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 시대의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조선 시대에 많은 양반들은 '소설'을 인간의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안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김만중의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같은 경우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조는 소설 문체까지 쓰지 말라고 벌을 줄 정도로 패관잡기를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애썼어도 결국 조선 후기에는 소설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설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소설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고 연구한 흔적들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나 1970~80년 대에는 사회에 참여해야 하느냐, 문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하느냐,,, 많은 논쟁이 일기도 했다. 어쨌든 많은 책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소설들이 있다. 그것은 지금의 베스트셀러와는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문학의 고전을 다시 일깨우면서 상업화에 물들지 않는 진정한 소설을 읽는 기쁨을 주려는 곳이 바로 '오 봉 로망'이라는 서점이었다. 나도 청소년기에는 책만 쌓여 있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하루 종일 읽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 봉 로망'이라는 서점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었다. 정말 우리 주변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만들어진 '도서정가제'라는 법이 있다.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법의 취지는 영세한 서점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너무 싸게 팔아서 영세 서점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거의 사라져 버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영세 서점에 도움이 되는 것도 거의 없이,,, 책의 판매량만 더 낮아지고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는 수치도 더 낮아졌다고 한다. 책을 더 읽으라고 응원하지는 못할 망정 책을 사려는 욕구마저 뚝 떨어지게 만드는 저 법이 폐지되려면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기만 하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도 영세 서점들이 어떻게든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도 떠돌았던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기획한 이벤트도 재미있었다. 네 가지 정도의 주제를 정하고 그 중의 하나를 주문하면 그에 맞는 책들을 서점 주인들이 골라서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책을 받는 사람이 어떤 책이 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호기심과 기대감을 주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영세 서점들의 다양한 이벤트나 온라인 책 판매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이 책에도 나와 있어서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 봉 로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뿌리게 되면서 점차 책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이 선정되지 못한 반대편 사람들에게 소위 말해 '안티'가 생기기도 했는데, 좋은 책들을 선정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든 책을 팔려고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대립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었다. 책 문학 시장이 돈이 되는 세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재기를 통해 일부러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걸 보면,,, 문학 시장도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소설을 추구하려는 '오 봉 로망'의 취지는 조금씩 세계 여러 곳으로 뻗어 나갔다. 이러한 주요 줄기 외에도 서점을 차린 이방과 프란체스카, 그리고 이방이 사랑한 아니스의 이야기가 조금씩 곁가지를 치고 있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마지막에 나오는 '나'라는 존재였다. 이 책의 처음과 중간 부분은 3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마지막 부분에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나'가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그 존재는 '아니스'였는데,,, 앞에는 아니스가 3인칭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갑자기 마지막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무척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책 자체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 그 책을 사게 만드는 이벤트나 마케팅이 그만큼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책 자체를 좋아하고 좋은 소설을 서로 읽고 추천해 주는 무리들은 소수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을 수놓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듯이, 즐거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런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프랑스 소설이나 유명한 고전, 작가들의 이름들을 배경지식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읽는 재미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그만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즐겁게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 예스24 예담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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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
콜린 맥클로우 지음 / 교원문고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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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쟁의 승리자를 위한 풀잎관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중 2부가 나왔다. 전에 교유서가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1부의 <로마의 일인자>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 출판사인 교유서가의 서평단 참여 제안 메일을 받고 이렇게 <풀잎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콜린 매컬로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았다. 특히나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과 그것을 채우기 위한 돈에 대한 욕심은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었다. 그렇다면 옛날 로마시대가 행복할까, 아니면 지금이 더 행복할까? 로마시대의 정치가들도 지금에 못지않게 돈에 대한 욕심은 많았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점은 '로마'라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투철했다는 점이었다.

 

로마시대의 정치인들은 '로마의 시민'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로마의 시민으로서 정치적인 선거에서 1표를 행사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며 재산을 불리고 용기를 내어 전쟁에 나갔다. '로마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리기 위해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행해야 할 의무는 철저하게 지켜야만 했다. 전쟁에 나갈 갑옷을 사비로 마련해야 했고 선거에 나가기 위해 개인의 재산을 국가에 내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치판은 어떨까? 어떤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청문회를 보면 본인들이 먼저 위장전입이나 군대 면제, 세금 탈루 등의 문제가 발견되고는 한다. 그에 대한 변명으로 지금 세금을 내면 된다, 죄송하다, 잘 하겠다는 사과 한 마디로 면죄부를 받는다. 그리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이 남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범죄 행위에 대해 점차 가볍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은 어느새 청소년들에게도 전염된 것 같다. 범죄 행위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을 때, 돈만 많이 받을 수 있으면 범죄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쨌든 이번 <풀잎관>에서도 루키우스 모르넬리우스 술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권력욕과 함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구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로마의 일인자>에서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도 술라보다 더 강렬한 캐릭터가 등장하였는데, 그게 바로 카이피오의 큰 딸인 세르빌리아였다. 세르빌리아는 '어린 악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가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세르빌리아는 자신만의 굳건한 세계를 구축하면서 아빠를 배신하는 엄마에게 죽어버리라고 저주를 하며 상처를 준다. 엄마가 아빠에게 매를 맞는 상황에서도 잘했다며 죽이라고 소리치는 아이를 보며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저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정작 아빠는 세르빌리아를 친자식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세르빌리아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당연하다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아이는 대체 어떤 어른이 되어갈까,,, 궁금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린 매컬로는 복잡한 로마사를 생동하는 캐릭터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혔다. 권력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로마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 시대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인생무상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우리는 그런 물욕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고단한 인생살이를 돌아보며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쨌든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아픈 몸을 이겨내고 7번째 집정관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술라가 풀잎관을 받고 권력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을지,,,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가 어떤 활약을 벌이게 될지 다음 책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7부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머나먼 여정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집중력, 필력에 대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문학동네 교유서가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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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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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사건이 결국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작은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거짓말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그런 사소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결국 우리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책은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서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정말 세밀하게 나타내고 있다.

 

예비 초등학교에 아이를 등장시키게 된 세 명의 여인이 있다. 지기라는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제인, 이혼한 전남편과 한동네에 사는 불편을 감수하며 애비게일를 키우는 재혼녀 매들린, 부와 명성을 가진 남편과 맥스라는 쌍둥이를 키우는 셀레스트는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는 일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량이 상당하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죽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 퀴즈 대회 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걸 보면서 부자 동네든 아니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미국에서도 그렇게 이웃집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라면 얼마나 옆집 얘기를 떠들어 대면서 얘기하고 있을지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비싼 옷과 가방으로 치장하고, 자녀를 이웃집 애기와 비교하며 비싼 학원에 보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이 책에서 핵심은 '폭력'이었다. 요즘에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내 폭력 등에 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폭력은 우리의 자녀들이 똑같이 배워서 다른 약한 아이를 괴롭히며 폭력이 대물림 된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특히, 데이트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자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이 억압되는 측면이 매우 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의사에 반해서 일어나는 데이트와 비슷한 행위가 강간이나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가정 내의 폭력 사건은 어떠한가. 가정에서의 폭력은 처음에는 우연히 일어나고 그것이 점차 흐지부지 지나가 버리면 폭력이 만성화 될 위험도 있다. 나중에는 창피해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도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가정 내 폭력을 일상적으로 당한다. 마음에서 울분이 차오르지만 그것을 밝히기 힘들어하는 여성 특유의 감성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은 단순한 한 사건에서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러 사건들이 거듭 일어나야 문제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아주 일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부자이고 행복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돈이 많다고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웃기면서도 웃을 수 없는 묘한 세계라는 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삶을 살아가려고 애쓴다.

 

 

* 네이버 책좋사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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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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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슬픈 사건

 

 

'도가니'의 뜻은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이 지금도 슬픈 이유는 이러한 비인권적인 일이 아직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한 도시, 광주의 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인 책이다. 처음에 그 사건이 일어났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일이었다고 하니,,, 이렇게 책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그냥 잊힐 사건이었다는 것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건이 일어났어도 장애인들이 그 학교를 계속 다녀야 했다니,,, 이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일일까?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너무나 쉽게 일어나고 있고 그것에 대해 문제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주변 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우리 자신의 삶이 너무나 각박해진 것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강인호는 한 장애인 학교에 기간제 교사가 되어 무진시로 내려간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무진'이 이렇게 상징적으로 쓰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특수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강인호는 이사장의 연줄을 통해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게 된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서울에서 밀려나도 일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게 된다. 청각장애 학생들과의 소통에 애를 먹지만 말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 결말에서의 강인호의 선택에 기인하는 면도 있다. 이유는 다르지만 선택하는 것은 결국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내에게 떠밀려 가기 싫은 '무진'이라는 곳에 내려오는 설정도 같고 말이다. 이러한 안개는 대체 언제 걷히게 될 것인지,,, 몇 십 년이 흘러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하고 불안한 현재를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 강인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청각장애 학생들과 관계 맺기를 힘들어 한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교장과 행정실장이 쌍둥이라는 점이나,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규율로 다스리고 말썽부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지상 과제라는 것을 느낀다. 당연히 뇌물을 바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학생 한 명이 죽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걸까? 강인호는 사회와 학교 자체의 불합리하고 비겁함에 치를 떨지만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그런 복잡한 일은 잊어버리고 학생들과의 교류에 힘써 보기로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밝혀지는 진실들,,, 추악하고 더럽다. 이런 어른의 세계로 정말 순수하고 연약한 아이들의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한 마을에 있는 장애인 여성을 몇 십 년 동안 그 마을 어른들이 성폭행을 가해 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장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하는 연약한 장애인 여성이 너무나 쉽게 밟혀 버리는 현실이 아직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말을 못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여성, 특히 장애인들에게 가하는 어른 남성의 폭력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다. 왜 우리 사회는 장애인 여성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결국 사회 운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강인호처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우리 자신들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관심을 갖거나 사회 운동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의 자발적이고 꾸준한 관심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금방 뜨거워지고 식어버리는 냄비가 되지 말고 꾸준하게 뜨거움을 발산하는 뚝배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이런 아픈 사건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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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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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종말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삶

 

 

<엔더스>는 <스타터스>의 후속작이기 때문에, <스타터스>의 세계관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스타터스>는 생화학 전쟁이 일어나서 십대 이하의 스타터스들과 고령층의 노인들인 엔더들만 남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미등록 미성년자였던 켈리는 아픈 동생을 살리기 위해, 불법으로 신체 대여를 운영하던 회사인 '바디 뱅크'를 찾아갔다. 부유한 엔더에게 스타터스의 젊고 건강한 몸을 고가의 비용을 받고 대여해 주던 바디 뱅크에서 켈리는 생각지도 못한 음모를 만나게 되었다는 내용이 바로 <스타터스>였다.

 

<스타터스>에서 켈리는 바디 뱅크를 파괴하고 더 이상 엔더들에게 몸을 대여해 주지 않아도 되어 자유를 찾은 듯 했다. 하지만 <엔더스>에서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이 남긴, 뇌에 칩을 이식한 스타터들인 메탈을 추적하여 모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켈리에게 올드맨이 나타나 강렬한 경고를 남긴다. 프라임을 파괴했다고 자신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올드맨은 여전히 어떤 칩이라도 접속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칩을 파괴하거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까지 해서 하나의 무기로도 만들 수 있었다.

 

<엔더스>에서 켈리는 자신의 몸을 잡아가려는 올드맨을 피해 달아나면서 올드맨의 아들인 하이든을 만난다. 켈리는 하이든과 함께 메탈들을 모으는 한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머리에 이식된 칩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켈리의 칩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켈리가 가진 칩은 대여자가 유일하게 살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명의 대여자가 동시에 칩에 접촉할 수 있었고, 접촉을 할 때 켈리는 자신의 정신을 유지할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켈리는 특별하게 취급되어 돈 많은 엔더들에게 비싼 값에 팔릴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이든은 이러한 기술을 팔려는 자신의 아빠에 반대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주 특별한 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피부가 너무나 예민해져 있어서 보통 사람의 접촉도 하이든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런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하이든과 켈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

 

솔직히 <스타터스>를 읽지 않아도 <엔더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엔더스>에서 조금씩 나오는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드러난 단서로 <스타터스>의 내용을 추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세대 전쟁'이라는 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세대 간의 갈등이 드러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세대 간의 단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일자리의 경쟁과 세금이나 연금 수령, 노인을 부양하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화학 전쟁으로 중간 세대가 사라진 것이지만 말이다.

 

나이든 엔더들은 돈이 많지만 젊음이 없다. 나이 어린 스타터스는 돈이 없지만 젊음이 있다. 서로의 돈과 몸을 교환하는 것이 과연 물물교환이나 공정한 경제 사회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스타터스>나 <엔더스>의 세계를 창조한 필자의 상상력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스타터스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모습의 묘사라든지, 중간 세대인 미들만 사라진 이유라든지, 정신이든 영혼이든 자신의 의식을 칩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라든지,,, 이러한 세계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지구가 종말을 맞든 맞이하지 않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어떤 도덕이나 윤리의 가치가 남지 않고 경제적인 이유로 모든 것이 판단 될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도 사람은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구나,,, 이게 우리 인류의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 네이버 블로클 황금가지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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