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3년 정도 신경과 진료를 받고 있다. 그전 병원에서 증상에 대한 원인을 찾지 못했던 것을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찾아주고 꾸준히 진료해주고 있다. 근처 대학병원과 연계한 병원이라 여기서 안 되면 소견서 가지고 대학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잘 진료 받고 있고 큰 문제 없이 다니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두 달에 한 번 정도 가고 있는데, 처방받는 약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거의 같은 증상으로 찾아가니 그 증상을 해결하는 약도 그리 많이 달라질 게 없겠지.

 

이번에는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진료를 받으러 갔다. 진료실에 들어서고 선생님이 환자에게 하는, 늘 반복되는 질문이 계속됐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상태는 어떠한지, 잠은 잘 주무시는지... 늘 그렇듯 나오는 대답도 똑같다. 요즘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크게 변함없는 일상을 얘기했다. 선생님에게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언급한 적은 없다. 대부분 두루뭉술하게 ‘이렇다’라고 얘기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생님이 좀 더 질문을 늘린다. ‘이렇다’라고 말하니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묻는다. 신경 쓰고 있는, 고통스러운 그 문제가 해결이 될 일인지 물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처음이다. 3년 동안 마주한 그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거라고 한 번도 예상한 적도 없다. 정신과 진료도 아닌데 이 선생님과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몰랐다. 어차피 환자는 엄마이고, 나는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같은 진료실에 동행했을 뿐이다. 점점 얘기가 길어지자 선생님은 나를 향해 묻기도 하고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늘 그랬다. 이번에 다른 점은 좀 더 사적인 이야기가 깊어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뿐이다. 선생님이 하는 말도 평소보다 많아졌다.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을 계속했다. 환자는 엄마인데, 선생님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펑펑 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평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엄마하고만 공유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비정상인데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따져 물었다. 이건 분명 잘못된 거잖아요, 누구라도 욕할 만한 생각인 거잖아요, 저는 지금 정말 그렇게 하고 싶거든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생각이 없거든요? 잠도 잘 자고 싶어요, 웃고 싶어요, 밥도 맛있게 먹어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 행복이란 게 가능해지려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바로 그거거든요. 그런데 해결되지 않을 거거든요.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일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누구도 그런 소원을 바라는 사람이 없을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비정상인 거잖아요...

 

한참을 들으며 중간에 한 번씩 대꾸하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정상입니다.”

 

“어떻게 이게 정상일 수가 있어요. 누가 봐도 저를 욕할 일인데요? 이런 마음을 욕하고 벌을 주려고 할 텐데요.”

 

“그게 정상입니다. 그런 상황에 그런 마음 드는 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정말요?”

 

“네. 맞아요.”

 

“정말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정상인 거니까요.”

 

계속 의심하면서, 끊임없이 물으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정상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

 

하아... 또 한 번 통곡하듯 울고 말았다. 이런 비정상이 있을 수 있나 싶게 생각했던 게 정상이란다. 그게 맞댄다. 그러니 염려 말라고 한다. 그런 마음이 들면 드는 대로 괜찮은 거란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이러이러한 마음이 들게 될 텐데, 그것마저도 거부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또 이러이러한 마음이 들게 될 거라고. 그게 순서이고, 거부할 수 없고, 그런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고. 의학적으로도 그렇고, 오랜 시간 많은 환자와 가족들을 보면서 확인한 결과, 열이면 열 모두 그러하다고. 경험에서 나온 말이고, 정신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니 그것마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게 너무 싫다고 했는데,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싫다고, 거부한다고 해서 그런 마음이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 그때가 되면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지금은 또 지금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게 덜 불행해지는 방법이라고 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불화가 생기는 이유는 상대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 라고 했다. 상대에게 무심하고 아무 상관도 없을 거라면 불화가 생길 이유가 없다고.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더 좋은 관계가 되고 싶어서 상대에게 자꾸 바라는 게 생기는 거라면서. 그게 채워지지 못할 때 불화가 생기고, 고통의 시간이 이어지며, 상처로 깊숙하게 남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 계속 생각했다.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상대에게 나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의지가 있었나? 전혀 없다. 칼처럼 잘라내고 끊어내고 싶었지, 어떤 관계가 되고 싶지도 않고 끊어내고 싶은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면? 내가 지금 겪는 이 고통의 무게만큼이나 나는 그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던 게 있었던가? 있다. 오직 한 가지가 있더라.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원하는 단 한 가지가 있었다. 그걸 바라는 게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일인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자꾸 머릿속에 내가 비정상이라고 배워왔던 생각들이 가득한 건데... 병원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선생님 말씀을 자꾸 곱씹고 있다. 오직 한 가지 바라고 있는 그것마저 버린다면, 무심해진다면, 눈 감고 귀 닫고 모른 척한다면, 이 불화도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지는 중이다.

 

 

진료시간 5분을 넘기는 일이 굉장히 힘든 일인데, 선생님은 우리에게 20여 분의 시간을 내주었다. 오래 보아온 환자와의 유대감을 만들어준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풀어내지 못했던 진짜 원인을 이렇게 찾아내어 준 걸까. 일어나서 진료실 밖으로 나오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선생님, 다음에는 엄마가 아니라 제가 진료받으러 올게요. 저에게 더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고맙습니다.”

 

진료실 밖으로 나가면서 인사하니 선생님이 웃더라. 3년 동안 다니면서 가벼운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 그 선생님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 웃는 걸 처음 봤다. 다음에는,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을까요? 라고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동안 어떤 병원에 다녀도, 대학 병원이든 동네 병원이든, 의사들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가 없었다. 그들이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인간적으로 호감이 없던 대상이었다. 실제로 여러 의사를 겪으면서 반감이 생길만한 일도 있었던지라, 그저 한 개인이 선택한 직업이고 그들 나름의 밥그릇을 챙기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선생님과 보낸 20여 분의 시간이 그 생각을 바꿔놓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다. 적어도 이 선생님에게만은 의사 이전에 인간적인 신뢰를 무한히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선생님이 내놓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정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나는, 정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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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다이어리의 첫 장에 올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들. 그래도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일들. 어쩌면 불가능할 확률이 높기에 조금은 모험 같은 바람을 담아 소박한 소망을 적었다. 남자는 우연히 여자의 다이어리의 그 페이지를 보게 된다. 여자를 만나러 가는 어느 날, 남자는 다짐하며 집을 나선다. 여자가 다이어리에 적은 그 많은 바람 중의 하나는 이뤄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자의 목록 중 한 가지를 이뤄주려 어딘가를 향한다. 여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가능’으로 바꿔놓는다. 여자는 놀랐다. 이렇게도 이룰 수 있는 일이었구나, 하는 마음에.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이 남자로 이뤄지는 순간 때문에... 남자는 천기누설을 알려주겠다며 말한다. 다음 생이라는 건 없다고, 설령 다음 생이 있다고 해도 그때 다시 태어나면 전생을 기억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기억도 못 하는 전생에서 바라던 것을 그때 이룰 수 있겠느냐고. 그러니 이번 생에서 하고 싶은 건 지금, 이번 생에서, 지금, 해야 한다고...

 

 

 

 

 

 

 

 

 

좋아하는 소설의 한 장면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남자가 저 말을 하는 건 여자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쑥스러워서 핑계 대는 말일 거로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소설을 몇 번 재독 했는데, 그때마다 저 장면에서 한참을 멈추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남자가 마음 표현하는데 어색해서 하는 말일 거로 생각했던 게, 두 번째 세 번째 읽는데 점점 남자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정말 다음 생이라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러니 이번 생에서 다음 생으로 미루는 일을, 다음 생에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어지곤 했다. 종교적인 의미로도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걸 믿는다거나 믿지 않는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맞겠다. 그 정도로 나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가끔 궁금해진다. 남자의 말처럼, 정말 다음 생이 없을까. 이번 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위로하는 마음에서라도 하게 되는 다짐을, 정말 다음 생에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걸까.

 

‘만약’이라는 가정을 좋아하지도 않고, ‘다음에’라는 약속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굳이 다음 생이 아니어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냥 하면 되고, 할 수 없는 건 포기하기 마련이라 크게 의미를 두는 단어가 아니었다. 만족도 아니고 포기도 아닌 것들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은, 지금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몇 분 동안만 지속할 ‘순간의 처방전’ 같았다. ‘다음에’라는 약속 역시 내가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누군가에게 쉽게 하지 않게 되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 속 남자의 말에 종종 공감했다. 진짜 원하는 건 이번 생에서 해야 하고, 기억도 못 하는 다음 생에 대한 기대나 약속 같은 건 의미 없어 보였다. 그게 맞는 거로 여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만약에’라는 가정을 떠올리고, ‘다음 생’이라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의미 없는 바람을 자꾸 하게 된다. 다시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게 많은 것도 아니다. 무조건 돈이 많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지금 못하고 살았던 모든 것을 다 싸가서 이루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 하나, 딱 하나, 오직 하나.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딸 바보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아니, ‘딸 바보’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가족이 소중한 줄 알고, 자기가 만든 가정에 책임감을 느끼며, 자식을 사랑하면서 키워야 한다는 그 뻔하고 당연한 진리를 아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불가능할까? 정말 다음 생의 나는 이런 바람을 기억조차 못 할까? 이게 그렇게 거창한 바람인 건가? 분명한 건, 나의 이번 생에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해도 결코 이룰 수 있는 바람이 아니라는 거다. 이미 이번 생에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주 오래전에 확인한 것이니,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절대 바랄 수 있는 소망이 아닌 거잖아. 그러니 자꾸 기대고 싶은 가정일 수밖에. 정말 다음 생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자꾸 바라게 되는 걸 어쩔 수가 없잖아...

 

12월 한 달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 매일 저녁에 병원으로 가서 아침 찬바람을 맞으면서 집으로 온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보낸 문자 한 통에 크리스마스인 걸 알았다. 병실 입구 보호자 휴게실에서 사람들이 케이크를 먹고 있기에 누구 생일파티를 병원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거다. 1년 반 사이에 아버지의 병원행이 벌써 세 번째. 기간으로 따지면 두 달을 넘기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열흘을 보내고 겨우 일반실로 옮기니 간병이 문제가 된다. 24시간 보호자 대기해야 가능한 일반실행이 처음부터 꼬이고 삐걱댔다. 작년에는 전화 한 통에 바로 구해지던 간병인이 이번에는 왜 그렇게 구하기 힘든 건지, 이대로라면 그냥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했다. 업체 서너 군데를 알아봐도 지금 바로 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단다. 연말이라 그런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지인께 부탁해서 건너건너 겨우 한 명 구했는데, 그나마도 계약된 시간보다 40분씩 늦는다고 미리 말한다. 병원까지 오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면서 아침 시간 40분 늦는 것에 이해를 구한다. 아쉬운 입장이라 바로 오케이 하고 시작했는데, 며칠 지켜보니 생각보다 간병인이 잘 봐주고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면서 슬슬 사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 궁금한가 보다. 왜 다른 가족들은 찾아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다들 멀리 살고 있고 연말이라 바빠서요, 라고 둘러댔다. ‘아무도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라고, ‘나도 여기서 도망가고 싶어요.’라고 사실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진짜 그러고 싶은데, 도망가고 싶은데...

 

겨울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어서 다음 생을 만나고 싶은 건, 정말, 아이 같은, 철없는 바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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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요즘 애들'이란 말을 쓸 때가 있다. 점점 그 빈도수도 높아진다. 요즘을 사는 나도 요즘 사람인데, 유독 아이들을 볼 때면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말을 쓰는 나를 볼 때면 우울해진다. 아, 나 너무 늙었나 봐.. ㅠㅠ 그만큼 내가 자라던 시간과 다름을 느껴서이기도 하고, 시쳇말로 세대 차이를 경험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모습들이 있다. 일반적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딱 그때만 볼 수 있는 어떤 장면들. 『스즈키 선생님』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내 주변의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총 11권 시리즈가 출간된다고 하는데, 지금 4권까지 출간되었다. 곧 2차분도 출간될 거라고 한다. 소식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4권까지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2차분이 기다려진다. 
 
중학교 2학년 선생인 스즈키.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재미도 있겠지만, 골치도 아프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것 같지만, 문제도 많이 일으킨다. 그걸 관여하면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사람이 선생님이 중심이 될 때도 잦다. 슈퍼맨이 되어 자기 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으련만,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하지는 않다. 학교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에서 대개 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마련인데, 『스즈키 선생님』 시리즈는 제목에서부터 말하고 있다. 학교에는 학생도 있지만, 선생도 있다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어떤 시선으로 관찰하고 어떻게 해결해가고 있는지 차분히 보여주면서, 스즈키 선생 개인의 생활까지 함께 말한다. 
 


 

 

 

 

 

 

 

 

             
1권에서는 하나둘 일어나는 사건들이 시선을 끈다. 급식 도중에 한 학생이 일으키는 이상한 행동에서 혼란스럽다. 문제의 학생은 스즈키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고. 잉? 선생님이 학생의 마음을 그대로 읽는 능력이라도 가졌나? 이 아이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3일의 시간이 주어지고 스즈키는 그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야만 하는 숙제를 해야 한다. 또, 급식 메뉴 때문에 상심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면서, 단순히 식사에 오르는 메뉴 하나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먹는 문제가 아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 방식에 관한 주제로 이어지는 거다.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에 따른 해결을 어떤 식으로 끌어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일례가 아닐까 싶다. 겨우(?) 탕수육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왜 급식 메뉴에서 탕수육이 사라져야 했는지 발단을 보게 하고, 급식에서 탕수육의 존재 여부가 결론 내려지기까지 시간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다. 어떤 식으로는 결과는 나오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 과정을 아이들에게 경험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게 보기 좋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로맨스에서도 문제는 생긴다. 이 내용은 1권부터 4권까지 이어지면서 나온다. 아이들은 이렇게 살벌한 로맨스를 펼치는구나 싶어서 웃음도 났는데, 계속되는 이야기에 식겁하기도 했다. 이 이성 교제 부분에서 내가 가장 많이 놀랐는데, 그런 걸 보면 나는 정말 '요즘 사람'이라는 말을 못 쓸 것 같다. 내가 정말 옛날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일본과 한국의 정서가 다를 수 있음을 배경에 놓고 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이성 교제와 성관계를 의논하고 상담하는 내용이 언급되는데,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친구 동생인 초등 4학년 여자아이와 성관계를 했다. 물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 합의하고 가진 관계다. 나는 여기서 처음 놀랐는데, 요즘은 유치원 아이들도 여친 남친이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이성 교제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닐 테다. 다만,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교제하면서 성관계까지 할 수 있다는 데 놀란 거다. 그에 부모와 학생, 선생까지 한자리에 모여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상담할 수 있다는 분위기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이 부분에서 스즈키 선생님의 활약이 보일 때인데, 단순히 아이를 회유하는 어떤 말발로 이 사건을 모면하지는 않는다. 그가 가진 사고와 아이에게 전하는 진심 때문에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거다. 결론만 말하자면, '성관계가 가능한 연령대'라는 것보다 성관계가 가능한 '정신연령'에 관한 이해로 조금 더 성숙한 이성 교제를 고민하게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문제만 있는 것 같고, 선생 눈으로 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한없이 가르쳐야 할 것만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스즈키 선생 자신이 아이들을 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을 연결하면서, 그의 연애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인지는 몰라도, 스즈키 선생의 성욕 문제까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이 만화가 우리나라 만화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스즈키의 꿈속에 나오는 차분한 여학생 한 명, 만인의 여신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 분위기가 내 눈에도 보이는데 그게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더라.
 
 
2권이 시작되어도 스즈키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스즈키 선생이 바빠질까, 하는 눈으로 지켜보게 된다.
 
학교 다니면서 이런 일 한 번쯤 본 적 있을 거다. 선생님을 대상으로 누가 더 인기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스즈키의 학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학생들이 인기투표를 했다. 선생님을 베스트와 워스트로 구분해서 3위까지 선정하고, 선정 이유에 대해 깨알 같은 마음을 전했다. 선생님들 몰래 진행했고 그 흔적을 어딘가에 숨겨두었는데,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학교에서 알게 되어 인기투표 결과를 본 선생들은 멘붕이 온다. 헉... 이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구나 싶고, 이래서 아이들이 싫어하는구나 싶은. 스즈키 선생은 베스트와 워스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려놓았는데, 그 이유로 동료 남자 체육 선생에게 공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진행한 인기투표의 원래 의도는 선생들의 인기 순위를 정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그 인기투표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며 불쾌함을 느끼게 했던 선생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난 상태였는데, 그걸 어른들만 몰랐던 거다. 아이들 방식대로 그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인기투표라는 방식을 택했던 거다. 그에 따른 문제 수습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야기는 또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생이 학생에게 성추행했다는 눈에 보이는 그 문제 이면에 그 성추행 대상의, 혹은 더 넓은 의미로의 해석과 판단이 필요함을 스즈키는 알게 된다. 남자 선생이 여학생을 보는 시선이나 감정 중에 이런 것도 있음을 적나라하게 말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에 스즈키 선생의 마음은 또 어떤가. 자기 반 여학생에게 품는 감정이 이성적이지 못해 끙끙 앓는다. 새롭게 시작한 연애는 또 주춤거리면서 멈춰있다. 꿈속에 나오는 여학생에게 빠져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모호해지고, 그의 감정은 점점 자라난다. 그에 애인과 관계 회복이 될 때까지만이라는 자기만의 유예를 두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은 거다. 어쩌지? 폭풍 전야 같다. 그리고 결국 일은 터지고 만다. 스즈키의 여신이 되어버린 여학생 오가와를 둘러싸고 여러 명의 남학생과 여학생이 먹이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다. 아니, 좀 꼬여있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드러내지 않은 스즈키 선생의 마음까지 더하면 이 무슨 짝사랑 전쟁 같은지 모르겠다. ㅎㅎ 
아직 오가와를 둘러싼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게 아이들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마치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듯하다. 나름 조카의 중학생 시절까지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 요즘 초등생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듣고 살았던 경험으로 보면 나도 상당히 아이들의 모습을 잘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1편에서도 말했지만, 이 시리즈를 온전히 한국의 교육 문화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학생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전혀 다른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학교라는 배경과 중2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분명 공통되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기에 낯설지만도 않다. 내가 몰랐던 중학교 2학년 교실을 스즈키의 눈으로 대신 보는 듯하면서, 세상이 변하듯 아이들이 보고 살아가는 학교와 세상도 다를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읽게 된다. 특히 스즈키가 학교에서 겪는 문제와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학생과 학부형(선생님 포함)이라는 구도가 대립으로만 그려지는 건 아님을 배울 수 있다. 스즈키의 사심은 사심이고 아이들을 향한 평범한 한 선생님의 고군분투는 열정적이다.
 
 
2권에서 이어지는 이들의 사랑의 태풍. 3권까지 이어진다. 아직 이 아이들의 사랑의 태풍은 멈추지 않았다.
 
오가와를 중심에 둔 아이들의 연애 전선에 진한 먹구름이 끼었고, 그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읽는 나도 놀랐던 건 이 정도로 크게 번질 줄 몰랐다는 거다. 그저 한 소년의 가슴앓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건 뭐 꼬리에 꼬리를 문 것처럼, 굴비 엮어놓은 듯 연관된 아이들이 계속 나온다. 그 강렬한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아이들이라니... 웃기기도 하면서 그 눈빛에 살인이 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공포심도 동시에 인다. 
 
어쨌든 또 한 번 산을 넘을 시간이다. 이걸 풀고 넘어가지 못하면 스즈키 선생의 반은 여전히 소란스러울 테니까. 결국,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들의 입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오가와의 마음과는 다르게, 오가와를 추종하는 남학생이 폭발하고야 만다. 여기저기 있는지도 몰랐던 지뢰가 빵빵 터지고, 스즈키의 머리는 뱅뱅 돌고...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진심이 하나씩 들려오면서 오가와를 둘러싼 ‘오가와바라기’는 잠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태풍은 물러간 듯한데...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오가와가 주인공이 된 소문은 다시 일어난다. 새로운 체육 교사 쓰즈키가 부임한다. 그리고 그가 출근한 첫날 오가와와 마주친 후 시작된 소문은 이런 것. 오가와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쓰즈키가 오가와의 첫사랑이다, 혹시 오가와는 스즈키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아니다, 스즈키 선생님이 오가와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등등. 어디서 근거를 찾은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귀가 따가울 정도로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끝이 없다. 그에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어김없이 소문의 주인공은 오가와다. 이 소문을 근거로 또 한 번 오가와 추종자들은 들고일어나고, 곧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분위기다. 누가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대형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다. 도대체 아이들의 이 사랑은 어디로 튈 것인가.
 
역시, 사람 모이는 곳은 말이 많아지기 마련인가 보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고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고통만큼 큰일은 없다. 3편의 주요 내용은 아이들이 품은 연정에 관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누굴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시작되는 일에 어떤 끔찍한 결과가 이어지는 건지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게 스즈키가 어떻게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가는가 하는 거다. 스즈키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선생이라는, 어른이라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도 아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배경에 두고 보는 게 재미있다.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애쓰는 모습에서 땀 흘리는 것도 눈에 훤히 보인다. 스즈키를 옹호하면서 그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게 아니라,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알 것 같아서 웃음이 나면서 응원하게 된다. 그의 사생활도 파이팅 하기를~ ^^
 
 
3권이 그렇게 마무리 되면서 좀 조용해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들썩였던 사랑의 태풍도 잠잠해진 것 같고, 그의 연애도 다시 재가동되었으니 이제 좀 숨 쉴 만 해졌다. 학교는 시험 준비로 바쁘고, 아이들은 시험 후 맞이할 방학으로 들떴다. 그런데 웬걸, 뭐든 스즈키 선생이 쉬는 꼴을 못 보나 보다. 대형 폭탄이 터질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은 뭐다냐...
 
4권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건 아이들의 성관계와 피임문제다. 앞에서도 말한 적 있는데,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성문화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이 변한 건가, 아니면 원래 이랬는데 내가 너무 순진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라는 것만 이유가 되는 걸까.
 
이 이야기 속 아이들의 이성 교제는 자유로워 보였다. 서로가 익숙하게 털어놓고, 선생들도 아이들의 그런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분위기로 보인다. 스즈키도 누가 누구와 만나고 헤어지는지, 아이들은 또 그런 문제를 선생님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한다. (물론 그렇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말이다,)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아이들의, 이 나이에 이뤄지는 이성 교제에서 성관계가 빠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거다. 예를 들면, 학교에 오지 않은 다케치(남학생)의 집에 가와베(여학생)가 방문한다. 물론 선생님의 부탁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도 가와베는 다케치의 집에 가고, 또 다음 날도. 같은 반 친구이기도 하고, 같이 공부도 하게 되었다니 뭐 나쁠 거 없어 보인다. 어차피 시험이 시작되기 전이니까 같이 공부 좀 한다는데 말릴 건 또 뭔가. 그런데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요즘 아이들의 생활인가 싶어서 놀랍다는 거다. 가와베는 야마기와 선배와 사귀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케치에게 처음 간 날 다케치와 같이 자게 되었는데, 다케치와 같이 자기 전에 야마디와에게 전화해서 이별을 선언했다. 이 내용의 요지는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자고 말을 했고, 다시 시작된 연애남과 잔 것이니까 양다리도 아니고 문제 될 것도 없다고 말한다는 거다. 그런가? 
 
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 일단 이 상황이 양다리냐 아니냐 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나의 고지식한 사고방식으로 중학교 2학년의 아이들이 이런 생활(그 나이에 누군가와 사귀면서 성관계가 바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하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는 거다. 중2 아이들의 생활이 정말 이런 건지, 비단 일본의 이야기여서 그런 건지, 그렇다면 이 나이 아이들을 어떤 눈과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아주 큰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다. 반면에 스즈키 선생 캐릭터는 그런 아이들에게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가 처한 상황에 빠른 적응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4권 마지막 부분에 다다라서 보이는 공원에서의 끝장토론 같은 분위기는 좋았다. 학부형과 선생, 아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게 때론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성관계가 어떤 시작과 책임을 알리는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 여자의 처녀성을 운운하면서 어떤 부담을 일으키는지, 그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어떤 길로 갈 수 있는지 다양한 상황을 보게 하는 스즈키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동시에 그런 말들이 나와야만 했던 배경에 대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성교육은 필요하지만, 그게 중2 아이들의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실행되는 일이라는 건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무거운 주제이기도 하고, 꼭 한 번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설명해줘야 하는 일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으로 명령식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왜 필요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인지 대화로 오가야 하는 문제임을 이들의 언쟁으로 대신 보여준다. 누구 하나 숨죽이지 않았다. 선생은 선생대로, 학부형은 학부형의 마음으로, 아이들은 아이들의 생각으로 끌어가는 공원에서의 그 시간이 이들 모두에게 가져올 영향은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다.
 
휴... 무서운 논쟁인 것 같지만, 언젠가 한번은 직면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비단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라는 것으로 모른 척하기에는 내가 경험한 한국의 중2 아이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닌 듯하여 절반쯤은 공감한다. 여전히 그 분위기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없는 애기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무시할 수가 없다. 엊그제 초등2학년 조카가 엄마가 혼내면서 나가라고 하자, 나간다고 하면서 걸어서 30분 거리의 병원까지 갔더라는 말을 듣고 놀랐는데, 스즈키 선생님 시리즈 읽다 보니 전혀 상관없는 얘기도 아니다. 아이들을 알아간다는 건 끝이 없구나 싶어서 말이다.
 
이제 스즈키의 애정전선은 ‘오늘도 맑음’이고 이성 교제 문제로 후끈 달아올랐던 분위기도 진정이 된 것 같다. 새로운 아이 마쓰노의 등장과 스즈키가 잊지 못하는 3년 전의 어떤 일이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지 궁금해진다. 예고편으로 보면 4권 이후의 이야기는 좀 더 스즈키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스즈키 선생의 인간적인 실수담이나 시행착오 같은 거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무엇보다 스즈키의 그녀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하여, 5권 기다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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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 그런 경우 자주 당황한다. 위로가 서툰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어느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울지 말라고,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이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는 독자(관객)들에게, 그 순간 꼭 손발이 오그라들지만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손발이 아니라 심장이 오그라들 수도 있다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의 애매함 같은 게 있다. 어설픈 위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다 안다고 ‘척’하기에는 거짓말이니까 싫고, 부정적인 답이 나왔는데 무한긍정으로 잘 될 거라고 헛된 희망을 주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 마음이 어느 하나로 정확하게 꽂히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어려운 거다. 어깨를 다독이며 뭔가 기운을 실어주고 싶은데 너무 막연해서 할 말이 없고, 어느 순간부터 말을 아끼고 닫아버리는 습관이 쓸데없는 토닥임마저 멈추게 하는 순간들...

 

‘그렇더라.’는 한 마디에 기어코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고야 말았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괜한 말을 꺼내서 미안해지려고 한다고, 눈물도 아까우니 울지 말라고 말하면서, 지금 너에게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는 나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지금은 그게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나를 다독이는 너에게, 그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머릿속 말들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메일 주소록을 뒤졌다. 남아 있다. 아직. 몇 년 전에 저장해둔, 그 짧은 주소 하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힘든데,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면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말보다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그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서. 그 밝음에 항상 내가 웃곤 했는데, 아닐 것 같은 사람이 어느 순간 전해져온 쓸쓸함이 몇 배로 몸을 불리고 있다. 왜 이런 것은 쓸데없이, 쉽게도 덩치를 부풀리는지 모르겠다. 허락도 없이 자기 맘대로... 아무리 바빠도 허무해지고 멍 때리는 시간은 생기더라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울음을 멈춘다. 그러게 말이야. 그러더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이런 순간이 참 잘도 찾아오더라고, 라면서...

 

복잡한 일이 좀 정리되면 만나러 갈 테니, 맛있는 걸 사달라고 했다. 내가 뭔가를 사달라고 하는 말, 특히 그게 음식이라면 더더욱 어렵게 꺼낸 말이라는 것을 아는 이에게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상대는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안다. 겨우, 뭔가를 같이 먹자는 말 한 마디에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는 게 우습지만, 그런 사람인 걸 어쩌나. 정말로 찾아가 맛있는 것을 같이 먹자고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귀찮아서, 게을러서, 마음이 어지러워서 주저하던 발걸음을 기어코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본다. 가야지. 가서 얼굴 보고. 몸에 해롭지만 혀끝에서 행복을 주는 맛이더라도. 나잇살까지 보태진다며 겁내하던 것들을. 위장 속에 잔뜩 집어넣어봐야지. 그게 이 순간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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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몇 년 전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신간평가단에 응모한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마지막 도서까지 리뷰 완료하지 못 했다. 마음 같아서는 늦게라도 해야지 했는데, 어디까지나 그냥 마음에 머물던 일로 끝났다. 이른바, 먹튀. 아, 나는 6개월의 이 긴 레이스에 맞지 않는구나 하는 결론만 얻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신청한 도서가 거의 선정이 안 되고 있기에 애정을 담고 처음 시작했던 마음이 사라졌던 거다. 활동자도 많고, 신청도서도 많으니까, 내가 신청한 도서 한 권쯤 선정이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매번 선정에서 미끄러지는 걸 투덜투덜하면서 마무리마저 그렇게 하고야 말았다. 그 후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은 아예 응모하지 않았다. 나란 인간이 어떻게 이어갈지 알 것 같아서...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성실한 서평단이 될 거임~!’이란 각오로 도전했다. 나는 예전에 활동했던 분야를 바꿔 에세이로 신청했다. 소설 부분 말고, 관심 1순위가 아닌 2순위 분야로 응모했다. 혹시 선정된다면, 간절히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 아니라 ‘이런 책도 괜찮다’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신간평가단 15기 에세이 분야로 선정되었고,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6개월 동안 총 12권의 책을, 마감 한 번 어기지 않고, 이렇게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게, 바로 기적. 처음 신간평가단 신청하면서 다짐했던 마음을 잘 이뤄낸 거다. 선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다짐은, 최소한 ‘먹튀’는 하지 말자는 거였다. 혹시 나랑 맞지 않는 책일 수도 있지만, 내 관심 밖의 책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읽어서 편식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그 편식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은 성실하게 임하는 것. 어떻게 이어갈까, 잘 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이렇게 활동을 마무리 한 것으로 끝났다. 여전히 내가 신청한 도서는 잘 선정되지 않았지만 좋은 책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다행이다. ^^

 

 

 

- 15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책이 좀 많습니다

윤성근의 책이 많이 출간된 건 알고 있었지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실제로 읽어본 적도 없다. 도서관 서가에 쭉 꽂혀있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휘리릭 넘겨본 적은 있어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 책으로 그의 글을 만나게 된 거다. 책 좋아하고 책 아끼는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 규모나 마음의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와도 많이 달랐지만, 그 바탕에 깔린 독자들, 애서가들, 장서가들의 마음은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이렇게 아끼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근처에도 못 가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은 책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 15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 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떠나는 이유 /

밥장의 책 역시 내가 완독한 적이 없다.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저자가 여행의 의미를 들려주고 있어서 의외이기도 하고, 그래서 좋기도 했다. 사진과 글, 그림으로 만나는 그의 여행기가 선선한 바람처럼 불어왔다. 그가 그동안 쓴 책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더 맞는 것 같다.

 

 

 

 

태도에 관하여 /

내가 신청한 도서 중에서 처음으로 선정되었기에 마음에 더 담는다. ^^ 임경선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에세이는 처음 만났다. 저자의 상담 같은 이야기가 듣기 편해서 좋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시간 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었다. 저자의 글을 좋아해도 저자에 관심은 거의 없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조지프 앤턴 /

아, 이 책. ^^ 받자마자 상당한 두께가 압박했는데, 막상 펼치고 보니 참 재밌었다. 자서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그래서 만나지도 않는데, 이 책으로 자서전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 이런 이야기로 자서전을 풀어갈 수도 있구나 싶어서 호감이 생겼다. 시간도 없었고 마음이 급해서 활자를 읽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다시 한 번 펼칠 기회가 오길 바라고 있다.

 

 

 

나의 사적인 도시 /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뉴욕이란 도시를 이렇게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저자의 뉴욕생활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번역가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글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다. 담담하게 들려오는 말투가 좋아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다 읽고 보니 ‘좋네’ 라는 여운이 생기더라.

 

 

 

 

다정한 편견 /

저자의 소설을 다시 꺼내게 만든 책이다. 그의 산문을 읽고 나니, 그의 소설을 읽다만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재밌게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깃든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유쾌했지만 쓸쓸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로 만나는 사람 냄새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6개월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한 달, 또 한 달. 도서 받고 읽고 마감하고. 그렇게 여섯 번이 지나고 나니 다 끝났다. 시원섭섭. 리뷰 마감일에 허덕일 때는 부담스럽더니, 끝났다고 하니 괜히 더 섭섭해지는 건 무슨 심보인지... ^^ 재밌게 잘 읽었고, 내 눈에 들지 않은 책까지 읽게 되어 더 알뜰살뜰한 15기 활동이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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