목하고 집중하고 있다면, 사토 교수로부터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이라는 개념을 빌려온 우치다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인 분석에 치중한다.

 

그 원인은 참으로 단순하다. 바로 "등가 교환"이다. 등가 교환은 자본주의의 기본으로, 즉, 화폐 경제를 유지시켜주는 근본 요소이다. 우치다는 이러한 등가 교환을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이 탄생했다고 본다.

 

그거 배우면 뭐가 좋아요? 라는 질문은 그 물건이 왜 좋아요, 또는 그 물건이 어디에 좋아요? 라는 질문과 같다는 얘기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니, 너도 나에게 그에 상응하는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신념(그것은 신념이다)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배움이라는 '불쾌함'에 상응하는 교환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그렇지 않다. 이를 우치다는 교육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교육의 역설은 당사자가 교육이 제공하는 이익을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과정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 소비주체로 학교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애당초 그런 역설이 교육을 성립시키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56쪽)

 

이러니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불쾌함'에 대한  등가는 수업 시간 내내가 아니라, 수업 시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는 등가 교환이 되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더 수업에 집중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학생들은 기를 쓰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어째, 많이 보이는 모습인데...이를 학생들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몸에, 마음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 그것이 바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즉,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른이 되면 일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이러한 등가 교환에는 시간이 사라져 버린다고 하는데... 시간이 왜 중요하냐면 

 

지성이란 요컨대 나 자신을 시간의 흐름 속에 놓고 나의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무지'의 정의도 가능하다. 무지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 역시 변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사고를 뜻한다. ... 공부로부터의 도피,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는 자신의 무지에 고착하는  욕망인 것이다. (156쪽)

 

이렇게 시간을 고려하다보면 '등가 교환'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등가 교환을 포기하는 순간 배움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미지의 것에 대한 추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거는 모험이다. 이러한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고, 스승은 단지 기술을 전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회에 연결해주고, 나를 과거와 미래로 연결시켜주는 고리로 존재하게 하는 그러한 존재라고 한다.

 

스승이 필요함을 인식하는 순간, 배움에서 도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스승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시간 속에서만 가능하고, 또 '부등가 교환'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그러한 '부등가 교환'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공부, 일에서 도피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 있다. 다른 모습의 인간이 출현할 수 있다. 사회가 변하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변모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류 지향'을 멈추고, 이제는 '상류 지향'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치다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겠는가?

 

고착된 사회에서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 상류를 지향할 수 있고, 상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우치다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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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기반상담 놀이와 프로그램 구조화된 놀이상담 시리즈 4
전국재.우영숙 지음 / 시그마프레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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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예전에는 놀이와 학습이 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다. 또 인생은 모험이라는 말도 많이 했다. 미지의 세계에 아무 것도 없이 나와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은 모험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네 인생이라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모험의 세계이다.

 

모험은 두려움을 준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게 된다. 또한 모험은 혼자서도 하지만 대부분은 여럿이서 함께 한다. 갈등하고 타협하고 화해하고 하면서 함께 모르는 길을 걸어가게 된다.

 

예전에는 놀이와 학습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말은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을 모험을 통해서, 즉 낯선 일들을 함께 함으로써 인생에 대해 배워갔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서로 어울릴 수밖에 없었고, 놀이문화도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컴퓨터 앞에서 혼자 얼굴을 처박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 나가면 친구들과 늘 어울려 뛰어다니며, 온갖 말썽들을 부리며 지내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점차 협동심, 문제해결력 등을 키워나갔으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혼자 지내거나 또는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 지낸다. 함께 있어도 아이들은 혼자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고, 남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라는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 지내게 되니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폭력적이 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남과 어울리면서 자신감과 문제해결력을 찾게 해주는 방편으로 나온 것이 모험기반 상담 놀이이다. 그냥 모험 상담이라고 하던지, 모험놀이라고 해도 좋고, 놀이 치료라고 해도 좋다.

 

무언가 몸을 움직이거나 또 함께 머리를 쓰거나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함께 함을 자연스레 익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요즘처럼 몸을 움직일 기회가 적은 아이들에게는 이런 프로그램이 제격이다. 두세 명이 할 수 있는 놀이부터, 30명이 넘는 인원이 할 수 있는 놀이까지 무려 100가지가 넘는 놀이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전문적인 강사가 있고, 장소와 준비물이 필요한 놀이 프로그램도 있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또 후반부에 가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놀이 프로그램을 소개시켜 주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물론 아이들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거나 어떤 동호회 활동으로 이를 활용해도 좋다. 즉, 어른들에게도 꽤나 유용한 프로그램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이러한 놀이 프로그램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네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이런 데서 나온다. 체육관이 없는 학교는 물론이고, 학교 근처에 학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갖추어진 곳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체육시설이 아니더라도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은 허황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학생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의 활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에는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 기반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문제다. 단지 학교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고, 이러한 모험, 놀이를 통해 함께 함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을, 또 그러한 활동 다음에는 자기를, 집단을 되돌아볼 활동을 제시하고 있어서 협동심, 문제해결력, 창의력, 그리고 자기 존중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인생은 모험이다. 이 모험을 놀이로 받아들이는 순간, 함께 할 사람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함께 함에서 더 큰 행복을 찾게 된다. 모험기반 상담 놀이 프로그램은 이러한 인생을 작은 곳에서부터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작은 것이 전체를 품고 있다는 이론도 있으니 이런 모험기반 상담 놀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축소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자, 놀자, 그리고 모험을 떠나자. 남들이 하는 모험을 간접적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하자. 그것이 우리가 인생을 풍부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그러한 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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