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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흠좀무

 

딸이 수시 준비를 하는데 어떤 학교는 추천서를 2인에게 받아서 내라고 한다 .

담임교사가 1 통은 써주지만 나머지 한 통은 누구에게 받을 것인가 ?




딸은 전에 민노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탈당하는 바람에 청위사람들과 관계가 다 정리되고 말았고

무극 절에도 한 이년 못 갔으니 주지스님에게 써달라는 것도 우습고

친한 목사님께는 얼굴이 없어서 못 써달라겠고

중학교 담임에게는 인사 한 번 못 갔으니 그렇고

내가 아는, 사회적 지위가 좀 되는 사람들은 다 받고 싶지 않은 대상들이고

가족은 안 된다니  제쳐놓고

딸아이를 가장 칭찬하는 분은 경비하는 아저씨들인데

왠지 그건 아닐 것 같다 ...-.-;;




딸은 생각 끝에 홍세화, 진중권, 심상정, 노회찬, 정태인, 우석훈,

서준식...이렇게 자신이 사숙한 분들에게 메일을 띄워서 추천서를

부탁해보겠다고 해서  잘 해보라고 했다 .

흠좀무....




2 . 님좀꽝

 

딸이 뭔가 일처리를 하는 걸 보면 99.9% 맘에 안 든다 .

나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맘에 안 드는 자식이었을 것이다 .

짐작컨대 99.8%.




그래서 딸에게 ,

“ 요번 일은 님좀짱, 이라고 하고 싶은데 님좀꽝이다.”

하고 평가를 내리면 주댕이 댓빠리 나온다 .




어제는 딸에게,

“ 너 라온, 그 아이디 버리고 부모 양성쓰기해서 ‘박임좀꽝’으로

아이디바꿔라. ”했더니 ,

“좀꽝이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 ” 한다 .




3. 구글 검색

 

친구가 뇌출혈로 아주대병원에 입원해서 수술받았다 .

병문안을 하고 나오는데 문득, 오래 전에 알던 선배가

아주대 간호사였던 게 떠올랐다 .

그래서 집에 와서 구글 검색으로

<아무개, 아주대병원, 연세대 간호과, **아파트>로 검색어를 넣었더니

아주대간호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나온다 .

사진 확인해보니 맞다 .

그래서 메일 보내고 답장 받고...

선배는 깜짝 놀란다 .




7 년 전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아주대 장례식장 이용했는데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생각 못했는데

17 년 만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

그때 담선을 포대기에 업고 찾아가 만나곤 했는데

이제 담선은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우리는 50 대 중년 여성이 되었다 .

나는 돌아온 솔로, 그 선배는 여전히 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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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봉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일하러 나가려 세수를 했는데

면봉이 단 하나 남았다 .

썼다 .




1시간쯤 지나 딸에게 문자가 왔다 .

-엄마 ! 면봉 어딨어 ?

-엄써.

-헉~ 그럼 귓속 물은 어떡해 ?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묵묵부답.

나중에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까 ,

-화장솜을 이용했어.난 그렇게 어리지 않아 .




2. 쌀어묵




생협 쌀어묵은 데워서 그냥 먹어도 맛있다 .

며칠 전 저녁도 못 먹고 늦게 들어왔는데

밥 차려 먹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쌀어묵을 봉지 째 데워

포크 하나 들고 컴 앞에 앉아 먹었다 .

이 쌀어묵은 지름3센티 정도 원반형으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다 .

거의 다 먹었는데 딸이 제 방에서 나오면서

“ 엄마! 이거 쌀어묵 냄새 ? 설마 엄마 혼자 ?”

하길래 남은 것 다섯 개를 포크로 꿰어 고정시켜 바닥에 놓고 꽉 눌렀다 .

“ 엄마! 이럴 수가!”

“ 넌 살 날이 많이 남았잖아!”




3. 팔공산 기돗발




예전 수강생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머니는 얼마 전 밤 9 시에 북문 농협 옆에서 2만원주고

전세 버스 타고 대구 팔공산까지 갔다고 한다 .

그리고 거기서 자정 넘어 한밤중 백팔 배 절하고

아들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기원한 뒤

버스 타고 돌아오면 새벽 6 시라고 한다 .

그래서 고3 아들 아침밥 해먹여서 등교시켰단다 ....




나는...

딸아이가 공부하는데 피곤하다고 하면,

-그럼 내가 공부할테니 네가 돈벌어와라.




수능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하면,

-나는 십 년 넘게 수능 공부하는 데 일 년 갖고 뭘 그래 ?




무슨무슨 대학에 못 가면 어떡하냐고 끌탕하면,

-나는 지방대나와도 별 상관없던데 ......




자정에 아파트 정문 앞으로 데리러 나오라고 전화하면,

-넌 혼자서도 올 수 있는 애잖아. 기운내!




4. 나쁜 걸, 이상한 걸, 싸가지 없는 걸,




친구가 어떤 기이한 단체에서 일을 한다 .

이게 왜 기이하냐면 겉으로는 뽀대나는 교육사업인 척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사설 +봉사 +사교육업체 트랜스포머 >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 단체 책임자 여성이 급여를  열흘 밀리는 건 예사고

두 달 밀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원래 봉급생활자건 일급생활자건 급여는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줘야  경제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거다 .

또 사정이 있어서 못주면 ‘사정이 이러저러하다’ 고

양해를 구하는 게 노동자 인격을 존중해주는 첫걸음이다 .




얄궂은 건 그 책임자여성이 내 친구보다 젊고

명랑하고 똑똑하고 부유하고 행복한 처지라는 사실이다 .

예전 내 성질 같았으면 당장 전화해서

“ 이 나쁜 여성아! 진보입네 떠들면서  노동자 급여 날짜도 못 챙겨 주냐 ?”

고 단칼에 ....그러나 갑신정변 이후로 나도 많이 퇴화해서

그냥 여기에 욕하고 만다 .




“ 이 나쁜 걸, 이상한 걸, 싸가지 없는 걸아!

노동자 임금은 좀 제때 주고 살아라. 너같은 것들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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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7 년 전에 77 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서민병원에  입원하셨다 .

병원 측에서 심장 수술을 하면 좀 더 사실 수 있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펄쩍 뛰셨다 .

살만큼 살았다고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

그리고 눈감으시기 하루 전날, 일요일 이었는데

앨범 갖고 오라고 하시더니 사진을 골라 영정 사진으로

액자에 담아오라고 하셨다 .

동생이 친분있는 남문 사진관에 가서 억지로 문을 열게한 다음

확대해서 액자에 끼워 보여드렸더니 흡족해하셨다 .

 

그리고 아버지는 남아있는 통장을 다 나에게 주시며

사이좋게 나눠쓰라고 하셨다 .근데 많지 않아서 내가 다썼다 -.-;

아버지는 당신 수첩에서 장례식에 부를 사람 명단을

일일이 체크해주셨다 .-.-;;

 

그리고 다음 날 (월요일 ) 낮 1 시에 돌아가셨다 .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사신 건 많은 부분 삶을 긍정적으로

사신 덕분같다 . 아버지는 좀처럼 속을 끓이지 않는  법을 아셨고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으며

선경도서관을 자기 사무실처럼 이용하셨다 .

 

내가 어린 시절엔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북문에서 남문 아버지 가게까지 가며

상점 간판을 역순으로 사라고송, 점과제욕뉴, 시낚울서...하는 식으로

읽으며 한글을 깨쳤다 .

아버지는 말년에 새벽 세 시면 일어나 한겨레신문 지국에 가서

신문 두 부를 가져와 한 부는 우리 집에 넣어주고 한 부는 통독한다음

우리 집으로 와서 그 날의 시사토론을 하는 거로 낙을 삼으셨다 .

 

우리 형제들도 어린 시절엔 아버지 자전거를 틈틈히 타는데

다리가 짧아서 엉덩이를 실룩하면서

페달을 밟던 어린 동생이 이제는 아버지랑 똑같이

머리카락 숱 적은 사십 대 남자가 됐다 -.-;;

나는 아버지 자전거를 타다가 신풍학교 옆 도랑에 처박혀

(예전에 복개가 안 된 도랑이었다)

핸들이 비뚜러진 자전거를 간신히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

 

유산도 안 남겼다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가장 고마웠던 건 딱 한 달 아프고 돌아가셔서

자식, 며느리 고생 안시키신 거다 .

 

 

2. 바보새끼들

딸이 지난 주 수시시험을 보러 서울에 갔다 .

외숙모 휴대전화를 빌려들고 아침 6시반에 전철을 타고 갔다 .

학교에 8 시에 도착한 딸이 전화를 했다 .

" 엄마! 여기 엄마랑 안 온 애는 나 하난가봐 . "

" 아니 ? 전부 바보새끼들이라니 ?전철 타고 가서 걸어가면 학교 보이는데

왜 엄마 손은 붙잡고 간다니 ? 우리 삼촌들은 개성에서 서울까지도

기차타고 가서 중학교 입시를 봤다고 하더라 . "

" 예~ 어머니!안 바보새끼는 시험보러 들어가겠습니다 . "

 

나중에 수강생들에게 물어보니 세 명 모두 어머니나 아버지랑 함께 갔다고 한다 .

이유는 ? 점심 사멕이려고 아니면 기도하려고 ......@@

 

3. 시골집

월요일에 벗들 세 명과 의왕에 있는 '시골집'이란 밥집에 갔다 .

한 벗이 거기가 무지 싸고 맛있다기에 간 건데

6 천원 선불이 뭐가 싼 건지 모르겠고

그 밥상을 왜 줄을 서서 받아먹으러오는 건지 모르겠더라 .

우리 쌀을 쓴다고 쌀 포대를 쌓아놓긴 했는데

그건 뭐 당연한 거 아닌지 .......

갈치구이를 <무한리필> 해준다는 게 그 벗들 마음을 끌었는지는 모르지만

줄서서 뭐 먹는다고 서있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참! 처녓적엔  명동칼국수랑 금강섞어찌개, 카사돈가스집에서

줄서서 먹었던 기억이.......-.-;;

 

4. 조카

내사랑 조카들!

남동생네 아기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애들 놀리는 재미에 산다 .

여섯살 짜리 조카가 전화했다 .

" 고모!"

" 왜 ? 이쁜이 ?"

" 저 자장면 먹고 싶어요 . 언제 오세요 ?"

"고모 지금 일하는 건데......"

" 언제 끝나시는데요 ?"

" 한 삼 년 걸려 . "

"(제 어미 보고 )엄마! 삼 년 있어야 끝난대.(끊는다 )"

 

5. 광교산

친구들이 광교산 가자고 전화했다 .

오전에 잠깐 다녀오려고 나섰다 .

친구들은 등산복입고 배낭메고(이 속에 물이랑 오이, 배가 들었다)

등산화 신고 나왔다 .

평소대로 치마입고 납작한 슬리퍼 신고 나온 나를 보고 째려본다 .

왜 ? 내가 신풍학교 ,수여중 다닐 때 슬리퍼 신고 올라가던 앞산이 팔달산

뒷산이 광교산인데 등산화는 무슨......

이제는  등산 후 거기 백운보리밥집 보리밥도 지긋지긋하다 .

그냥  집에 와서 물말아서 오이지 반찬이랑 된장찌개해서 한 술 먹고 말았다 .

 

6 . 남산

지난 주 후암동 수업 11 시 반에 마치고

그 집 어머니와 남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빙빙 돌며 내려와 국립극장 거쳐 그 집까지 내려오니 두 시다 .

고속도로는 안 막혀서 좋았는데

내년 일 년 더 신으려던 샌들은 외피 다 벗겨지고 거덜났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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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오프라윈프리 리더십여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 남아공에서 가장 가난한 집 소녀들을 뽑아

전액 장학금을 주어 교육시켜 남아공 여성지도자로 키운다는 것이다 .

거기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돈 한 푼 안내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다 .

“그러는 당신은 타인을 위해 뭘 해봤는데 ? ”




2 . 브래드피트+안젤리나 졸리




영화 ‘가을의 전설’을 본 날부터 브래드피트를 좋아했다 .

배역은 그냥 이미지일 뿐이지만 내 눈에 그의 메소드연기는

존재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다 .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뭐가 매력적인지 잘 모르다가

브래드피트와 결혼한다기에 정말 초현실적인 화학결합이구나 싶었다 .

그런데 안젤리나 졸리에 대한 보도를  보았더니 존보이트의 딸이며

빌리 밥 손튼과 두 번째 결혼 생활중 제 3 세계 아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 그리고 입양을 잘 이해하지 못한

빌리밥 손튼과 이혼하고 브래드 피트와 3 혼을 한 다음

또 입양하고 제 아이들도 낳고 여전히 제 3 세계에 가서

봉사한다는 것이다 .

안젤리나 졸리가  여배우로서 보여주는  ‘섹시’ 한 이미지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수없이 타인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면

예쁜 여자들은 다 머리가 가볍다는 선입견은

진짜 선입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3. 마돈나




마돈나의 노래와 복장을 보면 흠~작정하고 이미지를 만드는구나

싶기도 했다 . 그런데 마돈나가 말라위 어린이를 입양하고

오프라윈프리처럼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말라위에 여학교를 세운다는

보도를 보고 속내가 따로 있을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4.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 저것이 진정 사람인가 싶기도 한데

이디오피아, 수단, 베트남등 제3세계를 방문해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에  그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암 투병중이던1992년 9월에 기아와 질병으로 가득한

소말리아를 방문, 전세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고 호소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기도 했다 .

지금도 ‘로마의 휴일’을 보면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또 그렇게 아름다운 행실을 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

그래서 우리가 오드리 헵번을 기억할 때면 외모보다 행실이

더 아름다운 천사가 천국에 갔구나 할 것이다 .




5. 신애라+차인표




한 번도 신애라나 차인표가 뛰어난 영화배우라고 느껴본 일이 없다 .

하지만   두 사람이  제 아이가 있는데도 입양을 하고 외국에 나가

봉사를 하고 외국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기부한다는 보도를 보고

그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 비록 신애라가 ‘뉴코아’전속 모델을 한다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보기도 했는데

그 흠을 그렇게 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




6. 김장훈




김장훈더러 ‘기부천사 ’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 자신은 집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타인에게 기부하면서 그 기부금을 갚기 위해

또 열심히 공연한다는 말은 신선한 발상이라고 느꼈다 .

금액이 얼마가 됐건  김장훈은 베풀면서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




7. 정혜영+션




지누션의 ‘말해줘 ’를 즐겨 부른 적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힙합을  하는 가수들은 좀 내 취향이 아니었다 .

그런데 션과 정혜영 부부가  재테크는 별로 안하면서

100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부한다는 말을 듣고 지누션의 음악이 가진

오묘한 예술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




8. 최진실

 

몇 날 며칠동안 최진실은 각 케이블 TV를 장식했다 . 

사람들은 국민배우가 죽었다고 슬퍼한다 .

그 여자가  얼마나 고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얼마나 외로웠으며 악플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불행한 선택을 했다고

악플러들을 처단하자는 여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

최진실이 진짜 왜 죽었는지는 최진실만이  알 것이다 .

하지만 최진영 말대로 ‘건물 100억과 집 30억 밖에’ 재산이 없다면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쉰 살이며 아직 결혼을 안 해(혹은 못해)자식도 없는 벗이 전화를 해서

‘나는 재산도 없고 남편도 자식도 없는데 자기가(최진실이)

20년 동안 외로웠으면 나는 이미 외로움에 절어서 말라죽었겠다 ’ 하고

툴툴거렸다 .

누구 외로움과 슬픔이 더 지독한지는 수치로 계량화하기 어렵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진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회와 연대하여

사는 길을 택했더라면 130 억이나 되는 부동산을 두고

아직 어미 손길이 절실한 자식들 곁을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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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네

 

 우리 어머니는 고향은 울진이고 '해주 오씨'였다 .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해주오씨'가 똑똑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

어쨌든 우리 어머니는 똑똑한 분이었다 .

시절을 잘 만났다면 고등교육을 받고 남들  앞에 나서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

 

그런데 엄마네  가족(해주오씨네)들은 모두 목소리가 컸다 .

그리고 감정 조절이 잘 안되어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

남이 듣기 싫어하는지 어떤지 고려하지 않고 하고싶은 말을 '직빵' 으로 했다 .

그리고 보증서달라는  말을 잘 하고 돈 빌려달라는 말도 취직 부탁도 서슴없이 했다 .

그런 다음에 만나면 상대에 대해 서운했던 점을  필터에 거르지도 않고

바로 뱉어서 분쟁을 야기하거나 술마시고 용기 백배 한다음 욕을 하며

싸우고 울고 뒤집어졌다 .

 

그런데 다음에 제사나 명절이나 잔치에서 만나면

지나간 분쟁은 다 잊고 또 웃고 떠들고 술마시고 가문 단위로 놀러갔다 .

물론 비용을 대는 잘 사는 친척이 있었다 .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런 모든 교류는 '0' 이 되었다 .

내 DNA는 오씨와 임씨 절반일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오씨'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

참! 어머니네 어른들은 거의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

 

2 . 아버지네

 

아버지는 개성에서 인삼농사를 짓던 중농이고 '안동 임씨'가문인데

가문이라기도 낯간지러운 게 전국에 2,497명(2000년  통계)이라니

지금도 별로 늘었을 것 같지 않고 아마도 안동김씨 가문을 도와 종노릇을 하다가

조선중기에 족보를 만든 기층계급일 것 같다 .

 

우리 가문에는 (-.-;;)뛰어난  사람도 별로 없고

집안에서도 미국가서 수학박사라는 5촌외에는 출세한 사람도

소름끼치는  악당도 없는 그냥 그런 집안이다 .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표현) 얼마나 '개성사람' 스러운지

모이면 절대로 큰소리를 안 낸다 .

보증서달라는 소리는 하는 걸 들어본적도 없고

굶는 게 뻔해도 친척끼리 돈빌려달란 소리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

또 돈 있다고 티내는 사람도 없고  좋은 일했다고 신문에 난 사람도 못봤으며

명절이나 잔치에도 넘치도록 뭘 사오거나 감동을 주는 퍼포먼스라는 것도 절/대/ 없/다 .

 

또 하나 명절이나 제사에 모이면 다른 가족 애들 성적도 묻지 않고

승진 상황도 묻지 않고 남의 연봉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

식사도 한 끼만 먹고 게임을 절대로 안하며 바로 일어나고

붙잡지도 않으며 방학이나 휴가에 친척끼리 놀러가지도 않는다 .

집들이 하는 것도 못봤고 가문단위로 여행같은 건 있/을 /수/도 /없/다 .

당연히 싸움도 없고 서운한 것도 없고 기대도 없고

정도 없다 .

 

내 DNA는 오씨와 임씨 절반일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임씨네 사는 방식' 이 재수없어서 가기가 싫다 .

임씨가 아니었던 홍씨 백모님이 오라고오라고 해도

사촌들 오촌들 다 면대하기 껄끄러워서

좀처럼 가지 않다가 올 봄에 구순 백모님 별세하시고

초상집 다녀온 뒤 내 동생들 외에는 임씨네하고

좀처럼 만나지 않는다 .

 

3. 박씨네

 

딸의 아비는 삼대 독자 외아들이어서 서발 막대 휘둘러도 아무도 없다 .

그래서 잘 모르겠다 .

 

4. 섞어찌개

 

얼마전 끝난 '엄뿔' 이나 요새 하는 '너는 내 운명' 같은  복합가족 시스템에서는

살아본 적도 없지만  그런 집 며느리하라면  정주영네라도 못할 것 같다 .

오래도록 딸과 둘이 살았고

동생들은 이웃에 살아도 같이 두끼를 먹지 않고 같이 여행도 가지 않는다 .

 

그러나 복합가족 체계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미덕이 있다 .

싸우기도 하고 흉도 보고 비교당하고 열통도 터지지만

왜그런지  정치적이고 음모 가득한 서스펜스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

그런 드라마 주인공 혹은 조연으로 살다보면

참을성, 친화성, 능구렝이처럼 넘어가는 법을 배울 것 같다 .

우리 모녀는 오래도록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서

강한 충격에 약하다 .

누가 언짢게 굴면 그냥 문을 닫거나 가벼운 중이 절 떠나는 게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

 

중앙당게에 보면 참 쓰잘데기 없는 일로 싸운다 .

진보신당이 가져야 할 가치와  곧 닥쳐올 엄청난 경제 쓰나미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시점인 것 같은데

지엽적인 문제로 피를  흘린다 .

 

재수없는 '아버지네 ' 같은 방식도 문제지만

상대 가슴에 무수한 상처만 남기는 야생의 담화방식을  못 고치는'엄마네' 같은 경우도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

 

5. 좀비정권에서 살아가기

 

오늘도 뉴스를 들으면

1997 년, 어린 거 데리고 집도 절도 없이

빚만 잔뜩 진 채로 하루하루 수강생 끊어지는 소식을 듣던

그 아득하도록 암담한 날들이 떠오른다 .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수강생이 '0' 이 되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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