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소음 - 두 사람을 위한 시 다산어린이문학
폴 플라이시먼 지음, 에릭 베도스 그림, 정지인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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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는 뉴베리상 역사 중에서 드물게 시집으로 뉴베리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뉴베리상’은 어린이문학계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어린이문학상으로 수상작 대부분은 소설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라는 장르로 뉴베리 대상을 수상한 건지 궁금해졌다. 


우선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두 사람을 위한 시'라는 부제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읽어야 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듀엣곡을 부르듯이 한 사람은 왼쪽 부분을, 또 한 사람은 오른쪽 부분을 낭독하며 읽도록 쓰인 시라니 흥미로웠다.


실제로 이 작품은 미국 교실에서 읽기 체험 교과서처럼 읽힌다고 한다.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읽어도 좋고, 학생과 선생님, 혹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해도 좋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새로운 형식의 시들은 곤충의 세계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실린 시들은 함께 두 사람이 읽다가, 어느 때는 오른쪽 사람 혼자, 또 어느 순간에는 왼쪽 사람 혼자 읽도록 행이 띄어져 있고, 두 사람이 함께 낭독을 하는 과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대화처럼 연결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읽다 보면 혼자 낭독을 하기도 하고,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기도, 혹은 문답을 하기도 하며, 상대와 내 목소리가 동시에 포개지면서 노래하는 듯한 리듬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독특한 낭독 방법은 시를 눈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읽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독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 더욱 특별하다.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 짧은 일평생을 보내는 하루살이, 풀쩍 뛰어올라 저 멀리 착지하는 메뚜기, 여기저기 빛으로 점을 찍는 반딧불이, 웅장한 합창을 하는 매미, 부지런히 일하느라 바쁜 꿀벌 등 다양한 곤충들을 만날 수 있다. 세밀하게 묘사된 곤충 그림들도 시선을 사로잡고, 각각의 곤충들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살려주는 단어 표현들도 재미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번역한 정지인 번역가가 번역을 했는데, 덕분에 더 생생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해설 또한 흥미로운 방식이라 인상적이다. 동시인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의 글과 곤충학자이자 국립생물자원관 환경 연구관의 글 두 편을 작품 해설로 만날 수 있는데, 시에 대한 해석과 곤충에 대한 설명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어 아주 재미있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곤충의 한살이, 여러 곤충이 각자 시점으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곤충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 준다. 


통통 튀는 메뚜기, 아롱아롱 반딧불이, 먼지 쌓인 책장에서 살아가는 책다듬이벌레, 츠츠츠츠 노래하는 매미, 뱅뱅 맴돌다 슈욱 도는 물맴이, 바람에 앞뒤로 흔들리는 번데기... 뜨거운 낮과 고요한 밤을 오가며 만나게 되는 곤충들의 하루는 다양한 소리들로 '즐거운 소음'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곁에 늘 있지만, 일상 속 소음들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그들의 소리가 노래처럼 울려 퍼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아름다운 책을 통해 아주 특별한 독서 체험을 경험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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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3 - 두 개의 구슬 텍스트T 10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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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평범한 인간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가을은 한없이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가을에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든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게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그것만 바라보다 보면 결국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날이 온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일 뿐이고 나는 내 삶을 살면 되는 거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은 인간과 자신의 삶이 다름을 받아들였다.             p.43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 신화를 살짝 비틀어 여우에서 사람의 모습이 된 야호족과 범에서 사람이 된 호랑족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 K 판타지 <오백 년째 열다섯> 그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판타지적인 설정이 배경이지만, 주요 서사는 중학생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이야기라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가 되었다. 


주인공 가을은 오백 년 전 열다섯 살에 최초의 야호인 령에게서 구슬을 받아 종야호가 되었기에,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 단,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에는 벗어날 수가 없다.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오백 년째 열다섯으로 살고 있는 가을은 직업을 가질 수도, 결혼을 할 수도, 부모가 될 수도 없다. 친구들은 어른이 되겠지만, 가을은 어른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가을에게 전편에서 신우라는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로 인해 이번에 처음으로 고등학생이 되어 보기로 한다. 그 동안은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여겼던 나이를 먹는 다는 것부터 자신이 아직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가을은 이년 후 자신의 모습으로 1단계 둔갑을 한다. 키가 오 센티미터는 더 자라고, 그에 따라 골격도 조금씩 커진 모습으로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처음 배우는 공부부터 처음 학교생활을 함께하는 고등학교 아이들까지 영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 오랜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인간들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들이 너무 많더구나. 오래오래 살기에 이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 같아. 너는 구슬 얻은 걸 후회하니?"

"책으로 따지자면 계속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있는 것만 같아요. 저는 다음 내용이 궁금하거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살아 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런 거래요. 마치 인간들이 긴 삶을 사는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처럼요. 근 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p.157


중학교 시절에는 우등생이었던 가을은 고등학교 공부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고, 그 와중에 수백 년 동안 가족처럼 지냈던 휴로부터 예상치 못한 고백을 받게 된다. 삶이 점점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가을과 신우, 그리고 휴의 삼각 관계 로맨스도 이야기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준다. 엄마의 결혼에 대한 고민과 범녀가 공격 받은 사건 해결, 야호의 구슬을 훔쳐 호랑족을 만든 최초의 호랑이자 범녀 이전의 호랑족 우두머리였던 도호가 나타났다는 소문까지 가을을 둘러싼 세계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한편, 가을은 자신에게 유독 다정한 담임 선생님이 또 다른 최초 구슬을 가진 웅족 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각별히 가까워진다. 진으로부터 최초의 구슬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을은, 너무도 그리운 령을 되살리기 위해 비밀리에 최초 구슬을 발현하는 방법은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최초 구슬에 얽힌 놀라운 비밀이 드디어 밝혀 지는데, 과연 두 개의 구슬을 하나로 모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시리즈는 오백 년 동안 열다섯 살로 살아온 여자아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신선하고, ‘단군 신화’를 비롯해 ‘서동요’, ‘의좋은 형제’,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등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독특한 매력도 있다. 가을은 열다섯 살의 나이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시리즈를 거듭해 가면서 점차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어 매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은 늘 다음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어 준다. 이번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최초 구슬 완전체로 인해 구슬이 갖게 된 새로운 능력'에 대한 언급이 있어 네 번째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십 대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사랑을 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에 뿌리를 둔 한국형 판타지’로서 청소년 문학의 독보적인 역사를 쓰고 있는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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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관한 오해
이소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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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평소와 다르다고 느끼더라도 우선 나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상식 밖의 자연현상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를 의심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의 무심함부터 돌아볼 일이다. 가을에 장미와 벚꽃을 마주해 놀랐다는 충격만큼, 키보드로 지구에게 미안하다고 쓰는 걱정만큼, 과연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 외 다른 생물종을 위해 쏟아낸 말들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 실상 말과 행동이 같지 않다면, 우리가 어떤 기념일마다 지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시혜적인 자기만족일 뿐이다.              p.34


<식물 산책>, <식물의 책>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식물세밀화가? 원예학 연구자 이소영 저자의 신작이다. 16년간 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시간 동안 맞닥뜨린 식물에 관한 크고 작은 오해와 편견을 모았다. 식물은 뿌리를 땅에 고정하고 있기에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식물이 살아 있는 생물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들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며, 땅에 고정되어 있을 뿐 빠르게 형태를 변화시키고, 번식을 위해 누구보다 삶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약하고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공격적이기까지 한 생물이 바로 식물인 것이다. 




길을 걷다가 깨진 보도블록이나 갈라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틈새, 건물 벽돌 사이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서 자라는 틈새 식물들은 누군가 심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게 된 것일 텐데 볼 때마다 신기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새삼 식물의 생명력을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반면 같은 것을 보고 누군가는 그들을 가엽게 여기거나, 아무데서나 자라는 잡초라고 나쁘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바꿔서 생각해 보면, 애초에 식물이 틈새 공간에 살게 된 것은 흙 위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부은 인간들 때문이다. 


도시 적응력이 높은 식물들이 계속 틈새를 선택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은 그들에게 최선의 삶의 형태였던 것이다. 서양민들레, 괭이밥, 제비꽃, 꽃마리, 쇄별꽃 등 틈새의 식물들은 인간의 손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뿌리를 내려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스팔트를 딛고 사는 우리에게 틈새는 균열의 결과물이자 고쳐야 할 오점이지만, 사실 균열로 드러난 틈새야말로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이 필요로 했던, 진작 드러났어야 했던 공간인 것이다. 덕분에 이제 틈새 식물들을 마주하게 되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식물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진달래는 먹어도 괜찮지만 진달래와 비슷한 철죽은 먹어선 안 된다.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하고 철쭉을 개꽃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지 못하는 식물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또한 허가된 장소에서만 나물을 채취하며, 멸종 위기식물과 특산신물, 희귀식물 등 특정 식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물은 우리를 시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물을 채취할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사람의 욕망이니 말이다. 더 많이 캐고자 하는 욕망, 더 귀한 종을 얻고자 하는 욕망. 욕심에 취해 숲속 더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될 뿐이다.               p.287


나팔꽃, 무궁화, 닭의장풀 등 한여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잇는 여름 꽃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꽃을 보려면 오전에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전에 꽃잎을 열고 오후에는 꽃잎을 다시 닫는다. 보통 꽃들이 한 번 열리면 내내 피어 있다가 며칠이 흘러 꽃이 지는데 반해, 이들은 하루 단위로 오전, 오후 꽃을 여닫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매일 꽃잎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꽃을 피워야 수분할 시간을 최대한 많이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식물이 꽃잎을 열고 닫는 방식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흥미로웠다. 자연은 늘 우리의 예상 밖에 있구나,를 새삼 깨닫기도 했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점점 식물이 느리거나 정적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점점 그들의 생태에 관해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착각과 오해, 편견을 되짚어 보면서 식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름 때문에 자주 정체성을 오해 받는 보리수나무, 과일로 먹을 수 없는 모과의 가치, 꽃을 피우지 않는 무화과의 꽃,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던 당근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한 책이다. 특히나 매 장마다 수록된 아름답고 정밀한 식물세밀화가 인상적인데, 내용의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너무 근사한 작품이라 책 전체가 하나의 화집처럼 느껴지기도 할 만큼 완성도가 높다. 그 어느 때보다도 플랜테리어에 관심이 높아졌고, 식물 애호가들도 늘어난 요즘이다. 하지만  '식물 소비량이 늘고, 산업 규모가 커지며, 정원이 많아졌다는 것만으로 식물 문화가 발달한 것일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더 이상 식물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통하지 않기를, 보다 정확한 식물 정보를 통해 누구나 식물에 관한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기를, 식물을 아끼고 보살피는 사람으로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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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생명 공부 -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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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생명과 관련되는 기술이다.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는 생명의 변형이나 더 나아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생명의 합성까지, 이를 가능하게 하고 계속 더 그 수위를 높여 가고 있는 생명 과학 기술의 발전을 우리는 그냥 바꿀 수 없는 추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이 추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왜 이렇게 과학은 우리를 우리의 지혜로 분별하기 어려운 질문을 향해 걸어가도록 몰아가는 것일까?            p.150


영화나 SF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재인 복제 인간, 범죄 수사극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용도로 언급되는 DNA, 그리고 팬데믹 시기에 늘 화제였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명 과학에 대래 알고 있는 거란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과학 관련 서적을 꽤 읽어 봤음에도 불구하고, 생명 과학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은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마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생명 과학 입문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차근차근 기초부터 짚어주는 교과서같은 책이다. 


연세 대학교 생명 시스템 대학 생화학과 송기원 교수는 전공자가 아닌 일반 학생들에게도 생명 과학을 가르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연세 대학교 인문 사회 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20여 년간 인기리에 진행되어 온 교양 수업 ‘생명 과학이란 무엇인가’의 핵심을 엮어 만들어진 이 책은 2014년에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버전의 개정판이다. 지난 10년간 변화된 부분과 내용을 수정하고 새로운 장을 추가했다. 기존 책이 절판되어 아쉬웠던 이들이라면, 이번에 새롭게 나온 버전으로 꼭 만나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가 되어 있고, 생명 과학의 이모저모를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생명 과학의 최전선을 다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생명 과학에 대한 공부는 결국 나에게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무엇이 생명체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의 질문이다. 병에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하며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다면 우리는 더 인간답게 되는가? 인간은 결국 결핍된 불완전한 존재기에 인간이 아닌가? 가슴 아프지만 어떤 형태로든 생래적으로 부가되는 결핍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과정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또 인간을 생로병사를 갖는 하나의 생물 종으로서 받아들이고 생태계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공유할 수 있음이 인간다움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p.364


이 책은 생명 과학의 핵심 질문 17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유전 정보 해독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체는 왜 늙어 갈까,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공포의 대상인가, 생명은 어떻게 환경 변화에 대해 최적 상태를 유지하는가, 생명 과학은 어떤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가 등 누구나 호기심을 느낄 만한 질문으로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입문서라 접근성과 가독성이 뛰어나다. 최근 10년간 생명 과학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생명 과학이 아주 빠른 속도로 정보 과학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구성 성문에 대한 지도책과 인간의 다양한 암세포 전체에 대한 지도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는데, 그로 인해 현재까지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없던 다양한 질병들에 대한 새로운 예방과 치료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듯 수많은 생명 과학 기술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이용되는데, 인간 유전체 정보, 맞춤 아기, 유전자 가위, 줄기 세포, 합성 생물학, 장기 이식 등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또한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는 생명의 변형이나 더 나아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생명의 합성까지 가능하게 하고 계속 더 그 수위를 높여 가고 있는 생명 과학 기술의 발전을 그저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또 수많은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생명체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면, 생명 과학에 대한 공부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선의 대답을 내어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전체에서 원하는 부위의 DNA를 정교하게 잘라내어 인간 및 동식물 세포의 유전체 정보를 임의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는데, 그 마음 한켠으로는 그렇게 마음대로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바꿀 수 있다면 과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생명이란 것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기준 내려야 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으로 악용되어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 왔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한 윤리적인 갈등 속에서도 생명 과학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거라는 사실이 우리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생명과학의 기초부터 핵심 내용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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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리와 말썽 많은 숲 1 - 의뢰가 있으시다고요? 초도리와 말썽 많은 숲 1
보린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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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토리한테 숲은 더없이 안전한 곳이야. 사나운 짐승도, 독 있는 벌레도 숲토리만큼은 해치지 않아. 그런데 도깨비 숲은 달라. 초도리 같은 초보 숲토리쯤은 한입에 꿀꺽 삼키는 도깨비가 수두룩하다는 거야.

"진짜 도깨비 숲이면 어떡하지?"          p.23


숲토리 골짝에는 어린 숲토리들이 모여 산다. 그들은 나무에서 싹이 트듯 흙에서 쏙 돋아나는 존재이다. 숲토리는 배우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저절로 알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면서 저절로 똑똑해져서 자연스럽게 세상의 일들을 깨우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어린 숲토리들은 걱정 없이 먹고, 자고, 열심히 놀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여기 걱정 많은 숲토리가 있다. 머리꼭지가 초록색이라 '초도리'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곧 아홉 살이 되어 이 골짝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숲토리는 아홉 살이면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면 먼 숲으로 가서 혼자 일을 해야 한다. 숲토리들은 숲을 돌보는 일을 한다. 이 숲 저 숲으로 흩어져 갖가지 식물을 키우는데, 식물들이 잘 자라면서 동물들이 모이게 되고, 결국 북적북적 근사한 숲을 이루는 것이다. 


다음 날, 초도리는 늪을 지나고, 모래땅을 지나, 들판을 지나간다. 그렇게 꼬박 열흘 동안 민들레 씨앗들을 통해 지치지도 않고 날아가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춤침침한 숲이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엉켜 있고, 동물들은 코끝도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숲에서 과연 초도리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녘에 다시 깨었어. 그 사이 숲은 빗소리로 가득 차 있었어. 찰푸딱찰푸딱 출출출, 빗방울이 웅덩이에 떨어지는 소리. 폭탁폭탁, 굴참나무잎에 떨어지는 소리. 토끼풀 위에는 가볍게 툭툭, 애기똥풀 꽃밭에는 투다닥투다닥, 넙데데한 연잎에 고인 빗물이 떨어질 때는 쪼릅, 조금 있다 쪼릅.               p.84


새로운 숲의 새집에서 임무를 시작하는 첫 날, 초도리를 찾아온 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버섯이었다. 빨간 버섯갓에 하얗고 볼록한 점이 톡톡 박힌 광대버섯은 크기가 거의 호박만 했다. 사실 그 버섯을 들고 온 것은 콩나물 콩처럼 털애 샛노랗고 크기가 작은 다람쥐 콩쥐였다. 거대한 버섯은 새 굴뚝으로 쓰라고 선물로 가져온 거였다. 콩쥐의 의뢰는 집 근처에 참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참나무 씨앗이 도토리라서 도토리를 심으면 되는데, 이상하게 심어봤는데도 잘 안됐다는 콩쥐의 말에 초도리는 함께 도토리부터 주우러 가기로 한다. 


그렇게 초록빛 가득 별난 도깨비 숲을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의뢰를 해결하는 초도리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은 나무도 많고, 자라는 식물도 여느 숲과는 다르고, 공기도 다른 '도깨비 숲'에서 벌어지는 초도리의 모험은 밤코 화가의 사랑스러운 그림과 보린 작가의 아기자기한 말맛이 묻어나는 글로  유쾌하게 펼쳐진다. 특히나 초도리는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캐릭터라 더 귀여운데, 다람쥐 콩쥐, 달팽이 몰랑코, 나뭇잎 병정들, 능굴빼미 등 도깨비 숲 친구들을 만나며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된다. 


곳곳에 숲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예쁘지만 독이 있는 광대버섯, 모자처럼 생긴 도토리받침이 붙어 있는 도토리,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톱니 모양인 졸참나무이프, 우산으로 쓰기 좋은 연잎, 자르면 노란 액체가 나오는 애기똥풀, 토끼 꼬리를 닮은 토끼풀 까지... 마지막 페이지에 숲 관찰 수첩으로 정리되어 있어 보기도 좋다. 숲 해결사 초도리와 떠나는 친환경 모험이 이제 시작되었으니,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동물 친구들과 식물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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