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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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영하가 돌아왔다.
나의 기억속에서 김영하는 랄랄라 하우스의 주인이자 20대에 이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던 작가이자, 아랑은 왜? 라고 물었던 소설가이며 만화가 이우일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했던 만담가였다.


 
 
그는 확실히 일상적 표피의 세계를 건드려 그 안에 숨겨진 속살을 바탕으로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김연수에 비해 쉽게 읽히는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이야기의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가이다.


그것은 읽기의 속력과 연관되고 동시에 이야기꾼으로서의 김영하의 자질과 이어진다.
특유의 우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이야기는 그만의 매력으로 빛난다.
그래서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그가 내게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2.
         오빠 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고, 소식도 없던 오빠가 돌아왔다.
근데 돌아온 오빠의 곁에는 비단구두도, 동생을 기쁘게 해 줄 멋진 선물 대신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미성년자 여자애가 서 있었다.
더구나 오빠는 돌아오자마자 예전에 자신을 때리던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거꾸로 마구 패기까지 한다.
그것을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여동생.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진정한 콩가루 집안의 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통념과 거리가 먼 가족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가치관과 거리를 두는 그들의 해학적인 삶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가족관을 왜곡하고 비틈으로서 당대의 현실이 이상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 소설집은 일단 거기에 방점을 찍고 소설들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권선징악을 설파하는 동화들과 정당하고 바른 삶을 권고하는 교육의 이념이 말하는 이상과는 다른 살벌한 태도가 지배하는 현실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혼란과 이중적 태도를 김영하는 특유의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첫번째로 소설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그는 냉소적인 소설가로 신부가 된 대학 동창생 바오로와 미경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신부로서의 이상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바오로. 꿈과 열정을 현실의 무게 때문에 가슴에 묻은 채 살다가 자연발화로 죽은 미경의 남편 정식. 그리고 그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친구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미경. 열정과 이상도 사라지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냉소적이지도 못해서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나.
그들은 모두 그림자를 판 사람들이 아닐까?
 
<이사>. 주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 이사라는 행위가 이삿짐 센터 직원들의 횡포로 악몽으로 변함을 보여줌으로서 언어와 관념으로서의 개념이 현실과 다름을 보여주는 이야기.
 
<너를 사랑하고도>.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너를 사랑하고도' 모욕당하고 실패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젊은 날의 성적인 욕구 때문에 한 여자와 모두 성관계를 가진 세명의 대학 동창생.
시간이 흘러 갑자가 그들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그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평온한 삶이 무너질까 두려워 '그녀를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녀가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의삼하게 되는데...
평온한 일상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이상과 다른 우리 삶의 추악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너의 의미>. 영화감독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모델, 연기자, 연기자 지망생과 성의 향연을 벌이던 한 영화감독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힌다는 이야기. 꿈을 꾸는 한 작가가 그 이상적 에너지로 현실적인 한 남자를 옭아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보물선>. 이순신 동상이 친일파의 음모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 형식과
적당히 운동권에 몸담고 있다가 졸업 후에 펀드매니저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재만. 그둘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이중주를 김영하 특유의 냉소적인 해학으로 풀어가는 소설.
 
'그제야 재만은 자신의 동업자들에게 철저히 냉소적인 조지 소로스의 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3.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울고 웃고 파멸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나는 내가 책을 다 읽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나는 소설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내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틈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는 완벽하게 현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그 어디쯤엔가 걸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순적인 행동과 고민을 하며 힘겹게, 꿈을 꾸며 살아가는 셈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이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꾸역꾸역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꾸역꾸역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한걸음 한걸음 차분히 걷다보면 멋진 꿈의 대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그것은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않은 소설인 <마지막 손님>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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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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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법이 그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의 몸을 태울 꺼 같다. 그 분노는 나를 태우고 나를 괴물로 만드리라.
용서도 없는 영원한 복수의 아귀지옥을 맴도는 괴물... 살인자의 죽음을 꿈꾸는 괴물...
 
2.
 
스나크 사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자 루이스 캐럴의 1876년작. 스나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그걸 잡은 사람은 사라져 버린다. 즉. 괴물을 잡은 사람은 자기도 죽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1.
게이코. 지방유지의 딸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타인은 도움 안 되는 쓰레기일 뿐'이며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해야 된다는 신조를 가진 고쿠부 신스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결국 그녀는 신스케의 결혼식날 자신이 취미 생활로 삼았던 산탄총을 들고 나타난다.
 
#2.
낚시 도구점 피셔맨 클럽 직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오리구치 구니오는 그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직원 사쿠라 슈지를 노가미라는 여성과 이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둘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나서 오리구치는 할일을 하기 위해 단골 손님 중 하나였던 게이코의 아파트로 향한다.
 
#3.
신스케의 여동생 노리코는 오빠와 달리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인물.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게이코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식이 벌어진 그날도 그녀는 게이코가 어디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여러곳을 둘러보다가 총을 들고 있는 게이코를 보게 된다. 노리코는 게이코를 진심으로 설득하여 그녀를 돌려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게이코가 아파트로 떠나 보내고 나서 그녀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녀의 아파트로 향한다.
 
#4.
오리구치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슈지는 그날 오리구치의 행동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우연이 겹쳐지며 슈지는 오리구치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슈지는 오리구치의 헤어진 아내와 딸이 미성년자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자신들의 정신감정을 주장하면서 재판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오리구치가 무슨일을 저지를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도 우연히 얻게 된 단서들을 쫓아서 게이코의 아파트로 향하게 되고.
 
#5.
법이 살인자들을 심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눈치챈 오리구치. 그는 자신이 직접   괴물이 되어 그들을 심판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산탄총을 가지고 있는 게이코를 알게 된다. 의도적으로 그녀와 친해진 그는 그날 게이코의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온 그녀를 클로로포롬으로 마취시키고 총을 뺏어 살인자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6.
기절한 상태로 노리코에게 발견된 게이코. 그리고 마침 모습을 드러낸 슈지. 그들에게 게이코는 진실을 밝힌다.

자신이 결혼식장에 가져갔던 산탄총은 총구에 납땜이 되어있는 상태로 총을 발사하면 발사한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

게이코가 원한 것은 신스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가 결혼식장에서 자살함으로서 결혼식이 파탄나는 것이었다.

 

#7.

이 모든 사실을 알아챈 노리코와 슈지는 오리구치에게 진실을 말하고 그의 살인을 막기 위해 그를 쫓아서 떠난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되기로 결정한 오리구치. 그러나 그는 괴물이 되는 순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오리구치를 추적하는 노리코와 슈지.

마지막으로 그들 모두를 추적하는 경찰.

이제 그들의 숨막히는 하룻밤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3.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작품. 인물의 심리묘사와 상황설정, 사건의 과정을 묘사하는데 주력하던 그녀가 이 작품에서는 긴박감 넘치는 상황 전개로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문체를 순식간에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일종의 답답함이다.

법의 허점, 그 허점을 파고드는 영악한 살인자, 거기에 무기력한 법조계와 그걸로 인해 더욱 상처받는 피해자,

그리고 악을 처단하기 위한 악이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는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다른 해답은 없단 말인가?

아마도 여기에 대한 정답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건 끝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일 뿐.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스나크 사냥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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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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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최소한의 도덕이라고도 불린다.

1.

법은 완벽한가?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질문과 마주치면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항상 법의 한계와 효용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법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맞고, 우리가 법규법을 신뢰해야 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도,더군다나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완벽한 것이 없듯이 법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법치국가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우리의 삶 곳곳을 조여온다면 그 법의 그물은 고정성과 경직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숭숭 자신의 구멍을 드러낼 것이다.
  

법의 구멍. 상상하기 싫은 현실이긴 하지만 그 법의 구멍을 악용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때 법은 방황하기 시작하고, 법을 믿고 따르던 평범한 피해자들은 갈팡질팡 하다가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2.

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내를 잃고, 딸을 자기 인생의 낙으로 애지중지 키워온 정많은 아버지. 그런데 어느날 그 딸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두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빈둥빈둥 거리며 놀고 부모 돈이나 뜯어내며 여자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것을 낙으로 사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자신들을 고발하지 못하게 했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많은 마취주사를 놓는 바람에 그녀는 죽게되고,

두려움에 떨던 그들은 그녀의 시체를 강물에 버린다. 그렇게 한 여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 사내가 있었다. 두 명의 친구에게 항상 맞고 그들의 시달림을 받던 사내. 그는 두 친구가 나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공포심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그는 뉴스를 보게 된다. 시체로 발견된 한 여성. 두려움에 떨던 그는 죽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몰래 문자를 보내어 자신들의 친구들이 범인임을 밝힌다.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들을 제거해 주기를 바랬다.

 
문자를 받은 아버지는 범인들의 아파트로 향한다.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범인들의 강간장면을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저도 몰래 자기 딸의 이름이 적힌 비디오를 보는 그.

 
비디오를 보면서 그는 분노가 자신의 온몸을 가득채움을 느낀다.
뇌에서 발생한 분노는 그의 온몸을 불타오르게 하면서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마침 아파트에 들어온 범인 중 한명을 무참하게 죽인다.

그리고 남아 있는 범인 한 명을 찾아서 떠난다.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이기 위해서...

 
3.

법은 문자다. 그것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 가해자의 범죄가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가는지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가해자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당연하게 적여 있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은 인간의 나약함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살인범이 된 아버지. 이미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 그 사이에서 법은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를 보호한다. 경찰들은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범이 된 아버지를 잡으려 하고, 살인범이 죽을 것 같은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발사하는 것도 용인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소년법에 의거해 그 살인범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소설 속에서 칼날은 방황하고 있었다. 일선의 형사들조차 회의를 제기하고 아버지를 동정하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가장한 채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데 급급했다.

법의 그물에 드러난 구멍 속에서 정의는 부유하고 칼날은 방황했으며, 범죄자는 구멍 속에서 살길을 찾아 낸다. 어이없게도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법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법은 어디로 가야할까? 법이 방황하지 않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가?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범죄가 일어난 상황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서로 노력하는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이 방황하지 않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4.

이 소설을 읽으며 난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근데 그 분노의 대상이
범죄자나 사회가 아니라 작가였다. 작가가 지나치게 냉정했다는 게 내 불만의 이유였다. 그가 너무 냉정하게 결말을 내려 버렸기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금 더 낭만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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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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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사랑 part1.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 사랑은 내가 아주 갑자기 느끼게 된 것이다. ...
클로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두손이 베이지색 양모 외투의 허리띠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지켜보았으며,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결론은 피할 수가 없었다. 

완전한 이상화의 순간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찾아온다. 그녀(그)가 단지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찾아온 사랑은 또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part2. 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마리아:하지만 왜 당신은 나 같은 병자를 사랑하고 있나요?

나: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 아이에게 왜 태어났는지 물어 보십시오. 꽃에게 왜 피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빛나는지 물어 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마리아,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며 당신을 좋아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운명 그 자체이다. 우리는 그(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라 운명 그 자체인 사랑. 그것이 사랑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사랑part3.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질투.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요소. 이 악마적인 사랑의 조미료는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랑을 파멸의 수렁텅이로 빠트리기도 한다. 이 소설은 질투에서 시작한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광수와 선영의 결혼식.

13년간 선영을 사랑했던 사랑의 약자 광수는 결혼식 하기 직전 신부 대기실에서 전애인 진우가 선영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얄미운 사랑'과 그 노래에 대해 히스테리를 부리는 선영의 모습, 부케를 던지는 순간 부케 윗 단의 꽃 팔레노프시스가 꺽여진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질투는 그렇게 그를 찾아오고....

*얄미운 사랑의 가사: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랑~

'우리가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혼자서 빠져 나올 때 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 그리하여 사랑이 되풀이 될수록 그 관계 속으로 밀어 넣을 만한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질투때문에, 자신이 바쳤던 사랑의 억울함 때문에 진우를 노래방으로 불러낸 광수는 '몰래한 사랑'만 계속 부르다가 화가 나서 진우를 때리고 '그날' 선영이랑 잤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결국 그날의 진실이 드러나고...

'사랑은 나를 확장시키고 사랑이 끝나면 우리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광수의 아이를 밴 선영은 어느 비 오는 날 광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광수가 선영이에게 처음으로 듣는 사랑고백이었다.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선영을 너무 사랑했기에 자신의 사랑을 의심했던 광수.
사랑 받기만 원하지 사랑할 줄 모르는 진우.
그리고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던 선영.
그들의 관계에서 사랑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신의 모순적 면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사랑은 진짜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

작가 김연수는 그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는 능청스럽고 사색적인 문장으로 삼각관계를 조망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사랑은 사랑의 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그 무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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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김기찬 사진, 황인숙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리뷰 

우리 모두에게는 고향이 있다. 시골이면 시골, 도시면 도시...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도시 한 동네에 조용히 틀어박혀 동네 아이들의 쉼터가 되는 골목,
그 골목이야말로 나의 고향이다.

누군가는 흙길에서 놀거나, 논두렁을 뛰어다니거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골목길을 뛰어다니고 ,
구석구석 숨어있는 동무들을 찾고,
갑자기 집에서 튀어나온 누렁이한테 쫓겨서 달아나고,
골목길에서 야구하다가 누군가가 유리창을 깨뜨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고향의 기억들을 펼쳐보인다.

재건축과 아파트 붐으로 점점 사라지는 도시의 골목들, 그 골목들에 스며있는 기억과 흔적들을 다시 들여다 보면서
나는 내 과거를 장식했던 그들이 그립다.
 

언제나 그곳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던 이름모를 꽃과 식물들아, 너희들은 잘 있니?
항상 우리들의 집을 지켜주고 우리와 함께 놀았던 해피,메리,쫑,독구 같은 개들과 고양이 나비야 너희들은 어디로 갔니?
골목길에서 울고 웃었던 우리의 이웃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아저씨와 아줌마들은 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차분한 빗소리로 우리 머리를 헹궈주었던 지붕아 너는 어디에 있니?
비를 피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고드름도 보여주고, 연인들의 몰래 키스의 장소도 되었던 처마야 너도 사라진거니?
누구나 쉴 수 있었던 평상아, 불량식품을 팔고 있었던 구멍가게야 너희들은 어디로 사라진거니?
도대체 너희들은 어디로 간거니?
이게 인생인거니? 너희들을 잊어버리고 다람쥐 쳇바귀 돌듯 살아가는게 인생인 거니?

그런 거였구나. 그게 인생이었구나............

 
오늘 그들이 그리워진다.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이 진정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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