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노 키즈 존을 자주 보는 건 아니다. 여긴 시골이라 더 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우연처럼 노 키즈 존을 발견하면 약간 안도하는 마음으로 가게의 출입문을 연다. 이렇게 말하니 누군가는 내가 아이를 싫어하니까 그런 거라고 말하던데,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싫어하게 만드는 부모를 싫어하는 거였다. 실제로 며칠 전에 루프탑 베이커리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상당히 규모가 있는 곳인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위험이 있어 2층부터는 아이를 동반할 수 없다고 쓰여 있다. 한참 빵을 고르고 있는데, 계단 쪽에서 직원과 아이 엄마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이가 밖을 보고 싶어 하니 데리고 올라간다는 손님과 위험하니 규정상 안 된다고 말하는 직원 사이에 언쟁이 높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고, 아마 저마다의 기준으로 이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으리라.


글쎄, 이 상황에서 누가 잘못일까? 융통성(?) 없이 규정을 지키라는 직원이 일을 못하는 걸까, 아니면 가게 규정이 그러하다는데 자꾸 우기는 아이 엄마가 잘못한 걸까. 그때 드는 생각이, 만약에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아이가 난간 밖으로 떨어져서 무슨 사고라도 났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특히 식당에서, 펄펄 끓는 뚝배기를 든 직원이 테이블 사이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는데, 아이가 막 뛰어다니게 내버려두는 부모들. 제발 그러지 마라. 혹시라도 그 뜨거운 게 쏟아져 아이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식당이나 직원을 탓할 거 아닌가. 그 상황에서 누구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음식점에서 아이를 뛰어다니게 내버려두는 부모의 태도도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것을 봐서 그런가, 할 말이 정말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 어쨌든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상에서 자주 봤던 이해하기 어려운 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했다. 오전 시간에, 우연히 카페에서 아이 엄마들이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된 적이 있었는데, 진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 교육문제는 기본이었고(당연히 내 아이의 교육은 중요하다), 학원 얘기, 아이 아빠의 직업 얘기, 선생님 얘기 등등 끝이 없이 쏟아져 나오는 화제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화제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그 화제를 중심으로 거기까지 얘기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기 위한 관심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도 같은데, 이건 어디까지 이해하고 허용해야 하는 문제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다. 세상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개인 사정일 수도 있지만, 그 개인 사정에 타인의 강요와 희생이 따르고 있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문제만 들어도 서이초 사건이 계기가 된 듯하지만, 사실 그 사건은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학교 밖으로 새어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일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언급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교육의 심각한 위기를 넘어서서,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저자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홍콩의 이야기도 같이 들려주는데, 괴물 부모의 시작은 일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듣다보면 바로 알게 된다. 괴물 부모가 어느 나라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문제가 우리 생활에서, 아이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만 아이의 올바른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거다.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자면,

내 아이 사진이 부족하니, 수학여행을 다시 다녀오세요.” (수학여행에서 선생님이 찍어준 아이들 사진 중에, 자기 아이 사진이 자기 마음에 차지 않을 정도의 수량이었나 보다)

현장 학습을 가는 바람에 아이가 햇볕에 타서 왔으니, 우리 아이 피부를 원상 복구해 놓으세요.”(나 진짜 이거 이해 안 되던데, 그럼 현장학습 보내지 말고, 아이 방에 암막커튼으로 햇빛 차단하고 방에 있으라고 하던가)

반 친구 중에 우리 아이와 맞지 않는 아이가 있어서 학교 가기 싫어하니, 그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주세요.”(이것도 진짜 황당하긴 하다. 서로 맞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왜 그런지 이야기도 들어보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정 안 되면 굳이 친하게 지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설명해주던가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이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진상 부모의 모습도 심각했다. 현직 교사들이 수집한 학부모 민원 사례(괴물 부모의 탄생, 37페이지)에서 들려준 이야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학교 폭력 사건을 처리하던 담임 교사에게, 자기 아이만 미워해서 이렇게 됐다고, 아동학대라고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도 있다. 부모가 일찍 출근해서 아이가 자고 있다며, 선생님 출근길에 자기 집에 들러서 초인종 누르고 아이를 깨워달라는 부모, 아이가 병가로 등교하지 못하자, 담임 교사한테 집에 와서 보충 지도를 해 달라는 부모, 하교 시간에 연락해서 아이를 학원까지 데려다 주라는 부모, 아이의 변 상태가 안 좋아서 기분이 별로니 아이 기분 맞춰 주라는 부모, 자기 아이가 매번 시험 못 봐서 속상해하니 자기가 만든 시험지로 문제를 내서 아이 기를 살려주라는 부모, 받아쓰기에서 틀린 것 표시하니 교장실로 찾아가서 아이 마음 다친다고 빗금 치지 말라는 부모,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교우 관계 지도하라는 부모, 자기 아이가 다툼의 원인을 제공했는데도 사과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부모, 담임 교사에게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지정해주는 부모, 학교생활기록부를 마음에 들게 수정해달라는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듣고 있자면, 숨이 막힌다. 여기에서 소개된 내용은 일부분이다. 추측컨대, 정말 다 들을 시간이 없을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부모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거다. 궁극적으로 가정이나 학교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게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모의 태도에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저자가 지적한 문제도 이 부분인데, 아이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거나, 강한 충동성이 있을 수 있고, 책임감 부족이나, 심각한 부모 의존성을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크게 세 갈래 길을 간다고 하는데(괴물 부모의 탄생, 47페이지), 억압과 통제 속에서 이룬 가짜 성공과 성취 속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의존 인생’, 부모가 주는 경제적 혜택은 누리지만 반항적이고 일탈한 상태로 불안정하게 사는 일탈 인생’, 괴물 부모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어른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탈출 인생’. 어떻게든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에, 누구도 이 과정을 쉽게 통과하지는 못할 듯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책에서 소개하는 우리나라, 일본, 홍콩의 사회적 배경에 관심 둘 필요가 있다. 나라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 공통적 배경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학교폭력 만연화에 학교를 불신하게 되고, 학부모의 고학력화, 사회의 학벌화, 교육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 거기에 핵가족주의가 만들어지고, 자녀에 대한 개입과 과잉보호, 저출생으로 자녀의 희소성 또한 괴물 부모 탄생의 배경이 된다. 부모의 공동육아가 아닌, 한쪽 부모의 독박 육아는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만큼 자녀의 통제와 집착이 심해지는 것도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때로 아이는 부모에게 종교가 되고, 자기 아이의 신성함이 모독되고 붕괴되었을 때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며 면죄부를 찾기도 한다. 그 뒤에는 부모의 자기 증오와 자기 연민이 있고, 그 사랑과 기적을 바라면서 아이를 바라보기에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독이 되는 순간이다.


사회적 트라우마 전문가이고, 교사들의 지킴이, 아이들 마음의 통역사로 소개되는 저자의 이력을 듣고 읽으니, 얼마나 이 문제를 심각하고 깊게 바라보고 있는지,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고심하는 게 보인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3장이 괴물 부모 현상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제언이다. 높은 교육비와 주거비, 가부장적 문화의 더딘 변화, 이런 이유들로 앞서 말한 심각한 저출생 위기가 이 문제의 바탕에 있다. 여기에 그 밖의 사회문제가 더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의 괴물화는 이렇게 이루어져왔고, 그 해결을 위해 우리는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이에 저자는 몇 가지를 제안한다. 괴물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재발견하며, 괴물 부모 현상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책도 언급한다. 괴물 부모의 심리를 파고들면서도, 이는 개인의 일탈적 문제로만 보지 않고, 평범한 시민을 괴물 부모로 만들고 왜곡된 심리를 촉발시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더 깊게 본다.


저자는 우리가 괴물화 과정에서 냉소주의를 얻고 진심을 잃었다고, 우리의 이기주의도 본성이지만 이타주의도 우리의 중요한 본성임을 재인식해야 한다고, 이는 공동체 회복의 과정이며, 우리가 진심과 공동체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한 사회가 생존하려면 개인과 집단이 함께 성장해야 하고, 자율과 연대가 동시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부분 듣다 보니, 너무 익숙하다. 그렇게 익숙한데도 꾸준히 강조되는 걸 보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하고 필수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경쟁 앞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고 복원해야 하며, 협력과 소통, 공감의 가치를 믿고 사회를 새롭게 만들고자 애쓰는 많은 이와 함께 했을 때 내 아이가 잘 되는 결과를 얻는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켜야 하는 체제는 왜곡되었으며, 우리의 정체성은 타인으로부터 오고 공동체로부터 형성된다고 한다. 진정 자신을 위하는 것은 타인을 위하는 것과 공존한다고. 거기에 사회적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이 더해진다. 괴물 부모에 대한 사회적 고발과 연구가 본격화 되어야 하고, 새로운 학부모 운동의 출현을 기대하며, 괴물 부모 자녀의 실태 및 괴물 부모의 양육에 의한 사건 사고에 관해 사회적 고발과 연구의 확대, 교육계의 효과적이고 새로운 대응책 활성화를 말한다.


괴물 부모의 탄생과 현상, 대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괴물 부모의 자녀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 속 어떤 아이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녀도 갖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던데, 그렇게 말하게 된 이유가 어느 정도 눈에 보이기도 한다. 부모와의 삶이 힘들었을 거다. 부모가 신처럼 받드는 자식이라는 대상을 갖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을 알 것 같다.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 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듣고 나니, 이 문제 해결에 많은 이가 참여하고 관심 두어야 할 의미가 분명했다. 교실의 비통함이 학교의 문제로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해결과 공동체의 긍정적인 변화로 나아가길 바라는 저자의 간절함이 많은 독자, 부모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괴물부모의탄생 #김현수 #우리교육 ##책추천

#모두참여수업 #학교의재발견 #당신은제법괜찮은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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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2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진짜 저런 부모가 있단 말...이에요? 있겠죠......
하.. 진짜 노답 대한민국...

구단씨 2023-10-26 21:49   좋아요 0 | URL
저자가 한국, 일본, 홍콩의 경우를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음... 그냥 다 비슷해요. 읽는 동안 잠시 말을 잃었어요.

꼬마요정 2023-10-20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15년 정도 전인데요, 증학생 대상 학원 강사 알바를 했는데 그 학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애들끼리 놀다가 애 하나가 친구 목에 샤프를 꽂아넣은 거예요. 피 철철 나고 난리 났는데, 가해자 엄마가 자기 자식 잘못 없다고, 걔랑 놀지 말라 하지 않았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온 난리였죠. 원장쌤이 부모 교육부터 시켜야 한다고 그랬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무서웠어요ㅠㅠ

구단씨 2023-10-26 21:51   좋아요 1 | URL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 내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 뭐 이런 태도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보면, 진짜 아이를 보면 그 부모의 태도가 저절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성지 2023-10-2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근무하는 곳에는 아직 괴물 학부모는 없는데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말세로 돌아간다는 생각뿐입니다. 피부 복원에서는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오네요.

구단씨 2023-10-26 21:53   좋아요 0 | URL
글쎄요. 괴물이라는 표현이 좀 그랬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학부모들 많더라고요.
자성지님 근무지에서는 이런 학부모가 없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저자가 소개해준 여러 사례가 진짜 웃음이 나죠?
 


책 읽고 싶어서, 거의 습관처럼 알라딘 기웃거리는데,

정작 책을 못 읽어서, 남들이 읽고자 마련했다는 책 목록만 보고 있다.

음, 이런 책이 있군.

음, 이런 내용인 것 같은데 재밌겠군.

음. 음. 음... 부럽다, 책탑, 책목록... 부럽네, 진짜.


뒤늦게 엑셀 시험 준비 하는데,

온라인에 보면 며칠 만에 합격했다, 이틀 공부하고 합격했다 등등 

합격 수기가 많은데, 그 말 믿지 못하겠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나이가 주는 뇌의 능력이 다르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어떤 아저씨가 필기 10번 만에 합격하고 실기 준비하는데, 

실기도 상당히 많은 횟수로 떨어진 듯하다. 

아직도 놓지 않고 공부한다는 말씀에 기운 얻는 중.


포기하자니, 기분이 나빠서, 기어코 해보려고.

그냥 마음만 간절하면 공부 안 할 것 같아서, 돈 내고 접수해 놓으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시험을 봐야 한다는 간절함. 돈 값을 해야 한다는 의지 활활.

공부하는 것도 좋고, 돈 아까워서 한번에 끝내야 한다는 것도 좋고, 모처럼 머리 쓰는 일 하니 좋은데,

근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ㅠㅠ


관심 있는 걸 하는데, 돈 들고, 시간 들고, 노력 든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중...











#공부해서나쁠게없다 #엑셀 #기풍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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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10-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엑셀 좋은 교재 많아서 구단님 금방 합격 하실 겁니다!^^



구단씨 2023-10-19 16:03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해요. ^^
말씀처럼, 좋은 교재, 좋은 동영상 강의도 많더라고요.
내일배움카드로 실기만 2주 배웠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학원 종료하고, 유튜브 강의 골라서 듣고 있어요.
필기는 혼자 하고, 겨우 턱걸이 통과. ㅎㅎㅎ
실기를 이번에 마무리 하고 싶은데, 자꾸 버벅거리네요.
만점이 아니라 통과가 목적이니 기어코 붙어볼게요!!! ^^
 
아이 러브 모텔
백은정 지음 / 달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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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모텔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모텔을 다녀본 지도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몇 달 전 옆자리의 젊은 남자 동료가 무슨 축제에 간다고 숙소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보고 있는데, 숙박 앱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많이 놀랐다. 가격도 예상과 다르게 많이 올랐지만(당연하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더냐), 예전의 모텔이 아니었다. 일부러 호텔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물론 호텔을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과 이유도 분명 있다) 깔끔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진만으로 그 숙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지만, 어차피 직접 가서 미리 확인할 수 없다면 이 방법만으로 숙소를 정해야 한다. 주변의 교통정보는 물론이고 편의시설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소요시간이나 거리까지 알려주니 이건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 정말 편해졌구나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가 모텔 운영자의 속내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하다. 모텔은 단순히 숙박업소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고, 내가 일상에서 이용하는 많은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손님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게 이렇게 당연할 수가 없다. 물론 그중에는 진상 고객도 있고, 원칙을 지키지 않는 모텔 사장도 있을 테다. 그 가운데 지킬 것은 지키면서 장사하고자 하는 모텔 사장이 여기에 있다.


서른다섯 개의 객실을 운영하며, 방마다 손님을 받는 저자는, 그 방에 남겨진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모텔에 드나든다. 모텔은 여행자의 숙소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의 데이트 장소로 선택받기도 한다. 불륜 관계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직장인의 출장에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공간을 애정으로 가꾸면서, 생업을 이어나간다. 처음 서툴렀던 운영 방식에서 좌충우돌, 우여곡절도 여러 가지. 이제는 7년 차 베테랑 모텔 운영자가 되었다. 우아하게 들어와서 객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도망친 고객을 잡으러 가기도 하고, 연락도 없이 갑자기 그만둔 직원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미성년자 혼숙을 확인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결과를 맞닥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성희롱하는 손님도 있거니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취객은 모텔 로비에 소변을 보기도 하는 게 모텔에서 일하는 이가 마주하는 일상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감정노동이 심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본 기분이다. 그러면서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연 같은 이야기에 잠시 빠져들기도 한다. 사랑을 나누려고 모텔에 오는 어느 불륜 남녀는 무조건 잘못인 걸까. 잘못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타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모텔 종사자로 그냥 자기 임무만 다하면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프런트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사랑에 풍경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사랑을 그리고 상상한다. 그렇게 그들을 관찰하며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를 쌓아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버럭 화부터 났던 일도, 점차 차분하게 다른 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걸 보면 말이다. 모든 인간을 다 이해하면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해의 노력은 가능한 일이고, 그들의 사랑 역시 다 다른 모습이기에 사랑의 다양한 형태마저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을 펼친다.


읽으면서 재밌기도 했고, 몰랐던 세계의 한 부분을 엿본 것 같아서 놀랍기도 했다. 자영업자의 비애를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억울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까지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은 분야였음을 알게 된다. 가끔 지나갈 때마다 봤던 이 지역 터미널 근처의 모텔들, 우연히 밤에 근처를 지나가다가 마주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무서움과 취객들이 먼저 떠오른다. 많이 소란스럽고, 고성에 싸우는 사람들도 여러 번 봤다. 나에게 모텔의 이미지는 그 정도였는데,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봤던 이 지역 터미널 근처의 모텔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그곳에 드나들더라도, 그들 각자의 상황과 이야기가 있던 거라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사람이 있었다. 저자 역시 자기 일에 자부심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들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며 더 나은 모텔을 만들고자 애쓰는 게 바로 베테랑 모텔 운영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그곳의 이야기를, 손님이 아니라 운영자의 고뇌를 들으면서 알아가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러브모텔 #백은정 #에세이 ##모텔이야기 #모텔진상 #모텔사장의고뇌

##책추천 #문학 #한국문학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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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근 매너온도 47.1. 처음 쭈뼛쭈뼛 당근에 물건을 올려놓던 때가 생각난다. 군고구마 해먹겠다고 샀던 직화구이 냄비. 아무리 에어프라이어가 맛있게 구워줘도 직접 불에 구운 그 맛이 아니라면서, 굳이 구워먹겠다고 샀던 냄비가, 일 년 후 없어졌다.(어디에 두고 찾지 못한 거였지만) 다음해 못 찾은 냄비를 뒤로 하고 또 하나 샀는데, 사고 나서 일주일 후 집안 어디선가 냄비를 찾았다. , 이제 똑같은 냄비가 두개가 되었고,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는 냄비가 두개인데,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당근에 가입하기로 했다. 새 상품 가격은 오천 , 당근에 올린 가격은 삼천 . 너무 비싼가? 안 팔리면 어떻게 하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림이 울린다. 그 경쾌한 소리 당근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바로 집 앞으로 나가서 팔고나니, 이거 정말 신기한 거다. 나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고, 누가 이걸 살까 싶은 노파심은 저리가라, 분명 누군가 살 사람은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당근마켓에 빠져들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가끔씩 집안 물건을 정리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버리기 아까운 건 저렴한 가격에 당근에 올린다. 그리고 그 경쾌한 울림을 기다린다. 당근!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 또한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중고 시장에 서 있다. 재고되기 위해. 거기서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던 손이 만날 수도 있다. 고맙잖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어쩌다, 당근마켓 36페이지)


어쩌다 이런 책이 나왔을까. 아마도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면, 중고거래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뻗어나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는데, 혼자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벌써 다 읽었네. 사실, 이 책은 읽은 게 아니라,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느낌을 아는 사람끼리 만나서 수다 떠는 것 같다. 어쩌다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물건 거래 말고 무엇을 얻어가는 곳이 되었는지 말이다. 물론, 가벼운 수다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깊이 있는 이야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삶의 한 순간, 어떤 장면들이나 생각을 오래 생각하면서 읽기도 했다.


이 물건은 어떻게 전 주인 손에 들어가게 되고, 어쩌다 중고거래 목록으로 나왔을까. 저자처럼 나도 궁금했다. 누군가는 분명 필요해서 소유했을 테고, 그걸 가지고 있는 시간동안 의미가 생겼을 텐데,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가게 되는 과정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하고. 저자가 어렸을 적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고, 이방인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읽히는 동안 한국어는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자기 안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어를 붙잡고자 시인이 되었다는 말에, 잠깐 놀라기도 했다. 인간이 소중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나였다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한국어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방인의 삶에서 그리워지는 건 아마도 과거의 시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저자 역시 그 시간이 그리워 사진가가 되었다고 하니, 사람 살아가는 마음 참 비슷하고, 닮은 게 마냥 또 신기하다.


누군가 찾아주길 기다리는 물건의 마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느낌을 프리랜서인 자신의 일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찾아주어야 일이 생기고, 그에 따른 수입으로 연결되니까. 그러니 중고 시장에 올라온 물건이나, 상점의 진열에 전시된 물건이나, 누군가 찾아줘야 수입이 생기는 프리랜서나, 뭐 비슷하다는 건데. 그 비슷함에 간절함이 있다.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 당근거래의 현장이 아닐까. ^^ 비슷한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오래된 것을 붙잡고 싶어 하고, 지나간 것을 떠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들어오고 나가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에서, 온갖 사람들이 드나든다. 물건 값을 깎으려고도 하고, ‘쿨거래로 빨리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고, 무료로 나누기도 하면서 이곳을 단순히 거래를 위한 시장과 다른 곳으로 만든다. 그런 것을 보고 작가는 말한다.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당근거래는 단순히 내가 가진 물건을 중고로 사고파는 장을 넘어서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사실 바빠서 그렇지, 시간이 될 때 앱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다. 버튼을 잘못 눌러서 중고거래 말고 다른 카테고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에도 있는데, 누군가는 운동하는 일상을 올려놓는다. 어디서 주운 분실물을 제보하기도 한다. 어느 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한다고 광고도 한다. 무엇보다 생활정보를 나누는 데서 나도 약간 의아하기는 했다. ‘,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나 고민을 올릴 수도 있구나, 누군가 이 글에 자신의 의견을 남길 수도 있구나, 당근마켓, 이곳에서.’ 보통은 네이버 지역 카페에서 봤던 장면을 당근마켓에서 보니 좀 신기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이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 냄새를 마구 풍긴다. 그리고 가깝다. 내가 사는 이곳, 지방 소도시의 작은 동네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아는 그곳에서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마트에서 장을 본다. 그러면서 나도 저자처럼 고민을 떠올린다. ‘동네이웃이 어디까지일지. 바로 앞집 사는 아저씨와도 몇 번 인사한 게 전부인 이런 삶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와 우연처럼 마주치면서 안부를 물을 수도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까 궁금하다.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물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울지 않는 법을 구매자는 배우게 된다. 아름다운 의자는 또 올 것이다. 물론 똑같은 물건은 거의 오지 않는다, 당근마켓에서는. (어쩌다, 당근마켓 65페이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고거래 팁(?)도 배울 수 있으니 잘 살펴보길 바란다. , 이미 아는 노하우일 수도 있지만, 네 맘과 내 맘이 같으니, 서로 공감하면서 거래하면 더 훈훈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러니 더 매너를 지키면서 거래할 수 있는 자세? 순식간에 팔려버려 내 것이 되지 못한 물건을 보는 안타까움도 있고, 언제 팔릴까 싶어 하염없이 기다리다 몇 년이 지난 후 갑자기 팔린 물건도 있다. 빠른 정리가 목적일 수 있겠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배우는 곳이었다는 거. ^^ 예를 갖춰 최선을 다해 가격 흥정도 가능하고, 더운 날 물건 사러 온 구매자에게 얼음물을 대접하는 판매자도 만날 수 있다.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익명의 공간이지만, 채팅으로 물건과 다른 것을 거래하는 마켓이지만, ‘매너온도라는 장치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어떤 게 이 물건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사고파는 물건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는 그런 곳, 당근마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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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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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는 물론이고 사형 집행은 더더욱 진행되지 않는 나라. 사형 집행이 단순한 의미도 아니고, 외교적인 이유도 있다고는 하니 쉬운 문제는 아닐 테다.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범죄심리 전문가의 말을 떠올려보자면, 연쇄살인을 일으킨 범죄자를 만났을 때 그가 물었단다. 자기 사형이 선고되는 거냐고. 아무 잘못 없는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으면서, 정작 자기 죽음은 겁나는 거였구나 싶은 게, 어쩌면 본보기라도 이런 잔혹 범죄에 사형 선고가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집권 3년 차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쓸고 있는 와중에 사회적 이슈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얼마나 일을 못 했으면, 한번 떨어진 지지율이 오르지도 못하고 임기 끝나가는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어지간히 일을 못 하는 대통령인가 보다. 대통령과 주변인들은 지지율 상승을 위해 시나리오를 짠다. 바로 오랫동안 없었던 사형 집행을 이뤄내는 것.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보다 더 큰 이슈는 당분간 없을 것이고, 무너진 지지율 회복에도 분명 효과가 있을 거로 여긴다.


그동안 사형 선고는 있었지만, 사형 집행은 없었던 세월이 얼마나 길었던가. 뉴스를 장식하는 잔혹 범죄를 접할 때마다 사형 선고를 운운하지만, 정작 사형 선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사형 집행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거야말로 정부가 준비한 깜짝쇼가 될 테다. 정부 관계자들이 사형수 60여 명 중 사형 집행의 주인공 3명을 선발하는 작업을 한다. 인권을 외치는 이들에게 대항할 인간미 넘치는 장면도 연출하려고 계획한다. 사형 집행 전날 사형수가 원하는 음식으로 최후의 만찬을 제공하는 게 바로 그거다.


소설은 이 치밀한 계획과 이 계획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이게 참 묘하다. 정부 관계자들이야 자기네 원하는 지지율 회복이 목적이라지만, 그 구성에 모인 사람들 각자는 또 자기만의 목적이 있다. 참관인으로 선발된 기자는 특종이 목적이겠고, 일반인 위원은 자기를 알리는 게 원하는 일이다. 그 외의 사람들, 정부 관계자들이야 자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정치적 목적을 이뤄내는 게 궁극적 바람이다. 그 중심에 요리사 X’가 있다. 철저하게 신분을 감춰주는 것을 조건으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책임진다. 가장 궁금하고 가장 뜬금없이 주인공처럼 비치는 인물로 보였던 요리사 X.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분위기를 바꾸고, 절대 입을 열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숨겨진 장소를 말하는 등 사형수들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모습을 장식하고 떠난다.


읽다 보면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지만, 물론 처음부터 그걸 알 수는 없다. 그저 막연하게 이거 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과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보고) 사형수들이 보인 반응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한 명의 사형수가 음식을 먹고 떠나갈 때마다, 요리사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요구나 설명이 없었는데도 사형수의 마음을 깊게 건드릴 수밖에 없는 음식을 제공하며 그들의 마지막에 다른 모습을 보이고 가게 하는 능력을 갖춘 이의 정체가 궁금했던 거다. , 결말을 보면 다 알게 되지만, 읽는 내내 이 궁금증으로 소설의 몰입감은 저절로 높아진다.


특이한 소설이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는데,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과 목적 있는 사형 집행 참여에 놀랍기도 했다. 소설의 끝부분에 다다라야 이 조각들이 모여 소설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사형 집행의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는 마음이 갈팡질팡하다가, 사형수의 잔인함에 눈을 뜰 수 없을 때는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 이 모든 선택은 각자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의견일 수도 있겠다는 씁쓸함까지.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못하는 마음이었던 거다. 그러면서 소설 속에서 묻는 것들을 생각한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형수에게 인권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혹시라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사형수가 된 건 아닌지. 웃으면서 읽었는데, 추리 소설이 아닌가 싶을 만큼 반전이 있고,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맞닿은 이야기에 더 어려웠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서까지 쓸모를 찾는 등장인물들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기심이 그대로 담긴 것 같아서 서늘했다. 사형제도의 존폐를 따지는 것 역시 각자의 이익을 계산하며 이뤄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로 소설을 즐기게 하면서 상당히 깊은 고민을 남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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