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곳이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아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가라고 했지만 정말 많이 망설였다. 내가 놀이공원 같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의 두 배 가까운 하루이용료는 내 망설임을 더욱 길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게티빌라에서 나온 우리 가족의 다음 행선지는 UCLA 대학이었다. 일부러 학교 구경을 간 건 아니고 대학교에 가면 놀이공원 할인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는 말에 LA 시내에 있는 UCLA 대학 티켓오피스에 가서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끊었다. 티켓 사면서 잠깐 둘러본 학교는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도시 같았고, 백인보다 피부색이 좀 있는 학생들이 많아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마다 이런 티켓오피스가 있다는 건 신기했는데 기껏 할인받은 금액이 네 식구 달랑 10달러 정도여서 허무. 원래는 10세 미만이 59달러, 그 이상은 69달러였으니, 어린이 요금도 아들만 해당이었다. 네 식구 다 합치면 우리나라 놀이공원 연간 회원권도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으~ 너무 비싸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국 이틀 숙박비에 입장료까지, 우리가 미국 가서 돈을 제일 많이 쓰고 온 곳이다.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은 우리처럼 놀면서 천천히 가도 LA에서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네비 달린 차 타고 다니면서도 곧잘 길을 헤맨다. 그런데 100달러 아낀다고 미국에서 네비도 없이 차를 렌트했다. 속으로 걱정을 좀 했는데 딱 한 번 길을 묻고는 목적지에 닿아 전생에 미국에서 산 거 아니냐고 농담까지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첫날 밤을 보낸 숙소는 디즈니랜드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눈 돌리면 온통 호텔이랑 모텔 같은 것만 보이는 걸로 보아 완전히 디즈니랜드 덕에 먹고 사는 동네구나 싶었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주는 간단한 공짜 아침을 먹고는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숙소에서 나와 키 큰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 디즈니랜드로 가는 중이다.  

 

  
디즈니 근처를 지나다니는 예쁜 버스들.   


입장권 사는 곳이지만 우리는 통과. 그런데 요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입구에서 검문 비슷한 걸 받았다. 가방까지 전부 열어 보라고 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9.11 테러 이후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검사하는 거라고. 대충 흉내만 내는 걸로 보아 도시락 폭탄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아낼 것 같은 사람들이었음.  

  디즈니랜드에는 테마파크가 두 군데가 있었다. 오리지날 디즈니랜드와 좀더 짜릿한 놀이기구가 많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우리가 끊은 입장권으로는 두 군데 중 한 군데만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잠시 여기 서서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 디즈니랜드로 결정. 원조 찾아 왔으니 원조 놀이 공원으로 가야지!

   
아이들이 보도 블럭을 가리켜서 보니 사람 이름과 주소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 찾으러 평생 들락거릴 테니 훌륭한 상술이군.


디즈니랜드로 밀려 들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평일에 무슨 놈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궁시렁궁시렁.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좀 재미있겠다 싶은 놀이 기구를 타려면 한 시간 이상은 줄서서 기다리며 무한한 인내심을 키워야 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기차역이다. 우리는 바로 저기로 올라가서 디즈니를 한 바퀴 도는 기차를 타고 중간에 내려 놀이 기구를 탔다. 걸어다니기 싫어하는 나 때문에 우리 가족 계속 애용함.  


기차역 앞에서 만난 진짜 말이 끄는 마차다. 저렇게 한가할 때 탔어야 하는데 나중에 타자고 미루다 결국 못 탔다. 


스몰 월드. 좀 어린 아이들이 타는 놀이 기구들이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구석구석에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숨어 있어서 아이들이 찾으면서 신나했다.


니모를 찾아서. 니모가 살고 있는 바다 속을 구경시켜주는 잠수함인데 이거 타겠다고 한 시간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아이들은 좋아라 했지만 난 좀 유치한 걸 보니 이미 꿈을 잃은 게 확실해. 영화 장면에 맞는 대사가 나와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긴 하더라만. 


 
아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노란 차를 타고 싶다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 카의 주인공처럼 직접 운전을 해봤다며 좋아하던 아들. 별로 기대를 안 하고 탔는데 코스도 길고 중간에 세차장, 자동차 공원, 주유소 같은 구경거리가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차를 타기 전에 기분 내라고 일회용 운전면허증을 주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집에까지 곱게 모셔왔다.
오전에 마테호른 썰매나 빅 썬더 마운틴 레일로드처럼 짜릿한 놀이 기구도 탔는데 정작 사진이 없는 걸 보니 타는 데만 너무 집중했나 보군.


메인 거리에 있는 미키마우스와 디즈니 동상 앞에서. 생쥐가 들락거릴 정도로 가난했던 디즈니는 그 생쥐를 그린 캐릭터로 돈방석에 올라앉았고, 미국의 상징 인물이 되었다. 아이들이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월트 디즈니는 알 정도라고. 디즈니 동화책이랑 영화로 전세계 어린이들을 미국화시키고 있는 일등공신이니 대통령보다 훌륭한 거 맞네.  

  점심 먹고는 어드벤처랜드로 이동. 오전에 너무 유치한 데서 놀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테마가 많았다.


오전에 놀던 동화 속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났다.  


인디애나 존스의 모험. 제대로 꾸며놓은 정글 안에 놀이 기구가 있었다. 캄캄한 곳에서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뭔가가 튀어나오면 스릴이 그만.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소리 지르기도 그만~



나무 위에 있는 타잔의 집. 올라가면 제인이랑 치타 캐릭터도 있고, 타잔 이야기를 큰 책으로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돌아다니다 보니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구경거리 천지였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3박 4일 디즈니랜드로 휴가 간다는 미국 사람들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구석구석 다니며 즐기자면 연간회원권 끊어서 주구줄창 가야 할 듯. 우리가 끊은 하루이용권의 두 배 정도면 연간회원권을 끊을 수 있다니 아, 억울하다.

  프론티어랜드에는 유람선 두 개가 있었다. 요건 콜럼비아호 .   

  요건 우리가 탄 마크트웨인호. 이 배를 타고 톰소여가 모험을 떠난 작은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결국 유람선에서 내려 저 섬에 들어가 한 시간쯤 놀다 나왔다. 유람선 위에서 볼 때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걸어다니기엔 정말 넓었다. 더구나 모험심으로 가득찬 아들과 함께 다니려니 뭐든지 들어가보고 만져보고 굴러보아야 직성이 풀리니 늘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톰소여가 살았던 나무 위의 집. 아들아, 아무리 모험이 좋아도 너무 어릴 때 집을 떠나진 말거라.


겁 많은 우리 딸이 왠일로 이런 데서 사진을 다 찍었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면서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 하지만 디즈니의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는 퍼레이드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큰 건가? 거기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한 군데 서서 구경하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놀이 기구나 타자며 빠져나왔다.    

   그때 미키스 툰 타운에 가서 좀 시시한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줄을 서 있다가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온 교포 가족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봄방학을 이용해 3박 4일 디즈니로 놀러 왔는데 디즈니랜드랑 캘리포니아 어드벤처를 왔다갔다 하면서 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솔직히 디즈니에 대해 광적인 환상을 품고 있는 미국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된다. 하루만 놀아도 지치는구만. 역시 난 미국식이 아닌가벼.


밤이 되자 점점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추울 걸 예상하지 못한 우리 가족 두꺼운 옷을 준비했을 리 없고... 하지만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남아 불꽃놀이를 보고 오는 극성을 떨었다. 그런데 정말 이거 안 보고 왔으면 후회할 뻔했을 정도로 멋졌다.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하늘에서 팅커벨이 금가루를 뿌리면서 날아다니는데 환상 그 자체였다. 하루 동안 본전 뽑겠다며 돌아다닌 피곤이 다 사라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불꽃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11시 가까이 된 시간인데 엄청난 인파였다. 미국의 디즈니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우리나라에서는 60,70대 노인들이 손 잡고 놀이 공원 가는 거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미국엔 그런 노인들이 많아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 생각 하면서 민속촌 가고,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 생각하면서 디즈니랜드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내린 결론은 미국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는 것.


딸아이는 디즈니랜드에서 하루 더 놀고 싶다며 내내 아쉬워했다. 특히 디즈니랜드 건너편에 있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에 가고 싶다고. 디즈니랜드보다 일찍 문을 닫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딸에게 한마디. "딸아, 또 가고 싶거들랑 네가 돈 벌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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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6-0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너무 신났겠어요. 엄마는 다리 아파도 말에요.
인파가 보통이 아니네요.
마크 트웨인호, 타보고 싶어라~

소나무집 2009-06-16 10:2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하루 더 놀다 가고 싶다고 조르는데 잠깐 망설이는 마음도 생겼어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
 
LA 게티빌라 - 고대 유물 박물관

현재 우리 가족은 땅끝보다도 더 먼 완도에 살다 보니 미술관 구경을 쉽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여행이 결정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게 LA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게티센터는 LA 중심이 내려다보이는 산타모니카 산 기슭에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고, 관람료가 무료라는 사실 때문에 반드시 가야 할 곳이 되고 말았다. 

게티센터는 원래 여행을 다 마치고 LA를 떠나기 전날 들렀지만 게티빌라와 함께 들러보면 좋은 곳이기에 두번째 여행지로 소개한다. 이곳도 역시나 주차요금 10달러를 받았지만 게티빌라처럼 예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게티센터라는 이름에서 짐작이 가겠지만 게티빌라와 주인이 같다. 게티는 게티빌라에 있는 고대 유물과 게티센터에 있는 미술품 대부분을 직접 발굴을 하거나 경매를 통해 모았다고 한다.

사실 게티빌라와 게티센터를 둘러보면서 내내 부러웠던 건 우리나라 부자들 중에서도 게티처럼 사회에 제대로 환원할 줄 아는 부자가 생겼으면 하는 점이었다. 삼성처럼 미술관 지어놓고 자금 빼돌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런 야비한 부자 말고. 책에서나 보고 이야기로나 들었던 렘브란트, 밀레,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보는 호사를 누리도록 해준, 미국 여행을 생각하기 전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게티가 너무 고맙다. 

게티센터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를 맞은 것은 20여 대나 되는 노란색의 대형 스쿨 버스였다. 주차장 한 층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는 스쿨 버스를 보며 여기도 역시나 사람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술관이 워낙 넓어 사람이 많아도 많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미술관이 나올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모노레일이 나왔다. 서성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와서 우리를 데려가나 보다 하고 있는 참인데 모양도 깜찍한 세 칸짜리 하얀색 전차 같은 게 들어왔다. 전기로 가는 무인 전차란다. 아주 천천히 가는 전차를 타고 5분쯤 올라가니 사진 속 끝에 하얗게 보이는 미술관 입구에 딯았다.
  
전차에서 내리니 70살도 넘었을 것 같은 자원봉사자 할머니가 다가와 안내문을 내밀더니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하니 1층에 가면 한국어 안내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둘러보니 곳곳에 조각 작품이나 조형물들이 서서 우리를 반겼다.

  게티센터를 알리는 건물 표지석이다. 미국은 아무리 유명한 곳을 가도 요란한 광고나 플래카드, 간판 같은 걸 볼 수가 없다. 요란 떨지 않고 저렇게 조용히 존재를 알리지만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1층에 들어서면 안내데스크와 미술관 전체를 보여주는 미니어처가 있어서 미리 관람 동선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게티센터에는 모두 여섯 개의 건물이 있는데 동서남북에 위치한 네 개가 전시관이다. 각각의 전시관에는 그림, 조각, 실내 장식품, 사진 등이 무지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각의 건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다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안내문이 중요 언어별로 다 있었는데 우리나라 말로 된 안내문은 두 종류나 있었다. '구경거리'라고 쓰인 안내문에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거나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제안이라고 쓰여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을 위한 안내문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들고 다녔다. '구경거리'라는 말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미국 사람들이 번역을 해놓아서 어색한 구석이 아주 많았지만 우리말 안내문이 있는 게 어디냐고.  


우리 가족이 미술관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끼니를 때우는 것이었다. 게티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채 안 되었지만 여행 내내 배고픔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우리는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들고 와서 바로 저기 앉아서 먹었다. 이름하야 미술관에서의 점심 식사. 

드디어 배가 부른 우리 가족은 슬슬 미술관 탐험에 나섰다. 우리 가족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딱 하나. 이름을 아는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그 앞에 서서 무한한 감탄과 경애의 눈길을 보냈으나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은 과감하게 지나치는 것. 그런 식으로 관람을 했어도 우리가 게티센터에서 머문 시간이 무려 다섯 시간 반이다.  

게티센터의 고마움 중 하나는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의 전시관에서 사진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행객 티 팍팍 내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으나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어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사진도 배워서 아는 만큼 잘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도 열심히 찍어 온 사진이니 시원치 않아도 올린다. 설명은 접어두고 사진만. 그림만 보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 만한 작품들이 꽤 많았다. 고흐의 <아이리스>나 모네의 <정원>을 보고 온 것만으로도 게티센터는 훌륭한 미술관이라는 기억을 우리 가족 모두에게 남겼다.


  
  

 

 

 

 

 
 



 

 

 

 

 
  



이번엔 장식과 가구들.
 
 
  

   

 
요 화려한 침대가 탐나서 한 번 누워보고 싶었는데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패밀리룸에 모조 침대를 준비해놓았다. 그 옆에 사진은 벽이랑 바닥까지도 다 유럽 어딘가에서 떼어 온 작품이란다. 얘들아, 여기가 우리집이었으면 좋겠다. 그치?   


게티빌라에서 실컷 보았던 조각 작품 전시실도 있었는데 우리 아들은 저 작품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간신히 꼬여서는 다른 방으로 갔는데 다시 아빠를 끌고 가서 조각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더라는...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테네 여신이 어쩌고 저쩌고...

 
왼쪽은 조각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방이다. 우리 아들은 표정이 특이한 조각 작품만 보면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저렇게 흉내를 내곤 했다.  

  

   
게티센터에도 역시 가족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이렇게 그려보고 만져보고 뒹굴다 보면 예술 작품이 더 가깝게 느껴질 것 같다. 그래, 거기 누우니까 유럽의 귀족이 된 것 같니?  


게티빌라 선인장 정원 앞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멀리 보이는 곳이 LA 중심가라는데 서울이랑 비교하면 대도시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높은 건물이 없었다. LA도 지진의 위험이 있는 도시라서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게티센터의 멋진 정원을 산책하다 보니 또 배가 고파진 우리 가족, 이젠 저녁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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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 게티빌라 - 고대 유물 박물관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5-11 16:50 
    미국 가기 전에 매일같이 남편과 태평양을 오가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여행 계획을 짰다. 남편은 LA 도착하는 날부터 이틀은 전적으로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방팔방 정보 검색을 한 결과 게티센터와 그리피스 천문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출발 삼일 전에 우리가 도착하는 월요일은 두 군데 다 휴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고 싶은 곳 명단에는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뺐던 게티빌라는
 
 
하늘바람 2009-05-1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행복해 보여요. 멋진 여행기네요. 전 저렇게 멋지게는 못 쓸 거같아요. 개이적으로는 가족 공간 사진이 가장 멋진데요

소나무집 2009-05-13 16:34   좋아요 0 | URL
칭찬 너무 고마워요. 우리나라 미술관엔 저렇게 실컷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많이 부럽더라구요.

세실 2009-05-1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의 아이리스, 모네의 정원 전 한가람미술관에서 봤는데 반갑네요.
사진도 찍을수 있군요. 가구들도 멋집니다.
님 넘 넘 넘 부러워요~~

소나무집 2009-05-13 16:35   좋아요 0 | URL
님은 벌써 보셨군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미술관 소유가 아닌 개인 모두가 공유하라는 의미인 것 같았어요. 개인 이름이 달린 미술관이긴 하지만 진짜 공공 미술관인 셈이죠.

꿈꾸는섬 2009-05-1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정말 멋진 여행기에요.^^
우리 가족도 얼른 돈 좀 모아서 떠나고 싶네요.ㅎㅎ

소나무집 2009-05-13 16:38   좋아요 0 | URL
마음이 있다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후 일단 떠나세요.
저희 가족도 뭐 돈도 없으면서 떠난 경우거든요.
다음 달부터 밀려올 카드대금이 걱정은 되네요.

가시장미 2009-05-1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풍경입니다.
가족을 위한 공간이 정말 인상깊네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으흐

소나무집 2009-05-13 16:41   좋아요 0 | URL
네, 잘 다녀왔답니다.
님도 꼭 다녀오세요.
우리 나라 미술관에는 없는 넓은 정원도 정말 아름다웠어요.
사유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고,
가난한 사람도 예술을 공유하길 바라는 부자들의 아름다운 마음까지 느낄 수 있었답니다.

순오기 2009-05-1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거뉴스 특종이네요~~ 비로그인 채 글을 읽어서 댓글을 이제 남겨요.
덕분에 게티빌라도 게티미술관도 잘 봤어요. 사회환원~ 정말 멋진 사람들이에요!!

소나무집 2009-05-17 19:5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님의 특종도 축하드려요. 부를 축재할 땐 했어도 사회에 전부 내놓을 줄 아는 사람들 정말 너무 부럽고 멋졌어요.

하늘바람 2009-05-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특종 축하드려요

소나무집 2009-05-20 13:50   좋아요 0 | URL
모두 추천해주신 님들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프레이야 2009-06-0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네요.
구경거리, 한국어판 안내문도 있어서 신기해요.^^
 
게티센터 - LA에 있는 미술관

미국 가기 전에 매일같이 남편과 태평양을 오가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여행 계획을 짰다. 남편은 LA 도착하는 날부터 이틀은 전적으로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방팔방 정보 검색을 한 결과 게티센터와 그리피스 천문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출발 삼일 전에 우리가 도착하는 월요일은 두 군데 다 휴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고 싶은 곳 명단에는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뺐던 게티빌라는 화요일이 휴무라고 했다. 그래서 게티빌라가 우리들의 첫번째 방문지가 되었다.    

공항에서 2달 열흘 만에 상봉한 네 식구가 감격에 휩싸인 것도 잠깐, 햄버거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산타모니카와 말리부 해변을 달려 게티빌라로 향했다. 게티빌라는 입장료가 없고 주차요금만 10달러를 받았다. 처음엔 주차요금이 10달러나? 했지만 서울 시립미술관에 갔다가 입장료에 주차요금도 2만원 넘게 내고 온 일을 생각해내고는 가볍게 통과했다. 하지만 게티빌라를 방문하기 전에 명심해야 할 일은 홈페이지에서 방문자 수대로 예약을 하고 반드시 티켓을 인쇄해 가야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런 건 모두 남편이 해치웠다.

장 폴 게티는 아버지 때부터 석유를 팔아 돈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번 석유 재벌이라고 한다. 그는 23살에 회사를 물려받았고, 38살에 은퇴를 했다. 평소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게티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해 LA 말리부 해변 자신의 별장에 박물관을 개관(1954년)했다. 그후 처음에 우리가 가려고 계획했던 게티센터 개관(1997년) 후 그리스, 로마의 유물만 모아 주제별로 전시할 박물관을 10년에 걸쳐 짓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게티빌라다. 정작 게티 자신은 게티빌라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대신 후손들이 그리스나 로마에 가지 않고도 고대 로마 유물을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참, 좋은 조상을 둔 미국인은 복도 많다. 이런 박물관을 무료로 구경할 수 있다니.

가는 동안 내내 박물관에 왜 빌라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안내서를 보니 게티빌라는 서기 79년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힌 로마의 저택 빌라 델 파피리l(Villa dei Papiri)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빌라의 직접적인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게티빌라의 세부 양식은 폼페이, 헤라클레스, 스타비아에 있는 고대 로마의 다른 저택 양식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11시 30분쯤 도착했을 때는 아주 한산해서 야호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점심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과  함께 온 학생들이 엄청 많아졌는데 알고 보니 부활절 주간 봄방학 기간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쉬는 기관이 많다 보니 게티빌라로 몰려온 듯했다. 왼쪽에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안내 데스크다. 자원봉사자들이 안내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안내서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한글 안내서가 있어서 영어가 몹시 짧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만큼 찾아오는 한국인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고.


게티빌라의 전체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가 없어서 안내서에 있는 사진을 찍어 보았다. 사진상으로는 별로 커 보이진 않지만 저 건물에 있는 수십 개의 방과 정원을 돌아다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본따서 만든 계단이라는데 솔직히 사진으로 보았던 원형 경기장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원형 경기장을 통해 중앙 홀로 들어갔다.  

  중앙홀에 가운데 물이 고인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저렇게 천장이 뚫려 있었다.  로마인들은 빛과 공기가 들어오라고 뚫어놓은 저 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빗물을 모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극장에 가서 박물관에 관한 20분짜리 영상을 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가 여길 왜 들어왔던고 후회를 했다. 화면에서 떠드는 말은 도대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남의 나라 말씀이요, 시차(13일 오전에 인천을 떠났는데 LA에 오니 또 13일 아침이라 하루 벌었다며 신났더랬다.)를 넘나들며 태평양을 건너온 우리 가족 모두가 금발머리 남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으니...  

얘들아, 정신 차리자! 여기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갈지도 모르는 미국이란다.   

  그래서 박물관 구경은 잠시 미뤄두고 정신 좀 차려 보자며 정원으로 나왔다. 로마의 저택에는 대부분 이처럼 훌륭한 정원이 딸려 있었고, 대화와 명상을 위한 평화로운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정원에 있는 나무와 허브는 모두 고대 지중해에서 심었던 종자들만 구해 심어놓은 것이라고 하니 놀랍다.   

  사방에서 풍기는 허브 향기에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아직 때가 일러서 그런지 꽃이 핀 식물은 많지 않았다. 우물 양쪽에 있는 식물은 파피루스다.   

  동쪽 정원에 있는 작은 분수인데 이것도 고대 로마 저택에 있던 모양 그대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이 분수의 뒤에는

  바로 요런 게 있다. 조개 껍질로 장식한 극장 마스크라고 한다. 색깔이 화려하고 예뻐서 그런지 사람들이 우리처럼 앉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얘들아,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박물관 구경도 좀 해보자.


정원에서 놀다가 걸어 들어간 통로다. 바닥에 깔린 붉은 대리석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대리석 기둥에 대리석 바닥, 우리가 밟고 다닌 대리석이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나...   

 

  

  
박물관은 모두 30개 정도의 방에 주제별로 유물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1층에는 암포라(Amphora)라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길쭉한 도자기와 그릇 종류가 엄청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딸아이는 저런 도자기 하나에 얼마쯤 하느냐고 물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우리 재산 다 줘도 부족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게티는 얼마나 부자길래 이 많은 유물을 사다가 박물관을 세운 거냐고 물어보는 세밀함까지 보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2층에는 역시나 주제별로 장식과 조각이 엄청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잠 한숨 못 잔 나는 너무 피곤해서 몇몇 방은 아예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는 사진 찍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정말 피곤했다.

   
 대리석으로 만든 관과 이집트 미라의 모습. 관에 새겨진 신들의 조각이 어찌나 생생한지 금방이라도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죽어서 저런 관에 눕는 복을 누린 사람은 천국도 더 빨리 갔으려나 궁금해진다.     

  

   
 몇 시간 동안 박물관을 돌다 지친 아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 패밀리 포럼이라는 방이다. 이곳은 아이들이 실컷 만져보고 그려보면서 놀도록 꾸며놓은 체험 공간이었다.  

첫번째 사진은 로마 병정 복장을 하고 뒤에 가서 서면 그림자가 비치도록 해놓은 건데 가운데가 로마 병정으로 변신한 우리 아들이다. 암포라 모형에 직접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어서 아이도 어른도 신이 났었다.
 
정말 엉성하게 박물관 구경을 마친 우리 가족은 다시 정원으로 나왔다. 도시락 싸 들고 와서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부족할 정도로 공부거리가 많은 박물관이었다. 특히 영어로 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 가족에겐 수박의 겉만 핥다가 온 느낌이다. 아쉬운 게 많았지만 여행자답게 우리는 여기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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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티센터 - LA에 있는 미술관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5-11 16:51 
    우리 가족은 현재 한반도 땅끝보다도 더 먼 곳에 살다 보니 미술관 구경을 쉽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여행이 결정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게 LA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게티센터는 LA 중심이 내려다보이는 산타모니카 산 기슭에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고, 관람료가 무료라는 사실 때문에 반드시 가고 싶은 곳이 되고 말았다.  게티센터는 원래 여행을 다 마치고 LA를 떠나기 전날 들렀지만 게티빌라와 함
 
 
순오기 2009-05-0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재로 지은 박물관인데 무료관람이군요. 돈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환원하는 한 방법으로 좋군요~ 우리나라 부자들이 좀 본받으면 좋으련만...
게티빌라~~~ 덕분에 구경 잘 했어요.^^

소나무집 2009-05-11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미국은 자신의 부를 기꺼이 사회에 환원하는 부자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입장료 무료는 계속 이어집니다.

꿈꾸는섬 2009-05-1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티빌라, 정말 멋진데요. 게다가 무료관람이라니...너무 좋으셨겠어요.ㅎㅎ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적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나무집 2009-05-13 16: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은 예술 분야에서는 많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부자들도 미국 가서 쓸데없는 정치인들이나 만나지 말고 저런 미술관에 가서 아름다운 기부에 대해 배우고 왔으면 좋겠어요.

가시장미 2009-05-1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의 저택... 정말 멋지네요. 와우!
조기 소나무님도 보이시네요. 아리따우세요!! ^^

소나무집 2009-05-13 16:47   좋아요 0 | URL
당시 로마의 저택을 그대로 재현한 거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진짜 멋졌거든요. 구석구석 대리석 아닌 데가 없어요.
40대에 아리땁다니...ㅎㅎㅎ

잎싹 2009-05-1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네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아요.~~

소나무집 2009-05-17 19:58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들이랑 해외 여행은 처음 갔는데 아이도 어른도 다 좋은 경험이었어요.

프레이야 2009-06-0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저택을 재현해 놓았다니 멋져요.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말하지 않아도 부자들이 이런 데에 신경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국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입국 심사였다. 미국의 입국 심사는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고, 방학이 아닐 때 아이들을 데리고 입국하는 경우 꼬치꼬치 묻다가 되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에서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오면 영락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학구열 높은 한국 엄마들 중 관광 비자로 들어가서 학교까지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미국은 불법 체류자까지도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동네마다  있다고 한다. 간 김에 우리도 그런 데 가서 영어 좀 배우다 올 걸 그랬나?

나야 정말 순수 관광 목적으로 들어가는 거였지만 방학도 아닌데 왜 아이들 데리고 왔냐고 물어보면 영어로 좔좔 이유를 읊어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편이 써준 모범 답안을 준비해서 딸아이랑 앉아 밤마다 연습까지 해보았다는 슬픈 전설이... 입국 심사에 대한 걱정만 하다가 오히려 정작 필요한 여행 준비는 대충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했고. 

일본을 경유하면 일인당 30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기에 일본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으면서도 일본에서도 입국 심사를 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으니 원... 인천을 출발한 지 1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은 김포공항보다도 작아 보였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그야말로 삐까번쩍한 인천공항과 비교하니 초라할 정도.  

나리타 공항에서의 입국 심사는 정말 간단했다. 물어보는 말도 없었고 단지 소지품 검사만 했다. 역시 일본은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에 일본 여행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정도다. 단지 다섯 개밖에 안 되는 입국심사대 앞에 한 시간 이상 줄을 세워놓고 대기시키는 바람에 일본인들이 생각보다 일처리를 합리적으로 못한다는 인상을 받긴 했다. 그 덕에 천천히 공항 구경을 하겠다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일본에서 입국 심사 포함 1시간 20분 정도를 보내고 인천에서 타고 온 비행기를 다시 탔고, 8시간 몇 분인가 만에 미국 LA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초긴장 상태로 작성했던 입국신고서(파지 다섯 장 냈음)와 세관신고서를 들고 한참을 걸어가자 나타난 입국 심사대는 와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좌악 늘어서 있었다. 심사관이 모두 30~40명은 되어 보였다. 일본하고 너무 비교되었다. 그만큼 LA 로 들어오는 외국인이 많다는 얘기겠지 뭐. 심사관이 많다 보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드디어 내 차례. 30대 초반의 약간 꼬장꼬장해 보이는 금발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물론 영어로. 다행스럽게도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걸 묻지도 않았고, 못 알아듣고 뚱하니 쳐다보면 알아서 다시 말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1. 너 어떤 나라에서 왔니? - 코리아, 아니 사우스 코리아. 2. 너희들 모두 가족이니? - 그래. 3. 모두 몇 명이니? - 눈짓으로 보면 몰라, 세 명이잖아. 4. 미국에는 왜 온 거니? - 여행하러 왔다. 5. 미국에는 얼마나 있을 거니? - 3주 정도.  

전자여권에 입국 허가 도장을 꽝꽝 찍는 걸 보며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여행 준비에 50% 이상을 차지했던 걱정과 불안이 허무하게도 단 5분 만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인터넷에 떠돌던 입국 심사 공포는 다 뭐였더란 말이냐! 너무 많은 정보가 별로 보탬이 안 될 때도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한 후에야 깨닫는 순간이었다. 돈 많이 들여가며 한 가지 배운 셈이다. 한참 어렵다는 미국 경제 사정 생각해서 돈 좀 쓰러 왔다는데 까다롭게 굴면 안 되지 암, 그렇구말구. 

하지만 안심도 잠시 세관신고서에 음식이 좀 있다고 신고를 했더니 바로 통과를 안 시켜주고는 짐검사를 한 번 더 받으라고 했다. 잠시 불안했지만 뭐 한국에서 고추장하고 김 들고 들어오는 사람 수도 없이 보았을 테니 내가 가져간 것들이 위험해 보이진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 당당하게 검사원 앞에 가서 섰다. 검사원은 가방을 열어 보라거나 그러진 않고 몇 가지 질문만 했다.  역시 영어로.

1. 어디서 왔니? - 한 번에 사우스 코리아. 2. 사우스 코리아라고? 여행이니? 좋겠다. 그러더니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코 앞에다 들이대면서 그림을 짚으며 어설픈 한국말로 물었다. 씨앗이 될 만한 각종 과일 그림과 그 밑에 여러 나라 말로 과일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였다. 사과? 배? 밤? 흙? 물론 나의 대답은 모두 NO 였고, 그게 바로 우리 가족이 무사히 최초로 미국에 입국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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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9-05-0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덩달아 긴장했다가 덩달아 푸쉬쉬~ 김 뺐어요 ^^;
드디어 미국에 발을 내딛으셨군요! 어여 가자구요. ㅎㅎ

소나무집 2009-05-07 09:49   좋아요 0 | URL
김 빠지는 입국 심사였지만 주워듣고 간 풍월이 너무 많아서 당시에는 완전 조마조마했어요.

꿈꾸는섬 2009-05-0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의 미국 여행기 기다리고 있었어요.^^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셨군요.ㅎㅎ

소나무집 2009-05-07 09:52   좋아요 0 | URL
네, 미국 얘들도 척 보고는 영어 못 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아예 어려운 질문 같은 거 안 하는 것 같더라구요. 바로 제 앞에서 심사 받던 사람에게는 저보다 더 많은 질문을 했어요.

전호인 2009-05-0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걱정한 것만큼 어렵지 않게 미국의 땅을 밟게 되는 순간이로군요.
이제부터는 부군과 가족들간의 뜨거운 만남이 전개되겠지요. ㅋㅋ

소나무집 2009-05-07 09:54   좋아요 0 | URL
남편과의 첫 만남은 그리 뜨겁지 않았어요. 미리 나와 기다릴 줄 알았는데 한 시간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더라구요. 그동안 소심한 여자 마음속에서 온갖 망상이 자나갔을 거라는 거 상상되시죠?

마노아 2009-05-0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현장감 있어요. 좋아요, 좋아~ 이제 여독이 좀 풀리고 계시군요.^^

소나무집 2009-05-07 09:55   좋아요 0 | URL
여독은 완전히 다 풀렸구요.
휴일엔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 보고서 작성하느라고 시간 다 보냈어요.
그야말로 진짜 보고서를 만드느라...

순오기 2009-05-0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의 설레임과 긴장감이 그래도 전해와요~ 즐거운 여행 후기 기대합니다.
일본공항에서의 기다림, 정말 어이없고 황당했어요~~
혹시 6월 13일 놀토에 중학교독서회 문학기행 예정인데 완도에 가볼곳 있을까요?
문학작품을 읽고 관계된 곳이면 더 좋겠는데~ 학생, 학부모 30명 이상 예정인데 소나무집님이 안내해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추천해주세요~~

소나무집 2009-05-08 14:50   좋아요 0 | URL
님도 일본 다녀오셨으니까 잘 아시겠네요. 미국 입국 심사는 9.11 테러 이후 더 까다로워졌나 봐요.

초록이좋아 2009-05-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렇게나 고민하시더니 넘 싱겁게 끝나버렸네요.

소나무집 2009-05-11 09:3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이지.
작년 11월부터 관광비자로 바뀌면서 좀 헐렁해진 느낌도 들고,
마침 우리가 간 시기가 미국 얘들 봄방학이라 방학 때 놀러왔나 보다 했을 수도 있고...

잎싹 2009-05-14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후기 보러왔어요.
님의 글로 나마 함께 떠나봐야겠네요.~~

소나무집 2009-05-17 19:58   좋아요 0 | URL
제가 다녀온 곳,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 올릴게요.
 

미국 여행에서 돌아왔다. 4월 12일에 집을 떠나 어제 아침에 돌아왔으니 딱 20일 만이다. 지치고 힘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해지고 싶었던 내 나라는 우리 가족을 반겨주지 않았다.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나라가 난리가 나 있었다.  

인천공항에 들어선 우리는 무슨 범죄자라도 되는 듯 건강 체크에 여행 기록에 사진까지 찍히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진원지인 미국은 사실 너무나 조용했는데 말이다. 여행지 숙소에서 본 CNN 뉴스에서 돼지 인플루엔자에 관한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미국은 조용했다. LA 국제 공항엔 신종 인플에 대한 방송이나 안내문 하나 없었다. 우리가 너무 호들갑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이런 게 미국 얘들하고 우리하고 다른 민족성인가 싶기도 하고... 

원래 계획은 동생네 집에서 하루를 보낸 후 친정으로 내려가 이틀 정도 더 보내고 올 예정이었지만 모두들 오지 말라고 난리였다. 미국에서 들어온 사람하고 접촉하고 싶지 않다나... 처음엔 황당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만일에 대비해서 우리가 조심해주는 게 낫겠지 싶은 마음에 심야 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두어 시간 광주터미널 대합실에서 놀다가 첫차를 타고 완도로 왔다. LA를 떠나 길에서 30시간을 보내고 들어선 집이다. 와, 진짜 좋다.

돌아와 그동안 못 먹어서 한이 맺혔던 김치랑 밥을 실컷 먹고 열 몇 시간인가 내처 자고 나니 오늘 아침이 되어 있었다. 이젠 오지 말라고 내쳤던 친정 식구들이 너무나 고마울 정도로 푹 쉬었다. 가슴 아프게도 남편은 미국 생활 3개월 만에 7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앞으로 우리 음식 실컷 먹여 원상태로 복귀시킬 일이 나의 의무로 남았다.

오늘 하루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여행을 다녀온 게 실감이 난다. 렌트카를 타고 네비도 없이 지도만 의지해서 다닌 여행이었다. 그야말로 무식한 가족의 무모한 여행이었다. 미국 국립공원 아홉 곳, LA에 있는 디즈니랜드, 미술관과 박물관, 천문대 한 곳을 다녀왔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길을 잃어 하루를 허비하기도 했고, 기름은 떨어졌는데 주유소는 없어 가슴 졸이기도 하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을 쫄쫄 굶긴 적도 있다. 막판엔 아들이 집에 가고 싶다고 찔찔 짜기도 하고...  

여행 사진과 이야기는 천천히 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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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5-0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최고로 좋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라도 가끔 밖에 나갔다 와야 한다니까요. 돌아오셔서 기뻐요~ 무사히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나무집 2009-05-06 12:49   좋아요 0 | URL
저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기쁘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는 미국에서 굶어 죽는 줄 알았거든요.^*^

무스탕 2009-05-0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반갑습니다 ^^
앞으로 펼쳐주실 이야기가 무척 기대됩니다!!
하나 올려주신 사진도 무척이나 이국적이에요 +_+

소나무집 2009-05-06 12:50   좋아요 0 | URL
저 사진은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에 있는 후두랍니다. 정말 멋지고 경이로운 풍경의 후두들이 많았답니다.

순오기 2009-05-04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와요~~~~ 환영합니다!
잘 다녀오셨죠? 천천히 이야기 보따리 풀어주세요~~ ^^
7킬로나 빠졌다니 돌아오면 정말 잘 먹여야겠네요.ㅋㅋ

소나무집 2009-05-06 12:51   좋아요 0 | URL
미국 가서 남편을 만나고는 깜짝 놀랐어요. 몸무게도 엄청 빠졌지만 음식만 보면 폭식을 하더라구요.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나 봐요.

하늘바람 2009-05-04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지막 장면 죽이네요.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셨어요

소나무집 2009-05-06 12:52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렌트카 타고 다닌 자유 여행이다 보니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프레이야 2009-05-04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여행이야기 기대하고 있을게요.^^

소나무집 2009-05-06 12:55   좋아요 0 | URL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고민중이에요. 미국은 기회가 된다면 떠나라고 권하고 싶은 여행지예요. 영어와 정보와 시간과 돈 등등 아쉬운 게 많은 여행이었답니다.

2009-05-04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05-06 12:56   좋아요 0 | URL
고마워.

전호인 2009-05-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다시 같은 나라의 하늘아래 머물러 있어서 기쁘답니다.
시차적응 끝내고 나면 여행후기가 봇물처럼 쏟아지겠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소나무집 2009-05-06 12:57   좋아요 0 | URL
시차 적응이 아직 덜 되었는지 밤 9시만 되면 졸립고 새벽 5시만 되면 온 식구가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꿈꾸는섬 2009-05-0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여행기 기대하고 있었어요.ㅎㅎㅎ
천천히 재미난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ㅎㅎ

소나무집 2009-05-11 09:32   좋아요 0 | URL
네. 그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