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당근 매너온도 47.1. 처음 쭈뼛쭈뼛 당근에 물건을 올려놓던 때가 생각난다. 군고구마 해먹겠다고 샀던 직화구이 냄비. 아무리 에어프라이어가 맛있게 구워줘도 직접 불에 구운 그 맛이 아니라면서, 굳이 구워먹겠다고 샀던 냄비가, 일 년 후 없어졌다.(어디에 두고 찾지 못한 거였지만) 다음해 못 찾은 냄비를 뒤로 하고 또 하나 샀는데, 사고 나서 일주일 후 집안 어디선가 냄비를 찾았다. , 이제 똑같은 냄비가 두개가 되었고,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는 냄비가 두개인데,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당근에 가입하기로 했다. 새 상품 가격은 오천 , 당근에 올린 가격은 삼천 . 너무 비싼가? 안 팔리면 어떻게 하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림이 울린다. 그 경쾌한 소리 당근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바로 집 앞으로 나가서 팔고나니, 이거 정말 신기한 거다. 나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고, 누가 이걸 살까 싶은 노파심은 저리가라, 분명 누군가 살 사람은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당근마켓에 빠져들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가끔씩 집안 물건을 정리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버리기 아까운 건 저렴한 가격에 당근에 올린다. 그리고 그 경쾌한 울림을 기다린다. 당근!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 또한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중고 시장에 서 있다. 재고되기 위해. 거기서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던 손이 만날 수도 있다. 고맙잖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어쩌다, 당근마켓 36페이지)


어쩌다 이런 책이 나왔을까. 아마도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면, 중고거래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뻗어나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는데, 혼자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벌써 다 읽었네. 사실, 이 책은 읽은 게 아니라,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느낌을 아는 사람끼리 만나서 수다 떠는 것 같다. 어쩌다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물건 거래 말고 무엇을 얻어가는 곳이 되었는지 말이다. 물론, 가벼운 수다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깊이 있는 이야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삶의 한 순간, 어떤 장면들이나 생각을 오래 생각하면서 읽기도 했다.


이 물건은 어떻게 전 주인 손에 들어가게 되고, 어쩌다 중고거래 목록으로 나왔을까. 저자처럼 나도 궁금했다. 누군가는 분명 필요해서 소유했을 테고, 그걸 가지고 있는 시간동안 의미가 생겼을 텐데,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가게 되는 과정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하고. 저자가 어렸을 적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고, 이방인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읽히는 동안 한국어는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자기 안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어를 붙잡고자 시인이 되었다는 말에, 잠깐 놀라기도 했다. 인간이 소중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나였다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한국어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방인의 삶에서 그리워지는 건 아마도 과거의 시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저자 역시 그 시간이 그리워 사진가가 되었다고 하니, 사람 살아가는 마음 참 비슷하고, 닮은 게 마냥 또 신기하다.


누군가 찾아주길 기다리는 물건의 마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느낌을 프리랜서인 자신의 일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찾아주어야 일이 생기고, 그에 따른 수입으로 연결되니까. 그러니 중고 시장에 올라온 물건이나, 상점의 진열에 전시된 물건이나, 누군가 찾아줘야 수입이 생기는 프리랜서나, 뭐 비슷하다는 건데. 그 비슷함에 간절함이 있다.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 당근거래의 현장이 아닐까. ^^ 비슷한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오래된 것을 붙잡고 싶어 하고, 지나간 것을 떠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들어오고 나가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에서, 온갖 사람들이 드나든다. 물건 값을 깎으려고도 하고, ‘쿨거래로 빨리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고, 무료로 나누기도 하면서 이곳을 단순히 거래를 위한 시장과 다른 곳으로 만든다. 그런 것을 보고 작가는 말한다.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당근거래는 단순히 내가 가진 물건을 중고로 사고파는 장을 넘어서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사실 바빠서 그렇지, 시간이 될 때 앱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다. 버튼을 잘못 눌러서 중고거래 말고 다른 카테고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에도 있는데, 누군가는 운동하는 일상을 올려놓는다. 어디서 주운 분실물을 제보하기도 한다. 어느 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한다고 광고도 한다. 무엇보다 생활정보를 나누는 데서 나도 약간 의아하기는 했다. ‘,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나 고민을 올릴 수도 있구나, 누군가 이 글에 자신의 의견을 남길 수도 있구나, 당근마켓, 이곳에서.’ 보통은 네이버 지역 카페에서 봤던 장면을 당근마켓에서 보니 좀 신기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이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 냄새를 마구 풍긴다. 그리고 가깝다. 내가 사는 이곳, 지방 소도시의 작은 동네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아는 그곳에서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마트에서 장을 본다. 그러면서 나도 저자처럼 고민을 떠올린다. ‘동네이웃이 어디까지일지. 바로 앞집 사는 아저씨와도 몇 번 인사한 게 전부인 이런 삶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와 우연처럼 마주치면서 안부를 물을 수도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까 궁금하다.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물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울지 않는 법을 구매자는 배우게 된다. 아름다운 의자는 또 올 것이다. 물론 똑같은 물건은 거의 오지 않는다, 당근마켓에서는. (어쩌다, 당근마켓 65페이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고거래 팁(?)도 배울 수 있으니 잘 살펴보길 바란다. , 이미 아는 노하우일 수도 있지만, 네 맘과 내 맘이 같으니, 서로 공감하면서 거래하면 더 훈훈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러니 더 매너를 지키면서 거래할 수 있는 자세? 순식간에 팔려버려 내 것이 되지 못한 물건을 보는 안타까움도 있고, 언제 팔릴까 싶어 하염없이 기다리다 몇 년이 지난 후 갑자기 팔린 물건도 있다. 빠른 정리가 목적일 수 있겠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배우는 곳이었다는 거. ^^ 예를 갖춰 최선을 다해 가격 흥정도 가능하고, 더운 날 물건 사러 온 구매자에게 얼음물을 대접하는 판매자도 만날 수 있다.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익명의 공간이지만, 채팅으로 물건과 다른 것을 거래하는 마켓이지만, ‘매너온도라는 장치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어떤 게 이 물건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사고파는 물건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는 그런 곳, 당근마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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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부터 북플이 안열립니다.
오늘은 알라딘 앱도 안열려요.

무슨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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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8-19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돼요 ㅠㅠ 어젯밤부터요 알라딘앱으로는 되네요 왜 그럴까요???

구단씨 2023-08-19 22:04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 알라딘 앱은 되는데 북플은 여전히 안되네요.

황후화 2023-08-19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되다가 이제 되네요 ㅠㅠ

구단씨 2023-08-19 22:04   좋아요 2 | URL
저는 북플이 여전히 안되고 있어요.
앱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도 안되네요. 뭔일인지...

황후화 2023-08-1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 저도 삭제하고 다시 하긴했는데요.....
그러게요 뭔일일까요?

구단씨 2023-08-21 19:10   좋아요 2 | URL
이유를 저도 잘.... ^^
다행히 오늘 오전에 복구가 되었네요.
 


집에 물이 샌다. ㅠㅠ

오전에 발코니 바닥으로 물 고이는 거 보고 멘붕 왔다.

어떡하지?


에어컨 호스 밑으로 물이 고여 있고, 닦아도 계속 물이 고이고 있어서

에어컨 틀지도 않았는데 물이 샌다고 AS 불렀다.

다음주로 예약했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중간에 뜬 시간이 있어서 와서 봐준다고.

와서 보더니 에어컨의 문제가 아니라, 발코니 창 아래로 바닥에서 물이 새고 있더라.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출장비 2만원 나갔다.


오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누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혹시라도 아랫집에 문제 생길까봐 심장이 막 뛴다.


3년 전에 집 수리하고 들어왔는데, 그때 담당했던 곳에 전화했더니

자기가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회사 서비스센터에 연락하라고 서비스 접수 링크 알려준다.

일단 접수하고 물 새는 곳을 계속 살펴봐도, 나는 당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샷시 시공의 문제가 아니라, 혹시라도 타일 업자 새로 알아보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또 생긴다.


다시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서 문의했다.

발코니 물이 새고 있는데, 한번 살펴봐 달라고.

관리실 과장님이 오셔서 보더니,

샷시는 잘 시공되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샷시 하단 부분으로 물이 못 나가고 안으로 새고 있는 거 아닌가 말씀하신다.

10년 AS 해준다고 해서, 아는 샷시 업자 있는데도 일부러 돈 더주고 큰 회사에서 했는데,

이럴 때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다. 일단 와서 봐주기는 할 거 아닌가. 

그래도 지금 바로 해결 안 되니까 머릿속에 걱정만 한 가득.


혹시 외부 크랙이나 바닥 타일 시공 문제는 아닐까 관리실 과장님께 여쭤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는 말씀. 일단 믿고 샷시 서비스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나마, 확장된 거실이 아니어서 이럴 때는 얼마나 다행인지...

처음 공사할 때 거실 넓게 쓰고 싶어서 확장 고민을 살짝 했는데, 

차라리 분리된 공간이어서 낫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게 가장 좋은 거...


계속 비 소식이 있고, 그냥 비도 아니고 미친듯이 내리고,

계속 안전안내문자 오고 있어서 더 무섭고,

이 지역은 오늘도 호우경보, 내일은 더 심한 경보가 내릴 듯한데, 어쩌고 있어야 하는지...


나, 잠 못 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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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7-1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에 물 들이차서 코킹인가를 다시했는데 샤시 하신지 얼마 안 되셨으면...as받으셔야 겠네요... 물 생기는 대로 잘 닦거나 우수관쪽으로 돌리셔서 아랫세대 누수 안 되는 것도 신경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거 변상이 더 크고 골치 아픈 거 같더라구요...) 무사한 여름 되시길...

구단씨 2023-07-14 16:33   좋아요 1 | URL
네. ㅠㅠ
저희집 물 새는 건 저희집 문제니까 골치 아파도 해결하면 되는데,
아랫집과 연결되어 문제 생길까봐 걱정되는 게 더 심해요.
관리실에서는 아랫집 영향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지금은 뭐든 불안하네요.

적당히 내리는 비가 아니면, 반갑지 않네요. 에휴.
님도 여름 무사히 지내시길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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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는 한마디로 그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막막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 태도를 설명해야 하는데, 참 어렵기만 하다. 나는 예민함이 성격의 한 종류로 여겼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민함에 관해 정신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등 4가지로 나누어 사례를 들려준다.


저자는 전작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그 예민함을 잘 극복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예민함의 정신의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사례를 들려주면서, 예민함에 관련한 여러 감정의 근원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바꿔보는 실천법을 제시하며,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예민함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기대되기도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면, 이를 극복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예민함은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보니, 나 역시 이 성향을 더 잘 파악하고 장점으로 만드는 방법이 많이 궁금하기도 하다.


특히 사람마다 생각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다라는 저자의 말을 많이 생각했다. 아마도 예민함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 속도의 영향은 더 크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 속에서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어떤 상사는 성질이 너무 급해서 내 마음을 쪼그라들게 한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자 애쓰던 사람에게 찾아온 위기는 또 어떤가. 갑자기 사망한 남편의 빈자리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온몸으로 폭력을 표현하는 남자의 사연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4가지 내용이 다 특별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예민함인가 찾아보기 바빴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는 않지만, 특히 소리에 민감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 소리에 반응하기도 한다. 여러 명이 대화하면서 유독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과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나와 다른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데, 그에 관해 격한 반응을 보이면 감당하기 어렵다. 상대의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아마 정식으로 진료를 받는다면 어떤 병명이 나올까 두렵기도 하다. 불안과 우울은 어떤 면에서 같은 근원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았기도 했다. 감정의 불안은 점점 우울을 같이 불러오기도 하고, 이는 타인을 의식하는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완화할 수도 있다.


많이 놀라웠던 건 트라우마였다. 혀가 아픈 영주 씨의 이야기는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심한 우울증신체화 장애’,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가 느끼던 육체적 통증은 어딜 가고, 이름마저 낯선 이 병명들 앞에서 혹시 더 깊은 우울증을 겪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영주 씨에게는 큰아들을 잃은 사건이 있었고, 이 충격으로 영주 씨는 마치 아들이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에 이른다. 남편은 이런 영주 씨를 보다 못해 아들의 죽음을 아내 탓으로 돌렸다. 그때부터 영주 씨는 아들을 야단쳤던 자기 혀에 죄책감을 느끼고 혀의 마비 증상이 시작됐다. 이 상태에서 중요한 건 영주 씨의 혀를 마비시키고 통증을 느끼게 한 원인을 제거하는 거였다. 아들의 죽음이 영주 씨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남편과 함께 소통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게 치료의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예민함은 그 사람의 단점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저 성향의 하나로 인정하고, 예민함이 나의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예민함으로 나를 피폐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예민함을 잘 활용해 능력으로 만드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된 컴퓨터와 같다고 말한다. 다른 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때문에, 기발한 생각들도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특히 섬세함을 요구하는 부분에서 그 역량을 뽐내기도 한다. 자기가 느끼는 예민한 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을 더 잘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것을 싫어해서 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함께 해야 하는 조직 생활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나에게 했을 때 싫은 행동을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하기 싫어지는 것과 같다. 자기의 예민함을 잘 조절한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가장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예민함을 장점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하다고, 트라우마의 원인을 찾아 극복하고, 좋은 생활 리듬을 만들어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자꾸만 파고드는 나쁜 기억을 끊어내는 방법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혼자 해결 가능한 시도로 전환을 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 타인의 예민성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심각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민함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무슨 걱정인지도 모를 걱정부터 하면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나의 예민함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이 책과 관계없는 불안함이 먼저 밀려왔던 거다. 내일부터 시작될 운전면허 시험은 어떻게 할지, 학원 등록해야 하는데 원하는 수업이 없어서 어떻게 상담받아야 할지, 다음 주부터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꾸 비가 와서 거슬린다는 등 그냥 주어진 대로 하면 되는 일을 걱정부터 한다. 피해갈 수도 없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이 먼저 나에게 달려든다. 오늘 하루 이 책에서 들려주는 나를 안심하게 하는 말들을 되새겨보고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고, 잘못해서 누가 뭐라고 할까 봐 걱정하기보다는 차분하게 하면 된다고. 이제는 예민하다는 성향에 불시로 끼어드는 불안이 문제의 시작이라는 걸 알고 나니, 나를 더 차분하게 하는 생각들을 찾게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이제 잠을 좀 자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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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수 일지
김신회 지음 / 여름사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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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이 한 마디로 이미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 , . 누군가 내는 소음은 아니었다. 살펴보니 갑자기 거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이미 젖어서 내려앉은 천장 벽지와 바닥은 적신 물 때문에 받쳐놓은 그릇. 한밤중에 발견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나는 이미 이 상황에서 저자에게 빙의되었다. 잠을 잘 수 없는 건 당연했고,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머리카락이 줄줄 빠지기 시작했다.


밤이라는 시간이 문제다. 이걸 발견했을 때 바로 문제 해결의 시작을 달려야 하는데, 이 늦은 시간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문제였고, 밤새 물 떨어지는 걸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아파트 같은 경우 천장에서 물이 샐 때 거의 윗집의 문제인데, 윗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이미 아는 상황에서 말도 섞고 싶지 않을 때 더 큰 문제가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저자 역시 윗집이 이사 왔을 때부터 안 좋은 대면을 했고, 그러다가 누수까지 발생했으니 더 껄끄러웠을 테다. , 저절로 상상된다.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조차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이 민감한 문제로 얼굴 보고 대화해야 한다는 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도대체 얘네는 뭘 했기에, 어디에서 이렇게 물이 줄줄 떨어지게 하는 거야!


고요한 일상에 일어난 이 일은 단순히 누수라는, 물이 새니까 안 새게 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누수를 발견한 순간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이게 해결될 때까지 몸과 마음이 불편해야 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난다.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 일단 해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저자의 위층은 이미 이사 오기 전부터 갈등을 일으켰던 관계라 원만한 대화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 천장이 샌다고 말했는데도, ‘그래서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과 좋은 대화가 될 리 없다. 적어도, 우리 집 때문에 다른 집에 피해가 생겼다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먼저 아닌가. ‘그래, 네가 하는 말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가 봐.’ 뭐 이런 분위기로 말하는 상대와 계속 마주하는 사람이 있을까? 피해자는, 피곤하다. 원래대로 되기 전까지 집에서 매일 그 피해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게 스트레스다. 빨리 마무리 짓고 이 문제를 더 생각할 일이 없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이걸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피해를 준 이가 해결해줘야 하는 거다. 그래, 이게 문제였구나. 내가 아니라 누군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더 짜증이 나는 거였구나.


,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저자의 집에 생긴 누수가 해결되긴 했지만, 그 해결 과정에서 겪었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인간의 심리도 알게 되었고, 원만하게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 시간 동안 자기를 발견하는 의미도 있었다. 난데없는 누수가 일상을, 삶을 확 바꿔놓은 거다.


몇 년 전부터 SNS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조금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걸 알게 될 때,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걸 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쌓여 연륜이 된다. 어쩌면 이번에야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는 중인지도 모른다. (105페이지)


골치가 아픈 일에 일상이 평온하지 못했을 텐데, 성난 파도가 밀려와 물을 한 바가지 퍼붓고 가듯 다 젖어있던 순간에 새로운 생각이 파고든다. 글을 쓰는 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사건은 발생했다. 일상의 위기는 쓰지 못하던 날들에 불을 붙인다. 아마 분노의 순간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나중에 더 크게 당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매일 시끄러웠던 누수의 과정을 기록한다. 마음이 급해 두서없이 써 내려가도 그걸 확인할 사이도 없었다.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 화가 났을 테니까. 하지만 윗집과의 누수 분쟁을 해결하는 동안 깨닫는다. 윗집을 탓하던 모든 순간을 돌이켜본다. 내가 꼭 좋은 이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내가 정말 피해자인가, 하는 물음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한다.


누수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로 변하면서, 오늘을 사는 한 사람의 또 다른 일상이야기가 된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업으로 삼고 먹고 살아왔는데 쓰지 못하던 시간을 힘들어했던 순간은 잊힌 듯하다. 신경 쓰이는 누수 문제에 전투적인 자세로 변하고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게, 오히려 글 쓰는 일상으로 전환된 거다. 누수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일상의 모든 순간을 불러온다. 혼자 사는 여성 가구여서 과거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퍼진다. 반려견을 돌보며 살기에 누수 문제는 저자 혼자만을 위한 일이 아닌 게 된다. 말 그대로, 집에 누수가 되면 인생이 누수된다는 저자의 외침이 글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이 물에 젖고 축 처져 있을 것 같은데,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왜냔 말이지.


저자가 아니라 읽는 내가 전투적으로 되어버렸다. 성격 탓인지 속이 좁아서 그런지, 만약 내가 사는 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좋은 말 안 나간다. 그래, 나 예민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자체부터 처리 과정, 마무리되었어도 가라앉지 않을 짜증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혼자 사는 단독주택에 누수가 생겼어도,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주인이었어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인데, 누군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저자가 내용증명까지 보내던 순간에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피해자의 피폐해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해자에게 더는 대화할 의지가 생기지 않으니, 서로 얼굴 보면서 언짢은 말 오고 갈 필요 없이, 그래, 법으로 해결하자, 싶었다.


아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외치던 법만으로는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곳곳에서 끼어든 생각들은 그동안의 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돈 때문에 힘들었는데, 돈이 생기고 집을 마련하고 보니 이 변화에 안심하지 못하는 인간이, ‘였던 거다.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생기는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게 된 것을, 살면서 점점 선택의 순간이 많아지는 것을, 그때마다 얼마나 잘 선택(?)하고 옳게만 살아왔는지 되짚는다.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경험과 시간이 쌓일수록 직관에 따르는 게 뒤탈이 없다. ‘해야 할 것 같은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마음의 소리는 직관적인 선택이다.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세상이라면, 직관적인 선택의 기준은 ’. 내가 이제껏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일은 고집이나 뒤처짐이 아니다. 살면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온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다. (178페이지)


앞으로 사는 동안,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마주할 거고 그때마다 해결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 모르면 모른 채로 살아가는 인생도 좋긴 하다만, 뭔가를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새삼 확인한다.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게 아니니까 고민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는 거겠지. 그때마다 또 생각하게 될 테다. 이게 맞는 건지, 이 마음을 향해 가는 게 옳은 건지.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은 건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써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선택을 나무라지는 말자. 누구의 선택이든, 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지도 말자고.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고, 당신은 언제나 피해자였다고, 당신의 인생은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싶어서 말이다. 어떤 순간은 내가 선택해서일 수 있고, 어떤 인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놓여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나이를 더 먹고 많은 일을 겪어야 어른이 되는 건지, 인생의 매 순간 다 잘하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 의문은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도 있었고, 지금도 가끔 나를 멍 때리게 하는 생각인데, 이제 확실히 알았다. 내가 앞으로 더 많은 일을 어떤 식으로 겪는다고 해도, 언제나 다 잘하는인간이 될 수 없을 거고, 항상 옳은선택만 하지도 못할 거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튀어나와 나의 인생에 누수를 만드는지 모른다는 거다. 몰라도 되는 삶은 안락할 수 있지만, 그게 꼭 만족스럽고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도 있다. 일상이 너무 순조로운 것도 마냥 좋은 인생은 아닐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느낌은 뭔지. 아버지의 병원 생활 몇 년은 다음에 이어지던 엄마의 병원 생활에 당황하지 않게 해줬다. 몇 년의 병원 생활과 그로 인해 처리해야 했던 많은 일을 발품 팔아가며 해결하다 보니, 처리 담당자보다 더 많이 알게 되어 오히려 내가 그 직원에게 알려주는 웃픈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시골집의 오래된 땅 문제로 골치가 아팠는데, 그 문제 역시 여기저기 확인하며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 나의 인생 경험치를 ‘+1’ 해줬다.


오래 묵었거나 갑자기든 튀어나와 일상을 지치게 했던 이런저런 일들, 피해갈 수도 없고 마주쳐야만 했던 일을 또 그렇게 해결하면서 하나씩 건너가다 보니, 적어도 이제 같은 일에는 더 당황하지 않게 되겠지 싶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짜증은 가라앉고, 순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래, 그거면 됐지.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도 없다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겠어 하는 마음. ‘몰랐던 걸 하나하나 깨치며 단단해지는 어른’(105페이지)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금도 겪고 있다. 이러다가는 죽기 전에는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겠나, 어른이 되겠다고 계속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또 그렇게 살아가야지 뭐.


뭐든 의심부터 하고 나의 피로함을 앞세워 날을 세웠던 것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이야기에 내 일상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세상을, 사람을 조금은 더 믿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었다. ‘누수 때문에 죽을 것 같았는데, 누수 때문에 결국 살았다라는 작가의 마음을, 딱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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