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활이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사실 난 외롭지 않았다. 마야가 한 번에 네다섯 시간씩 사라지고 없어도 괜찮았다. 내겐 책이 있었고, 음악이 있었으며, 그즈음에는 대학 때 알았으나 만남이 끊긴 옛친구들에게 편지도 쓰기 시작했다. - P52

나는 서른한 살이었고 내 일을 좋아했다. 내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마야와 함께 있는 한 그저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다른 사람의 예술에 소소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도 자신이 가는 길의 일부라고, 마야는 언젠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 P53

설거지를 마친 뒤 마야는 식탁에 앉아 잠들기 전 마지막 담배를 피웠고, 그때 삼면화 얘기를 꺼냈다. 함께 일하는 미술관장이 그 작품을 전시에 쓰고 싶어한다며 내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네가 가지면 좋겠어." 마야가 정물화를 내밀며 말했다. 그제야 깨달았지만 그건 근사한 그림이었다.
"왜?" 나는 물었다.
"왜냐면," 마야는 돌아서서 부엌에서 나가며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서야." - P62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야는 단기간에 연이어 작업한 그림 세 점을 내게 주었다. 삼면화였다. 마야는 내가 14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토의 열렬한 팬이며 조토가 파도바의 아레나 예배당에 그린 프레스코화를 특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마야는 조토의 그 그림들을 본보기로 하여 그가 그린 하늘의 짙푸른 색감과 복합적이지만 단순하게 표현된 종교적 주제를 완벽히 포착해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 - P44

"이십대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는 시기인 것 같아. 하지만 삼십대는 최고의 성과를 내는 시기지." - P45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마야를 바라보았다. 벌써 마야가 떠나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 어딘가 달랐다. 아마도 그때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 이미 가버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 - 내 인생의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 P58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이제 방안에는 다른 기운이,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마야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뒤쪽 배경 어딘가에서, 멀리 기차역 플랫폼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P59

그날 밤에 아파트에서 마주앉아 언제 이 집에서 나갈지, 언제 라이어널에게 말할지를 비롯해 이주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던 중 마야가 잠시 사라졌다가 작은 유화 한 점을 가지고 돌아와 내 앞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해 여름에 우리 아파트 안의 정물을 그린 그림이었다. 와인 한 잔, 부엌 개수대 위에 놓인 조그만 검은색 라디오, 담배 한 갑, 그리고 창틀에 올려놓은 다육식물 화분 몇 개.
마야는 그게 어떤 그림인지, 그걸 왜 내게 주는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식탁에 그걸 올려놓고 부엌에서 나갔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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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관심이란 자식에게 자석처럼 끌리기 마련인 반면에 자식, 무엇보다 한창 크는 사춘기 자녀의 관심은 하루키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거나"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에게 가기 십상이니까. 그 숭배의 대상은 주로 연예인이나 친구지 부모일 확률은 제로다(생각해보니 자식이 부모에게 관심이 많다면 그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d4c11d758ad0446c - P19

내가 왜 그렇게 교훈 찾기에 집착하는 지루한 어른이 됐을까. 생각해보니 무슨 일에든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이 범인인 것 같다. 쇼핑에서만 가성비를 찾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도 가성비를 찾고 싶은 마음. 무슨 일을 하든 의미나 이익이 없으면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d4c11d758ad0446c - P28

그래서 서로를 향한 모녀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고, 얽히고설킨 모녀의 이야기는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가 ‘엄마처럼’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겠지. 그런 내 뒤에 엄마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쓰겠다는 의지가 강한 릴리가 그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박산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d4c11d758ad0446c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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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doesn’t put it like that, of course. - P62

Some of his problems have to do with what happened to his sister, I take it. - P62

But this could be a chance for him to break out. Break the pattern. Like his mother has. Like you’ve done. - P63

He won’t, though. He’s got his life all screwed down tight. - P63

Don’t make them too racy. It might disturb my rest. - P76

When they were finished Louis said, We better get some root beer floats to take with us. - P78

You better get to going. You don’t want to be as old as me.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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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giornata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29

오늘날 우리는 이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36

1490년대에 제작된 그의 〈피에타Pietà〉(미켈란젤로의 걸작이며 피에타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된 작품–옮긴이)가 거장의 명성에 걸맞는 걸작이라면 이 〈론다니니 피에타Pietà Rondanini〉(미켈란젤로의 유작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와는 달리 성모가 예수를 선 채로 끌어안고 있는 구도 때문에 축 늘어진 예수의 몸이 부각되어 더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옮긴이)에서는 고통과 내밀한 슬픔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44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56

인생은 길다. 그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젊어서 죽으면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요절하지 않으면 다 자란 후에도 추가로 남은 몇십 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60

그러나 크게 보면 15세기 예술품들이 10년 더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메트가 달라 보인다면 그것은 그곳을 보는 사람의 눈이 변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66

옛 거장들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리얼리즘이다. W. H. 오든의 시 「뮤제 데 보자르Musee des Beaux Arts(미술관)」에도 나와 있듯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77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bbedd3972f284f8b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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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was always the sense of a shadow looming just beyond the wall, the hum of a greater absence.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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