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강렬한 시에서 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철저히 짖밟히고, 동물적 식욕과 생존 욕구만이 남아 있는 인간! 프리모 레비는 질문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냐고....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려면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이 보장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인권과 생존권은 보장되어야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 필요한 인권과 생존권이 철저히 무시된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그 속에서는 동물적 욕구만이 존재한다.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생존을 위해서 나치에 협력하는 카포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의 시체를 처리하며 그들의 입속에 있는 금니를 뽑아낸다.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대인 포로들은 카포에게 잘 보여야만 했다.

이탈리아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작가는 이송도중 독일군 호위병에게 이유없이 구타를 당한다.

 

"그들이 우리를 버스에 태워 카르피 역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기차와 호위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17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그들을 보면서 프리모 레비는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섬세한 프리모 레비의 감수성에 감탄이 절로나온다.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져있다. 나의 어린시절, 학교에서도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위에 삼국지를 올려 놓았다고 담임 선생은 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산수문제를 못푸는 학생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칠판에 강하게 부딪쳤다. 폭력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교사가 휘두르는 폭력을 학생들도 그대로 배웠다. 학교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폭력은 종종 벌어졌다. 단지 담임 교사가 무관심해서 몰랐을 뿐이다. 학교의 폭력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훈련을 앞두고 군기잡는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일명 '차기'인 상병이 이등병과 일병을 구타했다. 상병이 제대로 구타하지 못하면 병장이 상병을 몰레 구타하며 '군기 제대로 잡아라'며 훈계했다. 우리 사회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우리는 폭력에 무감각해졌다.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보았다. 재미로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사람을 나는 많이 보았다. 프리모 레비에게는 우리가 익숙한 폭력의 일상화가 무척 생소했다. 이러한 감수성이 그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었을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는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의사, 제봉사, 약사, 화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왔다. 그런데, 때로는 강제로 끌려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 순간 나의 눈을 의심했다. 죽음의 수용소에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프리모 레비는 '터무니없게도'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나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의 숨통을 옥죄는 악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예'가 현실에는 존재한다. 법이 존재하는 정당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악법도 법이라고 믿는 그들은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한나 아랜트의 '악의 평범성'의 사례는 가해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는 '노예'들은 악법으로 인간을 괴롭히고 사법살인을 하는 '법비(法匪)'의 좋은 먹이감일 뿐이다. 이런 노예들은 우리 주변에 많지 않은가? 나라를 도둑질할 놈을 그가 특정 지역 후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찍어주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리주변에 흔하게 있지않은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떠올랐다. 빅터 프랭클의 글에 묘사된 죽음의 수용소에는 음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에 반해서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음울함이 짙게 묻어난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배고픔이 떠나지 않았으며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본능을 레비는 탁월하게 묘사했다.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장기적인 목표를 갖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음울함이 그가 1987년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그도 삶의 의미를 말하기도 했다. 독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엇을 것이다."-307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은 진실을 증언해야한다는 그의 삶의 의무, 혹은 의미는 그가 1987년까지 살아 남는데 기여했다. 수용소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공통으로 꾸는 꿈이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가족에게 자신이 겪었던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진실을 알리려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고통속에서 꿈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증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자 의미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일본어판 제목이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이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1987년 자살한 이유도 전후 세대들이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해서 관심이 사그러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그의 삶의 의미를 사라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팔래스타인 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우슈비츠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것에 대해서

 

"아무리 전쟁중이라하더라도 베긴과 그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잔인한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319

 

라고 일갈했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더욱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어리석음을 프리모 레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우슈비츠가 그에게 또다른 대학이었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나의 과거는 나를 더욱 풍요롭고 자신감 넘치게 해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라벤스 부르크 여자 수용소에 끌려갔던 내 친구는 수용소가 자신의 대학이었다고 말한다."-307

 

감옥, 수용소를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대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 신영복 선생부터,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 어느 곳에선들 배우고 알려한다면 인간은 성장한다. 똑같은 고난 속에서도 그가 무엇을 배우려하는가에 따라서 고통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이 피듯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잊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이 진정 인간적인 인간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1-06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3-01-10 03: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요즘 바빠서 댓글을 지금 다네요.
새해에 웃음짓는 일 많이 생기길 거에요^^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신주라는 철학자는 다양한 방면에 자신의 철학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영화와 문학을 자유자재로 분석했다. 그리고 시도 해체한다. 보통의 철학자들이 한명의 철학자의 사상에 빠져서 자신의 온 역량을 소비하는데 비해서, 강신주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철학적 사유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적 사유는 시와 영화, 소설 작품을 분석하고 해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의 철학적 놀이에 독자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꾀 오래된 책이지만, 읽고 싶었으나 서가에 꼽아 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꺼내들었다.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이라는 책이다. 


  사실 현대의 많은 시들이 읽기는 쉬우나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를 읽으면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강신주가 소개하는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고 시를 읽으면 시가 이해된다. 놀라운 경험이다. 시인은 이러한 철학을 몸으로 채득하고 본능적으로 시를 쓰는 것일까? 아니면, 철학적 사유 없이 글을 썼는데, 강신주가 적당한 철학을 가져다 붙여준 것일까? 강신주가 소개한 어느 독자의 글 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시인은 그것이 무슨 씨인지도 모른 채 씨를 뿌리고 지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그 씨앗들이 다양한 꽃을 피우겠지요. 그러면 철학자가 뒤따라가면서 시인이 뿌린 씨가 어떤 꽃의 씨인지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22쪽)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난 이상,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 시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의 것이다. 우리는 강신주의 도움을 받아서 시인의 손에서 시를 뺏앗아 올 수 있었다. 

  많은 시를 강신주의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만해 한용운 시인이 그토록 불렀던 '님'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색다른 결론이 무척 흥미로웠다. 중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님'은 조국일 수도있으며, 부처일수도 있고, 사랑하는 님일 수도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한용운을 강렬하게 기억했기에 그의 '님'은 조국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강신주는 '서여연화'라는 여인이라고 단정한다. 어려서 결혼하고 55ㅔ에 유씨 또다시 결혼한 만해 한용운이 서여연화라는 여인을 또 사랑했다니... 정말 충격적이다. 쉽게 그의 님이 '조국'일 것이라 단정한 것은 역사를 사랑하는 나의 바램이었던 것일까? 인간 한용운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도 쉽게 내가 믿고 싶은 한용운을 상상하며 '님'은 조국이어야 한다고 단정한 것이다. 

  강신주의 철학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화두는 '사랑'이다. 대중 강연에서 강신주는 사랑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도 사랑에 대해서 한마디를 던졌다. 


  "사랑은 히드테리와 강박증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을 때에만 가능한 겁니다."-41쪽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의 균형을 추구해야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리이타의 경지와 비슷한 것이 건전한 사랑의 경지가 아닐까? 나의 욕망만을 추구하면 이는 스토킹 범죄가 되고,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데만 골몰한다면 이는 가스라이팅이 될 것이다. 참된 사랑은 이렇게 힘들다. 결혼을 한 부부 사이라할지라도 때로는 나만의 욕망을 추구하며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을 때가 있다. 지나고보면 나의 옹졸한 생각임을 깨닫지만, 그때는 그 욕망에 매몰되어 진정한 사랑을 보지 못한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 낳았지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사랑을 낳는다네" -89쪽


고정희 시인의 시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라는 시는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낙제점이다. 진정한 사랑은 강신주가 말했듯이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어야한다. 그런데, 고정희 시인의 시에는 여성적인 것은 우월하고 남성적인 것은 열등하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녹아있다. 여성이 남성의 이데올로기를 극복 못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띄는 경우가 있다. 남성의 것은 폭력적이기에 열등하고 여성은 사랑을 낳기에 우월하다는 생각도 또다른 폭력적 모습이다. 서로의 다름을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치환해버린다면 남성과 여성의 대립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조화시켜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첩경이 아닐까?


  시가 어려워 평론가나 철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시적 감수성을 키우지 못한 나의 게으름도 시를 어렵게 느끼는데 한몫했다.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은 난해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체력이 많이 약해진 강신주가 체력을 회복하여 많은 저서를 남겨주길 기대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2-15 1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2022년 알라딘 서재의 달인 추카합니다
여기로 가셔서
https://blog.aladin.co.kr/zigi/14178206
주소 입력하시고
알라딘이 보내주는 선물 꼬옥 받으세요

강나루 2022-12-19 01:50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scott님, 연말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22-12-15 1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12-19 01:50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새해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돈과 타협으로 국방력을 대신했던 나라의 최후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통왕조들은 역사를 거울에 비유했다. 송나라 시기 쓰여진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거울 감자가 쓰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근대 역사학이 성리되고 나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성립되었지만, 역사를 우리의 현재를 비추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에 비유하는 것은 유효해 보인다. 강정만 교수의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는 무척 재미있다.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 이어서,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집어들었다.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은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비춰줄까?


1. 송나라 백성은 행복했는가?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는 백성을 위해서 전쟁보다는 굴욕적인 항복 혹은 강화를 선택한 사례가 많이 나온다. 남방의 10국 중에서 가장 긴 71년 동아 국가를 유지해온 전류가 세운 오월은 백성을 생각해서 송나라에게 나라를 바쳤다. 전쟁으로 백성을 고달프게하지 말라는 선왕의 유지를 마지막왕 전숙이 존중한 결과였다. 그러나, 전숙은 회갑잔치에서 갑자기 죽는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책에 전숙의 갑작스런 죽음에 어떠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적혀있지 않다. 백성을 위해서 전쟁을 피해서 나라를 송나라에 바친 결과는 군왕에게는 행복하지 않았다. 

  송나라 역대 황제 중에서 3대 송 진종은 치욕적인 '전연의 맹'을 맺었다. 천자로 자처한 중국 한족의 황제가 요나라에게 굴욕적인 세폐를 바치며 평화를 얻었다. '중국사개설'에는 이를 송나라가 요나라의 맹공을 잘 방어해내서 이후 100여 년 동안 평화를 누렸다며 긍정적으로 서술했다. 반면 여타의 중국사책에는 이를 굴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는 "돈으로 산 '평화'는 그 후 100여 년 동안 송나라 번영의 밑바탕이 되었으나, 송나라로 하여금 지나치게 문치주의에 빠지게 하여 국방력을 약화시킨 후과를 낳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평화를 돈으로 산것은 맞지만, 이것은 송나라가 '지나치게 문치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서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송나라는 태조 조광윤 때부터 문치주의에 빠져들고 있었다. 

  돈으로라고 평화를 사서 백성들을 편안하게하고 싶은 송나라 황제들은 이후에도 전쟁에서 패하면 돈으로 평화를 샀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했을까? 강남 개발을 하면서 부유해진 송나라에게 30만 냥이라는 돈은 많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정도 돈으로라도 평화를 살 수 있다면 당시를 살았던 지배층과 백성들은 행복할 수 있다. 적어도 당시만은.....

  그러나, '전연의 맹' 이후, 송 진종은 봉선의식에 빠져 백성들을 무리한 부역에 내몰았다. 재정낭비는 심해졌다.

  송나라 역사 전체를 살펴보자. 송 태조 조광윤 부터 송 인종 조정 시기 까지의 백성들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며 행복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휘종 이후의 송나라 백성은 불행에 빠져든다. 송 휘종 조길은 정치보다는 문화 예술에 심취하여 '북송육적'에게 국정을 맡긴다. 북송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메기 효과(Catfish effect)'라는 말이 있다.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영국 시장까지 운반하기 위해서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풀오 놓는 것이다. 청어는 살기 위해서 부단히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로인해서 살아있는 청어를 영국 시장까지 들여올 수 있었다. 부국강병을 추구하며 백성들을 혹사 시켜, 영토를 넓히고 송나라를 위협하는 오랑캐들과 대결하는 길을 피하고, 백성들의 삶을 보장하고 국가의 안정을 보장 받기 위해서 돈으로 평화를 샀다. 메기가 사라지자 청어가 쉽게 죽듯이, 쉽게 평화를 얻게 되자, 송나라 황제는 환락과 아닐함에 빠져들었다. 결국, 북송의 두 황제, 송 휘종 조길과 송 흠종 조환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간다. 희종은 금태종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도 자신의 부인 현숙황후 정씨에게는 능욕을 당하고도 자살하지 않는다며 책망을 했다. 부국강병의 힘들길을 피하고, 돈으로 평화를 사는 쉬운 길을 택한 북송의 마지막 모습이다. 돈으로 평화를 샀더라도, 그 평화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끊임 없이 군사력을 키우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현명함을 갖지 못한 댓가이다. 


2. 현명한 삶을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어진 황제와 어진 황태후, 탁월한 예술 군주가 등장한다. 

  송 인종 조정은 어진황제이다. 성품이 인자하고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이며 관용을 베풀어 '인종성치'의 시대를 열었다. 인종이 이렇게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친어머니 신비는 먹고 살기 위해서 비구니가 되었다. 그의 법적 어머니 유황태후도 비천한 가문 출신이다. 그는 황제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친어머니 이신비의 존재를 알았다. 얼마나 가슴아팟던지 며칠 동안 조회를 열지 않고 대성통곡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면, 그는 조선시대 연산군 처럼 폭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종은 어진 황제가 되었다. 산책을 하다가 시종들이 물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고 갈증을 참고 내전으로 돌아오자마자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자신이 시종에게 물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질책하면, 시종은 처벌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 갈증을 참았던 것이다. 

  인종은 어찌하여 성품이 이리도 인자할까? 물론, 성품은 타고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종의 비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 그를 인자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친어머니와 법적 어머니가 모두 빈천한 가문 출신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황제인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 영조의 어머니가 무수리출신이었기에,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으며,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균역법을 비롯한 많은 법들을 만들었다. 송나라 인종도 조선시대 영조도 자신의 어머니가 빈천한 출신이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그들을 어진 지도자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인종의 법적 어머니 유황태후는 어진 황태후로 역사에 남았다. 그녀는 천한 출신으로 인종의 생모 이신비의 몸을 빌려 인종을 출산했다. 수렴청정을 하면서 여황제의 꿈을 꾸기도 했다. 물론, 선을 넘을 뻔하기도했다. 무측천이 조회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대신에게 조칙을 반포하는 '무후임조도'를 신하들의 충언을 듣고 버리기대했다. 천자의 어가인 '대안련'을 타려다가 신하 노종도가 충언을 하자 황태후의 가마로 갈아탔다. 인종의 생모 이신비가 죽자 궁궐 밖에서 후궁의 예로 장례를 치루려 했다. 그런데 재상 여이간이 충언을하자, 이신비를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뤘다. 그로인해서 인종이 황제로 즉위해서 유씨 일가를 멸족시키지 않았으며, 유황태후를 어머니로 모셨다. 

  그녀가 어진 황태후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야망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측천의 역사를 살피면서 그녀도 황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충신들의 간언에 귀기울이며 스스로 그친줄 알았다. '도덕경' 44장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고 했다. 그녀는 측천무후 처럼 스스로 멈출줄 몰라서 자식을 죽이고 후대에 비난을 받는 불행을 겪지 않았다. 

  탁월한 예술 군주 송 휘종 조길은 북송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황제이다. 근대 문헌학자 섭창치는 "도교를 숭상한 송휘종은 청의를 입고 금나라에 굴욕을 당했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천고의 제일가는 천재였다."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탁월한 예술가는 탁월한 군주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조선시대 연산군도 시와 예술을 사랑했던 군주였다. 화려한 전각을 짓고 음악과 시를 즐겼던 그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폭군이다. 휘종과 연산군, 두사람은 예술을 사랑한 군주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백성을 따뜻하게 보살피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흥취를 충족시키기에 관심이 많기에 탁월한 군주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나의 이 질문은 좀 옹졸해 보이기도하다.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하도록 했던 세종은 절대음감을 지녔다. '여민락'을 직접 작곡했던 세종은 조선시대는 물론, 우리나라 역사를 통털어 제일가는 현군이다. 조선 세종은 문화예술을 사랑했지만, 백성의 고닮픔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국강병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농업생산력을 높이고자 '농사직설'을 편찬했으며, 노비에게도 산후 휴가를 주도록했다. 최윤덕과 김종서로하여금 4군과 6진을 개척하도록했다. 탁월한 예술가가 탁월한 군주가 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예가 드물다. 만능천재가 흔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 않는가? 그러하기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이 아닌가! 휘종과 연산군이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면 그들은 탁월한 예술가로 명성을 떨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히도 군주가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삶도 백성의 삶도 고닮프게 만들었다. 

  송나라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하는지 생각해본다. 


  저자 강정만은 송나라를 '중국식 민주주의가 꽃피운 시대'라고 평가했다. 관료들이 황제를 끊임 없이 견재하고, 황제는 이를 존중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말한다. 대학에서 송대를 '황제 독재체제가 완성된 시기'로 배웠기에 상당히 낯설었던 평가였다. 이러한 낯섦은 송나라의 역대 황제의 인자한 모습을 보면서 해소되었다. 제도적으로는 황제 독재체제가 완성되었지만, 그들은 독재권력을 마음껏 휘두르지 않았다. 신하들의 충언에 귀를 기울렸다. 물론, 이것이 문치주의의 나약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군주의 인자함을 잃지 않은 송나라 황제의 인품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북송시대를 지나, 여진족과 몽골족의 등살에 기를 펴지 못한 남송 시대를 접어들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송도종 조기 부터 시작하여, 송공제 조현, 송단종 조하, 송소제 조병에 이르는 황제들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멍청했다. 왕조 말기, 연이어 무능하고, 어린 황제의 등극은 간신들이 발화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이 밀려왔다. 연이어 혼군과 폭군이 들어서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인 이야기 9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9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가 9권에 접어들었다. 9권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한길사와 김명호 교수는 중국인 이야기를 끝낼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재미있는 중국이야기가 천일 야화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않는다. 1권에서는 산만한 면이 없지 ㅇ낳았다. 체계가 없었다. 단순한 이야기들의 나열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체계를 잡기 시작하더니, 9권은 군벌과 중미외교라는 커다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져서 한결 내용 정리가 잘된다. 김명호 교수의 글재주도 중국인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럼, 중국인 이야기 9권을 통해서 김명호 교수가 들려주고 싶었던 중국인 이야기는 무엇일까?

  중국인 이야기 9권에서는 두인물과 하나의 재단이 기억에 남는다. 바로, 애국 군벌 퍼위샹과 한간이된 청의 왕녀 가와시마 요시코, 록펠러 재단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보자. 

  군벌이라는 단어에 '애국'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보통 반군벌은 반외세와 함께 했다. 쑨원이 내세운 구호도 '반군벌 반외세'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퍼위샹은 달랐다. 자신의 정체성을 평민으로 삼았다. 아들이 기차 일등석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방문을 잠궈놓고 주먹으로 아들을 훈계했다. 그뿐인가, 일생을 반청, 반군벌, 반장제스, 반미의 삶을 살았다. 결국, 국민당 정부의 손에 저세상으로 가는 비운을 격었지만, 그의 삶은 강렬하게 나의 뇌리에 남는다. 모든 군벌이 외세의존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퍼위샹을 통해 깨달았다. 그가 쑨원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중국의 역사를 바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장제스가 아닌, 퍼위샹의 손에 의해서 북벌이 완성되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퍼위샹과 대비되는 사람이 가와시마 요시코이다. 중국이름은 진비후이이다. 청왕조 부활을 노리는 숙친왕의 수많은 딸중에 한명인 그녀는 일본인에게 양녀로 넘겨졌다. 청나라 사람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자란 그녀는 여자이기 보다는 혁명가로서 살려했다. 중국에 입장에서는 철저한 한간의 삶이었다. 마치 이토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조선의 마타하리 배정자와 같은 여성이다. 

  일본은 집요하게 친일파 양성에 공을 들였다. 조선의 마타하리 배정자와 청나라 왕녀 가와시마 요시코를 보면, 일본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풍랑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져준다. 배정자의 몰락한 가족사와 가와시마 요시코의 왕조가 몰락한 것이 대비되며 이들에게 일본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를 했다. 그런데, 그녀들은 왜? 패망한 일본으로 가지 않았는가? 자신의 정체성일 이제는 조선인이나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바뀌었다면 그들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었던지, 아니면 그들의 선택이 기회주의적 선택이었기에 패망한 일본에 갈 생각은 아예 없었는지 모른다. 차라리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자결을 하는 것이 더 깨끗하지 않았을까? 저따위 천한 매국노들에게 그런 고상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록펠러재단의 자선활동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 도서관을 지었다는 사실밖에는 알지 못하는 나에게, 록펠러재단이 중국에 한 선행은 인상 깊었다. 특히, 중국 고고학에 막대한 지원을 2년 동안하였으며, 그 결과 베이징 원인이 발굴되어 세계 고고학계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협화 의학원을 설립하여 중국의 의학 발달에 기여했다. 그런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 선행을 하면서도 베이징 의학원 교수 존스톤의 훈수를 록펠러재단이 경청하고 따랐다는 점이다. 


첫째, 군림하며 가르치려고하지 말라. 즉, 우수한 청년이 많음을 알고, 그들의 자존심을 높여주어라. 

둘째, 중국에서 이익을 볼 생각을 하지 마라.

셋째, 빠른 시간내 중국인의 손에 운영되길 희망해라.

즉,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를 본받아라!

 

  위의 원칙은 존스톤 교수의 훈수를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미국이 제3세계에 원조를 많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원조가 많은 나라일 수록 반미정서가 높다고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원조를 통해서 이익을 볼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시혜를 베풀려했지, 그들의 자존심을 높여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가 타국에 원조할 때도 마찬가지다. 존스톤 교수는 베푸는자가 가지는 오만함을 깨닫고 록펠러재단에 조언을 했다. 록펠러재단은 그 조언은 경청했고 따랐다. 록펠러재단은 좋은 훈수를 경청하고 따를 수 있는 정도의 그릇이었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중국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봉사를 하면서 봉사를 받는자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봉사를 통해서 무형의 이익을 보려고 하지 않았는가? 봉사를 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그들의 손에 의해서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려 노력했는가? 존스톤 교수의 훈수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훈수이다. 


  김명호 교수가 '문화노인'을 생각하며 써내려가고 있는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중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용솟음치는 그의 중국이야기가 흥미를 더한다. 아마도 내년이면 10권이 출간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찾아 김명호 교수가 들려주는 문화노인들의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1900년 7월 17일 밤, 미국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에게 광서제가 직접 보낸 서신


중국은 미국과 장기간 우호 관계 유지하며 미국의 최종 목적이 국제무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중미 쌍방은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불신임하지 않았다. 최근 중국인과 기독교 전도사 간의 증오가 폭발, 열강이 조정의 입장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선교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중국인의 행동을 정부가 지지한다는 근거 없는 의심으로 재난에 가까운 군사 충돌이 임박해다. 목전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귀국에 무한한 신뢰를 표한다. 각하의 지혜로운 결정에 각국이 협조해 질서 회복과 평화 창출에 노력하기를 희망한다. 회답을 간곡히 청한다.




7월 19일, 매킨리의 답신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은 중국이 정의와 공평만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군대를 파견한 목적은 단순하다. 엄중한 위기에 처한 미국 공사관을구하고, 중국에 체류하며 조약과 국제법에 명기된 권리를 행사하는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때문이다. 본 정부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타 국가들에게 폐하와의 우호를 주선하겠다.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9, 한길사, 20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에 읽는 니체 -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장재형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오북을 열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니체의 글은 쉽게 쓰여져 있다고 해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글이다. 니체를 전공하지 않은 장재형 작가의 글이다보니 아무래도 쉬울 것이며, 쉽게 지나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오만이었다.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주기에 오디오 북으로 읽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집안일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듣다보니, 중간에 메모를 하기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오디오 북을 다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한가지를 가지고 글을 쓰기로 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배워라'라는 주제가 나의 머릿속을 맴돈다. 인생 초반기에는 살아기기 위해서, 도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찾았다. 그리고 어떻게 삶을 이루어갈지를 고민했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이 보이는 시기가 되자, 반환점을 돌고난 이후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어떻게 나이들어갈지, 어떻게 죽음을 바라보아야할지를 고민한다. 

  니체는 어떻게 잘 죽을지를 고민하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세상에 잘 태어났고, 잘 살았다면, 이제는 잘 죽을 것을 고민해야한다. 잘 죽기 위해서는 인생의 황혼기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건강을 관리할지도 고민해야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가 남성들 사이에서 인끼를 얻는 이유도 이와 관련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자연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니체가 말한 잘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어떻게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야할까? TV에 나오는 자연인들 처럼 시골에 내려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까? 사회에 봉사하면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까? 도서관을 오가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여생을 살아갈까?

  마흔을 지나서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마흔에 읽는 니체'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화두를 머릿속에 담아두며 새로운 내일을 맞이한다. 그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하다. 그 길을 걸어가 보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11-27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오래 사용했던 배경 화면이라 반가워요. 이 배경 참 좋아요.
니체의 글을 좋아하는 1인입니당~~

강나루 2022-11-27 15:44   좋아요 1 | URL
저도 니체철학을 좋아합니다.