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평점 :
현실과 판타지 그리고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섞어 참으로 오묘한 매력을 보여주는 온다 리쿠
극사실적인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래서 온다 리쿠의 책은 언제나 쉽지 않다.
분명한 뭔가가 도출되기보다는 언제나 모호한 상황과 결말마저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하는 방점을 찍어주지 않는 대서 오는 그 개운하지 않은 뒷맛
그럼에도 그녀의 책은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와 신간이 나오면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평을 관심 있게 보기도 한다.
이 책 유지니아는 그런 온다 리쿠식 미스터리의 정점의 작품이라고들 평하는 데 그래서인지 이번에 새로운 색을 입고 재출간했다.
지방의 명문가 잔치에서 마을 사람을 비롯해 명문가의 사람들 대부분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변으로부터 평판이 좋은 명문가를 노린 독살 사건인 이 사건은 이 집안의 아이 두 명을 포함 6명의 아이들까지 희생된 잔혹하기 그지없는 사건으로 세간의 시선을 모으지만 좀처럼 용의자를 특정 짓지 못한 가운데 생각지도 못했던 남자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를 통해 범인이 드러났다.
하지만 자살한 범인과 이 집안에는 어떤 접점도 없어 공범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대충 마무리되고 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 의해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그날의 진상을 각자의 관점에서 풀어놓고 있다.
당시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겪은 걸로 논문을 쓰고 결국에는 책을 출간한 사람부터 그날 살아남았지만 범인으로 오인받아 고통스러워했던 그 집안의 가정부, 범인을 유난히 따랐던 남자아이 그리고 그 집안의 비극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눈먼 소녀 등등
그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대부분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지만 범인은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가 없어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명문가로 명성이 자자하고 풍족하고 여유로운 집안이 대부분 그렇듯 큰 소리 날 일이 없이 화목해 보이는 그 집안에서 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그 집의 유일한 안타까운 점은 몸이 허약하고 앞을 볼 수 없는 외동딸이라는 존재뿐...
하지만 눈먼 소녀라는 이 존재는 상당히 특이하다.
비록 앞이 안 보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존재였고 사람들로부터 호감과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소녀는 동정의 대상이기보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도 그녀의 특별함을 나타내준다.
눈이 안 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행동에서 우아함이 넘치고 자연스러워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녀가 보이면서 안 보이는 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불러올 정도로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고 인터뷰에서도 그런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모두로부터 특별 취급을 받는 데에는 그녀가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 모든 이야기는 그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20여 년이 지나 인터뷰를 통해 그날의 사건을 비롯해서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죽음들이 드러나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는데 언제나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범인이 범인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책이 모호함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것에 짙은 파란색과 하얀 백일홍과 같은 강렬한 색채가 등장하고 화려한 꽃이 등장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여성적으로 몰고 간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온다 리쿠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쓰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워서도 더 잔혹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